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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미안해
김 덕 호
'왜 이 여편네가 내게 그런 행동을 했지?'
그는 씩씩거리며 자신의 병실로 돌아오는 중에 몇 번이고 뇌아렸다.
여든이 넘도록 같이 살아오면서
이런 일은 전혀 없었고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황당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중풍에 이어 노망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자신이 그녀에게 뭘 잘못 한 게 있나,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기야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나빠져서 기억이 나지 않는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같은 병실의 환우들이 맨발로 절룩거리며
들어오는 그에게 제각기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들은 척도 안했다.
한쪽 엄지발가락은 붕대를 감았고
한쪽 눈과 귓불은 벌겋게 달아 있었다.
뭐라고 해도 대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가 침술치료나 재활치료를 받을 시간인데
그러고 있으니 다들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한참 연배인 환우가 그의 행동을 나무라자 하는 수 없이
침대에 들어 누우면서 적당히 둘러댔다.
짜증 섞인 말로 한 마디 내뱉었다.
“다쳤지 뭐요. 간호사실에서 소독하고 오는 길이요.”
막 이불을 뒤집어 쓰는데 서울 막내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왜?”
원래 그는 안부 따윈 없이 매번 이런 투의 소통이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왜 그러세요?”
“몰따, 끊는다.”
그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부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듯 보였다.
둘다 환자인데 서로 사이가 더 벌어지면 안되겠기에
중간역할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딸이 재차 폰을 눌렀다.
“아버지, 엄마와 싸우셨어요?”
“내가 뭘?”
아직도 분에 차있는 목소리였다.
“아버지보다 더 아픈 엄마와 싸운 건 아버지 잘못이잖아요. 엄마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나중에 보자.”
금새 또 불통이었다.
딸은 이번만큼은 어떻든지 인내심을 갖고
삼세판 아니 몇번이고 시도할 요량이었다.
마지못해 폰을 든 그는 딸에게 변명했다.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하는 수 없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오늘 점심도 중풍환자가 먹기 좋게끔
정성껏 잘게 칼질한 밑반찬과 과일을 통에 담고 따뜻한 물을 준비했다.
이렇게 준비하는 이유는 몸의 절반이 마비된 이에겐
목구멍도 마찬가지여서 음식물이 자칫 잘못하여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토하거나 사레도 없이 잘게 꼭꼭 씹어 넘기도록 보조를 요하기 때문이다.
밥맛이 없거나 속이 안좋으면 옆에서 어루고 달래서
설득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의 식사는 늘 그녀 다음이였다.
아내를 향한 그의 이런 모습이 병원 내에서는 미담으로 회자되었다.
그는 먹을 것을 들고 607호 병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서천 둑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왔다는 신호로 침대 다리를 툭툭 차면서 하는 말이
짜증 섞인 명령조였다.
그녀는 그가 집과 농지 문제를 자기와 일언반구의 상의도 없이
처리한 내용을 전해 듣고 기분이 몹시 상해있었다.
그런데 옆 할머니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부를 주고받은 것이다.
조리사가 배식을 하고 영양사가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어르신이 오셔서 같이 드시니 보기 좋네요.”
그는 무뚝뚝이 식판을 중간에 놓고 그녀의 식사를 거들기 시작했다.
반찬을 얹은 첫 밥숟갈을 그녀의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이였다.
“퍽!” 그녀가 갑자기 성한 손으로 그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혀, 형님한테도 그따위로 해서 일찍 죽었잖아!”
그의 눈에 불이 번쩍였다.
안그래도 한쪽이 난청에다 이명이 있는데
다른 쪽 귀가 찡하고 세게 울렸다.
귓불이 얼얼했다. 피할 겨를이 없었다.
한 대를 더 갈기려고 손을 들자 그는 몸을 뒤로 젖혔다.
“이 여편네가, 확?”
그는 손을 들다말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환우들이 지켜보고 있어 머뭇거렸다.
그녀는 하나도 무서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참고 참아왔는데 더 잃을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킬레스건 같은 전처의 죽음을 들먹거리는 건 뜻밖이었다.
첫 술에 때린 걸 보면 자못 벼르고 별렀던 것처럼 보였다.
그는 정성을 다한다고 여기지만
그녀는 평소 그렇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그러니까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던 모양이다.
위선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침대 식탁위에 둔 물잔이 흔들리면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유리조각 하나가 그의 슬리퍼 사이로 나와 있던 엄지발가락을 찔렀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아내를 째려본 후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와 버렸다.
그녀한테서 얻어 맞았다는 경위를 그나마 딸한테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영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딸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직 화가 안 풀렸어요?”
“아니다.” 그의 대답은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바람 좀 쐬고 기분전환 하세요.”
“안그래도 니네 엄마 산소에 가 볼란다.”
“엄마 사랑한 거 맞아요?”
“그건 왜? 새삼스럽게.”
“두 엄마가 왜 똑같은 병이 걸린지 알아요?”
“글쎄”
“친엄마가 왜 일찍 죽었는지 아느냐고요?”
“내가 어떻게 알어. 제 명일 걸.”
“재혼할 때 새엄마와 약속하셨다면서요. 꼭 호강시켜주고 말 잘들어 준다고요. 하녀처럼 집과 밭을 오가며 억척스럽게 일만 하고 살아왔으니 얼마나 자괴감이 컸겠어요? 아버지가 어기셨잖아요.”
총각도 아닌 아버지에겐 새엄마가 과분했지만
그 먼 길을 뻔질나게 다니면서 솔깃한 약속으로
여심을 낚은 정성이 결국 지금 와서는 엄마에게
가식으로 느껴진다는 뜻이리라.
“새엄마는 약속을 다 지켰다면서요.
애기를 낳지 않은 진짜 이유를 아세요?
남들은 반려동물에 마음이 빼앗겨 배우자를
홀대하는 일이 있다고 하지만 엄마는 행운이 때문에
아버지를 홀대한 적이 없잖아요.
오히려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다하려고 참는 방법의 하나로
행운이를 선택했던 것 아닌가요?”
딸이 조심스럽게 캐물었다.
“그래서 어쨌다고?”
“옛날에는 얼굴도 안보고 결혼해 참고 살았는지 몰라도 지금은 달라요.
