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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초고] 삼림벌채를 멈추려면 ―서구형 영농방식을 다시 묻는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2026년 10월 9일
보고서가 말하지 않은 것
지난 8일 세계자연기금(WWF)이 내놓은 보고서의 숫자는 참혹하다. 1970년 이후 반세기 동안 지구의 척추 야생동물 개체수는 평균 73% 줄었다. 중남미는 95%, 아프리카는 80%가 사라졌다.
보고서 공동저자는 전 세계 삼림벌채의 90% 가까이가 농지 확장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분야가 재생에너지로 이미 '긍정적 티핑포인트'를 넘었듯, 이제 식량생산 방식이 다음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진단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어떤 농업이 숲을 베고 있는지, 무엇으로 바꿔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어제 민들레 기사에 실린 사진 한 장이 그 빈칸을 대신 말해준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91
2016년 브라질 마라냥 주의 광대한 벌채 현장이다. 마라냥은 아마존과 세라도(사바나림)가 만나는 곳, 대두 개척 전선의 한복판이다. 이 일대의 숲을 밀어내는 것은 논이 아니다. 소를 키울 목초지와, 그 소가 먹을 사료용 대두밭이다.
밀의 눈으로 본 농업사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 불렀다. 밀이 인간을 길들였고,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고되게 일하며 더 나쁜 식단을 얻었다는 것이다. 재치 있는 역발상이고, 일부는 맞다.
그가 본 농업은 밀과 목축의 농업이었다. 같은 밭에 해마다 밀을 심으면 지력이 떨어지고, 땅을 놀려야 하고, 결국 새 땅을 찾아 나서야 하는 농업이다. 새 땅은 대개 숲이다. 그 농업에 대한 진단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을 농업 전체로 일반화한 데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서구형 영농방식'은 지역이 아니라 바로 이 모델을 가리킨다. 밀·목축을 축으로 하여, 지력이 다하면 경계를 넓혀가는 건조지대의 농법이다. 오늘 아마존을 베는 주체가 브라질 농기업이라 해도, 그들이 따르는 것은 이 모델이다.
이 관념은 한 학자의 실수에 그치지 않는다. 농업이란 곧 숲을 베고 밭을 여는 일이라는 생각은 이미 우리 시대의 상식이 되었다.
지난 5월 '벼논 온실가스 2배' 보도가 벼농사를 기후위기의 주범처럼 그린 것도 같은 관념의 소산이었다. 관념이 잘못되면 처방도 어긋난다. 숲을 태우는 농법은 그대로 두고 숲을 지켜온 농법을 탓하게 된다. 본말전도(本末顚倒)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25
걸으며 본 밀의 땅
필자는 2022년 겨울,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길에서 유럽의 들판을 발로 지났다. 그때 일지에 적어둔 의문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그리스 볼로스 서북쪽 평원. 비탈이 아닌 평탄한 땅인데도 온통 밭농사였다. 사탕수수가 저절로 자랄 만큼 물기 많은 땅이었고, 벌레를 노린 새떼가 몰려들었다. 물이 고이는 땅이라면 물을 다루는 농사가 제격일 텐데 밭작물 일색이었다.
유럽의 밀농사 체계가 과연 지구촌의 모델이 될 수 있는가. 근본적인 의문은 그때 처음 들었다.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로 넘어가는 고갯길, 구릉지의 들판은 황량했다. 초목은 드물고 흙은 부실했다. 목축 탓인지 맨땅을 드러낸 곳이 많았다. 지하수를 퍼 올리는 관개농업이 오래되면 염분이 쌓이고, 땅은 힘을 잃고 사막이 된다. 메소포타미아가 걸어간 길이다. 물을 가두어 돌리는 논과, 땅속 물을 퍼 올려 증발시키는 관개는 같은 '물 농사'가 아니다.
오스트리아 다뉴브강 유역에서는 거꾸로 깨달은 것이 있다. 유럽 대륙은 오랜 세월 쌓인 퇴적 평야라 빗물이 땅속으로 잘 스민다. 골짜기 모양의 밭에도 수로를 따로 두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한반도는 화강암이 융기하며 풍화된 얇은 표토 위에 있다. 유럽식 구릉지 경작을 본뜬 북한의 농지가 큰비마다 흙을 잃는 까닭이다. 이 땅에서 밭을 일구려면 남해 다랭이논처럼 계단을 지어야 한다.
지난해 국토미래연구소 좌담에서 전통농법 연구가 안철환 선생도 같은 경고를 했다. 아일랜드와 뉴질랜드의 목장 경관은 아름답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올리브·밀 단작 지대, 미국과 중국의 끝없는 옥수수 평원도 기후위기를 겪고 나면 사막을 드러낼 곳으로 꼽았다. 목화 단작으로 아랄해를 말려버린 옛 소련이 그 결말을 이미 보여주었다.
