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名士)의 강의 노트와 수필론 (김규련 수필가 편)
장사현(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국 현대수필사에 최고의 명장을 뽑으라한다면 나는 윤오영 선생과 김규련 선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래서 그 분들이 남기신 작품과 그 분들의 인품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두 분의 선생께서는 좋은 수필을 쓰셨고 수필인의 마음 자세와 생활에 대하여도 선명하게 제시하셨다. 필자는 김규련 선생님과 이웃에 살면서 그 분의 일상을 보아왔다. 그래서 선생님을 준거인물(準據人物)로 삼고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끔씩 필자가 지도하고 있는 영남대학교 사회교육원 수필창작 교실에 특강으로 초빙하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선생께서 하신 특강 내용을 간추려보았다. 팔순을 넘기신 선생께서는 이제 기력이 쇠진해지셔서 강단에 서시기가 어렵다. 그간 여러 차례의 특강 내용과 수필론을 정리 하므로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 김규련 선생 약력 - 1929년 출생, 경남 하동에서 성장 - 대구? 경북에서 중등교사, 장학사, 장학관을 지냄 - 고령? 영양군교육장, 경상북도교원연수원 원장, 경상북도교육위원 역임 - 1975년《수필문학》지로 등단 - 형산수필, 영남수필문학회장, 한국문협구미시지부장 역임 - 한국교육자대상 수상, 신곡문학상, 제1회 흑구문학상(2009년)수상 외 - 수필문우회 회원, 현재 계간『영남문학』고문 - 저서 《거룩한 본능》《소목의 횡설수설》《높고 낮은 목소리》《귀로의 사색》 《종교보다 거룩하고 예술보다 아름다운》《즐거운 소음》《흔적》외 - 대표작 《거룩한 본능》《언어의 침묵》《개구리 소리》외 - 현재 대구 달서구 본동 소재 그린맨션 거주
2. 김규련 선생의 특강 내용 1) 영격지수(靈格指數)를 높여야 좋은 수필을 쓰려면 영격지수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 하루 10분이상 명상에 잠겨라. ? 고전을 많이 읽어라. ? 수행을 많이 해야 한다. 사람은 그가 지니고 있는 영격지수(靈格指數)에 따라 인품의 격이 달라진다. 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 등 오욕이 꿈틀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하품인생(下品人生)이라 한다. 하품인생(下品人生)도 격에 따라 하품하생(下品下生)인 축인(畜人)이 있고 하품중생(下品中生)인 범인(凡人)이 있고 하품상생(下品上生)인 재인(才人)이 있다. 하품인생에서 뭣인가 깨친 바 있어 탐, 진(瞋), 치(痴) 삼독심(三毒心)을 벗어 보려고 마음을 닦는 수심(修心)으로 사는 사람을 중품인생(中品人生)이라 한다. 중품인생도 격에 따라 중품하생인 학인(學人)이 있고 중품상생인 인인(仁人)이 있다. 사람이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러 선과 악(惡), 미(美)와 추(醜), 생(生)과 사(死)를 뛰어 넘어 아무런 걸림이 없이 사는 사람을 상품인생(上品人生)이라 한다. 상품인생도 역시 격에 상품하생(上品下生)인 달인(達人)이 있고 상품중생인 도인(道人)이 있는가 하면 상품상생인 진인(眞人)이 있다. 진인은 석가나 예수 같은 사람으로 그 마음을 내어놓으며 평상심(平常心)으로 살되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시대에는 문학인도 많고 문학작품도 많아서 넘쳐흐른다. 한데도 사람들은 뭔가 허전해 하고 있다. 그들의 영혼 깊숙이 다가 갈 문학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독할 때, 아픔을 느낄 때, 절망의 늪 속에 빠졌을 때 읽어서 위안이 되고 용기를 주고 빛이 되 줄 시가 없고 수필이 없고 소설이 없다고들 한다. 지금은 풍요와 신속과 쾌락으로 형이하학은 있어도 형이상학이 없는 시대이다. 육체의 몸짓과 소음과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도 텅 빈 가슴속을 채워 주고 잠들어 있는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고, 꺼진 불씨를 다시 타오르게 해 주는 문학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알량하고 얄팍한 재주로 만들어 낸 작품은 많아도 맑고 올곧은 영혼으로 빚어 낸 작품은 귀하다는 것이다. 그 때 그 때 시류에 영합해서 잔꾀로 조립한 작품은 한동안 반짝 인혹(人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곧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심혼(心魂)에서 나온 작품은 혼교(魂交)를 통해서 많은 혼들에게 생명의 전류를 흘려보내게 된다. 혼교의 밀도는 영격지수와 상관관계가 깊다고 하리라.