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경기도에 사는 송석입니다.
얼마 전 시풍어르신께서 저의 집을 방문하시어 오른 손이 불편하시어 왼손으로 쓰신 글을 보여주셨습니다. 내용인즉 [여성해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내외는 웃으며 어르신을 여성해방 운동가라고 별칭을 지어드렸는데 어르신께서는 다음의 내용을 가문의 여성분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어하시기에 이곳 홈페이지에 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볼 기회가 되지않겠냐고 말씀드리니 밀주일 지난 화요일(2004.2,24) 아래의 글을 우송하셨습니다.
현재는 집안의 제일 어르신인 분의 바람을 만류하기에는 어렵고, 원로분의 진심어린 말씀이라 참고가 되겠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감히 이곳에 올립니다.
어르신의 뜻을 그대로 살리기위해 오자정도의 수정만 가하고는 거의 원문 그대로를 옮겼습니다.혹 이해가 잘 안 되더라도 그냥 넘기시어 그 분의 의도라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읽어보시고 리플 달아주시거나 아니면 직접 편지로 띄워주시기 바랍니다.
주소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1동 529-7 4층 김 시풍]
전화는 032=815-4882 입니다.
송석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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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역정(女路歷程)
노예시대→ 개화시대→ 모정시대
태초에 남녀 보완관계로 인류사회가 형성되어 오늘날 같은 지구촌으로 발전하였다. 원시시대의 장구한 세월동안 체력이 강한 남성의 노동력이 가족을 부양하고 씨족을 수호하는 주도세력이 되었고, 여성은 출산, 육아, 가사로 종속되어 부계사회(父系社會)가 형성되었다. 우리 나라도 이러한 역사과정을 겪으면서 가까운 이조 때는 농경위주의 군주국이었고 양반, 아전, 상민, 천민의 네 신분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양반은 지배계급으로서 벼슬을 독차지하고 과전(科田=봉급), 공전(功田=상여금)을 세습 받기도 하여 지주가 되어 부귀를 누렸으며, 아전은 하급 벼슬로 양반제도를 보완하는 신분이었다.
상민은 국민의 대다수로서 벼슬은 할 수 없는 신분이었고 농업, 축산, 수공업, 상업에 종사하는 생활실용, 생업인구였다. 나라 경제의 주축이었고 이조 말에는 사회개혁의 주동력이 되었다.
천민은 대개가 멸망한 고려의 왕족, 귀족, 반항세력의 후손이거나 역적의 자손으로 신분과 재산이 몰수되어 노예가 되었다. 남녀 자손 할 것 없이 가축처럼 궁노비, 공노비, 사노비로 팔려 다녔으며 노비문서는 부귀 층의 재산목록이 되어 있었다.
양반을 비롯한 일반사회 여성들도 신분제도에 묶여 있었다. 피교육 권과 벼슬자리는 물론이거니와 재산의 상속권과 소유권을 비롯한 경제권도 없고, 이혼, 재혼권도 없어 남성에게 예속되어 노예처럼 살아야하는 신분이었다. 남존여비의 풍속도 이러한 바탕에서 나온 것이다.
이조 중엽에 들어서는 부도덕하고 쓸모 없는 아내를 내쫓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법도 만들었고 여성을 묶어놓는 삼종지도(三從之道)도 강화하였다.
칠거지악은 시부모에게 불순종한 것, 자식을 낳지 못한 것, 행실이 음탕한 것, 질투가 심한 것, 병이 악질인 것, 말이 많은 것, 도둑질한 것 등 일곱 가지로 되어있다. 이 조목들은 애매모호하여 침소봉대 할 수도 있어 아내는 숨도 크게 못 쉬었다. 한편 일부일처 제도는 있었지만 부귀양반일수록 축첩은 성행하였으며 아내에 대한 횡포와 아울러 불문에 부쳐있었다. 칠거지악은 남편의 외도와 횡포에 분노한 아내에 자갈을 물리는 술법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혈통이나 재산의 상속권도 없는 처지라서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순종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한다. 여성의 남아 선호사상은 이러한 팔자에서 나온 것이다.
인생의 삼대사(三大事)인 결혼은 같은 신분의 타성바지 사이에 이뤄졌으나 약혼하면 어떠한 처지에서도 남편에게 종속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 여성에 대한 불문율이었다. 심지어는 약혼한 남성이 사망하여도 얼굴 모른 남편 집에 입적하여 평생 과부로 수절하며 살아야 했지만 남성은 원앙새가 아니었다.
