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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라훌라와 랏타빨라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빠두뭇따라 부처님의 초기에 미래의 라훌라(Rāhula)와 미래의 랏타빨라(Raṭṭhapāla)는 항사와띠(Haṃsāvatī)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성년이 되어서 결혼한 다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각자 가장이 되었다. 가족 소유지의 관리인으로부터 가족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막대한 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생각했다. “우리 선조들은 이 막대한 재산을 모았지만 그들이 이번 생을 떠날 때 그것들을 가져갈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것들을 다음 생으로 가지고 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재산을 보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시의 4개 대문에 배급소를 설립하여 빈곤층과 여행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들 중 한 명은 보시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왜 보시를 받으려고 하는지를 물어보고 그 사용처에 따라 보시했기 때문에 ‘차별적 보시자(Āgatapāka)’이었다. 다른 한 명은 받는 사람들의 사용처를 묻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자유주의 기부자(Anaggapāka)’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두 친구는 세수하러 마을 밖으로 나갔다. 그때 신통력이 있는 은둔자 두 명이 탁발하려고 히마완따(Himavanta) 산에서 신통력으로 두 친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났다. 은둔자들은 자신들을 보이지 않게 하고 길가에 서서 발우를 가지고 마을 쪽으로 향할 때만 남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두 친구는 가까이 가서 은둔자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은둔자들은 그들에게 물었다. “오, 공덕이 많은 그대들은 언제 여기에 왔는가?” 그러자 두 친구가 대답하였다. “스님,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은둔자를 한 명씩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그들에게 공양을 올렸고, 그 다음에 은둔자들에게서 그날부터 날마다 와서 공양을 받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들 중 한 명(미래의 라훌라에게 공양을 받기로 한 은둔자)은 가래가 심했는데, 그의 뜨거운 몸을 식히기 위해, 그는 낮 시간을 바다 밑에 있는 ‘빠타윈다라(Pathavindhara)’라는 용왕의 거처에서 보내곤 했다. 은둔자는 바닷물을 마른 통로로 갈라놓고 그곳으로 갔다. 상쾌한 날씨를 즐긴 그는 물속에 머물다가서 인간 거주지로 돌아오면서, 그는 매일 공양을 받을 때마다 용왕의 거처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빠타윈다라 용왕의 거처’에 대한 여러 번 야기를 들은 보시자는 그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졌다. 이 은둔자는 그에게 “아, 당신이 빠타윈다라라는 용왕만큼 위대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설명했고, 그에게 바다 속 용왕의 위대함을 말해주었다. 그날 이후, 미래의 라훌라는 은둔자가 설명에 영향을 받아서 용왕으로 태어나고 싶어 하게 되었다.
다른 은둔자는 삼십삼천(도리천)에 있는 커다란 천상의 나무의 이름을 따서 세리사까(Serisaka)라는 천신의 저택에서 낮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천신의 왕 삭까(제석천)의 궁전을 본 은둔자는 미래의 랏타빨라의 집에서 매일 받는 음식 공양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할 때 삭까에 대해서 말했다. 랏타빨라가 그에게 좀 더 설명해 달라고 했을 때, 그는 삭까의 위대함과 그대가 삭까만큼 위대해지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서원을 설명했다. 그래서 미래의 랏타빨라의 마음은 천상의 삭까처럼 되고 싶어 하게 되었다.
부자인 두 친구가 그 생에서 세상을 떠나자, 용왕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미래의 라훌라는 빠타윈다라 용왕으로, 삭까로 태어나고 싶었던 미래의 랏타빨라는 삼심삼천에서 삭까로 다시 태어났다.
빠타윈다라는 용왕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자신이 정말로 뱀이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신의 전생에 스승이었던 은둔자의 좁은 시야를 생각했다. “아, 나의 스승님은 파충류의 생보다 더 높은 세상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바로 그때 그는 천상의 옷을 입은 용왕의 무용수들과 음악가들로 구성된 극단이 옆에 있었는데,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그 자신은 뱀이 아닌 천신인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빠타윈다라는 위루빡카 용왕의 수행원으로서 삭까가 주재하는 반달에 한 번씩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삭까는 오랜 친구인 빠타윈다라를 멀리서나마 보고 그를 알아보았다. 삭까가 그에게 물었다. “벗이여, 그대는 어디에서 다시 태어났는가?”
“삭까여, 나는 불행하게도 용궁에서 뱀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전생에) 천상계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한 훌륭한 스승을 모셔서 행운이었네요.”
“불행하게 태어난 것에 실망하지 마시게. 세상에 빠두뭇따라 부처님이 출현하셨네. 부처님께 가서 큰 공양을 올리고, 우리가 이 삼십삼천에서 함께 살기를 바라면서 삭까로 태어나기를 서원하시게.”
빠타윈다라는 “삭까여, 아주 좋습니다. 당신의 충고를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서 그는 빠두뭇따라 부처님을 만나러 가서 그의 용궁으로 초대했다. 그는 자기의 추종자들과 함께 밤새도록 큰 공양을 올릴 준비를 하였다.
다음날 새벽, 부처님은 시자인 수마나에게 말했다. “수마나여, 여래는 먼 곳으로 공양을 받으러 간다. 삼장을 모두 외우고, 사무애해와 육신통을 가진 아라한만 나와 동행하게 하고, 범부인 비구들은 동행하지 못하게 하라.” 시자는 이 지시를 비구들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삼장을 모두 외우고, 사무애해와 육신통을 가진 아라한들과 함께 공중으로 솟구쳐서 빠타윈다라 용왕의 거처로 갔다. 빠타윈다라는 부처님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부처님과 일행이 거대한 바다의 에메랄드 색의 물위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아들인 우빠레와따(Uparevata)라는 사미를 선두로 한 장엄한 아라한들의 행렬이었다. 빠타윈다라는 특히 나이 많은 비구들과 같은 신통력을 가진 젊은 사미에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장엄한 광경을 보고 기쁨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부처님이 준비된 자리에 앉고 아라한들이 법랍 순으로 각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 부처님 앞의 높은 자리에 사미 우빠레와따의 자리가 배정되었다. 젊은 사미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빠타윈다라는 부처님과 승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부처님과 젊은 사미를 차례로 예의 주시했다. 그는 그 사미가 부처님의 몸에 있는 것과 똑같이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이 그가 부처님과 사미를 차례로 예리하게 예의 주시하게 한 이유였다.