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자면 먼저 작가다운 오묘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 깨달음이 장인다운 글 솜씨와 절묘하게 융합할 때 비로소 창작은 가능할 것이다. 작가의 오묘한 깨달음이 있을 때 사구(砂句)가 아닌 살아 있는 작가의 말 즉 활구(活句)를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창 밖에는 신록의 향연이 한창이다. 숲속을 찾아와 나무 잎 새들을 응시해 보라. 실바람이 불적마다 요것들은 서로 어깨를 비비기도 하고 옆 짝의 몸통을 툭툭 치기도 하며 장난기를 부린다. 마치 유치원 꼬마들이 소풍 나온 것처럼. 계곡엔 물이 콸콸 흐르고 그 속엔 고기가 논다. 하늘엔 새때가 날고 높은 구름이 떠간다. 땅 위에는 온갖 생명체와 사람들이 타고 난 자기 성정대로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우주의 실상이 숨어 있으리라. 여기에 곧 진리가 있고 말씀이 있고 설법도 있으리라. 작가는 오묘한 실상을 찾아보기 위해 고뇌하고 역으로도 사색하고 미쳐도 봐야 할 것이다. 캄캄한 무명의 바다에서 침잠, 완색, 적공, 체득의 뼈아픈 과정도 통과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문득 돈오돈수(頓悟頓修)도 점오점수(漸悟漸修)도 돈오점수(頓悟占守)의 참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격지수의 높고 낮음과 이것들의 관계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오묘한 깨달음만으로는 창작이 안 된다.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이 지속돼야 할 것이다. 철학의 칸트, 과학의 뉴턴, 음악의 베토벤, 문학의 괴테, 회화의 미켈란젤로, 조각의 로댕, 시의 두보, 서예의 왕희지……. 이들은 모두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1%에 불과했고 99%의 각고의 노력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준거인물(準據人物)을 정하여 닮아가도록 노력하라 자기 성향에 맞는 인물을 선정하여 닮아가도록 노력하라. 문장과 문체 그리고 어휘력도 그렇고 인품 역시 그렇게 닦으면 그와 같이 되어 진다. 초나라 장왕의 절영지회(切纓之會)같은 넓은 도량을 생각해봄도 좋다. 절영지회(絶纓之會) 예화 갓 끈을 끊고 노는 잔치라는 뜻으로, 남자의 도량이 넓음을 일컫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등과 함께 오패(五覇) 중의 한 사람인 초장왕(楚莊王) 때의 이야기다. 초나라의 영윤(令尹)벼슬에 있던 투월초(鬪越椒)가 반란을 일으켜 이를 진압하고 돌아와서 연회를 베풀었다. 초장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풍류를 즐기지 않은지 6년이다. 이제는 역신도 제거되고 나라가 안정을 찾았으니 오늘은 마음껏 마시고 즐기도록 하라" 하시며 푸짐한 음식과 주흥으로 하루를 즐기게 되었다. 이날은 초장왕의 비빈(妃嬪)들도 참석을 하였는데 애첩인 허희(許姬)를 시켜 여러 대부들과 장수에게 술을 돌리게 하였다. 그런데 난데없는 광풍이 연회석을 몰아쳐 연회장이 촛불이 모두 꺼졌다. 그러자 평소에 허희의 미모에 반한 한 사람이 불꺼진 틈을 타 허희를 껴안았다. 이에 놀란 허희는 그 사람의 갓 끈을 끊고는 초장왕에게 이 일을 고해 바쳐 빨리 불을 밝혀 그 사람을 찾아내라고 하였다. 그러자 초장왕은 다음과 같이 명했다. "오늘 이 연회는 마음껏 즐기기로 약속했으니 모두들 갓 끈을 끊고 실컷 술을 마시자 갓 끈을 안 끊은 자는 이 연회를 마음껏 즐기지 않은 자이다"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백관들은 모두들 갓 끈을 끊었고 후에 초장왕은 불을 밝히게 하였고, 이 사람은 초장왕의 넓은 도량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궁으로 돌아온 허희는 다시금 초장왕에게 고해 그자를 색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초장왕이 말하기를 "이 일은 여자가 알바 아니다. 군신 간에 술자리를 같이 할 때는 석 잔을 넘기지 않으며, 그것도 낮에만 열고 밤에는 열지 않는 것이며 또한 과인이 모든 신하들에게 마음껏 즐기도록 명했고 술 취한 뒤의 인간들의 행태란 인간의 본성이다. 그 자를 찾아내어 벌한다면 그대에게도 아름다울 것이 없고, 신하들에게 말한 과인의 명한 뜻과도 어긋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 초나라는 진(晉)나라와 전쟁이 벌어졌는데 열세를 면치 못해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을 맞이했는데 그때마다 한 장수가 목숨을 내던지고 장왕을 구하곤 했다. 이에 의아하게 생각한 장왕은 그를 불러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를 구한 연유를 물었다.