여성이 재혼하면 가문의 수치라고 하여 친정하고도 영영 종적을 끊어야하며, 출가외인이라고 하여 시집가는 날은 친정에 정을 놔두고, 산 설고, 낯선 시집살이로 떠나는 날이라 하여 기약 없는 이별에 눈물의 바다가 되었다. 친정 나들이는 함부로 할 수 없는 풍습이었다.
특히 양반 사대부 집안 여성들은 거리 행보를 삼가야하며, 시정 잡배가 우글거리는 장터에는 나들이를 못하게 하고, 길쌈, 채전 가꾸기도 천시하여 가사노동은 여종의 몫이 되었고, 아씨 마님이라고 존대 받으면서 새장의 새처럼 살고 있었다.
그러나 굶주림과 막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상민사회 여성들은 양반 집안 여성들을 상팔자라고 부러워했다. 상민은 흉년과 소작료 과징, 조세 부담으로 생활은 어려웠고 병역과 각종 부역으로 일손은 모라는 형편이었다. 상민 여성들은 길쌈, 행상 등으로 어려운 살림을 도왔으며 남편 일손 돕기에 밤낮이 없었다.
그래서 품위를 갖추고 예절을 지킬 겨를도, 돈도 없어 결혼도 신분 결혼보다 동아리 결혼이 더 절실하여 총각과부 결혼도 있었고 데릴사위 집안도 있었으며, 여성재혼은 남성재혼처럼 예사가 되었다. 양반들은 남녀윤리가 없다하여 상놈 상년이라고 멸시하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날의 결혼상과 흡사하였다.
민속에서도 남존여비의 풍조는 밑바닥에서 흐르고 있었다. 여성은 부정하다고 신령제에는 금줄을 쳤고 꿈에 여성을 보면 그 날 재수가 없다고 믿었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집안 대소사에 참견을 못하게 했고 백여우가 요녀(妖女)로 둔갑했다는 전설도 있었다. 여성도 그렇다고 공감하여 타고난 팔자라고 스스로를 업신여겼다. 무지몽매한 탓이었다.
이조 때는 현대와 같은 뚜렷한 교육제도는 없었고 서당(초등학교), 향교(중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의 학제가 있었으나 여성은 서당에도 다닐 수가 없었고 부유 집안에서는 언문(한글)를 배웠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이었다.
1765년 영국인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을 효시로 산업계에 대혁신이 일어났다. 즉 기계동력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게 되어 단순 중노동은 감소하고 기술경노동은 발달하였다. 이로 인해 다양한 산업이 발생하였고 산업인구는 늘어났다. 방직공업의 발달로 여성의 직장 진출의 첫 거름이 되었다.
대량 생산으로 소비생활은 풍요해지고 지식이 발달하고 문화는 꽃피기 시작하여 현대사회의 여명기였다. 후대 사가들은 이것을 산업혁명이라고 하였다.
연이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산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산업인구도 비례 증가하였다. 기술 노동에서 시작된 지식은 대중계몽시대를 거쳐 민권운동으로 발전하여 해방운동으로 진전하였다. 1776년 미국의 민권국가 독립이 계기가 되어 1789년 프랑스 혁명과 인권선언으로 서구에서는 삼권분립의 의회정치와 민주주의 제도가 확립되었다.
서구 국가들도 우리 나라와 유사한 봉건 신분 국가로서 여성의 신분도 비슷하였다. 경공업의 발전으로 여성의 취업인구도 증가하였지만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감금 노동 등 여성학대 시대도 있었고 애화(哀話)도 줄을 이었다. 우리 나라도 일제 때와 해방 후에도 이러한 시대가 있었다.
