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끼기긱거리는 소리가 문틈에서 들려왔다. 방은 여전히 어두침침했다. 모든 것이 기연가미연가 했다. 화들짝 놀라 침상에서 깨어났을 때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문틈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소리를 좇아 문 쪽으로 다가가 철문에 손을 얹었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어쩌면 급히 뛰어온 가슴의 벌름거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문짝의 비틀림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경첩이 달려 있는 문틈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이곳 골방에 갇힌 이후 사이렌 소리 말고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빛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겨울날 눈 오기 직전의 음침한 잿빛 상태는 계속되었다. 이런 잿빛 상태를 빛이 있다고 해야 할지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어둠에 익숙해져서, 박쥐처럼 어떤 초음파 같은 것을 내쏘는 능력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록 어슴푸레했지만 나는 주위의 물건들을 식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쇠문짝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끼긱거렸다. 그 소리와 함께 문틈이 조금씩 벌어지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이곳에서 뭔지 모르지만 변화가 찾아왔다. 그 어떤 사건이 시작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사람도 없고, 빛도 없고, 어둠도 없고,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고, 시간의 흐름조차도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없던 이곳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쐐기가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소리를 만든 것은 깨진 나뭇조각으로 만든 작은 쐐기였다. 쐐기는 부풀어올라 변화를 만들었다. 사이렌소리 이외의 어떤 소리도 없던 이곳에 끼기긱거리는 소리가 생겨났다. 변화란 다른 것이 아니라 소리였다. 그리고 문틈도 조금씩 벌어졌다.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모든 것은 벽면에 그려진 정물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움직임이 없던 그것들이었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빛을 볼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깜깜한 방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빛을 그리워했다. 방 안의 모든 것은 검뿌염했다. 어둠침침한 방이었다.
아마도 나는 빛을 보기 위해서는 이곳을 탈출해야한다고 생각했던 듯싶다. 그리고 깨진 나무그릇 조각을 끄떡도 않는 철문 틈 사이로 디밀어 넣고 오줌을 누었다. 문짝이 벌어진 틈새만큼 희망이 생겨났다. 얼마쯤 지난 것일까. 벌어진 틈에 다른 깨진 나무 조각을 끼워 넣었다. 그곳에도 오줌을 누었다. 오줌에 불은 나무 조각이 불어나는 크기만큼 문틈은 더 벌어졌다. 물에 불은 나무 쐐기가 쇠문을 천천히 문틀에서 밀어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상황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하나둘 생겨났다.
사이렌이 울린다고 해서 내가 갇혀 있는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사이렌 소리가 내 가슴과 머리를 거칠게 두드린다는 것이었다. 가슴의 두근거림은 붕대가 감겨진 머리에까지 이어져 정수리 부분이 심하게 눌리는 것 같은 환지통이 왔다. 뇌수가 정수리를 통해 몸 밖으로 끝없이 솟구쳤다. 더 낮은 곳으로,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골방은 막혀 있었다. 사이렌 소리는 나에게 탈출을 종용했다. 철문은 굳게 닫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사이렌 소리가 멈추면 이상하리만치 통증도 깨끗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긴가민가해졌다. 있지도 않은 머리 위쪽의 통증이 사라지면 탈출해야겠다는 절박감도 수그러들었다. 단단한 벽이 나에게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어떤 장치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사이렌이 울리면 발작을 하도록. 언제 집어던졌는지 귀퉁이에 산산조각이 난 나무 밥그릇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옛날에는 돌을 나무로 잘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었다.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들고 쐐기 모양으로 다듬을 때에도, 그것을 문틈에 끼워넣을 때에도,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효과는 빨랐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 걸렸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쇠문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검은 쇠문의 경첩부분에 작은 주름이 잡혔다. 결국, 이 쇠문은 문틀에서 떨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문틈은 어느새 마른 나뭇조각의 두께보다 더 벌어져 있었다. 나무 조각 하나에 덧붙여 끼워 넣을 얇은 쐐기 모양의 나무 조각이 필요했다. 나무 조각을 쐐기 모양으로 다듬기 위해 나는 석기시대 원시인처럼 나무 조각을 바닥에 문질렀다. 바닥은 나무 조각이 쉽게 긁혀 나갈 정도로 단단하고 거칠었다.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직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마에서는 땀이 솟아났다.