여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셔야죠.
사랑하는 방법도 사랑을 표현할 줄도 잘 모르는 아버지인 거 아세요?
그리고 남자가 나이 많아 짝이 없으면 산 송장이거든요.”
딸의 말이 화살처럼 그의 폐부를 찔렀다.
딸은 할 말이 많은 듯 봇물처럼 쏟아냈다.
하기야 맞는 말이었다.
그는 사랑한다는 표현은고사하고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꺼낸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저도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고 살지만 아버지 같은 남자라면
답답해서 단 하루도 못살거예요.
아버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요.
죽은 엄마한텐 못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새엄마에겐 좀 살갑게 하세요.
세상에 그런 엄마 없어요. 우리 다 키워 결혼시켰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외롭기도 하셨을 테고요.
아버지만 믿고 살아오셨잖느냐구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여자는 여자이고 싶거든요.
밖에서 하시는 것의 반만큼만 집에서 하세요.
그러면 점수 딸거예요. 이젠 고리타분한 좁쌀영감이란 말도 없어질꺼구요.”
“내 체질에 어디 그게 잘되나?”
“아버지의 독선과 강압에 저항 한번 제대로 못했던 엄마가
자신을 방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였겠죠. 더 나아가 가부장제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표시이구요.
몸은 불편하지, 얼마나 답답하면그런 행동을 했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한 이불을 덮고 자도 둘 사이에 담이 높이 가로놓여 있다잖아요.
다 자기가 잘났다고 스스로 쌓아올린 거구요.
아버지가 먼저 행동을 취하세요.”
“생각해 보자.”
“하여튼 재활치료나 잘 받으세요.
그 병원이 서울도 있는데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났더라고요.”
“그래, 인애가병원은 여기서도 유명하지.
몇 대째 이어오는 의료업 전문 가문이
의료법인을 세워 대학교수와 박사출신들이
운영하는 병원이거든. 치료는 신경 쓰지 말거라.”
“낼 내려갈께요.”
갑자기 딸의 폰이 배터리가 없는지 끊어져 버렸다.
어릴 때부터 가장 귀엽고 바른말을 잘하는 딸이였다.
딸은 두 양반이 입이 무거워 어쩌다 친정이라고 가도
몇 마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늘 애석해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최근 잘못했거나
아니면 오해받을 행동이 있었는지
영주로 내려가 확인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못해 우선 간호사실로 연락했다.
이번일도 어머니가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의 언행을 견디다 못해
터뜨린 예라고 간호과장이 전했다.
그런 그가 지금 와서 정성을 다한다고
그녀의 닫힌 마음이 갑자기 열리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일이 있은 후 간병사가 챙겨드렸고 지금은 소강상태라고 했다.
그가 며칠 전에도 그녀의 대응방법을 문제삼아
난처하게 만든 것도 병상상태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돕는 어떤 일 보다 따뜻한 말 몇 마디가 더욱 필요했기에 그렇다.
한편 그녀가 말이 어눌하다 보니까 대신 이야기해주는
다른 할머니와 그가 자연히 친숙해진 걸 오해하고
그런 행동을 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일리는 있었다.
불난데 부채질한 딸이 이번만은 야속했다.
딸만큼은 그 자신을 이해해 줄줄 알았다.
그는 자기편이 없다고 생각하니 외로웠다.
병원을 나와 꽃동산 로터리를 몇 바퀴 천천히 돌면서 분을 삭히려했다.
식어가는 해가 서천 옆 언덕을 타넘고 있을 때
생긴 긴 그림자를 마주했다.
여자는 양(陽)을 채워주는 음(陰)이고 바늘을 따라가는 실이며
빛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가 아닌가?
여자, 아니 마누라에 대한 외곬 견집이 있는 그는
생각할수록 그녀의 행동이 괘씸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해도 지고 그림자도 사라졌다.
언젠가 실체조차 사라질 세상사가 자기 마음대로 안된다고
화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성격 탓만 했다.
늦가을 쌀쌀한 저녁 바람에 폐렴이 더칠까봐 병실로 돌아왔다.
내가 없어봐라 했다가도 괜스레 걱정스러웠다.
지금 그녀의 심정은 어떨까,
식사보조는 간병사가 제대로 하고 있을까,
걱정 반 화풀이 반이였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창 너머로 멀리 달빛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북극성이 떠 있었다.
해야 할 방향을 어렴풋하게나마 잡아주는 듯 했다.
지나간 날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쳤다.
일찍 잠을 청했으나 밤새 뒤척거렸다.
잠자리가 뒤숭숭했다.
꿈에 며칠 전 인사 온 손주의 전통결혼식이 시골 집에서 열렸다.
마당에서는 전처와 그녀가 여러사람들과 어울려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두 여인의 사이좋은 모습이 오히려 자신의 머리위에
숯불을 올려놓은 듯 했다.
모처럼 사과할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개꿈이였겠지 하였으나 이번은 기억이 제법 생생했다.
감정조절이 되질 않아서 식욕은 없었으나
늙은 사람이 밥힘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고정된 생각에
사로잡혀 한술이라도 뜨고 일찍 누웠었다.
아프고 힘들었던 건 농사일도 있지만
가까운 이를 저세상으로 미리 보낼 때였다.
여럿 앞에서는 의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삼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설 잠으로 피곤할 줄 알았는데 정신이 맑았다.
꿈도 그렇고 해서 몸이 힘들어도 아침 일찍 산소를 가겠다고 했지만
해가 더디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늦가을 날씨가 숨이 차고
저항력이 약한 늙은이에겐 해롭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조급할 건 없었다.
조급할수록 시간이 더디가고 해서 사물함에서 성경을 꺼내 펴들었다.
“이와 같이 남편은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이전과 달리 오늘 이 말씀이 송곳이 되었다.
어제 일이 감정을 낼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탓이 아닌지 살펴야 했다.
우선 지난 날 같이 동행했던 전처의 기일을 앞두고
혼자서 택시로 성묫길에 올랐다.
전에는 밭일을 하러 가면서 묘를 살피곤 했으나
지난 구정 이후 입원을 핑계로 그러질 못했다.