장수가 엎드려 말하기를, “저는 3년 전에 마땅히 죽을 목숨이었습니다. 연회가 있던 날 밤 술에 취해 무례를 저지른 사람이 저였는데 왕께서 감추시고 참아주시어 저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저의 간과 뇌를 땅에 들어내고 그 은혜 갚기를 소원해 왔습니다. 신이 바로 갓 끈이 끊겼던 놈입니다" 하였다. 후세에 이 연회를 이름하여 절영회(絶纓會)라 했다.
※ 春秋五覇: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 ~ 220) 여러 제후국 중에서 으뜸가는 제후들이 다섯 명 있었다.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초장왕(楚 莊王). 진목공(秦穆公). 송양공(宋襄公) 등을 일컫는데, 진목공. 송양공을 빼고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가리키는 사람도 있다. - 출전 :『說苑설원 』「復恩복은편」-
3) 나옹선사 「토굴가」를 자주 읽어라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면 언제나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즉, 知足지족(만족 할 줄 알고), 知分지분(분수에 맞게), 支持지지(멈출 줄 안다)를 말하는 것이다. 「토굴가」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 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錄楊春三月下)에 춘풍이 건 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이 중에 그 무엇이 세상에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진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꽂아 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을 기한정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하니 종전에 모르든 일 금일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심지월(一段孤明心地月)은 만고에 밝았는데 무명장야업파랑(無明長夜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축산 제불회상(靈鷲山諸佛會上) 처처에 모였거든 소림굴 조사가풍(小林窟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 소냐. 청산은 묵묵하고 녹수는 잔잔한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어떠한 소식인가. 일리재평(一理齋平) 나툰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천봉만학(千峯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에 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깁은 누비 두 어깨에 걸쳤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 커든 세욕(世慾)이 있을 소냐. 욕정이 담박(欲情談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 데 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법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교교(皎皎)한 야월(夜月) 하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 듯 올라 무공저(無孔笛)를 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진실락(無爲自性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舞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제 무착령(無着嶺)을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우담화(曇花)는 활짝 피었느니라.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南無靈山會上佛菩薩)