가슴이 꽉 막혀 버린 것 같은 갑갑증과 함께 모든 것이 안개 속에 갇힌 것 같이 희붐했다. 어슴푸레한 주위의 모습은 더욱 캄캄해져 가는 것 같았었다. 아무것도 억할 수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이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밀려드는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게 닦달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꼭 알아야만 되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머리가 ‘팡’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나는 움직여야만 했다. 행동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는 상관없었다. 주위는 검은 그림자만이 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지하에 있는 골방인지 지상에 있는 방인지도 구분하지 못했었다. 창문도 없고 불빛이 들어올 수 있는 구멍이라고는 직사각형 모양의 통풍구뿐이었다. 그 통풍구는 검은 색의 쇠로 된 문짝 삼분의 이 정도 되는 높이에 작게 뚫려 있었다. 그나마도 쇠창살이 세로로 촘촘히 박혀 있어서 밖의 상황을 살피려고 머리를 바짝 갖다 대어도 눈길은 불과 십여 미터도 가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파묻혔다. 문고리에는 커다란 잠금쇠가 걸려 있었다. 그 잠금쇠는 내가 이 방에 들어온 이후 한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문의 아래쪽에 음식이 들어오는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그렇다면 빛은 그 두 개의 구멍을 통해서 들어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틀린 것이 확실했다. 이곳에는 그 어떤 불빛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깜깜한 어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검뿌윰한 상태만 유지되고 있는 것이었다. 빛 알갱이라고는 단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골방에는 나무 침대 하나와 변기 하나가 있었다. 나무침대는 등받이 의자 두 개를 맞붙여놓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뒹굴고 있는 몇 개의 나무 밥그릇, 옷가지 몇 점, 피 묻은 거즈, 부스러진 돌흙 그런 것들이 보였다. 그것들을 볼 수 있게 하는 검푸른 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 검푸르죽죽한 것이 빛인지 어둠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그 어느 곳에서도 빛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사방에 벽이 보였다. 돌로 된 벽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벽면에는 검은 기운이 돌았다. 천장은 내가 똑바로 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았다. 언젠가 경주에서 본 천마총의 석실 고분이 생각났다. 그대 나는 천마총 입구를 들어서며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으스스 소름이 끼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나는 달도 뜨지 않은 밤 열두 시에 별을 보겠다며 호텔을 나와 논두렁에 앉았다. 논두렁에 앉아 천 삼백 년 전 첨성대에서 별을 관측하던 신라인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위는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이곳에 빛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내가 이곳에 갇힌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처음 얼마 동안은 밥그릇 숫자와 잠자는 횟수로 날짜를 세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식사가 하루에 세 끼 들어온다는 확증도 없었고 잠을 하루에 한번 잔다는 자신도 없었다. 문짝 통풍구 밑에는 바를 정(正)자 여섯 개와 아래 하(下)자 한 개가 그려져 있었다. 삼십 삼 일이 지난 것일까. 어쩌면 밥그릇 숫자일 수도 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사이렌 소리가 들려 온 횟수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대기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내가 도대체 이곳에 언제 들어왔는지 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어둠 때문이었다. 어둠은 모든 것을 감춰버렸다. 내가 누구인지 조차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빛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나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에게 끌려온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들어왔다고 해야 할 것이었지만 그것 역시 논리에 맞지 않았다. 스스로 골방에 갇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곳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혹 내가 이곳에 스스로 들어왔다고 할지라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할 것 같았다. 이 컴컴한 지하 골방에 내가 왜 혼자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꽤나 기특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곳에서 처음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두려움에 떨면서 망연히 철문에 뚫린 작은 구멍을 바라만 보았다. 그 이상한 사이렌 소리가 또 들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누군가가 쇠문에 뚫린 구멍을 통해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사방에서 독화살이 날아와 사정없이 내 몸에 박히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창틀에 가까이 가면 그들은 소리없이 사라졌다. 독화살이 날아들지도 않았다. 진짜로 그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환영을 본 것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사이버세계가 만들어지는 이 시점에 독화살이 날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이상한 놈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몇 천년 전의 과거로 돌아와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철문을 빼놓고는 모든 것이 석기시대의 물건들뿐이었다. 