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선생께서 여러 해 동안 객지를 다니시면서 많은 경험을 얻으신 후에 신축(1901)년 선생께서 31세 되시던 해에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하실 권능을 얻지 아니하시면 널리 세상을 구할 뜻을 이루지 못할 것 임 을 깨달으시고 드디어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 들어가셔서 도를 딱으시니 이 해 7월에 상서러운 큰 비가 쏟아지고 큰 바람 일어나는 가운데 하늘과 땅의 무상없는 큰 도를 깨달으시고 탐음진치 사종마(四種魔)를 굴복시키 시니 이때에 대원사 주지승이던 박 금곡이 선생께서 공부하실 때 시중을 들었더라.
原文: 先生이 多年間 客地에 遊歷하사 만흔 經驗을 어드신 後에 辛丑에 이르사 비로소 모든 일을 自由自在로 하실 權能을 엇지 안코는 ? 을 일우지 못할 줄을 ?다르시고 드대여 全州 母岳山 大願寺에 드 러가 道를 닥그사 七月 大雨 五龍噓風에 天地大道를 ?다르시고 四 種魔를 降하시니 이?에 同寺 主持 朴 錦谷이 모든 便宜를 도앗더 라.
임인(1902)년 4월에 금구군 수류면(현재 김제군 금산면) 원평장을 지나시 다가 우림면 하운동에 사는 김 형렬을 만나시니 형렬은 예전에 선생을 만 나 뵌 적이 있었는데 선생께서 도를 이루셨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뵙기를 원하던 차 이므로 크게 기뻐하며 자기집으로 와주시기를 간청하였더니 4 월13일에 형렬의 집에 오셔서 곧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집에 아이 낳을 기운이 보이니 빨리 안방에 들어가서 출산을 잘 도우라." 하시 거늘 형렬이 안방에 들어가보니 과연 아내가 형렬의 셋째 아들을 낳았더 라.
原文: 壬寅 四月에 先生이 金溝郡(今金堤郡) 水流面 院坪場에 지나시다가 全州郡 雨林面 夏雲洞 金 亨烈을 만나시니 大抵 亨烈은 前者부터 先生께 知面이 잇셧는대 先生의 成道하신 所聞을 듯고 뵈입기를 願하든 次임으로 喜不自勝하야 自家에 顧臨하시기를 懇請하엿더니 同月 十三日에 亨烈의 집에 이르사 곳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君 家에 産氣가 잇스니 ?니 內室에 드러가 잘 도우라 하시거늘 亨烈 이 內庭에 드러가니 果然 그 妻가 第三子를 分娩하엿더라.
형렬의 아내가 예전부터 아이를 낳은 후에는 반드시 복통이 생겨서 몇 개 월씩 고생하고 하였는데 이번에도 그러하므로 형렬이 크게 근심하였더니 선생께서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앞으로는 모든 일에 나를 믿고 근심을 하지 말라." 하시므로 형렬이 선생께서 명하신대로 선생만을 믿고 근심을 놓았더니 과연 아내의 복통이 곧 그치고 그 밖에 기침과 해소같은 다른 잔병도 모두 나으니라.
原文: 亨烈의 妻가 自來로 産後에 반다시 腹痛이 發하야 累月을 苦痛하는 例症이 잇서서 ? 復發함으로 亨烈이 크게 근심하거늘 先生이 慰勞 하야 가라사대 今後로는 모든 일에 나를 信賴하고 근심을 노으라 하시거늘 亨烈이 命하신 대로 다만 天師만 밋고 근심을 노핫더니 果然 그 妻의 腹痛이 곳 그치고 그밧게 喘氣와 咳嗽 等 別症도 다 나으니라.
선생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선천의 도가 어지러워지고 쇠퇴하 는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끝없는 큰 운수가 열릴 것이니 모든 일을 조심 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는 모임에 참여하라. 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삼계의 대 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늙지않고 죽지않는 신선세계를 열어 고통의 바다에 빠진 중생들을 건지려 하노라." 하시고 이로부터 형 렬의 집에 머무르시면서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 어주시어 신명들의 모임과 흩어짐 그리고 신명들이 선생의 명을 받드는 것을 곁에서 참관(參觀)하게 하시니라.
原文: 先生이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졔 末世를 當하야 압흐로 無極大 運이 열니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야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 니하야 純潔한 마음으로 天地公庭에 參與하라. 나는 三界大權을 主 宰하야 造化로써 天地를 開闢하여 不老不死의 仙境을 열어 苦海에 浸淪한 衆生을 건지리라 하시고 일로부터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天 地公事를 行하실새 亨烈에게 神眼을 열어주사 神明의 會散과 聽令 을 參觀케 하시니라.
선생께서 김 형렬의 집에서 여름을 지내실 때 형렬의 집이 가난하여 선생 께 올리는 음식이 약소하고 또 채소밭이 메말라서 채소가 잘 자라지 않으 므로 형렬이 근심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산속에는 별미가 없으니 채소나 잘 자라게 하여주리라." 하시더니 이로부터는 약간 심어 두었던 채소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자라서 쓰임에 넉넉하게 되니라.
原文: 여름을 지내실 새 亨烈의 집이 貧寒하야 供?가 粗略하고 ? 圃園 이 瘠薄하여 蔬菜가 잘 자라지 안니함으로 亨烈이 근심하거늘 先生 이 일너 가라사대 山中에는 別味가 업나니 蔬寀나 잘 蕃殖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일로부터 약간 심어 두엇든 악마듸 蔬寀가 人工을 加하지 아니하여도 졔절로 잘 蕃殖하야 採之不竭하니라.
임인(1902)년 6월 어느날 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예수교책 한 권을을 구해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이웃마을 오동정에 사는 김 경안에게 서 신약전서 한 권을 빌려서 올리니 선생이 받아서 그 책을 불사르시니 라. 그 후에 형렬이 선생을 모시고 오동정에 사는 차 윤필의 집에 가니 경안이 와서 빌려간 책을 돌려주기를 요청하므로 형렬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니 선생이 대신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곧 돌려주리라." 하시더니 마침 한 붓장사가 지나가거늘 선생이 불러들이시어 술과 음식을 많이 접 대한 후에 "그 붓상자를 열어보라." 하시니 붓장사가 상자를 열어 보이니 신약전서 한 권이 들어 있는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반드시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이 책은 그대에게 쓸모가 없을 터이니 나에게 줄 수 없겠느냐." 하시니 붓장사가 후한 대접을 받은터라 허락하거늘 선생께 서 그 책을 받아서 경안에게 주시니라.
原文: 六月 어느 날 亨烈을 命하사 耶蘇敎書 一冊을 求하여 오라 하시거 늘 亨烈이 隣里 梧桐亭 金 京安에게서 新約全書 一冊을 비러다 올 니니 先生이 바더서 불살으시니라. 그 後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고 梧桐亭 車 允必의 집에 가니 京安이 와서 비러간 冊을 돌녀주기를 請함에 亨烈이 對答치 못하거늘 先生이 가름하야 對答하사대 곳 돌 녀주리라 하시더니 마참 한 筆商이 지나거늘 先生이 불너들이사 술 을 만히 주신 後에 그 筆箱을 열어 뵈이기를 請하신 대 筆箱이 곳 열어 뵈이니 新約全書 一冊이 잇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그대는 반다시 耶蘇를 밋지 아니하니 이 冊은 無用이라. 나에게 傳함이 엇 더하뇨. 筆商이 許諾하거늘 先生이 그 冊을 바더서 京安에게 주시 니라.
그 후에 불교책 천수경과 한자옥편과 사요와 해동명신록, 강절관매법, 대 학등 여러 책과 형렬의 채권부를 불사르시니라.
原文: 그 後에 佛書 千手經과 漢字玉篇과 史要와 海東名臣錄과 康節觀梅 法과 大學等 書를 불살으시니라.
임인(1902)년 9월에 농부들이 부지런히 밭을 갈아서 보리를 심는 것을 보 시고 말씀하시기를 "저렇게 힘들여 일하나 수확을 얻지 못하리니 어찌 불 쌍하지 아니하리오." 하시거늘 형렬이 그 말씀을 듣고 그 해 보리농사를 짓지 아니하였더니 이듬해 봄 기후가 순조로워서 보리농사가 잘되어 풍년 의 징조가 보이는 지라. 김 보경등 모든 종도들과 이웃사람들이 모두 선 생의 말씀을 믿고 보리농사를 짓지 아니한 형렬을 비웃거늘 선생께서 말 씀하시기를 "이 일은 신명공사에서 결정 된 것이니 어찌 결실하기 전에 미리 풍작을 말할수 있으리오." 하시더니 과연 5월5일에 쏟아진 폭우로 인하여 보리이삭이 다 말라서 전혀 수확이 없게 되고 쌀값이 폭등하여 한 말에 일곱 냥(일원 사십전)이나 되니 이로부터 모든 사람이 선생의 말씀 을 깨달아 믿고 복종하니라.
原文: 九月에 農家에서 麥耕으로 奔忙하거늘 先生이 ?然히 가라사대 이 럿케 辛苦하여 收穫을 엇지 못하리니 엇지 可惜지 아니하리요. 하 시거늘 亨烈이 이 말삼을 듯고 드대여 麥農을 廢하엿더니 癸卯春에 이르러 天候가 順調하야 豊登의 兆가 잇는지라. 金 甫京 等 모든 從徒들과 이웃사람들이 모다 亨烈을 嘲笑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 일은 神明公事에서 決定된 것이니 아즉 結實期에 이르지 못하 야 엇지 豊作을 預斷하리요. 하시더니 果然 五月五日 大雨로 因하 야 麥穗가 다 말나서 收穫이 全無하게되고 米價가 高騰하여 一斗에 値 七兩(今金貨一圓四十錢)이 되니 일로부터 모든 사람이 先生? 信服하니라.
한 사람이 선생께 묻기를 "금년에는 어떤 곡식을 심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본사람이 녹줄을 가지고 왔으니 일본종자 를 심어라. 그리고 모든 일에 그들을 거슬리게 하지 않으면 녹줄이 따라 들어오리라." 하시니라.
原文: 한 사람이 무러 가로대 今年에는 엇든 穀種을 심음이 조흐릿가. 先生이 가라사대 日本人이 祿을 ?고 왓나니 日本種을 取하여 심 으라. ? 生計의 모든 일을 그들에게 順從하라. 祿줄이 ?라 들리 라. 하시니라.
임인(1902)년 겨울에 김 형렬이 선생을 모시고 계실 때 마침 큰 눈이 내 리거늘 형렬이 "전설에 송 시열이 거주하는 집 지붕에는 눈이 쌓이지 못 하고 녹았다 하니 송 시열은 진실로 천지의 정기를 타고난 사람일 것 입 니다." 라고 말하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그러하랴. 이제 내가 있는 곳을 살펴보라." 하시거늘 형렬이 밖으로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많이 내려 쌓였는데 오직 선생이 거처하시는 형렬의 집 지붕 위에는 한 점의 눈도 없고 맑은 기운이 하늘에 뻗어 구름이 가리지 못하고 푸른하늘 이 보이는지라. 이날 이후로 형렬이 항상 유의해서 살피니 언제나 선생이 머무시는 곳에는 반드시 맑은 기운이 푸른하늘까지 통하여 구름이 가리지 못하고 비록 큰 비가 오는 때에도 그러하더라.
原文: 冬月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더니 마참 大雪이 나리거늘 亨烈이 엿주 어 가로대 傳說에 宋 尤菴의 居住하는 집웅에는 눈이 싸이지 못하 고 녹는다하니 진실로 天地의 至靈之氣를 타고난 사람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진실로 그러하랴. 이졔 나 잇는 곳을 삷혀보라. 亨烈이 밧게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만히 나려 싸이되 오직 그 집웅에는 一點雪도 업고 맑은 긔운이 하눌에 ?치어 구름이 가리우 지 못하고 碧空이 通하여 보이더라. 일로부터 亨烈이 恒常 留意하 야 삷히니 언졔든지 그 머무시는 곳에는 반다시 맑은 긔운이 碧空 을 通하야 구름이 가리우지 못하고 비록 큰 비가 오는 ?에도 그러 하더라.
항상 밖으로 나가실 때에는 종이에 치도령을 써서 불사르시니 신명들이 여름이면 바람을 불게 하여 길에 이슬을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진 길을 얼 어 굳게 함으로 선생은 언제나 마른 신발로 다니시니라.
原文: 매양 出他하실 ?에는 神明에게 治道令을 써서 불살으사 여름이면 바람을 불녀 길에 이슬을 ?러트리시고 겨울이면 진 길을 얼어 굿 게 하신 後에 말은 신으로 다니시니라.
하운동은 산 속이므로 길이 협소하고 숲이 우거져서 이슬이 많을뿐 아니 라 장마에는 길이 개울을 이루었으나 선생의 신발은 항상 깨끗하므로 사 람들이 모두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原文: 夏雲洞은 山中임으로 길이 甚히 좁고 樹木이 길에 욱어저 얽히여서 이슬이 만흘? 아니라 ?霖이 질 ?에는 길에 물이 흘너 溪流를 일 우되 先生의 신발은 恒常 乾淨함으로 附近 村民들이 모다 神異히 역이더라.
또 선생이 계신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실 때에는 언제나 동네 입구 양 편에 구름기둥이 깃대와 같이 높이 뻗쳐서 여덟 팔자 형태를 이루므로 종 도들이 그 이유를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신장(神將)들이 나를 호위하기 위하여 대기하니 만들어지는 문이니라." 하시니라.
原文: ? 出他하실 ?에는 반다시 洞口의 左右側에 雲柱가 놉히 ?치어 八字形을 일움으로 從徒들이 그 理由를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將門이라 하시니라.
계묘(1903)년 7월에 쌀값이 크게 오르고 농작물에 해충피해가 심하여지므 로 민심이 불안해 지거늘 선생이 여러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신축 (1901)년 이후로는 일년삼백육십오일 일년의 일을 모두 내가 맡았으니 금 년농사를 잘 되게 하여 민중의 생계를 넉넉하게 하리라." 하시고 크게 우 뢰와 번개를 일으키시니 이로부터 해충피해가 줄어들고 농작물이 잘 자 라느니라.
原文: 癸卯 七月에 米價가 奔騰하고 農作物에 蟲災가 甚하야 人心이 極히 不安하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辛丑 以後로는 年事를 내가 맛헛스니 今年의 農作을 豊登케 하야 民祿을 넉넉케 하리라. 하시고 크게 雷電을 이르키시니 일로부터 蟲災가 것치고 作物이 大登하니라.
선생의 친동생 영학이 항상 도술을 통하기를 바라며 선생께 빌었더니 하 루는 선생께서 부채 한개에 학을 그려서 영학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집에 돌아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칠성경을 무곡파군(武曲破軍)까지 읽 고 이어서 대학을 읽어라. 그러면 도술을 통하리라." 하시니라. 영학이 부 채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선생의 처남집인 정 남기의 집에 들리니 남기의 아들이 그 부채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부채를 빼앗고 돌려 주지 아 니하거늘 영학이 부득이 선생이 부채를 주신 사유를 말하고 돌려주기를 간청하니 남기의 아들은 더욱 탐내어 주지 않음으로 할 수없이 빼앗기고 돌아가니라.
原文: 先生의 親弟 永學이 恒常 道術을 通하기를 熱望하여 先生? 發願하 더니 하로는 先生이 한 부채에 鶴을 그려서 永學을 주시며 가라사 대 집에 도라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七星經을 武曲破軍?지 닑 고 니어서 大學을 닑으라. 그러면 道術을 통하리라. 永學이 부채 를 가지고 집으로 도라가다가 鄭 南基(先生의 妻男)의 집에 들니니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의 美麗함을 貪내여 ?앗고 주지 아니하거늘 永學이 不得已하야 그 事由를 말하고 돌녀주기를 懇求하니 南基의 아들은 더욱 貪내여 주지 아니 함으로 할 일업시 ?앗기고 도라 가 니라.
그 후에 남기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대학을 읽으니 문득 신통력이 생겨나 신명(神明)들을 부리고 물을 뿌려 비를 오게하니 남기가 기뻐하여 그 아들을 부추겨 선생의 도력(道力)을 빼앗고자 아들을 데리고 함께 하 운동에 이르니 선생께서 그 일을 미리 아시고 우묵골(宇默谷)에서 하운동 으로 오셔서 두 사람을 만나시고 남기의 예의없음을 꾸짖으시고 그 아들 을 신통력을 거두신 후에 돌려 보내시니라.
原文: 그 後에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大學을 닑음에 문듯 神 力을 통하야 能히 神明을 부리며 물을 ?려 비를 베푸는지라. 南基 가 깃버하야 그 아들을 敎唆하야 先生의 道力을 ?앗으라함으로 그 아들이 父 南基로 더부러 夏雲洞에 이르니 先生이 그 일을 알으시 고 南基의 無義함을 ?지즈사 그 아들의 神力을 다 거두신 後에 돌 녀보내시니라.
갑진(1904)년 정월에 백 남신이 관액(官厄)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깊이 숨어서 김 병욱을 통하여 선생께 그 액을 풀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 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십 만냥 을 증서(證書)로 가져오라." 하심으로 남신이 곧 십 만냥의 증서를 선생 께 올렸더니 그 후로 곧 남신의 관액이 풀리는지라. 선생께서 그 받으신 증서를 불사르시니라.
原文: 甲辰 正月에 白 南信이 官厄에 걸니어 깁히 隱居하야 所措을 莫知 하고 金 秉旭을 통하야 先生? 解難하여 주시기를 懇乞하거늘 先生 이 가라사대 富貴한 者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十萬兩(今金二萬 圓)의 證書를 가져오라. 南信이 곳 十萬兩의 證書를 올녓더니 그 後로 南信의 禍厄이 곳 풀니는지라. 先生이 그 證書를 불살으시니 라.
갑진(1904)년 정월 십오일에 선생께서 술을 잡수시고 곤히 주무시는데 갑 자기 장 흥해의 부친 효순이 찾아와 어린 아이에게 급한 병이 생겨서 죽 게 되었으니 와서 살려 주시기를 청하거늘 선생께서 혼몽하신 가운데 "냉 수나 먹이라." 말씀하셨더니 효순이 그 말대로 병든 아이에게 냉수를 먹 였더니 곧 죽는지라. 효순은 원래 성질이 사나워서 사람들이 천둥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터인데 병든 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선생 을 원망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고의로 약을 잘못 가르쳐 주어 죽게 함이 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일으키며 말 한 마디로 아무리 위독한 병이라도 고치는 것을 내가 직접 본 바이니 만일 고의가 아니라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신통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을 것 이라고 하고 드디어 몽둥이를 가져와서 선생을 마구 치기 시작하니 선생 의 온 몸에 유혈이 낭자한지라. 그제서야 선생이 비로소 깨어 일어 나시 니 장 효순이 선생을 결박하여 장방청으로 끌고 가다가 문득 뉘우친 듯 이끌며 말하기를 "이것은 다 나의 잘못이라, 아이가 급병으로 죽었거늘 어찌 선생을 원망하리오." 하며 마음을 풀고 옛 정으로 돌아가기를 청하 며 자기집에 함께 가시기를 원하거늘 선생이 듣지 아니하시고 서 원규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후 이튿날에 전주 이동면 이 직부의 집으로 가시 니라. 대개 흥해의 부친 효순이 선생을 용서하여 장방청에 끌고 가다가 돌아가시게 한 것은 선생께서 백 남신에게 받은 돈 이십 만냥의 증서가 있음을 알고 돈을 요구하려 함이더라.
原文: 十五日에 先生이 술을 마스시고 혼몽히 주므실 새 張 興海의 幼兒 가 急病이 發하야 瀕死함으로 興海의 父 孝淳이 急히 와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누어 일지 아니하시고 혼몽中에 冷水나 먹이라 말 삼하섯더니 孝淳이 病兒에게 冷水를 먹임에 곳 死亡하는지라. 孝淳 은 本來 性質이 慓悍하야 府中人이 天動이라고 號하는 터인대 病兒 의 死亡함을 보고 大怒하야 先生을 원망하야 가로대 이는 故意로 藥을 그릇 일러 죽임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대로 危殆한 病을 곳침은 내가 實見한 바이니 만일 故意가 아 니면 물은 姑捨하고 흙을 먹엿슬지라도 그 神異한 道術로 能히 낫 게 하엿슬것이라하고 드대여 棍棒을 가지고 와서 先生을 亂打하야 流血이 淋?케한지라. 先生이 비로소 ?어 이러나시니 孝淳이 先生 을 結縛하야 長房廳으로 갓다가 문득 뉘우친듯이 ?느며 가로대 이 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幼兒가 急病으로 죽엇거늘 엇지 先生을 원 망하리오하고 前交를 回復하기를 請하며 自家로 同行하기를 求하거 늘 先生이 듯지 아니하시고 徐 元圭의 집으로 가서 留하시고 翌日 에 李 直夫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孝淳이 先生을 容恕하야 長房 廳으로부터 도라가시게 한 것은 白南信에게 바든 돈 二十萬兩의 證 書가 잇슴을 알고 돈을 要求하려 함이러라.
