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론>
김상옥의 현대시조 ‘편지’와 ‘그네’에 대하여
정 성 수(丁成秀)
가곡 <편지(봉선화)>와 <그네(추천)>로도 알려진 초정 김상옥(1920~2004)은 ‘현대시조’의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을 잇는 훌륭한 시조시인으로서 한국 ‘현대시조사’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귀한 존재이다. 그는 우선 시조(시)적 재능이 뛰어났고 노력 또한 뛰어났고 그에 따라 당연히 작품도 그 누구 못지않게 뛰어났다.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 김상옥 시조시인은 ‘고시조’의 황진이와 더불어 대한민국 역대 ‘시조사’에서 그야말로 쌍벽을 이루는 천재 시조시인이다. 상상력, 감성, 언어 감각, 표현력 등을 종합해 보면 황진이나 김상옥은 둘 다 가히 천재라 부를 만하다.
아마도 예술만큼 타고난 재능이 특별히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부문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피나는 노력만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된다는 말을 필자는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론 타고난 재능만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된다는 말도 역시 믿지 않는다.
말하자면 김상옥 시조시인은 그 두 가지를 두루 잘 겸비한 시인이다. 적어도 그는 정형시인 ‘현대시조’를 자유시인 ‘현대시’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어찌보면 그의 탁월한 재능과 노력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김상옥 시조시인의 노력의 일단을 보면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추고(퇴고)’를 인쇄 직전에 들어가기까지 수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마디로 말해 그는 철저한 장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김상옥 시조시인은 경남 충무에서 태어났다. 그의 정규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대학은커녕 중학교 입학조차 한 적이 없다.
그는 소년시절 인쇄소 문선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을 했다. 일반 공부도 문학 공부도 모두 다 독학이었다. 그렇게 해서 교사가 되고 한 사람의 시조시인으로서 중앙문단에 등단했다.
1945년 8.15 해방 후 그는 삼천포, 부산, 마산 등지에서 중고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시조 창작에 몰두했다. 문단에는 일제시대였던 1939년, 그 당시 한국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종합문예지『문장』10월호에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의 추천에 의해 한 사람의 시조시인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때 추천 받은 작품이 바로 나중에 가곡으로 알려지게 된 <봉선화>이다. 그 현대시조 <봉선화>는 동향 출신인 윤이상 작곡가가 곡을 붙여 가곡이 되면서 제목이 <편지>로 바뀌었다.
그는 1947년 첫 시조집『초적』을 상재했고 그 후 시조집뿐만이 아니라 시집과 동시집도 상재했다. 또한 김상옥은 시조와 시 외에도 그림, 서예, 전각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타고난 종합 예술가이다.
김상옥 시조시인은 ‘고시조’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현대시조’의 수준과 품격을 한층 더 높여준 공로자로 평가 받는다. 그는 ‘현대시조’라는 이름 아래 ‘고시조’의 전통적 형식을 파괴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교적 일반적인 고시조 정형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한국적 생활과 사상과 정서, 즉 전통적 서정의 세계를 각 작품마다 잘 녹여내었다. 다시 말하자면 다양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고시조의 형식 속에서 자신의 표현 양식으로 개성있게 잘 표현한 시조시인이다.
그의 시조는 서정적 낭만시로서 화려하면서 명상적이고 관념적이고 지성적이다. 사물에 대한 깊은 관조와 통찰력을 뿌리로 한 표현의 묘와 함께 예스러운 우아한 언어 구사 속에서 현대적 감각을 그 특유의 자연스러운 ‘율격’에 멋지게 담아내었다.
이 나라 현대시조의 위상을 한 차원 높여놓은 김상옥 시조시인은 지난 2004년 부인 김정자 여사가 운명하자 갑자기 식음을 전폐, 장례식이 끝난 이틀 뒤에 작고했다.
성악가들에 의해 가곡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편지(봉선화)>는 김상옥 시조시인의 등단작일 뿐만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 작품이다.
우선 그 시조(가사) 내용을 보자.