나를 가둔 그들을 만나야 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을 붙잡기 위해서 문짝 밑의 작은 구멍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없이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곳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혼자 있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이전에는 왜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가 무엇이라도 이야기할 상대가 있으면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어느 틈에 하얀 쌀밥은 철문 밑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밥을 계속해서 갖다 놓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가 누구이던 만나야 될 것 같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밥그릇도 내놓은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밥그릇이 바뀌는지 확인하기 위해 표시로 그어 놓은 손톱자국 세 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무그릇은 단단해 보였지만 손톱자국이 쉽게 새겨질 정도로 물렁했다. 그들이 언제 어떻게 빈 그릇을 가져가고 밥이 들어 있는 그릇을 가져다놓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가 이곳 골방에 갇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모든 것을 어둠이 감추고 있었다. 불빛이 있다면 명백히 밝혀질 것이었지만 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벽을 두드렸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바윗덩이에 주먹질을 하는 것 같은 육중한 느낌이었다. 이곳은 아주 큰 돌로 만들어진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골방이 반듯한 육면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돌을 이어붙인 자국은 없었다. 이 골방은 어떤 예리한 절단기로 잘라낸 것이 분명했다. 영화에서처럼 돌 벽을 밀면 문이 스르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방을 돌아가며 이곳저곳을 밀어보았다.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지하 동굴에 골방을 만들 때에도 쐐기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피라미드가 생각났다.
이집트의 파라오왕은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수십 킬로 떨어진 곳에서 돌을 네모 반듯하게 잘라 이동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부들이 수십만 명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 중 제일 중요한 사람은 역시 석공이었다. 석공은 쐐기를 이용해서 돌을 반듯하게 자르고 정으로 다듬었다. 석공은 자기가 자르고 싶은 크기 만큼의 위치에 정으로 홈을 팠다. 그 홈은 개미행렬처럼 길게 늘어섰다. 그곳에 쐐기를 박은 후 물을 붙고 돌이 갈라지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내가 피라미드 안에 누워있는 미라가 아닌가 의심되었다. 지하 동굴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다시 밀려들었다. 살아 있는 자가 동굴에 갇혀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려움이었을까. 아무래도 사이렌소리 때문인 것 같다. 그 이상한 소리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울려 내 머리를 후벼파곤 했다. 사이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이곳에 가두어두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감시당하고 있음을 느껴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내 머리는 참기 힘들 만큼 옥죄었다. 사이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뭔가 무서운 것이 뒤에서 좇아오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에게 굉장히 불행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공포였다. 몇 개 안 되는 익숙한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뛰어라, 뛰어라’라고 소리쳤다. 등뒤로 ‘뛰이- 뛰이-’하는 소리를 받으며 급하게 떠밀려 온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피라미드의 석공들도 이렇게 순장된 것인지 궁금했다.
우리들은 쿵쿵거리며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혼자 뛰어갈 때에는 탁탁거리는 소리만 들리던 계단이었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쿵쿵거렸다. 뛰뛰거리는 파열음 속에 지하식당으로 대피하라는 방송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뛰이- 뛰이-, 민방위 훈련 본부에서 알려 드립니다. 민방위 훈련 본부에서 알려 드립니다. 십사 시 영 분 훈련 공습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직원 여러분들은 지하 식당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즉시 전직원은 지하 식당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뛰이-뛰이-, 민방위 훈련 본부에서 알려 드립니다. 민방위 훈련 본부에서 알려 드립니다. 십사 시 영 분 훈련 공습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직원 여러분들은 지하식당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즉시 전직원은 지하 식당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얼룩무늬 제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제철을 만난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리를 질렀다. 삐리릭 삐리릭, 대피하라니까 왜 말을 안 들어요. 빨리 지하식당으로 내려가요. 그들의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돼 있었다. 그녀와 나는 사람들 틈에서 손을 잡은 채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지하식당으로 내려갔다. 씨팔 저놈들의 입에서 호루라기만이라도 뺏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중얼거릴 때 호루라기를 입에 문 얼룩무늬 비상계획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봐요, 빨리 내려가지 않고 뭘 봐요. 그가 나에게 소리쳤다. 같이 뛰어가던 동료들의 눈길이 일제히 나를 향해 쏟아졌다. 그녀도나를 바라보았다.
