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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물동] Specialist PT 원문보기 글쓴이: pt이경우
** 대한물리치료사 협회중앙회 좋은생각 게시판 글펌온겁니다**
이 글은 부산시 사하구 감천1동에 사는 뇌병변 장애1급 ‘박진영’의 모 ‘김원중’씨의 일기를 옮겨 읽기 편하시도록 수정하여 쓴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진정한 장애가 무엇인지 장애아를 가진 부모와 그 가족들의 애환이 어떠한지, 장애인 가족의 이웃들과 장애인들이 받고 있는 실질적인 교육, 복지, 의료 등의 혜택은 과연 어느 수준인지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시고 또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현재 둘째 아들인 ‘박진영’은 태어난지 15년 만에 기적적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사도, 물리치료사도 이 아이가 기어 다닐 것조차 예상하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과 또 그 부모의 한없는 노력과 기도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불어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께서 ‘박진영’과 그 어머니인 ‘김원중’의 삶을 통해 위로와 희망과 또한 소망을 얻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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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내외분께
용서(죄 사함)는 하나님이 준 가장 거룩한 선물이래요.
왜냐하면 내가 먼저 하나님한테 받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좋은 선물이거든요.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나를 한없이 낮아지게 해주신 하나님과, 이 세상 가장 소중한 내 두 아이들에게 늘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장애를 입은 아이들과 또 그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많은 엄마들에게 희망, 소망, 사랑을 전할 수 있게 허락해주신 그분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통해서 홀로 영광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만약 대통령 내외분께서는 도둑을 만나 피했더니 강도를 만나고, 강도를 피했더니 살인자를 만났다면 무엇을 생각할까요. 저는 수많은 자살 기도 속에서 죽음조차도 허락 되지 않았던 세월을 살아온 한 여인입니다.
-감사의 인사
우리 진영이가 두발로 서기까지 15년에 길고 긴 마라톤을 하면서 정말로 많은 분들의 배려, 사랑,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늘 밥을 먹을 때마다 진영이를 생각하며 먹었다는 많은 치료사 선생님들, 사하구 장애인 복지관, 한울 어린이집, 부산대학교, 무지개 어린이집, 성분도 병원, 뇌병변 복지관, 중구 복지관, 분당 서울대학병원, 분당 재생병원, 분당 어린이 보바스병원, 장애인 뉴삼성 어린이집, 초량 인창병원, 연제 부산의료원, 문화병원 등에서 진영이를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해주셨던 치료사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2005년 아이 아빠가 집을 떠났을 때 1년동안이나 무료로 치료 해주신 강미영 선생님, 10살에 (만8세) 송도 혜송학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교감선생님 담임을 맡으신 장보순 선생님, 물리치료를 담당하신 노석닌 선생님, 11살(만9세) 옥천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감선생님. 특수반을 맡아 4년동안 정말 수고해주신 강효정 선생님, 늘 한결같이 내 아이처럼 보살펴주신 보조교사님, 3학년 담임선생님, 4학년 고운정선생님, 5학년 담임선생님, 6학년 진은혜선생님,
무엇보다도 잊지 못할 분은 2학년 2반 담임선생님인 이정자 선생님, 늘 반찬과 남은 밥을 싸주시던.. 또 아이가 눈으로 모니터 화면에 나오는 마우스를 따라간다며 삼보컴퓨터 회사에 구구절절 저희 가족의 사연을 올려 컴퓨터를 마련해주시고, 너무 힘이 들어 주저 앉을 때마다 따뜻한 말씀으로 위로해 주신 선생님 고맙고 사랑합니다. 부산대학병원에서 간질을 담당하시던 남상욱 교수님, 정형외과 신교수님, 분당 서울대학병원 수술을 집도해주신 정진엽 원장님, 그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것을 후원해주신 CJ 뚜레쥬르 사장님(정진엽 원장님의 형님), 부산 상공회의소, 부산대학교 학생회관, 부산 적십자 회관, 대구 시민회관, 고려 수지침 세미나 할 때만 되면 늘 아이를 등에 업고 밖에 가만히 서 있다가, 점심시간 유태우 박사님이 세미나를 마치시고 단상에서 내려오실 때 쫓아 달려가 아이를 가만히 내려놓으면 손을 잡아주시며 잔잔한 미소를 우리 아이에게 보여주시던 고려 수지침 유태우 박사님, 그리고 대연동에 나누리 장애인 어린이집 원장님. 내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잊혀서는 안 될 것 같은 감사함과 고마움이 솟아납니다.