다음날 장 효순이 서 원규의 집으로 가서 선생께서 계시지 않는 것을 보 고 크게 화를 내며 사람을 죽인 자가 도망하였다 하고 사방으로 찾으니 라. 이때 선생의 가족은 전주 우전면 화정리 이 경오의 집 곁방에 옮겨 거처하시고 계셨는데 효순의 가족이 화정리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니라. 한편 김 형렬은 장 효순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선생의 소식을 들으려 고 화정리에 오니 효순의 집 사람들이 형렬을 결박하여 원규의 집으로 끌 고 가서 선생의 행방을 물었으나 가르쳐주지 아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화 를 내며 형렬과 원규를 무수히 구타하니라. 이 일로 인하여 선생의 가족 들은 태인 굴치로 화를 피해서 이사를 가고 형렬은 원규의 집에서 밤을 이용하여 피하여 도망하고 원규는 매일 계속되는 그들의 행패를 견디지 못하여 약국 문을 닫고 가족을 데리고 익산으로 화를 피해 숨으니라.(이 일을 張 孝淳의 亂이라 한다)
原文: 翌日에 孝淳이 元圭의 집에 가서 先生의 안 계심을 보고 大怒하야 殺人犯으로 逃避하엿다하고 四方으로 搜索하더라. 그?에 先生의 省率은 全州郡 亂田面 花亭里 李 京五家 狹室에 移居하엿는대 孝淳 의 家族이 花亭里에 와서 行悖하니라. 金 亨烈은 孝淳의 일을 알지 못하고 先生의 消息을 드르려고 花亭里에 오니 孝淳의 家人이 亨烈 을 結縛하야 元圭의 집으로 가서 先生의 行方을 뭇되 가르키지 아 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憤怒하야 亨烈과 元圭를 無數히 毆打하니라. 일로 因하야 先生의 省率은 泰仁 屈峙로 避禍하고 亨烈은 元圭의 집에서 乘夜逃避하고 元圭는 그들의 連日行悖에 견대지 못하야 藥 局을 閉鎖하고 家眷을 거느리고 益山으로 避禍하니라.
이 때에 선생께서 이 직부의 집에 머무르시니 직부의 부친 치안이 그 해 의 운세를 선생께 여쭈니 선생께서 백지 한 장에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고 다시 글을 쓰셔서 밀봉하여 주시며 "급한 일이 있거든 열어보라." 하시므 로 치안이 깊이 갈무리하여 두었더니 그 후에 치안의 아들며느리가 난산 (難産)으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듣고 선생께서 그 일을 가르치심인 가 하여 그 봉서(封書)를 가지고 가니 이미 순산하였거늘 다시 갈무리해 두었더니 그 해 말에 이르러 치안이 병들어 위독한지라. 직부가 봉서를 떼어보니 소시호탕 두첩이라 적혀 있으므로 그대로 약을 쓰니 곧 나으니 라.
原文: 이?에 先生이 李 直夫의 집에 머무르시니 直夫의 父 治安이 當年 의 命壽를 뭇거늘 先生이 白紙一枚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고 다시 글을 써서 緊封하야 주시며 가라사대 急한 일이 잇거든 열어보라 하신지라. 治安이 깁히 갈머두엇더니 그 後에 그 子婦가 難産으로 危境에 이르럿슴을 듯고 그 일을 가르치심인가하야 그 封書를 가지 고 간즉 임의 順産하엿거늘 다시 갈머두엇더니 歲末에 이르러 治安 이 病들어 危篤한지라. 直夫가 封書를 ?여보니 小柴胡湯二貼이라 씨엿거늘 그 藥을 써서 곳 快復되니라.
갑진(1904)년 2월에 밤재에 계실 때 선생께서 친동생 영학에게 대학(大 學)을읽으라 하셨으나 영학이 듣지 아니하고 술법책(術書)에만 빠져 있으 므로 선생께서 탄식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멀지 아니하여 영학을 못보게 될 것이라." 하시고 이 도삼에게 명하시어 "뼈는 마른 모래 사장에 널려 있고 풀뿌리만 사방에 둘러 있으니 넋이 고향이라 하여 돌아오건만 제사 지내 줄 후손하나 없구나." 라는 시 한 구절을 영학에게 전하게 하시어 이 글로서 살펴 깨닫게 하시려고 하셨으나 영학이 끝내 깨닫지 못하니라.
原文: 二月에 屈峙에 계실 새 永學에게 大學을 닑으라 하섯더니 永學이 듯지 아니하고 術書에 沈味하거늘 先生이 ?然히 歎息하야 가라사 대 멀지 아니하야 永學을 訣別하리라 하시고 李 道三을 命하사 "골 폭사장전유초(骨暴沙場纏有草) 혼반고국조무친(魂返故國弔無親)" 이란 一句詩를 永學에게 傳하사 써 戒▩ 省悟케 하시되 永學이 종시 省 悟치 아니하니라.
그 뒤에 영학이 병들어 위독하여 죽게 된 것을 선생께서 들으시고 김 갑 칠을 데리고 밤재로 가시는 도중에 한 주막에 드시니 한 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엎드려 기어 다니거늘 선생께서 그 허리를 펴지 못하는 이유를 물 으시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십여년전부터 곱사가 되어서 고치지 못하였 습니다." 하거늘 선생께서 손으로 그 허리를 만져서 펴주시고 "사례금 열 다섯냥을 가져오라." 하시니 그 사람이 기뻐 뛰며 여쭈기를 "선생님은 진 실로 저를 다시 살리신 은인이시니 그 은혜를 갚으려 하면 태산이 오히려 가벼우나 지금 몸에 지닌 돈이 없사오니 무엇으로 갚으오리까."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물품도 괜찮으니라." 하시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제가 널 장사를 하오니 대신 널을 드림이 어떠하나이까. 널 한 벌 값이 열 다섯냥 이나이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도 좋으니 잘 가려서 두라." 하 시고 집에 돌아가시니 영학이 사경에 이른지라. (선생께서 영학의 입에 손가락을 대고 말씀하시기를 "이 손가락을 떼면 곧 네가 죽을테니 뜻이 있는대로 유언을 하라." 하시니 영학이 부모에게 할 말을 모두 마친 후에 선생께서 손가락을 떼시니 곧 죽으니라.) 이에 선생께서 널을 가져다가 장례(葬禮)를 치르시니라.
原文: 그 後에 永學이 病들어 죽게 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金 甲七을 다 리고 집으로 가실 새 中途에 한 酒店에 드시니 한 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업듸여 기여 다니거늘 先生이 그 허리를 펴지 못한 理由를 무르시니 그 사람이 對하되 十餘年前부터 곱사가 되여서 고치지 못 하엿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손으로 그 허리를 주물너 펴주시며 가라 사대 謝金 五十兩(今三圓)을 가저오라하시니 그 사람이 瞬間에 허 리를 편 後에 짓버 ?놀며 가로대 先生은 實로 再生之恩이 잇사오 니 그 恩惠를 報答할진대 山岳이 오히려 가뱌우나 只今 몸에 所持 金이 업사오니 무엇으로 酬答하오릿가. 先生이 가라사대 物品도 可 하니라. 그 사람이 對하되 내가 棺材장사를 하오니 棺材로 드림이 엇더하니잇가. 棺材한 벌 價額이 十五兩 이니이다. 先生이 가라사 대 그도 조흐니 잘 가려두라 하시고 집에 도라가시니 永學이 임의 죽엇거늘 그 棺材를 가져다가 治葬하시니라.
갑진(1904)년 2월 보름에 김 갑칠을 데리시고 부안 고부등지를 두루 돌아 보실 때 저녁 무렵에 고부 검은바위 주막에 들리시니 이때에는 화적(火 賊)들이 많이 일어나서 대낮에도 나타나고 함으로 순검 한사람이 평복으 로 변장하고 야간 순찰을 하려고 이 주막에 들어 있음을 선생께서 보시고 주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에게 술이나 밥을 주지말라. 만일 주었다 가 그 값을 받지 못하면 넉넉하지 못한 장사에 손해가 아니겠느냐." 하시 니 순검이 그 말에 분노하여 선생을 구타하며 무례한 말을 한다고 꾸짖거 늘 선생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다 죽은 시체에게 맞았다고 무엇이 아프랴."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니 주모가 순검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의 말이 이상하니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니 따라 나가서 사죄하고 그 이유를 물어보라 하거늘 순검이 그 말을 옳게 여겨 곧 선생의 뒤를 따르 며 사죄한 후에 그 이유를 물으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밤에는 사무를 보지 말고 다른곳으로 몸을 피하라." 하시거늘 순검이 선생께서 명하신대로 즉시 몸을 피하였더니 이윽고 밤이 깊어 화적들이 몰려와서 주모를 구타하며 순검의 행방을 묻더라. 이것은 곧 화적들이 순검을 죽이 려고 미리 작정하고 있었음이라. 다음날 순검이 선생께서 머무시는 곳에 찾아와서 살려주신 새 삶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니라.
原文: 十五日 金 甲七을 다리시고 扶安, 古阜等地를 巡遊하실 새 昏夜에 古阜 黑巖酒店을 지나시니 이?에 火賊이 熾盛하야 白晝에 橫行함 으로 巡檢 一人이 微服으로 夜巡하기 위하야 이 酒店에 드럿거늘 先生이 酒婦에게 일너 가라사대 져 사람에게 酒食을 주지 말라. 만 일 酒食을 주엇다가 갑을 밧지 못하면 不贍한 營業에 損害가 아니 냐 하시니 巡檢이 그 말삼에 憤怒하야 先生을 毆打하며 無禮한 말 을 한다고 ?짓거늘 先生이 우서 가라사대 다 죽은 屍體에게 마져 서 무엇이 압흐랴하시고 밧그로 나가시니 酒婦가 巡檢다려 일으되 져 사람의 말이 異常하니 반다시 무슨 ?닭이 잇슬지라. 나가서 謝 過하고 그 緣由를 무러보라 하거늘 巡檢이 올히 녁여 곳 先生의 뒤 를 ?르며 謝過한 後에 緣由를 무르니 先生이 가라사대 今夜에는 事務를 廢하고 다른 곳으로 몸을 避하라 하시거늘 巡檢이 命하신 대로 卽時 몸을 避하엿더니 이윽고 夜深하야 火賊이 몰녀와서 酒婦 를 毆打하며 巡檢의 去處를 무르니 이는 여러 火賊이 巡檢을 죽이 랴고 預約한 일이 잇슴이라. 翌日에 巡檢이 先生의 留하시는 곳을 차져와서 再生의 恩을 感謝하니라.
갑진(1904)년 5월에 선생께서 굴치에 계실 때 김 갑칠이 구릿골로 부터 와서 뵙자 선생께서 물으시기를 "너희 지방 농사 형편이 어떠하냐." 하시 므로 갑칠이 말씀드리기를 "가뭄이 심하여 아직까지 모를 심지 못하여 민 심이 흔들리고 있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에게 비 를 빌리러 왔도다. 내가 너에게 우사(雨師)를 붙여 줄테니 곧 돌아가되 길에서 비를 만날지라도 피하지 말라. 그것은 너의 몸이 천지공사를 간직 하고 가는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갑칠이 명을 받들고 돌아 갈 때 얼마가 지 않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냇물이 넘치더니 이로부터 물 이 풍족하여져서 몇 일 사이에 모두 모내기를 마치니라.
原文: 五月에 先生이 屈峙에 계실 새 甲七이 銅谷으로부터와 뵈이거늘 先 生이 무러 가라사대 너의 地方에 農況이 엇더하뇨. 甲七이 對하야 가로되 旱災가 甚하야 移秧을 못함으로 民心이 騷然하니이다. 先生 이 가라사대 네가 비를 빌러 왓도다. 네게 雨師를 붓치노니 곳 도 라가되 길에서 비를 맛날지라도 回避치 말라. 그것은 네가 天地公 事를 몸에 ? 緣故니라. 甲七이 領命하고 도라갈 새 얼마 아니 가 서 비가 始作하야 頃刻間에 河川이 漲溢하는지라. 일로부터 水量이 充足하야 數日間에 移秧을 맛치니라.
갑진(1904)년 6월에 김 형렬을 데리고 태인 신배를 지나가실 때 그 마을 어떤 집에서 불이 났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더욱 불길이 세어지거늘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말씀하시기를 "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온 마을이 재가 되리니 맞불을 놓아 구하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명하시 어 섶으로 불을 피우게 하시니 순식간에 바람이 자고 불이 꺼지니라.
原文: 六月에 亨烈을 다리고 泰仁 新培를 지나실 새 그 里中에 엇든 집이 失火하야 모진 바람에 火勢가 猛熱하거늘 先生이 민망히 녁여 가라 사대 져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全洞이 焦土될 것이니 맛불을 노아 求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섭으로써 불을 피우시니 瞬息 間에 바람이 자고 불이 ?지니라.
갑진(1904)년 8월27일에 익산 만중리 황 사성의 집에 이르시니 마침 어 떤 사람이 화난 얼굴을 하고 있거늘 이것을 보시고 같은 동네 정 춘심의 집으로 옮기시니라. 원래 황 사성의 아버지 숙경이 전주 용진면 용암리 황 참봉에게 돈을 빌려 쓴 일이 있었는데 황 참봉이 죽은 후에 그 아들이 사람을 보내어 빌려간 돈을 독촉하면서 만일 갚지 아니하면 경무청에 고 소하여 감옥에 보내어 썩히면서 받겠다고 위협하는지라. 이날 밤에 황 사 성 부자가 춘심의 집으로 와서 선생을 뵙고 이 사실을 고하며 이 일이 무 사하게 풀리도록 하여 주실 것을 간청하거늘 선생께서 숙경을 명하시어 백목 한 필을 사오라고 하셔서 옷을 지어 입으신 후에 숙경에게 말씀하시 기를 "이후로는 근심을 풀어라. 일이 순조롭게 풀리리라. 백목 한 필은 곧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길을 딱는 것이니라." 하시더니 그 후에 순검 이 와서 숙경을 잡아가려 하거늘 숙경이 순검과 함께 채권자의 집에 가서 채무상환을 연기해줄 것을 부탁해보기로 하고 채권자에게 화해를 청하나 채권자가 듣지 않고 고집 하거늘 그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아들을 불러 꾸짖어 말하기를 저 어른은 너의 부친과 친구인데 이제 옥에 가두려하니 이것은 짐승과 같은 행동을 하려고 함이라하며 그 증서를 빼앗아 불살라 버리니 채권자가 할 수 없이 숙경에게 사과 한 후에 고소를 취하하고 채 무관계를 없던 일로 하여 버리니라.
原文: 八月 二十七日에 益山 萬中里 黃 士成의 집에 이르시니 마참 엇든 사람이 怒氣를 ?고 잇거늘 다시 同里 鄭 春心의 집으로 옴기시니 라. 元來 士成의 父 叔京이 全州 龍進面 龍巖里 黃 參奉에게 債務 가 잇섯더니 黃 參奉이 죽은 後에 그 아들이 專人하야 債金을 督促 하며 만일 갑지 아니하면 警務廳에 告訴하야 獄中에다 썩히면서 밧 겟다고 威脅하는지라. 이날 밤에 士成父子가 春心의 집에 와서 先 生? 뵈입고 이 事實을 告하며 無事하도록 ?너 주시기를 懇乞하거 늘 先生이 叔京에게 命하사 白木 一疋을 사오라 하사 衣服을 지어 닙으신 後에 叔京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後로는 근심을 풀라. 일이 順調로 풀니리라. 白木一疋은 곳 債權債務間에 길을 닥는 것이니라 하시더니 그 後에 巡檢이 와서 叔京을 잡어가려 하거늘 叔京이 巡 檢으로 더부러 債主의 집에 가서 償還을 延期하기로 하고 和解를 請하되 債主가 듯지안코 固執하거늘 그 母가 아들을 불너 ?지저 가로대 저 어런은 네 父親의 친구인대 이졔 獄에 가두려하니 이는 禽獸의 行爲를 하려함이라하고 곳 그 證書를 ?아서 불살어버리니 債主가 할 일 없서 叔京에게 謝過한 後에 드대여 告訴를 取下하고 債金을 免除하여 버리니라.
갑진(1904)년 9월19일 함열 회선동에 있는 김 보경의 집에 가시니 보경 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요즘 이 부근에 밤마다 도둑이 나타나서 물건을 훔쳐 가는데 저의 집이 비록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희 집 을 부자라 말하니 참으로 무서워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청하 건데 도둑으로부터의 재난을 피하게 해 주십시오 하자 선생이 웃으시며 그 집 문 앞에 침을 뱉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후로는 마음을 놓으라, 도둑이 저절로 멀리 가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그 후로는 도둑의 자 취가 없어지니라.
原文: 九月十日에 咸悅 會仙洞 金 甫京집에 가시니 甫京이 엿주어 가로대 이 附近에는 近日에 盜賊이 出沒하야 밤마다 村落을 ?掠하는대 내 집이 비록 饒足치는 못하나 外間에서는 富豪라 稱함으로 實로 危▩ 하와 마음을 놋치 못하오니 請컨대 盜難을 免케 하여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그 문 압헤 춤을 밧흐시고 일너 가라사대 今後로 는 마음을 노으라. 盜賊이 졔절로 멀니 가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 後로는 盜賊의 자최 업서지니라.
갑진(1904)년 11월에 전주에 가시니 민중들의 소요(民擾)가 일어나서 인 심이 흉흉하거늘 선생께서 김 보경에게 말씀하시기를 "김 병욱은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으므로 소란한 민심을 잘 다스려서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인 바 그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병욱에게 물어보고 오 라." 하시므로 보경이 병욱을 찾아서 말씀하신 바를 전하니 병욱이 선생 께 와서 뵙고 말씀드리기를 "저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물끓듯하는 민중의 소요사태를 진압시킬 길이 없사오니 오직 선생께서 지니신 신의 위엄만을 믿겠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알아서 진압 하리라." 하시고 그 날 밤부터 눈과 비가 많이 내리게 하시어 날씨를 혹독하게 하 시니 미처 추위에 대비하지 못하고 거리에 모였던 군중들은 할 수 없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고 그 후로도 눈과 비가 삼일간을 계속 내리므로 군 중들이 다시 모이지 못하게 되어 민중들의 소요(民擾)가 저절로 평정 되 니라.
原文: 十一月에 全州府에 이르시니 마참 民擾가 이러나서 人心이 洶洶하 거늘 甫京다려 일너 가라사대 金 秉旭이 國家의 重鎭에 處하엿스니 人民의 動搖를 잘 鎭撫하야 써 그 職責을 다하여야 할지라. 그 方 略을 엇더케 定하엿는지 秉旭에게 무러오라. 甫京이 秉旭을 차저 命하신 바를 傳하니 秉旭이 先生? 와 뵈입고 가로대 나의 無能으 로는 물?틋하는 民擾를 鎭壓할 수 업사오니 오직 先生의 神威만 밋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내가 가름하야 鎭壓하리라 하시고 그날 밤부터 雨雪을 크게 나리시며 天氣를 酷寒케 하시니 防寒의 設備가 업시 露營에 모혓든 群衆은 할 일 업시 解散하야 집으로 도라가고 雨雪은 三日을 繼續함으로 群衆은 다시 모이지 못하고 騷亂은 스 사로 平定되니라.
갑진(1904)년 12월에 선생께서 원평에 계실 때 어사(御使) 박 제빈이 전 라북도 일곱 고을 군수를 파면하고 곧 전주부에 출두하려고 하니 군수 권 직상의 직위도 위태로운지라. 이때 김 병욱은 전주부의 육군 장교로 군수 권 직상과는 친분이 두터우므로 권 직상이 파면되면 자신도 같이 낭패 당 할 일이 많으므로 근심하여 선생께 그 대책을 여쭈니 선생께서 말씀하시 기를 "그 일은 무사하게 풀리도록 할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 하시더니 그 후에 박 제빈이 권 직상을 면직하려고 전주부로 들어오자 때 마침 박 어사(御使)를 면직(免職)한다는 비밀훈령이 전주부에 도착하니라.
