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능선에 있는 동장대로 가는 길
(동장대 제1편)
루수/김상화
오늘은 기쁜 날! 기쁨을 행복으로 승화시키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그곳을 꼭 가보고 싶어 필자의 뇌리에서 항상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북한산에 있는 동장대다. 북한산 한 모퉁이에서 옛날 옛적에 서울을 잘 지키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하던 동장대를 가려고 새벽부터 부산을 떤다. 산행할 때 필요한 물품을 하나하나 챙겨 배낭에 담는다. 물도 끓여 보온병에 담아 배낭에 넣었고, 점심으로 먹으려고 샌드위치와 간식 몇 가지도 담았다. 혹시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우산도 챙겼다. 산행은 필자에겐 언제나 즐거운 일 중 하나다. 그래서 필자는 산행하러 가는 날 아침이면 늘 소풍 가는 어린이처럼 즐거움을 참지 못 한다. 오늘도 역시 그러하다. 이렇게 좋은 감정을 누가 말리겠는가!
동행하는 사람 한 분도 없이 혼자서 외로움을 안고 간다. 이것 또한 큰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 길을 잃고 헤매지나 않을까? 또는 내가 생각지 못한 엉뚱한 곳으로 가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운다. 그래서 어제 MBC 수사반장 역할을 재미있게 활약했던 탤런트 김한일 님께 동장대까지 가는 길을 메모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주겠다고 흔쾌히 답을 준다. 김 탤런트님께서는 북한산을 얼마나 많이 등정했는지 79코스를 꿰뚫고 있는 분이다. 구파발역에 하차하여 버스를 타고서부터 동장대까지 가는 코스를 자세히 메모한 메시지가 카톡을 통해 날아온다. 메모를 받는 순간 왜 이리도 기쁠까? 이젠 북한산 동장대를 김 탤런트님 덕분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 기쁨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너무도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북한산을 가기 위해 잠실역을 가려고 석촌호수 장미원을 지날 때였다. 오월의 장미가 수줍음을 감추지 못하고 아름다운 미소로 필자를 반긴다. 계절의 여왕으로 만들려고 이토록 5월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그녀다. 그녀가 나를 보고 향기로운 미소를 토해낼 때 필자 역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 때문에 필자는 아침부터 행복이 쏟아지네요. 하고 말을 걸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소리 없는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웃는 얼굴의 모습은 수없이 많은 보조개가 한곳에 모여 아름답게 균형 잡힌 천하제일의 웃는 얼굴을 만들어 낸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향기로움까지 갖춘 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다.
전철을 타고 구파발역에 내려 1번 출구로 나갔다. 등산객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친소끼리 모인 남녀 등산객들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웃음꽃을 활짝 피운다. 파란 하늘에선 해님도 웃고 있다. 등산객들은 젊음을 마음껏 분출해 댄다. 무엇이 그리도 좋아 싱글벙글 웃을까? 젊음 만으로도 천하와 바꿀 수 없는 보배 덩어리인데 등산을 하러 가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 눈은 웃음이 가득하여 바라보는 사람까지 행복으로 몰아넣는다. 눈에 퐁당 빠지면 허우적거릴 것만 같은 마음이다. 미소를 하나 가득 물고 있는 얼굴은 달덩이 같다. 간혹 대화 도중에 웃음보가 터져 박장대소(拍掌大笑)한다. 해님도 웃고 등산객도 웃고 필자도 웃는 행복한 아침이다.
길 건너는 롯데 백화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기다리던 704번 버스가 들어온다. 얼마나 많은 등산객이 탔는지 타기조차 두렵다. 버스를 탄 필자는 좌석에 앉지도 못한 채 북한산성 입구까지 서서 이리저리 쏠리는 시달림을 받았다. 그래도 동장대를 간다는 기쁨에 설레기도 한다. 잠시나마 버스에서 혼을 뺀 필자는 내려서 보니 지난번 대남문 갔을 때 한번 걸었던 길이라 낯이 익다. 북한산 국립공원이라든가 주차장과 식당, 가계 등 많은 것들이 생생하게 본 기억이 스크린처럼 돌아간다.