세 장면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농법은 그 땅의 흙과 물에서 나와야 한다. 유럽의 밀농사는 유럽의 흙이 낳은 방식이다. 그것을 다른 흙, 다른 물의 땅에 그대로 옮기는 순간 재앙이 된다. 북한의 산이 그랬고, 지금 아마존이 그렇다.
같은 비, 다른 문명
고등학교 지리부도의 세계 강수량 분포도를 펼쳐 보자. 연 강수량 1,000mm가 넘는 짙은 파란 띠는 크게 세 곳에 있다. 인도 동부와 벵골, 중국 남부, 동남아시아, 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몬순 아시아. 아마존과 브라질 세라도. 그리고 콩고 분지를 중심으로 한 중부 아프리카다.
몬순 아시아는 이 비를 논에 가두어 사람으로 바꾸었다. 세계 쌀의 90% 가까이가 아시아에서 나고, 이 띠 위에 30억이 넘는 인구가 산다.
방글라데시는 1㎢당 1,000명이 넘는 밀도를, 자바는 그에 버금가는 밀도를 수천 년 농업으로 떠받쳐 왔다. 세계 곡물 수확면적 약 7억 3천만 헥타르 가운데 밀은 2억 2천만 헥타르로 30%, 쌀은 1억 6천만 헥타르 남짓으로 22%를 차지한다. 그런데 인류가 먹는 열량은 쌀이 20%, 밀이 19%로 엇비슷하다(FAO). 밀은 1.4배 가까운 땅을 쓰고도 사람을 덜 먹인다. 같은 땅에서 더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이 논이다. 목축과 견주면 그 차이는 수십 배로 벌어진다.
그런데 지금 숲이 가장 빨리 사라지는 곳이 바로 같은 파란 띠 위에 있다. 아마존과 콩고는 몬순 아시아와 같은 강수 등급이다. 그곳에서 이 비는 소와 수출용 대두로 바뀐다. 열대 삼림파괴의 41%가 목초지 조성, 12%가 대두 재배이고, 그 대두의 대부분은 가축 사료다.
이 농법은 어떻게 열대까지 건너갔는가. 물을 관리하지 않는 밀·목축의 땅은 쉽게 척박해진다. 늘어나는 인구를 제 땅으로 먹이지 못하자 유럽은 땅을 밖에서 구했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로 자기 농법을 들고 가 숲을 불태워 밭과 목초지를 열었다. 오늘 아마존의 벌채는 그 식민 농법의 연장선 위에 있다.
지도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기후는 논에 맞는데, 경작 체계는 강수량 500mm 안팎의 북미 대평원과 유럽의 것을 들여왔다. 지금의 삼림벌채는 건조지대의 농법을 습윤 열대에 이식한 결과다.
물이 땅을 살린다
열대의 흙은 생각보다 척박하다. 무성한 숲의 양분은 대부분 나무와 낙엽에 있고, 흙 자체는 비에 씻겨 가난하다. 숲을 태워 밭이나 목초지를 만들면 재가 준 양분은 몇 해 만에 바닥난다. 그러면 다음 숲으로 옮겨 간다. 개척지형 농업이 숲의 경계를 끝없이 밀고 나가는 까닭이다.
논은 다르다. 물이 상류의 양분을 실어 오고, 물에 잠긴 흙은 산도가 중성 쪽으로 맞춰지며, 논물 속 남조류가 공기 중 질소를 붙잡는다. 물이 땅을 대신 기름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논에서 해마다 벼를 거두어도 수확이 줄지 않는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농업의 인볼루션》에서 자바의 논(사와)과 외곽 섬의 화전을 대비했다. 화전은 땅을 소모하며 옮겨 다니지만, 논은 인구가 늘어도 노동을 더 들이면 그만큼을 품어내는 안정된 생태계라는 것이다.
1909년 동아시아를 돌아본 미국 농무부의 프랭클린 킹이 4천 년 같은 땅에서 지력을 지켜온 농부들에게 경탄한 것도 같은 이치였다.
물은 숲을 필요로 한다. 논에 물을 대려면 저수지가 있어야 하고, 저수지를 지키려면 산이 푸르러야 한다. 송계(松契)라는 마을 자치가 수백 년 숲을 지켜온 것은 그래서다. 개척지형 농업이 숲을 소모해 들판을 넓힌다면, 정주형 논농사는 숲을 지켜야 들판이 산다.
