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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릴적 시골교회 좋아! 원문보기 글쓴이: 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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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교회 전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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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교회 온돌 아궁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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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담임목사
◆ 역경을 딛고 목회자로 출발
동방의 의인이요, 거부였던 욥의 재산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듯이 정연태 목사(63세)도 트럭 두 대로 크게 하던 한약 도매업의 상권과 재산이 일시에 없어지더라고 했다.
같은 교회(부산 서동교회)에서 같이 장로장립을 받았던 김상환 장로는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사람이고, 교회 일에도 활동적이었던 장로였는데 하루아침에 돌아가신 것을 보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는 말씀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존재는 안개와 같은 것인데 이 생명을 위해 아귀다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느냐? 여기에 회의를 느낀 정연태 장로는 그때부터 남은 생애를 주를 위해 바칠 결심을 하고 매년 가던 중국 단기선교도 접고 신학을 마친 뒤 목회자로 출발하게 되었다.
정 목사가 낙도선교회로부터 소개받은 교회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문덕리에 있는 문덕교회였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예배드리는 교회였고, 이것도 6개월이면 철거해야 할 컨테이너였다.
사택은 다른 분이 사용하겠다고 해서 임대로 내어준 상태였으므로 이곳에 와도 방 하나 없는 그런 목회 지역이었다.
교회 옆에 빈집이 하나 있었지만, 지붕만 새마을사업 때 초가에서 슬레이트로 바뀌었을 뿐 부엌은 옛날 그대로여서 천장은 그을음으로 얼룩져 있는 데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집이라 사람이 들어가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그런 집이었다.
흉가로도 소문난 집이라 낮에도 뭔가 나올 것 같아 마을 전체가 무서워하는 집이어서 애들은 근처에도 가기를 싫어했고, 주민들도 철거를 원하고 있어서 주인도 곧 철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집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둥이 약해 넘어질 그런 집은 아니었으므로 수리만 잘하면 사용할 수 있는 집으로 보였다. 주인인 이홍기 사장을 만나 “우리가 수리해서 살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했더니 5년간 임대료를 받지 않고 살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 약속을 받고 이사 와서는 나무에 묻어 있는 그을음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았지만, 주방세제를 탄 물걸레로 몇 번 닦으니 결국은 벗겨졌다. 서까래 사이에 흙으로 발라졌던 곳은 일부 흙을 긁어내고 황토로 바르고 나니 그렇게 더럽던 천장도 깨끗해졌다.
전에 있던 구들장은 모두 뜯어내고 다시 놓았다. 바깥에서 불을 때게 만든 것이 아니고 거실 한쪽을 깊이 파서 거실에서 불을 때게 만들었다. 거실에서 나무를 때면 연기가 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방 뒤쪽에 넓이 70㎝, 깊이 90㎝ 구덩이를 파서 구들을 놓으면 굴뚝에서 강한 바람이 들어와도 그 안에서 회전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오는 연기가 없다.
옛날 시골에서 불을 때다 눈썹을 그슬리게 되는 것은 굴뚝을 통해서 들어온 바람이 회전하지 못해서 아궁이로 바로 불이 따라나왔기 때문이다. 이때 연기가 나오면 눈도 따갑고 눈물도 나오게 된다. 그러나 골을 깊게 파면 그런 현상이 없고, 굴뚝에 환풍기를 달아두면 거기에서 연기를 뿜어내므로 나오는 연기도 없다. 거실에서 불을 때면 열기에 의해 마루까지 훈훈해진다.
경북 영천에서 큰 농장을 하고 있는 권영락 씨가 황토방을 만들기 위해 구들 놓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데 많은 고심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 구한 구들 기술자도 정 목사같이 이런 원리를 잘 활용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바람을 막기 위해 앞에 마루를 내면서 만든 문들도 버리는 폐자재들을 얻어 와서 만들었다. 벽에 황토를 발랐는데 전문가의 미장 솜씨가 아니어서 누가 발랐느냐고 했더니 사모가 바르고 목사님과 주인이 보내준 젊은 일꾼은 미장을 도와주는 허드렛일을 했다고 한다.
남자도 하기 힘든 미장일을 한 사모의 팔목을 보니 가는 팔목이 아니라 건강을 상징하는 통뼈 팔목이었다. 이런 사람은 건강 체질이어서 잔병치레도 잘 하지 않는다.