진영이를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우리 동네에 있는 구철인 부부치과 원장님 내외분, 구덕운동장 뒤편에 자리한 국제 이불집 사장님, 동대신동에 자리한 서부교회의 목사님, 박옥자님을 비롯한 구역식구들, 주일학교 선생님, 중간반 선생님, 많은 중보기도를 해주신 여러 교회의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식구들, 또한 나와 두 아이를 서부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눈물겹도록 감사한 것은 옥천초등학교에 2학년 때 만난 250명이 넘는 아이들입니다.
5년을 한결같이 “진영아 안녕” 하며 눈을 맞춰주고, 웃어주고, 말을 건내고, 놀아주고, 도와준 아이들, 그 아이들이 없었으면 어찌 우리 아이가 서서 걸으며 많은 또래말들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요. 정말 우리 아이가 다이아몬드 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내기까지 많은 분들이 갈고 다듬고 밀어주셨지만, 마지막으로 정말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옥천초등학교의 아이들일 것입니다. 제대로 눈도 못 맞추는 우리 아이에게 언제나 다가와 주고 이름을 불러준 이 천사 같은 아이들이 없었으면 오늘에 진영이가 존재했을까요. 비록 보장구에 의존해 한발짝 두발짝 걷지만 계속해서 많이 걷다보면 두 팔이 가벼워져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을 보여줄 것입니다.
앞으로 제게 얼마나 시간이 허락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아이에게 생활을 가르칠 것입니다. 언젠가 장애인의 날에 앞에 나가 대통령 내외분께 천성의 목소리를 들려줄 그날까지요.
-이웃에 대하여
2008년 12월 1일
난 몇 달 전 아파트 입구 관리비 봉투를 꺼냈다. 아파트 주민의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관리비에 5000원씩 자동으로 청구되어서 납부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번 달에는 두 집이 결혼식을 하게 되어 10000원이 청구된 것이다.
아이 아빠가 집을 나간지 4년째, 정부에서 주는 돈 5,60만원으로 겨우겨우 큰아이 학비와 작은아이 치료비를 대며 살아가는 우리집에, 관리비에 포함되어 빼앗기다시피 나가는 5000원은 너무나도 큰 액수였다. 몇 번이고 위원장에게 찾아가 우리집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봐달라고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번 달은 만원이나 청구되다니..
나는 또다시 술기운에 용기를 얻어 아파트 위원장 집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나온 위원장 사모님에게 호소했다.
“얘야 요번엔 두 집이 결혼하나, 너 이돈 무슨 권리로 나한테 받노. 어느 집 초상나면 5000원 달라하고, 어느 집 결혼하면 5000원 달라하고, 아이 아빠가 집을 나간지가 횟수로 4년이다. 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줄 아나”
“그걸 내가 정했어? 오 술 처먹고 와서 지X이야”
“왜 지X? 그래 그럼 이거 누가 정했노?”