原文: 十二月에 院坪에 계실 새 그?에 御使 朴 齊斌이 全北 七邑郡守를 罷免하고 將次 全州에 出道하려함에 郡守 權 直相의 地位도 危殆하 게 된지라. 金 秉旭은 當時 全州 陸軍將校로서 權 直相과 友誼關係 가 잇슬 ?아니라 ?한 脣齒의 關係가 잇슴으로 그 일을 근심하야 先生? 그 對策을 뭇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無事하도록 ? 르리니 근심치 말라 하시더니 그 後에 朴 御使가 權 直相을 罷免하 려고 全州府에 드러오자 ?마참 朴 御使 免官秘訓이 全州府에 到着 하니라.
선생께서 을사(1905)년 정월 그믐날에 형렬과 더불어 부안군 성근리에 사 는 이 환구의 집에 가시어 여러 날 머물고 계셨는데 환구가 부안읍에 사 는 신 원일을 자주 천거(薦擧)하므로 부르시니 원일이 와서 뵙고 선생을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공양(供養)하니 원일의 아버지와 아우는 선생을 믿 지 아니하고 선생께서 오래 머무르시는 것도 싫어 하는지라. 원일이 선생 께 부탁하여 여쭈기를 "저의 집 부친이 해마다 고기잡이 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여 왔는데 작년에는 폭풍으로 인하여 큰 손해를 보았사오니 금년에 는 바람으로 인한 재앙(風災)를 없게 하셔서 고기잡이가 잘되게 하여 주 시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겠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일은 어렵지 아니하니 많은 이익을 얻은 후에 돈 천냥을 나누어 가져오겠 느냐. 장차 쓸 데가 있느니라." 하시니 원일 부자(父子)가 기뻐하며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이 해에는 과연 바람의 재해(風災)가 없 고 칠산 바다에서 신 원일 부친의 고기잡이가 가장 잘 되어 큰 돈을 벌었 더라. 그 후에 선생께서 원일의 부친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전에 약속하였 던 돈 천냥을 보내라 하시니 원일의 부친이 약속을 어기고 보내지 아니하 거늘 선생께서 원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대인(大人)을 속이는 것이 라. 나의 모든 일은 신명(神明)과 함께 미리 정하고 하는 것이므로 한가 지라도 사사로이 못하느니 이제부터 그대 부친은 고기잡이업으로 먹고 살 아 가지 못하게 되리라." 하시더니 그 후로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히지 않아 드디어 고기잡이 업을 그만두게 되니라.
原文: 乙巳 正月 晦日에 先生이 亨烈로 더부러 扶安 成根里 李 桓九의 집 에 가사 여러날 머무르실 새 桓九가 扶安邑人 辛 元一을 자조 薦擧 하거늘 先生이 元一을 부르시니 元一이 와뵈입고 先生을 自己집으 로 모서다가 供養하니 元一의 父와 弟가 先生을 밋지 아니하고 오 래 머무르심을 슬혀 하는지라. 元一이 請하야 가로대 家親이 本來 漁業을 즐겨하야 해마다 營業하다가 去年에 暴風으로 因하야 큰 損 害를 보앗스니 請컨대 今年에 風災를 업게 하사 漁業을 興旺케 하 여주시면 家親을 위하야 多幸하겟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어렵지 안니하니 多益을 어든 後에 돈 千兩을 난호아 오 라. 將次 用處가 잇노라 하시니 元一 父子가 깃버하야 許諾하더니 이 해에 果然 風災가 업고 七山海上에서 元一父子의 漁業이 가장 興旺하야 大金을 어든지라. 先生이 元一 父에게 傳人하사 許諾한 돈 千兩을 보내라 하시니 元一의 父가 前約을 어긔고 보내지 아니 하거늘 先生이 元一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는 大人을 欺罔함이라. 내 일은 모든 것을 神明과 더부러 作定하는 것임으로 한가지라도 사사로히 못하노니 今後로는 君의 父의 漁業이 撤廢케되리라. 하시 더니 그 後로는 一尾의 魚도 잡히지 아니함으로 드대여 漁業을 廢 止하니라.
을사(1905)년 3월에 일진회 회원과 전주부내 아전들이 서로 다투어 정 창 권이란 사람이 전주부내 아전들과 백성들을 모아서 사대문을 굳게 잠그고 일진회 회원들이 성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며 사방으로 통문을 보내어 민 병을 일으켜 일진회를 타도하고자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렵게 살아난 사람들이 또 죽게 되었으니 내가 그들을 구해주리라." 하시고 화 정리에 사는 이 경오에게 "돈 칠십 냥을 가져오라." 하시니 이 경오가 돈 이 없다고 하므로 다른 곳에서 일곱 냥을 구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이 일 곱 냥이 능히 일흔 냥을 대신하리라." 하시고 전주 용머리 고개에 있는 주막에 이르시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아 술을 먹이시고 종이 에 글을 써서 그 집 문 돌쩌귀와 문고리를 연결하시더니 이 날 저녁 무렵 에 일진회와 아전들이 서로 화해하여 사대문을 열고 일진회가 성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하니라. 이 날에 쓰신 돈이 여섯 냥인데 선생께서 형렬 에게 말씀하시기를 "옛날 사람은 바둑 한 점으로 십 만 군사를 물리쳤다 하는데 나는 돈 여섯 냥으로 아전과 일진회의 싸움을 말렸으니 내가 옛 사람만 같지 못하다." 하시니라.
原文: 三月에 一進會와 全州吏屬이 서로 交爭하야 崔 昌權이 府內吏民을 모아 四門을 堅閉하고 一進會의 入城을 막으며 四方으로 通文을 發 하야 民兵을 募集하야 一進會를 剿滅코져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어렵게 살어난 것이 ? 죽게 되니 救助하여 주리라 하시고 花亭里 李 京五에게 돈 七十兩을 請求하시니 京五가 돈이 업다고 謝絶하거 늘 他處에서 七兩을 辦備하사 가라사대 이 七兩이 能히 七十兩을 代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다리고 全州 龍頭峙 酒店에 이르사 行人을 만히 請하야 술을 먹이시고 조희에 글을 써서 그 집 문 돌져귀와 문고리를 聯結하시더니 이날 夕暮에 이르러 一進會와 吏屬이 和解 하야 四門을 열고 一進會를 入城케 하니라. 이 날에 消費하신 돈이 六兩이라. 先生이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古人은 바독 한 點으로 十萬兵을 물니쳣다하는대 나는 돈 六兩으로 吏會의 交爭을 ?넛스 니 내가 古人만 갓지 못하다 하시니라.
그 날 이 경오의 집에 화적이 습격하여 돈 칠십 냥을 강제로 빼앗아 가거 늘 선생께서 그 일에 대해 들으시고 말씀 하시기를 "그 돈에 도둑의 기운 (賊神)이 들었음을 알고 내가 그 돈을 사람 살리는데나 쓰려고 달라고 하 였더니 경오가 듣지 않고 없다고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原文: 同日에 火賊이 李 京五의 집을 襲擊하야 돈 七十兩을 奪去하거늘 先生이 드러시고 가라사대 그 돈에 賊神이 犯하엿슴을 알고 活人하 는 일에나 쓰기 爲하야 請求하엿더니 京五가 듯지 안코 업다고 謝 絶하엿다 하시니라.
이 뒤로 두어달 동안 손바래기 마을앞 주막에서 선생께서 공사를 행하시 니 종도들의 오고 감이 많아지자 주막 주인 오 동팔이 돈을 많이 모았더 니 그 뒤에 경비가 부족해진 것을 보고 매우 차갑게 대하므로 모든 종도 들이 그 의리 없음을 분하게 생각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고 배우지 못한 무리가 어떻게 의리를 알리오. 우리가 만일 그 의리없음을 보고 화를 내면 그가 반드시 큰 화(禍)를 입으리니 나의 지나가는 길에 덕을 베풀지 펴지 못하고 도리어 화(禍)를 끼치면 그것이 어찌 사리(事 理)에 맞는 일 이리오." 하시며 종도들을 타이르시니라.
原文: 이 後로 數 朔동안 客望里압 酒店에서 公事를 行하실 새 從徒의 來 往이 頻繁하야 店主 吳 東八이 돈을 만히 모핫더니 그 後에 經用이 不足함을 보고 甚히 冷待하거늘 모든 從徒가 그 無義함에 怒한대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至愚無學한 무리가 엇지 義理를 알리오. 우 리가 만일 그 無義함에 怒하면 그가 반다시 大禍를 바드리니 나의 過次에 德을 흘니지 못하고 도로혀 禍를 ?치면 엇지 穩當하리오 하시니라.
그 후에 태인읍에 이르시어 밤중에 종도들을 데리시고 산에 올라가 공사 를 행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에 큰 신명(神明)들이 모였으니 그 들이 해산할 때에는 반드시 참혹한 응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자 문득 태인읍으로부터 군중들의 고함소리가 일어나는지라. 종도 들이 선생을 모시고 산에서 내려와 그 이유를 알아보니 신 경현의 주점이 군중의 습격을 받아서 집 안 살림살이와 술독이 다 부서져 성한 것이 없 더라. 원래 신 경현이 술 집을 경영하면서 읍내 청년들의 동정을 얻어서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 뒤에 청년들이 궁핍하여지자 경현이 그들을 매우 차갑게 대하거늘 청년들이 그 의리없음에 화를 내어 이렇게 습격한 것이 라. 그 다음날 선생께서 경현의 집에 가시니 경현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 하거늘 (선생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주모에게 "술을 가져오라." 하시니 주모가 대답하기를 "술 항아리가 모두 깨졌으니 무슨 술이 있겠습니까."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궤 속에 감추어 둔 소주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주모가 감탄하며 "선생님 앞에서는 조금도 숨길수가 없습니다." 하고 작은 병에 담겨 있는 소주를 따라 올리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원래 이해득실이란 모두 자신에게 있고 장소에 있지 아니하니 이 뒤로는 삼가하여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정 을 베풀라. 그러면 앞 길이 펴이고 영업이 다시 잘되리라." 하시니라.
原文: 그 後에 泰仁邑에 이르사 夜半에 여러 從徒를 다리시고 山에 올나 公事를 行하신 後에 일너 가라사대 이졔 大神明이 會集하엿스니 그 解散?헤는 慘酷한 膺懲이 잇스리라. 말삼을 맛치시자 문듯 泰仁邑 에서 群衆의 高喊소리가 나는지라. 從徒들이 先生을 모시고 山에서 나려와 事由를 探聞하니 辛 京玄의 酒店이 群衆의 襲擊을 바더 家 藏什物과 酒缸이 모다 破損無遺하엿더라. 元來 辛京玄이 酒業을 經 營함에 邑中 少年의 同情을 어더서 多益을 보앗더니 그 後로 少年 들이 窮乏하여짐에 京玄이 甚히 冷待하거늘 少年들이 그 無義함을 怒하야 이럿케 襲擊함이라. 翌日에 先生이 京玄의 집에 가시니 京 玄 夫妻가 號泣하며 他處로 옴기려 하거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元來 利害得失이 모두 自身에 잇고 位置에 잇지 아니하나니 이 後 로는 삼가하야 모든 사람에게 溫情을 베풀라. 그러면 前路가 펴이 고 營業이 다시 興旺하리라 하시니라.
그 날 밤 손바래기앞 오 동팔의 주점에서 갑자기 우뢰같은 소리가 나더니 집이 저절로 무너졌으나 사람과 가축 그리고 집의 세간살이에는 아무 피 해가 없는지라. 오 동팔이 재목들을 다시 모아서 집을 지으려 하나 두 번 이나 거듭 전과 같이 무너지므로 할 수 없이 집 고치려는 것을 그만두고 천막을 치고 살고 있으니 하루는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모양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스스로 나서더니 불과 서너시간 만에 집을 고쳐주고 품삯 도 요구하지 않고 가더라. 무릇 그 집 고치는 일은 보통 목수가 일해도 십 여일을 일 해야만 하는 공사이므로 이웃사람들은 그 일을 크게 이상하 게 생각하였으나 종도들은 모두 선생께서 태인 산중에서 하신 말씀을 생 각하여 오동팔이 화를 당한 것도 신명들이 해산 할 때의 응징이오, 다시 그 신기한 도움을 받은 것도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신장(神將)을 보 내시어 집을 고쳐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니라.
原文: 그 날밤에 吳 東八의 酒店에는 ?밧게 우뢰갓흔 소리가 나며 집이 졔절로 드날녀서 ?밧게 顚覆되고 人蓄과 家産은 아모 傷害가 업는 지라. 東八이 材木을 收拾하야 집을 改築하다가 二回나 거듭 前과 갓치 顚覆됨으로 할 일 없이 工事를 中止하고 依幕을 치고 지내더 니 하로는 엇든 사람이 지내다가 그 景狀을 보고 矜惻히 녁여 自進 하야 겨우 三四時間을 費하야 집을 改築하여주고 賃金도 要求치 안 코 가니라. 大抵 그 改築에는 普通木工 十餘日 품을 要할 工事임으 로 이웃사람은 크게 異常히 녁이되 從徒들은 모다 泰仁 山上에서 말삼하신 일을 生覺하야 그 被禍한 것은 반다시 神明解散時의 膺懲 이오. 다시 그 神奇한 求助를 바든 것은 先生?서 矜惻히 녁이사 神將을 보내여 工作케 하심이라고 生覺하니라.
항상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잘 닦아 앞 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구경하라." 하시니 종도들이 하루바삐 그 세상이 오기를 바라더니 하루는 신 원일이 간청하여 말씀드리기를 "선생께서 천 지를 개벽하여 새 세상을 건설한다 하신 지가 이미 오래이며 공사를 행하 신 것도 여러 번인데 세상 돌아가는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사오니 제자의 의혹이 날로 깊어지나이다. 선생이시여 하루바삐 이 세상을 뒤집어서 신 선세계를 건설하시어 우리가 남들의 비웃음을 받지 않게 하시고 애달프게 기다리는 저희에게 권력과 부귀를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거 늘 선생께서 일러 말씀 하시기를 "사람의 일에는 기회가 있고 하늘의 이 치에는 도수(度數)가 있으니 그 기회를 만들어 도수를 짜서 운용하고 변 화시키는 것이 마땅한 일 일 것이라. 이제 기회와 도수를 어기고 사사로 운 권한으로 억지로 일을 꾸미면 이것은 천하에 재앙을 끼치는 일이며 수 없는 생명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니 차마 할 일이 아니로다." 하시었으나 신 원일이 다시 고집하여 간청하기를 "현 세상이 혼란하고 도(道)가 없어 져서 선악을 가리기 어려우니 마땅히 빨리 멸망시키고 새 운수를 열으심 이 옳나이다." 하거늘 선생께서 매우 괴로워 하시더라.
칠 월에 신 원일과 그 아래 종도 몇 명을 거느리시고 변산에 있는 개암사 (開巖寺)에 가시어 (원일에게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을 준비하라 명하 신 후 청수(淸水) 한 그릇을 방 한편에 놓으시고 쇠머리를 삶아 청수 앞 에 진설하신 뒤 그 앞에 원일을 무릎 꿇게 하시고 성냥 세 개비를 청수에 넣으시니 갑자기 비바람이 크게 일어 나는지라. 선생께서 원일에게 이르 시기를 "이제 청수 한 동이 물에 성냥 한 갑을 다 넣으면 천지가 물바다 가 될지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니 그리 알지어다. 만약 이것을 때 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앙만 끼칠 뿐이니라." 하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부안에 있는 석교(石橋)를 향하여 뿌리시니 갑자기 그 쪽으로 구 름이 모여들어 큰비가 쏟아지고 개암사 부근은 청명하게 맑더라.
선생께서 원일에게 명하시어 "빨리 집에 갔다가 오라." 하시더니 원일이 명을 받들고 집에 돌아가 보니 그 아우의 집이 큰 비에 무너지고 그 가족 들은 자신의 집에 모여 있거늘 원일이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곧 돌 아와서 선생께 그 일을 말씀 드리니 선생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개벽이 란 이렇게 쉬운 것이라. 이제 온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모든 것이 물에 빠져 죽게 한 후에 우리만 살아 남아 있으면 무슨 복과 이득이 있으리오. 무릇 삶을 구제하고 세상을 보살펴 치료하는 일은 성인의 도법(道法)이며 백성에게 재앙을 주고 세상을 뒤집는 것은 제후들이나 영웅들의 술법(術 法)이라. 이제 천하가 영웅들과 제후들에게 괴로움을 당한 지 오래이니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백성을 교화하고 세상을 다스리리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니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큰 사람(大人)이 되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항상 남 살리기를 생각해야 하느니 어찌 수많은 생명을 죽여 멸망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꾀함이 옳으리오." 하시니라. 원일이 이 일을 당한 후부터 두려워하여 무례한 말로 선생을 괴롭게 한 일을 뉘우치고 또 원일의 아우 는 원일이 선생을 따르고 난 후부터 집안일을 돌보지 않음을 미워하여 항 상 선생을 못 마땅하게 생각해 오더니 형으로부터 그 일에 대해 전해 듣 고 선생께 불경하게 대한 죄의 대가로 집이 무너져 부수어진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여 이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原文: 매양 天地公事를 行하실 새 모든 從徒다려 마음을 잘 닥거 압헤오 는 조흔 世上을 구경하라 하심으로 從徒들이 하로밧비 그 셰상이 이르기를 希望하더니 하로는 辛元一이 固請하여 가로대 先生?서 天地를 開闢하야 새 世上을 建設한다 하신 지가 임의 日久하오며 公事를 行하심도 累回를 經하엿스되 時代의 現狀은 少豪도 變改함 이 업사오니 弟子의 疑惑이 날로 滋甚하나이다. 先生이시여 하로밧 비 이世上을 뒤집어서 仙境을 建設하시와 남의 嘲笑를 一身에 注集 치 안케 하시고 애닯게 기다리는 우리에게 榮華를 주시옵소서 하거 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人事는 機會가 잇고 天理는 度數가 잇나 니 그 機會를 지으며 度數를 運化함이 當然한 일이라. 이졔 機會와 度數를 어기고 억지로 私權을 쓰면 이는 天下에 災를 ?침이며 億 兆의 生命을 ?앗음이니 참아 할 일이 아니니라 하시되 元一이 더 욱구지 請하여 가로되 方今天下가 混亂無道하야 善惡을 가리기 어 려우니 맛장히 速히 殄滅하고 새 운수를 열으심이 올흐니이다 하거 늘 先生이 괴로히 녁이사 七月에 元一과 밋 數三從徒를 다리고 邊 山 開巖寺에 가사 손가락으로 물을 ?어서 扶安 石橋를 向하야 ? 리시니 문듯 그 方面으로 구름이 모아들어 大雨注下하고 開巖寺 附 近은 晴朗하더라. 先生이 元一을 命하사 速히 집에 往還하라 하시 니 元一이 承命하고 집에 도라간즉 그 아우의 집이 大雨에 倒壞되 고 그 眷屬이 自己의 집에 모혀잇거늘 元一이 悲慘을 이긔지 못하 야 곳 도라와서 先生? 그 事由를 告白하니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開闢이란 이럿케 쉬운 것이라. 天下를 水國化하야 모든 것을 淪沒 케 하고 우리만사라 잇스면 무슨 福利가 되리오. 大抵 濟生醫世는 聖人의 道오. 災民革世는 雄伯의 術이라. 이졔 天下가 雄伯에게 괴 로운지 오랜지라. 내가 相生의 道로써 化民靖世하리니 새셰상을 보 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니 너는 이졔로부 터 마음을 잘 고치라. 大人을 공부하는 者는 恒常 남 살니기를 生 覺하여야 하나니 엇지 億兆를 死滅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圖謀함이 올흐리오 하시니 元一이 이 일로부터 두려워하야 無禮한 言辭로 先 生? 괴롭게 한일을 뉘웃치고 元一의 아우는 그 兄이 先生? 追從 하고 家事를 돌보지 아니함을 뮈워하야 恒常 先生을 ?辱하더니 兄 으로 부터 이 事實을 듯고는 先生? ?辱한 罪의 報應으로 家屋이 倒壞됨이 아닌가하야 일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이 뒤에 고부 선돌에 있는 박 창국의 집에 이르시니 창국의 집 사람은 선생 의 누이동생이라. 마침 벗은 발로 밖에 다니는 것을 보고 민망히 여기시 어 말씀하시기를 "이 부근 도랑에 독사가 있으니 벗은 발로 다니다가 발 을 물리면 어찌하리오." 하시고 길게 휘파람을 부시니 갑자기 큰 독사 한 마리가 풀밭에서 기어 나와 뜰 밑에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있더니 이때에 창국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독사를 보고 깜짝 놀라 곧 초상 당 하였을 때 짚는 지팡이로 때려 죽이니 (선생께서 이것을 보시고 말씀하시 기를 독사를 집안에 상 당한 사람이 보면 그 상장으로 때려 죽일 것이오. 도를 딱는 선승(禪僧)이 보면 그 선장으로 죽일 것이나 누이동생은 상장 도 선장도 없으니 무엇으로 독사를 제거하리오 하시고) 선생이 그 독사의 피가 땅에 떨어져 있음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 면 해를 입으리라." 하시고 친히 그 피흔적을 밟아 독기운을 없애시니라.
