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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초고] 누가 '배고픈 사람'인가 ㅡ도시정비 개발이익을 재정착의 재원으로 돌리자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8월 6일 서울시청에서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시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발언들이 뜨거웠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금 부담으로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은 노령층들은 원치 않게 [집을 팔도록] 내몰릴 것"이라며, 정부 대책이 "집값은 잡지도 못하면서 전월세만 올려놓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지엽 성균관대 교수는 "국가가 주택정책을 할 때는 배고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현 정책은 배 아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준용 서울시정비사업연합회장은 "평생 집 한 채 가지고 세 받아 연명하거나 노후를 보내는 어르신들에게 보유세를 폭탄처럼 내라 하고 팔라고 강요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국가 폭력'에 가깝다"고 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고령자에 대한 배려 없이 가액과 실거주만으로 옥죄는 것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감정평가사 조정흔은 이들이 한결같이 노령층을 '배고픈 사람', '국가폭력 피해자', '보유세 폭탄 피해자'로 지칭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 가운데 들을 만한 것이 없지는 않다. 가령 현금흐름이 없는 노령층에 대한 우려는 정당하다. 필자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보유세의 과세이연을 주장해왔다.
실거주 1주택자는 팔거나 물려줄 때 정산하면 된다. 살고 있는 동안에는 미실현 가치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집이 지가 상승으로 금융담보능력을 키워준 것은 이미 누린 혜택이니, 권리가 변동하는 시점에 청산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러니 저 우려에 대한 답은 보유세 완화가 아니라 납부 시점의 조정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세금은 미뤄줄 수 있어도 철거는 미뤄주지 않는다.
같은 날, 다른 곳에서 헐리는 집
조정흔 평가사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동산 분쟁 현장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을 적었다.
"평생을 식당에서 일하며 저축한 돈으로 다가구주택을 지어 소소한 월세를 받으며 생활하시는 할머니, 상가주택 일부에서 프레스 등 공작기계를 놓고 부품공장을 운영하시던 중년 사장님, 수십 년간 동네 아이들이 거쳐간 동네의 명물 오래된 유치원을 운영하시던 원장님, 평생 터 잡고 샷시공장을 운영하시던 사장님, 택시운전으로 돈을 모아 집 한 칸 마련하신 할아버지, 이미 70대가 된 네 자녀를 키우고 평생을 살아오신 95세 할머니가 사시는 단독주택."
즉 재개발·재건축·소규모정비사업 구역의 강제이주 현금청산자들이다.
그는 이들이 "위에서 지칭하고 있는 돈 없는 50억 아파트 소유자분들보다 자산과 소득 모두 열악한데 훨씬 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이 터전을 잃어야 하는 분들"이라고 썼다.
정비사업 조합 설립 동의요건은 70~75%다. 나머지 25~30%가 반대해도 사업은 진행된다. 그것도 조합원이 될 수 있는데 스스로 포기한 소유자의 숫자만 그렇고, 그 뒤에는 두세 배의 임차 가구가 아무 선택권 없이 서 있다. 소규모 공장과 점포와 사업체도 함께다.
조정흔평가사가 예를 든 강북의 한 재개발구역은 1800세대 아파트를 지으려 한다. 구역에는 소유자 500세대와 임차 1300여 세대가 있고, 거주 인구 5200여 명 중 임차인이 3700여 명으로 70%다. 소유자 500세대 중 150명이 반대해도 350명이 찬성하면 사업이 간다. 5200명의 강제이주 여부를 150명이 결정하는 셈이다.그 150명 중에도 단계를 넘어가며 탈락하거나, 내용을 잘 모른 채 도장을 찍는 노인이 많다고 그는 적었다.
헌법재판소는 공공복리를 위한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재건축 불참자의 소유권에 대한 매도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기본권의 과도한 침해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 공공복리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뒤에서 따지기로 하자.