“1동 107호(아파트 총무)에 가소”
“107호에 가라고? 그게 말이가. 어느 회사도 다 회칙이 있는데, 회칙 적은 것 있으면 가져온나. 니가 인간이가. 왜 고양이는 못키우게 하노. 널부러 늘어진 아이, 친구도 없이 방구석에서 혼자 TV만 보는 게 안타까워서 고양이 한 마리 손목에 매줬더니 그 고양이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있질 않나. 우리집 사정 뻔히 알면서 매번 경조사마다 돈 달라고 않나“
“누가 그런 새끼를 낳으랬나, 왜 지X이야”
이 한마디에 억장이 무너짐을 느꼈다. 누가 그런 새끼를 낳으랬냐니.. 자식을 가진 부모에게 할 소리인가. 우리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소리를 들어야하는가.
다음날 집에 위원장 사모님이 올라왔다.
개나 고양이를 이 아파트에서 못 키우게 정해놨다느니, 경조사마다 회비를 걷도록 정해놨다느니 이미 정해놓은 것이라 바꿀 수 없다느니.. 주저리주저리 회칙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예전에 아파트에서 키우던 강아지 30마리를 없앴던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있어 애완동물은 정말로 좋은 치료적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걷지 못해서 밖에 나가 친구도 사귈 수없는 아이에게 인터넷에서 알아봐 작은 새끼고양이를 선물로 주었다. 아파트에서 절대로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다고 하기에 아이에게 고양이를 지켜주기 위해서 1층부터 5층까지 뛰어다니며 사정사정해서 서명을 받고 보여주었다. 그러나 위원장은 허락도 안 받고 싸인을 받아와서 뭐하는 짓거리냐며 건방지다고 화부터 낼뿐이다.
우리 아이는 10년 동안 함께했던 아버지를 잊어버렸다.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냐고 물어보면 아저씨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제 겨우 인지가 어느 정도 되어서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로 떠난 형을 안 잊어버리고 보고 싶다며 울고불고 할 단계까지 왔는데.. 형이 보고 싶다고 통곡하는 아이에게 목수술까지 해서 강아지 한 마리 사주겠다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단 말인가..
어디 이뿐이랴 아이 아빠는 트럭을 몰고 다니며 행상을 하였는데 아이아빠 트럭의 적재함이 높다며 번번이 집에 찾아와 관리비를 더 받아야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발이 되어주고자 승용차 한 대를 샀더니 차가 두 대라며 주차비를 더 내라고 소리를 높이고.. 사정을 좀 봐달라고.. 애 치료비만 한 달에 70만원 이상 나간다고 애걸하여도 “안 힘든 집이 어디있어!”라며 돌아오는 건 박대뿐이었다.
어느 추석날 아래층에 사는 위원장 부인이 “어느 X년이 남의 집 대문에 똥을 묻혀놓았냐”고 욕을 하며 소리 소리를 지른다. 집에서 청소를 하다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문을 열고 아래층에 가보았더니 누군가 위원장의 집 앞에 똥을 한보따리 묻혀놓은 것이다. 위원장 부인은 고무호스로 물을 신경질적으로 뿌리며 위층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었다. 마치 우리아이가 혼자서 올라오다 묻혀 놓은 양.. 우리 아이가 비록 쉰내가 풀풀나는 무른 똥을 하루에 대여섯번씩 싸지만, 이 애가 난간을 잡고 혼자서 계단을 올라오며 계단에 똥을 묻힐 때마다 나는 열심히 닦았다. 그 똥을 누가 묻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날더러 들으라는 듯이 날카롭게 고함치는 그 소리가 내게는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아이를 가진 것’을 책망이라도 하는 듯이 들려왔다. 그 고함을 집에 작은 아이와 단 둘이 앉아 들으며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아이아빠와 같은 고향에서 온 한 이웃은 이야기한다. “너네 집안이 얼마나 양반이고, 어떤 집안인데 어쩌다 저런 아이가 나왔을꼬.. 쯧쯧..”
친척들도 한결 같이 이야기한다. “요즘 기관 시설이 얼마나 좋은데 그곳에 갖다 주면 여기에서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좋다. 왜 안 갖다 주고 내 동생 등골을 빨아먹냐.”
