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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경표 상의 낙남정맥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과 횡천면 그리고 북천면 등 삼개 면이 갈리는 삼면봉(三面峰)에서 신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녹산교까지 192.8km 구간이다. 신산경표 상의 낙남정맥을 8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제1구간
옥산분기점~솔티고개 26.8km
산줄기가 <신산경표> 백두대간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결국 낙남정맥이 지리산군에서는 거의 벗어났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는 곧 1,000고지 이상에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 마루금이 이제는 300m대로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신산경표> 백두대간은 경상남도 하동군과 산청군의 군계를 따라 진행하다 고운동재를 지나 767.2봉 부근에서 하동군에 이른다. 이 줄기는 옥종면을 만나면서 온전하게 하동군 안에서 면계를 따라 진행하다, 546.8봉에 이르러 북천면을 만나면서 횡천면과 북천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이 546.8봉에서 남서쪽으로 내놓는 줄기가 바로 신산경표 상의 낙남정맥으로, 그 시작은 옥정면과 북천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정맥의 들머리는 아무래도 59번국도가 지나는 돌고지재이다. 옥산 이정표를 따라 임도를 오르면 우측으로 표지띠가 보인다. 너른 등로를 따라 오르면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고 산불감시초소에 오르면서 호흡을 고르면 지리산이 그리 멀지 않게 보인다. 등로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난 526.9봉에서 4등급 삼각점(곤양444)을 빠뜨리지 말아야 하며 바로 <신산경표> 백두대간 갈림길인 546.8봉에 이르게 된다. 표지띠가 어지러이 날리고 있는 이곳에서 낙남정맥 도상거리 약 192.8km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낙남정맥의 시작은 널찍한 등로로 정맥꾼의 마음을 일단 편하게 해준다. 천왕봉이라는 정상석이 있는 602.6봉에 올라 다시 한 번 주위를 조망하는 여유를 부려본다. 좌측에 볼록하게 솟아 있는 옥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10여 분 진행하면 ‘옥산1.0km’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옥산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면 왕복 40분이라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이니 조금 무리해도 좋다.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한 후, 헬기장을 지나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와 정상석 두 개 그리고 삼각점(곤양23)이 있는 옥산(614.1m)이 정맥꾼을 맞아 준다.
옥산에서 주위를 감상한 다음 다시 정맥길로 복귀하면 ‘백토재 1.5km’ 이정표가 나오며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을 번갈아가며 지나면, 백토재를 지나 1005번 도로가 지나며 사천시 곤명면을 만나고 지금은 휴업상태인 요양병원 삼거리(등산지도나 일부 산꾼들은 이곳을 백토재라 부르고 이정표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음)로 떨어진다.
이정표를 따라 맞은편으로 치고 올라가면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가며 진행하게 되고 평분(平墳)을 지나면 드디어 낙남정맥에서는 자주 지나가야 할 과수원 구간이 시작된다. 밤나무단지와 산죽밭에 이어 대나무 밭을 지나고 안남골 삼거리를 지나면 정상이 평평한 253.3봉을 지나게 되는데 여기 있다고 하는 4등급 삼각점(곤양435)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내 마루금은 옥정봉이라는 엉터리 이름이 붙여진 242.6봉으로 올라 지금까지 함께해 온 하동군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사천시 곤명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나무에 화살표로 정맥 이정표를 만든 곳을 지나 157.1봉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도 묘지 뒤에 있다는 삼각점(곤양432)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만 더해갈 즈음 찻소리가 나고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마곡리와 봉계리를 이어 주는 2차선 포장도로인 마곡고개이다.
이정표의 솔티고개(16.32km)를 따라 나무계단을 오르면 큰 물통이 나온다. 여기서 물통 좌측의 너른 임도를 따라 농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좌측 내리막길 대신 우측 길을 택함에 주의해야 한다. 이후 계속 직진해야 정맥 마루금인데 2번국도와 경전선 철로가 마루금을 가로지르고 있고 마루금 또한 절개지로 되어 있어 통행이 불가능하다.
바로 좌측으로 떨어지는 길을 따르면 영신레미콘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2번국도와 경전선 철로를 버스정류장 좌측의 토끼굴로 빠져나오면 마을 입구에 ‘도로끝, 추락위험’ 표지판이 보이고 우편함 뒤로 돌아들면 정맥 이정표가 보이며 방치된 폐축사를 지나면서 다시 마루금에 붙게 된다.
너른 헬기장에서는 여러 인원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이며 198.8봉을 지나 하동정씨 묘를 지나면 이내 삼거리가 나오고 마루금은 직진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잠시 우회전해 조망은 없지만 낡은 초막이 정상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247.1봉의 삼각점(곤양429)을 빠뜨리지 않도록 한다.
이제부터 곤양면과 곤명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는데, 잘 다듬어진 가족묘를 지나고 #53 철탑을 지나면 #52 철탑 옆의 헬기장을 지난다. 개념도에 ‘산성산’이라 표기된 237.1봉에 올라 곡부공씨 음택을 보면서 우측으로 포곡소류지, 좌측으로 성방소류지가 잡목 사이로 보일 무렵 국토지리정보원 구지도(舊地圖)에 삼각점이 두 개로 나옴에 유의한다. 조금 긴장을 하며 236.2봉에 오르면 2001년도 재설한 삼각점(곤양25)이 있고 바로 옆 223.2봉으로 가면 여기에도 1991년 재설한 삼각점(곤양25)을 확인할 수 있다.
크게 좌회전해 너른 임도를 따르면 파란 물통과 성광교회 기도원의 파란 기와가 보이고 민가와 광산김씨 묘역, 농장의 비닐하우스를 지나 컨테이너박스를 따른다. 우측으로 떨어지는 표지띠를 따라서 마루금을 고집하면 절개지 펜스의 소위 개구멍을 통해 2차선 도로로 나오게 되는데, 이게 싫다면 능선에서 직진해 염소 우리 옆을 통해 위 도로로 나와도 무방하다.
민가를 지나 과수원을 통과하면 ‘사냥개 운운하는’ 낙남정맥의 악명 높은 농장주의 경고문을 보면서 ‘정맥꾼들이 오죽 요란하게 걸었으면 저런 경고문을 붙였을까’하는 자성도 하게 된다. 이 농장은 우측으로 우회해도 되는데 그냥 통과하면, 본처와 후처를 함께 매장한 조공 음택을 지나서 우회길과 만나게 되고 우측의 흥사저수지를 보면 #42철탑을 지나면 ‘솔티고개 4.50km’ 이정표가 있는 선덜재이다.
흥사리와 신흥리를 잇는 공사가 진행 중인 선덜재 절개지를 치고 올라 #40 철탑을 지나 폐헬기장에서 좌회전하면 천주교내동공원묘지가 나오며 낮은 구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눈앞에 펼쳐지는 낙남정맥 줄기들을 조망하며 걸으면 공원묘지 상단부인 192봉이 뾰족하게 나온 부분이 있어 거기를 오르면 그 꼭대기에 있는 삼각점(진주453)을 확인할 수 있다.
편안한 등로를 내려오다 보면 우측으로는 고가도로가 보이고 모텔이 있으며 온천탕이 있는 2번국도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내려올 수 있다. 한편 이 2번국도는 낙남정맥이 끝날 때까지 계속 정맥 주변을 따라오게 된다.
제2구간
솔티고개~돌장고개 29.7km
진양호라는 인공호수로 인해 마루금이 없어진 현장을 유수교를 건너면서 확인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남강댐이 있는 진주시 평거동에서 남덕유에서 갈라져 내려온 진양기맥이 어설프게 끝난다는 것도 인식하자. 한편 이 구간은 낮은 구릉의 연속이어서 진주IC를 위시해 각종 도로로 인해 우회해야 하는 구간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2번국도가 새로 만들어지기 전까지 솔티고개라는 이름은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이제는 신작로로 인해 이곳이 솔티고개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삼성약국 옆으로 오르면 경전선전철복선화 작업을 하고 있는 구(舊)솔티고개를 지나 좌측으로 치고 올라간다. 이어 옥녀봉(170.7m)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다시 아까 만났던 도로를 가로질러 지나면 묘지에서 크게 우회전해 진주시 내동면 안으로 들어선다. 양호한 등로를 편하게 진행하면 삼각점(진주313)과 간이 정상 산패가 있는 태봉산(191.8m)이다.