빠타윈다라는 젊은 사미가 부처님과 어떻게 그렇게 많이 닮았는지 두 사람이 서로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다. 그는 아라한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존자여, 이 젊은 사미가 세존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아라한은 대답하였다. “용왕이여, 그는 세존의 아들이다.” 빠타윈다라는 그 사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사미는 얼마나 훌륭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 개인의 영광에 비할 바 없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의 아들! 그의 몸은 부분적으로 세존 자신과 같다. 오, 나는 미래 부처님의 아들이 되고 싶다.”
이런 서원을 갖게 된 용왕은 부처님을 7일 동안 그의 거처로 초대하여 거대한 공양을 올렸다. 그런 다음 그는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 이 거대한 선업 공덕으로 제가 우빠레와따 사미처럼 미래 부처님의 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서원을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용왕의 서원이 이루어질 것을 내다보고 “그대는 장차 고따마 부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한 다음 떠났다.
미래의 랏타빨라의 과거생에서의 서원
삭까에게 인사드리는 다음번의 반달에 한 번 열리는 천신의 회의에서 위루빡카 용왕의 수행원으로서 참석한 과거의 친구인 빠타윈다라에게 삭까는 “그래, 친구여, 그대는 삼십삼천을 서원했는가?”라고 물었다. 빠타윈다라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왜 그랬는가? 그대는 천상의 삶에서 어떤 불이익을 보았는가?” “삭까여, 그것은 내가 천상의 삶에서 어떤 불이익을 봤기 때문이 아닙니다. 실은 내가 부처님의 아들인 우빠레와따 사미를 봤는데 그는 너무나도 훌륭했다. 내 눈에 그가 뜨인 순간부터 오직 우빠레와따 사미처럼 미래의 부처의 아들이 되고 싶은 것 외에는 다른 서원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 앞에서 미래의 부처님의 아들이 되기를 서원했습니다. 삭까여, 부처님 앞에서 서원을 말하십시오. 미래의 생에서 사미로서 함께 삽시다.”
삭까는 빠타윈다라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의 이상적인 포부를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큰 위력을 가진 비구를 보았다. 삭까는 그 비구의 혈통을 살펴보니 그는 분열된 나라를 통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귀족 가문의 아들이며, 그가 출가를 반대하는 부모에게 7일 동안 항의하며 굶은 후에야 비로소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함을 알았다. 삭까는 그 비구를 본받기로 결심했다. 비록 그는 삭까는 자신의 능력으로 알고 있었지만 부처에게 그 비구에 대해 물었다. 그러고서 그는 7일 동안 부처님께 성대한 공양을 올렸고, 그 끝에 이렇게 큰 서원을 말했다. “세존이시어, 이 성대한 공양을 통해서 저는 미래의 부처님에 의해 세존께서 그렇게 선언한 비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확신으로 출가한 비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비구로 선언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은 삭까의 서원이 성취될 것을 보고 “삭까여, 그대는 미래의 고따마 부처의 순전한 확신으로 출가한 비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선언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예언을 한 후에 부처는 떠났다. 그리고 삭까도 그의 천상의 거처로 돌아왔다.
부처님께 바치는 제물의 관리자로서의 랏타빨라의 생
미래의 랏타빨라와 미래의 라훌라는 각각 삭까와 빠타윈다라로서 그들의 생에서 죽었고, 수천 겁 동안 천상계와 인간 세계를 윤회했다. 현겁 이전의 92겁은 풋사(Phussa) 부처님 시대였다. 부처님의 아버지는 마힌다 왕이었다. 부처님은 다른 어머니들로부터 이복형제 세 명을 두었다. 왕은 부처님에게 시중드는 일을 다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와 담마, 상가를 독점했다.
어느 날 마힌다 왕의 변방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왕이 세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들아, 변방지방에서 반란이 있어났다. 나나 너희 셋 중 하나가 가서 그 지역을 평정해야 한다. 만약 내가 간다면, 너희들은 부처님을 대하기를 평소와 똑같이 해야 한다.” 세 아들은 만장일치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님이 가실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서 그 지역을 평정할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 말에 복종해서 반란 지역으로 가서, 반란군을 진압한 다음 승리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 왕자는 믿을 만한 신하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여러분, 수도로 돌아가면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상을 내리실 겁니다. 우리는 어떤 상을 달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신하들이 말했다. “왕자님, 왕께서 승하하시면 못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큰형님인 부처님에게 시중 들 권리는 진정으로 청해야 할 상입니다.” “좋습니다. 여러분의 충고는 아주 적절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왕인 아버지를 알현했다.
그들에게 대단히 만족한 왕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왕자들은 상으로 부처님에게 시중들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그건 안 되니 다른 것을 요청해라.” “다른 상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왕이 몇 번 더 거절하고 세 왕자도 물러서지 않은 다음에, 왕은 마침내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면 양보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는 아들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였다. “이제 너희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 하지만 너희들에게 경고한다. 부처님은 자기 소굴에 있는 사자처럼 은둔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그의 시중을 드는데 완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절대로 의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세 왕자는 석 달 동안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허락받은 후, “부처를 모실 것이니, 우리는 가사를 입고 사미로서 비구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번뇌의 악취(Nirāmagandha. stench of demerit)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로 했다.*1 이에 따라, 그들은 그렇게 하여 부처와 승가에게 매일 공양을 올리는데 참여했지만, 그 일을 세 명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맡겼다.