업자를 불러서 일을 시켰으면 2천만 원 가까이 들 공사를 부부가 하고 나니 주인과 마을 사람들이 그때부터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탐방자도 20년간 농촌생활을 했고, 많은 곳을 탐방했지만 시골집을 개조해서 응접실을 만들고 거기에서 불을 때지만 연기가 나지 않고 온수까지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처음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정 목사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어서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만들게 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주인이 놀라워하면서 많은 현지인들을 직접 데리고 와서 자주 구경시키기까지 했다. 마을 사람들이 본인의 집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한결같은 대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한다는 답이었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진짜 예수쟁이가 우리 마을에 왔고, 우리가 알고 있는 친척 목사나 주위의 목사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보고 먼저 인사하려고 합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문 옆에 고추와 파, 무 등을 갖다 놓고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갖다 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밭에 갔다 오면서 놔두고 가는 것이다. 먹을 때마다 “이곳에서 불신자들을 통해 날마다 먹게 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받게 해주옵소서.” 하고 기도할 때는 목사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 교회 발전을 축원합니다
‘교회 발전을 축원합니다.’
교회라는 말이 없으면 일반 사회인들은 축의금을 줄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런 헌금을 받으면서 반가운 것은 다섯 형제가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믿겠다고 한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마을의 연세 많은 한 노인이 교회에 나오면서 아들들에게 너희는 교회에 안 나가고 있지만 내가 죽으면 기독교장례로 해달라는 유언을 했다.
믿지 않는 자식들이다 보니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부모가 유언으로 한 말을 자식들이 안 들어줄 수 없어 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형제들 간에 갈등이 있는 것을 보고 정 목사는 발인예배와 안장예배까지는 교회에서 하고 이후에 모든 것은 형제들이 알아서 하십시오. 단 교회에서 하는 예배에는 협조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장례식을 행했다.
장례를 마치고 나니 타지에 나가 있는 네 명의 형제와 고향에 남아 있는 한 명도 예수를 믿겠다는 말을 해왔고, ‘교회 발전을 축원합니다.’ 하는 감사헌금과 6년근 인삼 1통을 선물로 갖고 왔다. 정 목사가 그분을 위해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했더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있게 되었다.
이 마을은 우상숭배가 특히 심한 마을이다. 마을 이름인 ‘문덕리’ 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아도 ‘자라바위 마을’이라고 하면 이웃 동네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마을에 자라같이 생긴 바위가 있는데 1년에 한 번씩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고, 젊은이가 군에 가거나 고향을 떠날 때는 그 바위에 절을 하고 떠날 정도이다 보니 마을회관에는 온통 자라바위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런 마을에 교회가 들어오는 것은 모두 배타적인데 동장과 유지들이 협조를 잘 해주므로 오히려 복음을 잘 받아들여 모두 구원받는 역사가 빨리 이루어질 것 같다고 했다.
◆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컨테이너 교회도 6개월 후면 철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교인들 중에 일부는 미리 타 교회로 떠나고, 남은 교인이라고는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노인들만 5~6명 있는 그런 교회였다.
낙도선교회에서 24개 교회의 명단을 주면서 이곳에 연락하면 후원금을 보내줄 것이라는 말에 기대를 걸고 24개 교회에 정성 들여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한 교회에서도 답이 없었고 오히려 발송비만 몇 만원 들었다. 그 돈이면 목사님 가족이 열흘은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였다.
이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있었다.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오병이어 사건의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태복음 14:16)”
‘우리는 어디에도 찾아가 애로사항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이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먹여줄 것이다.’라는 확신이 그때에 확 들어왔다.
개척교회를 시작하면 여러 곳에서 후원받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정 목사만은 손을 내밀어서 후원금 받는 데에 정신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달려서 적으면 적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목회를 하자는 뜻을 굳혔을 때는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6개월 뒤 컨테이너를 치우라고 한 땅도 집주인의 땅이었다. 뜯어야 할 집을 잘 수리해서 사용하는 것을 본 집주인의 마음이 변화되어 “목사님! 교회를 짓고 싶으면 컨테이너를 치우고 그 자리에 교회를 짓도록 하십시오.” 하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 할렐루야!
그러나 목사는 돈이 없었다. 활용할 수 있는 돈은 1천 5백만 원 마이너스통장에서 200만원 빼내 쓸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마음에 확 들어와 닿는 것이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마태복음 14:18).”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200만원을 갖고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 아파트 한 평 건축비도 안 되는 200만 원으로 15평의 교회를 건축했으니 이것 역시 기적이었다. 높게 쌓는 블록이 아니면 큰 기술 없이도 쌓을 수 있어 손수 쌓고, 내부는 황토에 풀을 섞은 황토페인트를 만들어 바르고 외부는 황토시멘트를 발랐다. 시멘트블록에 흙을 바르면 잘 붙지 않기 때문에 황토 64%, 모래 30%, 시멘트 6%에 물을 넣고 잘 이기면 시멘트벽에도 잘 붙고, 그렇게만 발라도 보온이 잘 된다.
