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토미(1922~2002-본명 엄재욱嚴載郁-Clarinet & Ten.Sax.-악단장)
출생: 함경북도 경성군 어랑읍 어대진면
학교: 1936년 경성재동공립보통학교(서울소재 재동초등학교의 전신) 졸업
1941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서울소재 경복고등학교의 전신) 졸업
1943년 경성음악전문학교(1937년에 세워진 사립학교로서 서울대학교음악대학의 전신) 졸업 (바이올린 전공)
음악경력
1943~ 일본 우에노(上野)의 클럽악단에서 -클라리넷과 테너색소폰, 바이올린 주자로서 활동
(일본과 연합군과의 대동아전쟁 중이지만 학교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대중음악과 재즈를 배운듯)
1945~ 엄토미와 그악단 (해방직후 귀국하여 국내 댄스홀과 미군클럽에서 활동-
-이 시절은 美軍政시기였기에 1948년까지 3년간 미군 제7군단 75,000 병력이 주둔-
-미군클럽에서 엄토미의 재즈연주때는 미군들에게 대단한 환호를 받음)
1958~ 미8군쇼에서 잠시 활동 후 국내 클럽과 일반무대에서 활동
1961~ KBS-TV 프로그램 전속악단
1962~ 영화 "월급쟁이"의 음악을 맡아 영화녹음.
1967~ 조선호텔 프린세스 나이트클럽에서 활동중 교통사고로 뇌를 다침.
1968~ TBC-TV 프로그램 전속악단
1990~ 국내 원로연주인 동호회악단인 청송회악단에서 봉사활동
1995~ 재즈클럽 "야누스"등에서 재즈밴드 활동
#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인으로서 드물게 엘리트코스를 밟아오신 분으로서
50~60년대에 김광수악단(라틴탱고)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국내 최고의 악단장으로서 스윙재즈음악을
주로 연주했다. 멋쟁이 이면서 지적인 최고급 연주인으로서 대단한 인기 속에서 활동을 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미8군쇼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일반 클럽으로 옮겨서 활동하게 된다.
송민영(트롬본)최상룡(트럼펫)과 함께 연주계 3대 멋쟁이 악단장의 한사람으로서 인기스타였다.
이들은 당시 180cm에 가까운 체격에 연주실력 또한 최고의 미남들이어서 일류 영화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으며 그들은 당대의 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다.
송민영(재즈피아니스트 안일선) 최상룡(미스코리아 진 김미정) 엄토미(가수 겸 패션모델 모니카유)
1967년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이후로 안타깝게도 연주기량이 떨어져 그 현란했던 클라리넷과
테너색소폰의 매력을 잃고 말았다.
1940~50년대에 국내 재즈 즉흥연주의 선구자라고 할 정도로 재즈의 비밥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하드비밥을 연주할 정도로 재즈를 자유롭게 구사했었다고 재즈이론가 이판근은 회고한다.
그의 음악적 재능에 영향을 받은 후배 스타연주자로는 길옥윤,박춘석,이봉조,김희갑 등이 있다.
1960년대 초에는 미8군쇼에서 가수로 활약하던 16살 연하의 모니카유와 결혼을 한다.
모니카유는 한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고 한살 아래인 남동생이 가수 유주용이다.
모니카유는 이국적인 혼혈 미인이어서 영화배우로서 또 패션모델로서 60년대에 인기가 대단했었다.
1960년대 중반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모니카유의 취입음반은 대부분이 엄토미악단에서 녹음한 것이다.
그는 60년대 인기배우였던 엄앵란의 숙부이기도 하다. 엄앵란의 아버지이자 그의 형인 엄재근도 테너색소폰
주자로서 당대의 유명한 악단장이었다.
엄토미는 유명 악단장이었기에 레코드사로부터 작곡의뢰도 많이 받아서 남인수,신세영,현미, 최희준,
모니카유,오기택,최숙자 등에게 곡을 주어 음반을 많이 취입했지만 크게 히트한 곡이 없어 대중들에게는
작곡가로서의 기억이 남지 않게 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재즈싱어 박성연의 "야누스"에서 옛날 전성기를 생각하면서 재즈를 연주했고 90년대 이후에는
원로연주인의 모임인 청송회악단에서 사회봉사 연주활동을 하다 2002년5월22일 8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첫댓글 어릴적 매일 라디오를 통해 듣던 엄토미님의 연주를 다시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