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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雅歌
1.이름:
히브리어 שיר השירים, 그리스어: Ἆσμα Ἀσμάτων, 영어: Song of Songs.
대중가요 모음집으로 결혼축제때 불렀을 것이다. 편집자 모아서 극작시로 편집하여 지혜문학으로 수용되었다. 아가는 히브리어 ‘쉬르 하쉬림(가장 아름다운 노래)’으로 책의 첫 낱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을 불가타 성경과 우리 성경에 그대로 옮겼다. 아가서 최초의 주석자인 클레르보의 베르 나르도는 이 책을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사랑 체험의 책’이라고 한다. 구약 성경이 경전화될 때 많은 논란이 되었지만 수용되었다. 유대교는 지금도 해마다 파스카 축제 마지막 날에 아가 전체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초대교회때부터 이 경전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찾아보며 소중히 여겨왔다.
유대교의 신비주의나 오리게네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 십자가의 요한등은 아가를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자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갈망으로 이해했다. 특히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임종의 자리에서 아가를 읽어달라고 했다. 아가가 찬미하는 바가 죽음으로 성취된다고 여긴 것이다."인장처럼 나를 당신의 가슴에, 인장처럼 나를 당신의 팔에 지니셔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답니다"(아가 8,6-7)
2.저자:
아가는 솔로몬을 저자로 내세운다(1,1). 그러나 솔로몬에 대해 3,6-11은 3인칭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솔로몬의 여성편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들어 있다(3,9-10). 사용된 언어와 사회 배경들을 볼 때에도 솔로몬이 실제 저자가 아님이 분명하다.
1) 여러 저자설:
개별 노래들을 모은 것(현재도 주장)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아가를 이집트의 연애시나 시리아 혼인 예식등과 비교 하면서 아가가 그런데서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주장하다.
2) 단일 저자설:
단일한 저자에 의해 쓰여진 작품이라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3. 저작연대:
언어와 문체가 후대의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5C ~ 3세기경으로 추정한다
4.내용:
-사랑의 찬가라고 할 수 있는 이 경서는 세세한 자구字句에 구애되지 말고 전체 분위기를 음미하도록 읽는다. 고금동서의 인류에게는 남녀간 사랑 노래가 대단히 많다. 저자는 그런 형식과 내용을 이용하여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에 대한 사랑의 신비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다음의 이해를 제시한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사랑과 친교를 찬양하는 노래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사랑의 유대를 찬미하는 노래이다.
=아가서는 사랑의 신비를 이야기하면서 하느님의 신부인 선택된 민족의 소망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아가서에서 ‘하느님’이 한 번도 거론 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이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연인인 ’유일한 이‘와, 인간의 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존재자체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것과 같다.
저자는 아가서를 읽은 모든 이가 하느님과의 가장 지고지순한 사랑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며 인간에게 가장 쉽고 가장 감각적인 차원에서 시작해 사랑의 여정을 따라 마침내 경지에 이르도록 제시한다. 그러기에 수많은 신비가들 저서에서 자신의 영적 삶과 하느님과의 특별한 개인적 만남, 그리고 우리 모두 초대받은 신비한 결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아가서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다.
아가서를 따라가다 보면 사랑의 신비는 자신의 완성되기 위해 다양한 과정들과 직면한다.저자는 인간을 황홀경(갈망)을 품은 채 걷게 한다. 그러나 곧 인간의 영적인 움직임과 거기서 극단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기쁨에서 고통으로, 포기에서 소유로 고독에서 충만함으로 거부에서 수용으로 이별에서 재회로-등을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일관성 있게 주어지는 과제가 기다림이다. 기대나 갈망만큼 빨리 오지 않는 기다림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기다림, 잠시 있다 빠져나간 것에 대한 기다림..., 겨우 맛본 충만의 순간은 스러지고 극심한 고통이 남는다. 사랑하는 이를 되찾으려는 열정이 강렬할수록 그의 부재는 더욱 견디기 힘들어진다.