4) 좋은 수필을 쓰려면 ○ 구양수의 말처럼 多讀다독, 多作다작, 多商量다상량하라. - 多商量다상량: 침상사(침대에서 생각하고) 측상사(화장실에서도 생각하고) 마상사(말을 타고도 생각함) - 그리고 沈潛침잠하라: 생각에 푹 빠져야 무엇인가 떠오른다. ○ 화전민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 부부간에 농사짓는 장면에 쟁기의 타 줄이 팽팽하여 졌다가 느슨해졌다한다. 팽팽할 때는 아내가 남편을 생각해서 힘껏 줄을 당기고, 느슨해졌을 때는 남편이 아내를 생각해서 쟁기를 힘껏 밀었다. 그리고 타줄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타줄’로 두 사람을 연결해주고 있다. ○ MIT 공과대학 이념으로써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면 - 고문당하듯이 몰두하라 - 거꾸로도 생각하라(발상전환) - 미쳐라 ○ 수필은 평생 2편만 남기면 성공하는 것이다. - 피천득 「인연」, 「수필」 - 윤오영 「달밤」, 「염소」 -김소운 「외투」, 「특급품」 ○ 두보의 정신을 생각하자 讀破書萬卷독파서만권(책을 만권 읽고 나면)이면 不必如有神하필여유신(붓끝에 귀신이 달린 것처럼 글이 줄줄 나오는 것), 語不驚人어불경인(글로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면)이면 雖死不休수사불휴(죽어도 쉬지 않으리라)라. ○ 치열한 작가 정신이 있어야 한다. - 沈潛침잠(주제에 대하여 몰입) - 玩索완색(즐거운 마음으로 사색) - 卽空즉공(정성을 들여 내공을 쌓아 나가는 것) - 體得체득(몸으로 깨우쳐야함) ○ 本格隨筆有四忌 본격수필사기론 - 格弱 격약: 품격이 천박스러우면 안 됨, 수필은 인품에서 나옴 - 理短 이단: 주제가 없으면 안 됨. 문장에는 큰 사상과 철학이 담겨있어야 함. - 意雜 의잡: 뜻이 잡스러우면 안 됨 - 才浮 재부: 재주가 붕 떠있으면 안됨(문장은 정성을 들여서 써야함 - 알맹이가 있어야함). 지식나열(자기 과시, 자랑, 독자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 뜻은 없고 미사여구만 있는 것)하는 글을 써서는 안 된다. ○ 소동파가 승호선사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생각해보라 - 有情說法유정설법은 사람의 말로서 감정이 들어가 과장이 있다. - 無情說法무정설법을 들어라. 자연 속에는 위대한 설법이 있다. - 세상에 모든 존재는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 자연과 대화를 하라. 흐르는 물, 대지, 산천, 새들, 구름 등 - 我有一卷經아유일권경: 내 몸이 곧 한권의 경전이고 법당이다. - 사물과 대화하라. 자기 철학을 사물에 투사하라. ○ 九鼎禪師구정선사와 無染무염스님의 이야기를 새겨서 인내하라 솥을 아홉 번이나 걸게 만들어도 얼굴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인품이었기에 유점사의 주지가 된 개똥이와 통일신라시대 선지식인 無染무염스님의 이야기에 나온다. ○ 수필을 잘 쓰려면 - 수필은 인격 고양을 하여야 잘 쓸 수 있다. - 문장의 실제: 소재를 잘 발견, 다른 사람이 깨치지 못한 새로운 의미를 담아야 함. - 서두: 첫 한줄(수필의 의미를 대표) - 문장표현: 죽은 말을 쓰지 말라(죽은말 - 남이 많이 썼던 말) 활구를 쓰라(살아있는 활기찬 나만의 언어) 좋은 문장일수록 짧게(많은 의미가 내포된 언어를 사용) 좋은 문장은 동사가 컬러플 하게, 생동감 있게 - 결어: 화룡점정, 퇴고를 잘하라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는 17년간 퇴고를 거쳤다. ○ 어떤 문인이 되어야 하는가 한국 문단에는 文仙문선이 있는가 하면 文士문사도 있고, 文稚문치가 있는가 하면 文蟲문충이 있다. 또한 文賊문적이 있는가 하면 文奸문간이 있고 文奴문노가 있는가 하면 文妓문기도 있다. 文仙문선은 문학작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품 또한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모든 사람들의 존경과 예우를 받는 사백이라 하겠다. 文士문사는 예술혼이라 할까 문학정신이라 할까 올곧은 전문 의식을 갖고 보석 같은 문학작품을 창작해 내는 글쟁이들이다. 文稚문치는 잡문 나부랭이나 뻔질나게 써서 신문 잡지에 발표하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문단의 대가인양 행사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들이다. 文蟲문충은 글자 그대로 글을 파먹는 좀 벌레 같은 장사꾼 문인이라 할까. 남의 작품 흉내도 잘 내고 저질 작품을 대량 생산한다. 책이 나오면 입에 거품 물고 뛰어다니며 친구와 이웃을 괴롭히며 강매하는 무리들이다. 文賊문적은 자기의 정치적인 야망이나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문학을 도구로 이용하는 사이비 문인들이다. 文奸문간은 글재주를 밑천으로 정권에 빌붙어 이권이나 챙기고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노루를 사슴이라 쓸 수 있는 혹세무민의 무리들이다. 文奴문노는 출세한 사람이나 힘 있는 사람, 또는 돈 많은 사람의 자서전이나 문집 같은 것을 써주거나 손봐주고 돈푼이나 받아먹고 사는 글 재주꾼이다. 文妓문기는 글 기생이다. 술잔이나 얻어먹고 이 사람 저 사람 비위나 맞추며 미사여구로 아부하는 글밖에 못 쓰는 못남이 글이다.