*주1: 주석서에 의하면 논평에 따르면, ‘Nirāmagandha(stench of demerit)’는 ‘번뇌의 악취’이다. 복주서는 이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한다. 'stench'는 단점으로 해석될 뿐만 아니라 더럽혀질 수도 있다. 악취는 번뇌와 분리할 수 없다. 번뇌가 생길 때마다 나쁜 냄새를 만들어낸다. 악취는 지속적으로 더러워지는 마음을 의미한다. 은유 'stench'는 어떤 불쾌한 것, 불순한 것(분뇨의 흔적에 의해 오염된 것처럼),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을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악취 나게 하는 매개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 이 마지막 더러운 성질은 말 그대로 악인들의 시체에서도 악취가 나는 반면에 정화된 사람의 시체에서는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다. |
이 세 명의 감독관 중 한 명은 쌀과 곡물의 조달 업무를 맡았고, 두 번째는 식사의 일상적 필요에 맞게 식료품을 조달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세 번째는 요리 및 공양물 준비 업무를 맡았다. 세 사람은 고타마 붓다의 시대에 각각 빔비사라 왕, 상인 위사카, 랏타빨라 비구로 재탄생했다.
빠타윈다라 왕자로서의 라훌라의 삶
미래의 라훌라는 위빳시 부처님 시대에 까시 왕국의 끼끼(Kikī) 왕의 장남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부모님에 의해 빠타윈다라 왕자로 명명되었다. 그는 7명의 자매가 있었다.
1. 사마니(Samaṇī) 공주 = 미래의 케마 장로니
2. 사마나굿따(Samaṇaguttā) 공주 = 미래의 웁빨라완나(Uppalavaṇṇā) 장로니
3. 빅쿠니 공주 = 미래의 빠따짜라(Patācārā) 장로니
4. 빅쿠다이이까(Bhikkhudāyikā) 공주 = 미래의 꾼달라께시(Kuṇḍalakesī) 장로니
5. 담마 공주 = 미래의 끼사고따미(Kisāgotamī) 장로니
6. 수담마(Sudhammā) 공주 = 미래의 담마딘나(Dhammadinnā)장로니
7. 상가다이이까(Sanghadāyikā) 공주 = 미래의 위사카(Visākhā)
빠타윈다라 왕자는 그의 7명의 누이들이 깟사빠 부처님에게 7개의 정사를 기증한 후 후계자가 되었다. 후계자는 그의 자매들에게 7개의 정사 단지 중 하나의 비용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의 7명의 자매들은 오빠에게 그가 다른 정사 단지를 기부할 여력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빠타윈다라 왕자는 그의 지위에 따라 적절한 규모로 500개의 정사 단지를 기증했다. 그는 평생 동안 공덕행을 쌓았다. 그는 죽은 다음에 천상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고타마 붓다의 시대에 빠타윈다라 왕자는 싯닷타 왕자와 야소다라 왕비의 아들인 라훌라 왕자로 다시 태어났다. 라훌라의 어린 시절 친구는 쿠루 왕국의 시장 마을 툴라꼿티까(Thullakoṭṭhika)의 부유한 상인 랏타빨라의 아들 랏타빨라였다.
(원주: 라훌라의 출가는 18장에 나와 있고,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 등은 31장과 32장에 나와 있다.)
(역주: 첨부 “부처님이 아들을 가르친 법문” 참조)
라훌라의 훈계 받고 싶은 욕망
부처님이 아들이 출가한 후 매일 다음과 같이 어린 사미를 훈계하곤 했다.
“라훌라,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숲속에 살아라. 음식을 알맞게 먹어라.
4가지 비구의 필수품에 집착하지 말라.
비구가 절제해야 할 것을 잘 지켜라. 육근을 잘 단속하라.
육체(중생의 존재)를 완전히 지겨워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띠하라.
몸의 매력을 포기하도록 마음을 계발하고, 정신의 집중력을 키워라.
일단 영속성의 징후가 사라지면, 자아가 없음을 숙고하라. 그렇게 자신을 훈련하면 삼계의 악처에서 윤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원주: 18장에 수록된 것으로 저자가 미얀마 운율의 자유롭게 번역한 것임.) 라는 제목의 위의 경전은 숫따니빠따와 Khuddakapāṭha에 나와 있다.
라훌라 사미는 아침 일찍 모래 한 줌을 집어 들고 “내가 세존이나 계사로부터 내 손에 있는 모래알처럼 많은 훈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혼잣말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의 이러한 습관은 좋은 조언에 관심을 기울이는 세존의 아들로서 적합하고 훌륭한 아버지의 훌륭한 아들 사미라는 명성을 얻게 해 주었다.
라훌라의 고귀한 성격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비구들 사이에서도 논의의 주제가 되었다. 부처님도 알고 계셨지만 그것은 다른 담론을 위한 주제가 될 것이고 또한 라훌라의 자질을 더 좋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청중 홀에서 설교를 했다. 그는 부처의 보좌에 앉으며 비구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비구가 대답했다. “부처님, 우리는 사마헤라의 고귀한 특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라훌라는 훈계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띠빨랏타 미가(Tipallattha-miga)의 자따까 이야기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고귀한 특성을 보인 라훌라의 과거생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Refer to the Jātaka, Ekaka Nipāta, 2. Sīla Vagga, the sixth story in that Vagga.)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M61)”에서 부처님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인 라훌라 사미에게 항상 진실하고, 농담으로라도 거짓을 삼가라고 가르쳤다.(제20장 참조)
라훌라가 18세였을 때, 부처는 그에게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를 가르쳤다.(제31장 참조)
위빠사나 수행을 실제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22개의 경을 라훌라를 위해서 설했고, 이것이 상윳따 니까야의 “라훌라 상윳따”라는 장으로 편찬되었다.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Catukka Nipāta)에 “라훌라 경”이라고 명명된 다른 경전도 있다.