“니가 진작에 그 아이 기관에 맡겼으면 애아빠가 집을 나갔겠느냐”
사람은 인격적이어야 한다. 늘 인격적인 인간관계로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돌아보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걱정해 주던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이 아니었는가. 언제부터 기계적인 규칙과 규범들이 사람의 인격보다 높아졌는가. 아파트 주민들이 주민답게, 더 좋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회칙을 만든 것이다.
우리 아이는 저주가 아니다. 누가 그런 아이를 나으랬냐는 둥, 어쩌다 저런 아이가 태어났냐는 둥. 그런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할 병신이 아니다. 힘들면 기관에 갖다 버리면 되는 그런 인형이나 애완동물이 아니다. 언제부터 자식은 내가 편하고 내가 즐겁기 위해 낳은 존재로 전락해 버렸는가. 이 아이에게도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 아닌 일반사람들을 위해 세운 규범과 규율과 회칙들로 이 장애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려 한다면 그들이 어찌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 일반 사람들이 편하기 위해 회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애환과 아픔을 듣고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회칙을 만들어야한다. 더욱이 장애인들의 이웃이라면 사랑과 섬김으로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와주어야 하지않겠는가..
세계 보건기구에서 2001년 새롭게 재정한 ‘국제 장애 분류 ICF’는 개인적인 장애나 질병과 상황적 맥락(환경적 요소와 개별적 요소)간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기능과 장애를 설명한다. 따라서 장애란, 개인의 신체적 결함(팔, 다리의 절단, 뇌성마비 등)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신체적 결함을 ‘불편함’으로 느끼게 하는 사회적 제도와 상호작용하여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개인적인 신체적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사회가 그 결함을 수용하여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게 된다면 개인의 신체적 결함은 장애로 남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또한 마찬가지로 신체적 결함이 아니더라도 개인이 가진 문제들이 개인이 처한 환경적 상황과 상호작용할 때에 개인에게 차별과 불편함으로 다가온다면, 이것은 장애로 남는 것이다.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태생이나 저주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와 소통할 수 없는 비인격적인 마음들 때문이다.
누가 알겠는가? 자기 자신이 지금은 멀쩡하게 걸어 다니지만 휠체어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지.
교육
2009년 3월 12일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4년 동안 매일 같이 아침에 아이의 대소변 문제를 해결하고 1교시가 마칠 때 쯤 학교에 도착한다. 어느 날 차를 몰고 학교에서 마련해 준 아이를 위한 장애인 주차장에 가니 차가 한 대 놓여있다. 학교에 장애인 주차장이라곤 하나뿐인지라 다시 뒤로 나와 운동장에 차를 주차하고 행정실로 올라갔다.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서,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발이 닳도록 들락날락 거리던 행정실이었던가.. 6학년이니 이제 곧 졸업하는데 올해는 조용히 졸업 해야겠다는 생각에 차분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저.. 장애인좌석에 차가 있네요” 행정실 실장석에 앉으셨던 분이 벌떡 일어나 말한다.
“왜요 내차인데?” 행정실장님이 새로 부임하신 것이다.
“아니 그 자리는 저희 아이차를 대는 자리라서..”
서서 걸어 나오시는데 다리를 약간 절고 계셨다.
“선생님, 선생님 차입니까. 그럼 장애인 주차장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네요.“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장애인 주차장을 또 만들어야겠냐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실장님.
“이 아이는 뭡니까?”
“저희아이는 뇌병변 지체1급입니다. 저희 큰 아이도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 네. 학습은 됩니까?”
“전혀안됩니다.” 아이를 쭉 훑어보시며 알겠다는 듯이 끄덕이며 자리를 떠나신다.
