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영면하소서
김 홍 은
대관령 고갯마루를 넘어 비탈길에서 내려다보이던 강릉의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찬란한 무지개마저 일게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때처럼 즐겁고 아름답게 느꼈던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사모님, 기억나시나요. 그해가 아마 1999년 여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수필과 비평’ 문학지에서 신인상시상식 및 세미나를 열은 해 이었던 것 같습니다. 청주에서 제가 추천한 수필문학 지망생이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신인상을 수상하러 가는 길에 봉고차를 한대 빌려서 참석했습니다. 마침 방학이라서 제 집사람도 20년만의 첫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그때 사모님은 남편 되시는 서사장님 대신 참석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서사장님은 차를 타고 가는 일은 차멀미로 어디고 출타를 못하신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세미나 때마다 여러 차례 먼 발치에서만 사모님을 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리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날 행사장에서 제 집사람은 서사장님을 대신하여 사모님이 직접 앞에서 도와 주심을 알고 무척 부러워 여겼습니다.
강릉 경포대에서 ‘수필과 비평’의 출신 작가들과 전국 수필가들이 서로 만나는 뜻 깊은 바닷가의 밤이 오래도록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사모님, 사모님이 세상을 떠나가신 게 벌써 10주년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습니다.
‘수필과 비평’ 문학지를 받았을 때, ‘황의순 문학상’을 보면서 그제야 “맞아 저승에 계시는 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모님, 어떻게 인자하신 서사장님을 홀로 남겨두시고 눈을 감으셨어요. 사장님이 가엾지도 않으셨어요. 그렇게 열렬히 도와 주시던 수필문학지는 어떻게 하라고 가셨어요.
사모님, 이제는 모두가 지나간 이야기지만 사모님이 떠나가신 후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사장님은 몇 달을 식음을 전폐하다 시피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다가 몸 져 누우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시었답니다. 그때마다 사모님을 위한 문학상을 제정하고 이름 있는 값진 상으로 만들어 놓으려는 의지로 해마다 건강을 잃지 않으시고 부처님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아오셨습니다.
사모님, 이제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금년은 “수필과 비평‘도 20주년을 맞이하여 111호 부터 월간지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사장님은 사모님을 사랑하는 못다 한 애절한 마음을 대신하여 날마다 잡지에다 정을 쏟으시고 계십니다. 이제는 황의순 문학상이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수필문학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아내를 위해 문학상을 만들어 놓은 남편은 전국에도 아니 세계적로도 아마 없을 겁니다.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수필문학의 공든 탑을 쌓아 놓으셨습니다. 저는 사장님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이제는 서사장님도 더 이상 원이 없으실 겁니다.
사모님, 이 얼마나 갸륵하고 아름다운 남편이신가요. 생존해 계실 적에도 그러셨겠지만 참으로 자랑스러운 분이십니다. 문학상을 통하여 아내를 높이 기리고, 한편으로는 한국의 수필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신 마음이야, 난꽃은 난향천리(蘭香千里)지만 서정환사장님의 어질음은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하겠습니다.
수필과 비평 문학지를 처음 출간할 적에는 어려운 점도 있으셨 겠지만, 지금은 큰 호수로 생각한다면 맑은 물이 가득히 고여 금붕어가 자유로이 노닐며 쉴 새 없이 알을 낳고 또 부화를 하여, 물 반 고기반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는 문학공원이나 아름답게 조성하고 호수에는 구름다리를 놓고 봉래섬을 꾸미고, 그 섬에다 문학비를 세우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이는 사모님이 살아생전에 수필문학에 남다른 애정의 덕을 베풀고 가실 때 심어 놓은, 한 그루의 묘목이 이제는 큰 나무가 되어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숲이 이루어졌기에 모두가 가능한 일입니다.
사모님, 아무 걱정도 마셔요. 지금은 아드님과 따님이 사장님 곁에서 늘 돕고 있습니다. 이제 서정환 사장님은 한국의 수필문학 황제가 되셔서 옥좌에 앉아 책장만 넘기시며 자서전을 쓰고 계십니다. 인생은 산수(傘壽)부터라고 건강도 좋아지셨습니다.
사모님, 금년도 어느덧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편안히 영면하옵소서.
첫댓글 "난꽃은 난향천리(蘭香千里)지만 서정환사장님의 어질음은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하겠습니다." 심금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아! 깔끔한 문체.
물흐르듯 휘감는 정.정.정.
"이처럼 아내를 위해 문학상을 만들어 놓은 남편은 전국에도 아니 세계적로도 아마 없을 겁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