산소는 못골 뒷산 기슭 양지바른 곳에 있었다.
뒤와 양옆이 산허리에 쌓여있고 앞에 못이 보일 정도로 탁 트여있었다.
그가 산소 입구에 이르자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주목이
마치 간밤 꿈속에 만난 전처로 보였다.
그 옆은 백사청송이 따로 없을 풍경이었다.
두껍게 내려앉은 상고대가 오늘따라 상처에 뿌려진 흰 가루약 같기도 하고
거울 같기도 했다.
아침햇살을 받은 서리가
자잘한 백옥처럼 방울방울 물기서린 모습이 경이로웠다.
기다란 비석이 잣대처럼 보였다.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이 검은 속살을 지녔음에도 상대방을 검다고 얼마나 비판했던가?
그도 상처가 많다고 변명하곤 했었다.
건너편 돌 공장에서 날아온 돌가루로 거뭇거뭇하게 병든 나뭇가지와
제 색깔을 내지 못한 잎새들의 상처와 포개졌다
. 위선, 간음, 도둑질, 이간질 보다 독선과 이기심, 교만의 날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것이 오히려 그에게 돌아와 덕지덕지 붙었으리라.
알게 모르게 못된 성격과 꽉 막힌 사고로
남을 곤혹스럽게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는 그의 방식대로 살아왔고 그렇다고
남에게 겉으로는 크게 헤꼬지한 것은 없었지만
그것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기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가난한 가문으로 시집온 아내는 마치
하인처럼 살다가 젊은 날 자식들을 두고 졸지에 갔으니
얼마나 한이 많았겠는가?
출가한 세 자식들에게
추수한 농산물 배분에 대해 그가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혈압이 올라가 병원으로 이송도중 사별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울화와 한이 맺힌 시집살이로 입가에 내뿜은 거품이 남아
이처럼 서릿발이 되지않았을까? 회한의 생각이 들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잔디를 가지런히 했다.
불편한 무릎과 뻣뻣한 허리를 굽혀서라도 기도하고 예를 다했다.
밭둑을 천천히 걸었다.
아내가 죽기 얼마 전 그는 돌 더미 옆에서 이랑을 짓다가
독사에 물린 일이 기억났다.
놀란 아내가 쏜살같이 쫓아와서 자신의 옷고름을 풀어
그의 종아리를 묶고 물린 곳을 물어뜯어 입으로 피를 빨아냈다.
온 몸이 붓고 아팠으나 그녀의 재빠른 처치로 회복되었다.
농촌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고인에 대한 반성 없이 같은 방식으로 살다가
같은 일이 또 벌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터졌다.
목숨을 살려준 고인에 대한 고마움을 보상하는 길은
바로 지금의 아내에게 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건너 산의 흉물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볼을 때리는 서릿바람에 숲은 울고 개울은 앓는 소리를 내는 듯 했다.
밭둑 밑에서 기다리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산을 다버려놨네요.
자연을 함부로 훼손해가며 온통 상처투성이 산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도 모자라서 말이예요.”
“....”
그는 말이 없었다. 수없이 상처를 줬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묘인가 보죠?” 기사가 물었다.
“그렇소.”
“언제 돌아가셨는데요?” 그의 행동에 기사는 궁금했다.
“그만 내려갑시다.”
그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말투였다. 내려오는데 딸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 지금 치악휴게손데 점심 전에 병원에 도착할꺼예요.
인애가병원에 계실꺼죠?”
“알았다.”
“그래도 아버지가 먼저 손을 내미세요.
먼저 화해를 청하는 쪽이 자존심이 더 큰 거예요.”
딸이 커서 잘 하는 걸 보면 미안할 뿐인데
더욱 어른스럽게 전화를 하니 마음이 찡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막내딸은 가장 어려웠던 때에 태어나 천덕꾸러기 신세였음에도
가족간 피스메이커 역할로 자신을 지켰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폐허로 닥친 보릿고개 시절로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워 계획출산이 아닌 경우 딸은 관심 밖 취급을 받았다.
식구가 많아 열 식구 버는 것 보다 한 식구라도 더는 게 낫다고들 했다.
우선적으로 덜어내는 게 딸이었다.
아파도 방치했다. 병들어 죽는다 해도 가슴에 못 박는 일이 되질 않았다.
하기야 당시 농촌에 힘든 노동력이 남자라는 편견 때문에 그랬다.
경제 성장기를 지나는 동안 딸은 밑거름으로 두루 희생양 노릇을 해왔다.
시집살이 또한 희생을 강요받는 사회분위기가 한동안 지속됐다.
딸도 그랬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사회분위기가 아내들에게는 죄의식을
은근히 부채질하는 반면 남편들에겐 면죄부를 주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부부가 각자 따로였고 소통을 위한 놀이공간도 흔치 않았다.
가까이 있으나 먼 남편 보다는 멀어도
가까이 있는 딸을 그리워한다는 그녀의 말은 어쩌면 당연했다.
교회 앞에서 지난날을 그려보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심신이 괴로워도
새벽기도 한번 빠지지 않았던 여인들이었다.
목석 같은 남자라서 하소연 기도를 그토록 길게 했을까?
의지할만한 남편이 못돼서 시위성 기도를 매일 한건 아닐까? 궁금했다.
어린 딸이 둘 사이를 오가며 교대로 좋은 말만 전했다.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보았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하고 기도했지만 결국
허공에 대고 독백한 꼴이었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조차 기도 빨이 먹혀들지 않은 셈이다.
왜냐하면 하나는 젊은 날 뜻밖의 사별로,
다른 하나는 부메랑이 되어 또 다른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남편답지 못했고 남자가 남자답지 못했다.
권위적인 것이 남자다움이라고 착각했다.
전처와 사별 후 얼마 안되어 아냇감을
천연덕스럽게 찾아 나섰으니 웃음거리였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사랑인데
그가 좋아하는 대로 따라 오라고 했으니
여러 번 선을 보아도 퇴짜를 맞았다.
첫 아내는 어쩌다 걸려들었지만 재혼은 쉽지 않았다.
수십번을 서울로 오르내리며 정성을 쏟아 붓고서야 재혼이 겨우 성사 되었다.