原文: 그 後에 古阜 立石里 朴 昌國의 집에 이르시니 昌國의 妻는 先生의 親媒라. 마참 벗은 발로 밧게 다니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녁여 가 라사대 이 도랑에 毒蛇가 잇스니 벗은 발을 물면 엇지 하리요 하시 고 길게 휫바람을 부시니 문듯 큰 毒蛇 한 마리가 풀밧흐로부터 나 와서 ? 밋혜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잇더니 이윽고 昌國이 밧 그로부터 들어오다가 毒蛇를 보고 大驚하야 곳 喪杖을 드러 打殺하 거늘 先生이 그 피가 ?에 잇슴을 보시고 가라사대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면 害가 잇스리라 하시고 親히 그 血痕을 밟아 毒氣를 除 하시니라.
을사(1905)년 섣달에 함열에서 구릿골로 가실 때 길이 진흙탕이 되어서 가시기가 어려우시자 선생께서 "길을 딱는 신장에게 명하노니 함라산 아 래 머무는 임금의 거처를 동곡으로 옮기리니 길을 예비하라. (勅令治道神 將 御在咸羅山下 移御于全州銅谷)" 하시는 글을 써서 불사르셔서 길 닦는 신장에게 치도령을 내리시니 질었던 길이 곧 얼어 붙어서 굳어지거늘 이 에 마른 신발로 길을 가시니라.
原文: 十二月에 咸悅에서 銅谷으로 가실 새 길이 심히 질어서 行路가 困 難한지라. 先生이 "御在咸羅山下"라 써서 불살으시니 泥路가 곳 어 러서 구더지거늘 이에 말은 신발로 登程하시니라.
병오(1906)년 정월 초사흘날에 구릿골에 계실 때 여러 종도들에게 하루 낮과 밤 동안 말하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을 못하게 하시니라.
原文: 丙午 正月 三日에 銅谷에 계실 새 여러 從徒에게 一晝夜동안 言語 와 吸煙을 禁하시니라.
병오(1906)년 정월 (초사흘에 김 형렬과 김 성화의 부자와 김 보경의 부 자(夫子)와 김 광찬의 숙질이 구릿골에서 선생을 모시고 선생께서 명하 신 대로 하루동안 말도 아니하고 담배도 끓고 있을 때) 선생께서 이틀 후 정월 5일에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웃음을 주재하는 신명인 호소신(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들은 웃음을 조심하라. 만일 웃 는 자가 있으면 이 신명이 공사를 보지 아니하고 돌아가리니 그 호소신은 한 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지 모르느니라." 하시므로 여러사람들이 각별 히 조심하다가 뜻밖에 정 성백이 웃기 시작하자 모두가 같이 웃는지라. 그 날 오후에 성백이 갑자기 오한이 일어나 크게 아프더니 사흘동안 자리 에서 일어나지 못하니 선생께서 성백을 앞에 눕히시고 어루만지셔서 곧 낫게 하시니라. (이때에 선생께서 날마다 물형약도(物形略圖)를 그려서 불사르 시니라.)
原文: 五日에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는 우슴을 조심하라. 만일 웃는者가 잇스면 이 神明이 公事를 보지 아니하고 도라가리니 그가 한 번 가면 어느? 다시 올지 모르 리라 하시거늘 여러 사람이 特別히 조심하더니 ?밖에 鄭 成伯이 웃음으로 一座가 다 함? 웃으니라. 그날 午後에 成伯이 문듯 惡寒 大痛하야 三日間을 委席하더니 先生이 압헤 눕히시고 어르만지시니 곳 나으니라.
구릿골 앞에서 술장사를 하는 정 괴산이 매우 가난하지만 항상 선생을 지 극한 정성으로 공경하며 대접하더니 병오(1906)년 정월에 선생께서 괴산 의 집에 들리시니 괴산이 선생께 공양하려고 질 솥에 개장국을 끓이다가 갑자기 질 솥이 깨어지니 괴산의 아내가 낙심하여 울고 서 있거늘 선생께 서 불쌍히 여기시어 신 경원에게 명하시어 그가 경영하는 철물점에서 쇠 솥 하나를 가져다 주었더니 이때부터 괴산의 집안살림이 점점 넉넉하여 지니라. 그 후에 괴산이 태인 방아다리로 이사할 때에 그 쇠솥을 수류면 환평리에 사는 정 동조에게 팔았더니 괴산은 도로 가난하여 지고 동조는 넉넉하게 되었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쇠솥을 복솥이라 일컬어 말하니 라.
原文: 銅谷압헤서 酒店營業을 하는 丁 槐山이 極히 貧寒하되 매양 先生을 至誠으로 供待하더니 正月에 先生이 그 집에 들니시니 槐山이 先生 ? 供待하려고 狗湯을 土鼎에 ?이다가 문듯 土鼎이 ?여짐에 槐山 의 妻가 落膽하야 울고 섯거늘 先生이 矜惻히 녁이사 辛京元을 命 하사 그의 經營하는 鐵店에서 鐵鼎一座를 가저다 주엇더니 일로부 터 槐山의 家勢가 漸漸 裕足하여지니라. 그 後에 槐山이 泰仁方橋 로 移居할 ?에 그 鐵鼎을 環坪 鄭 東朝에게 팔엇더니 槐山은 도로 貧寒하여지고 東朝는 裕足하게 되엿슴으로 모든 사람이 그 鐵鼎을 福鼎이라 稱하니라.
하루는 금산면 용화동에 있는 박 봉민의 주점에 가셔서 술을 찾으시니 마 침 술이 다 되었다 하거늘 선생께서 술을 빚었던 그릇을 가져오라 하시고 그 그릇에 물을 채우신 후 손으로 저으신 뒤에 잡수시며 여러 종도들에게 나누어 주시니 그 맛이 원래 빚었던 술과 같으니라.
原文: 하로는 龍華洞 朴 奉敏의 酒店에 이르사 술을 차즈시니 마참 술이 ?러젓다 하거늘 先生이 술을 비젓든 그릇을 가저오라 하사 물을 채워 부으시고 손으로 저으신 後에 마시시며 여러 從徒에게 난호아 주시니 그 맛이 本來 비졋던 술과 갓흐니라.
(원본에 누락)
하루는 금산사 청련암의 중 김 현찬에게 "명당 쓰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어 말씀하시니 현찬이 대답하기를 "평생소원 입니다." 하니 "믿고 있으 라." 하시고 그 후에 김 병욱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명당을 쓰려느냐." 하 시더니 병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진실로 소원입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믿고 있으라." 하시더니 그 후 몇 년이 지나도록 명당에 대한 말씀을 아니하시므로 두 사람이 선생의 뜻만 바라보고 있다 가 하루는 병욱이 여쭈기를 "전에 약속하신 명당(明堂)은 언제쯤에나 주 시려 하시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아들을 원하므로 그 때 명당(明堂)을 써서 이미 기운이 발음(發陰)되었느니라." 하시니라. 원래 병욱이 자식없음을 한탄하다가 명당을 주신다 약속 하신 후 작은 집 (小室)을 얻어서 아들을 낳았더니 이 일을 이르심이라. 병욱이 매우 허탈 하게 여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백골(白骨)을 묻어서 땅에 장례를 치루고 그 땅기운을 받아 후손이 복을 받게되기를 빌었으나 후천 에는 백골을 묻어 장례를 치루지 않게 되리라." 하시니라. 그 후 현찬이 또 명당을 주시기로 하신 것에 대해 여쭈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명당 은 이미 써서 발음(發陰) 되었느니라." 하시니 이 일 또한 현찬이 명당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은후 환속(還俗)하여 아내를 얻고 아들을 낳은 일을 이르심이더라.
原文: 하로는 金山寺 靑蓮菴 僧 金 玄贊다려 일너 가라사대 明堂쓰기를 願하나 하시니 玄贊이 對하야 가로대 平生至願이로소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밋고 잇스라 하시고 그 後에 ? 金 秉旭다 려 일너 가라사대 明堂을 쓰려나냐 하시니 秉旭이 對하여 가로대 至願이로소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밋고잇스라 하시더니 그 後 數年이 되도록 다시 그에 對한 말삼을 아니하심으 로 兩人은 다만 先生의 ?만 바라고 잇다가 하로는 秉旭이 엿주어 가로대 前者에 許諾하신 明堂은 언졔나 주려 하시나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아들을 願함으로 그?에 明堂을 쓰엿나니 임 의 發陰되엿나니라 하시니 元來 秉旭이 無子함을 恨하다가 明堂을 許諾하신 後에 小室을 어더서 아들을 나앗더니 이 일을 일으심 이 라. 秉旭이 甚히 虛誕히 녁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先天에는 埋白 骨而葬之로대 後天에는 不埋白骨而葬之라 하시니라. 그 後에 玄贊 이 ? 뭇거늘 가라사대 "明堂은 임의 썼거니와 이졔 發陰이 되엿나 니라." 하시니 大抵 玄贊도 明堂을 許諾하신 後에 退俗하야 娶妻하 고 아들을 나앗슴으로 이 일을 일으심이러라.
김 갑칠이 부모의 산소을 옮겨 장례를 지내기 위해서 모든 이장(移葬)에 쓸 장례기구를 준비하였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산소를 옮겨 장례를 지내 주리라." 하시고 준비한 관과 모든 물품들을 모 두 불사르신 후에 그 재를 앞 냇물에 뿌리게 하시며 "하늘을 보라." 하시 거늘 갑칠이 명 하신대로 하늘을 우러러보니 문득 이상한 구름이 북쪽 하 늘에서 부터 남쪽 하늘까지 뻗어 있더라.
原文: 金 甲七이 親墓를 緬禮하기 爲하야 모든 器具를 準備하엿더니 先生 이 일너 가라사대 내가 너를 爲하야 緬葬하여 주리라하시고 準備한 棺槨과 모든 物品을 모다 불살니신 後에 그 재를 압내에 버리며 하 눌을 보라 하시거늘 甲七이 命하신대로 하면서 하눌을 우러러보니 문듯 異常한 구름이 北天으로부터 南天?지 ?첫더라.
병오(1906)년 10월에 전주에 사는 문 태윤이 선생을 찾아 뵙자 선생께서 태윤이 가지고 있는 보따리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방은 편안하고 한 가로운 공부방이라. (사방에 의병의 동요가 일어나 감시가 심하므로) 그 러므로 그 속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 보따리를 풀어보라. 그 속에 반드시 전쟁을 일으키는 문서가 있으리 라." 하시니라. 태윤이 (머뭇거리다가 다시 선생께서 재촉하심에) 부끄러 운 얼굴빛으로 그 보따리를 풀어 보여드리니 숙질간에 금전관계로 소송하 는 문서가 들어 있는지라. 태윤이 여쭈어 말하기를 (이런 불미한 일이 있 으므로) "선생의 신성하심을 듣고 그 해결책을 묻고자 해서 왔으나 마음 이 부끄러워 차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전쟁은 가족간의 전쟁이 큰 것이니 한 가족의 분란이 천하의 모든 난리 를 만들어 내느니라." 하시고 글을 써서 봉하여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봉한 글을 그대의 조카집에 가지고 가서 불살으라." 하시거늘 태윤이 그 대로 하였더니 그 후로 과연 숙질간에 화해가 이루어지니라.
原文: 十月에 全州府人 文 泰潤이 와뵈이거늘 先生이 그 携帶한 褓子를 보시고 가라사대 이 房은 安閑한 工夫房이라. 속모르는 사람을 그 대로 바더드리지 아니하나니 그 褓를 ?너뵈이라. 그 가운대 반다 시 戰爭의 張本이 잇스리라. 泰潤이 붓그러운 빗으로 그 褓를 ?으 니 그 叔姪間에 金錢關係로 爭訟하는 書類가 잇는지라. 泰潤이 엿 주어 가로대 이런 不美한 일이 잇슴으로 先生의 神聖하심을 듯고 解決策을 무르러와서 붓그러운 마음으로 참아 稟達치 못하엿나이 다. 先生이 가라사대 戰爭은 家族戰爭이 큰 것이니 一家의 亂이 天 下의 亂을 ?러내나니라 하시고 한 封書를 주시며 가라사대 이 封 書를 그대 족하의 집에 가서 불살으라 하시거늘 泰潤이 그대로 하 엿더니 그 後로 果然 和解되니라.
병오(1906)년 10월에 신 원일이 건재 약국을 차리고 약재를 사려고 공주 에 있는 약재시장에 가는 길에 (김 보경의 집에 들러) 선생께 와서 뵙고 말씀드리기를 지금 길이 매우 질어서 행인들의 통행에 불편이 심하오니 여러사람들이 통행하기 쉽도록 길을 얼려서 굳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허락하시고 원일에게 술을 가져 오라하여 마시시니 그 날밤부터 길이 얼어 붙어서 그해 말까지 녹지 아니하니라.
原文: 이 달에 辛 元一이 乾材藥局을 배셜하고 貿藥하러 公州令市에 갈 새 先生? 와 뵈입고 엿주어 가로대 方今 길이 질어서 行人의 不便 이 極甚하오니 請컨대 公衆의 交通便宜를 爲하야 길을 얼어 굿게 하여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許諾하시고 술을 가저 오라하사 마스시 니 그날 밤 부터 길이 얼어붓허서 歲末?지 녹지 아니하니라.
김 익찬을 데리고 전주 세내를 지나실 때 일본인 포수가 기러기떼가 많이 내려 앉은 것을 보고 엽총을 겨누어 쏘려고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차마 군자(君子)된 도리로서 볼만한 일이 아니로다." 하시고 왼발로 땅 을 한 번 구르시고 그 자리에 서시니 포수의 엽총이 발사되지 못 하는지 라. 포수가 이상하게 여겨 엽총을 검사했으나 도저히 이유를 알지 못하고 힘들이고 있는 사이 기러기떼가 다 멀리 날아가거늘 그제서야 선생께서 발을 옮겨 가시던 길을 가시니 엽총이 비로소 발사 되니라.
原文: 金 益贊을 다리고 全州 細川(세내)을 지나실 새 日人獵師가 雁群이 만히 나려 안즌 곳에 獵銃을 견으고 發射하려 하거늘 先生이 가라 사대 君子不忍見이라 하시고 왼발로 ?을 한 번 구르시며 서시니 그 獵銃이 發射되지 못하는지라. 獵師는 異常히 녁여 銃을 檢査하 되 理由를 알지 못하고 無數히 힘드리며 헤매든 차에 雁群이 다 멀 리 날러 가거늘 先生이 발을 옴겨 길을 行하시니 獵銃은 그졔야 發 射되니라.
(한 겨울에) 선생께서 전주 이서면 불가지 김 성국의 집에 머무르고 계실 때 꿩들이 텃밭에 많이 내려 앉는 것을 보고 김 성국이 김 덕찬과 함께 그물망을 많이 만들어 텃밭에 설치하여 꿩을 잡으려 하니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들은 잡는 공부를 하라. 나는 살리는 공부를 하리라." 하 시더니 그 말씀 후로 꿩들이 많이 내려오지만 한 마리도 그물망에는 걸리 지 아니하니라.
原文: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머무르실 새 雉群이 만히 텃밧에 나리거늘 成國이 金 德贊으로 더부러 網?를 만히 만들어 텃밧에 張羅하야 잡으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너히는 잡을 공부를 해라. 나는 살 닐 공부를 하리라. 하시더니 일로부터 雉群은 만히 나리되 한 마리 도 網?에 걸리지 아니하니라.
불가지로부터 전주로 향하여 가시는 도중에 동남쪽으로부터 큰 비가 몰려 오니 선생께서 길 가운데에 흙을 파시고 침을 뱉어 묻으시니 몰려오던 비 가 문득 두 갈래로 나뉘더니 한 갈래는 동쪽 하늘로 향하고 한 갈래는 서 쪽 하늘로 향하여 몰려가니라.
原文: 佛可止로부터 全州로 向하실 새 東南으로부터 大雨가 모라오거늘 先生이 길 가운대 흙을 파고 춤을 밧허 무드시니 모라 오든 비가 문듯 두 갈래로 난호여 한 갈래는 東天으로 向하고 한 갈래는 西天 으로 向하야 몰려가니라.
황 응종,김 갑칠을 데리고 원평 앞 다리를 지나시는데 건너편에서 세 사 람이 말을 타고 달려 오는지라. 선생께서 왼발로 길을 한 번 구르시고 길 에 멈추어 서시니 다리 건너편에서 달려오던 말의 다리가 땅에 붙어서 걸 음을 옮기지 못하니 마부가 무수히 힘들여 말을 끌다가 할 수 없이 멈추 고 섰더니 한 마부가 말고삐를 놓고 다리를 건너와서 선생께 절하고 비켜 서 주시기를 간청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며 비켜서신 후에야 말이 비로소 달려가니라.
原文: 黃 應種, 金 甲七을 다리고 院坪을 지나실 새 院坪 압다리를 건너 시면서 왼발로 길을 한 번 구르시고 길가에 서시더니 이윽고 乘馬 客 三人이 오다가 다리 건너便에 이르러 馬足이 ?에 붓허서 옴기 지 못함으로 御者가 無數히 힘드려 ?다가 할 일업시 멈추고 섯더 니 한 御者가 말곱비를 놋코 다리를 건너와서 先生? 절하고 빗겨 서시기를 빌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빗겨서시니 말이 비로소 달녀가 니라.
선생께서 김 형렬의 집에 차리신 약방에 계시던 겨울 어느날 이른 아침에 약방 앞 제비산 봉우리에서 아침 해가 반쯤 떠오르는 것을 보시고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이렇게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여 세 상을 바로 잡으려는 뜻을 품은 사람이 능히 해의 운행을 멈추는 권능을 가지지 못한다면 아니되리니 내가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물에 축인 담배 세 대를 연달아 피우시니 떠오르던 해가 산 위로 더 이상 솟아 오르지 못하고 있다가 선생께서 담뱃대를 땅에 던지시니 그제서야 해가 불쑥 솟아 오르니라.
原文: 藥房에 계실 새 하로는 早朝에 해가 ?서 압졔비山 봉오리에 반튼 ? 오르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러한 難局에 處하야 靖世의 ?을 품은 者 能히 日行을 멈추는 權能을 가지지 못 하면 不可할지니 내 이졔 試驗하여 보리라 하시고 축인 담배 세대 를 가라 피우시되 해가 山?을 솟아오르지 못하더니 先生이 煙竹을 ?여 ?에 던지시니 해가 문듯 數丈을 솟으니라.
정미(1907)년 4월에 고부 손바래기로부터 태인으로 가실 때 먼저 신 원일 을 보내시어 머물러 쉬실 곳을 정하라 하시더니 다음날 손바래기 마을앞 주점에 이르시어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곳에서 머물 것이니 너 는 먼저 태인에 가서 원일과 함께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하마정에서 나 를 기다리라." 하시니 형렬이 선생의 명을 받들어 태인에 가서 원일을 만 나서 함께 자고 다음날 원일과 함께 하마정에 이르니 마침 시장이 서는 날이므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더라. 선생께서 형렬, 원일과 만나서 길 가에 있는 술집에 자리하신 후 신 원일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늘 은 벼락을 쓸 것이니 술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원일이 술을 올리자 잔을 잡으시고 두어번 두르신 후에 마시시니 문득 바람이 일어나고 폭우가 쏟 아지며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 나니라. 이윽고 비가 개이자 신 원일에게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신 경원의 집에 가면 알 일이 있으리니 빨리 다 녀오라." 하시니라.