당시 우리 나라는 산업혁명 이후의 세계변화에는 아랑곳없이 나라의 문을 굳게 닫고 봉건의 꿈에 잠겨있었다. 임진왜란 때(1592-98)는 한 걸음 앞선 일본 조총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고, 결국 앞서 나라의 문을 연 일본에게 먹히고 말았다(1910,8,22).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유림선비들은 성리학에 도취되어 있었다. 성리학 정치철학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 때문에 윤리 질서만 잘 세워서 깨우쳐주면 태평천하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정다산과 박연암과 같은 실학파들의 주장은 뒤로 밀려났고 삼강오륜은 이렇쿵 저러쿵 하면서 가지를 만들어 나갔다. 칠거지악이나 삼종지도 그런 것이었다. 이러한 윤리 쪼가리를 빌미로 정치싸움을 일삼으면서 백성들이 먹고사는 생업은 등한시하였으며 상업은 반윤리적인 직업이라고 하여 천시하고 억제하였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지' 속담처럼 본말이 전도된 정책으로 굶주린 백성들이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말았다(1894 갑오개혁).
이로서 여성과 천민이 신분에서 해방되어 사회적 평등권을 갖게 된 것은 가장 괄목할 점이었다.
19세기에서 일어난 여성운동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하여 남녀평등 운동은 급속히 발전하여 유엔헌장이 성차별의 철폐를 규정하였고, 1970년대 미국의 프리텐스 여사가 주도한 여성해방운동은 세계적으로 파급되어 우리 나라도 오늘날과 같은 남녀 평등권 제도가 확립되었다.
20세기 말 컴퓨터의 등장으로 정보산업이 발달하여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즉 정보가 가치를 생산하는 산업사회가 된 것이다. 이를 정보혁명이라고 한다. 3차 산업 발생이래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집무 노동은 단말기 앞에서 손가락 노동으로 자동 처리되는 시대가 되었다.
노동시간도 단축되어 여성에게는 제격이었고, 남성의 능력을 능가하고 있다. 이러한 직업 여건으로 여성의 직장진출은 눈부시게 늘어나 여성 없는 직종과 직장은 없게 되었다.
남성 독무대인 군대, 경찰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사장, 국회의원, 장관, 교수 자리에서도 남성 못지 않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명실공히 남녀평등의 사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여성 천하가 된 것은 아니고 권리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가축은 권리도 없거니와 책임도 없다. 과거의 노예나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를 탄 사람은 비행 속도를 감지 못한다. 백년 전 양반이 무덤에서 깨어나 오늘날의 세상을 본다면 도깨비 세상이 되었다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무덤으로 되돌아 갈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초등학교 운동회 날, 다 큰 여아가 아랫도리를 벗고 뛰는 장면을 보고 망측한 것을 보았다면서 돌아간 갓 쓴 노인이 있었다. 6.25때 출전하는 전투부대 앞을 횡단하는 어린 처녀를 재수가 없다고 쏘아 죽인 사실도 있었다. 오늘날도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는 여성에 대한 많은 잔류가 흐르고 있다.
세월이 평원의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던 봉건사회에서는 조손 간이 한 자리에 앉아 공자왈 맹자왈 해도 이질감을 느끼지 안 했다. 60년 전이나 후나 똑같은 변함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아들과 컴맹인 엄마사이에는 동문서답이 오가는 세대가 되었다. 사회의 변화속도가 빨라지고 고령화가 늘어나면서 세대간 차는 짧아지고 세대 층은 늘어나 다양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문화 발전의 불가피한 진통이며 사회발전도 강물처럼 역류하지는 않는다. 고령세대는 옛 것을 가다듬고 새것을 조리 있게 배워 젊은 세대와 대화의 길을 열어 지식의 교류로 세대차도 좁히고 두뇌건강 운동도 해야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오늘도 살아있는 말이다.
내 어릴 때만 해도 검소 절약은 미덕이라고 귀아프게 교육받았지만 지금은 소비미덕의 시대가 되었다. 옛날에는 생산이 부족하여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생산이 소비를 넘어서게 되었는데도 풍요 속에서 굶주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심각한 현상을 경제공황이라고 한다. 물건이 안 팔리면 공장 문을 닫게되고 그러면 실업자가 생긴다는 경제법칙이다.
1929년 세계 공황 때 생우유가 하수도를 부옇게 흘러내리는 옆자리에서 셋방살이에서 쫓겨난 메마른 실업자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도 있었다.
요즘 세계는 어느 나라 없이 만성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나라도 소비 촉진을 위한 정책과 기업의 궁여지책으로 구매카드를 발행하게 되었다.