미륵산 갈림길에서 좌회전해 ‘디비리산’이라는 알지도 듣지도 못한 봉우리를 지나면 경전선 철로까지 내려오게 되고 2번국도의 다리 밑을 통과해 125.7봉을 오르면 평분(平墳)이 나오고 파란 물통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언덕을 내려오면 지난 구간 진행했던 ‘나동공원묘지’로 가는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찜질방 간판을 따라 가화천이 흐르는 유수교를 건너면서 이 진양호가 인공호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호수의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사천만 쪽으로 흐르게 했기 때문에 여기서 물을 건너게 된다는 인식을 한다. 다리를 건너 바로 우회전해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홍수경보장치가 나오고 이내 다시 사천시 죽동면을 만나 진주시와 사천시의 시계를 따라 걷게 된다. 과수원을 지나 ‘와룡산 9.41km’ 이정표를 지나면 감나무단지가 있는 104.5봉에서 파란 물통 두 개를 볼 수 있고 그러고는 바로 1049번 도로가 지나는 버리재이다.
콘크리트 시설물을 보고 숲으로 들어가면 125.2봉이고 감나무단지를 지나 다시 도로로 나오고 우측 숲으로 들어가 마루금을 고집하려면 176.7봉에서 좌회전해야 한다. 여기서 마루금은 진주시 정촌면을 만나 사천시와 헤어져 정촌면과 내동면의 면계를 따라 걷게 된다. 콘크리트 임도를 잠시 따르면 ‘낙남정맥’이라고 표기된 파란 이정표를 지나 1등급 대삼각점(진주11)이 있는 실봉산(186.3m)에 오르지만 변변한 정상석 하나 없다. 억새밭을 잠시 걸으면 야산이나마 조망이 트이며 ‘해돋이 쉼터’에서는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후 ‘낙남정맥 화원마을’을 따라 진행하면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고 고갯마루에서 우회전해 다시 숲으로 들면 소나무 재선충 방재작업 현장을 지난다. 좌측으로 율곡소류지를 보며 진행하면 대전통영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의 진주 IC 등이 마루금을 점하고 있어 부득이 102.8봉을 오르기 전에 우회전해 화원마을로 들어간다.
화원삼계탕을 지나 토끼굴을 통과해 횡단보도를 거쳐 다시 토끼굴을 지나면 화개리 모심동마을의 서라벌가든이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해 열녀문을 보고 직진하면 다시 토끼굴을 통해 대전통영고속도로를 지나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선다. 무덤 두 기가 있는 곳을 지나 미군삼각점을 보고 ‘화봉산, 110m’라는 팻말이 달려 있는 115.7봉을 지나 강릉김씨숭조단을 지나면 내동과 모심동을 잇는 도로로 떨어지게 된다.
도로 건너 과수원창고를 지나 또 다른 과수원을 지나면 새로 조성 중인 3번 도로 현장으로 인해 끊긴 마루금을 어렵게 이어 진행하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삼각점(진주443)이 있는 와룡산이라고 하는 93.8봉을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해 대나무 숲 옆의 철탑을 지나면 과수원 좌측으로 KTX 진주역사가 보이고 117.3봉의 과수원을 지나면 또 도로를 개설하느라 마루금을 훼손하고 있는 현장을 지난다.
새농민농장 간판에서 우측 고개로 들어가면 마루금은 과수원 우측으로 진행하게 되고 101.5봉에서 콘테이너박스를 겨냥해 걸으면 ‘등산로 입구’라는 간판이 보이고 다시 과수원 가운데를 통과하면 맞은편에 나무계단이 보이고 2차선 도로인 계리재로 떨어진다.
2구간 산행은 여기서 마쳐도 되지만 조금 더 능력이 있다면 돌장고개까지 진행하는 것도 이 구간이 낮은 구릉성 산지임을 감안하면 그리 무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계단을 올라 173.6봉에서 삼각점(진주437)을 확인하고 넘으면 다시 아까 그 도로와 만나고 도로를 따라 진주축협생축사업장까지 걸어 전봇대 옆에 걸린 표지띠를 이정표 삼아 우측으로 들어가면 그물망을 지나 매실나무 단지를 본다.
삼각점(진주437)이 있는 173.6봉을 지나 223.7봉 넘어 #24철탑을 확인하면서 이정표의 무선산을 따른다. 정촌면과 금곡면의 경계가 되는 봉전고개를 치고 올라가면 ‘무선산 0.1km’라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무심코 진행했다가는 무선산을 놓치고 바로 돌장고개로 진행하게 되는 아주 주의를 요하는 지점이다.
우회전해 무선산(275.9m)에 들면 삼각점(진주310)과 금속 정상판도 볼 수 있다. 273.5봉을 지나 238봉에서 크게 좌회전하면 좌측으로 상인담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제 고도는 완전히 떨어져 남해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굉음소리로 귀가 시끄러워질 무렵 남해고속도로 바로 옆 1002번 도로가 있는 돌장고개로 떨어진다.
제3구간
돌장고개~장전고개 28.25km
낙남정맥을 걷다 보면 같은 이름의 산들을 여럿 보게 되는데 그중에 특기할 만한 산이 바로 대곡산(大谷山)이다. 낮은 구릉의 연속이라 당연히 골도 깊지 않을 산세인데 그나마 이들은 400~600m를 오가는 규모라 당연히 이 주변의 계곡들도 어느 정도 깊어 이런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나 싶다. 특히 낙남정맥이 우리나라 국토의 남쪽 울타리가 되는 줄기인 만큼 정맥 남쪽으로는 큰 줄기가 없을 법도 하건만 그래도 유일무이하게 긴 가지인 통영지맥을 이 구간 안에 있는 대곡산(544.9m)에서 분기시킨다.
정맥 마루금은 고속도로가 점하고 있으므로 우회전해 토끼굴을 통과하고, 맞은편 절개지 방향으로 진행하면 부근의 채석장을 오가는 특장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전봇대 옆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장태규증조모’ 수목장한 곳을 지나고 채석장을 우측에 두고 진행하면 박곡소류지도 보이고 이내 삼각점(진주436)이 있는 198.9봉이다.
우측으로 임도가 나오며 이어 나오는 과수원은 우회하고 평상이 놓인 ‘숲속의 광장’에서 우회전해 임도를 따라 오른다. 임도를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 248.8봉 갈림봉을 지나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정동면으로 들어서면서 아무런 특징 없는 귀룡산(352m)을 지나게 된다. 이 귀룡산보다는 오히려 258.9봉으로 갈리는 헬기장봉에서 삼각점(진주469)을 보게 되는데 이 점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
303.2봉에서 급우회전해 ‘봉대산 정상 3.0km’라는 일반인이 만든 간이이정표를 보고 진행하면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257.8봉을 지나면 봉대산(403.3m)이 눈앞에 다가온다. 잡목으로 가득한 봉대산에는 정상석이 있고 그다지 조망은 없다. 헬기장을 지나 이정표를 따르면 #51철탑을 지나게 되고 이내 낙남정맥 안내도를 보면서 온전하게 고성군 안으로 들어가 정맥길을 진행하게 되며 경주김씨 묘를 지나면 이내 산패가 걸려 있는 양전산(310.6m)이다.
양전산에서 뚜렷한 길을 따라 내려오면 2차선 도로가 지나는 부련이재이고 바로 치고 올라 무덤을 우측으로 진행하면 콘크리트포장도로인 문고개가 나온다. 여기서 390.8m 높이의 백운산이라고도 불리는 대곡산으로 오르려면 상당한 고도차를 극복하기 위해 땀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대곡산에는 삼각점(진주22)이 매설되어 있는데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산패에도 백운산으로 표기되어 있어 뒤에 만나는 통영지맥의 분기봉인 같은 이름의 대곡산(544.9m)에 비해 상당히 홀대를 받고 있다.
서러움을 뒤로하고 424.5봉을 지나면서 #46 철탑을 보고, 333고지를 지나며 고도를 낮추면 임도를 만나게 되고 ‘야베스농장’ 안내판을 지나 송씨묘를 통과하면 마루금은 다시 임도를 지나 배곡고개를 가로지른다. 좌측으로 봉발소류지를 보고 올라 천황산(341.3m)을 통과해 봉두산 삼거리를 지나면 이내 2차선 도로인 1016번 도로의 가리고개에 도착하는데 부근에 추계마을이 있어 식수해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갈천리로 가는 도로를 잠시 따르다 우측 전봇대 옆의 등로로 오르면 송구산으로 갈리는 갈림봉을 만나면서 이제부터는 대가면을 만나 상리면과 대가면의 면계를 따라 걷게 된다. 여기서 바로 인동장씨 묘를 지나고 437.9봉을 지나 계속 오름을 진행하면 좌측으로 사슴농장이 보이고 489봉에 오르면서 길이 평탄해진다.
‘준희’님의 격려 표지판을 보면 걸으면 우측으로 ‘묘지 가는 길’이라는 화살표 안내문이 보인다. 그러고는 삼각점(충무401)과 ‘준희’님의 산패가 있는 대곡산(544.9m)이다. 이 대곡산이 갖는 의의는 여기서 철마산~벽방산~망일봉을 지나 남해로 가라앉는 통영지맥이 분기한다는 점과 이곳이 낙남정맥 최남단이어서 이제부터 마루금은 북동진한다는 점 등에 있다.