3. 김규련 선생의 수필론 수필의 미는 어디서 발견되는 것일까. 그것은 수필 작가의 장인다운 솜씨와 오묘한 깨달음이 절묘한 융합을 이뤘을 때 나타난다고 본다. 장인의 솜씨만 있고 작가의 오묘한 깨달음이 없다면 창작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오묘한 깨달음만 있고 장인의 솜씨가 없다면 훌륭한 창작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수필은 어떤 알맹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아무리 비범한 내용이라도 걸치고 있는 옷이 너덜하고 구질구질하고 깨끗하지 못하면 그것은 아름다운 수필이 될 수 없다. 두 팔을 벌려서 껴안을 만한 가치 있는 -감동과 여운을 길게 남기는- 수필을 쓰자면 우선 문장력을 갈고 닦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1) 수필 문장은 짧으면서 뜻이 깊어야 짧은 문장이 되자면 그 글귀가 문학적 감각에 의해 정교하게 조탁돼야 할 것이다. 명쾌하고 참신하고 군소리 없이 압축된 짧은 글은 뜻이 깊기 마련이다. 이런 문장에는 함축성이 숨어있고 메아리가 생겨나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그 기법을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본다. 구양수(歐陽修)의 말대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두보(杜甫)의 독백처럼 ‘일만 권의 책을 읽으니 글 쓰는 것이 마치 신들린 것 같다.(讀破書萬卷 下筆如有神)’가 되지 않을까 싶다. Henry Thomas는 말하기를 문장은 짧아야 좋고 쉬운 낱말로 표현해야 좋고 동사는 색깔이 풍부해야 좋다고 했다. 색깔이 풍부한 동사란 무엇일까.
2) 낯설게 표현하기 우리는 흔히 생각이 났다는 사실을 글로 표현할 때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이 날아 왔다’, ‘생각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로 쓸 때가 있다. 또 뻐꾸기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 왔을 때 ‘뻐꾸기소리가 창문을 흔들고 있다’, ‘뻐꾸기소리가 빗물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뻐꾸기소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내리고 있다’ 등으로 쓰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문장은 더러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시종일관 ‘…이다’, ‘…했다’로 종결하면 곧 싫증이 난다. 때로는 ‘…이 아닐까’, ‘…일지도 모른다.’ 등으로 바꿔야 하리라. 또 ‘…한 미완의 꿈’, ‘…한 행복한 유배’ 등 명사로 끝나는 문장, ‘…허겁지겁 달려갔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등 부사절로 끝마감하는 문장도 써 봄 직할 것이다. 그러나 기교는 극약이다. 극약은 소량을 아주 적시에 써야 약효가 있다. 기교가 독자의 눈에 띄면 그 수필은 이미 졸작이 된다.
