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재향의 시간 구조

[풀잎]

혼재향의 시간 구조

이창기의 시에서 아이러니의 정신을 형상화하는 다양한 서사적 진술 방법 및 시적 풍자의 방식이 상호 결합되어 나타날 때 연쇄의 매개로서 작용하는 시적 원리는 동시다발적 시간, 즉 미로의 시간 구조이다. 이 미로의 시간 구조는 니체의 영원회귀적 시간관과 연관되면, 보르헤스의 이질적 혼재의 시간관과도 연관된다. 브르헤스의 시간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순환하거나 역행하기도 하며 복잡다기하게 갈라지조 뒤섞이며 동시에 공존한다. 이질 혼재적 시간성으로 인해 보르헤스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 주체와 대상, 작가과 독자 등의 경계가 와해되면서 카오스적이고 불가해한 우주적 공간을 창출한다. 미셀 푸코는 『말과 사물』의 서문에서 이처럼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공간을 일컬어 ‘혼재향heterotopia’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오형엽, 「시적 풍자와 혼재향의 시간 구조-이창기의 시」, 『알레고리와 숭고』, 문학과지성사, 2021,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