라훌라가 영적으로 더 성숙해져서, 그가 비구계를 받고 완전한 비구가 되었을 때, 부처는 그에게 “라훌라를 교계한 짧은 경(M147)”을 설했다.(이 경의 자세한 내용은 제32장 참조)
3. 라훌라의 호칭
한 번은 부처님이 뛰어난 비구들의 호칭을 붙이는 비구들의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비구들이여, 삼학에 관해 배우기를 좋아하는 비구들 중에서 라훌라가 제일이다.”
랏타빨라의 비구 생활
쿠루 왕국을 여행하는 동안, 부처는 시장 마을인 툴라꼬띠까(Thullakoṭhika. 집집마다 창고가 벼로 가득 찬 마을)에 도착했다. 상인의 아들 랏타빨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불교를 확신하게 되어 출가하겠다는 강한 신념이 생겼다. 부모의 설득과 항의 끝에 마침내 비구가 되도 좋다는 동의를 얻었다.(앞서 기술한 수딘나 존자의 경우처럼) 그리고 그는 부처님께 갔고, 부처의 지시에 따라, 그는 승가에 들어갔다.
랏타빨라의 부모가 그들의 아들이 출가하는 것을 허락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못마땅해 했다. 비구들이 탁발하러 문 앞에 도착할 때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뭣 하러 왔느냐? 당신들은 내 외아들을 빼앗아 갔으면 됐지, 우리에게 무엇을 더 바라는가?”
부처님은 툴라꼬띠까에 보름 동안만 머물렀고 사왓티로 돌아왔다. 거기서 랏타빨라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자 랏타빨라 존자는 부처님에게 부모님을 방문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고서 그는 툴라꼬띠까로 갔다. 탁발하러 마을에 갔을 때 그는 아버지의 문 앞에 서서 (수딘나 존자의 경우처럼) 퀴퀴한 케이크를 받았지만, 마치 그것이 천상의 음식인 것처럼 먹었다. 자신이 제공한 공양 음식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그의 아버지는, 비구인 아들을 집안으로 초대하여 온전한 식사를 하게 하려고 했지만, 랏타빨라 존자는 그가 오늘의 식사를 끝냈기 때문에, 다음날 오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아버지 집에서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정장을 한 가정의 여성들에게 법문을 해서 그들이 몸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살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꼬라비야(Korabya) 왕의 왕궁 정원으로 가서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다. 그는 정원사를 통해 왕에게 그가 그곳에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꼬라비야 왕은 그에게 예경을 올리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랏타빨라 존자는 손실 또는 지연의 네 가지 원칙(pārijuñña)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 후, 그는 단계별로 여행해서 사왓티의 부처님의 정사에 도착했다. (이것은 랏타빨라 경(M82)의* 간략한 이야기이다.)
*주: 랏타빨라 경(M82)은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27 참조
3-1 랏타빨라의 호칭
한 번은 부처님이 가장 뛰어난 비구들의 호칭을 붙이는 비구들의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비구들이여, 순수한 믿음으로 출가한 비구 제자들 중에서, 랏타빨라가 제일이다.
(원주: 라훌라 존자는 삼학에 대해 배우기를 좋아하는 비구들 중에서 제일가는 인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그가 사미였을 때부터,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그는 부처님이나 그의 스승으로부터 훈계와 충고를 기다렸다. 그는 매일 아침 한 주먹의 모래알만큼 많은 충고를 원했다.
랏타빨라 존자는 출가하려는 강한 열망의 표시로 7일 동안 음식을 멀리해야만 했다. 그것이 그가 출가하려는 열망이 제일인 비구로 선언된 이유이다.)
첨부
부처님이 아들을 가르친 법문
부처님이 깨달은 다음에 까삘라왓투 궁전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7살이었던 라훌라 왕자를 만났다. 라훌라는 부처님의 가사를 잡고 이렇게 말하면서 유산을 물려달라고 했다. “모든 번뇌를 제거하신 아버님, 저에게 유산을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라훌라를 사미로 출가시키도록 하였다. 그 이후로 부처님은 라훌라 존자에게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법문을 했다.
(1) <사미를 위한 질문(Sāmaṇerapañha)>은 7세 때 설한 것.
(2)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Ambalaṭṭhika-Rāhulovāda Sutta. M61)>은 7세 때 설한 것. -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31 참조
3) <라훌라 경(Rāhulovāda Sutta. “숫따니빠따 2-11”)>은 언제 설해졌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부처님이 자주 설한 것 -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32 참조
(4) <눈 경(S18:1. “상윳따 니까야”의 제18주제인 ‘라훌라 상윳따)>은 사미가 된 7세부터 갓 비구가 되어 아직 한 번의 안거도 준수하지 못하고 있을 때까지 때때로 설한 경 -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33 참조
(5)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ahā-Rāhulovāda Sutta. M62)>은 라훌라가 18세 때 설한 것 -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34 참조
(6) <라훌라를 교계한 짧은 경(Cūla Rāhulovāda Sutta. M147)>은 라훌라가 정식으로 비구가 된 해에 설한 것. -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35 참조
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사미를 위한 질문>은 “아이들은 적절하거나 부적절하거나 상관없이 아무 말이나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신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라훌라야, 사미는 왕자나 통치자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동물 이야기(tiracchānakathā)’를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도(道)와 과(果)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말하고 싶으면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라.” 그러고서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이 경을 설했는데 이 경은 모든 부처님이 절대 빠뜨리지 않는 10가지 질문과 55가지 답으로 이뤄진 것이다. (<Khuddaka Nikāya>의 첫 번째 책인 <Khuddaka-paṭha> 에 실려 있다.)