소비욕망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손쉽게 얻은 빚으로 유행에 뒤진 소외감에서 먹고 보자, 입고 보자, 쓰고 보자는 막가파식 충동생활로 신용불량자가 360만이 넘는다고 하니 여성만의 책임은 아닐지라도 해방된 여성의 첫 얼굴이 한심스럽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청소년의 앞 뒤 없는 충동생활로 범죄와 윤락의 길로 가는 것이다.
한편 같은 시대 여성이면서도 불우 이웃 돕기,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층이 늘어나 짙은 안개 속에 아침 태양처럼 떠오르고 있다. 내 불우에서 이웃 불우를 헤아리고 내 소비욕망을 억제하여 남의 궁핍을 메워주고 남의 오물을 내 것처럼 보살피는 개미군단이다. 그 실효가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사회윤리의 아름다운 새싹이 되어있다.
자원봉사는 강자가 약자를 돕는 우러난 윤리지만 삼강오륜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은 약자가 강자를 섬기는 강요당한 윤리였다. 충신 열녀라는 덕목은 이젠 윤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다.
효는 가정 윤리의 으뜸 덕목으로 숨결이 남아있지만 현대 청소년들은 효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으며 조석의 예절과 말 대접 정도로만 알고 있다. 효는 엄마가 바쁘고 아플 때 엄마를 돕는 일이라 하면 쉽게 알아들을 것이다. 누구나 선생과 상사와 같이 생활하는 장소에서는 만나면 목례를 한다. 그 정도의 예절 습관이면 족하고 현실성 없는 예절은 거리감만 만들뿐이다.
가정이 따로 있고 사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효와 봉사는 표리관계이다. 가사 분업은 사회적 훈련이며 자녀들을 돼지통 절약으로 가정 사회 할 것 없이 불우이웃에 눈을 돌리게 해야한다. 소년소녀 가장은 대표적인 윤리이며 사회의 동정 어린 눈결이 모여지는 것은 엄동설한에 꽃봉오리처럼 아름답다.
요즘 성공의 꿈을 안고 선진국으로 이민 가는 붐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실패한 사람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그곳인들 3D가 없는 낙원도 아니고 뉴욕이라고 개척할 거리가 없는 완벽한 곳도 아닐 게다. 내 생각으로는 실패의 원인은 개척정신의 상실과 3D가 기피가 아닐까 한다.
현재의 호적법과 관행에 따라 시집 온 여성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아버님, 어머님, 언니, 아우라고 호칭해야하는 정 없는 윤리, 말과 생활의 이질감은 외국인 대하기만큼이나 어색할 것이다. 정 없는 윤리 생활은 고통스럽기만 해서 기피생활도 일어나고 있지만 기피생활의 끝은 고독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요새 젊은 세대들은 시집 장가 간 후도 엄마, 아빠라는 유아용어를 쓰고 있다. 말을 바꾸는 어색감도 있지만 친밀감을 이어가고 싶은 심정일 게다. 장인 장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 호칭하고 남편을 오빠, 아빠라 애칭하는 것도 정감의 표현이다. 모르기는 하지만 사전에도 그 뜻이 부가될 것 같다. 한편 내 자기를 사랑해요, 내 엄마를 사랑해요, 밥먹듯이 하는 말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
그들은 강도 높은 범행은 할지라도 허례와 위선은 싫어한다. 가까운 환경에서 배운 것이다. 청소부를 미화원이라 하고 사로협상을 노사협상이라 해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 엄마, 어머니, 어머님 하여도 말의 색깔도 잘 알고 있다.
정은 우러나오는 것이라 하지만 개척의 산물이다. 모정은 정의 으뜸이라고 한다. 하나의 생명체가 태동할 때 생사가 자신에게 매인 연민의 정으로 4반세기 동안 표정의 교감, 대화의 교정으로 성장을 살피면서 노심초사 개척한 것이 모정(母情)이다. 그 여정은 꺼질 줄 몰라 아들의 지게등에 업혀 심심산골 고려장 터로 가면서도 아들의 돌아갈 길이 걱정되어 곳곳에 솔잎을 뿌렸다는 고담은 전설 아닌 실화인 것 같다. 노래도 여음이 더 아름답다.
우리가 TV에서 보고 듣는 성공담의 주인공인 외국입양아들은 6.25때 피도 안 마른 갈데 없는 빨가숭이를 낯설고 말 선 외국인이 키운 고아들이다. 남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만족감은 당사자 아니면 모를 신의 경지일 것이다.