결혼 생활에서 이런 정성의 십분의 일만 다했어도
그녀에게 뺨 맞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종마 개울 옆 정든 집을 둘러 보았다.
마당이고 뒤 안이고 건초로 빽빽했다.
그사이로 나뭇잎이 쌓여있었다.
이따금 낙엽 쓸어가는 바람소리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오래 비워 두었던 집에 홀로 찾아 온 자신의 모습이 낙엽에 겹쳐 보였다.
다시 와야만 할 집이기에 오래 돌아보지 못한 제 본디 모습을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엉망이었다.
비가 새고 부러지고 깨지고 넘어진 곳이 한 두곳이 아니었다.
툇마루 기둥에 덩그러니 달려있는 거울은 티끌이 더덕 더덕 붙어있었다.
그리고 산산이 금이 나 있었다.
거울 속 그의 모습이 제멋대로 비뚤어지고 어긋나 보였다.
그래도 거울은 정직하게 흉허물을 비추는 요물이었다.
자신을 이 집에 비유해 보았다.
텅 비어있는 그를 든든한 집처럼 여겼던 그녀의 실망이 얼마나 컸을까?
미안함과 외로움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막내딸까지 출가시킨 후 ‘빈집증후군’ 으로 고생하던
그녀의 신음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 했다.
그녀는 지금 더 중증을 앓고 있다.
감나무와 산수유나무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잎을 다 떨군 채 달려있는 감을 까치들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있었다.
빨간 꼬마전구로 성탄절 트리를 장식한 듯한 산수유 열매도
사람 손을 탄 적이 없었다.
말 못하는 나무조차도 때를 따라 나이값을 하고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겨울나기 지혜를 갖고 봄을 준비하는 동안
여전히 사랑하고 꿈을 꾸고 있을 게다.
고목이 아니라 나목임을 보이면서 말이다.
안주인의 손길이 끊어진 집안 모습이 말이 아니였다.
부엌이며 방이며 변소 어느 한곳도 성한 곳이 없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녹이 슬고 먼지 쌓인 가마솥이
주인을 기다리다 고물로 변했다.
사람도 소도 개도 여기서 나오는 먹거리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먼지를 닦아내자 두여인의 살내가 나는 듯 했고 손잡이만은 반질반질했다.
그러자니 안주인의 손바닥은 얼마나 거칠어졌을까?
밭일을 한답시고 없는 살림에 밥투정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담벼락을 따라 뒤안 구석에 지난해 털다만 콩더미가 그대로 쌓여있었다.
“저놈의 콩 때문에…”
엉겁결에 애꿎은 콩 핑계를 대는 걸 보면 남 탓으로 돌리는데
이골이 난 사람 같았다.
잠시 후 마음을 고쳐먹은 그는 자신의 탓으로 입원치료중인 그녀를 위해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쓰러지던 날이 생각났다.
가을비가 며칠째 추적추적 내렸다.
소슬한 바람도 제법 불었다.
단풍잎이 비바람에 못 이겨 낙엽으로 뒹굴고 있었다.
마치 가을이 비가 되어 내리는 듯 했다.
겨울로 떠나가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인지 심술궂은 날씨였다.
단풍이 한창일 때 영주지역에는 벼 타작이 마무리된다.
그리고는 마지막 밭농사로 콩 털기와 생강 캐기가 남는다.
농사는 시기가 중요하다.
심는 것도 그렇지만 거두는 일도 천기에 잘 맞추어야 한다.
봄 파종과 가을걷이가 가장 바쁘지만 일의 끝이 없는게 농사다.
따라서 농가의 부부가 생각이 달라 서로 주장하다보면
적잖은 갈등이 생긴다.
그만큼 농사는 씨를 뿌려놓으면 그냥 거두는 것 같지만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 참으로 많다.
경험만으로도 안되고 과학영농 만으로도 안되는 일이 농업이다.
그는 경험에 의존해 일방적으로 생강을 먼저 캤다.
저녁에 콩 타작을 먼저 하지 않은 것 때문에 부부가 티격태격했다.
지난주에 콩 일을 끝내자고 한 그녀의 제안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니가 뭘 아느냐, 고 그녀의 말을 묵살하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그날따라 여태까지 남편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던 그녀가
기분이 상당히 상해있었던 모양이다.
40여년을 같이 살면서도 혼자서 잘난 척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법이 없다고 대꾸했다.
팔순이 지났는데도 아집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갈수록 태산이라고 했다.
부부의 금슬은 큰 일 보다는 아주 작은 의견 차이에서
깨지기 시작하는 예가 많다.
조율이 되지 않으면 자존심 싸움에서 폭력으로 발전한다.
결국은 성격차이가 이혼소송 사유가 되어버린다.
그녀가 이혼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오늘만 해도 그녀의 예견이 옳았었다.
그녀의 의견에 그는 가을비는 찍어 바르는 정도의 양일 거라고
기어코 이번 주에나 하자고 우겼었다.
그녀가 이치에 맞는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그는 화를 버럭 내고 순간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매사에 이러니 사람이 어찌 같이 살겠냐고 대꾸할 만도 했다.
그녀는 분에 겨웠으나 이 이상 더 말을 하지 않고
억지로 참다가 횡 하니 문을 박차고 나왔다.
울먹거리면서 건너방으로 가서 들어 누웠다.
아이구 머리야, 라고 가느다란 소리가 문틈을 타고 들려왔다.
마음은 쓰였으나 평소에도 몸이 약하고 머리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해
그냥 그러려니 했다.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치고 새벽기도 시간이 되었으나
건너방은 인기척이 없었다.
문고리를 잡았다 놨다 한참을 망설였다.
어여 새벽기도 가야지, 해도 대답이 없자 순간 머리털이 솟는 듯 했다.
혹시라도 잘못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문틈으로 안을 살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베어 나왔다.
급히 들어갔더니 그녀는 머리를 두 손으로 거머 쥔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순간 당황했다. 두서가 없었다.
급할수록 차분하자는 신조도 지켜지지 않았다.
몸을 바로 눕혀도 일으켜 세워도
오른쪽 팔다리가 축 쳐졌다.
소통이 되질 않았다.
