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집에 없으니 신문이나 인터넷으로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서해대교에서 안개 속에 24~25重 연쇄추돌사고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예전에는 교통사고 소식이 들리면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니 무덤덤했습니다만,
요즘은 남의 일 같지 않고 맘이 아픕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3년전 쯤에 중부고속도로에서 100重 추돌사고가 난 것을 기억하시는 분 계십니까?
어제 서해대교 추돌사고와 비슷하게 아침 안개 속에서 일어난 100重 추돌사고였습니다.
상당히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그 사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을 제가 아는데요..
그 사연은..
1995년 쯤이었을겁니다.
제가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총무과장을 한사람 충원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받았는데,
이력서 기재내용이 남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사람을 한 사람 보았습니다.
학력과 경력을 보니 부산 B대학 행정대학원 출신에,
국내 이름만 되어도 뻔지르르한 대기업의 기획실, 비서실 근무까지 경력사항이 찬란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력서 하단으로 와서 갑자기 고향으로 ComeBack Home을 하더니
영어학원 강사 근무 중이라고 마무리 되어 있는겁니다.
글씨도 둥글둥글한 달필로 참 호감이 가는 글씨였습니다.
당연히 관심이 가더군요.
전화를 했지요.
"와서 면접한번 보시라.. " 했더니,
"면접을 위한 면접을 보지 않겠습니다, 채용해 주신다면 가겠습니다"라고 하는겁니다.
어허~ 참.. 우리 회사에 들어 올려고 줄을 서 있는 판인데 저렇게 고자세로 나오다니!
'좋아! 얼마나 똑똑한지 한번 보자' 하는 생각에 제가 꾹 참고
"알겠습니다. 회장님을 한번 만나뵈야되니까, 자기 소개서를 다시 작성해서 한번 방문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회사 안살림을 다 살아야되는 총무과장 자리인데 아무나 들여서야 되겠습니까?
회사에 충성하고 눈치도 빠른 사람이 필요한 자리인거죠.
당사자가 며칠 뒤에 왔습니다.
그런데 찾아 온 사람은 제가 상상하고 있던 당당한 체격과 훤한 용모의 사나이가 아니고,
구부덩한 허리에 작은 키.. 그리고 약간 엇비슷하게 걸어들어오더군요.
'회장님이 사람의 인상을 참 중요시하는 분인데.. 이거 좀 난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장님과 만날 시간은 정해 두었고, 당사자가 왔는데 그냥 가라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같이 회장님을 만나뵈러 들어갔습니다.
회장님 눈치도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역력히 보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우리가 제일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왜 서울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으며, 지금 영어학원 강사하는 이유가 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때 이야기해 준 사연이 중부고속도로 100重 추돌사고였습니다.
자기는 집안의 막내인데,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자기의 큰누나와 자형이 자기를 대학, 대학원까지 공부를 시켜 주었다고합니다.
누나와 자형이 자기에게는 부모님과 맞잡이였다는겁니다.
그 누나와 자형이 자기를 보러 서울로 올라오다가 중부고속도로에서 100重추돌사고에서
두 분 다 사망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조카들을 거느리기 위해 서울의 회사를 퇴직하고 자기 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며
자기의 학력과 경력으로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만만하게 불러 줄 만한 곳이 없어
1~2년을 영어학원 강사하면서 생활비를 보태고 있었다는 겁니다.
저는 간략히 개요만 썼습니다만, 차분히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처음 볼때 허리의 구부덩함.. 작은 키.. 이런 것들이 다 사라져버리고, 가슴 속으로 뭉클한 감동만
쏟아났습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과자가게 점원하면서 자수성가한 우리 회장이
당연히 감동먹고 "이런 사람이 우리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 이라면서 그 자리에서 채용을 결정했습니다.
정00 과장!
역시 진국이었습니다.
건설회사 온갖 궂은 일 다하는 과장자리를 2년 정도 마치고 차장 진급해서 재미가 있을려는 판에.
IMF의 영향으로 회사가 거액의 부도를 맞았습니다.
부도금액 2,200억원!
종업원 퇴직금 38억원!
미분양아파트 2,000세대!
각종 채권자 1,000명!
그 동안 회사의 충신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다 떠나 가버리고..
이제 겨우 좀 알만한 총무차장자리에서 이런 거액의 부도를 맞았으니,
자기는 아무 관련이 없다하고 도망가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
끝까지(이후로 5년 더) 남아서 화의절차 밟아 부도처리 다하고, 종업원 퇴직금 다 찾아주었고,
미분양아파트 준공, 등기 다 시켜주었고, 부도난 회사의 명맥을 살려서 다른 지방에서
다시 거액의 공사수주를 할 수 있는 회사(상법상 이전)로 만들어 주고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물론, 둘이서(저와 정과장) 끝까지 남아 마무리 지었습니다만,
모든 功은 그 정과장에게 돌려야 되고요,
저는 오로지 정과장을 눈여겨 보고 회장에게 채용하자고 건의한 죄 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의리는 질긴가 봅니다.
감동먹는 따뜻한 추석 보내시기 기원합니다.
첫댓글 역시나 사람은 겪고 봐야되는거 같습니다... 뭉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