이사급인 얼룩무늬 비상계획부장이 나에게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혹시 안다고 해도 그 와중에 사원인 나에게 소리칠 이유가 없을 것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소리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나에게 결정타를 먹일 절호의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도 그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민방위 훈련 시간이고 지휘권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시간을 이용해서 철저히 나를 깨부수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결정타를 먹이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저항할 수 없도록 말이다.
한 달 전 민방위 비상소집 훈련이라는 것이 시행되던 날,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훈련 참가증을 받지 못한 나는 민방위 훈련을 비난하는 글을 썼었다. 그것이 일간신문의 독자 투고란에 박스기사로 처리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도전이며 저항이라고 생각던 모양이었다. 구청의 민방위과장 등이 회사의 비상계획부로 찾아와 감사(監査)를 하겠다고 협박했고, 비상계획부장은 나에게 지하실에 있는 그들의 어두운 사무실로 내려와 구청 직원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경리부장은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기계처럼 차질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이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세력에 관해서는 손금을 보듯이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식으로 우리가 어떤 세력에 의해 점차로 길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었다. 삐리릭거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뛰이-뛰이-’ 하는 사이렌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마력 비슷한 것이 있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생명에 대한 위협 때문이 아니라 호루라기를 입에 문 그 얼룩무늬들의 지배욕 때문에, 지금의 대피 문화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후손은 그 이상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아무런 이유도 모르는 채, 낮고 깜깜한 지하실로 꾸역꾸역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었다. 옆에 있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무서운 사실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삐리릭거리는 파열음을 내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지. 그들은 오히려 삐리릭거리는 소리에서 희열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거든. 그들은 자신들의 한마디가 타인의 생명을 결정한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호루라기를 불고 사이렌을 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행위를 그만두라는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너무도 어이없는 도전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민방위 훈련을 기회로 나를 그들의 지배 지역인 지하로 끌고 온 것이었다. 지금 지하로 끌려 들어가면 다시는 지상으로 나오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지하 세계는 그들의 영역인 것이다. 그들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은 항상 지하였다. 그들은 지하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인종이다. 우리들과는 뭔가 생리구조가 다른 인종인 것이다.
지하식당에는 어느새 단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은 단상 위쪽에 두 개만 켜있었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들은 비디오테이프를 돌린다는 구실로 형광등마저 꺼버렸다. 우리들을 완전한 어둠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사위는 깜깜했다. 그때 나는 뒤쪽 문가에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마지못한 듯, 아니면 기다렸다는 듯, 잠깐 멈칫하다가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녀의 얼굴도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복도에 나와서도 띄엄띄엄 켜 있는 벽면의 비상등만이 희미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불빛은 너무도 약해서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사이렌 소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점차 잦아들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지하실 구석에 있는 창고의 문을 열었다. 전표창고였다. 회사에서 발행한 모든 전표를 최소한 10년간 보관하고 있는 창고였다. 창고에 들어서며 나는 천장에 달린 백열전구를 켰다.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그녀와 나는 마주보며 얼굴 가득히 웃음지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사이렌이 울리면서 불이 꺼졌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 품으로 달겨들었다. 얼른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또 다른 불안이 우리들을 덮쳤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그 ‘뛰이-’ 소리는 밝은 지상에서보다 어두운 지하에서 더욱 큰 불안을 준다. 우리는 이렇게 적응되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호루라기소리가 들려왔다. 호루라기소리가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억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사이렌 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두 눈을 빠르게 이리저리 돌렸다. 그런다고 두려움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껌껌한 지하실은 모든 것들을 우리들의 인식 범위에서 앗아갔다. 그녀의 몸이 몹시 떨려왔다. 불이 켜지면 그녀의 떨림도 없어질 것이었지만 전등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두려워하게 된 것은 사위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이었지만, 내가 해준 이야기도 하나의 역할을 한 것이 분명했다. 컴컴한 지하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다 보니 나는 은근히 그녀를 놀래켜주고 싶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나의 걱정이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이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모두들 꾸역꾸역 지하로 내려가는 거야. 그리고 일정한 숫자의 인간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동굴 입구는 거대한 철문으로 막혀버리지. 그들이 밖에 있을 때에는 밝은 빛이 대지를 온통 적시고 있고, 땅 위에는 할 일이 태산 같이 쌓여 있지. 해도해도 일거리는 줄지 않고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도 않아. 다만 일정한 시간 일을 마치면 먹을 음식이 차려지는데 그들은 더 많이 먹고 싶다던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생각은 하지 않는 거야.