원일이 명을 받들고 경원의 집에 가보니 마침 나무장사가 비를 피하여 경 원의 집에 들어와서 말하기를 "내가 오늘 나무를 지고 오는 길에 놀라운 일을 보았는데 노파와 젊은 여자가 길에서 다투고 있어서 그 내용을 들어 본즉 젊은 여자는 노파의 며느리인데 아이를 낳은지 채 일주일도 안돼서 남편의 상을 당한지라. 그런데 며느리가 남편의 초상도 치르지 아니하고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거늘 그 시어머니가 젊은 며느리를 쫓아가며 아이를 데려다가 길러 달라고 애걸하여도 며느리가 마음을 돌리지 아니하더니 문 득 벼락이 떨어져 그 벼락을 맞아서 죽었으니 이 일을 볼진대 하늘이 어 찌 무심하다 하리오." 하거늘 원일이 돌아와서 그 말을 들은 대로 선생께 말씀드리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늘 아침에 손바래기 주점을지 날 적에 한 젊은 여자가 이슬을 떨구며 빨리 지나가고 그 뒤를 노파가 따 라 달려오며 젊은 여자의 자취를 묻는지라, 그 이유를 자세히 듣고 보니 실로 사람의 도리로 볼 때 용서하지 못할 죄악이라. 하물며 그 부부의 인 연은 저희들끼리 지은 것이라 하니 "대개 부모가 지어 준 것은 인연(人 緣)이오. 스스로 지은 것은 천연(天緣)이라, 사람의 인연은 오히려 고칠 수 있으되 하늘이 준 천연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거늘 이제 인간의 도리에 도 어긋나고 하늘이 맺어준 천연에 대해서도 의리를 함께 저버림이니 어 찌 하늘의 진노함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原文: 丁未 四月에 古阜 客望里로부터 泰仁으로 가실 새 몬저 辛 元一을 보내사 사관을 定하라 하시고 翌日에 客望里를 ?나 그 압 酒店에 이르사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나는 여긔서 留宿하리니 너는 몬저 泰仁에 가서 元一과 함? 자고 明日早朝에 下馬亭에서 나를 기다리 라 하시니 亨烈이 奉命하고 泰仁에 이르러 元一을 만나서 함? 자 고 翌日에 元一로 더부러 下馬亭에 이르니 마참 市日임으로 사람이 만히 모아들더라. 先生이 亨烈 元一을 만나서 길가 술집에 坐定하 시고 元一을 불너 가라사대 내가 오날 霹靂을 쓰리니 술을 가저오 라. 元一이 술을 올님에 잔을 잡으사 두어 번 두르신 後에 마스시 니 문듯 바람이 이러나고 暴雨가 쏘다지며 霹靂이 大發하니라. 이 윽고 비가 개이거늘 元 一을 命하야 가라사대 辛 京元의 집에 가면 알 일이 잇스리니 ?니 갓다오라. 元一이 應命하고 京元의 집에 가 니 마참 나무장사가 비를 避하야 京元의 집에 드러와서 말하되 나 는 오날 놀나운 일을 보앗노라 나무를 지고 오는 길에 老婦와 少婦 가 길에서 싸호는 것을 보앗는대 그 內容을 들은 즉 少婦는 老婦의 子婦로서 乳兒를 난지 七日이 못되야 昨夜에 夫喪을 當한지라. 治 喪도 아니하고 乳兒를 버리고 逃亡함으로 老婦는 少婦를 ?차 맛나 서 乳兒를 다려다 길으라고 哀乞하되 少婦가 듯지 안코 ??하다가 문듯 落雷를 마저서 少婦가 죽엇스니 일로 볼진대 天道가 昭明하다 하거늘 元一이 도라와서 그 들은 말을 告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내 가 오날 아참에 客望里 酒店을 지날 ?에 한 少婦가 이슬을 ?며 ?니 지나가더니 그 後로 老婦가 달녀오며 少婦의 자최를 뭇는 故 로 그 事由를 자세히 들으니 實로 人道上 容恕치 못할 罪惡이라. 하물며 그 作配는 저희들?리 지은 것이라 하니 大抵 父母가 지어 준 것은 人緣이오, 스사로 지은 것은 天緣이라. 人緣은 오히려 고 칠 수 잇스되 天緣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졔 人道에 悖戾하 고 天緣에 沒義하니 엇지 天怒가 없으리오 하시니라.
정미(1907)년 5월5일 단오절에 종도들과 마을사람들이 같이 선생을 모시 고 학선암에 소풍가시기를 청하자 허락하시고 가시는 도중에 폭우가 크게 몰려 오거늘 선생께서 담뱃대로 몰려오는 비를 향하여 한 번 휘두르시니 문득 비가 다른 곳으로 몰려가더니 학선암에 도착한 후에야 비가 내리니 라.
原文: 五月五日 端陽節에 從徒들과 里中人이 聯合하야 先生을 모시고 學 仙菴으로 소창하려 갈 새 中路에 暴雨가 크게 몰녀오거늘 先生이 煙竹으로 모라오는 비를 向하야 한 번 두르시니 문듯 비가 다른 곳 으로 몰녀가더니 學仙菴에 當到한 後에 비가 나리니라.
선생께서 정미(1907)년 6월부터 두어달동안 정읍 대흥리 차 경석의 집에 가셔서 계셨는데 박 공우가 선생을 모시고 따르기 한 달쯤 전에 천원시장 에서 예수교인들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서 가슴뼈가 상하여 잠시 기절 하였다가 겨우 깨어나서 수십 일간 치료를 받은 후에야 겨우 움직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다쳤던 가슴부위에 손을 대지 못하고 일어서고 눕는데 크게 고통을 느끼는 중이므로 이 사실을 선생께 말씀드리니 선생께서 말 씀하시기를 "네가 예전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가슴을 쳐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잘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이 다 나은 후에는 너를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서 죽이려고 생각하나 예전에 너 에게 다친 사람의 척신이 너를 다치게한 예수교인에게 붙어서 갚는 것이 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그러니 네 마음을 잘 풀어서 너를 다치게 한 사람을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회복되리라." 하시니라.
공우가 그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아 자기를 다치게 한 그 사람을 미워하 는 마음을 풀어 버리고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예의로 대접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더니 몇 일 후에 천원군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전도회를 개최한다 하거늘 선생께서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두고을 목사를 모이게 하였노라." 하시 더니 그 후 사흘만에 공우의 상처가 완전히 나으니라.
原文: 六月부터 數朔동안 井邑 大興里 車 京石의 집에 게실 새 朴 公又가 從遊하기 一朔前에 川原 市場에서 耶蘇敎人과 交爭하다가 큰 돌에 마저서 가삼?가 傷하야 一時 昏倒하엿다가 겨우 回?하야 數旬間 治療를 바든 後에 겨우 行起는 하되 아즉?지 胸部에 손을 대지 못하고 起臥에 크게 苦痛을 感하는 中임으로 그 事實을 先生? 告 達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前者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胸部를 처서 死境에 이르게 한 일이 잇스니 그 일을 생각하야 잘 뉘웃치 라. ? 네가 몸이 快復한 後에는 加害者를 차저서 죽이려고 生覺하 나 너에게 傷害를 바든 者의 척神이 그에게 붓허서 報復한 바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마음을 잘 풀어 加害者를 恩人과 갓 치 生覺하라. 그러면 곳 快復되리라. 公又가 그 말삼에 크게 服膺 하야 加害者를 憎惡하든 마음을 풀어바리고 後日에 만나면 반다시 禮待하겟다는 生覺을 두엇더니 數日後에 川原 耶蘇敎會에 十二郡 牧師가 會集하야 大傳道會를 開催한다 하거늘 先生이 公又다려 일 너 가라사대 네 傷處를 낫게 하기 爲하야 十二郡 牧師를 召集하엿 노라 하시더니 그 後 三日만에 公又의 傷處가 全快하니라.
하루는 차 경석이 손수 가물치를 잡아 가물치회를 올렸더니 선생께서 잡 수신 후에 문밖을 거닐고 계시다가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웃으시며 말씀하 시기를 "그 기운이 빠르다." 하시므로 종도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 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가물치 모양을 이루어 허공에 떠서 동쪽하늘을 향 하여 가더라.
原文: 하로는 가물치膾를 올엿더니 先生이 잡수신 後에 門밧게 건이르시 다가 하눌을 우러러보시고 우서 가라사대 그 긔운이 ?르다 하시거 늘 從徒들이 하눌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가물치 모양을 일우어 虛空에 ?서 東天으로 向하여 가더라.
하루는 종도 대여섯명이 가야금 타는 사람을 불러서 가야금을 타게 하고 유쾌하게 놀고 있으니 선생께서 못하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저 하늘을 보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하시므로 종도들이 그 말씀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거문고를 타 는 모양과 대여섯명이 모여앉아 있는 형태를 이루어 하늘에 떠 있더라.
原文: 하로는 從徒 五六人이 琴師를 불너서 伽耶琴을 타게 하고 愉快히 놀더니 先生이 禁止하사 가라사대 저 虛空을 보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從徒들이 모다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彈琴하는 形狀과 五六人의 列坐한 모형을 일우어 虛 空에 ? 잇더라.
정미(1907)년 6월 중복날에 선생께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번 개가 치지 않으면 농작물들이 충재(蟲災)의 해를 입으리니 잘 살피라." 하시니라. 종도들이 모두 주의를 기울이고 저물도록 살폈으나 번개가 번 쩍이지 아니하자 선생께서 하늘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어찌 이 렇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재해를 돌보지 아니하느냐." 하시며 마른 짚을 끓어서 화롯불에 꽂아서 불사르시니 문득 북쪽에서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북쪽에 사는 사람들만 살고 다른 쪽에 사는 사람들은 다 죽어야 옳으냐." 하시니 다시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라.
原文: 中伏日에 先生이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늘 電光이 나지 아니하 면 蟲災가 생겨 農作을 害하리니 잘 삷히라 하시거늘 모다 注意하 야 저물도록 삷히되 電光이 나지 아니하는지라. 先生이 하눌을 向 하야 가라사대 天地가 엇지 生民의 災害를 이럿케 도라보지 아니하 나뇨 하시며 말은집을 ?어서 火爐불에 ?저서 살으시니 문듯 北方 에서 電光이 發하는지라. ? 가라사대 北方사람만 살고 他方사람은 다 죽어야 올흐냐 하시니 다시 四方에서 電光이 번적이더라.
하루는 신 원일 박 공우등 몇사람을 거느리시고 태인 살포정에 이르시어 주막숙사에 들어 쉬실 때 문득 천둥번개가 크게 일어나 그 집에 떨어져 내리려고 하거늘 선생께서 허공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곧 그치는지라. 공 우는 선생께서 정읍에서는 벽에 글을 써서 붙이셔서 천둥번개를 크게 일 으키기도 하시고 또 이번에는 말씀 한마디로 그치게 하시는 것을 보고 비 로소 선생께서 천지의 모든 조화를 마음대로 쓰시는 줄 깨닫고 이로부터 더욱 선생을 기꺼이 공경하더니 하루는 선생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랫동안 밥을 먹기전에 감사하는 마음을 하늘에 고하는 일을(食 告)를 잘 하였으나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이제 그 고하는 일(食告)을 나에게 돌릴지어다." 하시니 공우가 더욱 기뻐하여 평생소원을 이룬 줄 깨달으면서 곧 "그리하겠나이다." 라고 대답하니라.
원래 공우는 다른 동학신자들같이 "대신사응감(大神師應感)" 이라는 생각 으로 식고(食告)를 하지 않고 항상 "하느님을 뵙게 하여 주소서." 하는 발원으로 식고(食告)를 하였는데 이제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보 니 반드시 자신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통찰하심이며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심으로 보아 평생소원이던 하느님께서 강림하신 것이 틀림없 다고 믿어 의심하지 아니하니라.
原文: 하로는 辛 元一, 朴 公又外 三四人을 다리시고 泰仁 살포정에 이르 사 旅舍에 드러쉬시니 문듯 雷聲이 일어나며 電光이 大發하야 집에 나리려하거늘 先生이 虛空을 向하야 ?지스시니 電光이 곳 그치는 지라. 公又는 先生이 井邑에서 글을 써서 壁에 붓처 雷聲을 大發케 하시고 ? 이번에 한 말삼으로 雷電을 그치게 하심을 보고는 비로 소 先生?서 天地造化를 任意로 쓰시는 줄 알고 일로부터 더욱 敬 畏하더니 하로는 先生이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네가 오래동안 食 告를 잘 하엿스나 이졔 만날 사람 만낫스니 食告는 나에게로 돌닐 지어다 하시니 公又가 더욱 깃버하야 平生所願을 일운 줄 ?다르면 서 곳 그리하겟나이다라고 對答하니라. 元來 公又는 다른 東學信徒 의 通例와 갓치 "大神師應感" 이라는 生覺으로 食告를 하지 안코 恒常 "하누님 뵈여지이다"라는 祈願으로 食告를 하엿더니 이졔 先 生의 말삼하시는 바를 듯건대 반다시 마음으로 生覺하는 것을 洞察 하심이며 ? 天地造化를 任意로 쓰시는 것을 볼진대 分明히 하누님 의 降臨하심이 無疑하다고 生覺하니라.
하루는 차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신내림(降靈)을 받아야 하리라." 하시고 지극히 크고 바른 기운이 나의 몸과 합하게 하여 달라는 "원황정 기 내합아신(元皇正氣來合我身)"의 글귀를 읽히시며 방문을 여시니 경석 이 갑자기 큰 소리로 통곡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 를 "그 울음은 신명에게 벌을 받는 소리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先生이 車 京石에게 일너 가라사대 너는 降靈을 바더야하리 라 하시고 "元皇正氣來合我身"을 닑히시며 房門을 열으시니 京石이 문듯 放聲大哭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우름은 神明에게 벌을 당하는 소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구월산 너의 선조 묏자리에 있는 금반사 치혈(金盤死雉의 穴蔭)의 기운을 옮겨오리라."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고 공우로 하여금 북을 치게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京石에게 일너 가라사대 너의 先墓 九月山 金盤死雉의 穴蔭 을 옴겨오리라 하시고 京石으로 하여금 舞蹈케 하시고 公又로 북을 치게 하시니라.
하루는 선생께서 정 남기의 집에 이르시니 남기의 아우가 어떤 일로 부친 께 꾸지람을 듣고 불손한 말로 대답한 후에 밖으로 뛰어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향하여 들어오려고 하다가 문득 문 앞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못하 고 땀을 흘리며 계속 소리를 지르니 집안 사람들이 모두 어찌 할 바를 모 르는지라. 이윽고 선생께서 돌아보시며 말씀 하시기를 "어찌하여 그렇게 곤란을 당하느냐." 하시니 그제서야 겨우 몸을 펴고 정신을 차리니라. 집 안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의 아우가 말하기를 갑자기 정신이 혼미 해지고 숨이 막혀서 호흡이 안되고 온몸의 뼈마디가 굳어져서 몸을 펴지 못하였다하거늘 선생께서 물으시기를 "그때에 너의가슴이 답답하더냐." 하시므로 그 아우가 대답하기를 "매우 답답하여 잠시도 견디기 어려웠습 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그런 마음으로 너의 부친 마음 을 헤아려 보아라. 네가 부친에게 그렇게 공손하지 못한 말을 하였으니 그 말을 들은 부친의 가슴은 어떠하였겠느냐, 앞으로는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鄭 南基의 집에 이르시니 南基의 弟가 무슨 일로 父親에게 叱責을 當하고 不遜한 말로 對答한 後에 밧그로 나갓다가 다시 안 으로 向하야 들어오더니 문듯 문압헤 웃둑서서 動作을 못하고 ?을 흘니며 連하야 소리를 질음에 家人이 驚慌罔措하야 엇지 할 줄을 모르는지라. 이윽고 先生이 도라보시며 가라사대 엇지 그럿케 困苦 를 當하나냐 하시니 그졔야 能히 屈伸하며 精神을 도리키거늘 家人 이 그 緣由를 무르니 對하야 가로대 ?밧에 精神이 慌迷하며 숨이 막혀서 呼吸을 通치 못하며 骨節이 구더저서 屈伸을 못하엿노라 하 거늘 先生이 무러 가라사대 그?에 네 가삼이 답답하더냐 對하여 가로대 甚히 답답하야 暫時라도 견댈 수 업더이다. 先生이 가라사 대 그 所遭로써 네 父親의 가삼을 해아려보아라 너의 父親에게 그 럿케 不敬한 말을 하엿스니 그 가삼이 엇더하엿스랴 今後로는 허물 을 뉘웃처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정미(1907)년 11월에 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박 공우가 선생께 뵈이 러 오는 길에 우연히 흥이 나서 "모시러가자 모시러가자 부처님 모시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자." 라는 노래를 연달아 부르고 동곡에 이르러 선생 을 뵈오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집으로 가기를 원하느냐." 하시거늘 공우가 기뻐하며 "지극한 소원입니다." 하고 선생을 모시고 돌 아오다가 용암리 물방앗간에 들어가 쉬실 때 문을 열고 남쪽하늘을 바라 보시며 "높다 높다." 하시거늘 공우가 바라보니 구름이 잔뜩 끼었는데 하 늘이 방석 크기만한 넓이로 열려서 바람이 쓸쓸히 불고 눈이 내리는지라. 선생께서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와 친구로 지내자." 하시니 공 우는 선생의 그 말씀에 황송하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여겼더니 또 말씀하 시기를 "기운이 적다." 하시거늘 공우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여 쭈어 말씀드리기를 "바람이 좀 더 불겠나이다." 하니 과연 그 말대로 바 람이 크게 부는지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와 친구로 지내자." 하시며 "기운이 적다." 하시니 공우가 또 말하기를 "바람이 높아질 것 입니다." 하였더니 이 때는 바람이 크게 일어나 모래와 돌이 흩날리는지라. 선생께 서 말씀하시기를 "용호대사 북창 정렴(北窓 鄭?)의 기운을 공우에게 붙 여 보았더니 공우가 기운이 적다." 하시니라.
原文: 十一月에 銅谷에 계실 새 朴 公又가 뵈이려 오는 길에 偶然히 興이 나서 "모시러 가자. 모시러가자. 부처님 모시고 우리 집으로 도라 오자." 라고 노레를 連唱하엿더니 銅谷에 이르러 先生? 뵈이니 가 라사대 내가 네 집에 가기를 願하나냐 하시거늘 公又가 깃버하며 가로대 至願이로소이다 하고 先生을 모시고 도라오다가 龍巖里 水 砧幕에 들어 쉬실 새 門을 열고 南天을 바라보시며 놉다 놉다 하시 거늘 公又가 바라보니 구름이 가득 ?엇는대 하눌이 方席한닙 널비 ? 通하며 바람이 쓸쓸불고 눈이 나리는지라. 先生이 公又다려 일 너 가라사대 나와 親舊로 지내자하시니 公又는 그 말삼이 惶恐하기 도하고 怪異하게도 녁엿더니 ? 가라사대 긔운이 적다 하시거늘 公又- 不知中에 엿주어 가로대 바람이 좀 더 불리이다 하엿더니 果然 바람이 크게 부는지라, ? 가라사대 나와 親舊로 지내자 하며 긔운이 적다 하시거늘 公又 ? 가로대 바람이 놉하지리이다 하엿더 니 그?는 風勢大作하야 沙石을 날니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龍虎 大師의 긔운을 公又에게 붓처 보앗더니 그 긔운이 적다 하시니라.
하루는 공우를 데리고 정읍으로 가실 때 공우에게 "풍운조화를 마음속으 로 계속해서 읽으라." 하시므로 공우가 그대로 마음속으로 외우다가 문득 잊어버리고 잘못하여 "천문지리" 를 마음속으로 읽었더니 선생께서 돌아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잘못 찾고 있으니 다시 생각하라." 하시거늘 공우 가 놀라서 생각하니 과연 잘못 외고 있는지라. 이로부터 고쳐 외며 대흥 리까지 왔더니 이 날 밤에 비와 눈이 섞여 오므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한 번 잘못 생각함으로 인하여 하늘의 기운이 한결같지 못하다."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公又를 다리고 井邑으로 가실 새 公又다려 "風雲造化"를 心 誦하라 하심으로 公又가 그대로 心誦하다가 문듯 이저버리고 그릇 "天文地理"를 心誦하더니 先生이 도라보아 가라사대 그릇 차지니 다시 生覺하라 하시거늘 公又 놀내여 生覺하니 果然 그릇 차젓는지 라. 일로부터 고처 心誦하며 大興里?지 왓더니 이날 밤에 비와 눈 이 섯겨오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네 한 번 그릇 生覺함으로 因하야 天氣가 한글갓지 못하다 하시니라.