벼도 숲을 벨 때가 있다
반론도 짚어 두어야 한다. 벼농사라고 숲을 베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인도네시아는 칼리만탄의 이탄습지림 100만 헥타르를 밀어 논을 만들겠다는 '메가 라이스 프로젝트'를 벌였다가 실패했고, 마른 이탄은 이후 거대한 산불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마다가스카르의 화전 밭벼도 숲을 갉아먹는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오히려 이 글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벼가 숲을 벤 것은 벼농사가 개척지형으로 바뀌었을 때였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개간이든 화전이든, 물을 가두고 순환시키는 정주의 원리를 버리는 순간 벼도 숲의 적이 된다. 문제는 작물이 아니라 방식이다.
논의 메탄도 사실이다. 그러나 논물을 넣었다 뺐다 하는 간단관개만으로 메탄을 30~70% 줄이면서 수확을 유지할 수 있다. 녹색혁명 이후 아시아의 논이 화학비료와 지하수에 기대게 된 것, 인도 펀자브의 지하수가 말라가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그리고 강수량 500mm에 못 미치는 땅에서는 애초에 논을 풀 수 없다. 모든 땅을 논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바꿀 것인가
WWF가 말한 식량생산 방식의 전환은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바꿀 것은 작물이 아니라 원리다.
첫째, 땅을 버리고 옮겨 가는 개척지형에서 같은 땅을 지키는 정주형으로.
둘째, 물을 흘려보내는 농업에서 가두고 순환시키는 농업으로.
셋째, 곡물을 사료로 돌리는 육식 중심에서 사람이 직접 먹는 곡물 중심으로.
넷째, 습윤 열대에 건조지대의 농법을 이식하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시작할 일도 있다. 상류의 농약이 하류를 망치지 않도록 물줄기 단위로 생태농사를 짓는 '생태농업유역', 기후위기 시대의 식량기지를 지킬 농지총량제, 그리고 농부가 흙에 가둔 탄소와 맑게 한 물을 장부에 올리는 '꽃가루받이 지수'다. 시장은 농부가 파는 쌀값만 셈할 뿐, 논이 지구를 식히는 값은 계산하지 않는다. 그 값을 셈해 줄 때 농부는 비로소 지구의 치유자로 대접받는다.
이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사료 곡물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의 밥상도 저 숲의 경계와 이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4천 년 같은 땅을 지켜온 논의 기억이 있다. 하라리가 보지 못한 농업, 킹이 경탄한 농업이다.
지난 백여 년 수난의 와중에도 우리는 만주와 연해주로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끌어올렸다. 2020년 농촌진흥청은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사막에서 우리 품종 '아세미'를 길러 국내보다 40%가량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우리 벼 기술의 저력이다. 그러나 바닷물을 걸러 만든 물값이 1헥타르당 2천만 원으로, 그 땅에서 나는 쌀값의 세 배를 넘었다. 논은 비가 내리는 땅에서라야 지혜가 된다. 그 실험이 남긴 또 하나의 교훈이다. 그 기억을 낡은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세계에 내놓을 대안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논은 하늘이 내린 비를 담는 그릇이었다. 그릇을 버리고 들판만 넓혀 온 문명이 지금 숲의 마지막 경계 앞에 서 있다. 숲을 지키는 것은 울타리가 아니라 그릇이다.
참고
• 지구생태 붕괴 막으려면 식량생산 방식 바꿔야, 민들레, 2026.10.8
• '벼논 메탄가스 급증' 기사와 유발 하라리가 몰랐던 것, 민들레, 2026.5.24
• [칼럼초고] '생명노동운동', AI시대의 문명사적 대안, 국토미래연구소 카페, 2026.10.6
• 어떤 농사와 먹거리가 지구를 살리는가? (이원영·안철환·윤지로 좌담), 한겨레:온, 2025.9.14
• 생명탈핵실크로드[48] 그리스의 태양광 그리고 산과 바다, 한겨레:온, 2024.9.5
• 생명탈핵실크로드[51] 북마케도니아의 호젓한 강변 숲길 그리고 주현절, 한겨레:온, 2024.10.14
• 생명탈핵실크로드[66] 누구나 미륵이 되는, 한겨레:온, 2025.2.28
• 우리 기술로 개발한 벼, 사막서 재배 성공, 한국농정신문, 2020.5.3
• Rice and human nutrition (식량 열량 공급 비중: 쌀 20%, 밀 19%), FAO
• World — Land under cereal production (2022), World Bank 자료
• Wheat (수확면적 2021년 2억 2,070만 ha), Wikipedia
• About rice (수확면적 약 1억 6천만 ha), Oryza
• 클리퍼드 기어츠, 《농업의 인볼루션》(Agricultural Involution), 1963
• 프랭클린 H. 킹, 《4천 년의 농부》(Farmers of Forty Centuries), 1911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