비 오자 장독대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라
김상옥 시조시인은 1남 6녀 중 막내로서 위로 여섯 명이 모두 다 ‘누님’이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환경적으로 여성들의 섬세한 감각과 감성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따라서 그의 사물에 대한 감각이나 감성은 이미 타고난 것에 더하여 가정의 환경적 요인이 적지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은 굳이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상옥 시조시인은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대단하였다. 일제시대 때 우리 글로 시를 써서 사상범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그때 한 누님이 감옥으로 그를 찾아갔지만 면회가 허락되지 않아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온 김상옥 시조시인이 그 누님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날 누님을 그리워하며 이 시조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평시조(단시조)’ 세 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가장 흔한 ‘고시조’는 ‘평시조’(엇시조, 사설시조도 있다)이지만 육당 최남선이 ‘평시조’를 반복하는 ‘연시조’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이후 현대 시조시인들이 즐겨 쓰는 시조 형식 중의 하나이다. 물론 시대적으로는 ‘현대시조’이다.
1편의 연시조 중 첫 평시조는 4음보(비 오자, 장독대, 봉선화, 반만 벌어)두 번째 평시조도 4음보(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 번째 평시조 역시 4음보(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로 모두 12음보로 되어 있다.
두 번째 평시조도 초장 4음보(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중장 4음보(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종장 4음보(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모두 12음보이다.
세 번째 평시조 역시 초장 4음보(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중장 4음보(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종장 4음보(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라), 모두 12음보이다.
‘고시조’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인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을 보자.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 한가운데를 베어내어/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가/사랑하는 임(님이 아니다)이 오시는 밤이면 (그 밤이 더디 새게) 오래오래 펴리라)
이 고시조 역시 초장 4음보(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중장 4음보(춘풍,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종장 4음보(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모두 12음보로 이루어져 있다.
‘음보’는 시조(시)를 읽을 때, ‘한 호흡 단위’로 느껴지는 운율 단위를 말한다.
최근의 현대시조 중에는 고시조의 기본적인 음양률(음수율)을 파괴해서 자유시와 거의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형식으로부터의 일탈을 일삼기도 하고 양장시조라고 해서 초장 종장 두 장으로만 된 시조, 심지어 단장(종장)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시조도 씌어지고 있다.
그러나 김상옥 시조시인은 시조가 우리 고유의 정형시라는 점에 대해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형식과 운율을 전통 그대로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정형시로서의 시조 형식을 지나치게 자유시에 가깝게 파괴하는 것은 오히려 시조의 정체성을 무너뜨려서 시조의 위상과 존재 가치를 스스로 훼손시키는 우를 범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김상옥 시조시인의 시조 형식에 대한 전통의식은 그 나름의 충분한 당위성과 의의를 지니고 있다.
연시조 <편지(봉선화)>의 첫 평시조는 남동생인 화자가 시집간 누님과 어린 시절에 있었던 ‘봉선화’꽃에 대한 여러 가지 추억을 떠올리며 그 봉선화를 혼자서 보기가 너무 아쉬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누님에게 과거와 현재의 이런저런 자세한 사연들을 편지로 적어 보내려고 하는 애틋한 그리움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이 중장이 종장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는 데 대한 동기 부여의 핵심이다. 물론 시적 화자와 누님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는 사람이 아니라 식물, 즉 꽃의 일종인 ‘봉선화’이다.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살고 있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인간적 연결조차 힘든 사회(이미 앞서 얘기한 대로 김상옥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면회 온 혈육인 누님조차 만날 수가 없었다), 즉 사람 대우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제 강점기 시대, 화자는 사람이 아닌 추억의 꽃 ‘봉선화’를 중간 매개체로 하여 사람과 사람과의 간접적 만남, 즉 정서적 만남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실행시켜주는 것이 바로 문자와 문자로 사람을 이어주는 ‘편지’이다. 따라서 ‘편지’는 단순한 안부 전하기가 아니라 화자와 단절된 누님과의 정서적 교감을 부활시켜주는 하나의 정신적 구원체로서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조에서의 ‘봉선화’는 추억의 대명사이고 ‘누님에게 편지를 보내는 행위’는 그 추억을 통한 일종의 현실 극복이다. 더구나 ‘봉선화’는 조선 헌종 때 정일당 남씨가 지은 100구로 이루어진 가사 <봉선화가>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 고유의 꽃일 가능성이 크다.