정맥은 여기서 급좌회전해 사슴농장을 왼쪽에 놓고 진행하며 농장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잠시 따르다 열린 철문 안으로 들어가 485.2봉을 넘으면 펜스작업을 하다 중단한 쇠파이프를 따르게 되고 530.7봉을 지나면 너른 공터와 임도를 만나는 화리재이다.
등산안내도를 보고 임도와 등로를 번갈아 진행하면 이정표를 따른다. 우측으로 대가저수지와 무량산 이정표가 보이고 여기서 약 170m 들어가면 정상석과 산불감시탑 그리고 삼각점(함안314)이 있는 조망 좋은 무량산(582.6m)이다.
삼거리로 돌아나와 소나무가 있는 조망터를 지나 576.1봉에서 직진하면 봉화산으로 가게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576.1봉에서 좌회전하면 고도가 갑자기 떨어지며 임도를 만나고 좌측의 대단위 축사를 보면 바로 아스팔트포장이 된 큰재로 떨어진다.
이후 편안한 등로와 임도를 번갈아 진행해 학남산(550.5m) 갈림봉인 501.4봉을 넘으면 산패가 걸린 백운산(483.9m)이 나온다. 척정저수지가 보이는 이곳에서 조망을 즐기다가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면 1009번 도로가 지나는 장전고개이다. 고개 좌측에 공장이 있는데 여기서 식수 보충은 물론 여름에는 뒤편의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을 수도 있다.
제4구간
장전고개~발산재 18.35km
예전에는 마산시였던 창원시로 진입하게 되는 구간이다. 이 구간의 528.6봉이나 깃대봉(521.7m) 그리고 준봉산에서 보는 조망이 너무 즐겁다. 즉 적석산(496.8m)에서 탁골산으로 이어지는 암봉 능선과 적석산의 현수교를 보면서 바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준봉산에서 보는 만수산~보잠산 줄기 정맥을 끝낸 다음 다시 이곳에 올라 저 능선을 꼭 이어보겠다는 각오를 다지기에 너무도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발산재에서 만나는 2번국도는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마루금을 동강내었으며 정맥꾼들은 그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참절되고 있는 산하를 가슴 아프게 지켜볼 따름이다.
버스정류장 우측의 묘지로 올라가는 임도를 따라가도 되지만 마루금은 숲길로 들어가는 길이니 정맥꾼이라면 그래도 이 길을 택해야 할 것 같다. 지난 구간 떨어진 고도를 한층 높이면 능선 위에 오르게 되고 이 능선에서 마암면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잠시 우회전해 일부 개념도나 지도에는 성지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394.2봉에서 삼각점(함안 452)을 확인하고 되돌아 나와도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철탑을 지나 성지봉(456.3m)에 도착하지만 별 특이한 게 없으며 여기에서는 우회전해 개천면과 마암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한다. #71 철탑을 지나 336.2봉에서 우회전해 무난한 마루금을 이어가면 #74 철탑을 지나 묘지를 가로지른다. 좌측으로 저수지가 보이면 바로 떡고개다. 여기서 조금만 더 고도를 높이면 삼각점(함안451)이 있고 산패가 있는 덕산(278.4m)이다. #75 철탑을 지나면 좌측에 좌련지라는 큰 저수지가 있는데 운이 좋으면 지형적인 영향으로 멋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도 만날 수 있다. 포장 2차로인 배치고개에서 간판 뒤로 오르면 과수원 안을 지나게 된다.
매봉산(256.3m) 갈림봉에서 좌회전해 멧돼지 목욕탕을 지나면 콘크리트포장이 되어 있는 신고개를 지나고 258.8봉을 지나면 탕근재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묘지를 지나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면 삼각점(함안315)이 있는 탕근재(370.2m)인데 여기서 마암면과 헤어지고 구만면을 만나 구만면과 개천면의 면계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봉광산(391.3m)에는 산패가 있으며 잠시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수원백씨 가족묘를 지나게 되고 이내 새터재라고도 불리는 샛곡이다. 여기서부터는 별다른 조망도 없고 볼거리도 없는 마루금을 그냥 묵묵히 오르내리기를 몇 번 거듭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산패가 부착되어 있는 필두봉(418.4m)이다. 부드러운 능선을 걸으면 두 개의 철탑을 지나고 2차선 도로의 담티재를 지나면 청심목장의 목초지가 눈을 시원하게 해주며 좌측으로 미암산 방향으로 갈라지는 줄기도 눈에 들어올 즈음, 미암산 갈림길을 지나면 바로 암봉인 용암산(400.6m)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 7분 정도 더 걸으면 느닷없이 용암산이라는 산패와 삼각점(함안 442)이 있는 399.8봉이 나온다.
337.2봉을 지나면 묘지 몇 기가 있는 곳을 통과해 남성치로 떨어지고 소나무 숲길을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오르면 384.6봉에서 우회전해 삼각점(함안439)이 있는 ‘벌밭들’이라는 코팅지가 붙어 있는 420.4봉을 밟고는 적석산으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직진하면서 창원시 진전면을 만나게 된다.
선동치에서 전원주택을 지나면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지만 우측으로는 적석산의 현수교와 그 암봉들이 정맥꾼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갑자기 ‘깃대봉’이라는 정상석(520.6m)이 세워져 있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여기는 그냥 528.6봉이지 지도상의 깃대봉이 아니고 여기서 30분 정도 더 진행하면 ‘새마포산악회’에서 부착한 산패가 나오는데 이 봉우리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지도상에 나오는 깃대봉(521.7m)이다.
여기서 2등급삼각점(함안23)도 확인할 수 있다. 멀리 길성소류지도 눈에 들어올 때 의병 준봉 고종후 장군의 호에서 비롯된 준봉산이라는 정상석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회전하면 만수산~보잠산~장군대산으로 진행하는 긴 단맥으로 이어지며, 준봉산이 진주시와 고성군 그리고 창원시가 만나는 의미 있는 봉우리임도 인식한다.
마루금은 직진해 멋진 조망터 두어 곳으로 안내하며 이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들어가는 길은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2번 구도로로 바로 떨어지는 길이고, 우회전하면 고종후 장군 묘를 지나 수발사 방향으로 가는 길이므로 걷는 이의 선택에 따라 진행하도록 한다. 이후 마루금은 한치까지 끊기가 매우 애매하므로 대부분의 산객들은 여기서 구간 종주를 마무리한다.
제5구간
발산재~한치 22.3km
낙남정맥의 끝을 신어산이 지나는 줄기라 했을 경우 낙남정맥 최고봉인 여항산을 오르게 되고, 이 여항산이나 서북산에서는 치열했던 한국전쟁 당시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반면 운이 좋으면 멀리 남해까지도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이기도 한 이 구간에서 지나온 구간이나 앞으로 진행할 구간도 마음껏 감상해 보도록 하자.
기존 구도로에 있던 발산재 휴게소는 영업을 하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고 다만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장승만이 역방향의 ‘깃대봉 3.7km’를 알려 주고 있을 뿐이다. 288.5봉을 오르다 보면 관리되지 않은 나무 벤치도 보이는데 일단 능선에 올라 좌회전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우회전해 200m 정도만 진행하면 삼각점(함안438)이 있는 327.2봉을 다녀올 수 있는데 이는 정맥꾼 각자의 선택이다.
마루금 옆으로 호(濠)와 같은 구덩이가 유난히 눈에 띄며 우측으로는 드디어 큰정고개까지 같이 진행하는 임도가 따라오기 시작하고 272.3봉을 지나면 좌측으로 ‘영봉산’ 이정표가 보인다. 평범한 마루금을 진행하다 보면 재선충 피해로 인한 소나무 무덤들이 여러 곳 보이기 시작하고 356봉까지 조금 무료하게 진행하면 큰정고개를 넘게 된다.
좌측으로 오봉산으로 뻗어가는 줄기가 보일 무렵 우측으로 보이던 임도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마루금은 528봉에서 좌측으로 오봉산으로 진행하는 줄기를 내어 주면서 함안군 군북면을 만나 창원시와 함안군의 군계를 따라 진행한다.