이 모든 가정에서 대단히 놀라운 일은 매 순간의 사랑하는 이에 대한 부재와 미완未完적 결합의 경험은 반복되지만, 새로운 지평으로 다가서게 하고 갈수록 경이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돕는다는 점이다.(사랑의 왕국처럼) 그녀에게는 새로운 힘이 주어져 실제로는 결코 사라진 적이 없는 것을 되찾게 한다.(사랑의 왕국처럼) 아가서가 주어지는 부르심에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의 갈망이 아가서 여인의 갈망과 함께 성장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이 신비의 심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며 오로지 이 신비에서 빚어졌음을 마침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간적인 사랑도 저마다 고유한 사랑의 경험을 간직하며 나 자신을 고수하면 어떻게 사랑하는 상대방이 될 것인지, 또한 상대방이 내가 되려는 순간에 어떻게 그를 단념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결코 쉽지 않은 힘든 여정이다.)
5.구조:
아가의 구조는 형성과정 이론들과 결부되어 추정해볼 수 있다. 다양한 저자론을 따를 경우 구조 이해가 불가하다. 시구와 주제 이미지와 상황이 반복되고 있고, 연결이나 상황에 대해 설명이 없어 현대적 의미의 문학적 구조 파악이 어렵다. 반면 단일한 편집자론을 따를 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남녀의 사랑으로 비유한 단일한 주제와 내용 전개를 전제할 때 구조를 논할 수 있다. 확실한 것과 일관된 것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아가의 많은 노래들이 전부 단일한 주제 곧 관능적 사랑을 다룬다는 사실이다. 이런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1,1-4: 연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갈망/ 1,5-2,7은 연인을 찾아 나서는 여인/ 2,8-17은 구혼 시절을 회상하는 여인/ 3,1-5,1은 결혼식, 5,2-6,3은 이별의 악몽과 다시 연인을 찾아 나서는 여인/ 6,4-8,4는 여인을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남성/ 8,5-7은 마지으로 사랑의 영원함을 노래함/ 그리고 8,8-14는 부록이다.
*Barbiero 2004 구조>
1.두 연인은 분리되어 있고 남성이 여성을 찾는다 2,8-27; 5,2-5
2.여성이 남성을 찾는다 3,1-5/5,6-6,3
3.두 연인은 서로의 앞에 있다 4,1-6/ 6,4-7,11
4.합일 4,8-5,1/ 7,12-8,4.
(안소근 수녀, 아가서 강의록 참조)
아가 1,1은 머리글이고 서문 역활은 1,2-2,7로 여자가 등장한다. 2,8-17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자는 즉시 남자의 부름에 응답하여 따라나서지 않는 것 같다. 합일은 이루어지지 않고 남자가 떠나버린 다음, 여자는 3,1-5에서 놓쳐버린 남자를 찾아 길거리로 나선다. 이렇게 둘이 서로를 찾아 나선 다음, 여인은 가마를 타고 솔로몬에게 온다(3,6-11). 이어 혼인 행렬이다. 드디어 두 연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다. 4,1-7에서 남자는 자기 애인을 바라보며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4,1)라고 경탄하며 사랑을 향유하고자 하는 갈망을 표현한다. 그런 다음 4,8-5,1에서는 두 사람)사랑이 정원에 도달한다.앞에 인용한 5,1에서는 남녀의 결합이 완성되고, 그 사랑을 축복 축하하는 “먹어라 벗들아, 마셔라, 사랑에 취하여라(5,1)이라는 말로 아가 1부가 끝난다.
2부는 5,2-5에서 시작된다.