꼬집어 봐도 볼을 때려 봐도 찬물을 묻힌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러도 별 반응이 없었다.
윗 단추를 풀고 목침을 목뒤에 끼워 기도를 확보하고
생전 해보지도 않은 인공호흡 시늉도 해 보았다.
반응이 없자 급히 병원 구급차를 불렀다.
그가 동승할 자리가 없어 뒤 따라 가기로 하고 사립문에서 먼저 보내야 했다.
실려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졸지에
또 떠나보내지는 않나 조바심이 났다.
장차 닥칠 그의 앞일이 걱정되었다.
병원에 실려 간 소문이 났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는 바람에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술 취한 것처럼
갈지자 걸음이었다.
그녀가 아끼던 행운이까지 끙끙대며 왔다갔다 하길래
가까이 가서 쓰다듬었다.
그래도 행운이는 별로 기분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주인이 쓰러진 걸 알고 있는 듯 먹을 것을 줘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평소 그녀가 속으로 낳은 자식처럼 애지중지 정을 쏟던 녀석이었다.
힘들 때 위로였다.
오로지 한 주인만 따르는
충성견이였기에 쏟은 정은 남달랐다.
그녀가 흠이 있어 자식을 못 낳은 것이 아니라
낳지 않았기에 행운에게 쏟은 정은 더 컸다.
석녀(石女)니 애를 낳지 못해 이혼당한 여자라느니 하고
뒤에서 수근거려도 그저 식모처럼 입 다물고 가정에 충실했던
그녀를 닮았다.
이질적인 관계를 신의의 관계로 발전시킨 데는
그녀가 생명 존중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생각하다가 비바람에도 기여히 남아있는 잎새들을 쳐다보며
홀로 남겨진 자신을 돌아보았다. 평
균 연령을 넘어 살고 있음에도
인생의 겨울맞이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음을 느꼈다.
오래 산다고 자랑하면 뭐하나?
고마워 할 줄 모르는 바보 아닌가?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는 건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비가 시작되기 전 까지만 해도 가을 산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어
가을이 오래갈 것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인생의 가을 역시 오래 갈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세월여류(歲月如流)앞에 다 소용이 없다.
그녀가 쓰러진 후 며칠이 안 되어 부엌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젊었을 때와는 달랐다. 그녀가 부엌일을 할 수 없는 순간,
먹고 입는 문제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연로하니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밥하고 빨래하는 건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고령사회에서 늙은 홀아비에게도 삶의 준비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복지사회가 되어갈수록 일부 나이든 남자들은
역차별을 당해 어느 한구석에 외롭고 쓸쓸함이 더해진다고 했던가?
지금 후회해봐야 소용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부엌은 나이가 들수록 극복해야할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허리가 굽고 생활습관병이 있는데다 영양이 부실해지고
건강에 자신이 없어 아내가 있는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전립선암 이전 단계까지 와 있기에 명분은 충분했다.
자녀들이 오라하지만 곧 죽어도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녀의 공간이 그토록 큰 줄 몰랐다.
종내는 그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헛똑똑이임을 이제야 알았다.
있을 때 잘해야 했는데 귀한 줄 모르고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여자의 일을 가벼이 여겨온 그는
겨울이 다름 아닌 부엌임을 깨달았다.
세상을 두루 살아온 늙은이가 참을성 없이 성질을 부렸다가
된통 혼났던 것이다.
검정 승용차가 주차장으로 빨려들어 오고 있었다.
양손에 짐을 잔뜩 든 중년 숙녀가 내렸다. 막내딸이었다.
아버지 병실에 먼저 들렀으나 외출중이어서 어머니 병실로 갔다.
“엄마, 잘 있었어? 고생했지? 엄마 참 잘하고 있어.”
“자, 잘 지냈나? 아범은? 애들은?”
그녀가 막내딸을 보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하소연하고 싶어 기다렸던 친구처럼 딸을 대했다.
그녀는 문제가 생기면 꼭 이 딸과 상의해 왔다.
딸도 마음이 넓어 누구보다 그녀를 이해했다.
아무리 잘해도 이복 사이엔 늘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작든 크든 갈등이 생기기 쉽다. 전실 자식에게 아무리 잘한다 해도
편애가 고개를 든다.
그러기에 주위의 시선이 늘 곱지 않은 이유가 계모여서다.
그러나 속 얘기까지 나누었던 딸은 달랐다.
자신의 자궁에서 나온 피붙이 이상이었다.
그가 병원에 도착할 때는 이미 점심때가 가까웠다.
요금을 지불하고 현관을 들어서는데 딸이 쫓아 나왔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잘 참으셨네요.”
딸은 그를 얼싸안고 머리를 그의 가슴에 밀어 넣었다.
두 양반을 화해시키고 고향집도 둘러보려고 빨리 내려왔다고 했다.
“왠 강아지예요?”
“니네 엄마가 좋아하던 행운이 새끼야.
옆집에 맡겼었지. 엄마가 좋아할 거다.”
“아이, 예뻐라. 지네 어미 꼭 빼 닮았네.
복을 가져다 줄꺼예요. 이제야 엄마 마음을 헤아릴 줄 아시네요.
아버지가 병실에 안계셔서 엄마한테 갔더니
아버지한테 갖다 드리라고 맛난 것 많이 주시던데요.
부부싸움은 역시 칼로 물 베기인가 봐요.
저는 엄마 점심 드리고 집에 나갔다 올께요. 저녁은 아셨죠?”
딸이 안도하며 재차 그에게 다짐했다.
“니네 엄마가 정말 그랬다구? 그리고 너가 말한 게 옳다.
또 남들이 나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얘기도 일리 있다.
나이 들면 보자고 벼르는 보통 할멈들과는 다른
니 엄마에겐 죽을죄를 지었지 뭐”
“하룻밤 사이에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질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
스스로 선비입네 하고 과거의 세계에만
갇혀있는 이가 제일 꼴볼견이죠.
차라리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새로워지기로 애쓰는 이가 선비죠.”
이번 일로 딸이 믿음직스럽고 대견했다.
그는 어제 오늘 내내 자살골을 먹은듯한 마음을 추스렸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완고한 외골수인가?
