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TOLOGICAL PSYCHOANALYSIS OR “WHAT DO YOU WANT TO BE WHEN YOU GROW UP?”
BY THOMAS H. OGDEN
안녕하십니까?
간 밤에 비도 내리고, 상쾌한 아침입니다.
어제 세미나에서는 위니컷과 비온도 나오고, 옥덴의 쌈박한 글과, 자신을 믿고 지르는? 인상적인 임상 현장을 맛보았습니다.
요즘은 기억이 시간보다 더욱 빨리 사라지기에,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끄트러미를 잡고 몇 자 적어봅니다.
동사형, 명사형 단어의 상태, 그리고 Time 시간에 대한 연상입니다.
논문을 읽다 보니 철학자 박구용씨의 '늙어가는 존재의 미학' 이라는 강의 중 명사형 단어와 동사형 단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가 말하길,
젊음은 기본형이 명사형으로, 젊다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젊음이 젊다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계속 젊어질 수 없고 일정한 시기를 가리키는 명사적 단어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늙음은 늙다, 늙어가다 원형에서 파생된 단어로 계속 진행 중이라는 살아있는 표현입니다.
늙음을 명사형으로 보게 되면 특정 연령대의 문제가 되고, 동사적 단어의 형태로 보게 되면, 모두의 문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신기하게 "시계 시간"이라는 단어를 말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논문에서도 그렇고 둘 다, 단어의 형태와, 시간이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고 이것이 논문의 한 부분과 연결되어 저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옥덴의 논문 P678에서
TV는 보시나요 사례입니다.
짐의 질문을 받은 후 옥덴이 TV를 본다고 말을 한후 다음과 같이 멋진 말을 던집니다.
, “동굴처럼 완전히 깜깜한 곳에서 누군가가 성냥을 켜서 모든 것이 환해지고 볼 수 있는,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깜깜해지는, 그러나 이전 만큼은 깜깜하지 않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이준호 교수님 교안본 참고)
...
그리고,
그리고 끝날 시간이 30분이나 훌쩍 넘긴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이리 말합니다.
“It’s time to stop.” He looked at me and said, “Is it?” It seemed to me that he was correcting me: the experience we had had was not one that could be measured in, or dictated by, “clock time.”
우리가 겪었던 경험은 '시계 시간'으로 측정되거나 지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세션 시간, 혹은 더해진 30분, 이러한 "시계 시간" 말고 또 다른 차원, 공간의 시간, 영겁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였습니다.
논문 P667을 보면 프로이트의 존재론적 관점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를 소개를 하는데
맥락이 이어집니다.
Also representative of Freud’s ontological thinking is his famous
statement, “Wo Es war, soll Ich werden”: “Where id [it] was, there ego [I]
shall be” (Freud 1933, p. 80).2 What had been experienced as other to
oneself (“the it”) is incorporated into one’s being (who I am, who I
“shall be,” who I am becoming).
사실,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갑자기 급 피곤해지네요.
이것으로 충분한가 봅니다.
다시 한 주 화이팅 하시고
남은 일요일 즐기시기 바랍니다.
이만 총총...
아참! 이준호 교수님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