그녀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궁금해서 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나는 침을 꼴깍 하고 한번 삼킨 후 이야기를 계속 했다.
또한 빛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무도 모를 뿐만 아니라 그 빛은 꺼지지도 않는 거야. 그러니까 그곳은 낮뿐이고 밤이 없는 거지. 반대로 그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들어가는 지하에는 낮이 없고 밤만 있는 거야. 곳곳에 횃불이 불타고 있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지. 그때 뒤쪽에서 한 사람씩 죽어 가는 거야. 그들이 왜 그렇게 지하로 내려가는지 아니? 그것은 바로 반복된 훈련의 조건반사였던 거야. 우리들이 지금 지하대피 훈련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은 미래를 예측하는 지배 세력의 음모지. 그때에 우리들을 완벽하게 지배하기 위한 훈련이다 이 말씀이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나는 왠지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애초에 그녀를 놀리기 위해서 시작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정작 그 이야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우리들 모두는 조작된 기계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미래가 진짜로 그 이야기처럼 될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옆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이야기가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들의 생활이 무의미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로봇처럼 낯설었다.
그녀와 나는 입사 동기로 벌써 3년째 사귀고 있는 중이었다. 백 이십여 명의 입사 동기 중에서 아직까지 만나고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나머지 모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 반 정도는 이미 퇴사했을 것이고 반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었지만 어느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녀가 내 곁에 있다고 해서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와의 데이트도 이제 거의 습관처럼 돼 있었다. 나는 그녀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녀와 나는 업무가 달랐다. 기껏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녀가 근무하는 홍보실의 실장이 그녀에게 추근덕거린다는 것뿐이었다. 나도 이름을 알고 있는 그 홍보실장은 가끔 그녀에게 커피를 타 오라고 해서는 이것저것을 묻다가 조금은 음란한 농담을 한다고 했다. 그 농담이 점점 진해진다는 그녀의 걱정을 들었을 때 나는 ‘네가 받아주니까 그렇지’ 라는 핀잔을 줄뿐이었다.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불안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더욱 낯설게 보이기까지 했다. 하긴 그녀만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그녀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낯설었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것이었다.
내 앞에는 세 명의 직원이 앉아 있었다. 바로 앞줄에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였다. 바로 앞에 앉은 남자는 하루에 두 번 나에게 온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가 내게 와서 하는 말은 항상 똑같다. 선배님 일 층 은행에 다녀오겠습니다. 은행에 가서 그날의 당좌예금 잔고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임무중 하나다. 그리고 퇴근하기 한 시간 전에는 백여 장에 이르는 그날 처리한 전표를 내게 가져온다. 그 이외에 그는 자리를 뜨는 일이 거의 없다.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일어나지만 그는 나에게 오지 않고 곧바로 화장실에 가거나 흡연실로 향한다. 그에게 그럴 만한 자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간다. 다른 두 명의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내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내 눈초리를 벗어날 수 없듯이 나도 뒤에 앉아 있는 경리과장의 눈길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보고하는 일은 그가 모르는 일 뿐이다. 그가 아는 일은 굳이 보고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약속이다. 그 약속은 우리들 사이에 모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깨질 수 없는 원칙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칙은 업무에 한해서만 유효하다. 그러니까 사적인 일에 있어서는 그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니, 오히려 반대의 원칙이 정해져 있다. 사적인 것에 대해서는 서로 묻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는다는 반대의 원칙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 속마음과 사적인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우리들은 회사에서 부여한 업무 이외에는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우리들 모두가 사무실 안에서 무표정하게 오고갔다. 우리들의 행동반경에는 한계가 있다. 