대통령이 주재한 7월23일 토론회에서 서울 은평구의 50년 된 주택에 35년째 산다는 주민이 말했다. 공급을 늘리려면 기존 주택을 허물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이 생기는데, 통계에 따르면 재개발 이후 원주민 재정착률이 27%라는 것이다. 열에 일곱 이상이 사업이 끝나면 그 동네를 떠난다. 그는 재개발이 절대 악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세 가지를 요청했다. 주민 반대로 무산된 사업의 재신청 제한,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의 관리·감독 강화, 그리고 충분히 쓸 수 있는 주택까지 허무는 제도의 시정이다. 그가 사는 동네에서는 3년이 안 되는 기간에 같은 소규모 재개발이 세 번이나 추진되고 있다고 했다.
50억 아파트 소유자에게는 목청 좋은 스피커가 있다. 95세 할머니에게는 없다. 조정흔 평가사가 우연히 찾아낸 것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쫓겨난 80대 할머니의 손자가 국민신문고에 올린 호소문이었고, 현장에 갔을 때 그 벽돌집은 이미 허물어진 뒤였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70% 찬성 다수결로 평생 살던 집에서 날짜를 정해놓고 강제로 내쫓는 방식의 정비사업이 얼마나 폭력적인 방식의 주택공급방식인가? 그런데 이런 정비사업을 적극 찬양하는 분들이 50억 아파트 소유자 어르신들을 걱정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니 다시 묻자. 누가 배고픈 사람인가.
왜 부수는가 — 돈이 남아서다
정비사업은 공급정책이라 불린다. 그러나 실제로 사업을 굴리는 힘은 다른 데 있다. 지금 이 땅이 낳는 지대와, 다시 지었을 때 낳을 지대의 차이다. 그 차액이 클수록 부수는 힘이 세고, 차액이 없으면 아무도 부수지 않는다. 공급이 모자라서 짓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 있어서 짓는다.
시장 본인의 말이 그것을 확인해준다. 오세훈 시장은 "정부가 정비사업을 통한 신규 주택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불안감이 형성되고 있다며 도심 내 공급 활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어서 지어야 한다는 논리다.
조정흔 평가사는 이 구조를 정확히 짚었다.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정책은 공급정책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수요촉진 정책이라는 것이다. 즉, "집만 있고 돈은 없는 집주인에게 이주비 대출을 풀어 내보낸다. 신규 분양자에게 저리 고액 대출을 열어주고,
잔금대출을 규제에서 빼주면서 집 사서 돈 벌게 해주겠다고 유혹한다."
즉 없는 수요를 만들어내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사람들은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서 아파트를 사는데, 아파트가 부족해서 가격이 오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차액은 어디서 오는가. 용적률이다. 그리고 용적률은 땅 주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경로는 셋이다.
첫째, 여러 필지가 하나로 합쳐지면 필지와 필지 사이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그 경계선에 걸려 있던 높이 제한도 함께 사라진다.
둘째, 골목길이 폐도되어 사업구역에 편입되면 같은 일이 한 번 더 일어난다. 공공의 땅이 사업지의 살이 되면서 제약이 하나 더 없어진다.
셋째, 아파트 동과 동 사이 거리 기준이 완화되면서 같은 땅에 더 많은 연면적이 들어선다. 판상형 시절의 인동간격 기준이 탑상형으로 오면서 크게 느슨해졌다.
참고로 도로 폭을 기준으로 건물 높이를 제한하던 도로사선제한은 2015년 5월에 폐지됐다. 건축법 제60조 제3항이 삭제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규제개혁과 투자 유발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한 도시설계 연구는 그 폐지가 면밀한 학술적 검토 없이 경기 활성화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음을 공적 서류로 확인했고 모든 시뮬레이션에서 연면적이 늘어나는 결과를 보고했다. 개별 사업지에서 은밀히 벌어지던 일이 아예 법 개정으로 전국의 도로변 필지에 일괄 배포된 셈이다.