아이를 반에 데려다 주고, 차를 다시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한 뒤 집에 돌아가려는데 ‘여기는 장애인전용 주차장입니다.’하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까지 반으로 찢어져서 너덜 너덜하던 이 팻말이 올해 들어 말끔하게 정리 되었는데 ‘이것을 고쳐준 것이 우리아이 때문만이 아니구나..’ 하고 씁쓸한 생각이 몰려 왔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 돌아가려던 것을 그만두고 뒷좌석에 앉아 ‘소망의 말씀’이라는 작은 소책자를 읽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교장선생님과 행정과 실장님이 아이 차 앞으로 다가와 말을 주고받고 있다. ‘이 아이가 올해 6학년이니 이 아이가 금방 졸업하면 여기에 주차하라’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다음에 장애인 아이가 또 들어올 것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직원들을 위해 자리를 내준단 말인가. 순간 난 문을 박차고 나오려다가 참았다. 조금 더 있으니 교장선생님은 가시고 실장님이 왔다 갔다 하시며 주차장을 보고 계셨다. 난 문을 열고 나와 실장님께 소리쳤다. “보세요. 조금 전에 교장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뭐라구요? 이 아이가 올해 6학년인데 어째요?”
“어머니 흥분하지마세요 아닙니다. 보조교사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내년부터 앞으로 그런 아이가 안 들어오면 보조교사 거처문제를 상의했습니다.”
“뭐라구요? 이제 3월인데 벌써 보조교사 문제를 논의한단 말입니까. 저 2년 동안 이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오려고 부산대학 병원에 1만원씩 주며 유해진단을 끊어다가 줄 때마다 담당하시던 분이 ‘아이가 너무 중증이고 물리치료가 많이 필요한 아이니, 옆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혜송학교에 가라’고 하시데요. 저 그 혜송학교에 2년 동안 다니다 왔습니다. 4년 전 이 학교에 전학 올 때도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아세요? 당시 교감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가 중증이니 중복이니 복합이니 받아줄 수 없다며 수차례 거절 하셨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있으면 다른 장애를 모방하는 타입인지라 일반학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래도 받아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우리아이와 같이 공부하는 짝의 학부영이 신고를 한다며 안받아주겠다는 한결같은 주장을 사정사정해서 겨우 전학 왔습니다.
이렇게 장애인들이 일반학교에 입학하는 것조차, 다니는 것조차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하시는데 벌써부터 보조교사, 주차장을 논의 하신다는 건 더 이상 장애 학생을 받지 않으시겠다는 말 아닙니까?“
”어머니 흥분하지 마십시오. 저 바빠서 들어가봐야합니다.“
“흥분? 흥분을 시켜놓고 흥분하지 말라니요. 선생님, 어떤 학부영은 그럽니다. ‘병신 같은 아이 하나 끌고 와서 여기 장애인 화장실 만들고, 저기 장애인 화장실 만들질 않나, 여기 특수반 만들고 저기 특수반 만들고, 엘리베이터 만들고.. 한 아이한테 그렇게 투자할 바에 그 돈으로 일반아이에게 쓴다면 얼마나 혜택을 받을 텐데.’합니다. 도대체 교육이 무엇입니까. 수많은 장애인들의 어머니들이 아이를 업고서 청와대 앞으로 나가 통곡했던 것이 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 아니었습니까. 우리 장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기 위해,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으며 다닐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까?”
급히 자리를 떠나시는 실장님.
도대체 교육이 무엇인가. 이런 형식적인 결과만을 바래왔더라면 국회나 청와대로 아이를 업고가 통곡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에는 서부 교육청, 제작년에는 거제리 교육청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임상교육을 하며 학교에 장애인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특수반을 만들기 위해, 보조교사를 채용하기 위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왔건만 이것이 단순히 내 아이가 학교 다닐 4년 동안만 잘 다니게 하기위한 일이었던가. 절대로 아니다.
그리도 일반학교에 내 아이가, 장애인 학생 한명이 있는 것이 마음이 쓰이고 불편하단 말인가. 정말 마음 써주고 신경써야할 아이는 특수반에 있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과 장애 아이들이 아니라 일반 학급에 사랑받고 자라지 못해 흥분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기 것만을 차지하려고하는 수많은 아이들이다.