(2)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보지 못했으면서 보았다고 말하고, 보았으면서도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고 이 경을 설하셨다. 여기서는 7가지 예를 순서대로 들고 있다. 첫째,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물그릇의 예 네 가지, 전쟁터에서 코끼리의 예 두 가지, 그리고 거울의 한 가지 예를 들고 있다.
(3) <라훌라 경>경에는 4가지 필수품에 대한 탐착을 일어나지 못하게 막는 내용과, 5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구, 탐욕, 탐착을 제거하는 내용, 종은 친구[善友]와 사귀는 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경이 언제 설해졌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부처님이 자주 설한 경이다.
(4) <눈 경> 등에서는 중생이 다시 태어나는 삼계 어디에 대해서도 탐착과 욕구를 일으키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 경은 라훌라로 하여금 위빳사나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설해졌다.
(5)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은 자신의 몸에 대해 ‘나는 아름답고, 내 모습은 깨끗하고 단정하다.’ 등으로 생각하며 세속적인 욕구와 탐착(gehassita chandarāga: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으로 재가 생활에 대한 욕구와 탐착)을 일으키지 않도록 설해진 경이다.
(6) <라훌라를 교계한 짧은 경>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지 14년째 되던 해, 라훌라가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되었으나 아직 안거를 단 한 법도 완전히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부처님은 15가지 해탈을 익게 하는 법(vimutti-paripācanīya)을 성취하도록 이 경을 설함으로써 곧바로 라훌라를 아라한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이때 라훌라는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기 위해서 비구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Kikī va bījaṃ rakkheyya, camarī valam uttamaṃ,
nipako sī1asampanno, mamaṃ rakkhe tathāgato.
암꿩이 알을 지키듯, 야크가 자신의 소중한 꼬리를 지키듯,
삼계의 눈이시며 나의 아버지인 세존께서는 혈육인 나를 지켜주셨네.
암꿩이나 야크처럼 보호하여 나로 하여금 아라한이 되도록 하셨네.
참고자료:
① 『The Great Chronicle of Buddhas, The State Buddha Sasana Council's Version』, Volume Four, by The Most Venerable Mingun Sayadaw, Translated by U Tin Lwin, First Edition, November, 1996, pp. 140-143.
②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586.html
③ 참고자료 : 최봉수 역주, 『大佛傳經 Ⅶ』, 한언, 2009, 144-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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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Rāhula and Raṭṭhapāla Mahātheras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74.html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During the early part of the aeon of Buddha Padumuttara, the future Rāhula and the future Raṭṭhapāla were born into well-to-do families of Haṃsāvatī. (Their names and clans as youths are not mentioned in the old Commentaries.)
When they came of age, they married and at the death of their fathers, they became heads of their respective households. In taking over the family properties from the custodians of their family estates, they came to know the immense wealth they had inherited. They pondered: “Our forebears have amassed these vast fortunes but have not been able to take them along when they leave the present existence. As for us, we would take them along into the hereafter in whatever way we can. So they started to practise charity. They erected distribution stations at the four quarters (at the four gates of the city, as the Sri Lanka version says,) where all the needs of destitutes and travellers were provided liberally.
Of the two friends, one was in the habit of inquiring into the needs of the donees who came to receive his charity and would gave according to their needs, and he was therefore known as Āgatapāka, ‘the Discriminative Giver’. The other never asked about the need of the recipient but let them take however much they wanted, and hence he was known as Anaggapāka, ‘the Liberal Giver’.
One early morning, the two friends went out from their village to wash their faces. At that time, two recluses, using their supernormal powers, disappeared from the Himavanta mountains and reappeared at a place not far away from the two friends. They made themselves invisible and stood by the roadside and visible only when they were heading for the village with their alms-bowls and other vessels in seeking for alms. The two friends went near and paid their homage to the recluses, who asked them: “O men of great merit, when did you come here?” And the two friends replied: “Venerable Sirs, we have just arrived.” Then they each invited a recluse to their respective homes, offered them almsfood, after which they asked and received the promise from the recluses to receive their offerings every day thenceforth.
(One of them, the recluse who had agreed to be the regular donee to the future Rāhula) was phlegmatic, and to cool his heated body, he used to spend the daytime in the abode of a Nāga Lord, named Pathavindhara, which lay beneath the ocean. The recluse went there by making the ocean water cleft into a dry passage-way. On returning from his watery sojourn, where he had enjoyed the favourable weather, to the human abode, he, on the occasion, gave appreciative talk about the daily food offerings. After hearing the repeated reference to ‘the abode of Pathavindhara Nāga Lord’, the donor became curious to know what that expression denoted. This recluse explained to him: “Ah, that is our wish that you be as great as the Lord of Nāgas named Pathavindhara” and told him the grandeur of the Nāga Lord undersea. From that day onwards, the future Rāhula’s mind was inclined to the Nāga existence, as he visualized from the recluse’s description of it.
The other recluse used to spend his daytime at a deva mansion, named Serisaka, after the big celestial tree that stood in front of it in Tāvatiṃsa. And this recluse, who saw the palace of Sakka, King of Devas, mentioned it in his word of appreciation and felicitation about the daily food-offering he received at the future Ratthapala’s house. When the Ratthapala asked him to explain what he was referring to, he explained the greatness of Sakka and his good wish that his donor will be as great as Sakka. Thence forward the future Raṭṭhapāla’s mind was inclined to the celestial state of Sakka.
When the two rich friends passed away from their existence, future Rāhula, whose mind was inclined to the Nāga Lord’s existence, was reborn as the Nāga Lord Pathavindhara and future Ratthapala, whose mind was inclined to Sakka’s existence, was reborn as Sakka in the Tāvatiṃsa Deva realm.