암벽을 만나 우회전하면 바로 나오는 524.4봉에서 삼각점(함안414)을 확인할 수 있다. 1029번 도로가 지나는 오곡재는 생각과 달리 잘 닦인 도로로, 여기서 ‘오봉산 3.6km, 발산재 8.85km’를 확인한다. 이제부터 마루금은 오름의 연속이고 다만 미산령에서 빠지는 삼거리에서 함안읍을 만나 우회전하면 우측으로 여항산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창원시 진전면을 철벽같이 둘러싸고 있어 이 부근이 과연 한국 전쟁 때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자가 있는 임도(560.9m)를 만나 땀을 식히고 동물이동통로를 이용해 나무계단을 오르면 돌덩어리들이 보이면서 이정표는 ‘정상(서북산)’으로 안내하고 있다. 상수도보호구역 말뚝을 지나 우측으로 여양저수지를 보면서 케언들이 서 있는 곳을 지나면 좌측으로 ‘미산, 돋을샘’ 갈림길을 만나는데 여기서 여항면을 만나고 5분만 더 오르면 헬기장과 쉼터가 있어 야영도 가능하며 한국 전쟁 때 여항산 전투로 유명한 여항산 전위봉(759.5m)이다.
여기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가다 나무 데크로 올라 멋진 조망을 즐기면 곧 여항산(770.5m) 정상이다. 이 산이 기존의 산경표 해석상으로는 낙남정맥 최고봉이며 지금 걷고 있는 신낙남정맥에 의할 때에는 불모산(801m)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임을 인식한다. 조망이 좋은 이곳도 악천후일 경우에는 다분히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는 곳인 바, 지금은 나무 계단을 따라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으나 바로 옆에는 로프도 매여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이 로프를 잡고 정맥길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속칭 소무덤봉(667m)을 지나 미니헬기장을 통과하면 약수터산장 삼거리를 지나 이정표의 서북산을 따른다. 706.5봉에서 직진하고 다시 만나는 약수터산장 간판에서도 직진하면 서북산전적비와 정상석, 헬기장 그리고 1등급대삼각점(함안11)이 있는 서북산(738.8m) 정상이다.
여기서 진북면을 만나고 이정표의 대부산, 봉화산을 따르면 된비알을 내려가게 된다. 나무의자도 간간이 보이며 철탑이 있는 대부산을 보며 치고 올라가려고 하면 우측으로 편백나무단지가 보이는데 이제부터 무조건 땅바닥만 보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힘에 부친다.
기암을 보며 또 오르고 우측으로 송전탑이 보이는 602.7봉에 올라 한숨을 돌리고 조금만 더 힘을 쓰면 삼각점(함안423)이 있고 ‘대부산’이라는 산패가 붙어 있는 649.1봉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구지도(舊地圖)에는 여기가 봉화산으로 되어 있었는데, 새 지도에는 대부산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여기서 직진 후 634.1봉에서 우회전해 이정표의 ‘한치0.9km’를 따르면 급경사를 내려가게 되고 마지막 봉우리 하나를 더 넘으면 79번 도로가 지나고 식당을 겸한 진고개휴게소가 있는 한치다.
제6구간
한치~송정고개 17.95km
지난 구간에 이어 이번에도 광려산, 대산, 무학산 등지에서 원 없이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 연이어 펼쳐진다. 바다가 가깝고 골이 깊어 이른 아침에 출발할 경우 운해를 만나는 행운도 가질 수도 있어 구간 거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쉬움이 들지 않는 낙남정맥 최고의 구간이다. 화개지맥이라는 줄기가 가지 치는 곳도 이 구간이다. 다만 도심이 가까워지므로 그만큼 샛길도 많다. 주민들에게 등로를 물어 진행하는 어리석음보다는 정맥꾼 본연의 자세대로 마루금을 고집하면서 진행하면 어려움이 별로 없다.
마루금 진행은 휴게소 식당 우측의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오르면서 시작된다. 입산통제 공문을 보고 숲으로 들면 잠시 왼쪽으로 마루금과 무관한 임도가 따라오다 이내 없어진다. 내곡리로 빠지는 삼거리를 지나 호흡이 조금 거칠어질 때 즈음이면 데크 조망처가 있는 광려산(722.6m)이 나온다. 여기서 뒤돌아보면 지나온 구간의 멋진 모습들이 펼쳐지며 운이 좋으면 운해까지 감상할 수 있다.
바로 옆에는 ‘광려산 삿갓봉’ 정상석이 있으며 여기서 바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투구봉이라 표기되어 있는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함안군과 마산시 시계를 따라 상투봉~화개산~용화산으로 이어지는 약 34.3km의 화개지맥이다. ‘준희’님의 안내판도 부착되어 있다.
여기서 우회전해 마루금을 이어가면 창원시 안으로 들어가 내서읍과 진북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10여 분 진행하면 갑자기 751.7봉에 ‘광려산 정상 720m’ 표지판이 잘못 세워져 있다. 화개지맥 능선과 지난 구간의 대부산 일대를 조망하면서 이정표의 ‘대산’을 따른다.
우측으로 추곡저수지가 보이고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벤치가 있는 702.4봉을 지나 진동면으로 들어서면서 나무계단을 오르면 그야말로 멋진 풍광이 펼쳐지며 이내 대산(725.9m) 정상석 앞에 서게 된다. 대산을 떠나자마자 바로 ‘광산’이라는 정상석을 지나며 폐 헬기장을 지나 윗바람재를 통과하면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마산475) 그리고 정상석이 있는 570.5봉이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마루금은 팔각정과 활공장을 지나며 5번국도도 보면서 좀 복잡한 숲을 지나면 바로 임도가 나오고 조심스럽게 마루금을 찾으면 가로 막은 철문이 나오는데 부득불 이 철문을 넘으면 콘크리트도로인 쌀재를 만난다. 이곳에 민가도 있어 식수보충이 가능하며 이제부터는 무학산 등로와 맞물려 산행은 더없이 쉬워진다.
쌀재에서 이정표를 따라 100m 정도 내려가면 ‘등산로 입구’ 팻말이 나오고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면 폐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이 ‘대곡청송’이라는 이름의 소나무가 있고 정상석이 있으며 삼각점(마산302)이 있는 대곡산(516.4m) 정상이다. 호젓한 등로를 걸으며 이정표의 ‘무학산’을 따르면 너럭바위에서 조망도 즐길 수 있다. 672.8봉을 좌로 우회해 약수터에서 물을 보충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갈 수도 있다.
삼거리에서 나무 데크를 밟으며 오르면 케언이 보이고 조금 더 힘을 내면 철탑이 있고 정상석이 있으며 삼각점(마산301)이 있는 무학산(761.4m)이다. 이곳이 마산의 진산임을 확연하게 볼 수 있으며 마루금은 헬기장을 지나 이정표의 ‘중리’ 방향을 따른다.
시루바위 삼거리에 이어 원계삼거리를 지나 쉼터를 지나자마자 삼거리에서 바로 우회전해 ‘마재고개’를 따르면 324.8봉을 지나 ‘마산둘렛길’에 있는 #31 철탑을 만난다. 이어 1004번 도로를 만나 육교로 경전선 철로를 통과해 횡단보도를 건너면 ‘마잿고개’라는 표석이 있는 마재고개이다.
버스정류장 우측의 장등산을 따르다가 돌을 박은 묘를 보며 구봉산을 버리고 ‘평성소류지’를 따라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찻소리가 시끄럽고 바로 옆이 편의점이 있는 송정고개다. 이 구간 역시 짧은 감은 있으나 이후 구간을 끊을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여기서 구간산행을 마치도록 한다.
제7구간
송정고개~용지봉 26.85km
천주산에서는 북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화개지맥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여기서 몸도 식히고 사방으로 트여 있는 조망을 즐기다 보면 멀리 장병산과 대암산도 지척이다. 사격장 사거리에서 장병산을 오르는 1.2km는 쉬지 않고 계속 오르는 게 편하다. 장병산에서 둘러보는 조망도 그 어느 봉에 뒤지지 않는다. 장병산에서 대암산을 거쳐 용지봉에 이르는 구간까지 빼어난 조망은 정맥꾼의 발목을 계속 붙들며 용지봉에서는 신낙남정맥이 갖는 의미도 되새기고 구간 마무리는 장유사로 하산해야 다음 구간을 이어가기에 편하다.
송정고개에서 편의점 뒷길로 오르면 바로 정맥 마루금이고 여기서 좌회전하면 곧 콘크리트도로가 나오고 이곳이 종지고개인데 개사육장으로 인해 귀가 시끄러울 지경이다. ‘약수터 윗고개’ 이정표에서 장동산을 따르고 장동산(454m) 정상에서 내려서면 평상이 있는 안성고개인데 여기서는 이정표의 ‘천주산 3.0km’를 따라 된비알을 묵묵히 올라가야 한다.