앞에서와 같이 먼저 남자가 밖에서 여자를 부른다. 이번에도 역시 이 여인은 (결합) 대답할 때를 놓치고 한발 늦게 남자를 찾아 나선다(5,6-6,3). 그런 여자에게 친구들이 ‘그 남자가 다른 남자보다 나은 것이 뭐냐?“고 묻고(5,9) 여자가 답변한다( 5,10) 여자 친구들이 그 남자는 어디로 갔느냐고 묻고(6,1) 여자가 정원으로 갔다고 대답한다(6,2-3).그런 다음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만나고 여기서 남자가 자기 애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경탄한다.(6,4-7,10) 남자의 경탄에 대해 여자가 바로 알아 듣고 화답한다. 자신은 남자에게 곧바로 흘러가고 흘러드는 포도주라고 한다, 1,2에서 여자는 ‘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하다고 했는데, 비로서 흘러가고 흘러드는 사랑의 완성과 결합의 표징으로서, “오셔요! 나의 연인이여”라고 한다. 그 이후 다시 사랑의 완성이다(7,12-8,14).
*참조: 꼴레르 누와르 구조>
첫째 시
서곡 1.1-4/유배 1,5-8/만남과 첫 대화 1,9-17/사랑의 봄 2,1-7
둘째시
일치로의 초대 2,8-17/연인을 찾아서 3,1-5
셋째 시
마간곡 3,6-11/폭풍우 이후의 햇빛 4,1-8/닫힌 정원에 들어가다 4,9-5,1
넷째 시
잠에서 깨어나다 5,2-6,3
다섯째시
완성으로 가는 여정 6,4-7,1/신부의 춤 7,1/결혼의 또 다른 차원 7,2-14
맺어진 결합 8,1-14/탈신성화와 세속화
6.아가의 해석 역사
가. 부정적 해석:
아가 1,2 처럼 글자그대로 이해할 할 때, 아가서는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인간의 상열지사를 노래한다고 잠언 5,7장이나 집회 9장처럼 여자와 술을 조심하라는 대신 ‘먹어라 마셔라 사랑에 취하라“고 제시하는 자구가 들어있는 아가를 경전으로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나. 긍정적 해석:
랍비 아키바는 “아가를 외설적으로 노래하거나 이것을 세속적인 노래로 만드는 사람은 장차 올 세상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유다교에서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통적으로는 우의적인 해석이 아가 해석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나-1.유다교의 우의적 해석
유다교의 전형적인 해석은 아가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사랑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드라쉬에서, 위에 인용한 아가 1,2는 연인의 입맞춤을 갈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토라의 말씀을 간청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해석의 다듬어진 형태는 타르굼에서 나타난다. 타르굼은 아가에 나타난 남녀 간의 사랑의 여정이 이집트 탈출에서부터 종말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사랑의 역사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타르굼을 해석하는 이들에 따라 조금씩 서로 다르게 단락을 구분하기는 하지만 대략 예를 들면, 아가 1,2-3,6은 이집트 탈출부터 천막 성소의 건립까지를,아가 3,7-5,1은 솔로몬의 성전 건립과 봉헌을, 아가 5,2-6,1은 유배를, 아가 6,2-8,11은 귀환과 제2성전 건립을 ,7,12-8,14는 메시아 시대를 나타낸다는 식이었다.
1) 타르굼의 아가 해석
이렇게 아가의 신랑을 하느님으로 신부를 이스라엘로 보는 해석은, 구약성경 특히 예언서의 탄탄한 전통에 기초하고 있다.(이 해석을 배척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호세아를 비롯하여 에제키엘, 예레미야, 제2 이사야로 이어지는 전통이 없이 과연 그러한 해석이 가능했을까? 이러한 에언자들의 전통은 타르굼에서와 같은 아가 해석을 뒷받침한다. 아가의 일차적인 의미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는 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에언자들의 독특한 전통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는 읽는 이스라엘은, 본문에 무리를 가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그 노래를 하느님과 자신의 사랑에 적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2) 랍비 이키바(기원후 2C)
랍비 아키바는 이 책은 당연히 거룩한 책이며 “아가가 이스라엘에 주어진 날에 비하면 온 세상 전체도 아무것도 아니다. 성문서 모두가 거룩하지만, 아가는 거룩한 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거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전에서 말씀의 궤가 있는 지성소가 거룩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가가 지극히 거룩한 책이라고 말한다. 랍비 아키바는 “아가를 외설적으로 노래하거나 이것을 세속적인 노래로 만드는 사람은 장차 올 세상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강하게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유다교에서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아가 해석에 우의적인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아키바에 대해 Barbier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해 둘 것은 아키바가 그의 신앙을 위하여 순교자로 죽었으며, 그의 생명을 희생으로 바침으로써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라는 아가 8.6을 증거했다는 것이다.