화해하고 용서할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이다.
누가 먼저 언제 저세상으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석양 노을빛에 물든 소백산 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불그스레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서천위로 펼쳐지는 가느다란 부채 살 빛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제와 똑같은데 이상하리만큼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의 황혼색깔에 이 광경을 덧칠하고 싶었다.
창턱에 있는 분재가 석양 햇살을 머금고 더욱 싱싱하게 보였다.
지난 봄에 분갈이를 한 후로 생기가 솟았다.
묵은 뿌리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새 뿌리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분갈이 한다고 생각해 보았다.
고통스럽더라도 낡고 녹슨 생각과 아집을 도려내야 했다.
말 못하는 식물도 지혜로운 생존법칙에
이토록 민감한데 자신은 그동안 둔하게 살아왔다.
나이는 먹었는데 벌어놓은 돈도 자랑할 만한 세상 지위도 없어
밖에서는 당당하질 못하고 집에서 식구들한테만 권위를 세우는 것이
자존심이 지켜지는 것으로 착각했다.
내려오고 비우는 연습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기에 가정이 안녕하질 못했다.
늘 이루어지지도 못할 그 무엇을 기다리느라
현재를 제대로 챙기지도 누리지도 못했다. 부부관계도 그랬다.
그러니 소통 없는 그의 일방통행에 그녀는 고독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고독할 새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의 막힌 사고가 화해의 길까지 막았다.
무시, 비난, 조롱, 협박하는 말의 힘이 결국은
그토록 꿋꿋하게 서있던 그녀를 반쪽을 못 쓰게끔 무너뜨렸던 것이다.
하지만 장전된 무기를 쓰지 않고 참고 억눌러 왔던
그녀의 자존심이 오히려 강한 셈이다.
자존심이 강해서 잘 참지 못한다던 그가
이번 일을 겪고서야 자신이 열등생이었음을 알았다.
누가 누구를 부려먹는 게 아니라 친구처럼
서로 격려해도 부족한 나이가 아닌가?
남편의 몰이해로 생긴 답답증으로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라고 했던 그녀가 옳았다.
이제야 그녀가 왜 자식을 두지 않았는지
전처의 자식을 키우면서 받은 속 상처가
얼마였는지 그 깊은 속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자식을 낳자고 조르지도 않았던 그녀는
흔히 이복간에 있는 갈등을 예견했던 가보다.
가난한 집에서 대중없이 낳은 전처의 자식들을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해온 그녀의 돌출행동은 오히려 당연하고 정제되어있었던 셈이다.
집에 들렀던 딸이 다시 그의 병실을 찾아와 신문쪽지를 불쑥 내밀었다.
“이 내용 보시면 하셔야 할 방법이 있을꺼예요.”
돋보기를 꺼내든 그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처 아이, 계모의 학대로 숨져’ 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끌로 찌르고 소금을 한 움큼씩 먹였다는 내용은
전실 자식의 마음을 사기위해 애쓰고 있는 착한 계모들을
슬프게 하는 소식이었다. 그에겐 깊은 울림이었고 그녀를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이 잡혔다.
그는 창밖 소백산 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되어 딸은 그에게 약속시간을 알리고 6층으로 갔다.
다듬고 빗고 발라주는 딸의 손을 잡고 씽긋 웃는
그녀의 표정 속에 자식사랑과 고마움의 속마음이 서려있었다.
그녀를 휠체어에 태워 옥상쉼터로 갔다.
딸이 부모의 결혼기념을 축하하기위해 만든 자리였다.
갑작스런 일이라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참석자들이 덕담을 하고나서 선물을 건넸다.
그가 그녀에게 건네는 차례였다. 그는 강아지와 선물을 안고 있었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고 딸이 일러준 대로 행동했다. 선물을 주는데 익숙지 못한 그가 어렵게 입을 떼면서 그녀에게 다가가 건넸다.
“자, 이거 받아.”
그가 행운이의 새끼라고 말하자 그녀는 놀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목구비가 어미를 쏙 빼 닮은 게 가슴이 아려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가 재빨리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아직은 낯설게 느껴졌다.
창 너머로 달이 시야에 들어왔다.
상처주지 말고 둥글둥글 살라고 위로하듯
오늘따라 더욱 둥글고 크게 보였다.
서천에 드리워진 달빛이 네온사인 불빛을 감싸며
노부부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오후 내내 그토록 짓궂게 불던 바람소리도 잦아들고 있었다.
선물은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딸이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그녀가 사고싶어 했던 화장품 세트였다.
예쁜 카드가 들어있었다.
딸이 그녀에게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켜서 펼쳐보이자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유난히 다섯 글자가 큼직하게 다가왔다.
“여보, 미안해”
아직 실내등은 켜지 않았다. 식탁 위 유리 쟁반 속에 큼직한 달덩이 하나가 드리워져 있었다.
첫댓글 시립병원의 어르신들 중에는 백칠세이신 어르신도 계시다고,들은적이 있읍니다.백세 건강을 위하여,모든 각 분야에서,
열심과 성의를 다하여,연구하시는 모습들이 매우 감동적입니다.제가 일하는 곳의 어르신들도 백세를 훌쩍 넘기신 분들도
계십니다. 평균적으로 남.녀 어르신들에 따라, 좀 다르지만 약 85세 정도 인데요,
소설가이시며,여전히 열정적으로,
많은 환자들을 의료 복지 현장에서 치료하시며,소설의 테마를 설정하여,치료의 글을 써주시는 모습이 귀감이 되며,대단하시다고 느낍니다.도대체 이러한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신기합니다.위의 "여보 미안해"라는 글은 아마도 "가부장적"인
삶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의
뭘요. 내부모님처럼 모시고자 하는 발바닥과 가슴에서 아마도 그런 열정이 나온다고나 할까요?
지난 날들의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따뜻한 가족 사랑을 보여 주며,여러가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힘은 "가족 사랑"이며,서로 다른 처지에도,서로 마음으로 따뜻하게 존중할때,힐링이 되는
아름다운 삶일수 있음을 보여 주는 글이라 느껴집니다.
