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일 - 오르비고에서 소모사까지(8월 6일, 토)
연선생님,
오르비고의 알베르게에서 편안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출발 시간은 5시 35분이었다.
새벽의 어두운 여명 속에서 아름다운 길들을 어렴풋이 바라보며
걷는 것도 보도여행의 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에서는 아침과 오전에 많이 걸어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낮이나 오후에는 햇볕이 강하여 쉽게 지치고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한참을 따라가니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이름이 산티 바예스테였습니다.
마침 열고 있는 카페가 있어서 카페라떼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카페의 바로 옆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한 한국 여학생이 나왔습니다.
반가워서 한국말로 아는 체하니 그 여학생도 해맑게 웃으면서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
대학생 같이 어리고 참한 외모에 비해 나이는 꽤 들은 여성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였는데 지금은 디자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디자인 프리랜서라는 일이 매우 창조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데,
현장에서 일하다가 보면 아이디어가 고갈 되어서 애를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시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일정을 상황에 따라 걷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15킬로를 걷기도 하고 어떤 날은 2,30킬로를 걷는다고 했습니다.
소녀티가 나는 그녀의 어색한 미소 속에서 여행을 즐기는 행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발데이 글레시아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나니 날이 훤히 밝아왔습니다.
아침 햇살이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들녘을 마음껏 달리고 있었습니다.
전원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두어 시간 걸으니
중세풍의 아름다운 마을인 아스트로가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스트로가의 아름다운 거리에 흠뻑 취해서 걷다보니 배가 고팠습니다.
슈퍼에서 바게트 빵과 과일을 사 가지고 아스트로가를 빠져 나와
넓은 고원의 들판을 마음껏 즐기며 점심을 먹으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함께 묵었던 순례자들이 지나가면서 다들 반가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마침 크고 무거운 배낭을 맨 이슈바리도 활짝 웃으며 지나갔습니다.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이슈바리도 같이 잤습니다.
저녁 먹고 정원에서 이슈바리와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볼리비아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해온 흑인 여성인 이슈바리는
놀랍게도 6명의 아이 엄마였습니다.
그녀의 적극적이고 밝고 긍정적인 그녀의 성격은
충분히 매력적인 여인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이슈바리와는 한참 전에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사스트로가를 오기 전에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부근의 간이 휴게소였습니다.
동료의 크레덴시알에 그곳의 스탬프를 찍으려다
자신의 크레덴시알을 전 알베르게에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주일 넘게 걸으면서 곳곳의 스탬프를 찍으면 좋아하던 동료가
잃어버린 크레덴시알 때문에 망연자실하는 모습은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마침 옆에 우리 사정을 보고 있던 이슈바리가
그 알베르게에 전화를 해서 다음 숙소로 정한
소모사의 엘카미난데 알베르게로 배달해주겠다고 약속을 받아주었습니다.
네덜란드인인 이슈바리가 스페인을 잘 하는 것이 신기했고
또 그녀의 유창한 스페인어 실력에 놀랐습니다.
이슈바리는 순례길에 만난 또 다른 아름다운 인연이었습니다.
소모사의 엘카미난데 알베르게까지는 두어 시간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비바람이 오락가락 하는 길을 2 시간을 걸으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니 동료의 크레덴시알이 도착하였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동료를 위하여 맥주로 축배를 했습니다.
산중턱에 있는 소모사 알베르게는 전형적인 중세 순례자 마을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알베르게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 만찬을 즐겼습니다.
공짜로 나오는 포도주 한 병을 다 마시는 행복을 누리면서 말입니다.
저녁 만찬에 포도주를 곁들여 즐기는 것은 정말 큰 기쁨입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마시면 도보여행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포도주가 공짜에 맛과 향까지 기가 막히니 어찌 그 유혹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잘 먹고 마시고 나서 소화도 시킬 겸 소모사 마을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몇 가구 안 되는 마을은 아담하고 정겨웠습니다.
오늘도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소진 올림.
첫댓글 오~ 완전 부럽습니다. 저도 유럽에 있을 때 정말 해봐야지 하고서는 못하고 온 순례인데 정말 멋있으세요
정말 하루 하루가 행복할 꺼 같네요 끝내실 때 까지 즐겁고 건강한 순례 되세요 ~ ㅇ와!!!!! 다시 한번 완전 부럽습니당!!!!
네~~~, 정말 아름다운 길이 많았습니다. 이미 갔다는 왔구요. 글을 정리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진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내용들이 다 거기서 거긴 거 같아서 쓰다가 제 자신이 지겨워져서 중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폰지밥님의 리플을 읽다보니 끝까지 다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재미가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쓴 보람이 있겠다 싶어서요.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힘을 주신 스폰지밥님께 감사 올립니다.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