3) 중세
중세에도 10세기의 사디아, 11세기의 라시등 유다교의 주요한 아가 주석가들은 이러한 전통적 해석의 노선을 따랐다. 한편에서는 이와 다른 방식으로 아가의 남녀를 각각 능동 지성과 수동지석으로 이해하거나(Joseph Ibn Caspi, Isaac Sehula등) 지혜와 지혜를 찾는 인간으로 이해하는(Isaac Abravanel 등)이 있었으나 그러한 해석이 주류를 이루지는 않았다.
나-2. 그리스도교의 우의적 해석
그리스도교의 우의적 해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다교와 유사하게 아가의 신랑을 하느님으로 또 그리스도로 이해하는 집단적-역사적 해석이 있다. 또한 신부를 개별 영혼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1) 히폴리토(+200)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아가 주석이라고 일컬어지는 히폴리토(+200년경)의 주석에서는 아가가 말씀의 육화를 노래한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아가 2,8에서 산들과 언덕들을 넘어 뛰어오는 연인은, 하늘로부터 지상으로 육화하신 말씀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말씀의 이 육화는 말씀이 한 개별적인 인간이 되셨다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 말씀의 신성이 인성 자체와 결합된 것으로 이해되므로 그의 아가 이해는 집단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아가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구약의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치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2) 오리게네스
그리스도교의 아가 해석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히폴리토와 거의 동시대인이었던 오리게네스였다. 이후의 영적인 해석들에 미친 영향 때문에 오리게네스는 아가에 대한 순전히 영적인 해석을 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헥사플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성경의 문자에 지극한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었고, 그는 자구적인 의미에서 아가는 솔로몬이 만든 결혼 축하 노래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육적인 인간과 영적인 인간을 구별했고, 그들이 각각 이해할 수 있는 성경 의미가 서로 다르다고 보았다. 자구적 의미는 우의적 또는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영적으로 진보한 인간은 아가를 교회 또는 개별영혼과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아가 1,2를 이용하자면, 그는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이라는 기원이 메시아에 대한 교회의 갈망을 표현하고 또한 영혼이 스승들의 가르침을 넘어서서 하늼 말씀으로부터 입맞춤을 받기를 갈망함을 표현한다고 해석했다. 그는 아가의 해석이 이러한 여적인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여겼으므로, 육적인 인간이 이 책을 관능적인 노래로 해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아가를 읽지 말 것을 권고한다. 그는 유다교의 소년들에게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 에제키엘서 첫 부분의 병거 발현과 또 이와 같은 에제키엘서 마지막의 성전 재건에 관한 부분, 그리고 아가를 가르치지 않는 관습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적인 사람이 아가를 읽을 때에는 마치 성경이 육적인 욕정을 품도록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3)니싸의 그레고리오
오리게네스의 영적인 해석은 여러 그리스도교 신비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른 시기의 중요한 작품으로는 니싸의 그레고리오가 쓴 아가 주해가 있는데, 여기서 아가 1,2는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기에 이른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께 드리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4)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이후의 수 많은 작품들 가운데 부분적으로나마 우리 말 번역본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의 아가 주해와 십가자의 성 요한의 ‘영가’가 있다. 여기에서도 아가 1,2에 대한 해석을 살펴 본다면,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이 구절이 “옛 성조들의 구세주 그리스도에 대한 열렬한 염원과 경건한 기다림의 감정을 풍겨준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안에서는 이러한 해석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3) 앙드레 슈라키(현대)