주어진 업무에 따라 우리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정해져 있고, 하는 말도, 생각하는 범위도, 퇴근 후의 습성도 거의 고정되어 있다. 우리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뒤에 앉은 과장이 나를 지켜보는 감시 카메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의자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슬그머니 손을 놓으려 하자 그녀가 더욱 세게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손에 묻은 땀 때문에 그녀의 손과 내 손은 미끄러지듯 떨어져 나갔다. 갑자기 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다시 내 곁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허리께에 팔을 감았다. 그녀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 나는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무엇인가 내 뒤통수를 거세게 내리쳤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소리는 목에 걸려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나는 앞으로 쓰러지며 필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뛰이- 뛰이-’하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붙안고 돌계단을 내려와 동굴같은 곳을 지나온 기억이 있었지만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돌계단도 동굴 같은 길쭉한 길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 나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들을 이곳으로 끌고 온 그들뿐만 아니라 함께 끌려온 사람들이 아직까지 이곳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규칙적으로 혹은 자기 마음대로 식사를 가져다주는 그들의 모습도 못 보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생물체인지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로봇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문짝 밑의 작은 구멍 앞에 밥그릇을 가져다놓았다. 문득문득 작은 구멍 앞에는 하얀 쌀밥이 놓여 있었다. 처음 몇 번은 빈 그릇을 내놓지 않아도 식사를 주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빈 그릇을 내놓았을 때에만 밥을 주었다. 밥그릇을 내놓으라는 말도 없었다. 언제 왔다 가는지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소리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따금 고함을 질렀지만 그 소리가 나에게 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마음속으로 들리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나를 이곳 골방에 감금한 어떤 존재가 있기나 한 것인지조차 확신이 서질 않았다. 내가 축축하고 미끌미끌한 돌계단을 내려와 이 골방에 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지만 그때 옆에서 함께 내려온 사람들과 우리를 감시하던 그들이 어느 순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냥 이 골방에 버려졌다. 누가 이 방으로 안내한 것일까. 계단을 내려올 때 어떤 여자와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여자는 내 옆에 없었다. 여자의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것은 헛수고였다. 그냥 여자였다. 머리가 긴지 짧은지도 모르겠다. 바지를 입고 있었는지 치마를 입고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와 나는 분명히 같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 장소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우리는 캄캄한 어떤 집회 장소 비슷한 곳에서 여러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다. 여자는 빠르게 눈길을 이리저리 옮겼다. 여자는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계(視界)는 반경 십여 미터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고 해서 주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헛수고였다. 어두침침한 동굴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우리는 그때 ‘뛰이- 뛰이-’ 하는 그 이상한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이 지하 세계로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됐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지상의 세계는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지만 그것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우리들이 밖에서 이 동굴 안으로 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 같은데 그곳이 어떤 세상이었는지 왜 우리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돌로 된 그 문턱을 넘어설 때 우리들의 과거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문턱을 넘어설 때 나는 그 여자와 손을 잡고 있었다. 여자와 나와의 관계가 어떤 사이였을까 궁금했지만 나는 여자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고, 여자가 어디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혹시 그 여자를 만나면 의혹이 풀릴지도 모르겠다.
