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참 얄궂다. 엊저녁에 안부를 궁금해했는데, 오늘 세상을 뜨셨다.
최일남 선생 얘기다. 향년 91세.
어제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재에 꽂힌 책 한 권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선생이 1988년에 펴낸 칼럼집 <말의 뜻 사람의 뜻>이다.
이 책을 빼 보면서 문득 선생은 이즈음 어떻게 지내실까고 궁금해 한 것인데,
오늘 조금 전 선생의 부음을 접한 것이다.
이 책은 뭔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나와 인연이 좀 있다.
1988년 회사를 옮길까 말까로 고민에 빠졌을 때 접한 책이다.
그렇다고 나의 진로에 어떤 디렉션을 줬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저 다사다난했던 1988년 그 해의 잡다한 기억 속에 이 책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선생의 1986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흐르는 북’을
그 무렵에 봤는데, 그 소설의 여운 또한 깊었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소설도 그렇지만 선생의 칼럼 속 문장이 좋았다.
속뜻이 담긴 분명한 어떤 결론을 뭔가 느릿느릿한 만연체적인 문장으로 풀어나가는
그런 류의 문장이랄까, 느릿함 속에 명쾌함이 깃든 그런 글을 선생은 즐겨 구사했다.
나는 선생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우리나라 1세대 칼럼니스트로 부르고자 한다.
어렵게 복직한 동아일보 논설위원 자리를 1987년에 다시 내려놓아야 했던
그 저변에 선생의 날카로운 평론이 자리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