칠원면을 만나는 삼거리에서 잠시 다시 함안군을 만나 시계(市界)를 걷노라면 바로 천주봉 전위봉이 나오며, 좌측으로는 조금 전 지나온 마산재로 진행하는 줄기가 보이고, 멀리는 광려산에서 갈라졌던 화개지맥 능선도 멀지 않게 보인다. 이어 3개의 케언이 있고 천주산 정상석과 용지봉 표석이 함께 있는 천주산(641m)에 다다르며 헬기장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다시 케언이 있고 헬기장이 또 나온다.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천주제2봉에서 이정표의 ‘만남의 광장’을 따르면, 이곳이 팔각정이 있고 정자가 있으며 ‘천주봉’이라는 천주산의 또 다른 정상석이 있는 만남의 광장이라는 곳인데, 조망이 너무 좋아 천주산에 연이어 정맥꾼의 발걸음을 계속 붙든다.
여기서 남해고속도로와 마산외곽도로가 겹치는 것을 보면서 고도를 한껏 낮춰야 하고 굴현고개 넘어 북산이 고개를 쳐든 모습을 보고 내려가다 보면 455.3봉에서 삼각점을 보고 이내 공동묘지 두 곳을 지나면 버스정류장이 있는 굴현고개다. ‘마창진 5산 환종주’ 표지띠를 따라 치고 올라가면 대나무 숲을 지나고, 동읍과 의창구의 읍계를 따라 진행하면 293.5봉의 북봉을 지나 토끼굴로 고속도로를 우회, 통과하여 신풍고개를 따르면 ‘태봉빌라’가 있는 소답마을을 우측으로 두고 진행하게 되고 이내 안내판이 있는 신풍고개에 다다른다.
초등학생들이 지은 동시를 읽으며 걷다 보면 운동기구가 있는 182.1봉의 쉼터가 나오고 여기서 급좌회전한다. 공사가 한창인 동문고개에서는 절개지로 인해 정상적인 마루금 진행이 어려우므로 마을 입구로 들어서서 감나무 밭을 지나 횡단보도를 이용해 도로를 건넌 다음 마루금을 이어가야 하며, 절개지에 있는 화단에서 관상용 양귀비를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우측으로 골프장과 경전선 철도가 보이면 이내 등로에 탱자나무가 나타나고 창원CC 골프장 철책이 보이며 부치고개를 지나 산죽밭을 지나면 경보장치가 있고 쉼터시설이 되어 있는 사격장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정병산 1.2km’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여기서 정병산까지는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올라가야 하는 아주 심한 된비알로 360m의 표고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힘든 구간이다. 돌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정상석과 삼각점(창원24)이 있는 정병산(566.3m)인데 바로 앞 독수리바위 뒤로 펼쳐지는 조망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쉼터를 지나 헬기장을 지나면서 펼쳐지는 조망은 계속 정맥꾼의 발걸음을 잡으며, 진행할 마루금은 그야말로 칼바위능선을 방불케 하고 길상사 삼거리를 지나 수리봉(459.9m)에서의 조망도 놓치지 말아야 하며 길상사 제2삼거리를 지나면 내정병봉(489.9m)이라는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의 조망도 또한 일품이다.
우곡사 갈림길을 지나 용추고개를 지나면 비음산 정상이 1.9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르면 되고 468.5봉을 지나 비음령을 지나면 진례산성 동문이 나오며 이내 휴게시설이 되어 있는 비음산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514.7봉에 오르면 정면으로 뾰족한 대암산 일대가 눈에 들어오며, 초곡쉼터로 떨어지는 삼거리인 남산치를 지나면 안전로프가 설치돼 있는 바위구간을 지난다.
좌측으로 평지(진례)저수지가 보이고 쉼터가 있는 내대암산이라고도 불리는 608.1봉에서 삼각점까지 확인하면 장군바위를 지나 암봉으로 이루어진 대암산(675.8m)으로 여기에는 사각정이 있으며 정상석과 통신시설이 있다. 이정표를 따라 진행해 사각정과 정상석이 있는 용지봉(744.7m)에 이른다. 이 봉우리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낙남정맥과 신낙남정맥이 구분되는 곳임을 인식한다. 보통 낙남정맥을 종주하는 정맥꾼들은 직진해서 장고개 방향으로 이어가지만 모두(冒頭)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신낙남정맥은 여기서 우회전해 불모산 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간다.
제8구간
용지봉~녹산교 22.6km
낙남정맥을 걸은 후 <신산경표> 낙남정맥을 걸으면 정맥이 가지는 세력과는 별론으로 누구라도 이 줄기가 낙남정맥이 맞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된다. 아울러 이 줄기가 국토의 남쪽 울타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우리 산하를 사랑하는 정맥꾼으로서 신산경표 7정맥의 마지막 정맥인 낙남정맥의 마지막 구간을 걸으면서 낙동강 하구 건너편의 몰운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정맥꾼들에게는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옴을 기억한다.
봉화산, 보배산, 굴암산 그리고 불모산에서의 조망은 낙동정맥과 어울려 남쪽의 왜구들을 감시하기에 더없이 충분했음에도 그 오랜 세월을 그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던 치욕적인 역사와 함께 지금도 산맥이라는 이름에 가로막혀 제 이름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백두대간’이란 우리 산줄기 이름이 너무도 가슴 아프게 다가올 뿐이다.
진영 시내에서 장유사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장유사의 지장보살상 옆으로 오르면 이내 마루금에 붙게 되고 여기서 다시 0.7km 뒤로 진행하면 용지봉이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5분 정도 걸으면 724.2봉에서 삼각점(마산418)을 확인하고 바로 우회전해 된비알을 내려가야 함에 유의해야 한다. 그래야 너덜지대에서 수많은 케언도 확인한 다음 상점령으로 떨어져 포장도로 옆의 소사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펜스를 본 다음 숲으로 들어 불모산으로 향할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 불모산으로 오르다 보면 부대로 향하는 콘크리트도로를 두 번 정도 만나고는 정상으로 오른다. 정상은 통신사가 점하고 있어 출입이 불가하다. 조망터 이정표에 불모산 정상이라고 표기된 것을 보고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진행하다가 너른 운동장 같은 곳에서 좌회전해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웅산 삼거리를 지나면서 계속 도로를 따라 걷게 되는데 좌측의 낮은 구릉이 마루금이고 그곳에는 헬기장도 세 군데 나오지만 절대 이를 무시하고 도로만 따라 진행한다. 화산 정상에 있는 공군부대가 눈에 들어올 무렵 우측으로 빠지는 소로에 표지띠가 날리고 ‘창원 60나’의 119 구조목도 보게 된다. 여기서 우회전해 부대에서 설치한 철망을 좌측에 두고 진행하면 공사용 철판을 다리용으로 놓은 것 두 개를 지나 편백나무 숲과 낙엽송 숲을 걸으면 다시 마루금에 붙는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사방으로 조망이 터지고 우측으로는 거제도까지 보이며 암봉을 지나 신암마을 삼거리를 통과하면 쉼터를 지나 이내 정상석과 삼각점(김해310)이 있는 굴암산(663.2m)이다. 굴암산에서는 진행 방향의 마루금을 가늠할 수 있고 여기서 400m 더 가면 쉼터와 팔각정이 있으며 여기서 2분 정도 걸으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진행함에 유의해야 한다. 된비알을 내려가다 보면 #27철탑을 지나게 되고 잡목구간을 지나 ‘해군말뚝’을 보면 곧 너더리고개이고, 358봉에서 ‘준희’님의 산패도 보면서 삼각점(김해442)을 확인하면 곧 여주이씨 음택이 나오고는 두동고개이다.
좌측으로는 하이스트CC가 자리하고 여기서는 잡목 구간을 조심스럽게 지나 무조건 치고 올라가면 조망처 한 군데가 나온다. 좌측으로 골프장과 공단 그리고 진행방향으로 보배산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우측으로는 여전히 거제도와 가덕대교가 따라오고 이내 철제 조형물과 삼각점(김해23) 그리고 정상석이 있는 보배산(479.2m)에 오르게 된다.
여기서 진행하는 길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가주동 방향으로 표지띠가 붙어 있기도 하지만 마루금은 좌측으로 진행, #36 철탑을 보고 418봉에 이르러 창원시를 버리고 온전하게 부산광역시 강서구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표지띠가 적게 달린 마루금 방향을 찾는 데 유의해서 준희님의 ‘405봉’ 표지판을 이정표 삼아 진행해 참나무시들음병 잔해물 처리 장소를 조심스럽게 지나면 문제의 페인트 흔적이 있는 나무를 만나 여기서 좌회전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희미한 흔적을 따라 능선을 걷는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우회전하면 잡목이 앞을 가리고 얼굴을 치지만 인내하여 마루금을 고집하면 임도가 나오는데 여기서 원래 마루금은 직진해 123.3봉을 지나 진행해야 하지만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곳이며 우측으로 뚫고 진행하려 해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는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임도를 따라 좌회전해 진행하다가 나오는 삼거리에서 꾹 참고 다시 좌회전해 공장지대를 만나 우회전해서 4차선 도로인 58번 도로를 만난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조심스럽게 건너 우측 신항 쪽으로 가면 바로 거기가 장고개다.