자연개척은 그만하여도 낙원이 되었지만 인정의 황무지는 늘어나고 있다. 아파트 이웃이 언제 죽었는지 이웃 달동네 신음소리도 아랑곳없는 인정의 사막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황사가 바람을 타고 우리 집에도 날라 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연 개척의 고생은 남성이 했지만 인정 개척은 정 많은 여성의 몫일 것 같다.
군주전제 정치가 막을 내린 지는 오래였고, 남성전제 정치도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 남성의 범행정치를 질책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반면 거울삼아 천성의 보완관계로 남녀공화정치가 이뤄져야하며 여성의 정치적 각성이 급선무다.
이젠 여성이 국민의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 동영상, 언론매체의 편집인, 프로듀서, 기자, 아나운서, 앵커우먼으로 남성을 능가하는 공신력을 발휘하고 있다. 공평성과 공인으로서의 품위를 기대해본다.
여성의 최대관심사는 자녀교육문제이다. 이 때문에 강남 집 값이 올라 정부는 골치를 앓고 있으며 학부모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허덕이고 학교는 사이버대학이니 자립고니 무엇이니 하면서 난무하고 교육정책도 한 해가 다르게 달라가고 있다.
학부모들은 교육 전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자녀의 소질과는 먼 꿈으로 명문대학 인기 학과를 찾아 우왕자왕 하고 있다.
서구의 어느 나라는 유치원 보모나 초등학교 교사에 대학교수 이상의 자격자를 선발한다고 한다. 소질의 조기 발견과 적기 교육의 유효성 때문이다. 우리 나라도 초등학제를 나누어 이러한 학제를 실시하면 좋겠지만 막대한 교육비로 불가능한 꿈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담임교사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작하여 소질에 따른 교육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첫 과제다. 금년 초등학교 교사자격시험에 여성이 압도적 다수로 합격했다고 하니 교육의 장래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여성은 천성적인 적격자이기 때문이다.
사교육은 자녀의 공교육을 보완한다는 학부모의 뜻이겠지만 같은 교재라도 교사의 가르치는 방법이 다를 수가 많다. 아직 사고력이 없는 때라 어린이들은 소화를 못 시킨 체 몸만 왔다갔다하는 메너리즘(타성)에 빠질 수도 있고 학문에 대한 염증도 일어날 수도 있다. 더구나 어릴 때 선행학습은 백해무익(百害無益) 할뿐이다. 반복 복습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요즘 애들은 학원에 못 다니면 행사에 빠진 소외감도 있어 단독 복습도 어렵게 되어있다.
현행 교육제도는 초중학교 기초지식을 저변(底邊)으로 대학 전문지식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밋식 교육체계로 되어있으며 연령, 지능의 평균치로 공교육의 수준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는 평균치보다 우수할 수도 있고 열등할 수도 있다.
강남지역은 교육의 표본 장으로 여러 가지 논쟁이 일어나고 있으나 우수생과 열등생을 나누는 학제도 바람직하나 교육비와 학부모의 저항으로 만만치 않은 난제로 계속될 것 같다.
암기력은 기초지식의 바탕으로 학문에 빼놓을 수 없는 지능이다. 그 한계는 있지만 이 지능이 꽃피는 시기에는 암기주입식교육으로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해야하며 이 시기를 놓지면 안 된다.
5살 난 아이가 천자문을 달달 외어 신동 났다는 대서특필의 기사를 본적이 있고 그 후문은 모르지만 내 학창시절만 해도 이러한 수재는 진학과 취직의 우위를 차지하였다.
문자가 없었던 선사시대의 역사전승의 유일한 방법은 기억력이었다. 기억력이 탁월한 사람은 지도자도 되고 존경도 받았다. 얼마 전만 해도 기억력 학문은 학계를 지배했고 또한 탁월한 기억력은 언어학의 소질로서 세계화시대에 언어의 중요성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인간두뇌보다 작은 용량의 컴퓨터는 기억력의 신동으로 자동도하며 데이터망을 통해 무수한 정보와 소재를 방출하는 시대가 되어 인간은 기억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최소한의 기억력으로 손쉽게 얻은 지식을 고동지식과 전문지식을 육성 함양하는 데 시간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학문의 방법도 달라져가고 있으며 학문은 기억력→사고력→직관→상상력으로 뉴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과학자도 나올 것 같다.