기반시설을 독점적으로 당겨 쓰는 일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제약 없는 고밀 개발은 기반시설을 독점적으로 쓰겠다는 뜻이다.
지난 30년간 지하철이 놓이고 학교가 서고 상하수도와 공원이 갖춰졌다. 그 편익은 지금 도시 전체의 연면적이 평균적으로 나눠 쓰고 있다. 그런데 특정 구역만 용적률을 두 배로 올리면, 그 구역이 그 편익을 시혜적으로 더 많이 당겨 쓰는 것이 된다. 낮은 밀도를 전제로 깔아둔 관과 길과 교실에 갑자기 두 배의 인구가 얹히는 것이다. 서부개척시대에 말을 달려 땅을 차지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먼저 달린 사람이 임자다.
그렇다면 더 쓰는 만큼 더 내놓는 것이 상식이다. 고밀 개발에는 그에 상응하는 기반시설 확보가 따라야 한다는 것, 이것이 도시정비의 기본 철학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 하나 더 있다. 골목길이 폐도되면 오랫동안 익숙했던 동선 체계가 끊긴다. 걸어서 가로지르던 길이 막히고, 사람들은 담장을 빙 둘러 가야 한다. 도시 속에 카프카의 성이 하나씩 들어서는 것이다. 인사동을 걸을 때와 타워팰리스 앞을 지날 때의 차이가 그것이다. 도시다움은 공공공간과 사적공간이 만나는 접점에서 생기는데, 우리는 그 접점을 없애는 방식으로 도시를 정비하고 있다.
얼마나 내놓고 있나
숫자를 보면 분명해진다.
1990년대 초까지 시행된 서울의 도심재개발 지구들을 보면, 시행 전 공공용지율은 평균 11.8%였고 시행 후에는 26.8%였다. 사업자가 추가로 부담한 공공용지가 15%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주택개량재개발 지구들도 국공유지 비중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20~30%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재건축의 기부채납은 5~15% 수준이다. 그나마도 단지에 붙은 도로를 조금 넓히거나 쌈지공원을 만드는 정도여서, 생활권 차원의 개선은 없이 부담만 늘어난다. 잠실 규모의 단지 재건축은 도시 전체에 과부하를 주므로 적어도 자치구 도시기본계획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데, 실제로는 지구 경계선 안에서만 계산이 이뤄진다.
과거보다 훨씬 높은 밀도로 짓는데 내놓는 것은 절반이다. 그러니 남는 것이 많고, 남는 것이 많으니 계속 부순다.
그 남는 것은 어디로 가는가. 조정흔 평가사의 정리에 따르면 전체 분양수입 중 약 60%를 건설사가, 20%를 금융사가, 10%를 변호사·세무사·법무사·감정평가사·건축사·정비사업체·신탁사·분양대행사 등 관련 전문직이, 10%를 정부가 세금으로 걷어간다. 조합원은 일반분양가와의 10~20% 차이를 개발이익으로 가져가고 입주권 양도로 현금화한다. 모두 아파트값이 오를수록 이익을 보는 주체들이다. 그가 쓴 대로 "공급을 많이 할수록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헛소리다. (…) 이런 공급으로 가격이 안정되고 낮아지려면 이들 먹이사슬 중 누구 하나가 망해야 한다. 누가 망하겠나, 나머지는 모두 선수들인데." 경기가 나빠지면 손실은 조합원과 수분양자에게 떠넘겨진다.
개발이익 환수는 왜 늘 실패했나
환수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발부담금이 있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있고 임대주택 의무비율이 있고 기부채납 협상이 있다. 그런데도 환수는 늘 미래지대에 대한 기대가치의 상승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서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세금 내고도 남는다는 인식이 굳어졌고, 부동산 투자의 유효성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셋이다.
첫째, 미실현 가치는 환수하기 어렵다. 이익이 언제 발생했는지 그 시점을 정하는 기준부터 모호하다. 아직 팔지 않은 아파트의 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걷으려 하면 반드시 다툼이 생긴다.