뇌성마비 장애아이가 일반아이들보다 행동이 조금 느린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느린 것을 느리다고 못한다고 윽박지르고 가르칠 수 없다고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밥을 떠먹지 못한다고 학교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끊임없이 교육하고 가르치면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학교가 바로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던가.
장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고 가슴아파하며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한반씩 줄어들어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가슴아파하며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내가 남을 너무 비판하거나 어떤 피해의식이 너무 심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율곡이이도 어머니 신사임당의 헌신과 사랑이 키워낸 것이다. 아무 것도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지라도, 끊임없이 교육하고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면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년에 몇 번씩 학교에 도착해 아침에 주차하려면 장애인표지가 없는 다른 차가 주차되어있어, 차를 뒤로 빼 행정실로 올라가 이야기 해야만 한다. 주차장이 학교 뒤에 좁은 통로에 있어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후진을 한참해서 빠져나와야 한다. 언제 뒤에서 나올지 모르는 아이들.. 내가 그 아이를 다치게 하면 그 아이 엄마는 뭐라고 하겠는가. 옆에 특수학교가 있는데 여기 와서 남의 아이를 다치게 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작년에 전근가신 교감선생님께서는 자기친구도 이런 아이가 있는데 집에 애완견 한 마리 키우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하셨다. 아침에 특수학교 보내놓고, 저녁에 기관에 보내놓고, 즐거운 개인생활을 영유하다 밤늦게 아이를 받으면 집에서 재우기만 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개인생활을 즐기라며 권유하시는 그 말.. 장애인이 애완견인가. 또 장애가 있다고 다 똑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인가. 수만은 장애인들 중 똑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도 없거늘, 언제나 다 똑같이 애완견 취급해 싸잡아 놓고 특수학교라는 감옥 아닌 감옥에 격리시켜버린다. 장애인들은 같은 세계이면서도 다른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말과 생각을 하는 모든 사람들(부모, 선생 등)에게 이야기한다. “교감선생님 나 살아생전뿐입니다. 제가 죽고 나면 어차피 이 아이는 기관에 보내져 죽을 때까지 세상 속에서 격리되어 그런 생활을 보낼 것입니다. 나중에 어느 기관에 보내지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은 되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때까지라도 제가 헌신하는 것입니다.”
한명의 장애 아이가 걷고 말하기 위해서 ‘왜 굳이 일반학교에 가야하냐고, 차라리 특수학교에 다니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냐‘고 말한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 아이에게 또래문화를 만들어 주어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대화하면서 그 문화를 이해하고 언어를 배워나가도록 해줘야 하는 법이다. 그 나이에 맞는 문화와 생각을 통해서 아이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뒤집기를 못하면 뒤집는 것을 보여주고 뒤집기를 가르쳐야한다. 앉지를 못하면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앉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한다. 마찬가지로 걷지를 못하면 서서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며 친구들을 만나는 또래 아이들을 보여주며 장애 아이들에게 도전 의식을 부여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의 엄마들이 아이를 업고서 하루 종일 오직 한 가지를 위해서, 아이를 걷게 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다가 잠자리에 들 때도 밀린 숙제를 다 못한 마음으로 베개를 눈물로 적시는가.
내가 아파보지 않고 어찌 남의 아픔을 알겠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애인들을 보고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정치인이 된다고 한들 어찌 그들이 이 장애인들을 이해하며 치료하고, 변호하고, 정치할 수 있겠는가.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일반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 그 편함조차 꿈꿀 수 없는 장애인들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그들의 아픔과 불편들을 보고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지
2009년 8월 10일
사하구에 있는 호산나 복지제단에서 전화가 왔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바우처 사업에서 호산나 복지제단으로부터 활동보조인을 소개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만족도 조사차 전화 드렸습니다.” 이번에 또 새롭게 바뀐 활동보조인의 만족도를 물어보는 전화이다.