목적지를 향해 걷다 보니 용암사란 간판과 이정표가 나타난다. 저곳은 어떠한 절 인가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구경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공원 입구에서 용암사까지는 1.2km라고 한다. 옆길로 한참을 걸어 도착하고 보니 아담한 절이다. 그곳을 모두 사진에 담았다. 잠시 서서 구경하고 있을 때 주지 스님이 오신다. 인사를 하며 나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용암사를 간단하게 글에 담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렇게 해달라고한다. 그러면서 몇 개의 의자가 놓여 있는 나무 그늘 밑에 잠시 앉으라고 권한다. 그러곤 자기는 정천(丁天) 스님이라고 한다. 이 절은 6.25 직후 손수 지었다고 자랑한다. 그러면서 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자세히 들려준다. 이 절은 용바위가 있는 바로 옆에 지었다고 한다. 산세를 자세히 설명하고 용같이 생긴 바위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설명을 듣고 보니 용같이 생긴 바위가 뒤에 있다. 폭 10m 길이 159m이다. 물이 똑똑 떨어지는 곳이 입이라 하고 밑에 혀가 있다고 설명한다. 6.25 때는 이곳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용암사의 주소는 서울시 은평구 대서문길 126이다. 북한산지에 의하면 용암사는 북한산성이 축성된 후 의상봉 아래 세워졌으며, 그 규모가 87칸이라고 하지만 현재는 북한산성 옆에 그 터와 탑재가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이 북한산지에 실려있다는 것은, 북한산성을 운영, 관리하는 승영사찰 이었음을 의미한다. 현재 용암사는 노적사에 머물던 정천(丁天) 스님이 서원하여 지금의 위치에 대웅전을 세우게 되었다. 노적사에 머물면서 기도에 전념하던 차, 어느 날 꿈에서 현재 용암사 자리가 적지임을 깨닫게 되어 이곳에 인법당을 시작으로 용암사의 법 등을 다시 잇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대웅전은 1969년 중창 불사하였고 탄혀 대종사를 모시고 상량하였으며, 요사채도 건립하였다. 그리고 1994년에는 정 천(丁天) 스님의 회갑 기념 법회가 개최되었는데, 당시 스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용암사 창건주 기념공덕비와 남북 평화통일 일봉 기원 시비를 함께 건립하여 그간의 경과는 물론 용암사의 서원도 담고 있다.
가람(伽藍)은 부처님의 선몽처럼 의상과 원효가 천공을 가로지르는 중앙에 자리하여 용의 모습을 취한 용암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용 꼬리와 등이 활처럼 가람을 감싸고 있다. 대웅전 뒤로는 북한산의 백운대와 의상봉, 원효봉이 우뚝 자리하고 있다.
*가람(伽藍)=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
용암사를 들려 정천(丁天)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곤 목적지를 향해 올 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남문을 갈 때는 보지 못했던 대서문(大西門)이 나타난다. 대서문(大西門)은 북한산성의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있다. 1712년 (숙종 38년)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대서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과거 성내에 마을이 있었을 당시엔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했던 성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문루는 1958년에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문루의 형식은 우진각지붕으로 문루의 일반적인 지붕 형태를 따르고 있다. 관영 건물이므로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를 강회로 마 감하였다.
누각에 "북한산성 대서문(大西門) 중수기"가 걸려 있어 중수 내역을 전해준다. 문수의 배수 시설로 용머리 모양의 누혈(漏 穴) 물이 흘러내리도록 구멍을 뚫은 돌을 성문 앞뒤로 두었다. 성 밖을 바라보는 용은 입을 벌려 누혈(漏穴)의 구실을 제대로 하게 하였으나, 성문 안쪽에 있는 용은 입을 다물고 있어 장식용으로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문루 정면에는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한 장의 화강암으로 만든 점이 특징적이다. 북한산성의 대문 6곳 모두에게 이런 독특한 형식의 여장이 올려져 있다고 한다.
이 대서문을 통과하여 중성문을 거쳐 대남문에 이르는 길은 북한산성의 주요 간선도로였는데, 이 대문 3곳을 맡아서 수비 관리하였던 군부대는 어영청(御營廳) 유영이었다.
*어영청(御營廳)= 조선 시대, 서울에 있던 군영
동장대 제1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제2편은 동장대로 가는 장면을 기록할 것이다.
2021년 5월 30일
첫댓글 반갑습니다
精誠으로 꾸미신 作品 올려주셔서 感想 잘하고 갑니다
恒常 즐거운 生活 속에 健康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