끼기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짝의 뒤틀림은 점점 그 폭을 넓혀 갔다. 어느 틈에 아래쪽 경첩은 거의 떨어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벌어진 문틈 사이에서 빛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창틀 사이로 들어오지 않던 빛이 문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 무리였다. 그러나 빛은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었다. 겨우 팔이 하나 빠져나갈 정도만 벌어져 있을 뿐이었다. 위에 붙은 경첩이 여전히 견고했기 때문이었다. 벌어진 문틈 사이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손을 대어 보았다. 뭔가 축축한 것이 만져졌다. 거친 돌가루였다. 한 움큼 그것들을 움켜쥐었다. 돌을 움켜진 주먹은 문틈에 걸려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것들은 돌 조각이었다. 매우 단단한 돌이었다. 동굴 벽이 부서져 내린 것은 아니었다. 축축한 바닥의 물기를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깔아 놓은 돌 조각이었다. 철로 밑에 까는 돌 같기도 했다. 위쪽의 경첩 바로 밑에도 나무 조각을 끼워 넣었다. 경첩은 거의 내 얼굴 높이만큼 높게 달려 있었다. 그곳에 끼워진 나무 조각에는 오줌을 깨진 밥그릇에 받아 뿌려야 했다. 문짝의 뒤틀린 모습과 끼기긱거리는 소리는 사이렌 소리보다 훨씬 덜 무서웠다. 나를 이곳에 가둔 사람일지라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무서움을 견디고 있었다. 혼자인 상태만은 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견디게 했다. 어쩌면 나는 그 끼기긱소리를 통해 희망을 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빛은 들어오지 않았고, 그들은 결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골방 생활에 대해서 눈곱만치의 관심도 없는 듯 했다. 내가 밥을 먹든 안 먹든, 모두 먹어 치우든 남기든, 그들은 밥그릇을 내놓으면 새 밥을 놓고 갔다. 밥그릇을 내놓지 않으면 몇 날이 지난 듯해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나를 이곳에 가둔 그들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나의 탈출 시도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계속되는 끼기긱 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으며, 일그러진 문짝을 발견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의도를 내가 추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나는 그들이 귀머거리에다 장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며, 조작된 프로그램에 의해서 움직이기만 하는 기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추론이었다.
위쪽에 달린 경첩도 거의 부서진 것 같았다. 문짝과 문틀의 틈도 이제 한 뼘 정도 벌어져 있었다. 문짝을 힘껏 흔들어 보았지만 문은 끼기긱 소리를 내며 조금 흔들렸을 뿐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뒤로 물러섰다가 세차게 문짝에 어깨를 부딪히자 위쪽 경첩마저 철커덕 하며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경첩이 달린 쪽으로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골방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무엇엔가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듯한 느낌과 함께 정수리 부분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솟구쳤다. 주위는 여전히 빛이 없는 어슴푸레한 동굴뿐이었다.
뜯겨진 문짝이 잠금쇠에 매달려 덜컹거렸다. 나는 급히 열린 문을 밀어, 닫혀 있는 것처럼 다시 맞춰 놓았다. 멀리서 소록소록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잘못 들었을 것이었다. 동굴 속에 눈이 내릴 리도 없고, 기차가 있을 까닭도 없었다. 동굴은 여전히 캄캄했지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골방 밖의 동굴은 골방과는 달리 벽면과 천장이 울퉁불퉁했다. 날카로운 정 자국은 없었다. 돌이 떨어져 나간 상처로 보아 자연 동굴이 아닌 것임은 분명했다. 축축하게 젖은 바닥에 엄지손톱만한 돌들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어떤 생물체가 일부러 길을 만든 것이 분명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들이 부딪히면서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다, 소리는 있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동굴 천장에 철로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골방 주위를 몇 번이나 왕복한 후였다. 그 쇠붙이는 얼마나 길이 들었는지 반짝반짝 빛났다. 빛이 없는데 빛나다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빛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쇠붙이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상자 비슷한 것이 사르륵 하는 작은 소리를 내며 철로 같은 쇠붙이에 매달려 다가왔다. 소리는 가까이에서 잔뜩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그것은 골방 앞에 멈춰서 밑으로 주욱 내려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다시 위로 올라가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상자가 밑으로 내려갔다 올라간 것은 순간적인 짧은 시간이었다. 비스듬히 열린 문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내가 탈출한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공룡이 갑자기 사라졌듯이 이미 멸종된 인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계속해서 밥을 가져다주었다.
골방을 나와 계속해서 걸었다. 깜깜한 동굴은 끝날 줄 모르고 내가 갇혀 있던 골방 비슷한 곳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갑자기 공간이 넓어지며 주위가 조금 밝아졌다. 주위가 밝아졌다고 해서 대낮 같이 밝아진 것은 아니었다. 시계가 삼사십 미터를 넘지 못하는 것도 여전했다. 많은 집들과 골목길 때문에 눈은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웠다. 동굴의 천정은 어느 틈에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길은 여전히 뱀 허리처럼 구불구불했고 차가웠다. 동굴과 달리 굽어진 길모퉁이에는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움막처럼 지붕이 매우 낮은 작은 집들이었다. 그 집들 안에는 누군가가 살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으나 막상 문을 두드리려고 하니 겁이 났다. 그들은 틀림없이 나를 동굴 속 골방에 가둔 인종들일 것이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바램과 나를 골방에 가둔 그들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골목길을 걸었다. 길은 두 사람이 마주치면 한 사람이 조금 비켜서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마을의 분위기는 검은 하늘을 이고 있는 장마철 잿빛 저녁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걸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만나면 다시 골방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모든 집들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닫힌 문에는 카프카의 글이 붙어 있었다.