“태어나면서 나는 그레고리안 성가에 영감을 주었던 옛 가락에 맞추어 아가서가 불려지는 것을 들었다. 예배중 아가서 암송 순서가 되면 나는 회당 가득히 차오른 열기에 깊이 빠져들곤 했으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황홀경에 잠긴 듯 이 시를 노래하거나 듣곤 했다. 이 시는 진정 신성한 말씀이며 초월적인 노래였다“라고 한다
7. 아가의 자구 해석에 대한 두 입장
1) 자구적 해석에 대한 부정적 입장
자구적 해석은 처음부터 있었다. 랍비 아키바가 자구적 해석에 강하게 반대했고, 탈무드에서도 아가를 통속적인 노래처럼 부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재앙을 가져 올 것이라고 말했다면, 이는 그만큼 초세기에도 아가를 현세적인 사랑의 노래로 부르는 이들이 없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유다교에서나 그리스도교에서나 우의적 해석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대에 자구적 해석을 주장한 이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4~5세기)였다. 그는 안티오피아 학파의 대표자로서 아가뿐만 아니라 성경 전반에 대해서도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우의적 해석을 거부했지만, 특히 아가서의 경우 그이 자구적 해석은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는 아가의 우의적 해석을 반대한 첫째 이유는 아가에서 하느님이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이는 현대 주석가들도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다. 아니면 하느님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하는 지혜 문학의 특징에 속한다고 이해되기도 한다.)그의 저서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내용은 9세기 이쇼다드의 증언으로 전해지는데, 이에 따르면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러는 솔로몬이 파라오의 딸을 옹호하기 위하여 아가를 썼다고 보았다. 히브리인들이 파라오의 딸의 외모를 비웃었으므로 솔로몬은 왕비와 파라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왕비를 기리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아가의 자국적 해석을 지지한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가 이러한 내용이 성경에 들어 있는 것이 부적적하다고 여겨 아가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책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는 점이다. 테오도로의 이러한 주장은 553년 제2차 콘스탄틴노플 공의회에서 단죄되었다.
2) 자구적 해석에 대한 긍정적 이해
자구적 해석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배경은 문예부흥과 계몽주의를 거치며서 마련되었다. 문예부흥 시대의 인본주의는 현세적 실재들이 그 자체로서 가지는 가치를 긍정했다. 연대상으로 보면 15-16세기는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성녀 데레서의 신비주의적인 아가 주해의 시대였지만 비슷한 시기에 에라스무스는 성경 본문의 역사적이고 자구적인 의미를 주장하면서 아가가 솔로몬과 이집트 공주의 혼인을 기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뒤를 이어 17세기에 후고 그로시우스는 아가를 헬레니즘 시대의 문학과 비교하여 그 유사성을 부각시키면서 이 노래가 세속적인 연애시라고 주장했다. 보쉬에는 아가가 7일간 계속되는 동방의 혼인 축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들이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와 달랐던 점은, 이들이 아가가 인간적인 사랑을 노래한다고 해서 아가가 성경에 속해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낭만주의에 이르러 헤르더는(J.G. von Herder)은 아가가 인간적인 사랑을 고귀하게 기리고 있으며,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당하게 경전에 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아가의 정경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의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경향은 계몽주의에 의해 이어진다. 그런데 계몽주의에서는 인간적 학문의 자율성을 넘어 신앙으로부터 자유로운 성경 해석을 주장하여 때로는 성경을 다른 역사 문헌들과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지 않는 위험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종교 개혁 역시 성경 본문을 교회 전통으로부터 풀어놓으려고 했지만, 초기 종교 개혁자들은 아가에 대한 여러 형태의 우의적 해석을 이어 갔고 또한 이들은 신앙을 배제한 해석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입력:최마리 에스텔 수녀/2024년 12월 2일/ PM 23:24
참조:성서백주간 도움책 예언*교훈편/
안소근 수녀,아가서 강의록,
끌레르보 누와르 책, 아가서
안셀름 그륀, 성서이야기, 아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