3) 수필은 진솔해야 한다. 정직하여 꾸밈이 없고 솔직하여 거짓이 없어야 보면 본 대로 느끼면 느낀 대로 생각나면 생각난 대로 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수필처럼 쉬운 글도 없으리라. 그래서일까. 요즘 너나없이 글줄이나 썼다 하면 수필이라고 지상에 발표한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대로 나열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요, 하물며 수필이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선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언어로 형상화할 때 고도의 예술 감각과 정련된 어휘의 발굴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물일어(一物一語) 정신으로 보석 같은 어휘들이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물 흐르듯 배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또 글귀를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다 상투적이고 사무적인 어휘가 발견되면 실감나는 글귀로 바꿔야 할 것이다. 예컨대 ‘빈부가 고르지 않다’를 ‘부잣집 대문 안에는 술과 고기 냄새, 길거리에는 얼어 죽어 뒹구는 시체들’로 고쳐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소리를 눈으로 듣고 피부로 듣고 온몸과 심혼으로 들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안(眼)과 색(色), 이(耳)와 성(聲), 비(鼻)와 향(香), 설(舌)과 미(味), 신(身)과 촉(觸), 의(意)와 법(法)의 상관질서에 혼란이 온다.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착각이요 환상이다. 그런데도 이 착각, 이 환상이 어쩌다 아주 어쩌다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당송(唐宋) 팔대가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은 시구 한 구절중의 글자 한 자를 두고 반년 동안 끙끙거리며 퇴고했다고 한다. 春風又綠江南岸, ‘춘풍은 또 강남을 푸르게 한다’에서 綠자를 맨 처음에는 이를 到로 했다가 마음이 들지 않아 지날 過로 고쳤다. 얼마 후 그것이 마음에 안 차서 또 들어올 入으로 바꿨다. 또 생각하고 고민 끝에 가득찰 滿으로 했다가 마침내 푸를 綠으로 고쳤다. 얼마나 진지한 자세인가. 이렇게 갈고 닦은 문장을 만난 독자들은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 감동은 차츰 크게 울려 퍼져 독자의 가슴에 심리적인 스파크 현상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의 조우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으로 된 수필은 다 읽고 난 뒤엔 자신도 모르게 책을 손에 쥔 채 먼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길 것이다. 이것이 수필의 큰 울림이요, 긴 여운이요, 아름다움이 아닐까.
4) 수필 구성에는 틀이 없는 듯 있어야 하고 있는 듯 없어야 한다 이 모순의 실체를 체득해야 비로소 수필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의 틀은 한시(漢詩) 작법의 기(起), 승(承), 전(轉), 결(結)을 본받아 응용할 수도 있다. 제일의 기구에서 시상을 제기하여, 제이의 승구에서는 기구에서 제기된 내용을 받아 전개시키고, 제삼의 전구에서 시의(詩意)를 한번 돌려 전환하고, 제사의 결구에서 전시의(全詩意)를 종합하여 전편을 거두어서 결말을 맺는다. 때로는 논리학의 연역법이라든가 귀납법을 문학적으로 풀어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때로는 주제를 중심으로 발상 차원의 심화과정을 따라 수필을 창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한 시인은 발상 차원의 심화과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①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 ②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③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본다. ④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⑤나무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⑥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실상을 본다. ⑦나무를 흔들고 있는 그 자체(본질)를 본다. ⑧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의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①에서 ④까지는 육신의 눈으로 보고, 객관+주관, ⑤에서 ⑧까지는 마음의 눈으로 본다. 주관이다. 수필 창작에는 상상력도 동원돼야 할 것이다. 상상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하여 마음속에서 그려보는 심리활동이라 하겠다. 그 심리활동에는 접근연상(接近聯想)도 있고 유사연상(類似聯想)도 있다. 접근연상은 진주 촉석루를 보면 논개가 생각난다는 경우이고 유사연상은 원앙새를 보면 부부의 다정한 금슬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하겠다. 수필의 틀 속에는 동식물이나 사물을 인격화하는 의인법(擬人法)이 등장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동식물이나 사물의 얘기가 곧 인간의 얘기로 비유될 수 있는 탁물법(托物法)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석탄은 검은 금이다.’ 혹은 ‘물은 돈이다.’와 같이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다만 겉으로 비유하는 은유법(隱喩法)이나 ‘보름달 같은 얼굴’, ‘수줍은 처녀인 양’처럼 …같이, …인 양, …처럼 등 직유법(直喩法)도 적절히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격 높은 유머며 재치 있는 위트도 있으면 작품이 돋보일 것이다. 