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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야기 | <조선시대>- 제7대 세조, 왕으로 등극한 수양대군 |
왕으로 등극한 수양 그는 어린 시절에 진양대군에 봉해졌다가 1445년(세종27년)에 수양대군으로 개봉되었다. 대군 시절에는 세종의 명 에 따라 궁정 내에 불당을 조성하고 승려 심미의 아우인 김수온과 함께 불서 번역을 관장했으며, 향악의 악보 정리 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문종 2년인 1452년에 관습도감도제조에 임명되어 처음으로 국가의 실무를 맡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단종이 즉위하자 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다가 1453년 10월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뒤, 1455년 윤 6월 단종을 강압하여 왕위를 찬탈했으니 그가 곧 조선 제7대 왕 세조이다. 이 대 그의 나이 39세였다.
왕위찬탈의 조짐 단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조선의 정국 구도는 왕족의 대표격인 수양대군파와 문종의 고명을 받드는 고명 대신파로 나뉘었다. 당시 왕위를 노릴 만한 힘을 가졌던 인물은 수양과 안평 두 사람으로 압축될 수 있는데, 이들은 이미 왕의 건강이 악화되던 세종 후반기부터 서서히 힘을 길러오다가 문종 때에 와서는 자신들의 세력을 점차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리고 힘 없는 단종이 들어서자 이를 노골화한 것이다. 특히 수양대군의 위세는 대단해서 고명대신들이 위협을 느낄지경이었다.
해서 고명대신들은 수양을 견제하고자 비교적 왕권을 넘볼 확률이 적은 안평과 손을 잡고 수양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자 결국 수양은 고명대신들을 무력으로 제거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수양이 고명대신들을 제거한 것은 단종 즉위 이듬 해인 1453년 10월이었다. 수양은 자신을 견제하는 세력들의 눈을 따돌리고자 이 거사를 단행 하기 6개월전에 명나라의 사은사로 갈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명나라를 다녀온 다음 곧바로 이 거사를 실행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거사가 바로 계유정난이다. | 계유정난 '계유정난'은 1453년 10월 10일 밤에일어났다. 그리고 계획에 따라 김종서를 살해하고 나서 그 길로 입궐하여 왕명을 빙자하여 영의정 황보 인을 비롯한 모든 신하들을 불러들였다. 그 자리에서 이미 작성된 '생살부' 에 따라 정적들을 모두 살해하고 마침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들 신하들을 죽인 명목은 '김종서가 황보 인, 정 분 등과 부동하여 장차 안평대군을 추대하려는 모반을 꾀했다'는 것이었다.
정난에 성공한 수양은 친동생 안평을 강화도로 유배보냈다가, 다시 교동으로 보내 죽였다. 그리고 스스로 영의정부 사, 영집현전, 내외전, 경연, 춘추, 서운관사, 겸판이병조, 내외병마도통사 등 여러 중직을 겸하여 병권과 정권을 독차지하고 거사에 직, 간접적으로 가담한 정인지, 권람, 한명회, 양정 등 자신을 포함한 43명을 정난공신에 책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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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쏠쏠한 재미 좋은글 사랑합시다.
전주향교/鶴田/옮김/한문희총대장 감사합니다.
본래의 마음,자유인 한문희총대장,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 백두대간종주대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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