장고개는 절개지인 관계로 조금 더 내려가 좌측 전봇대 옆으로 오르면 콘크리트도로가 나오고 농장간판에 이어 정면으로 공장이 보이는데 공장 좌측으로 돌면 컨테이너 박스 옆으로 돌계단이 보인다.
돌계단을 치고 올라가면 공동묘지를 일반 공단으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라 묘지가 파헤쳐 있고 나무가 뽑히고 잘려 있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이 글을 쓴 다음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좌측으로 우뚝 보이는 봉화산을 따라 역‘C'자 형태로 돌아가게 됨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다. 이내 성고개 삼거리가 나오고 다시 좌회전하면 철탑을 지나 우측으로 녹산공업단지가 보이며 또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측을 택하면 팔각정에 화장실 그리고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를 지나 잘 닦인 등로를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바로 뒤가 봉화대가 있는 봉화산(329.1m)이다.
봉화산에서는 거제도며 가덕도 그리고 낙동정맥이 마무리되는 몰운대는 물론 낙동정맥 금정산 일원까지도 보인다. 정상석과 삼각점(김해435)을 확인하고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평탄한 길을 지나 나무 데크로 된 조망 터가 나온다. 바로 좌측으로 철탑 두 개가 보이며 그 뒤로는 몰운대가 보이는 쉼터를 지나 노적봉(243.8m)을 넘으면 이정표를 따라 녹산보건지소로 향하다가, 마지막 내리막에 정맥꾼들이 붙여 놓은 표지띠에서 작별을 고하고 내려서면 바로 녹산보건지소가 있는 녹산마을이고 삼거리가 녹산교이며 여기서 낙남정맥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산불감시초소 좌측으로 진행해 내려가다 보니 좌측으로 영남채석장이, 멀리는 건천읍 시가지가 보이며 이내 목장이 있는 독고불재를 지나 된비알을 힘들게 치고 올라가면 651.2봉에서 4등급삼각점(경주 463)을 확인할 수 있다. 우회전해 진행하면 특이한 석물들이 있는 곳을 지나고, 581.6봉 부근에서 소나무 숲길로 들어선 다음 좌측으로 20번 도로의 보현암으로 진행하는 길을 보면서 내려가면 옥련암으로 떨어지는 430.9봉이 오리재로 표기되어 있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임산물재배단지를 지나 간벌지역에서 당고개를 조망할 즈음에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오리재가 아닌가 싶다. 396.6봉에 오르면 망실된 삼각점을 볼 수 있으며 수목장지를 지나 찻소리를 들으면 바로 당고개다.
<신산경표>의 정맥종주 가이드를 마무리하며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인 <산경표>는 북쪽의 시작인 백두산에서 남쪽 끝인 지리산까지 쉼 없이 진행하는 줄기를 ‘백두대간’이라 명명(命名)하고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들이나 산들은 모두 여기서 갈래를 치는 것으로 보았다. 백두라는 말 자체도 백두산(白頭山)의 백(白)과 지리산의 옛 이름인 두류산(頭流山)의 두(頭)의 첫 음절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도 하니 옛 선조들의 지혜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른 정맥들과는 다르게 그것도 우리 산줄기의 최고 어른인 백두대간의 그 끝이 바다에서 끝나지 않고 지리산 천왕봉에서 끝나는, 어찌 보면 좀 이상하게 산줄기를 마무리하는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리산이라 하면 동쪽의 천왕봉이나 서쪽의 고리봉, 바래봉은 물론 중간의 토끼봉, 영신봉도 모두 지리산에 속하는 봉우리들인 만큼 굳이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백두대간에 포함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그 끝이 바다에서 끝나지 않게 그릴 필요도 없으며 또 그것이 산경표의 기본원리에도 맞지 않고 이는 대간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한다는 본래 취지에 어긋나기도 한다.
이에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 선생은 신산경표에서 백두대간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끝나지 않고 지리산 영신봉에서 그 맥을 우측으로 틀어 삼신봉을 지나 길마재~옥산갈림봉~금오산까지 연장해 노량 앞바다로 떨어지게끔 하여 이를 신백두대간이라 이름했다. 그러다보니 산경표에서 낙남정맥으로 보았던 영신봉 이하 구간의 분기하는 시작점이 신산경표에서는 자연스럽게 영신봉에서 옥산분기점으로 옮겨지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이는 산경표의 기본개념을 흔드는 것이라는 비판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산경표 역시 일종의 사회과학적 개념의 지지(地誌)라고 볼 때 신산경표적 개념에 대한 평가와 발전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런 논의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산경표는 산경표에 터 잡은 새 학설의 결과물이므로 나름대로 사료(史料)로서의 가치 역시 충분하다고 보인다. 또한 신산경표가 나오게 된 이론적 근거 역시 후술하는 바와 같이 명백하다고 볼 때 신산경표의 존재 이유는 더욱 뚜렷해진다.
어쨌든 산경표의 낙남정맥의 줄기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그 끝은 신어산을 지나 동신어산 그리고 고암나루터에서 끝을 맺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고암나루터에서 끝나야 하는 이 줄기는 정맥길이므로 기본적으로 여타 정맥들과 마찬가지로 강의 하구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끝나야 하는데 사실상 고암나루터는 낙동강 하구와는 좀 거리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산경표에 나온 대로 마루금을 그은 것이 아니라 1980년 이우형 선생이 산경표를 발굴해 낸 후, 그 산경표에 따라 낙남정맥을 걸은 종주대가 그 산경표를 나름대로 해석해 걸은 루트를 후답자들이 그 자료를 바탕으로 따라 걸은 결과물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 루트가 소위 ‘마루금파’들에게는 공인된 루트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에 언제든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박성태 선생의 얘기를 들어보자
“산경표가 원전으로 삼았다고 보는 문헌비고 여지고 산천총설은 지리산에서 시작한 산줄기를 불모산(佛母山·지금의 용지봉까지 불모산으로 보고 있음)을 지나 구지봉에서 끝을 맺고 ‘구지봉에서 남쪽으로 몰운대를 마주보고, 몰운대 북쪽에 세 갈래진 강이 있다(龜旨之峯南對沒雲之臺於三叉之北)’라고 산줄기의 끝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그 산줄기에서 가지 친 산줄기들을 차례로 기재하면서 맨 끝 부분에 ‘구지봉에서 남쪽으로 분산(盆山·지금의 분산성)에 이르고 그 아래에 김해부 관아가 있다(龜旨峯南至盆山有金海府治)’고 했다.
산경표는 낙남정맥을 불모산-구지산-분산으로 끝을 내어 산줄기의 흐름은 그 끝이 낙동강에 닿도록 하고 따로 ‘龜旨峯(구지봉)’이란 독립된 난을 만들어 산천총설1과 똑같이 ‘南對沒雲之臺於三叉之北’이라고 덧붙여 낙남정맥의 끝이 구지봉임을 밝히고 있다.
중간에 ‘龜旨山’을 넣은 것은 산천총설1처럼 불모산 다음에 구지봉을 기재하면 이미 산줄기의 끝에 이르렀으므로 산경표 체계상 그 다음에 ‘盆山’을 기재할 수 없다. 그래서 산경표는 구지봉으로 내려서기 전에 龜旨山이란 분기점을 나타내는 임시 명칭을 사용해 盆山으로 이어준 다음 되돌아 구지봉을 별도로 기재해 낙남정맥을 마무리한 것이다.
龜旨山이 임시명칭이라는 것은 표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산경표에 나타난 거리를 보면 龜旨山은 김해 북쪽 5리에 있고, 龜旨山 남쪽에 있는 盆山에서 남쪽으로 3리를 가면 김해 관아가 있다고 했으니 龜旨山에서 분산까지의 거리는 2리다. 10리를 5.4km로 본다는 견해에 따르면 盆山은 김해도호부관아(현 김해 동상시장 일원)로부터 1.6km이고 盆山에서 龜旨山은 1.1km이니 이를 현 지도에서 보면 盆山은 분산성이고 龜旨山은 김해천문대가 있는 분성산 정상이다.