보통 훌륭한 가수들도 히트곡 한두곡 작사 작곡하기도 힘든 것처럼,소설가도 한두편 쓰시기도 힘든데,
수필가와 소설가로 이리 연속 좋은 힐링이 되는 글을 써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늘 주 하나님께서 건강으로 축복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늘 화이팅 입니다.
오늘은 전형적인 봄 날씨 입니다,마음으로부터 오는 진한 "봄"의 "향기"가 널리 퍼지네요.
그렇게까지 그렇지는 못하고요. 다만 부끄러울 뿐이죠. 따귀를 맞는것도 때리는것도 부부의 정이라는 매개체가 존재하기때문에 아닐까요?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님들은 다 이런 부모님이 아닐까요
울 아버지도 주인공인 할배처럼은 하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우리 어메를 무시했답니다
그래도 자식이 크니까 울 아버지는 조심을 하던데 그 할배는 큰 일을 당하고 나서 정신을 쪼깨 차리네요
그래요 소설에도 의인법을 많이 사용하셨네요
남자 작가님치고는 감성이 풍부하시네요
갑자기 하늘나라에 있을 울엄마만 오늘 더 보고싶어지네요
작가님 미워요
이 좋은 계절에 나를 울게 만드시네요.
울 엄마도 중풍이 들어서 돌아가셨는데
나들이를 참 좋아하셨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방에만 누워계시다 돌아가셔서
아쉬움이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다오
웁시다. 실컷 웁시다. 눈물이 때론 치료제 이니까요. 눈물 한방울에 가슴 한쪽이 다 들어있듯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게 사랑인데"란 표현이 있는데 사랑에 대한 왜곡아닐까요
내 눈에는 왜 이런 것이 잘 보일까? 그런 내가 나도 싫은데
이런 사람을 위한 처방전은 없을까요? 이런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소설도 .......
너무 가혹한 가요
의사선생님이시기에 가능하리라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힐링이
힐링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산유수님
계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심심찮게 보도되는 이때
소설속의 할머니를 이 시대 엄마들은 바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런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하여 쓴 소설인가요
생각해보니 그런면도 있겠네요. 보리수님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고 워런 버핏이 말했다
위험을 당하고 나서의 깨달음이
"여보 미안해"에 함축되어 있다고 보여지네요
남자들이여 반성을
혹 작가님은 이런과에 속하지 아니하겠지요 ㅋ ㅋ ㅋ
자주 그 과에 속하지요. 솔직히 말하면요. 그래서 어쨋다는 겁니까? 반성해야죠.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건만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며
무엇을 비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고
그 누가 말했다
수많은 선택과 도전 앞에서
후회없는 선택을 위한 지혜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여보 미안해" 라는 말 한마디에 여성들은 감동합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나라가 건강합니다
같이 노력합시다.
뭇 남자들이여 표현하고 삽시다
나같은 사람은 쬐끔 모자라네요. 바이올렛님 옳습니다요. 남자망신 시키지 않기위해서 여자를 내몸처럼 아껴야지요.
문득 소설속에 할머니성함이 궁금해집니다..
할머니에게 '미안해'라는말은 그어떤아름다운말로도
형용할수없는......단한마디인거같아요...
읽는사람도가슴을찡하게만드니....
지금이라도 할아버지가 할머니를배려하시고
행복한 삶을마무리하시길 바라게됩니다..
또하나의 소설을가슴에새깁니다.
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소설속에 주인공은 이름을 붙히지 않았고 다만 할아버지 외에 현재 할멈, 전처, 딸 모두 3인칭으로만 썻네요. 누구에게나 우리나라 사람이면 아직은 밑바닥에 이런 정서가 있을 것 같아 국한하지 않았죠. 그래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고마운걸 모르고 살아가다가 어느 날 고맙다고 몰라서 미안하다고 얘기할 때가 있잔아요. 서로 고마워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저는 이당원직원 새내기예요^^ 대표님의 소설을 막 달라그래서 읽어봤어요
읽기전에 '여보 미안해' 제목만 보고 사모님을 모델로 하신줄 알았어요
읽다보니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였더라구요
아직은 젊은 제가 미래에 남편감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상상해보았어요
부부간의 서로 존중하며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들었어요
저는 아직 미혼이기때문에 좋은사람있으면 소개시켜주세요^^*
개미님 고마워요. 닉네임이 주는 의미가 크네요. 그런데 결혼할 사람에게 이런정서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겠죠. 세상이 많이변했고 결혼하기전에는 충성을 할테니까요. 그러니까 결혼전에 많은 대화를 통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겠죠. 좋은사람요? 이상형은요?
따뜻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가슴을 찡하게 하네요
저도 소설 속 할아버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는게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용기내어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자 합니다....
기왕이면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미안하다고 하시지말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인격이 되야겠죠. 소나기님. 사실은 그말을 표현한다는 것이 쉽진 않죠. 가슴으로도 품어야되고 생활에 습관도 되어야겠죠. 고마워요 소나기님.
박사님 글을 읽다보면 고향집 같고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그것은 아마도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보시는 박사님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 겠지요.
항상 부지런 하시고 활기 넘치시는 박사님이 부러워요^^*
'여보 미안해'를 읽고 물론 '있을 때 잘해'라고도 생각 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하네요.
박사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읽게 해 주세요.
실은 눈만 따뜻한것이 아니라 귀도 코도 가슴도 손도 발도 그러하기 바람답니다. 없을때는 고사하고 있을때도 제대로 못하는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생각해봐요. 따뜻한 봄에 정수기님에 맨트처럼 있을때 잘해보입시다.
제목으로는 50대의 이야기인 줄 알고 읽었는데
약간 실망을 ....
이 나이대는 "할멈 미안해"가 어울릴 것같아요
내가 작가라면 "할망구 미안하구마"로
안슈롬님이 얘기하신대로 생각하기도 했죠. 할멈이라고 제목을 붙힐려다가 제목이기 때문에 비하시킨다는 마음이 들어 그냥 여보라고 했죠.
작가님 다음 소설 제목을 미리 정하여 드려도 될까요
"여보 고마워"로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로
유명한 김영식사장이 대찬인생에 출연하여
자기는 가정을 위해 이벤트도 자주하지만
아내한테 "고마워"를 자주 표현하므로
가정의 화목을 강조한다 하여 마음에 와닿았답니다
이해와 배려는 없고
과욕과 비교를 일삼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를 위하여
욕심이 과했나요.