오랜 나날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역사의 희로애락을 지켜온 꽃 ‘봉선화’! 민족의식이 강했던 김상옥은 ‘봉선화’를 가족과 가족, 한민족과 한민족, 우리 민족과 빼앗긴 조국을 연결하는 하나의 중요한 상징적 존재로 활용한 것이다.
‘장독대’ 또한 누님과 화자를 연결시켜주는 가장 주요한 매개체 중의 하나이자 한민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음식문화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소중한 상징적 존재이다.
그 ‘봉선화’ 꽃잎이 빗속에서 반쯤만 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피어있는 반은 화자의 추억의 몫이고 앞으로 피어날 반은 누님과 함께 새로운 사연을 만들고 싶은 현재, 혹은 미래의 몫이다.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보지 못하고 누님과 함께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 꽃이 ‘부활’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님에 대한 남매로서의 정의 부활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이 나라 이 민족의 부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봉선화’는 조선인의 해방, 빼앗긴 조국 해방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연시조 1편 중 두 번째 평시조의 초장은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이다. 화자가 보낸 편지를 읽고 누님은 남매간의 긴 추억과 현재의 삶을 반추하면서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다.
누님의 웃음은 남동생과 공유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반추에서 솟아나오는 것이고 울음은 누님과 동생, 민족과 민족, 상실한 조국에 대한 슬픔과 고통에서 나오는 울음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시조의 화자는 누님이 자신의 편지를 읽고 웃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 웃음은 가족의 일원인 누님의 웃음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웃음과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자가 쓴 편지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다름 아닌 우리 민족과 조국의 해방에서 오는 보다 진폭이 큰 웃음일 것이다.
중장의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에서 ‘삼삼’은 ‘잊혀지지 않고 눈앞에 보는 것같이 또렷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다음의 ‘이는’은 ‘일어나는(없던 현상이 생겨나는)’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누님이 화자의 편지를 읽고 시집가서 때로 잊고 지냈던 ‘고향집’을 다시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리워(그리시고)’ 할 것을 기대한다. ‘고향집’은 화자와 누님의 집이자 또한 우리 민족의 집, 즉 조선인의 조국산천이기 때문이다.
종장의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는 누님과 화자가 어린 시절의 고향집에서 함께 손톱에 봉선화 꽃물 들이며 따뜻한 정을 주고받던 상황, 즉 평화롭고 행복했던 시절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 생각은 물론 가족에 대한 사랑이자 더 나아가서 민족애, 조국에 대한 사랑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대와 희망 속에 전개되던 아름다운 꿈의 행진은 연시조 중 마지막 세 번째 평시조에서 파탄을 일으킨다.
초장과 중장, 즉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까지는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다만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행복을 누리던 순수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여기서 ‘찬찬’이나 ‘손가락 가락’이 주는 상황의 구체적 묘사와 울림소리(유성음)의 반복에서 오는 운율의 아름다움은 김상옥 시조시인다운 훌륭한 표현이다.
그 행복한 상황은 마지막 종장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라’에서 반전을 가져오게 된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평화와 행복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서 ‘꿈속에 본 듯한’ 비현실적 현실이 돼버리고 ‘지금은…힘줄만이 서노라’.
즉 이제는 이미 사라진 가정의 평화와 행복, 민족의 평화와 행복을 되찾기 위한 새로운 투지만 솟아오르는(‘힘줄만 서’는) 극한상황이다.
따라서 초정 김상옥의 현대시조 <편지(봉선화)>는 개인인 누님 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사실은 나라 잃은 우리 백의민족 모두에게 보내는 한 시조시인의 특별서한인 셈이다.