Past Aspiration of Future Rāhula
At the moment of his rebirth as a nāga, Pathavindhara looked at his own body and felt sorry that he had indeed became a reptile. He thought of the limited vision of his benefactor, the recluse in his previous existence: “Ah, my teacher would seem to know no higher ideal for me than the reptilian existence.” Just then he was attended on by a troupe of nāga dancers and musicians, all in celestial garb, who were there to entertain him wherever he remained. He himself then took on the appearance of a celestial youth, his reptilian form having been discarded.
A significant activity in nāga existence was that Pathavindhara had to attend, as part of his Nāga King Virūpakkha’s entourage, the half monthly meetings presided over by Sakka, where the four Celestial Kings paid their homage to the King of Devas. Sakka saw his old friend, Pathavindhara, even from a distance and recognized him. He asked him: “Friend, in which realm were you reborn?”
“O Lord, unfortunate is my destination. I was reborn as a reptile in the realm of nāgas. But you were fortunate to have a good teacher (in the past) to be reborn in the deva realm.”
“Do not be disappointed for your unfortunate destination. There has arisen in the world, Buddha Padumuttara. Go to him, perform great deeds of merit, and wish for the state of Sakka, so that we would live together in this Tāvatiṃsa realm.”
“Very well my Lord,” said Pathavindhara, “I will follow your advice.”
Then he went to see Buddha Padumuttara, invited Him to his undersea realm. He made preparations for a great offering the whole night together with his followers.
Early in the next morning, at dawn, the Buddha said to his personal attendant, the Venerable Sumana: “Sumana, the Tathāgata is going to a far-off land to collect alms-food. Let only arahats who have memorised the Dhamma-Vinaya (the three Piṭakas) and have attained the Fourfold Analytical Knowledge and the Six Supernormal Powers, accompany Me, and not the other worldling bhikkhus.” The attendant announced this order among the bhikkhus.
Then the Buddha, accompanied by arahats, who had memorised the Dhamma-Vinaya (Three Piṭakas) and had attained the Four-fold Analytical Knowledge and the Six Supernormal Powers, rose to the sky and went to the abode of Pathavindhara, the Lord of Nāgas. As Pathavindhara waited to welcome the Buddha, he saw Him and His company of arahats walking above the wavy waters of emerald green colour of the great ocean. There was the procession of majestic arahats with the Buddha at the head and a young novice, named Uparevata, who was the son of the Buddha. Pathavindhara was particularly overawed by the young sāmaṇera for having such supernormal powers just like the elder bhikkhus. He felt thrilled with joy at the magnificent sight.
When the Buddha took the seat prepared for Him and the arahats took their respective seats according to seniority, the seat assigned for Sāmaṇera Uparevata was high in front of the Buddha. As the young novice was sitting there, Pathavindhara, while serving the food to the Buddha and the Sangha, looked keenly at the Buddha and the young novice in turn. He noticed that the novice had the thirty-two distinct marks of a great man just like those on the body of the Buddha. That was the reason for his keen inspection of the Buddha and the novice in turn.
Pathavindhara was wondering why the young novice had so much resemblance as the Buddha, how both were related to each other. He asked one of the arahats: “Venerable Sir, how is this young novice related to the Bhagavā?” The arahat replied: “Lord of Nāgas, he is the son of the Bhagavā.” Pathavindhara was deeply impressed by the novice. “What a superb status this sāmaṇera occupies! The son of the greatest man in all the world, unrivalled in personal glory! His body is partly just like that of the Bhagavā himself. Oh, how I would like to be the son of a Buddha in some future time.”
Having been moved by this aspiration, the Lord of Nāgas invited the Buddha to his residence for seven days and made great offerings to Him. Thereafter, he made his aspiration before the Buddha: “Venerable Sir, for this great deed of merit, may I become the son of some future Buddha, just like Sāmaṇera Uparevata.” The Buddha saw that the Nāga Lord’s aspiration would be fulfilled and made the prognostication: “You will become the son of Buddha Gotama in the future,” then He departed.
Past Aspiration of Future Raṭṭhapāla
At the next half-monthly deva meeting to pay homage to Sakka as a member of the Nāga King Virūpakkha’s retinue, Sakka asked his old-time friend Pathavindhara: “Well, friend, have you made your aspiration for the Tāvatiṃsa realm?” Pathavindhara answered: “No, my Lord.” “But why didn't you do that? What disadvantage do you see in deva existence?” “My Lord, it is not for any disadvantage I see in deva existence. The fact is I have seen Sāmaṇera Uparevata, the son of the Buddha who was just wonderful. Since I had cast my eyes on him, I have no aspiration other than to become the son of a future Buddha, exactly like Sāmaṇera Uparevata. So I had made my aspiration before the Buddha to become the son of some future Buddha. My Lord, I would ask you to make some aspiration before the Buddha. Let us live together in future existences in saṃsāra.”
Sakka accepted Pathavindhara’s suggestion and as he was thinking about his ideal aspiration, he saw a bhikkhu endowed with great powers. He reviewed the lineage of that bhikkhu and saw that the bhikkhu was the son of a noble family that had the ability to unite a country that had been divided, and that the bhikkhu had to obtain parental consent to join the Order, only after starving himself in protest for seven days. He decided to emulate that bhikkhu. He asked the Buddha about the bhikkhu, even though he had known it by his own divine powers. Then he made great offerings to the Buddha for seven days, at the end of which he expressed his great wish thus: “Venerable Sir, for this great deed of merit may I be declared by some future Buddha as the foremost bhikkhu among those who took up bhikkhuhood through their conviction just like that bhikkhu who the Bhagavā declared as such.” The Buddha saw that Sakka’s aspiration would be fulfilled and said: “Sakka, you will be declared as the foremost among bhikkhus who joined the Order, through sheer conviction under Buddha Gotama in the future.” After pronouncing that prediction the Buddha departed. And Sakka also returned to his celestial abode.