제속에 들어오셨다가 나가신분 같네요. 심지기위의님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신나는 세상 만들어 봅시다요.
귀농을 꿈꾸는 한 사람입니다
안온한 시골을 꿈꾸며 인생 2막을 농촌에서 할려고 하는데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농사일이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
잠시 생각을 ~
그리고 대단하십니다.
비록 단편 소설이지만
본업이 한의사요, 경영인만 해도 벅차실텐데
여러편의 소설을
글을 쓰기 위해서 앉아 있으면 배살만 늘어날까
심히 걱정되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농사일을 너무 솔직하게 표현했나봐요. 실은 농사는 그 어떤일보다 심은대로 거두는 정직한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쉬울 수 있죠. 저도 농촌 출신이라 농사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법 알거든요. 움직이는 사물을 가꾸는것보단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다루는게 훨씬 쉽거든요. 잡초와도 싸움을 하기보단 협조를 끌어내는 지혜가 있으면 굉장히 쉽거든요. 뱃살은 저의 나이테입니다. 함부로 거론하지 마십시오. 뱃살도 근육으로 되어있거든요. 아차!!!
인터넷으로 조선일보를 읽다가 "유령공항" 양양공항이 대박공항으로 변신하게 된 배경에는 .....
제목의 글을 읽었다.
장본인은 용산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현) 김석기 사장의 이야기다
노조원의 반대로 사장으로 취임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설득과 노력으로 취임하고 난 후
김사장 왈 "진정한 마음은 통하는 것 같다"라는 말에 백번 공감하면서
"여보 미안해"는 진정한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진정성"
여보 미안해를 읽는 우리만이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좋은 세상이 되리라 믿으며
영주시립병원, 인애가 산하의 병원들이 대박병원이 되기를 ~
김석기사장요? 경북 청장할때 제가 경북체육회 부회장으로서 같이 만난적이 있는데 사람 깊은데가 있더라고요. 결국 자기가 품은 뜻을 끝까지 관철시키기위해 자기를 철처히 낮출줄 아는 사나이네요. 두날개님이 지적하신대로 주인공이 철처히 반성하고 자신을 낮추어 갖고있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미안하다는 표현을 한 것은 진정심이 드러난거죠. 후들겨 맞고서야 깨닫는 나를 포함한 남성들이여 두들겨 맞고도 때린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넓은 도량을 가진 사나이들이여 분발하라
"그가 왔다는 신호로 침대 다리를 툭특차면서 하는 말이 짜증섞인 명령조였다"에서
우리 한국의 모든 할배들의 공통된 행동 아닐까요?
작가님도 그런 일이 있으니까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을까요 ㅎ ㅎ ㅎ
에그머니... 제 약점을 잘도 아시네요. 안그럴려고 하는데도 그렇게 될때가 있네요. 심지어는 현관문까지 발로 툭툭 차는 나쁜 버릇이 있다오 발모가지를 비틀어 주세요. 기꺼이 이런짓을 하는 남성들을 대표해서 벌을 받는 셈으로...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봄비님
"밖에서 하시는 것의 반만큼만 집에서 하세요"의 문장에서
사람들은 모다 "지랄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경대 교수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 할배는 좋은 지랄을 밖에서 다하고 집에서는 할 것이 없나보네요
균형 이 시대의 트랜더는 힐링이 아니라 균형입니다
모든 독자들이여 우리도 균형을 잡아갑시다
그럽시다. 특히 남자들은 분발합시다.
오늘은 무지 재수가 없는 날이다
"귀사대기도 맞고, 발목도 부상을 당하고, 유리조각까지 엄지발가락을 찌르고"
이것을 설상가상이라 하지요
우리의 삶도 때론 이럴 때가 많지요
아주 잼나게 묘사(표현)을 하시는데
소시적에 이과를 공부하신 분이
이런 수사법까지 동원하시는지 짱입니다.
언어짱. 표현짱. 유머와 위트까지 짱짱짱
문장의 표현이 점층법의 반대인 점강법으로
저도 다시 국어 공부하는 기분이랍니다 ㅋㅋㅋㅋ
그렇게 말씀하시니 부끄럽사와요. 그냥 댓글가지고 말글로 써먹는다고나 할까요? 다 독자님들의 덕분이죠.
반려동물인 "행운이"가 의미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덤을 의미하겠지요
저는 "행운이"보다 "행복이"가 더~
행운은 공짜를 바라는 마음같이 느껴져요
우리사회의 중병중 하나 "복지병"에 걸린 사람들 땜시 진절머리가
행복은 자신의 노력과 심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되네요
칼질을 해서 미안합니다 ㅋㅋㅋㅋㅋ
다음에 책을 다시 낼때 생각해볼게요.
"안 그래도 니네 엄마 산소에 가 볼란다"
여러가지 함축적인 의미가 많을텐데 독자의 몫이겠지요
우리가 좋은 일, 슬픈 일, 어려운 일 당하면 자주 찾아가지요
엄마의 존재는 존재만으로 위대한 데
요즘 엄마의 존재는 많이 퇴색되어 아쉬움을 ~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어려워요
가볍게 생각하고 읽었는데 이해가 잘 안되서
다시 읽어보니 여러가지 시사하는 바가 - - - -
비온뒤 땅이 굳어지고 뿌러진 뼈가 더 단단해진다고 하지요. 그런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아름다운 표현, 수사법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메모를 해 보았어요
인용하면 표절이라고 하겠지요
가끔 이용해도 될까요
제가 기록한 바는 17문장 정도나
꽤 독특한 표현들이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ㅎ ㅎ ㅎ ㅎ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릴려니 미안하네요
환자도 돌봐야하기에
특별히 용서합니다. 자주 들어오세요. 여러분님.
박사님 항상 미소가득한 모습에 희망과 용기가 생깁니다
삶의 원천인 미안함과 감사 사랑함이 생명처럼 내재 되어서 흐르는 강가를 몇번이나 거닐어 보았습니다
다음이란 설레임으로 산수유 동산을 오르내리 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