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 논설위원 칼럼] 로스쿨 소비자 관점서 보자
[경제, 사설/칼럼] 2003년 08월 11일 (월) 12:27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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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경제학자인 필자로서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접할 때마다 공허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논의의 핵심에 있어야 할 소비자의 이익 대신에 고시생의자격제한이라는 공급자의 이익 보호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제도는 따지고 보면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에게만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주겠다는 아이디어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고시에 청춘을 낭비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소비자들의 이익과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간과되고 있다.
법률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의 고시제도는 진입제한이다. 금난전권(禁亂廛權)을 가지고 있던 조선시대의 시전(市廛)상인들이나 중세 유럽의 길드상인들처럼 경쟁자의 수를 자기들 원하는 대로 정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판사, 검사의 업무량이 폭주한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새로운 인력의 충원은 최소한에 그쳤던 것이다. 외국으로부터 법률시장 개방의 압력이 들어오고서야 마지못해 고시합격정원을 조금씩이나마 늘리게 됐다.
고시의 정원이 그렇게 조금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그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시민단체, 기업, 관공서에서도 이제는 쉽게 사시합격자를 구할 수 있다. 심지어는 TV에 나오는 변호사들까지도 눈에 띄게 늘었다. 사시합격자들의 특권이 줄어든 만큼 소비자들은 쉽게 사시합격자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법률교육의 형태를 로스쿨로 할 것인지, 아닌지는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제안돼 있는 것처럼 로스쿨을 졸업하는 사람에게만 시험자격을 준다면, 사법시험 응시자 수는 분명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고시합격이 인생역전을 의미하는 한, 지금의 고시생과 거의 같은 수의 젊은이들이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밤을 새울 것이기 때문에 결국 고시에 수많은 젊음이 바쳐지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로스쿨이든 아니든 고시합격 후 경쟁이 없다면 소비자들의 이익은 기대하기힘들다.
개혁의 초점은 사법시험 응시자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합격자수의 제한을 폐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법시험의 역할은 변호사가 될 최소한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자를 걸러내는 정도면 충분하다. 어떤 변호사가 능력 있는 변호사인지는 시험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현 제도 하에서도 사시합격자를 매년 5000명 또는 1만명 정도로 늘린다면 굳이 로스쿨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면 변호사들의 자질이 떨어져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손해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시점수 또는 지능지수 순으로 놓고 보면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변호사의 실력은 지능지수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변호사라도, 또는 아무리 시험성적이 좋았던 변호사라도 합격 후에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머리에 녹이 슨다. 게다가 얼마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가.
새로운 사건들이 터졌을 때 거기에 적합한 법적 논리를 개발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 고시만 합격하고 나면 앞날이보장되는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편히 지내고 싶어 한다. 그런 인간으로 하여금 열심히 공부하게 만드는 것은 경쟁의 압력이다. 법조인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고객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게 될 때, 변호사는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판결을 잘못 내리면 법관의 자리를잃게 될 때 법관도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할 것이다.
기업에서도 모든 사원들이 사장이 되기 위해 고시공부 못지않게 노력을한다. 그리고 그 중 극히 일부만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사장이 된다고 해서 앞날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언제든지 사장 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장이 된 뒤에도 계속 노력을 하고, 그 덕분에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떤 것도 보장받을 수 없을때 비로소 소비자들은 좋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