이 시조에서의 묘미는 시조의 전통적 음보와 울림소리, 그리고 반복법 등에서 오는 경쾌한 음악적 운율뿐만이 아니라 ‘봉선화 반만 벌어’라든가, ‘눈앞에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라든가, ‘하마 울까 웃으실까’라든가,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이라든가, ‘실로 찬찬 매어주던’이라든가, ‘하얀 손가락 가락’ 등 김상옥 시조시인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개성적 표현 기법이다.
각 평시조의 종장 구절을 ‘보내자’, ‘생각하시리’, ‘서노라’ 등 의미와 표현의 변화를 거듭하면서 현대어와 고어체를 적절히 혼합해 사용한 것도 이 작품의 품격과 시적 예술성을 더욱 높여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다음엔 김상옥 시조시인의 <그네(추천)>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 작품 역시 윤이상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 듯 다시 뵈고
휘날려 오가는 양 한 마리 호접처럼
앞뒤 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어룬님 기두릴까 가비얍게(가볍게) 내려서서
포란잔 떼어물고(포란잠 빼어 물고) 낭자 고쳐 찌른 담에
오질앞(오지랖) 다시 여미며 가쁜 숨을 쉬도다
<편지(봉선화)>처럼 이 시조도 ‘연시조’이다. 연시조 중 첫 번째 평시조의 음보는 초장 4음보(멀리, 바라보면, 사라질 듯, 다시 뵈고), 중장 4음보(휘날려, 오가는 양, 한 마리, 호접처럼), 종장 4음보(앞뒤 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모두 12음보이다.
모두 다 전통 운율을 그대로 살린 고시조적 율격을 취했다.
그것은 보수나 혁신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고유의 시조 ‘정체성’의문제이다. 고시조의 율격을 살리면서도 김상옥 시조시인의 현대시조는 표현에 있어서 고시조에 비해 품격과 문학성(예술성)이 전혀 다르다. 그의 표현력, 한국어 구사력은 대부분의 고시조들이 비해 시적으로 탁월하다.
<그네(추천)>는 그저 단순한 그네타기를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네’를 타면서 바라보는 조국 산천, 일제에 빼앗긴 금수강산을 노래한 시조이다. 이 작품은 8.15 해방 후인 1948년에 발표됐지만 그의 민족애와 오랜 추고 습성을 생각하면 이미 일제시대 때 씌어진 작품일 수도 있다. 설사 해방 후에 씌어졌다고 할지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에서의 ‘그네’는 한국 여인(한국인, 조선인)의 아름다움과 조국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노래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요 수단이다. 만일 이 시조가 일제시대 때 씌어졌다면 김상옥 시조시인이 ‘그네’라는 소재를 택한 것은 이미 사상범으로 투옥된 전력이 있는 그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일종의 변장술을 쓴 셈이다. ‘그네’는 물론 우리의 오랜 민속놀이 중의 하나이므로.
김상옥 시조시인은 그저 평범한 듯한 민속놀이를 앞세워서 사실은 조선(한국)인과 조국 강토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것이다. 이 또한 너무나도 당연히 김상옥 시조시인의 뜨거운 민족애, 조국애의 발로이다.
자유시로 치면 1연에 해당하는 연시조 첫 수(평시조)에서의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 듯 다시 뵈고/휘날려 오가는 양 한 마리 호접처럼’은 ‘사라질 듯 다시 보이는’ 그네 타는 여인을 ‘한 마리 호접’, 즉 ‘한 마리의 나비’에 비유한 것이다.
화자가 ‘멀리서 바라’볼 때, 나비처럼 가볍게 그네를 타는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경쾌하다. 그야말로 평화스럽고 행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앞뒤 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그 여주인공을 더욱 평화롭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이 나라 금수강산, 그네를 타는 앞쪽과 뒤쪽에 펼쳐져 있는 숲과 그 속에 가지가 휘늘어진 푸른 버드나무와 그 나뭇가지 사이로 들려오는 아름다운 꾀꼬리 울음소리이다. ‘꾀꼬리도 울어라’에서의 ‘울어라’는 이 시조에서 명령형이 아니라 ‘꾀꼬리도 우는구나!’하는 감탄형이다.