Raṭṭhapāla’s Life as Manager of Offerings to The Buddha
The future Raṭṭhapāla and the future Rāhula passed away from their existences as Sakka and Pathavindhara respectively, faring in the deva-world and the human world for thousands of world-cycles. Ninety-two world-cycles prior to the present world-cycles was the time of Buddha Phussa. The father of Buddha Phussa was King Mahinda. The Buddha had three half brothers from different mothers. The King monopolised the Buddha, the Dhamma and the Sangha because he did not share the meritorious deeds of attending to the needs of the Buddha with anyone.
One day, rebellion broke out in a remote area of King Mahinda’s country. The King said to his three sons: “Sons, there is rebellion in a far-away region. Either I myself or the three of you must go and put the region in order. If I am to go, you must see that the attendance on the Buddha be kept up in the usual manner.” The three sons unanimously said: “Dear father, it is not for you to go. We will go and put that region in order.” They made obeisance to their father and went to the disturbed area, quelled the rebels and returned in triumph.
On the way home, the three princes sought counsel of their trusted lieutenants: “O men, back in the capital, our father will bestow some boon on us. What sort of boon should we name?” The lieutenants said: “My Lords, at the death of your royal father, nothing will be unattainable to you. The right to attend on your eldest brother, the Buddha, is indeed the boon you should ask for.” “Very well, my men, your advice is plausible.” And they went before their royal father.
The King was very pleased with them and said they would be rewarded with whatever they wished for. The princes asked for the privilege of attending on the Buddha as their boon. “That, I cannot give, sons,” the King said, “name any other.” “We want no other boon. That is the only thing we yearn for.” After some refusals by the King and the affirmations on the part of the three princes, the King at last felt obliged to concede, lest he would be going back on his word. He warned his sons, though, in these words: “I will now comply with your request. But I wish to warm you, the Buddha is in the habit of staying in seclusion, just like the lion in his own den. So you have to be fully attentive in waiting on Him. Do not ever be amiss about your duties.”
The three princes, on being permitted the task of waiting on the Buddha for three months, discussed among themselves: “Since we are going to wait on the Buddha, we ought to don robes and take upon bhikkhuhood as novices.” They decided to be absolutely free from the stench of demerit[1]. Accordingly, they did so and took part in the daily offering of food to the Buddha and the Sangha but entrusted the job to a committee of three trusted men to supervise the task.
Among these three supervisors, one was in charge of procuring rice and cereals, the second in charge of issuing groceries to meet the daily needs of the meals, and the third in charge of cooking and other preparations for the offering. The three men were reborn during the time of Buddha Gotama as King Bimbisāra, Visākhā, the merchant and the Venerable Raṭṭhapāla, respectively.
Rāhula’s Life as Prince Pāthavindhara
The future Rāhula was reborn as the eldest son of King Kikī of the Kāsi country during the time of Buddha Vipassī. He was named by his parents as Prince Pathavindhara. He had seven sisters, namely:
1. Princess Samaṇī = the future Therī Khemā
2. Princess Samaṇaguttā = the future Therī Uppalavaṇṇā
3. Princess Bhikkhunī = the future Therī Patācārā
4. Princess Bhikkhudāyikā = the future Therī Kuṇḍalakesī
5. Princess Dhammā = the future Therī Kisāgotamī
6. Princess Sudhammā = the future Therī Dhammadinnā
7. Princess Sanghadāyikā = the future Visākhā
Prince Pathavindhara became the heir-apparent after his seven sisters had donated seven monastic complexes to Buddha Kassapa, The heir-apparent requested his sisters to let him donate the cost of one of the seven monastic complexes, but his seven sisters pointed out to their eldest brother that he had means to donate another monastic complex. So Prince Pathavindhara built five hundred monastic complexes on an appropriate scale according to his status. He spent all his life in deeds of merit. On his death, he was reborn in the deva realm.
(b) Ascetic Life adopted in The Final Existence
During the time of Buddha Gotama, Prince Pathavindhara was reborn as Prince Rāhula, son of Prince Siddhattha and his Chief Queen Yasodharā. Rāhula’s boyhood friend was Raṭṭhapāla, the son of Raṭṭhapāla, the wealthy merchant of the market town of Thullakoṭṭhika in the kingdom of Kuru.
(The admission of Rāhula into the Order, an interesting episode, can be read in Chapter 18. Many discourses that are connected with Rāhula, such as Mahārāhulovāda Sutta and others, can be found in Chapter 31 & 32.)
Rāhula’s Desire to be admonished
After the Buddha had admitted His son, He used to admonish the young novice every day as follows:
“Rāhula, seek the company of a good friend. Dwell in the forest abode. Be moderate in eating.
Do not be attached to any of the four bhikkhu requisites.
Be flawless with regard to observance of the Bhikkhu Restraint. Guard the six faculties well.
Be constantly mindful about the mind-and-body so as to become thoroughly tired of the body (i.e. sentient existence).
Cultivate the mind to give up any idea of attractiveness in the body; gain concentration of mind.
Once the signs of permanence are given up, reflect on the falsity of an ego. If you train yourself thus, the three rounds of the vicious circle of woeful existences will fall away.”
(Free rendering of Myanmar rhymes by the author, contained in Chapter 18). The above Sutta entitled Abhiṇha-Rāhulovāda Sutta appears in the Sutta Nipāta and the Khuddakapāṭha.
It was the custom of Sāmaṇera Rāhula to pick up a handful of sand early in the morning and say to himself: “May I get admonitions from the Bhagava or from my preceptor in number comparable to the grains of sand in my hand.” This habit of him gained him the reputation as a novice so inclined to good advice as befitting the son of the Bhagavā and as such a worthy son of a worthy father.