그러나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이다. 형식이나 틀에 너무 얽매이게 되면 허구가 끼어들게 되고 참신한 개성미를 잃게 된다. 뛰어난 예술작가는 항시 어떤 격률을 따르면서 파격을 즐겼다. 수필도 역시 파격의 문학이다. 그 파격의 수필 속에 소설인 양 테마가 있고, 시처럼 이미지가 있고, 철학같이 깊은 의미가 있고, 평론인 듯 비평이 있고 수필다운 무드가 있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수필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한 편의 수필은 한 덩어리의 유기체이다. 전체와 부분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조그마한 자구 하나의 이동이나 증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돌탑에서 돌 하나 빼내면 탑이 무너지듯이. 한 글자 한 구절 중에도 전편에 흐르고 있는 주제의식이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수필의 내용은 참신하고 비범하고 뛰어나야 수필의 내용은 소재이다. 삼라만상과 생활주변의 모든 잡사가 모두 소재가 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주제가 필요로 하는 소재만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선택된 소재가 곧 제재(題材)가 아닌가. 이 제재가 참신해야 할 것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면 족하다. 독자가 다 알만한 사리를 따져 나가는 수필, 산천초목을 찬미하고 달과 구름을 예찬하는 수필은 아무리 뛰어난 미문으로 꾸며 봐도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흔해 빠진 제재라 할지라도 작가의 자별한 정감과 깊은 사상과 예리한 통찰력에 따라서는 비범한 제재로 다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참신하고 비범한 제재가 된 것이다. 비범성이라고 해서 유별나고 기발하고 기괴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 새로운 가치, 새로운 아름다움이 작가의 에스프리와 장인다운 솜씨로 형상화되면 그것이 곧 비범성이 아닐까 싶다. 수필의 내용이 뛰어나야 된다는 뜻은 내용의 질이 천박하지 않으며 품위와 격조가 높아야 된다는 것이리라. 작가는 침잠(沈潛)이며 완색(玩索)이며 적공(積功)이며 체득(?得)으로 제재가 가진 속성을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 그 속에 어떤 철학이 깔려있는지 알아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제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슨 진실이 숨어 있는지 캐내 봐야 할 것이다. 불가에는 ‘刹說 衆生說 三世一切說’이란 말이 있다. 즉 산하대지, 일월성신이 말하고 중생이 말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 존재가 다 말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이것은 곧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무정설법은 무언의 언어, 침묵의 언어, 무설(無說)의 설법이 아니던가. 여기엔 허구가 없고 과장이 없고 그 자체가 진실일 뿐이다. 이것은 심안(心眼)과 심이(心耳)가 아니고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유정설법(有情說法)은 인간의 언어와 문자가 아닌가. 여기엔 언제나 거짓이 있고 과장이 있기 마련이다. 수필 작가는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선 끝없는 사색과 관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구양수는 침상(寢牀), 마상(馬上), 측상(?上)에서의 사색을 강조한 바 있다. 현대인은 차중에서도 좋고 수시수처에서 틈나는 대로 사색을 거듭하고 고민해야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6) 끝으로 다음과 같은 금기 사항을 범하지 않도록 문장에 형용사나 부사가 필요 없이 많아서는 안 된다. 글재주를 가지고 빈 내용을 꾸며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두 아는 사실을 혼자 아는 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식함을 은근히 자랑해서도 안 될 것이다. 기교가 드러나서도 안 되고 달관한 척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교만해도 안 되지만 너무 겸손해도 안 될 것이다. 자기를 은연중 과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남의 말을 함부로 빌려 와서도 안 될 것이다. 유머며 위트며 풍자를 어울리지 않게 사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야비하거나 표독한 표현을 써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필 창작의 여러 기법과 기교, 제재의 참신성과 비범성, 구성의 틀과 발상법…등을 간단히 살펴봤다. 이제는 그것들을 모두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잠재의식 속에 묻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을 의식하면 수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수필 창작 과정에 자연스럽게 유로돼 나와야 할 것이다. 결국 아름다운 수필이란 두 팔을 벌려 껴안고 싶은 가치가 있는 수필이라고 하겠다. 그런 가치 있는 수필 창작을 위해 이 글이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끝.
*문학의 만남 |
출처: 나는 나 원문보기 글쓴이: 소이
첫댓글 네... 배워고 체득해야 할 게 참 많습니다.
6월 9일 원로수필가 김규련 선생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영남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6. 12일.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며 고 김규련 선생님의 영혼이 천상에서 영복을 누리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