둘째, 양도소득세 중과로 잡으려 하면 시장이 얼어붙는다. 거래가 막히면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집으로 옮겨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점진적이고 누진적인 보유세 상향을 주장해왔고, 그것을 기본지대라 이름 붙였다.
셋째, 너무 복잡하다. 장치가 넷 다섯 겹치니 사업자는 사업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행정은 정책 효과를 계측하지 못한다. 그 복잡함이 그대로 사회적 비용이 되고, 그 비용은 결국 분양가에 실린다.
그렇다면 방향은 분명하다. 돈으로 걷으려니 어려운 것이다. 땅으로 걷으면 된다.
땅은 미실현이니 실현이니 다툴 것이 없다. 등기부에 적히면 그것으로 끝이다. 시점을 정할 필요도 없다. 사업 인가 때 한 번에 정리된다. 그리고 한번 공공의 것이 되면 다음 세대까지 남는다.
원리의 선례도 있다. 2005년 건설교통부 지침의 '증가 연면적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25%' 조항은 겉으로는 미미해 보였지만, 토지지분이 공공에 귀속된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조치였고 행정 실무에서 오랫동안 유효하게 작동해왔다. 용적률 100%인 지구가 200%로 올라갈 경우 증가분의 25%는 대지면적 지분으로 환산하면 12.5%가 된다. 인허가를 받으며 이미 10%가량을 공공시설용지로 내놓았다면 합쳐서 22.5%다. 이 원리를 조금만 확장하면 다른 조세적 부담은 오히려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첫째, 모든 정비구역에 토지의 25% 기부채납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예외 없이 같은 비율이다. 협상도 없고 등급도 없다. 새로운 요구가 아니다. 앞서 보았듯 1990년대 초까지 서울의 도심재개발이 실제로 내놓은 공공용지율이 26.8%였다. 25%는 그보다 낮다. 우리가 이미 해봤던 수준으로 되돌아가자는 것뿐이다.
다만 한 가지가 다르다. 그때의 26.8%는 전부 도로와 공원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25% 가운데 10% 남짓만 기반시설로 쓰고, 나머지 15%는 공공이 대지지분으로 보유한다. 부담률은 과거 수준으로 되돌리되, 그중 일부의 용도를 바꾸는 것이다.
용적률 허용은 지금 방식 그대로 둔다. 사업자는 기반시설 용지를 제외한 대지 전체에 건물을 짓는다. 다만 75% 토지 위에 지어지는 연면적은 토지와 건물을 함께 분양하고, 15% 토지 위에 지어지는 연면적은 건물만 분양한다. 그 15%에 해당하는 주택은 단지 한쪽에 몰지 않고 무작위로 고루 분산 배치한다.
둘째, 그 15% 위의 주택은 현금청산자와 세입자의 재정착에 우선 배정한다.
이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지금 그들은 아무것도 없이 떠난다. 이 방식에서는 떠나지 않고도 그 자리에 남을 수 있는 값이 생긴다. 새 재원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원래 공공의 것이었던 골목길과, 공공이 만들어준 용적률이 재정착의 재원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증세도 아니고 예산 배정도 아니니 반대할 명분을 세우기 어렵다.
공급 방식은 둘 중에 고르면 된다. 하나는 토지임대 건물분양이다. 건물값만 내고 들어와 살면서 토지임대료를 매년 낸다.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세분양이다. 전세도 두 갈래로 설계할 수 있다. 2년마다 전세금을 올리는 통상적 방식과, 전세 액수는 고정해두고 이듬해부터 지대 상승분만 매년 추가로 내는 지대식 전세방식이다. 어느 쪽이든 토지의 소유는 공공에 남고, 입주자는 언제든 전매할 수 있다.
