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11여름 제9회 밀양인문고전 아카데미에 참여하고-말(言語)과 사유(思惟)의 향연-/ 2011.8. 10. 밀양신문 12면

[백파]

주부기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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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2011여름 제9회 밀양인문고전 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밀양시립도서관에서는 2011 여름 제9회 밀양인문고전 아카데미가 열렸다. 이는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소장 정출헌 교수), 인문한국(HK), [고전번역+비교문화학연구단]이 주최하는 것으로 매해 1월과 7월 방학을 맞이하여 시민, 교사와 청소년, 학부와 대학원생 등과 함께 고전과 관련된 여러 가지 강좌를 진행해 오고 있다.

올 여름방학, 제9회 고전아카데미에도 멀리 부산, 창원, 울산, 양산 등 여러 곳에서 교사와 중·고등학생, 가정주부, 여든이 넘은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150여 명이 참여하여 무더위도 잊고 교수님들의 열강에 귀를 기울였다. 

 첫 날 동양고전 아카데미 제1강은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하영삼 교수의 ‘문자로 읽는 한자 문화, 『설문해자』’였다. 한자학 연구와 한자 교육의 최고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설문해자(說文解字)』와 『천자문(千字文)』을 통해, 말과 문자의 위상, 문자(文字)와 한자(漢字), 문화와 한자문화의 개념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면서 한자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언어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자체계이자 아직 완성되지 못한 알파벳”으로 규정한 서구 언어학의 대부 소쉬르(Ferdinad de Saussure)의 견해를 동양 경시적인 서구의 보편적인 인식이라 잘라 말했다. 도표와 그림, 사진으로 짜여 있는 49쪽에 이르는 방대한 교재도 알뜰하고 귀중한 자료의 보고이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강의를 유머러스하게 펼친 하교수는 한자 속에 화석화된 과거로서 굳어 있는 문화를 현대적 맥락과 상황 속에서 살려내기를 희망했다.

 둘째 날 동양고전 아카데미 제2강은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 김근 교수의 ‘한자, 역설의 패러다임(paradigm)’이었다.

한자로 인하여 중국은 하나가 되었다는 이 한 마디를 대개의 중국인들이 믿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질서에 순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지리적 환경에 지배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대륙 국가의 조건을 지닌 중국 문화를 이해하려면 중국인들은 하나의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무조건 맞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교적 덕목에서 비롯되는 중국의 문화는 긍정의 표현이다. 긍정에 긍정이 더하면 힘이 생긴다.

‘큰 것-大’을 다스리기 위한 이데올로기(권력)의 발단은 이념의 틀을 구성하여 전통적인 정치 구조를 형성하고 관념적인 정치의 틀을 천리(天理-헤게모니)로 인식시킨다. 이 틀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바탕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데 한자가 이 기초를 제공하였음을 표음, 표의를 위한 구성/한자의 계열화와 사물의 조직화/한자, 존재론적 사유의 모델/한자의 아주 특별한 기능 등을 김근 교수는 다양한 예를 들어 재미있게 풀어 나갔다.

 우리고전 첫 번째 강의는 강명환 교수(부산대, 한문학과)의 ‘안쪽과 바깥쪽, 박지원 사유의 기원’이었다.

이제까지 실학의 지평, 내재적 발전론의 지평에서 ‘자생적 근대’가 돌출되도록 재구성해 온 연암(박지원:1737-1805) 문학의 해독(解讀)을 부정하고 연암의 사유가 타자의 연관을 통해서 구성된 것임을 밝혀 나간다. 그것은 신봉의 대상이 되는 작가(허균, 박지원)나 책(춘향전)은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암에 대한 난해성의 신화를 거부하고 상식적인 데서 비판의 출발을 시도한 것이다.

 박지원의 문학창작은 진(眞)을 추구하는 데 있고 어린 아이의 오염되지 않은 눈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암은 이덕무, 원굉도, 이탁오 등의 사유와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며 연암의 의고파 비판은 상고주의적 예술관을 뿌리 채 부정하는 거대한 전환을 가져왔다고 한다. 125 쪽에 달하는 교재 중 83쪽이 관련자료(국문 번역과 한문으로 된 원문)이니 이는 연암을 알고자 하는 학구파들에겐 더 없이 좋은 선물이 되지 않겠는가.

 제4일, 고전평론가 고미숙 국문학 박사는 ‘열하일기, 중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유목 일지’를 통해서 연암이 경화세족(京華世族 서울 양반)의 일원으로 명문가 중의 명문가 태생이었던 박지원이 과거를 포기하고 백탑(白塔)에서의 청연(淸緣)을 맺는 생활 태도와 청년기의 교우관계 등 인간적인 측면을 소개하고, 열하일기를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뜨거운 ‘접속’의 과정이고, 침묵하고 있던 ‘말과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굴’의 현장이며, 예기치 않은 담론들이 범람하는 ‘생성’의 장(場)”으로 평가하고, 조선 왕조 5백년을 통틀어, 동서고금의 여행기 가운데 오직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열하일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고미숙 박사는 연암을 지성의 인물로 보고 지성(사유)이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현대인들은 모른다고 꼬집었다. 특히 현대인들은 삭막한 정서의 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중독 아니면 무관심이라며 요즈음 한창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의 한 단면인 K-POP을 지성(知性)의 측면에서 볼 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고전 마지막 날은 점필재연구소, 인문한국(HK)의 김남이 교수가 ‘연암’이라는 고전의 근대적 탄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종 차분하게 강의를 이어갔다. 강의 제목 연암에 홑따옴표를 붙인 것은 18세기 한 실존 인물 연암과 그의 말과 행동, 글과 책, 그에 대한 기록이나 기억, 평가를 구분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지금까지 연암 연구자들이 연암을 어떻게 보았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과거의 텍스트가 오늘 우리의 삶과 갖는 관계 및 기능은 고전이 가치를 얻는 원천이 된다. 고전을 양파에 비유하고 육당 최남선이 열하일기를 전국에 광고하여 돈 주고 사들였다는 것, 매서운 기상과 준엄한 성정을 덮는 연암의 유머와 우스개 소리, 출세작 [열하일기]와 연암으로 인한 논란들, 북학파 실학자, 또는 민족 문학으로서의 연암 등등. 주어진 다섯 시간이 너무 짧다. 입체적이고 열띤 질의응답으로 보낸 마지막 30분은 강의를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랜 장마와 집중 호우로 인한 산사태와 물난리 소식은 가슴 아팠지만, 서울과 부산에서 모셔 온 교수님들의 간단없는 말과 사유의 향연은 삼복더위를 잊고 고전의 바다를 항해하게 해 주었다. 김근 교수님은 기념사진을 찍을 때 어린 중학생들이 졸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경청하던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특히 우리고전 첫 번째 강의가 있던 제3일부터 창원고등학교 동아리모임 학생 40명이 참가하여 가슴이 뿌듯했다.

열하일기 그 벅찬 항해가 끝난 시각에 수강생 중 한 분이 떡 한 상자를 가져 왔으니 돌아갈 때 한 점 들고 가시라는, 진행을 맡아 애썼던 이성우 실장님의 안내방송이 정다웠다. 이제는 잊혀진, 옛날의 아름다운 풍속이었던 책걸이를 떠올리며 마침 출출한 시장기를 달랠 수 있었다.

김금조/밀양신문사주부기자

[희망]

거의 매일 비오는 날입니다. 덕분에 무더위는 잘 피해 온 것같은데 습기로 인한
건강은 조심하세요.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