무신(1908)년 2월에 종도 들과 어디로 가시는 길에 보리밭 곁을 지나시니 종도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 세상에 곡식 중에 오직 먹기 어려운 보리가 가난한 사람의 양식이 되어 빈부의 차별을 일으키고 먹을 때마다 항상 괴 로움이 많으니 보리를 없애버려야 사람들이 괴로움을 면하리라." 하거늘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의 말이 일리가 있으니 보리를 없애버리자." 하시더니 이 해 4월에 크게 가물어서 보리가 다 말라죽으니 농민들이 크게 동요하는지라. 종도들이 이 일을 선생께 말씀드리며 "이제 만일 보리가 흉년이 들면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많으리이다." 하니 선생 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전에는 너희들이 보리를 없애버림이 옳다고 하더니 이제는 다시 보리가 가물어 죽는 것을 호소하느냐. 나의 일은 비 록 농담 한 마디라도 도수에 박혀 하늘과 땅에 울려 퍼지나니 앞으로는 모든 일에 실없는 말을 삼가하라." 하시고 전주 용머리고개에 가시어 김 낙범에게 명하시어 거친 보리밥 한 그릇과 된장국 한 그릇을 가져오게 하 시어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 이러하리라." 하시고 된장국 에 밥을 말아서 다 잡수시니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비가 내려서 보리가 다시 생기를 얻어서 풍작을 이루니라.
原文: 戊申 二月에 從徒를 다리고 어대를 가실 새 보리밧가으로 지내시더 니 從徒들이 서로 말하되 此世에 貧富의 差別로 因하야 穀類中에 오직 먹기 어려운 보리가 貧民의 食糧이 되여 먹을 ?에 恒常 괴로 움이 만흐니 보리를 업세여 버려야 衆生이 괴로움을 免하리라 하거 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의 말이 有理하니 보리를 업세 여버리자 하섯더니 四月에 大旱하야 牟麥이 枯死함에 農民이 크게 騷動하는지라. 從徒들이 그 事由를 告하야 가로대 이제 만일 麥凶 이 들면 餓死하는 者가 만흐리이 다하거늘 先生이 ?지저 가라사대 前者에 너희들이 보리를 업세여 버림이 可하다하고 이졔 다시 麥凶 을 呼訴하나냐. 내 일은 비록 戱談 한 마대라도 度數에 박히여 天 地에 울녀나가나니 이 後로는 모든 일에 실업슨 말을 삼가라하시고 全州 龍頭峙에 가사 金 洛範을 命하야 거친 麥飯한 그릇과 土醬한 그릇을 가저오라하사 가라사대 窮民의 飮食이 이러하리라 하시고 土醬에 밥을 말아셔 다 잡수시니 문듯 黑雲이 이러나며 비가 나려 서 牟麥이 勃然히 生氣를 어더서 豊作을 일우니라.
공우가 종도로서 선생을 따르고 난 후부터 선생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이 모시고 따라 다녔는데 선생께서 어느 곳에서 머무르시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시려고 하실 때에는 항상 밤에는 달무리가 나타나고 낮에는 햇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언제나 햇무리나 달무리가 나타나면 어디로 가 시려는 줄 알고 먼저 신발과 행장을 꾸려서 선생의 명령을 기다리면 반드 시 부르셔서 가자 하시며 떠나셨나니 대개 선생께서는 어디를 가시던지 미리 말씀을 하지 아니하시니라.
原文: 公又가 從遊함으로부터 先生의 巡遊하실 ?에 만히 陪從하엿는대 어대셔든지 머무르시다가 다른 곳으로 ?나려 하실 ?에는 밤이면 月暈이 나터나고 낫이면 日暈이 나터나는 것을 微驗 하엿슴으로 어 느 ?던지 日月暈만 나터나면 出行하실 줄 알고 몬저 신발과 行裝 을 단속하야 命을 기다리면 반다시 불으사 가자 하시며 出發하엿나 니 大抵 先生은 어대를 가시든지 미리 말삼을 아니하섯더라.
공우가 선생을 모시고 정읍 수통점에서 머무를 때 이 도삼이 와서 그 이 웃 버들리에서 스무살쯤 되는 여자가 호랑이에게 물려 갔다는 말을 아뢰 거늘 선생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좀생이별이 보이는가 나가 보라." 하시므로 공우가 나가서 살펴보고 나타나있음을 아뢰니 선생께서 목침으로 마룻장을 치시며 "좀성아 어찌 사람을 해치려 하느냐." 하시더 니 그 다음날에 그 여자가 살아 왔는데 옷은 많이 찢겨졌으나 몸의 상처 는 크지 아니하더라.
原文: 하로는 井邑수퉁店에서 留宿하실 새 公又가 侍側하엿더니 李 道三 이 와서 그 이웃 버들里에서 二十歲쯤 된 女子가 범에게 물녀갓다 는 말을 告한대 先生이 公又다려 하눌에 蟲星(俗에 좀성이라함)이 보이는가 보라 하심으로 公又가 나가서 우러러 보고 나터나잇슴을 告하니 先生이 木枕으로 마루장을 치시며 蟲星아 엇지 사람을 害하 나냐 하시더니 翌日에 그 女子가 살어왓는대 衣服은 破裂되고 몸의 傷害는 크지 아니하더라.
천도교 교주 손 병희가 교도들의 신념을 북돋우기 위하여 호남지방 각 지 역을 순회하는 중 전주에 와서 머물고 있거늘 선생께서 공우에게 말씀하 시기를 "네가 전주로 가서 손 병희를 돌려보내고 오라. 올바르지 못한 교 리로 말을 꾸며 군중들을 미혹하는 폐해가 극에 달하였으니 그의 순회를 허락하지 못할지라." 하시니라. 공우가 명을 받들고 다음날 떠나려고 하 다가 다시 명하지 아니하셔서 이상하게 여겨 멈추었더니 몇 일 후에 손 병희가 예정을 고쳐 서울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들리니라.
原文: 天道敎主 孫 秉熙가 敎徒의 信念을 鼓舞키 爲하야 湖南各地에 巡廻 할 次로 全州에 와서 머물거놀 先生이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네 가 全州로 가서 孫 秉熙를 돌녀 보내고 오라 邪說로 群衆을 誣惑하 야 疲弊가 極度에 達하엿스니 그의 巡廻가 不可하니라. 公又가 領 命하고 翌日에 發程하려하다가 다시 命하지 아니하심으로 異常히 녁여 停止하엇더니 數日後에 孫 秉熙가 豫定을 고쳐 京城으로 도라 갓다는 報가 들니니라.
김 보경이 곰나루(곰개)에 작은 집을 두고 본처를 돌보지 아니하거늘 선 생께서 글을 써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의 작은 마누라와 얼굴을 마주보 고 이 글을 불사르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보경이 그 대로 하였더니 뜻밖에 성병이 걸려서 본가로 돌아와 한 달간을 머물렀더 니 그 작은 마누라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는지라. 선생께서 보경을 불러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집안이 편안해져서 좋은 운이 열리리니 본처를 사랑하여 저버리지 말라." 하시고 성병을 낫게 하여 주시니라.
原文: 金 甫京이 熊浦에 小室을 두고 本家를 돌보지 아니하거늘 先生이 글을 써주어 가라사대 네 小室을 對하여 불살으라 그러면 조흔 일 이 잇스리라. 甫京이 그대로 하엿더니 ?박게 淋病에 걸녀서 本家 로 도라와 月餘를 머물럿더니 그 小室이 다른 곳으로 간지라. 先生 이 甫京을 불너 경계하야 가라사대 이졔는 家室이 安靜하야 吉運이 열니리니 本妻를 사랑하야 저바리지 말라 하시고 淋病을 낫게 하여 주시니라.
하루는 용머리고개 주막에서 김 덕찬, 김 준찬 등 몇몇 종도를 데리시고 공사를 행하신 후 계실 때 마침 노름꾼들이 모여들어 윷판을 벌리니 이것 은 선생과 종도들을 유인하여 돈을 뺏으려 함이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 를 "저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도 또한 해원(解寃)일 것이라." 하시고 돈 오십 냥을 놓고 윷을 치실 때 말씀대로 윷을 지어 순식간에 그 들의 돈 팔십 냥을 다 빼앗으신 후에 품삯이라 하시며 5전만 남기시고 칠 십 아홉냥 5전을 돌려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은 모두 다 의롭지 못한 일이니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직업을 구하여 열심히 살아가 라." 하시니 그들이 크게 뉘우치고 돌아들 가느니라.
종도들이 말씀하시는대로 윷을 지으시는 법을 물으니 말씀하시기를 "던지 는 법을 일정하게 하여 변치 않으면 그렇게 되느니 이것도 또한 한마음을 쓰는 법이라." 하시고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조선정세를 볼 때 실업자가 늘어나서 도박을 아예 업으로 삼아 먹고살려는 사람들이 속출하 리니 그러나 다음에 도박을 금지하는 법이 엄해지면 그들은 굶주림에 빠 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들에게도 녹줄을 붙여 주었노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龍頭峙 旅舍에서 金 德贊, 金 俊贊 等 數人을 다리시고 公 事를 行하신 後에 마참 雜技軍이 모아들어 윳판을 벌리니 이것은 先生의 一行을 誘引하야 金錢을 ?앗으려 함이라. 先生이 가라사대 저들의 願을 일우어 줌도 ?한 解寃이라 하시고 돈 五十兩을 놋코 윳을 치실 새 말삼대로 윳이 저서 頃刻間 에 그들의 돈 八十兩을 다 ?앗은 後에 품싹이라 하시며 五錢을 남기시고 七十九兩五錢을 돌녀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다 不義의 일이니 各히 집에 도라가서 職業을 求하야 安堵하라 하시니 그들이 크게 感服하고 도라가니라. 從徒들이 말삼대로 윳이 지는 法을 무르니 가라사대 던지는 法을 一定하야 變改치 아니하면 그리되나니 이도 ?한 一心의 法이니라. ? 일너 가라사대 現今 朝鮮의 情勢는 失業者가 增加하야 賭博으로 業하는 者가 續出하리니 日後에 法禁이 嚴刻하여지면 그들은 饑餓 에 ?질 수 밧게 업슬지라. 그럼으로 이졔 祿을 붓처주엇노라 하시 니라.
하루는 여러 종도 들을 데리시고 익산리를 지나실 때 나루터에 이르시니 뱃사공은 없고 빈 배만 떠있거늘 선생께서 친히 노를 저어 건너신 후에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웃으시므로 모두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노를 저어 가는 형태를 이루어 천천히 떠가더라.
原文: 하로는 여러 從徒를 다리고 益山里를 지나실 새 津頭에 이르니 船 夫가 업고 배만 ?잇거늘 先生이 親히 櫓를 저어 건너신 後에 하눌 을 우러러보시고 웃으시거늘 모다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櫓저어 가는 模型을 일우어 徐徐히 ?가더라.
그 후에 선생께서 태인 금상리를 지나 가실 때 마침 날이 가물어서 모 심 기를 하지 못하더니 동학신도 류 한필이 그 전날에 구름이 끼임을 보고 혹시 비가 올까 하여 마른 논에 호미로 모를 옮겨 심었으나 이내 비가 오 지 아니하여 모가 다 마르거늘 매우 애가 타서 걱정하며 말하기를 "가뭄 이 이렇게 심하여 전혀 비 올 생각이 없으니 오늘 옮겨 온 모를 다시 논 에 갈아서 콩이나 심을 수 밖에 없다." 하며 길게 탄식하거늘 선생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미 옮겨온 곡식종자를 갈아 엎어서 그 위에 다른 곡식 종자를 심는다는 것은 괴이한 변고가 아니냐." 하시며 류 한필을 앞세우고 그곳에 가시어 그 비참함을 보시고 서쪽하늘을 향하여 우사(雨師)를 부르시니 문득 검은 구름이 피어나며 소나기가 내리거늘 류 한필은 어떤 까닭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다만 선생께서 미리 아는 어떤 술법(術法)을 지니고 있는가 하여 이상히 여길 뿐이더라.
原文: 그 後에 泰仁 今上里에 지나실 새 마참 날이 가무러서 移秧을 못하 더니 東學信徒 柳 漢弼이 그 前日에 구름이 ?임을 보고 비가 올 줄 밋어 말은 논에 鋤種으로 모를 옴겻더니 이내 비가오지 아니하 야 苗가 말으거늘 極히 焦悶하야 가로대 가뭄이 이럿케 甚하야 雨 意가 업스니 鋤種한 것을 다시 가라서 豆太나 심을 수 밧게 업다하 며 길게 歎息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가라사대 移種한 것을 가라서 다른 穀種을 심음은 怪變이 아니냐 하시며 柳 漢弼을 압세우고 그 곳에 가사 그 慘狀을 보시고 西天을 向하야 雨師를 부르시니 문듯 黑雲이 피어나며 急雨가 나리거늘 漢弼은 엇진 ?닭인지 알지 못하 고 다만 預知術이 잇는가 하야 異常히 녁이더라.
무신(1908)년 6월에 김 병욱이 사람을 보내어 백 남신의 선친 묘에 도둑 이 들어서 선친의 두골을 파고 훔쳐서 도망갔다는 일을 말씀드리니 선생 께서 사흘 밤을 불을 밝히시고 초상(喪)난 집과 같이 지내시고 나신 후 백 남신에게 말을 전하라 하시기를 "두골을 찾으려고 힘쓰지 말고 한적하 고 구석진 곳에 거처하며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끓으라. 처서절에는 도둑 이 스스로 두골을 가져오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때에 사흘을 초상 당한 집같이 하여 밤을 지새우는 것을 종도들이 즐거워하지 아니하여 선생께 말씀드리기를 "이같이 힘을 들여도 당사자는 알지 못할 것이니 저들이 무 슨 공로를 알겠습니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의 알고 모 름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시니라. 백 남신이 선생께서 명하신 대로 한적하고 구석진 백운정에 머물렀더니 7월에 그 선친묘 아래동네 사는 동 장이 자발적으로 동네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 가 아래 동네에 살면서 도리로 볼 때 굴총을 당한 일을 모르는 척 하고 지낼 수는 없으니 모든 동네사람이 나가서 부근을 찾아보고 만약 두골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묘주인에게 말하여 크게 상을 주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동네사람들을 총동원하여 부근 산과 들을 크게 수색하니 이때에 두 골을 훔친 도둑이 생각하기를 묘주인이 태연하게 조용히 앉아서 큰 돈을 들여 두골을 찾으려 아니하니 차라리 이 기회에 두골을 가져가면 도둑소 리도 안 듣고 상당히 후한 상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두골을 가 지고 동장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러 곳을 수색하여 다행히 찾았다 하 거늘 동장이 그 사람을 데리고 백운정에 머무르는 백 남신에게로 오니 바 로 이 날이 처서절이더라.
原文: 六月에 金 秉旭이 委人하야 白 南信의 親墓에 墓賊이 들어서 頭骨 을 盜去하엿다는 事由를 稟達하니 先生이 사흘 밤을 明燭하사 喪家 와 갓치 지내시고 南信에게 傳言하사대 頭骨을 차지려 힘쓰지 말고 幽僻한 곳에 處하야 外人의 交際를 ?으라. 處暑節에는 盜賊이 스 사로 頭骨을 가저오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사흘밤 徹夜하는 것은 從徒들이 질기지 아니하야 가로대 이갓치 힘을 드리되 當事者 는 모르오니 무슨 功을 알리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그의 알고 모름 이 무슨 關係가 잇느냐 하시니라. 南信이 命하신 대로 幽僻한 白雲 亭에 處하더니 七月에 그 墓下 洞長이 自發的으로 洞會를 열고 議 論하되 우리가 이 墓下에 居하야 道義上 泛然히 지낼 수 업스니 擧 洞이 出動하야 附近을 搜索하되 만일 頭骨을 찻는 者가 잇스면 墓 主에게 말하야 厚賞케 함이 可하다 하고 洞民을 總動員하야 附近 山麓을 搜索하니 이?에 墓賊이 生覺하되 墓主가 安然히 잇서 大金 을 費하야 頭骨을 차지려 하지 아니하니 찰하리 이 機會에 頭骨을 가저가면 盜名도 免하고 相當한 厚賞을 어드리라하고 그 頭骨을 가 지고 洞長에게 가서 告하되 내가 各方에 搜索하여 다행히 차젓다 하거늘 洞長이 그 사람을 다리고 白雲亭에 오니 이날이 處暑節이더 라.
선생께서 이날 아침 일찍 용머리고개에 가셨더니 김 병욱이 와서 백 남신 의 선친 두골을 찾게된 일를 고하여 말씀 올리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 를 "그 도둑은 어떻게 처리 하였느냐." 하시니 병욱이 대답하여 말씀드리 기를 "경무청으로 보내었나이다." 하는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을 잘 타일러서 돌려 보낼 일인데 어찌 그렇게 하였느냐." 하시고 푸 른 옷 한 벌을 지어오라 하셔서 (김 병욱이 선생께서 명하신 바를 백 남 신에게 전하니 백 남신이 푸른 옷 한 벌을 지어 올리니) 그 옷을 불사르 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으로 그 사람을 징역이나 처하게 하리라." 하시 더니 과연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이 징역형을 받느니라. 종도들이 반드시 처서절에 찾게 되는 까닭을 물으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사로 운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붙여두기만 하면 그 도수에 이르러 공적 인 일과 사적인 일이 다 함께 풀리느니라." 하시더라.
原文: 先生이 이날 早朝에 龍頭峙에 가섯더니 金 秉旭이 와서 頭骨차진 事由를 告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盜賊은 엇더케 措處하엿나뇨. 秉旭이 對하여 가로대 警務廳으로 보내엿나이다 하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잘 說諭하야 돌녀 보내는 것이 可하거늘 엇지 그리 하엿 나뇨 하시고 靑依一件을 지어오라하사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微役에 나 處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 사람이 處役하니라. 從徒들이 반다시 處暑節에 찻게 된 ?닭을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매양 私 事라도 天地公事의 度數에 붓처두기만 하면 그 度數에 이르러 公私 가 다 함? ?니나니라 하시더라.
김 덕찬이 항상 선생께 대하는 것이 거만하더니 하루는 (여러종도들과 함 께) 공사를 행하실 때 크게 우뢰와 번개를 일으키시니 덕찬이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피하려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죄를 지은 것이 없는데 어찌 두려워 하느냐." 하시니 덕찬이 더욱 놀라고 겁이 나서 어디 에 있어야 할지를 모르고 어찌 할 바를 모르더니 그 일이 있었던 다음부 터는 선생을 지극히 공경하고 받들었더라.
原文: 金 德贊이 先生? 恒常 倨傲하더니 하로는 公事를 行하실 새 크게 雷電을 發하시니 德贊이 두려워 하야 避席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罪 지은 바 업거늘 엇지 두려워 하나뇨. 德贊이 더욱 惶怯하 야 所措를 莫知하더니 그 後로는 先生을 極히 敬畏하니라.
백 남신의 친척인 백 용안이 술 제조업을 독점하기 위하여 관부로부터 주 류도매업 면허를 얻어내고 전주부내에 있는 모든 주점들이 생계를 위해 가정집에서 조금씩 술을 빚어 파는 것을 못하게 하니 이때에 선생께서 용 머리고개 김 주보의 주막에 계시다가 김 주보의 아내가 가슴을 치며 말하 기를 "다른 벌이는 없고 다만 술을 빚어 먹고 살아 왔는데 이제 술빚는 것 마저 못하게 하면 무슨 벌이로 살아가리오." 하는 것을 들으시고 선생 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어찌 남자 장군만 있으리오. 마땅히 여자 장군도 있으리라." 하시고 종이 쪽지에 여장군이 라 써서 불사르시니 김 주보의 아내가 문득 신기(神氣)를 얻어서 큰소리 로 전주부중을 돌며 수 백명의 주막집여자들을 모아 데리고 백 용안의 집 을 습격하여 형세가 매우 좋지 않으니 용안이 매우 놀라 군중들에게 사과 하고 술 도매업을 하려던 계획을 그만두니라.