물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구역도 있을 것이다. 앞서 든 강북 사례로 계산하면 1800세대의 15%인 270세대 정도다. 현금청산자 150명은 넉넉히 담지만 임차 1300세대에는 못 미친다. 소형 평형을 더 많이 배치해 세대 수를 늘릴 수는 있지만, 그래도 수요를 다 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배정 순위를 법으로 정해야 한다. 거주 및 영업 기간이 길수록, 대체 주거를 구하기 어려울수록 앞선다. 넘치는 세대는 지역의 공공임대로 돌린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아무 몫도 없이 날짜만 통보받는 것과는 다르다.
임대아파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이 구조에서는 크게 줄어든다. 강남에서도 민간 전세 시장은 갈등을 거의 낳지 않는다. 전세 입주자 중에도 유주택자가 많고 연령층도 달라서다. 소유와 임대가 한 단지에 고루 섞이면 그 구분 자체가 흐려진다.
셋째, 그 15% 토지의 지대는 공공이 걷되, 균일가가 아니라 경제성장률을 반영해 3~5년마다 갱신한다.
지대는 실제 사용의 대가이므로 시장에서 형성되는 값을 따라가야 한다. 다만 매년 재산정하는 것은 행정 부담이 크니 3~5년마다 갱신하되, 그 사이에는 물가와 성장률에 연동해 자동 조정한다. 아예 고정해두면 시간이 갈수록 헐값이 되고, 결국 또 한 번의 사유화가 된다. 그리고 그 지대 수입은 생활권 기반시설 정비의 재원으로 다시 투입한다. 그 동네에서 걷어 그 동네에 돌려주는 구조다. 앞선 글에서 과세기준을 공시지가에서 공시지대로 옮기자고 한 것과 같은 원리다.
넷째, 다른 환수장치는 가급적 걷어내고 이 방식을 주된 수단으로 삼는다.
민간 분양분의 평형은 자율화하되 서민층 주거지역에서만 소형 비율의 최소한도를 둔다. 임대주택 의무비율도 따로 부과할 필요가 없다. 15% 범위에서 공공이 직접 하기 때문이다.
오해가 없어야 한다. 규제를 풀자는 것이 아니라, 규제보다 확실한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비율 규제는 노후도 기준이나 동의율 요건에 따라 빠져나갈 구멍이 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완화와 강화를 오간다. 그러나 토지지분은 등기부에 남는다. 되돌리려면 국가가 다시 사야 한다.
이렇게 하면 넷이 좋아진다. 환수가 간명해서 시비가 없고 집행하기 쉽다. 사업자도 예측이 명료해 사업이 막히지 않는다. 기반시설 정비와 그 재원 확보가 쉬워진다. 민간 분양분의 토지지분이 줄어드니 분양가가 낮아진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50년 뒤 다시 재건축할 때 같은 원리를 적용하면 공공 토지는 25%에 18.75%가 더해져 44%에 이른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공유부가 쌓인다. 스톡홀름이 20세기 초부터 토지를 사 모아 오늘의 주거 안정을 이룬 것과 같은 길이다. 우리는 그 반대로 국가가 강제수용한 땅을 민간에 팔아넘겨 왔다.
강제력에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앞서 미뤄둔 물음으로 돌아가자. 헌법재판소는 재건축 불참자의 소유권에 대한 매도청구권을 인정하면서 공공복리를 위한 필요성을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 공공복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비사업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의 대부분은 사유화된다. 공공복리를 명분으로 얻은 강제력이 사적 이익을 실현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95세 할머니의 집을 헐 수 있는 힘의 근거가 공공복리라면, 그 사업은 공공복리에 값하는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
그러므로 원칙은 이렇게 세워야 한다. 개발이익을 환수하지 않는 사업에는 매도청구권을 주지 않는다. 헌재의 판시를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전제조건을 채우라는 요구이므로 법리적으로도 방어된다. 그리고 이 원칙이 서면 무리한 구역지정이 스스로 줄어든다. 남는 것이 적은 사업은 애초에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의요건을 70%로 할 것이냐 80%로 할 것이냐를 두고 다투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근본적이다.