법(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게 되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 하고 문지기는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 되오” 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물러섰기 때문에 그 사람은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고 몸을 굽힌다. 문지기가 그것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기고라도 들어가도록 해보구려. 그렇지만 명심하시오. 내가 막강하다는 것을. 그런데 나로 말하면 최하급 문지기에 불과하거든. 방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막강해지지. 셋째 문지기만 되어도 나조차 쳐다보기도 어렵다구.” 그런 어려움을 그 시골 사람은 예기치 못했다. 법이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개방되어 있어야 마땅한 것이거늘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털외투를 입은 문지기를 좀더 찬찬히, 그의 커다란 매부리코며 길고 성긴 시커먼 타타르인 같은 턱수염을 뜯어보자 차라리 입장 허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결심한다. 문지기가 그에게 등받이 없는 걸상 하나를 주고 문 곁에 앉아 있게 한다. 여러 날 여러 해를 거기에 그는 앉아 있는다. 들어가는 허락을 받으려고 그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자주 부탁을 하여 문지기를 지치게 한다. 문지기는 이따금씩 간단한 심문을 하는데, 고향이니 기타 여러 가지를 묻지만, 그것은 높은 양반들이 으레 던지는 것 같은 관심없는 질문들이고, 끝에 가서는 언제나 다시금 아직 들여보내줄 수 없다고 한다. 그 사람은 이번 여행을 위해 이것저것 많이 지니고 왔다. 그 사람은 가진 것을 문지기를 매수하기 위해 제아무리 값진 것일지라도, 모두 써버린다. 문지기는 주는 대로 다 받기는 하면서도 “받아두기는 하지만, 그건 다 당신이 뭔가 해볼 일을 안 해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받는 거요.”라고 말한다. 이 여러 해 동안 그 사람은 문지기를 거의 끊임없이 관찰한다. 그는 다른 문지기들은 잊어버리고, 이 첫 번째 문지기가 법으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 단 하나의 장애라고 생각한다. 이 불행한 우연을 그는 처음 몇 년 동안은 큰 소리로 저주하다가 후에, 나이 들어서는 그저 혼자서 속으로 투덜거린다. 그는 어린아이같이 되어, 문지기를 여러 해를 두고 살펴보다 보니 외투 깃 속에 있는 벼룩까지도 알아보게 된 까닭에 벼룩에게까지 자기를 도와 문지기의 기분을 돌려달라고 청한다. 마침내 시력이 약해져 그는 자기의 주위가 정말로 어두워지는지 아니면 눈이 자기를 속이는 것인지 분간을 못한다. 그런데 이제 어둠 속에서 그는 분명하게 알아본다. 법의 문들로부터 끌 수 없게 비쳐 나오는, 사라지지 않는 한 줄기 찬란한 빛을.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때까지의 모든 경험이, 그가 지금껏 문지기에게 던져보지 못한 하나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굳어가는 몸을 이제는 일으킬 수가 없어서 그가 문지기에게 눈짓을 한다. 문지기는 그에게로 깊이 몸을 숙일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몸이 워낙 오그라들어 두 사람의 키 차이가 그에게 불리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도대체 뭘 더 알고 싶은 거요?” 하고 문지기가 묻는다. “당신 욕심이 많군.” “모든 사람들이 법을 얻고자 노력할진대.” 하고 그 시골사람이 말한다. “이 여러 해를 두고 나 말고는 아무도 들여보내 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어쩐 일이지요?” 문지기는 이 사람이 임종에 임박해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그의 스러져가는 청각에 닿게끔 고함질러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다른 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었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문을 닫고 가겠소.”
<프란츠 카프카, 법(法) 앞에서 전문, 변신 ․ 시골의사, 민음사, 2002. 167면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