原文: 白 南信의 族人 龍安이 都賣 釀酒業의 免許를 엇고 全州府中에 잇 는 數百 小賣酒家의 家釀을 禁止하니 이?에 先生이 龍頭峙 金 周 甫의 酒店에 계실 새 周甫의 妻가 가삼을 치며 가로대 다른 버리는 업고 다만 酒業으로 家眷이 사러 왓는대 이졔 釀酒業을 廢하면 무 슨 버리로 사러가리오 하거늘 先生이 불상히 녁이사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엇지 男將軍만 잇스리오, 맛당히 女將軍도 잇스리라 하시 고 紙片에 女將軍이라 써서 불살으시니 周甫 妻가 문듯 神氣를 어 더서 府中을 돌며 號令하야 頃刻에 數百酒婦를 統率하고 龍安의 집 을 襲擊하야 形勢가 不穩하거늘 龍安이 大驚하야 群衆에게 謝過하 고 都賣經營을 中止하니라.
하루는 종도들을 데리고 전주 다가정(多佳町)을 지나가실 때 상복(喪服) 을 입은 한 사람이 선생을 계속 따라오며 살려주시기를 애걸하며 떠나지 않으나 선생께서는 돌아 보시지도 않고 가시거늘 종도들이 민망하여 선생 께 여쭈어 묻기를 "저 사람이 무슨 일로 저렇게 하는지는 모르나 그 모습 이 너무 불쌍하니 소원을 들어주고 돌려 보내심이 어떠 하겠나이까." 하 니 선생께서 돌아보시고 몸에 지니고 계시던 붓을 빼어 먹을 찍으시어 상 복을 입은 사람의 이마에 한 점을 쳐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니고 있는 보자기를 저 하천가에 버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선생께서 명하시 는대로 보자기를 버리고 울며 가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은 죄를 많이 지었으니 자기 죄에 자기가 죽느니라." 하시고 "그 보자기 속 에는 다니면서 사람들의 정신을 홀리는 물건들이 들었으니 몇 시간을지 낸 뒤가 아니면 펴보지 말라." 하시니라. 그 뒤에 종도들이 보자기를 펴서 보니 돌을 싼 것이더라. 그 상복을 입은 사람은 그곳에서 울며 떠난 뒤 곧 미쳐서 정신을 잃고 사방으로 뛰어 다니다가 몇 일 후에 죽느니라.
原文: 하로는 從徒들을 다리고 全州 多佳町을 지나실 새 한 喪人이 뒤를 ?르며 살녀 주시기를 哀乞하며 ?나지 못하되 先生이 도라보지 안코 가시거늘 從徒들이 민망하야 엿주어 가로대 저 사람이 무슨 일로 저러는지 모르나 그 情狀이 可矜하니 돌녀 보내심이 엇더하니 잇가. 先生이 도라보시고 몸에 가젓든 붓을 ?여 먹을 찍으사 喪人 의 이마에 한 墨點을 처주시며 가라사대 네 褓子를 저 川邊에 버 리라 하시니 그 喪人이 命하신대로 褓子를 버리고 울며 가거늘 先 生이 가라사대 저 사람이 罪를 만히 지엇스니 졔 罪에 졔가 죽나니 라. 그 褓子는 行妖하는 器具니 몃 時間을 지낸 뒤가 아니면 펴보 지 말라 하시거늘 그 뒤에 從徒들이 褓子를 펴보니 돌을 싼 것이러 라. 그 喪人은 그곳에서 울며 ?난 뒤로 곳 失性하야 四方으로 ? 여다니다가 몃 칠 後에 죽으니라.
하루는 신 경원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말씀 올리기를 "순경들의 조사가 심해져서 날마다 저의 집에 와서 선생께서 계신 주소를 묻나이다." 하고 여쭈니 선생께서 그 사람에게 글을 써주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 글을 신 경원에게 전하여 한 번 보고 곧 불사르게 하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 니라.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하늘이 비와 이슬을 부족하게 내리게 하면 반드시 모든 곳에 원(怨)이 쌓이고, 땅이 만물을 기르면서 흙과 물 쓰는 것을 부족하게 하면 반드시 모든 사물들이 원(怨)을 품게 되며, 사람이 모든 일에 할 때 덕없이 행 한다면 반드시 모든 일에 원망이 쌓이느니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 고 땅이 흙과 물로 만물을 기르며 그리고 사람이 덕을 베푸는 모든 법이 모두 다 오직 마음쓰는 한가지 법에 달려 있으니, 마음(心)이란 신(神) 들이 머무르는 근원처이며 드나드는 문이며 왕래하는 길이니라. 신(神) 들이 그 마음의 문을 여닫으며 그 곳으로 들고나며 그 마음의 길로 오고 가나니 때로는 마음속에 착한 것이 들어오고 나기도 하며 때로는 마음 속에 악한 것이 들어 왔다가 나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느니라. 그러므 로 착한 마음이 들 때면 마땅히 그것을 본받아서 스승으로 삼고, 악한 마음이 들 때면 스스로 조심하여 고친다면 내 마음의 머무르는 자리와 드나드는 문 오고가는 길이 천지의 큰 마음과 크게 다를 바 없느니라.)신 경원이 받들어 읽고 난 후에 곧 불살랐더니 그 후로는 순검의 조사가 그치니라.
原文: 하로는 辛 京元이 급히 사람을 보내여 稟하되 警官의 調査가 甚하 야 날마다 와서 先生의 住所를 뭇나이다. 先生이 來人에게 글을 써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글을 京元 에게 傳하야 한 번 보고 곳 불살으 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京元이 奉讀한 後에 곳 불살넛더니 그 後로는 警官의 調査가 그치 니라.
김 병욱의 집에서 일을 하는 김 윤근이 선생께로 와서 뵙고 간청 드리기 를 "요즈음 날이 가물어서 모든 농작물이 다 마르오니 선생님께서 기쁜 비를 주시어 부디 여러 백성들의 초조함을 덜어 주소서." 하니 선생께서 덕찬에게 명하시어 그가 기르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삶아 여러 종도들 과 더불어 함께 잡수시니 미처 잡수시기를 다 마치지 못하여 우뢰가 일어 나며 비가 크게 내리거늘 윤근이 힘이 솟아나서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진 실로 세상 모든 사람을 살려주시는 상제님이시라." 하니라.
原文: 金 秉旭의 差人 金允根이 先生? 와 뵈입고 稟하되 近日에 날이 가 물어서 作物이 다 말으오니 先生은 喜雨를 주사 萬民의 焦燥를 눅 키소서. 先生이 德贊을 命하사 그 길으는 家猪一首를 잡어서 烹宰 하야 여러 從徒들로 더부러 함? 잡수실 새 밋처 맛치지 못하야 雷 雨가 大作하거늘 允根이 ?躍하야 가로대 先生은 진실로 萬民을 求 活하는 上帝시라 하니라.
(원본에 누락)
태인 백암리에 사는 종도 김 명칠이 산 속에 있는 비탈을 새로 개간하여 담배를 심었는데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우고 난 후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 지니 명칠이 가슴을 치며 울며 말하기를 "내 농사라고는 이 담배농사 뿐 인데 거름을 주고 흙을 돋우고 난 뒤에 이렇게 갑작스런 비가 내리면 산 비탈 흙이 다 떠밀려 내려가서 농사를 다 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선생께 서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말씀하시기를 "그 재해를 면하게 하여 주리니 근심을 풀어라." 하시더니 비 개인 후에 명칠이 가보니 자신의 밭에는 조 금도 피해가 없고 다른 사람들의 경작지는 전부 사태를 만나 이 해에는 담배농사가 크게 흉작이 되니라.
原文: 泰仁 白巖里 金 明七이 山中 傾斜地를 新墾하야 煙草를 심엇는대 肥料를 施하야 붓을 하엿더니 문듯 急雨가 나림으로 明七이 가삼을 치며 울어 가로대 내 農事는 煙草栽培 ?인대 施肥培土한 後에 이 럿케 急雨가 나리니 沙汰가 미러 내려서 다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불상히 녁여 가라사대 근심을 풀어라 그 災害를 免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비개인 後에 明七이 가보니 조금도 被 害가 업고 他人의 耕作은 全部 沙汰의 害를 닙어서 이 해에 煙農이 大凶하니라.
하루는 정 괴산의 주막집 앞을 지나가실 때 마침 고부환란때 얼굴을 익힌 정 순검이 이르거늘 선생께서 술을 사서 접대하셨더니 떠날 때에 돈 열 냥을 달라고 하며 선생의 쪼끼속에 손을 넣어 돈 열 냥을 훔쳐가니 선생 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을 의롭게 해야 하거늘 어찌 이렇게 예 의 없이 행동하느냐." 하시더라. 정 순검이 전주에 가서 다시 편지로 돈 사십 원을 청구하니 선생께서 형렬로 하여금 약간의 돈을 구하여 보내시 며 말씀하시기를 "의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몇 일 후에 정 순검 이 고부로 돌아가다가 정읍에 있는 한 다리에서 도둑 떼들에게 피살당하 게 되는지라. 이 일을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순검이란 도둑을 잡아서 다스리는 직책을 가졌거늘 오히려 의롭지 않은 재물을 훔치는 것 을 즐기니 도둑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천지신명들의 행하는 바이니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丁 槐山의 酒店을 지나실 새 마참 古阜禍亂에 知面된 鄭 巡 檢이 이르거늘 先生이 술을 사서 待接하섯더니 ?날 ?에 돈 十圓 을 請求하며 족기속에 손을 너어 돈 十兩을 훔처 가거늘 先生이 일 너 가라사대 모든 일을 의롭게 할지어늘 엇지 이럿케 無禮를 行하 나냐 하시더라. 鄭 巡檢이 全州에 가서 다시 書信으로 돈 四十圓을 請求하거늘 先生이 亨烈로 하여금 若干의 돈을 求하여 보내시며 가 라사대 義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몃 칠 後에 鄭 巡檢이 古阜 로 도라 가다가 井邑 한 다리에서 群盜에게 被殺된지라. 先生이 들 으시고 가라사대 巡檢은 盜賊을 懲治하는 職責을 가젓거늘 도 로혀 非義의 物을 즐기니 盜賊에게 죽음이 當然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神明의 行하는 바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김 영서와 정 남기가 선생께 와서 뵙고 난 후에 두 사람이 서로 오가는 말로 그냥 잡담으로 말하기를 남기는 일본어를 배운 사람을 부러 워하여 말하기를 "요즘에는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출세도 쉽고 돈벌 이도 잘하더라." 하고 영서는 배우를 부러워하여 말하기를 "근래에는 연 극공연을 잘하여도 돈벌이가 잘 되더라." 하며 서로 그런 일을 등한시하 여 왔음을 후회하더니 문득 남기는 손을 흔들며 유창한 말소리로 일본말 을 하기 시작하고 영서는 상(喪)당한 사람이 되어 머리수건을 흔들며 일 어나서 상복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땀이 배 어서 등을 적시니 그곳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지라. 선생 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아주 빨리 소원을 이루었다." 하시 니 두 사람이 비로소 정신을 차려 부끄러워하는지라. 선생께서 두 사람에 게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큰 사람 되는 일을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 음을 크고 바르게 하여 그칠 곳을 알아야 할 것이오, 한 가지라도 다른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실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안되느니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金 永西와 鄭 南基가 와 뵈인 後에 兩人이 서로 私語로 酬 酌하되 南基는 日本語學을 배운 사람을 불어워 하야 가로대 近來에 는 日本語를 通한 사람은 顯達도 쉽고 돈버리도 容易하더라 하며 永西는 俳優를 불어위 하야 가로대 近來에는 劇戱를 잘하여도 돈버 리가 잘되더라 하야 서로 그런 일을 等閑視하엿슴을 後悔하더니 문 듯 南基는 손을 흔들며 流暢한 口調로 日本語를 말하고 永西는 喪 人이라. 喪巾을 흔들며 일어나서 喪服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 이면서 歌舞를 演奏하야 汗出沾背하거늘 一座가 大笑하는지라. 先 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너히는 早速히 所願을 成就하엿다 하시니 兩人이 비로소 精神을 차려 붓그러워하는지라. 다시 일너 가라사대 大人을 배우는 者 맛당히 마음을 正大히 하야 그칠 곳을 알어야 할 것이오, 한가지라도 分外의 생각을 가지며 실업슨 말을 함이 不可 하다 하시니라.
하루는 손 병욱의 집에 가시니 종도 들이 많이 모였음으로 병욱이 그 아 내를 시켜서 점심밥을 짓게 하더니 날씨가 매우 더워서 그녀가 괴롭게 여 기고 부엌에서 홀로 불평을 하였더니 문득 눈과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와사증이 생기거늘 황 응종이 보고 놀래서 선생께 말씀드리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불평한 말을 하다가 부엌을 주재하는 조왕신에게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음이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시며 "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이 글을 부엌에서 불사르며 잘못을 빌게 하라." 하시니 병욱의 아 내가 그대로 하여 곧 나으니라.
原文: 하로는 孫 秉旭의 집에 가시니 從徒들이 만히 모엿슴으로 秉旭이 그 妻를 식혀서 午飯을 지을 새 日氣가 甚히 더움으로 그 妻가 괴 롭게 녁여 부억에서 홀로 不平한 말을 하엿더니 문듯 와사症이 發 하거늘 黃 應種이 보고 놀내여 先生? 告한대 가라사대 이는 不平 한 말을 하다가 ?王에게 罰을 바듬이라 하시고 글을 써주사 秉旭 의 妻로 하여금 부억에 불사르며 謝過하라 하시니 秉旭의 妻가 그 대로 하야 곳 나으니라.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에게 물어 보시기를 "네가 남들과 싸움을 많이 하 였느냐." 하시므로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리 하였나이다." 하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표범의 단(丹)이 들어서 싸움을 잘하니 이제 그 기운을 빼어내고 사람의 기운을 넣으리라." 하시더니 이 후로는 공우 의 성질이 온화하게 되어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혹시라도 싸움하는 사 람들이 있으면 공포심이 생겨서 곧 멀리 피하니라.
原文: 大興里에 계실 새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남과 싸홈을 만히 하엿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리하엿나이다 다시 일너 가라사대 네게 豹丹이 들어서 싸홈을 잘하니 이졔 豹丹을 ?어내고 人丹을 너흐리 라 하시더니 이 後로는 公又의 性質이 溫和하게 되야 싸홈을 즐기 지 아니하고 或 싸홈하는 사람이 잇스면 恐怖心이 생겨서 곳 멀니 避하니라.
무신(1908)년 8월 어느 날 김 덕찬이 선생께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오늘 저희 누이동생 집에서 잔치가 있으니 소풍 겸하여 나가사이다." 하니 말 씀하시기를 "내 술을 먼저 마시라." 하시므로 덕찬이 "무슨 술이 있나이 까." 하고 다시 물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박 공우가 술과 삶은 닭을 가져와서 선생께 올리니라.
原文: 八月 어느 날 金 德贊이 先生? 엿주어 가로대 오늘 내 妹家에 잔 채가 잇스니 소풍 겸하야 나어가사이다. 가라사대 내술을 몬저 마 시라. 德贊이 가로대 무슨 술이니잇가. 가라사대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朴公又가 술과 熟鷄를 가저와서 先生? 올니니라. (김 덕찬의 누이동생 집 墓祭가 있던 날이라 한 기록도 있다.)
무신(1908)년 겨울 어느 날 아침에 대흥리로 부터 태인 새올 최 창조의 집으로 가실 때 박 공우는 해가 뜨면 길이 질어질까하여 미리 젖은 신발 을 하였더니 선생께서 보시고 "젖은 신발을 하였느냐." 하시며 손으로 동 쪽 산마루에 솟아오르는 해를 향하여 세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라오지 못 하다가 살포정 주막에 들어 쉬시니 그제서야 해가 문득 높이 솟아 오르더 라.
原文: 이해 겨울 어느 날 아참에 大興里로 부터 泰仁 새올 崔 昌祚의 집 으로 가실 새 朴 公又는 해가 올으면 길이 즐가하여 즌 신발을 하 엿더니 先生이 보시고 진 신발을 하엿나냐하시며 손으로 東嶺에 솟 아 올으는 해를 向하야 셰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으지 못하다가 살 포정 旅舍에 들어 쉬시니 그졔야 해가 문듯 놉히 솟아 올으더라.
최 창조의 집에 이르시어 벽력표를 묻으시니 즉시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 나며 천지가 진동하거늘 곧 거두시고 다음날 동곡약방에 이르시니 신 원 일이 여쭈어 묻기를 "진묵대사는 북두칠성을 칠일 동안 가두었다 전해 오 는데 옳은 말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 고 이날부터 석 달동안 칠성을 가두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현 세상에 천 문학자가 많다하나 북두칠성이 나타나지 아니한 일을 발표한 자가 없구 나." 하시니라.
原文: 崔 昌祚의 집에 일으사 霹靂表를 무드시니 즉시 雷聲이 大發하야 天地가 震動하거늘 곳 거드시고 翌日에 銅谷藥房에 이르시니 辛元 一이 엿주어 가로대 震默大師는 七星을 七日동안 가두엇다하니 올 흐니잇가 가라사대 이졔 試驗하리라 하시고 이날부터 三個月동안 七星을 가두신 後에 가라사대 現世에 天文學者가 만타하되 七星이 나터나지 아니한 일을 發表한 者가 업다 하시니라.
최 창조의 집에서 공우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눈을 많이 흘겨 보 았느냐." 하시므로 공우가 대답하여 "그러하였나이다." 하고 말씀드리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거늘 공우가 선생께 하 직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르러 눈병이 크 게 일어나 한 달 동안을 고통받다가 하루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 나았는지라. 곧 선생께 와 뵈이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눈병으로 매우 고생하였느냐." 하시므로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러하였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더라. 원래 공우는 성질이 매우 급하여 싸움을 즐기고 눈 짓이 곱지 못하더니 이로부터는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눈짓이 고와지니라.
原文: 崔 昌祚의 집에서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눈을 만히 흘겨 보 앗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집으 로 도라가라 하시거늘 公又가 先生? 하직하고 집으로 도라올 새 길에서 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름에 眼疾이 大發하야 한 달 동안을 苦痛하다가 하로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이 나 엇는지라. 곳 先生? 와 뵈이니 가라사대 眼疾로 辛苦하엿나냐. 對 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先生이 웃으시더라. 元來 公又는 性 質이 慓悍하야 싸홈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일로부터는 性 質이 부드럽고 눈짓이 고아지니라.
공우가 술이 과하여 술로 실수를 하는 일이 많더니 하루는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가 술을 즐기니 너의 주량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많이 주 시거늘 공우가 계속 받아 마시고 취하였는지라. 선생께서 다시 말씀하시 기를 "너는 한 잔 술밖에 못된다." 하시더니 이 뒤로부터는 술 한 두잔만 마셔도 곧 취하여 더 마시지 못하니라.
原文: 公又가 술이 過하야 酒失이 만터니 하로는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술을 즐기니 酒量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만히 주시거늘 公又가 連 하여 바더 마시고 醉한지라. 다시 가라사대 한잔 술밧게 못된다 하 시더니 이 後로는 一二杯만 마서도 곳 醉하야 더 마시지 못하니라.
무신(1908)년 겨울에 김 덕찬이 그 자녀의 혼사를 시키려 하니 모든 사람 이 물품과 금전으로 부조를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조 할 것이 없으니 날씨로나 부조하리라." 하시더니 이 해는 매우 춥고 날씨가 여러 날동안 아주 고르지 않아 매우 염려하였으나 선생께서 약속하신 그 날에 이르러서는 예외로 따뜻하고 날씨가 고르니라.
原文: 金 德贊이 그 子婚을 지내려할새 모든 사람이 物品과 金錢으로 扶 助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나는 扶助할 것이 업스니 日氣로나 扶助 하리라 하시더니 이?에 天候가 連日 險惡하여 甚히 憂慮하든 中인 대 그 期日에 이르러서는 例外로 溫和하니라.
무신(1908)년 11월에 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 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한 걸음이라. 이 뒤에 일을 네게 알리리라." 하 시더니 이 날에 차 윤경이 선생께 와서 뵙고 고 부인이 눈병으로 고통받 고 있음을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돌아갔다가 다음날 태인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러 오라." 하시므로 윤경이 곧 돌아갔다가 다음날에 살포정에 도착해보니 선생께서 아직 오시지 아니하였으므로 곧 소루원 주 점에 이르니 주막집 주인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새올 최 창조의 집으로 가 시면서 차 경석이 와서 묻거든 그 곳으로 보내라 하셨다 하거늘 윤경이 새올로 갈 때 일본군 수백명이 길가에 진을 치고 사는 곳과 길을 가는 이 유를 묻더라. 새올에 이르러 선생께 뵈이니 날이 이미 저물더라. 이 날밤 에 윤경에게 명하시어 "밤새도록 자지 말고 밖에 머물면서 집 주위를 돌 아라." 하시고 닭소리가 난 후에 윤경을 데리고 백암리로 향하여 떠나시 더라.
