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시, 날짜만 바뀌었을 뿐 전날 저녁이나 다름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영원히 다가올 것 같지 않았던 그날은 이미 내곁에 와있다.
자~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할까?
어제 저녁에 꼼꼼이 물건들을 챙겨놨지만 뭔가 빠뜨린 것만 같고 이대로 떠나면 뭔일이 생겨도 생길것만 같고...
대회 한두번 나가본 것도 아닌데 이처럼 긴장되고 불안하니...
새벽녘에 경기장에 가는 것이 매일의 일상인 사람들이 오늘은 또다른 설레임과 초조함을 가지고 모여든다.
아주 가까운 미래, 불과 한나절 뒤의 미래, 그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궁금함을 한껏들 품은채...
미래는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지만 런너들에게 미래는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결과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아니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오늘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은 어떤 역사가 쓰여질까?
광화문대로에 다시 섰다.
작년의 그 기분이 그대로 느껴진다.
모든게 작년하고 같다. 다만 세련되어진 것이 있다면 이번엔 클럽사람들 몇몇이 함께 모여서 출발을 기다린다는 것이고 각자 요강(?)을 준비하고 느긋하게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가?
오색연막과 함께 요란한 출발이 시작된다.
'아! 잘 뛰어야 할텐데...'
노란색비닐커버를 뒤집어 쓴채 수천명의 런너들 틈에 섞여 2420번째 주력을 가진 강기상이가 달린다.
오늘의 목표는 3시간 10분, 더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더 잘나올것 같지도 않다.
가쁜한 기분이라고는 도무지 들지 않을 정도로 몸이 따르질 않는다.
함께 출발한 회원들은 얼마가지도 않아 까마득히 앞서 사라져 보이지가 않고 오늘 재미보기는 영 틀려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초반부터 팍팍 밀려온다.
남대문을 돌며 장영형님을 만나고 5km반환점이 저만치 보이고 엘리트 선수들이 맞은편을 지날때 쯤 주운로가 뒤에서 나타난다.
반환점을 400미터 남겨두고 5Km라고 표지가 커다랐게 되어있는데 시계를 보니 20분을 막 지나고 있는게 아닌가?
'이렇게 몸이 무거운데, 이렇게 안 나가는데도 이런시간이 나오다니...'
'더 늦추어야 될라나?'
'여기서 더 늦추면 안될것 같은데!'
5km반환점(정확히 4.6km)을 돌고 나서 잠시뒤, 이번에는 오태근이 뒤에서 다가와 함께 뛰는데 아까 본 표지가 5km가 아니고 돌아와서 지금보는 여기가 5km지점이라는데 아닌게 아니라 길바닥에 하얀색 테이프로 표시를 해놓은 것이 맞는 것 같다.
'아니 그럼 시간은?'
"22분13초!", '그럼 그렇지!'
예정된 목표에 정확히 일치하는 구간타임이긴 한데 자꾸만 마음은 초조해진다.
잠시뒤 오태근 조차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7Km를 넘어서 뜻밖에 체크포인트매트를 만난다.
이게 완전히 깜짝쑈처럼 주자들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 뜻밖의 지점에 설치를 해두었나보다!
10Km를 지나며 확인해 본 랩은 21분 30초, 다소 빨라졌다.
'이대로 시간을 조금씩만 벌며 가면 될텐데...'
15Km에서 확인한 랩은 21분 37초, 좋다!
하지만 여전히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는다.
그냥 억지로 밀어부치며 달리는 것만 같다.
전문가가 옆에 있으면 꼭 물어보고 싶다 컨디션이 나빠서 뻑뻑하게 뛰는 것도 시간상으로 따져서 페이스조절에 해당되느냐고...
하기사 컨디션이 나쁜 사람이 오버페이스까지 한다면 그것은 뻔할뻔자 이겠지만...
힘들게 뛰고 있는데 눈앞에 철수형님이 나타난다.
옻을 옮아가지고 몸이 영 좋지 않다더니 역시나 그런가 보다! 하며 앞질러 길을 재촉하는데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뜻밖에 삼례누님이 사진을 찍어가며 길가에서 환호하고 있다.
교통이 통제됐을텐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날 수가 있을까?
참 대단한 정성이다.
형규형님이 날로 잘 달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잠실대교를 건너기 전에 만나는 20Km지점, 랩타임은 21분 50초.
작년엔 엄청난 맞바람을 안고 건너던 잠실대교가 오늘은 평온하기만 하다.
다리 가운데 하프지점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여기까지 총 소요시간이 1시간 32분, 목표한 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데 왜이리 마음은 뒤쳐지는 기분일까?
25Km랩 22분 35초,
천호사거리가 다가오면서 신경이 곤두선다.
누나가 응원 나오기로 한 지점이기 때문인데 우회전하고 잠시 뒤 "온고을화이팅!"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왠 온고을?'
누나가 고래고래 외치고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철수형님이였다.
'와! 언제 다시 앞서가고 있었다나?'
10Km쯤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는 점점 더 굵어져 가고 이제는 도로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서 피해 달리는 것 조차 신경이 쓰일 지경이 되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사람들의 기량이 향상되어서 인지 걷거나 쥐가 나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30Km랩 23분 09초, 더이상 늦어지면 안돼는데...
쵸코파이랑 먹을 것이 잔뜩 널린 좌판을 지난 잠시뒤 정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페이스가 한결 떨어진 것이 앞으로 고생 좀 하겠구나 싶은데...
"야! 색시가 기다린다. 빨리 가야지!"
35Km랩 23분 57초,
이상한 일이다.
30Km이후에 한결 몸놀림이 가벼워지고 이제서야 뛸만하다고 생각이 들어가는데 거꾸로 시간은 턱없이 늦어지고 있으니...
아마도 상대적인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전체적인 대열의 흐름이 늦어졌다는 것일게다.
37Km쯤 되는 지점에서 눈앞에 낮익은 유니폼이 또하나 들어온다.
"타고난 천재 오태근!"
그가 여기서 다리펴기 운동을 하고 있을줄이야!
그리고 잠시 뒤 전주클럽 김갑수님을 만난다.
걷고 있는걸 보니 뭔가 단단히 문제가 있나보다.
40Km랩 23분 15초,
대열의 흐름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거슬러 오르며 조금씩 까먹은 시간을 보충하려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앞서고 몸은 거기에 다소 못미치는 것 같다.
여기서 총 소요시간이 3시간을 지나고 있다.
지금 골인한 사람까지 서브3가 되겠구나!
난 오늘의 목표에서 10분을 남겨두고 있고...
'10분 이내에 갈 수 있을까?'
부지런히 대열보다는 앞서지만 야속한 시계는 자꾸만 숫자가 넘어간다.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드디어 경기장 입구가 보이고 요란한 고함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누나였다.
손을 흔들거나 웃어줄 여유가 없다.
'빨리 달려야 되는데...'
3시간 10분 이내에는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며 주경기장의 우레탄쿠션을 느낀다.
여기는 남원대회 처럼 요행이 없다.
트랙을 한바퀴 돌아서 들어가야 되는데 1번레인엔 빗물이 잔뜩 고여있어 2번레인으로들 달린다.
'에구 올림픽이 열렸다는 경기장이 ...'
너무나 익숙한 트랙의 곡선을 타고 미끌어지듯이 골인아치로 향한다.
3시간 10분 24초,
여한은 없다 목표한 시간대로 정확히 도달했고 앞으로 열어가야할 또다른 미래들이 줄지어 있으니...
[구간별 시간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