두 번째 수 초장 ‘어룬님 기두릴까 가비얍게 내려서서’의 ‘어룬님’은 ‘사랑하는 이’(조국의 의인화)의 고어적 표현이고 ‘기두릴까’는 ‘기다릴까봐(기둘르까)’의 사투리이다. 이런 경우 사투리가 표준어보다 훨씬 더 정감어린 표현이라서 시적 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방언을 사용한 것이다. (시에서는 산문과 달리 문법적으로 사투리 사용이 무한 허용된다)
‘가비얍게 내려서서’의 ‘가비얍게’는 ‘가볍게’의 고어이다. 현대어 ‘가볍게’보다 고어 ‘가비얍게’가 훨씬 더 가벼운 느낌과 함께 미묘한 운율까지 잘 살려주고 있다. 시조가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시가이므로 김상옥은 정형시로서의 형식뿐만 아니라 표현 언어까지도 가능하면 옛것을 효과적으로 잘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것 또한 그의 강한 민족의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중장의 ‘포란잔 떼어물고’는 ‘포란잠 빼어 물고’의 오기이다. ‘포란잠’은 ‘알을 품은 듯한 비녀’, ‘즉 비녀 한 쪽은 길고 나머지 비년 한 쪽의 모습이 알처럼 둥글기 때문에 ‘머리에 꽂은 비녀’를 ‘포란잠’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낭자 고쳐 찌른 담에’에서의 ‘낭자’는 예전에 ‘여인이 쓰던 딴머리(가발)’이고 흔히 쪽진 머리 위에 그 딴머리를 얹고 긴 비녀를 꽂았다. 그네를 뛰다가 흐트러진 가발을 다시 ‘고쳐(다듬어)’ ‘찌른(비녀를 꽂은)’ ‘담(다음)에’.
종장 ‘오질앞(오지랖) 다시 여미며 가쁜 숨을 쉬도다’에서의 ‘오질앞’은 ‘오지랖’의 오기이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이다. 흐트러진 ‘겉옷의 앞자락’을 ‘다시 여미며(바로잡아 단정하게 손질하며) 가쁜 숨을 쉬는구나’. ‘쉬도다’는 물론 ‘쉰다’ ‘쉬는구나’의 옛적 표현이다.
여기서의 ‘가쁜 숨’은 그네타기에 의한 것이자, 빼앗긴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민족과의 따뜻한 재회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오는 특별한 ‘숨가쁨’일 것이다.
첫 수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꾀꼬리’는 대자연 속에 살고 있는 하나의 새일 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조국 해방의 노래에 대한 상징이다. 또한 첫 수의 주체적 대상은 ‘꾀꼬리’이고 둘째 수의 주체적 대상은 ‘어룬님’이다. 그러니까 이 시조의 주인공인 ‘여인’과 여인의 ‘어룬님’은 ‘꾀꼬리’의 울음 소리, 즉 해방의 노래 소리를 간절히 기다리는 나라 잃은 조선인의 상징적 존재이자 장차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해방의 노래를 부를 사람들이다.
초정 김상옥 시조시인은 한글로 쓰는 한국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를 그의 깊은 민족애와 조국애, 민족적 정서를 표현하는 하나의 정신적 기둥으로 세운 한 사람의 애국적 문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해방된 조국 땅에서 한국인이 한글로 쓴 가사(시조)를 한국인이 작곡하고 한국인 성악가가 부르는 행복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가곡들이 세계에 널리 알려져서 수많은 지구인들이 애창하는 노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한국가곡연구소>뿐만이 아니라 정부 관련 부처, 기관과 성악가들을 비롯한 여러 음악인들과 우리의 가곡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2012/2/16일 19시
일당산 곰지기 계곡에서
- <소리>(한국가곡연구소 회보) 2호(2012/05/20)
|
첫댓글 봉숭아꽃 다시 피는 계절입니다.^^
어제는 가을의 문턱, <입추>!
여름이 나는 싫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