“네 이번 주 토요일 날 초읍 어린이 대공원에 잘 갔다 왔습니다. 전에 있던 분은 놀이기구를 못 타신다 하더니 이번에 오신 분은 놀이기구를 잘 타시데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진영이를 맡기 전에 참 좋은 아이를 맡고 있었다고, 그 아이는 치료실에서 집까지 차를 타고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되는 아이였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서 이야기 했습니다. 제 아이는 많이 힘드실 거라구요. 같이 목욕탕도 가주셔야하고, 놀이기구도 같이 타주셔야하고, 차에서 타고 내릴때도 도와주셔야 한다고요. 힘드시면 언제든 말씀하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활동보조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지역적인 것도 감안해야하고 또 어떤 류의 장애아를 배정받는지도 감안해야 하지 않습니까.
차에서 내릴 때마다 휠체어까지 내려서 태우고 밀어주어야하고, 유원지에서 놀이기구 탈 때도 일일이 짊어지고 태워 주어야하고, 산꼭대기에 있는 어린이대공원까지 올라가는 길만해도 경사가 어마어마합니다. 게다가 목욕을 같이 가면 다리를 들어 올리라는 말을 인지해서 다리를 들어 올릴 줄을 아나, 팔을 들어 올릴 줄을 아나, 누가 이런 진영이같은 힘든 아이를 보려고 하겠습니까. 차로 출퇴근만 도와주는 활동보조와 임금까지 똑같은데요.“
“어머니 그건 보건복지부에 이야기하세요. 저희와 상관없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까 2년 반에 7명이 바뀌는 형상이 아닌가. 이런 뇌병변 장애아이일수록 돌보는 사람이나 치료하는 사람이 자주 바뀌면 안 되거늘, 그 1년을 못 봐주어서 두세 달에 한 번씩 사람이 바뀐다. 우리 아이가 30년을 더 산다고 치면 그동안 100명이나 바뀌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차를 가지고 학교에서 치료실, 치료실에서 집까지 2시간동안 운전만 해주면 시급 7,8천원을 받는 셈이다. 게다가 부모들이 활동보조인에게 자기 돈으로 기름을 넣고 다니면 4시간을 쳐주니, 누구나 이런 쉬운 장애 아이를 선호하지 않겠는가. 이러니 진영이를 맡기는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활동보조 사용 시간 혜택이 많아도 활동보조인의 눈치를 보며 시간도 더 주고, 먹을 것도 늘 챙겨줄 수밖에 없다. 60시간을 받는다고 치면 20시간은 거저 주는 셈인 것이다. 국가에서 휴가를 따로 받음에도 힘들다고 10시간 휴가 달라고 하면 행여 그만 두실까 하여 조마조마한 마음에 그렇게 하시라고 이야기하고, 근무 중에 운전 학원시간이 잡혔다고 하면 아이를 돌보는 중에라도 보내드려야 하고, 어찌하면 기분 상하지 않게 유대를 맺을지 얼마나 고민하는지 모른다.
나는 내 아이를 15년간 키우면서도 이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생활 속에서 정말 이 아이를 보조해야할 활동보조인이 3개월, 4개월 본다고 이 아이의 행동패턴을 이해하겠는가. 똥오줌조차 못 가리는 아이가 마려우면 마렵다고 말은 못하고 행동으로 나타내면 그걸 보고 배변훈련을 시켜야하는데, 고작 3개월 돌보고서 어찌 배뇨를 시킬 수 있겠는가. 결국 평생 기저귀만 채워놓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이 활동보조의 본업이 될 것이다. 왜 기저귀를 진작에 채우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한번 기저귀를 차기 시작하면 장애인들의 배변훈련은 그것으로 끝이다. 내가 살아생전만이라도 배변훈련을 시키고자하는 내 의지인 것이다.