지구촌이란 실감나는 말이다. 교통은 일일권(一日圈)이 되었고, 정보통신은 이웃마을처럼 되었다. 옛날에는 보따리 정보를 메고 다니던 식객의 정보전달과 이웃 마을 소식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정보의 홍수시대가 되었다.
정보가 희소한 시대도 고승들은 귀를 막고 눈을 감아 생각을 가다듬었다. 정보는 생활의 필수 조건이지만 정보의 범람과 백가쟁명(百家爭鳴)은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게도 한다.
정보는 유행과 모방도 만들어 내고 연령에 따라 유해한 정보도 있다. 분별력이 약한 청소년에겐 범죄와 타락을 부여하는 동기도 되고 정신 질환의 원인도 된다. 한 젊은이의 강도 높은 범행 동기가 '신문에 내 이름이 대서특필되는 것을 보고싶었다'고 하였다. 이름을 내고 싶은 시대상이라 고층 소녀투신 자살도 이런 것이었고 나의 이 글도 그런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을 학문의 길로 인도할 수밖에 방도가 없다. 누구나 천성적인 소질(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체능이나 지능이나 소질에 맞으면 흥미 있게 공부를 한다.
학부모들은 학문의 유행을 쫓는 욕심을 버리고 자녀의 소질의 길을 개척해주어야 한다. 요즘 청소년들의 정신질환이 늘고 범행의 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길 잃은 젊은이들의 슬픈 작품이다.
이조 때 과거 급제가 출세의 유일한 길이었고, 해방 후도 고등고시가 출세의 등용문이었지만 사회가 천시했던 광대패거리가 연예인 스포츠맨으로 국제사회에서까지 명성을 날리는 시대가 되었다. 내 어릴 때만해도 치과는 인기 없는 학문이었다. 직업의 인기는 사회의 변천에 따라 변화한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어릴 때는 엄마가 하는 것을 보고 위험한 짓도 한다. 하지만 호기심과 모방은 정신 성장의 주요한 단계다. 어린아이의 가장 가까운 환경은 엄마다. 감수성이 강한 때의 아이들은 엄마를 닮아간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이란 교육고사가 있지만 지금 모성들은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자신의 언행을 삼천(三遷)해 볼만도 하다. 자식의 앞 뒤 없는 낭비벽을 고치기 위해 사업실패를 구실 삼아 셋방살이 생활로 버릇을 고쳤다는 실화도 있었다.
만리장성은 남성의 육체적 노동으로 쌓아올린 유적이지만 백 층, 2백 층의 마천루는 두뇌노동으로 여성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지능은 남녀가 평등하고 체력은 남성이 강하고 정은 여성의 자질인 것 같다.
요즘 여성들은 경제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얼마 전에 21세기형 경제라는 주제로 경제학을 연구하고 현장 답사와 모범 실천을 하는 여성단체가 생겨났다. 그들의 주장은 나눔의 경제였고, 단원들은 평범한 주부들이었다. 명칭은 언니 경제연구회이고, 약칭은 '언경연'이라 하여 '전경련'을 연상케 하는 아이러니한 이름이었다.
가정부는 단골인 그 가정의 형편의 대충은 알고 있다. 근로자들도 평생직장인 그 기업의 사정을 모를 리가 없다. 몸담은 기업이 망하면 자신도 망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기업가들은 근시안적인 욕망으로 티끌 모아 태산 된다고 저임금, 근로시간 연장, 해고 등으로 기업이윤을 챙기고 있으며 주가조작으로 개미군단의 피를 빠는 짓도 한다. 대국적인 견지에서는 소비위축으로 그 기업도 망하게 된다는 것이 경제법칙이다.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삼각형의 한 변은 두 변보다 짧다는 이론적인 설명을 못해도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닌다. 문화의 토양인 경제학은 어려운 학문이라고 하지만 학문의 숲속에서 길을 잃는 것보다 직관이 더 정확한 판일 수도 있다. 해방 후부터 발생한 정경유착의 바이러스는 잠복기를 지내서야 발병하므로 그 치유를 두고 백성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일차세계대전 때는 전승국이 패전국에 대한 재기불능의 경제봉쇄정책으로 제이차세계대전이 유발되었다. 정책의 오류를 알게된 연합국은 경제부흥정책으로 패전국을 도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연합국, 독일, 일본의 공조관계의 모습이다. 이젠 무력이나 정치권력이나 재력이나 완력이 나라와 백성 약자를 굴복시키는 시대는 지나갔고 찬물 한 그릇이라도 나눔의 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것이 인간 사회 뿐만이 아니라 생태계의 질서이기도 하다.
