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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교훈 김 명 원 영암 출생. 전 경기부천교육청 관리국장. 창작 수필 등단 작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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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을 앞두고 공로연수를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건강과 여가생활을 위해 골프를 시작했다. 1년간의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졸업여행을 사이판으로 갔다. 동료들이 골프장에 나가잔다. 골프채를 잡은 지 얼마 안 되어 경기에 나갈 실력이 아니었으나 권유에 못 이겨 참여했다. 처음으로 필드(field)에 나가는 사람에게 머리를 올려준다 한다. 골프에 입문하는 초보자에 대한 대관식이다. 대학원 동기들이 사이판에서 나에게 머리를 올려 준 것이다.
골프채를 대여 받고 4인용 카트(Cart)를 타고 필드를 누볐다. 태평양 바다의 절경과 생소한 기화요초들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골프장에서 재미를 느끼기보다 빗나간 공 줍기에 바빴다. 움푹 파진 바다계곡을 넘어야 하는 코스에서는, 볼을 2개나 빠트리며 걸어서 돌아가기도 했다. 두 팀이 참여했는데 나와 같이 머리 올리는 초보자가 세 사람이 있었다. 골프경기를 한다기보다 18홀을 따라 다니며 룰(rule)을 익히며 실습을 했다.
그 후 아내와 같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골프채도 사주고 연습장에 같이 나갔다. 코치로부터 레슨을 받고 몇 달이 지나니 비거리는 짧으나 정확도는 나보다 더 나았다. 부부가 같이 골프를 치니 운동이 더 즐겁고 한층 값지게 느껴졌다. 동문들과 골프모임(16회)을 만들어 매월 정기적으로 경기를 하고, 전직동료 및 친지들과 친선 골프도 했다. 아내와는 천안, 화성 상록이나 군인 골프장과 인근 퍼블릭코스를 주로 이용했다. 용인으로 이사 온 동기도 골프가 좋아서인가 싶다.
이사 온 후, 영진 골프랜드 회원권을 구입하고 아내와 같이 매일같이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중에 경제적으로 실패하여 어려움이 있어 회원권을 팔고 연습장만 다니다, 둘째 아들이 창업을 해 이사(理事)로 취임 후 일정한 보수가 지급되어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에 맛들이면 치지 않고 백일수가 없다. 많은 골프장을 누볐다. 골프장마다 아름답게 조성한 주변경관과 푸른 잔디는 황홀하다. 재벌들이 운영하는 골프장은 더욱 잘 조성되어 있고 부킹도 어려우며 비용도 비싸다.
골프는 푸른 잔디 맑은 공기를 마시며 햇빛을 받으며 걸어서 쉬어가며 즐기는 멋진 운동이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경기를 마치고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온갖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그 날의 실수가 가시질 않는다. 그 때 이렇게 쳤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쳤나, 아쉬움만 남는다. 잘치고 못치고 걸어온 코스가 마치 인생의 역정처럼 느껴진다. 잘 맞아 환호와 찬사를 받기도 하고 오비나 해저드에 빠졌을 때는 울상이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를 때는 죽을 맛이다. 마치 인생의 쓰고 달고 시고 매운 맛을 다 겪는다. 누군가가 골프는 인생여정과 같다고 했다. 그 말이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골프는 철저한 규칙에 의해 진행된다. 10여개의 골프채로 거리와 각도에 따라 골라 친다. 80세 노인에서 어린이까지 남녀노소가 차별 없이 즐긴다. 공을 날려서 목표에 떨어뜨리는 쾌감은 온갖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정도(正道)가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 한다. 정도를 벗어나면 오비요, 해저드와 벙커가 벌점으로 유인한다. 정도를 가려고 정신력을 집중해도 마음과 같이 되질 않는다. 어떤 자는 골프를 자식에 비유하기도 한다.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골프는 멋지고 즐겁고 생활의 활력을 주는 좋은 운동이다. 그러나 건강과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골프를 시작한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한 골프는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한동안 경제적인 사정도 있었지만 손목에 골절을 입고 또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후 골프를 치지 못했다. 건강을 잃으니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다. 요즘은 건강이 회복되어 스크린 골프도 하고 연습장도 간다. 골프는 건강과 여가생활을 위해 즐기는 운동이지만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