분성산 정상에서는 구지봉과 분산성으로 가는 산줄기가 나뉘어 있다. 그러니 龜旨山이 임시명칭이 아니고 실존하는 산 이름이라면 본줄기를 龜旨山에서 둘로 나뉜다 하고 그 아래에 龜旨峯을, 그리고 가지줄기인 盆山을 龜旨峯 옆에 나란히 기재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낙남정맥의 끝은 구지봉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종주자들은 신어산으로 가고 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나전현(현 나밭고개)을 지난 산줄기가 신어산을 지나고 있고, 현지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 산줄기가 끝나는 곳까지 바다였다고 하여 낙남정맥의 끝이 신어산을 거쳐 김해시 상동면 매리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도 낙남정맥 종주자들은 대부분 이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 이 주장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첫째,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는 산줄기 구분 방법이 다르다. 대동여지도는 산세에 따라 그 굵기를 달리해 산줄기를 그린 것이지 주요 산줄기라고 해서 굵게 그리지 않았다. 산의 세력이 강한 백두대간의 대부분은 굵게 표현되고 대간이나 정맥이라도 산의 세력이 약한 구간을 보면 다른 지맥들과 다름이 없다.
대동여지도는 산세를 따라 생긴 대로 그린 지도다. 산이 높으면 산줄기를 넓게, 그리고 산이 낮으면 산줄기를 좁게 그렸다. 그래서 수치표고자료와 위성영상을 이용해 산의 세력만을 감안한 산맥체계를 연구한 사람은 그 결과물이 대동여지도의 산줄기체계와 매우 흡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동여지도는 산줄기를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구분해 그린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그린 지도이기 때문에 아무리 첨단장비와 자료를 사용했다 하여도 산세만을 위주로 만든 산맥체계는 이와 크게 다를 수 없다. 그러나 산경표는 10대강의 울타리를 기본으로 하여 생활권을 구획하는 산줄기를 주요 산줄기로 하는 구분 기준이 있기 때문에 대동여지도에 굵게 표시된 산줄기도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은 것은 이름 없는 가지 줄기로 기재되었다.
둘째, 신어산의 산줄기가 끝나는 상동면 매리의 낙동강 변은 강이 끝나는 바다가 아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김해부편에서는 ‘부 남쪽 10리에 있는 죽도와 부 남쪽 12리에 있는 덕도는 둘 다 강 중앙에 있다’고 했고 양산군편에서는 ‘바다가 칠점산 밖 2리에 있다’고 했으니 이를 현 지도에서 보면 김해국제공항의 북쪽은 바다로 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산경표가 편찬되었다고 추정하는 시대에 살았던 이긍익(1736~1806)의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지리전고 총지리 편의 낙동강 하류 쪽을 보면 ‘또 동쪽으로는 삼랑창이 있고 남쪽으로 흘러 왕지연 황산강이 된다. 또 남쪽으로 양산의 동원진이 되며, 또 남쪽으로는 세 갈래 물이 되어서 김해부 남쪽 취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기록해 취량을 낙동강의 끝으로 보고 있다.
이 부근을 대동여지도에서 보면 황산강, 동원진, 삼차하, 취량이 차례로 보이고 취량 서쪽에 금단곶(金丹串)이 있고 서낙동강은 태야강(台也江)으로 기재되어 있다. 낙동강하구둑으로 이어지는 2번국도가 지나는 성고개 부근에서 금단곶보(金丹串堡) 유적이 발굴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 당시에도 낙동강의 끝을 현재 하천법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녹산수문에서 낙동강하구둑으로 이어지는 낙동강의 종점과 비슷하게 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신어산을 거쳐 동신어산에서 내려선 산줄기나, 분산성에서 남쪽으로 내려선 산줄기 모두 바다에 이르기 전의 낙동강으로 내려서고 있는 것이다.
산경표의 정맥은 반드시 바다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바다 또는 강, 즉 물을 만나 끝난다. 물을 만나지 않고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을 독립된 산줄기로 보는 것은 산경표를 잘못 본 것이다. 한강권의 경계인 한남정맥은 속리산에서 문수산으로 이어지고 금강권의 경계인 금북정맥은 속리산에서 안흥진으로 이어진다. 한남금북정맥은 표의 구성상 이 두 산줄기가 중복되는 구간을 따로 떼어서 기재한 것이다.
셋째, 주장을 달리해 세력이 강한 산줄기를 따른다고 한다면, 영운리고개 이후의 산줄기는 무척산과 신어산으로 가는 두 개의 산줄기가 있는데, 무척산(702.5m)이 신어산(630.4m)보다 높고 무척산 산줄기가 신어산 산줄기보다 4km 이상 더 길다.
이와 같은 기록과 사실로 볼 때 산경표를 따라 낙남정맥을 간다면 구지봉으로 가야 할 것이고, 산경표의 끝을 무시하고 산세를 따라 더 이어 간다면 무척산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낙동강이 끝나는 바다로 간다면, 용지봉에서 불모산을 거쳐 봉화산에서 녹산교로 내려서거나, 봉화산자락에서 입바위로 가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녹산교에서 이어지는 낙동강하구둑이 강과 바다의 경계가 되고 있지만 위성사진에서 보면 강의 세력은 그 아래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입바위로 간다면 그 이남(以南)의 산업단지는 강이나 바다의 영역을 인위적으로 메운 곳이므로 여름철 파라솔이 빽빽한 백사장 정도로 보고 도로를 따라 물가에 이르면 될 것이다.”
용지봉 기점 이후 신낙남정맥과 무척지맥으로 구분
여하튼 박성태 선생은 이러한 이유로 신산경표에서는 옥산분기점~녹산교까지의 구간을 새로운 낙남정맥으로 포함시켰다. 그 분기점을 옥산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용지봉에서는 우회전해 불모산~보배산~봉화산을 지나 녹산교에서 끝나게끔 정맥 줄기를 정리하고 남은 구간인 용지봉 이후 구간은 무척산 줄기가 더 세력이 강하고 길이도 긴 점을 감안해 용지봉~영운리고개 갈림길~무척산 줄기를 무척지맥(약 41.5km)이라 하고, 영운리고개 갈림길~고암나루터는 일반 단맥화(약 10.9km)했다.
한편 산경표의 본(本)에 따라 낙남정맥을 낙남정간으로 표기된 것도 있는데 이는 낙남정맥이 장백정간과 함께 쪽이 나뉘지 않고 백두대간 영역에 포함시켜 다른 산줄기와 구분이 된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고 그러한 이유에 더하여 낙남정맥을 백두대간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낙남정간으로 쓰자는 것이다.
하지만 장백정간은 아버지 격인 대간처럼 산 이름을 사용했지만 낙남정맥은 다른 정맥들과 같이 강 이름을 사용한 것만 봐도 낙남정간보다는 낙남정맥이 타당한 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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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요~~~~~~~
남은 시간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에도 안산즐산하세요.
아직 제가 정맥을 갈무리 하지 못해 개인적인 소회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신산경표는 마치 유신헌법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나름 존경 할 만한 선배님들이 너무 과욕을 부려 오히려 그 업적에 오점을 남기시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나마 낙남 마무리 구간 정도는 애교로 받아 줄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냥 헛 웃음만 나오며...
신산경표로 마음 아파하는 다른 원로 선배님들을 생각하면 저도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저도 젊은 편이지만, 이런 상황을 방치해 둔다면 저의 후배에게는 무슨 얼굴로 그들을 대할지...
이젠 말하고 표현해야 하지 않나 싶네요... 해석은 다를 수 있으나...
그 해석은 설로도 족하지 않나 싶고... 다시 말하지만 하나의 잘못이 다른 공을 다 덮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셨으면 좋겠네요...
우리나라 산줄기의 기본은 '산경표'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토를 달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그런데 그 산경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경표에서 주창하는 기본원리와 조금은 다르게 산줄기가 마무리되고 잇다는 점이 눈에 띄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것일테고...
거기에 착안하여 박성태선생님은 산경표를 조금 발전적으로 해석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 역시 산경표 신자로서 박성태 선생님의 이러한 해석을 여러 논의 중의 하나라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산맥이 아닌 산줄기가 즉 산경표가 하루 빨리 자리잡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버거님의 산경표에 대한 사랑에 경의를 표하면서 앞으로도 무궁한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오 백두대간(白頭大幹), 정맥(正脈) ...저는 여러 설을 뒤로하고라도... 저 글씨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왜 백두대맥이 아닌지...왜 정맥에 바를 정(正)을 썼는지... 거기에 대간과 정맥을 구분하는 원리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또한 맥(脈)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볼일입니다...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봅니다...
@현오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을 아시죠...???
그 서문을 읽고 아마도 감흥이 좋은 분은 눈 시울을 적실지도 모릅니다...왜냐...??? 뜻이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이죠... 거기에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 녹아 들었다 생각합니다...
또한 문자 자체가 신분을 의미하기도 한 사회 상황을 생각한다면, 왕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회의 벽과 저항을 감례 한다는 의미도 녹아 있다 생각합니다...
....................................
신산경표에는 뭐가 녹아 있나요...???