This recognition of Rāhula’s noble trait of character became the current topic of discussion among the bhikkhus. The Buddha knew that. And thinking that that would very well make a ready subject for another discourse and would also highlight Rāhula’s qualities even better, He taught a sermon at the audience hall. Having seated Himself on the throne of the Buddha, He asked the bhikkhus what they had been talking about before He went in. The bhikkhus replied: “Venerable Sir, we were discussing on the noble trait in Sāmaṇera
Rāhula’s readiness to receive admonition.” The Buddha then related a past existence of Rāhula where he had displayed the same noble trait, as mentioned in the Jātaka story of Tipallattha-miga. (Refer to the Jātaka, Ekaka Nipāta, 2. Sīla Vagga, the sixth story in that Vagga.)
The Buddha taught young novice Rāhula at his tender age of seven to be truthful at all times, to refrain from untruth even by way of jesting. The discourse on this subject goes by the title of Ambalaṭṭhika Rāhulovāda Sutta (Ref: Chapter 20.)
When Rāhula was eighteen, the Buddha taught him a discourse entitled, Mahā Rāhulovāda Sutta. (Ref: Chapter 31)
To give practical lessons in Insight-meditation, twenty-two suttas were directed at Rāhula, compiled in the Saṃyutta Nikāya, forming chapter entitled Rāhula Saṃyutta; and there is also another discourse entitled Rāhula Sutta in the Aṅguttara Nikāya, Catukka Nipāta)
As Rāhula became spiritually more mature, when he had just been admitted into the Order as a full-fledged bhikkhu, the Buddha taught him another discourse entitled Cūḷa Rāhulovāda Sutta. (See the details of this discourse in Chapter 32.)
(c) Etadagga Title achieved by Rāhula
On one occasion, in the congregation of bhikkhus where the Buddha named outstanding bhikkhus, He declared: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m bhikkhūnaṃ sikkhākāmānaṃ yadidaṃ Rāhulo.”
“Bhikkhus, among the bhikkhus who welcome admonition concerning the Threefold Training, Rāhula is the foremost (etadagga).”
Raṭṭhapāla’s Bhikkhuhood
In His tour of the Kingdom of Kuru, the Buddha arrived at the market town of Thullakoṭṭhika (which means the town where all households have their granaries full of paddy). On hearing the Buddha’s discourse, Raṭṭhapāla, the merchant’s son, was overwhelmed by religious conviction and had an intense desire to renounce the world, After much persuasion and protestation with his parents, he finally obtained their consent to become a bhikkhu (like in the case of the Venerable Sudinna which has been described earlier on), and he went to the Buddha. Under the Buddha’s order, he was admitted into the Sangha.
Although they had permitted their son to leave household life, Raṭṭhapāla’s parents were still unhappy about it. Whenever bhikkhus arrived at their door on the alms-round, the father would say to them: “What business do you have here? You have taken away my only son. What more do you want to do with us?”
The Buddha stayed at Thullakoṭṭhika for fifteen days only and returned to Sāvatthi. There, at Sāvatthi, Raṭṭhapāla meditated on Insight and attained arahatship.
The Venerable Raṭṭhapāla then asked permission from the Buddha to visit his parents. Hence, he went to Thullakoṭṭhika. While going for alms-collection in the town, he stood at the door of his father where (like in the case of the Venerable Sudinna), he received stale cakes but he ate them as if they were the food of devas. His father felt guilty about the alms-food he had offered and invited the bhikkhu-son to his house to take a (wholesome) meal but the Venerable Raṭṭhapāla said that since he had finished the day’s meal, he would come the next day. On the following day, after finishing his meal at his father’s house, he gave a discourse to the womenfolk of the household who were fully garbed, and enabled them to perceive loathsomeness of the body. Then all of a sudden, like an arrow, he flew up to the sky and descended in the royal gardens of King Korabya where he sat on a rock platform. He sent word to the King through the gardener about his presence there. King Korabya went to pay homage to him. Venerable Ratthapāla gave a discourse, in detail, on the four principles of loss or delay (pārijuñña). After which, he returned to Sāvatthi, travelling by stages, and arrived at the Buddha’s monastery. (This is a brief account of the Venerable Raṭṭhapāla. Full details may be gleaned from the Majjhima Paṇṇāsa of the Majjhima Nikāya.)
(c) Etadagga Title achieved by Raṭṭhapāla
On one occasion, in a bhikkhu congregation where the Buddha named foremost bhikkhus, He declared: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ṃ saddhāpabbajitānaṃ yadidaṃ Raṭṭhapālo.”
“Bhikkhus, among my bhikkhu-disciples who take up bhikkhuhood through sheer religious conviction, Raṭṭhapāla is the foremost (etadagga).”
(Note: The Venerable Rāhula was designated as the foremost among those bhikkhus who welcomed admonition concerning the threefold training because, from the day he became a novice, he always had a most keen desire to be instructed. Every morning, he awaited admonition and advice from the Buddha or from his preceptor. He wanted as many words of advices as they would give, even as many as the grains of sand he used to hold in his hand every morning
The Venerable Raṭṭhapāla had to stay away from food for seven days as token of his strong desire to renounce the household life. That was why he was declared the foremost bhikkhu who took up bhikkhuhood.)
FOOTNOTES AND REFERENCES:
[1]:
Nirāmagandha, ‘the stench of demerit’ according to the Commentary. The Sub-Commentary elaborates on this term thus: ‘stench’ is to be interpreted as demerit and also as defilement. Stench is inseparable from defilement: whenever defilement arises, it produces a bad smell. Stench means a mind where defilement arises continuously. The metaphor ‘stench’ is used to denote something obnoxious, impure (as though polluted by a trace of excreta), frowned upon by the wise and virtuous, and an agent that stinks everything. This last quality of defilement is also manifested by evil persons whose body stinks literally, whereas the dead body of a purified one has no bad smell.
Last Updated: 17 Sept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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