21세기는 모정의 시대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이들은 여성노예시대의 유습에서 자라났고 3세대와 같이 생활하면서 구세대를 호흡하였고 자녀대를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 중견주부들이다. 고생도 많았고 고민도 있고 꿈도 크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은 평범한 주부 개미군단이며 사회개혁의 주동세력이 되어있다.
이들의 최대고민의 하나는 자녀의 결혼 문제다. 청소년시대는 지능이 발달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이성에 대한 감성이 싹트는 때이기도 하다. 배움의 흥미와 길 잃은 이들은 이성에 눈을 돌려 위험한 불장난도 한다.
옛날에는 문벌위주의 조혼이었지만 오늘날은 학벌위주의 결혼으로 만혼도 늘어나고 국제결혼도 일어나고 있다. 결혼은 사회발전의 주요한 변수가 되어있으며 여성의 결혼, 출산기피로 우리 나라는 고령화시대로 치닫고 있다.
고학력, 고소득 여성일수록 이혼율이 높아 손꼽는 이혼 국이 되어있다. 그들은 남성연하 결혼도 원하고 있으며 이혼사유는 첫째, 내 위주의 생활, 둘째, 남성의 가부장적 작태, 셋째, 성격차이로 되어있다. 옛날에는 남편이 아내를 쫓아내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내가 남편을 쫓아내는 삼거지악(三去之惡)이 싹트고 있어 윤회인지 업보인지 모를 일이다. 이들은 여성 성장기에 열매를 맺지 못한 도장된 가지들이다.
한편 쓸모 없게 된 남성약혼자를 십 수년 동안이나 기다려 결혼한 망부석 같은 현직 장관여성도 있고 추락한 남성과 결혼하여 재기시킨 현직 여성 프로듀서도 있으며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약혼 남을 평생수발하고 있는 여성도 있다.
고학력, 고소득의 젊은 여성들은 에고이즘을 버리고 훌륭한 언니들을 본받아 시대적 책임을 깨달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장된 가지로 버림을 받게 된다.
우리 선산 김씨 만송공 집안은 당내(팔촌이내)가 이 백 명이나 되는 보기 드문 혈연 집안이다. 이곳에 갓 시집 온 젊은 여성들은 친정에서 수련된 참신한 안목으로 보면 황무지나 남성의 유습(遺習)이 더 잘 보일 것이며 개척할 감도 느낄 것이다.
친정보다 몇 배나 긴 세월을 자녀와 손녀로부터 팔순잔치, 육순, 혼례의 초대를 받고 집안간의 화목의 고리로 존경을 받으며 지내는 세월이 될 것이며 후손들의 흠모의 제례도 있을 곳이다.
이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남존여비의 사상도 무덤으로 사라졌고 이곳에 먼저 온 언니들을 본받아 천성후성으로 반은 공신력으로 평생 직장인 만송공 집안을 빛내주기를 바란다.
막상 이 글을 써놓고 보니 횡설수설한 것 같기도 하고 용두사미 같기도 하다. 이해 있기를 바라고 일독(一讀)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며 토론, 질문, 힐난은 나의 깨우침이 되겠다.
첫댓글항시 존경하는 할아버지, 너무나 감사합니다. 현실에 바쁘다는 핑게하에, 모든것을 잊은듯 생각없이 살아가고있는 저에게 깨우침을 주시는 고귀한 글이 되었습니다. 우선 한번읽고 감사의말씀 전합니다. 두고 두고 많이읽어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건강 오래 오래 하세요. 한삼이
첫댓글 항시 존경하는 할아버지, 너무나 감사합니다. 현실에 바쁘다는 핑게하에, 모든것을 잊은듯 생각없이 살아가고있는 저에게 깨우침을 주시는 고귀한 글이 되었습니다. 우선 한번읽고 감사의말씀 전합니다. 두고 두고 많이읽어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건강 오래 오래 하세요. 한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