제가 박성태님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못해서 뭐라 단정 지어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버거 신산경표는 산경표의 아류(亞類)이고 산경표를 토대로 박성태 선생님께서 새롭게 나름대로의 견해를 제시한 우리 산줄기 역사의 큰 획을 그음으로써 산경표를 더욱 더 뜻있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한 저술이라고 봅니다.
이 신산경표로 인하여 그저 계획없이 다니던 정맥의 하위개념인 지맥(枝脈)도 확실한 체계에 의하여 지도에 금을 그어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이번에 월간 산에 특집으로 7개월간 신산경표를 다룸으로써 일반 산꾼들도 정맥에 대해 눈을 뜸으로서 대중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버거 여암 신경준 선생의 후손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산줄기를 답사한 자하 신경수선생님도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의 업적에 대해서는 다 인정을 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논쟁의 대상은 신산경표같이 우리 산줄기를 연구하는 분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만들어 놓은 지질학적 개념인 '산맥'을 우리 지도에서 제발 몰아내자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신산경표에 대한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우리 카페에서는 전혀 불필요하기도 하며 산맥개념이 정리된 다음에 논의가 되어도 결코 늦지도 않을 것입니다.
@버거 오히려 그때 신산경표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가하여져야 바람직스러울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산경표에 대한 존재의 의미가 더욱 확실해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석필 선생님이나 신경수 선생님 뿐만 아니라 박성태 선생님 역시 산경표라는 종교의 절대적인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현오 누가 박성태 선배님을 비판 할수 있나요...???
현오님이 비판하실 수 있나요...?? 불만이 없어서 비판을 할수 없는게 아닙니다...
불만이 있어도 서로 교류를 하고 인연의 끈이 굳어진 상황에서 그 누가 박성태님에게 고견을 말씀드릴 수 있냐는 말입니다... 어영부영 띄워 주고, 덕담만 하다가 속은 썩어가는 것입니다...
뒷통수에서 욕하는 분들 많습니다... 그냥 대 선배님이라고 무조건 인정하려 생각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엄청난 명분이 있고, 거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간신히 산경표라는 이름을 쓸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어느 누가 감히 공이 있다하여 함부로 산경표라는 이름을 차용 할수 있는지..
@현오 4대강 사업하시나요...??? 공감대의 과정이 제일 중요한 것을 다 생략해 버리시고, 빨리 성과를 내려하시면 않된다는 것입니다... 산경표가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문화요 문화재이기 때문이겠죠..
오히려 사사로운 견해에 산경표라는 타이틀을 내세움으로서 문화재의 가치가 훼손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에 조산운동이 일어나 산줄기가 새로 생긴 것도 아니고... 똑 같은 산줄기를 걸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이름을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 상하는 일입니까...???
저도 신정맥팀과 산행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맘에 들어 하는 사람이 몇분이나 되겠습니까..??
@현오 그분들은 저를 역적이라고 생각 할 것입니다...
왜 분란을 일으키냐고 저를 왕따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냥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후일 분란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산경표로는 산줄기를 바로 탈수 없나요...??? 지맥이 않됩니까...??? 기맥이 않됩니까...???
평야도 정맥의 반열에 오를수 있습니까...??? 명분이 없어도 너무 없고, 설령 있더라고 아주 개인적인 명분입니다...
@현오 지금의 논란이 호미라면... 후일의 논란은 가래를 넘어서 불도저로도 못 막을 수 있기에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입니다... 지역감정과 같은 해묵은 분열이 산악계에서도 생긴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분통이 터지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버거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뭔가 오해가 깊으신 것 같아서 한 마디 더 드리자면....버거님께서는 박성태 선생님과 무슨 감정의 골이 있으신가요. 왜 하필 많고도 많은 정맥팀 중에 왜 신산경표를 따라가는 팀과 산행을 하시는지 저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팀과 같이 다니시면서 스트레스를 받으시는지 그것도 의문이고...그냥 9정맥 하십시오. 저도 그렇게 했고 모든 사람들 다 그렇게 합니다. 심지어 박성태 선생님도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신산경표를 신봉하는 사람이 과연몇 명이나 되겠으며 신산경표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버거 산경표조차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아니 산꾼들이 없어서 이런 카페까지 열어서 산경표를 홍보하려는 거 아닙니까. 제가 신산경표를 가지고 글을 썼다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까? 자, 그럼 버거님은 앞으로 기맥이나 지맥 산행은 안 하실겁니까. 아니 기맥이나 지맥이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계시는데 왜 산경표에 나오지도 않은 그런 개념을 사용하십니까. 산경표가 있음으로해서 기맥도 만들어 놓은 것이고 또 지맥도 만들어 놓은 거 아닙니까. 그럼 기맥이 뭐고 지맥이 뭡니까. 산경표에는 그런 거 없지 않습니까. 버거님께서는 이제부터 기맥이나 지맥 다니는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씀하십시오.
@버거 산경표에 나오지도 않은 줄기들을 왜 다니냐고.... 제가 신산경표에 대해서 쓴 글을 다 일고 말씀하십시오, 제가 산경표에 대한 신봉자이고 박성태 선생님도 산경표에 대한 신도라는 거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누가 박성태 선생님께 얘기하냐고요. 저도 얘기하고 신경수 선생님, 준희선생님, 맨발 선생님 다 얘기합니다. 다만 모든 분들이 산경표를 다 이해했기에 박성태선생님의 공과를 구별해서 이야기할 따름이지요. 신산경표를 이야기한다고 산경표가 어디갑니까. 산경표에 대한 달ㄴ 해석 다 가능하고 그런 노의가 있으면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분명하게 선을 그을 것은 '산맥'이라는 개념입니다.
@버거 신산경표는 산경표의 동생 혹은 아들입니다. 하지만 산맥은 입양된 아니 일본에서 건너온 외국 놈입니다. 그걸 가지고 논쟁을 해야지 왜 쓸데없는 산줄기가지고 계속 논쟁을 히는지 더는 이해하기가 상당히 곤란합니다. 4대강, 조산운동 말씀하시는데 제가 쓴 산줄기와 산맥과의 개념 구분 정도는 이해하고 저에게 말씀을 하시는 게 올바른 순서라고 봅니다. 저는 분명 이야기합니다. 산경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라가야할 우리나라마느이 고귀한 문화유산이자 자산이라고요. 충분히 버거님의 산경표에 대한 지극한 사랑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더 이상 불필요한 논쟁 거두어 주시길 부탁드리겟습니다.
@현오 제가 신정맥을 하는 이유는 당사자로서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자성이 되는거니까요...???
비판을 하려면 본인이나 당사자가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죠...
제가 말씀드린 내용에 대해선 대부분 그냥 글에 있다는 쪽으로 미루시는군요...
산맥과 산경표와의 차이는 여기 가입하신 분들이라면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고, 또한 타인들에게 홍보도 하고 다니 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말한마디면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일들은 굳이 논란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관심과 변화를 독촉하는 수 밖에요...
@현오 일반적으로 자기 블로그를 운용하고 산줄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사람이나 그나마 판단하는 기준이라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 분들은 그 분들대로 논리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렇지 않은 분들은 사실 맹목적 추종을 하시는 분들이 많기에... 그런 것들이 왜곡을 양산하기 마련이고, 그런 왜곡이 쌓이면 분열이 생긴다는 우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부모와 자식이 싸우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런 싸움을 방지하는 것은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책무라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기엔 결과가 너무 좋지 않기 때문이죠...
@현오 어찌 됬든... 박성태님의 신산경표가 주장하시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산경표 훌륭하다... 더 훌륭한것이 있는데... 내 주장이 어떠냐...??? 이정도인가요...???
그리고 제가 대간과 정맥에 관련된 것만 지적을 했을 뿐입니다...
분명히 박성태님은 산경표에는 없는 규칙을 스스로 만드셨습니다... 기존의 대간과 정맥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이런 산경표따르기 카페에서 은근슬쩍 신산경표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식견이 없는 분들은, 굉장히 좋은 내용으로 착각 할수 있습니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용인데...
게다가 산행지에서 대대적으로 게재가 됬으니...ㅎㅎㅎ
@현오 현오님 죄송합니다... 제가 현오님의 마음과 노고를 몰라서 이런 댓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현오님의 의도가 잘못됬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입을 닫고 있으면 암묵적 동의로...모든 사람이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다들 입을 열고 싶지만, 지금 이 댓글창 처럼 지저분 해지기에... 모든 분들이 꺼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우리의 마음을 열어 제치는 하나의 현상이고 사실이라 생각하시고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세상의 뭐든 이른바 전문가는 자신만의 독트린으로 지향하는 이기심이 농후합니다. 그렇더라도 모든 이력은 이런저런 논란으로 무시되거나 보탬받거나 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흐름 아닐까요. 현오님의 지극한 논조...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