왜 그분들(활동보조인)의 수고를 모르나.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장애인들의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찾아가서 무엇이 필요한지 조차, 이 장애인에게 어떤 수준의 활동보조가 필요한지 조차 관심 없는 동사무소직원들과 복지사무소의 직원들로 인해 미숙한 현행법으로 ‘활동보조’를 다른 직장을 찾기 전에 잠깐 하는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분들(활동보조인)은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 첫 마음을 잊어버린 채 더 쉬운 아이, 더 편한 장애인을 찾는, 더 편하게 돈을 벌기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참 그렇다. 2003년에 사건이 터진 주례에 있는 뉴XX 장애인 어린이집 조기치료실 사건은 구청직원들이 얼마나 복지에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곳은 구청에 신고도 하지 않은 채, 방 4개 중에 하나는 노XX 선생님이 물리치료를 하고, 또 하나는 서XX 선생님이 언어치료를 하며 시간당 25000원이라는 거금을 받고 불법 조기치료실을 개원했다. 당시에 나 역시도 이 선생님들이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에 치료를 받으려 다녔었다. 그러나 치료비가 너무 비싸 내가 선동해 1500원을 치료비를 하향 조절하니, 치료사들이 치료실 문을 닫겠다며 아이를 업고 들어간 한 엄마한테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더라는 것이다. 엄마들은 내게 항소하기 시작했다. ‘형님이 뭔데 돈 25000원주고 우리가 치료 받겠다는데 그러냐’ 하며 ‘장애인 어린이 집이 뭐가 필요하냐’며 많은 엄마들이 날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그래 그럼 너희들은 25000원씩 내고 물리치료 받아라. 국가에서 장애인 어린이집 선생님 월급 나오고 아이들 보육료도 한명 당 23만원씩이 나오는데 굳이 25000원씩이나 받으면서 치료하는 건 너무하지 않니. 너희들도 세월을 살아봐라. 진영이 근 10년 동안 치료받았다. 봐라 아직 앉지도 못하질 않느냔 말이다. 난 그만두겠다.”하며 진구청에 전화했다.
“진영이 엄마입니다. 뉴XX어린이집에 진영이 앞으로 나가는 7월 달 보육료 주지 마십시오. 제 아이는 그만 두었습니다.”
“그래요 어머니 같은 분들이 많아야 됩니다. 그런데 왜요?”
“그곳에 조기치료실을 내걸려고 하네요.”
“뭐요 조기치료실? 그곳에 조기치료실을 걸면 안되는데..”
“장소가 없는데도 반지하에 부모대기실을 폐쇄하고 그곳에 간판을 걸라고 합니다. 또 아이들 기저귀 값이 많이 나온다며 기저귀 값에 간식비도 받네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 분명히 이야기 했음에도 정작 1년 뒤 사건이 터지니 그때 전화 받던 그분은 온데간데없다. 발로 뛰는 복지는커녕 불법 치료실 개원조차 관심 갖지 않는 것이다. 결국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한없이 치솟는 치료비를 참다못한 부모들로 인해 이 사건은 세상에 공개되었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다. 책상에 앉아 펜대를 굴리며 탁상공론만 했지, 정작 발로 뛰어다니며 장애인을 가진 부모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발로 뛰는 복지사업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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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 등에 업힌 아이가 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원하는지 모릅니다. 또 그 우물 안 300미터 밖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모릅니다. 밖에 시장을 보러 나가는 것조차 아이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으면 아이를 등에 업고서 나가야 하는 세상이니 한탄스러울 수밖에요.
그래도 이런 상황 속에서 너무나 감사한 것은 우리집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사하구 장애인 복지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집에 전기면 전기, 휠체어가 망가질 때마다 손 내밀면 곧 와서 도와주니 말입니다
첫댓글 보호자들이 물리치료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완벽한 치료??? 각자 생각해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