사업 주도권도 다시 생각할 때다. 영국과 독일에서 정비사업의 주도권은 조합이 아니라 관청과 의회에 있다. 이익을 나눠 가질 당사자들이 사업의 범위와 시기를 정하는 구조에서는 판단이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부수지 않는 길도 있다
모든 동네를 부술 필요는 없다. 낡은 동네의 실제 문제를 들여다보면 대개 몇 가지로 좁혀진다. 골목에 세워둔 차 때문에 소방차가 들어오지 못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걷지 못하며, 놀이와 교류의 공간이던 골목이 주차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만 고치면 된다. 몇 필지를 솎아내 공동주차장을 만들고, 그 위에 텃밭을 얹는 방식이 있다. 평균 필지가 150제곱미터인 골목에서 68호를 60호로 줄이고, 비워낸 30미터 곱하기 40미터의 자리에 60대 규모의 공동주차장과 호당 20제곱미터의 텃밭을 만드는 식이다. 여덟 집이 줄지만 예순 집의 삶이 달라진다.
물론 주차비는 차등을 둔다. 생계형 차량의 월 주차비는 감면한다. 그러면 골목에서 차가 빠지고, 소방도로가 열리고, 아이들이 걷고, 노인들이 앉을 자리가 생긴다.
여기 얹히는 도시농(農)은 덤이 아니다. 고용정책이자 노인복지정책이자 교육정책이자 보건정책이다. 고밀도시에서 텃밭은 채소를 얻는 곳이라기보다 사람이 만나는 무대다. 그리고 이런 일에는 도시계획 예산만이 아니라 복지·안전·교육·보건의 재정이 함께 들어갈 수 있다. 여러 부처의 돈이 한 골목에 모이면, 그 골목의 주거환경이 올라가고 세수가 늘어 다시 투자되는 선순환이 생긴다.
즉, 무형의 사회적 자산을 파괴하지 않고 마이너스 요인만 제거하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길이고, 고쳐가는 과정 자체가 참여자 모두에게 즐거울 수 있는 길이다.
부수는 것만이 정비가 아니다. 조정흔 평가사가 짚었듯 사라지는 동네에는 월세 30만 원, 50만 원, 전세 1~2억짜리 낡고 오래된 집들이 고루고루 많다. 번쩍이는 새 아파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주머니가 얇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꽤나 살 만한 집들이고, 새집을 지어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저렴한 주택이다. 단칸 셋방은 누군가의 첫 집이었고 상경한 사람의 정착지였다. 그 사회적 재고를 값으로 환산하지 않는 통계가 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지은 지 20~30년 넘은 건물이 60%만 넘으면 나머지 40%가 멀쩡해도 함께 헐 수 있게 되어 있으니, 지은 지 2~3년 된 새집까지 부지기수로 사라진다.
골목길은 누구의 것이었나
등기부에는 국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매일 그 길을 걸은 것은 세입자와 아이들과 배달하는 사람들이었다. 골목은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 사용의 공간이다. 그런데 그 공간이 사라지면서 생기는 값은 소유자와 사업자만 나눠 갖는다.
앞선 글에서 필자는 땅에서 나온 지대를 걷어 나누자는 뜻으로 '기본지대'를 말했다.
[민들레] 8·3 세제개편안에 '기본지대' 정책을 얹자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52
골목길에서 나온 값도 다르지 않다. 다만 땅의 지대는 매년 걷고, 골목의 값은 한 번에 걷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후손들이 대대로 누려야 할 도시공간의 공공적 가치를, 지금 이 시점의 재산가치 상승 욕구가 훼손할 권리는 없다.
지대를 환수하면 부술 이유가 줄어든다. 부술 이유가 줄면 사람이 남는다. 재정착률 27%는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서 나온 숫자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