지붕은 이웃 교회에서 쓰고 남은 자재를 얻어 와서 사용했다. 지붕 잇는 일은 경험 있는 기술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마을에서 감리교회에 나가는 임종백 집사는 이 계통의 기술자였다. 임 집사는 우리 마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은 너무 기쁜 일이라면서 자기 일같이 무보수로 도와주었기 때문에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집을 짓다 보니 다양한 도구들이 필요했지만, 그때마다 주인 이홍기 사장과 임 집사의 도구를 활용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적은 금액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이 말씀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배부르게 먹게 하신 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한복음 6:12)”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은 평소에 검소함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씀이었다.
정 목사도 검소한 생활이 철저히 몸에 배어 있어서 폐자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 시골이라 주위에 나무가 많고 또 공장들이 많아 거기에서 나오는 폐목들이 있어 이것을 최대한 활용하다 보니 교회 안에도 구들(온돌)을 놓았는데 불을 땐 뒤 30분이면 교회 바닥이 따뜻했다.
이렇게 빨리 따뜻해지는 것은 구들을 놓을 때 돌로 놓는 것이 아니고 컨테이너 철판을 잘라 구들장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더워진다고 했다.
‘문덕교회’라는 교회 간판도 돈을 주고 만들어 단 것이 아니고 갖고 있던 검은 돌과 흰 돌을 붙여 만든 간판이었다. 나무에 글을 쓴 현판도 10~20만원은 들어갈 금액인데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간판을 만들어 놓았다.
강대상 뒤에는 붉은색의 낙엽송 판자로 아름답게 꾸며두었다. 낙엽송 하면 옛날 공사판에 사람이 서서 일할 수 있는 비계목이나 철도 침목(枕木), 전봇대로 사용했던 나무이다. 주택을 지을 때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은 못이 잘 들어가지 않고 나무가 잘 갈라지면서 틈이 생기는 나무의 큰 흠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목사님은 알고 계셨다. 낙엽송은 마르면 못이 안 들어가지만, 마르지 않았을 때는 못도 쉽게 들어가고, 못만 쳐 두면 휘어지는 것은 없다.
대패질은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지만,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갈면 대패질한 것 같이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굵은 낙엽송도 삶거나 쪄야 안 갈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간단한 원리를 적용시키면 안 갈라지게 할 수 있다. 밤 구울 때 칼집을 내서 구우면 거기만 갈라지고 다른 데는 갈라지지 않는 원리를 낙엽송에 적용시키면 갈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 마르지 않은 나무를 가려지는 한쪽 부위에 2㎝ 정도의 깊이로 톱질만 해주면 갈라지는 것은 없다. 이곳에 오기 전 고향인 봉화에서 5년간 과수 농사를 하고 황토방을 지으면서 낙엽송 통나무를 그렇게 사용했더니 트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일전에 탐방자는 몇 사람과 함께 고급 식당에 갔는데 실내에 기둥으로 쓰인 굵은 통나무들이 모두 트고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바깥에 있는 정자 기둥목 중에서 폭 0.5㎝, 깊이 2㎝ 정도의 흠집을 몇 개 내어둔 나무에서는 트고 갈라진 것이 없었다.
낙엽송은 이런 단점 때문에 일반 목재에 비해 30% 정도 값이 싸다. 그러나 이것을 잘 활용하면 일반 목재보다 더 단단하고 수명도 길다.
하나님은 정 목사에게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철저히 훈련시킨 뒤 이곳에 파송시킨 특별한 목사로 보였다. 정 목사가 늘 암송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디모데전서 4:4)”였는데, 정말 버려진 낙엽송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돌을 주워서 사택 수리하는 데 사용했고, 교회 건축에까지 이용하다 보니 최저 금액으로 교회를 건축할 수 있었다.
200만원으로 교회를 건축했다는 소문이 목사들 사이에 퍼지면서 건축한 지 6개월 만에 다녀간 목사만도 100명이 넘는다. 이곳에 온 지 1년이 채 안 되어서 사택 수리, 교회 건축 등으로 다른 생각할 시간이 없었지만, 지금부터는 교인들 집에 수리할 것이 있으면 해주고, 믿지 않는 가정에 집수리 같은 것이 필요하면 언제나 가서 해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다.
“갈 것 없다(마태복음 14:16)”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믿지 않는 마을 사람들이 너희에게 먹을 것을 주리라 그리고 그들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 그리스도의 큰 향기는 도시가 아니고 농촌에서 먼저 이루어지리라.’ 탐방자에게는 이 말이 주의 말씀같이 세미한 음성으로 들렸다.
농촌교회를 도와주고 있는 도시교회에서 농촌 목회자들이 정 목사같이 일하면 우리는 도와주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정 목사에게는 공부하는 자녀가 없고, 내외가 모두 건강하며 농촌교회를 위해서 귀한 달란트를 갖고 특별히 출발한 목회자이므로 모두가 정 목사같이 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출처 : http://www.cgnnews.com/detail.php?number=2703&thread=11r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