原文: 十一月에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井邑으로 가리니 이 길이 吉行이라. 이 後에 일을 네게 알니리라 하시더니 이날에 車 輪京이 와 뵈입고 高夫人이 眼疾로 苦痛함을 알외니 가라사대 이졔 도라갓 다가 明日에 泰仁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라. 輪京이 곳 도라갓다가 翌日에 살포정으로 오니 先生이 아즉 오시지 아니하엿거늘 곳 소루 원 酒店에 이르니 店主가 말하되 先生?서 새올 崔 昌祚의 집으로 가시면서 車輪京이 와 뭇거든 그곳으로 보내라 하셧다하거늘 輪京 이 새올로 갈 새 日本兵 數百人이 道中에 留陣하야 居住와 出行理 由를 뭇더라. 새올에 이르러 先生? 뵈이니 날이 임의 저물더라. 이 날밤에 輪京을 命하사 밤이 맛도록 자지 말고 밧게 잇어 돌라 하시고 닭의 소리가 난 後에 輪京을 다리고 白巖里로 向하야 ?나 시니라.
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이르시어 아침을 잡수시고 다시 정읍으로 가실 때 때로는 앞서 가시기도 하고 때로는 뒤에 서시기도 하시며 너덧 걸음을 걸 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길에서 일본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하시고 정읍 노송정에 이르시어 다시 말씀하시기를 "좀 지체하 였다가 감이 좋으리라." 하시고 반시간쯤을 지내신 후에 다시 떠나시어 그 모퉁이 큰 못가에 이르시니 말탄군인들이 많이 오다가 되 돌아간 자취 가 있더라.(선생께서 그 자취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이 어찌 대인의 앞 길에 쫓아오리오 하시거늘 윤경이 그 근처 사람에게 물으니 과연 기병 수십명이 달려 오다가 그 곳에서 되돌아 갔다 하더라.)
原文: 白巖里 金 京學의 집에 이르사 朝飯을 잡수시고 다시 井邑으로 가 실 새 或 압서기도 하고 或 뒤서기도 하사 四,五步를 걸으신 後에 가라사대 이 길에는 外人을 對하는 것이 不可하다 하시고 井邑 老 松亭에 이르사 가라사대 좀 遲滯함이 可하다 하시고 半時辰을 지내 신 後에 다시 ?나사 그 모통이 큰 못가에 이르니 馬兵이 만히 오 다가 되도라간 자취가 있더라.
그 곳에서 대흥리로 가려면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서 한쪽 길은 정읍군을 통과하는 큰 길이요, 한쪽 길은 샛 길이라. 윤경이 어느 길로 가실 것인 지를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어찌 샛 길로 다니리오." 하시 고 큰 길을 취하여 정읍 읍내를 통과하시니 좌우 측에 즐비한 일본사람들 의 상점에서 한 사람도 밖에 나선 사람이 없더라. 대흥리에 이르시어 고 부인의 눈병을 낫게 하시고 이어서 무신(1908)년 동짓달 공사를 행하시니 라.
原文: 거긔서 大興里로 가려면 兩條路가 分岐되야 한 길은 井邑郡을 通過 하는 大路오. 한 길은 狹路라. 輪京이 어느 길로 行할 것을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君子 엇지 狹路로 行하리오 하시고 大路를 取하야 井邑郡을 通過하시니 左右側에 外人의 商店이 만히 잇스되 한 사람 도 밧게 나선 者가 업더라. 大興里에 니르사 高 夫人의 眼疾을 낫 게 하시고 因하야 戊申 臘月 公事를 行하시니라.
하루는 경석의 검은 두루마기옷 한 벌을 가져오라하사 입으시고 속 옷를 벗으신 후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종도 들에게 물어 말씀하시 기를 "이러 하면 일본사람과 같으냐." 하시므로 모두 대답하여 말씀드리 기를 "같으니이다." 하니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 에서 글을 배울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으로 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는 그 서당에 오지 아니하고 다른 서당 에 다니다가 얼마 후에 병들어 죽었는데 그 아이의 신명이 원한을 품었 다가 이제 와서 나에게 원을 풀어 주기를 구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하고 물으니 그 신명이 내가 일본 옷을 싫어하는 줄을 알고 일본 옷을 입어달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京石의 黑周衣 한 벌을 가저오라하사 닙으시고 內衣를 벗으 신 後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從徒에게 무러 가라사대 이러하면 日本人과 갓흐냐. 모다 對하여 가로대 갓흐니이다. 다시 벗으시고 가라사대 내가 幼時에 書塾에서 글 배울 ?에 한 아해로 더부러 먹희롱을 하다가 그 아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도라가서 다 시 오지 아니하고 다른 書塾에 通學하다가 그 後에 病들어 죽엇는 대 그 神明이 怨恨을 품엇다가 이졔와서 나에게 解寃을 求함으로 엇더케하면 解寃이 되겟나냐고 무르니 그 神明이 내가 日本服을 슬 혀하는 줄을 알고 日服을 닙으라 함으로 내가 이졔 그 神明을 慰勞 함이로라 하시니라.
대흥리에서 무신(1908)년 동짓달 공사를 행하시고 기유(1909)년 정월 초 사흣 날에 관청의 재앙를 피하사 백암리 김 경학의 집으로 가셨더니 태인 읍에서 경학의 형이 사람을 보내어 경학을 불러 가거늘 선생께서 발을 만 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속담에 발 복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다 행이요, 잘못가면 불행이라 하는 것을 일러 말하는 것이라." 하시고 곧 홀로 길을 떠나시어 최 창조의 집에 가셨다가 다시 그 앞 소나무 숲을 통 하여 최 덕겸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시니 모든 사람이 계시는 곳을 알지 못하더라. 원래 경학의 형은 경학이 도술부리는 사람에게 빠져서 집안을 돌보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경학을 부르고 한편으로는 그 도술하는 사람을 관청에 고발하여 벌을 받게 하려 함이라. 경학이 집을 떠나 읍으로 가다가 길 중간에서 순검에게 붙들려 같이 집으로 되돌아와 서 선생을 찾으니 선생께서 안 계심으로 최 창조의 집까지 갔다가 찾지 못하니 할 수 없이 돌아가니라.
原文: 大興里에서 戊申 臘月公事를 行하시고 己酉 正月 三日에 官災를 避 하사 白巖里 金 京學의 집으로 가셧더니 泰仁邑에서 京學의 兄이 사람을 보내여 京學을 불너 가거늘 先生이 발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俚言에 발福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幸이오, 잘못가면 不 幸이라 함을 일음이라 하시고 곧 ?나사 獨行으로 崔 昌祚의 집에 가셧다가 다시 그 압 松林을 通하야 崔 德兼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 시니 모든 사람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하니라. 元來 京學의 兄은 京 學이 術客에게 迷惑하야 家産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말을 듯고 一面 으로는 京學을 불으고 一面으로는 官府에 告하야 術客을 잡어 懲治 하려 함이라. 京學이 집을 ?나 邑으로 가다가 中路에서 巡檢에게 붓들녀 帶同되여 집으로 되도라와서 先生을 찻다가 업슴으로 崔 昌 祚의 집?지 왓다가 찻지 못하고 도라가니라.
기유(1909)년 정월 초닷샛날에 동곡에 이르시어 며칠 뒤에 태인으로부터 무사히 된 전말을 들으신 후 말씀하시기를 "정읍의 일은 하루 공사인데 경석에게 맡겼더니 하루아침에 풀었고 태인 일은 하루아침 공사인데 경학 에게 맡겼더니 하루 내내 걸렸으니 경석이 경학보다 낫다." 하시고 또 말 씀하시기를 "경석은 병조판서 감이요, 경학은 사람이 겨우 직장(直腸)이 나 한자리 할 위인이라. 돌리기 어려우나 돌리기만 하면 착한 사람이 되 리라." 하시니라.
原文: 五日에 銅谷에 이르시니 數日後에 泰仁으로부터 無事히 된 顚末을 報告하거늘 가라사대 "井邑일은 하로 公事인대 京石에게 맛겻더니 一朝에 ?으고 泰仁일은 하로 아참 公事인대 京學에게 맛겻더니 一日을 걸녓스니 京石이 京學보다 낫다." 하시고 ? 가라사대 京石 은 兵判감이오. 京學은 爲人이 直腸이라. 돌니기 어려우니 돌니기 만 하면 善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박 공우, 황 응종을 데리시고 태인 읍에 있는 주막에 이르사 신 경원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백순검을 만나야 하겠으니 그를 데 려 오라." 하시더니 말씀이 마치자 말자 백 순검이 그 짚 앞으로 지나가 거늘 신 경원이 나가서 선생께서 계신 곳을 알려주니 백 순검이 곧 뛰어 들어와서 선생을 체포하여 묶는지라. 선생께서 공우에게 명하시어 말씀하 시기를 "네게 있는 돈 백냥을 나에게 주고 최 창조의 집에 갔다오라." 하 시니 박 공우가 명을 받들고 가거늘 또 황 응종과 신 경원을 불러 각자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백 순검에게 돈 백냥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 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래였도다. 이것을 적다고 생각하지 맣 고 그대의 생활에 보태어 써라." 하시니 백 순검이 사례한 뒤에 묶었던 것을 풀고 물러가니 이것은 백 순검이 선생을 붙들어서 돈을 빼앗으려 하 는 줄 미리 아시고 그 욕심을 채워 주심이더라.
原文: 하로는 公又, 應鐘을 다리시고 泰仁邑 旅舍에 이르사 辛 京元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白 巡檢을 만나야 하겟스니 그를 다려 오라. 말삼이 맛치자 白 巡檢이 그 집 압흐로 지나거늘 京元이 나가서 先 生의 계신 곳을 알니니 白 巡檢이 곳 ?여 들어와서 先生을 捕縛하 는지라. 先生이 公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네게 잇는 돈 百兩을 내 게 傳하고 崔 昌祚의 집에 갓다오라 하시니 公又가 應命하고 가거 늘 ? 應鍾과 京元을 불너 各히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白 巡檢에게 돈 百兩을 주시며 가라사대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 래엿노라, 이것을 적다고 하지 말고 用에 보태여 쓰라. 白 巡檢이 致謝한 後 捕縛을 ?으고 물너가니 大抵 그가 先生을 붓드러서 돈 을 ?앗으려 하는 줄을 알으시고 그 所欲을 채워주심이러라.
하루는 전주 불가지에 있는 김 성국의 집에 계실 때 김 덕찬이 선생을 곁 에 모시고 있다가 선생께서 하시는 어떤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는 말씀 으로 알면서 거짓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더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 용소리에 있는 김 의관의 집으로 가서 자고 오라." 하시므로 덕찬 이 명을 받들고 용소리에 갔다가 김 의관의 집 문 앞에서 술 취한 사람을 만나 심한 욕을 당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되돌아오거늘 선생께서 문 밖에 나와서 바라보시며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왜 자고 오지 않고 벌써 돌아오느냐." 하시더니 술을 주시며 마음을 풀게 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사귈 때에는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거늘 어찌 마음을 스스로 속 이느냐." 하시니 덕찬이 처음에는 선생께서 이유없이 용소리에 자신을 보 내어 술 취한 사람에게 행패를 당하게 하신 것을 불평히 여겼다가 이 말 씀을 듣고 나서 비로소 자신이 선생의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이 알면서 거짓으로 그러하겠다고 한 것을 선생께서 아시고 실없는 취한 사람을 만 나도록 하여 그 마음을 다스리신 줄을 깨닫고 이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여 비록 한 마음 한 생각이라도 삼가니라.
原文: 하로는 全州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계실 새 金 德贊이 侍側하다가 先生의 무슨 말삼 ?헤 속으로는 실업게 알면서 거즛 應諾하엿더니 다시 일너 가라사대 이졔 龍巢里 金 議官의 집에 가서 자고오라 하심으로 德贊이 應命하고 龍巢里에 갓다가 金 議官집 門압헤서 醉 한 사람을 만나 悖辱을 만히 當하고 憤을 이긔지 못하야 되도라 오 거늘 先生이 門밧게 나서 바라보시고 웃어 가라사대 웨 자지 아니 하고 도라오나냐 하시며 술을 주어 가라사대 사람을 사굄에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어늘 엇지 마음을 스사로 속이나냐 하시니 德贊이 처음에는 先生이 無故히 龍巢里에 보내여 悖辱을 當하게 하신 것을 不平히 녁엿다가 이 말삼을 듯고 비로소 先生의 말삼 ?헤 속으로 는 실업시 알면서 거짓 應諾한 것을 洞燭하사 실업슨 醉한 사람을 만나도록 懲治하신 줄을 ?닷고 일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야 비록 一思一念 이라도 삼가니라.
기유(1909)년 6월에 구릿골에 계실 때 종도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 을 걱정하거늘 선생께서 김 갑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청수(淸水) 한 동이를 길어다 놓고 옷을 모두 벗은 후에 그 물동이 앞에 합장하고 서 있 어라. 이제 너에게 장군의 영(令)을 붙여서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불러 넘겨와 모든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주리라." 하시니라. 갑칠이 명하 신대로 하여 물동이 앞에 서 있으니 문득 서쪽 하늘로부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 비가 내리거늘 이에 다시 명하사 "그 물을 쏟아버리고 옷을 입으라." 하시고 모든 종도 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도 잘 수련 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原文: 六月에 銅谷에 계실 새 從徒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을 걱정하 거늘 先生이 甲七다려 일너 가라사대 淸水一 盆을 길어다 놋코 上 下衣를 벗고 淸水압헤 合掌하고 서 잇스라. 이졔 네게 將令을 붓처 서 西洋으로부터 雨師를 불너 넘겨 萬民의 渴仰을 풀어주리라. 甲 七이 命하신 대로하야 水盆압헤 섯스니 문듯 西天으로부터 黑雲 이 이러나며 大雨滂?하거늘 이에 命하사 淸水를 쏘다버리고 옷을 닙으라하시며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희들도 잘 修鍊하면 모든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이때에 청주에서 괴질이 크게 일어나고 나주에서도 크게 퍼지니 인심이 흉흉한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북으로 마주 터지니 장차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 없어지게 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말 씀하시기를 (勅令 怪疾神將 胡不犯 帝王將相之家 犯此 無辜蒼生之家乎: 괴질신장에게 명령을 내리노니 어찌 제왕이나 장군 재상의 집은 범치 못 하면서 이렇게 무고한 백성들의 집들만 침범하느냐) "내가 이것을 대신해 서 받으리라." 하시고 김 형렬에게 명하시어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 서 가져오게 하여 한 벌씩 갈아 입으시고 그 병을 앓으신 후에 설사하여 옷을 버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약한 사람들이 걸리면 다 죽겠도다." 하시 더니 그 후로 괴질이 곧 가라앉느니라.
原文: 이?에 淸州에서 怪疾이 猖獗하고 羅州에도 熾盛하야 人心이 洶洶 한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南北으로 마조 터지니 장차 無數한 生命 이 殄滅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代贖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新衣五件을 急히 지어서 한 벌씩 갈어 닙으시고 泄瀉하여 버리신 後에 가라사대 弱者가 걸 니면 다 죽겟도다하시더니 그 後로 怪疾이 곳 寢息되니라.
언제나 달밤에 길을 가실 때에는 구름이 달을 가렸으면 손으로 달을 향하 여 오른쪽으로 저어 구름을 둥그렇게 열어 젖히시어 달빛을 내 비치게 하 시며 목적지에 도착 하신 뒤에는 다시 손으로 달을 향하여 왼쪽으로 젖히 시기만 하시면 구름이 다시 합해져서 원래 모양대로 회복 되니라.
原文: 매양 月夜에 길을 가실 ?에 구름이 달을 가렷스면 손으로 달을 向 하여 右旋하야 구름을 둥그럿케 열어 헛치사 달빗을 내빗최이며 目 的地에 達하신 後에 다시 손으로 달을 向하야 左旋하시면 구름이 다시 合하야 原狀대로 回復되니라.
원평시장에 있는 김 경집의 주점 객사을 단골집으로 정하시고 오랬동안 머무르고 계실 때 누구든지 선생의 말씀이라 말하고 술과 음식을 청하면 돈이 있던지 없던지 모두 허락하고 음식을 주었는데 태인 청석골에 사는 강 팔문이 술과 음식을 많이 먹은 후에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주인이 보 았으나 선생의 말씀이 있었다 거짓 핑계를 대고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가더 니 이로부터 급체를 당하고 그 후 여러 가지 병을 얻어 죽을 지경에 이르 거늘 신 경수가 그 사유를 말씀드려도 선생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더니 그 후에 또 위급함을 와서 고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몹쓸 일을 해서 신명에게 죄를 얻어 그릇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니 할 수없다." 하시 더니 그 후에 곧 죽으니라.
原文: 院坪市場 金 京執의 酒店에 단골 主人을 定하시고 오랫동안 逗留하 실 새 누구든지 先生의 말삼을 憑托하야 酒食을 請하면 代金 有無를 不許 하고 다 許諾하더니 泰仁 靑石골 姜 八文이 酒食을 만히 먹은 後에 돈을 携帶한 것을 主人에게 發見되엿스나 先生의 말삼이 잇다고 거즛 憑托하야 돈을 支拂치 안코 갓더니 일로부터 挾滯하야 ?症을 일우어 死境에 이르 거늘 申 京守가 그 事由를 알왼대 先生이 對答지 아니하시더니 그 後에 ? 危急함을 來告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못슬 일을 行하야 神明에게 罪 를 어더 그릇 죽엄을 하게 되엿스니 할 일업다 하시더니 그 後에 곳 死亡 하니라.
종도들이 언제나 근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사유를 선생께 여쭈어 고하기만 해도 선생께서 들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신 중에 저절로 풀리게 되는데 만일 여쭈어 고한 뒤에도 근심을 놓지 아니하면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미 알았으니 근심치 말라." 하시니라.
原文: 從徒들이 매양 근심된 일이 잇슬?에 그 事由를 先生? 稟告하면 無爲中에 自然히 풀니게 되는대 만일 稟告한 後에도 오히려 근심을 놋치 아니하면 慰勞하야 가라사대 내가 임의 알엇스니 근심하지 말 라 하시니라.
언제나 종도들에게 일을 명하실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날을 주시어 어 기지 않게 하시고 만일 명을 받은 종도가 간혹 그 날짜 내에 날씨가 순조 롭지 못하여 어김이 있을까 우려하면 선생께서 일깨워 말씀하시기를 "내 가 너희에게 어찌 고르지 못한 날을 일러 주겠느냐." 하셨나니 늘 그렇지 만 선생께서 정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순조롭지 못한 때가 없었느니라.
原文: 매양 從徒들에게 일을 命하심에 반다시 期日을 定하여 주사 어긔지 안케 하시며 만일 命을 바든 者가 或 그 期日에 日氣의 不調로 因 하야 어김이 잇슬가 憂慮하면 先生이 일?워 가라사대 내가 너희 에게 엇지 不調한 날을 일너주겟나냐 하셧나니 大抵 先生의 定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不調한 ?가 업섯나니라.
언제나 종도들을 어느 곳에 보내시되 해야 할 일을 미리 말씀하시지 아니 하신 때가 많이 있었으나 종도들은 항상 그렇게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다시 묻지 아니하고 명 하신 곳에 가보면 반드시 무슨 일인지 알게 되더라.
原文: 매양 從徒를 어느 곳에 보내시되 使命을 말삼치 아니하신 ?가 만 히 잇셧스나 從徒들은 恒常 그럿케 經驗하엿슴으로 다시 뭇지 안코 命하신 곳에 가면 반다시 무슨 일이 잇더라.
날이 가물어 심할 때에는 비를 주시고 비를 주시면서 맑은 물동이에 소변 을 좀 타시면 그 비로 인하여 곡식들이 더욱 풍성해지고 해충들의 재해가 있을 때에는 맑은 물동이에 고추가루를 좀 풀어 넣으면 곧 해충들의 재해 가 그치니라.
原文: 가물 ?에 비를 주실 새 淸水동우에 小便을 좀 타면 그 비로 因하 여 穀類가 豊穰하고 蟲災가 잇슬 ?에는 苦草가루를 풀어 너으면 곳 蟲災가 것치더라.
선생께서 더울 때에 길을 나서시면 구름이 해를 가리는 양산과 같이 되어 햇빛을 가려서 볕이 쪼이지 아니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