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20130211 몽가북계 번개산행기 - 산지기
[산행기 2005~2020]/번개산행기
2013-02-13 11:59:34
1. 일시 : 2013.2. 11(월)
2. 몽가북(계) 연계산행 (홍적고개~몽덕산~가덕산~북배산~작은멱골 흑염소 목장. 총 9Km. 중식 30분 포함 총 6시간 30분 소요)
3. 참가 : 문수, 은수, 진운, 상국(4명)
4. 특징 :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 사람 한 사람,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음. 눈길, 지독한 눈길.
지난 2월 3일 우면산 정기산행 때 은수가 슬며시 유혹을 하더라.
“눈(雪) 산행은 고대산이 좋지. 문수랑 수요일 고대산 번개산행을 갈 낀데, 니도 같이 안 갈래?” 하면서 은근슬쩍 아주 달콤한 쨉을 날렸다.
한두 번도 아니고, 뒷풀이 자리에서 까지, 술잔 돌리면서... “안 갈래?”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마~ 같이 가자.”
쨉, 그거, 한두 방 맞고 쓰러지진 않지만, 자꾸 맞다보면 결국 무너지는 게 권투고, 인생인 모양이다. 뒷풀이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계속 고대산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고대산이 어떤 산인가?
30산우회의 30공 대장으로 내정되어 있는 민영이 실언 한 마디가 30산우회의 전설적인 어록한 페이지에 남아있지, 아마. 고대산 정상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던 민영이, 북한쪽을 바라보고는 손가락을 북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 북쪽은 북한이라 그렇나, 왠지 좀 음침해 뵈고 하늘이고 땅이고 모두 좀 어두워 보이네?”
그 옛날 라디오 방송극, ‘김삿갓 북한 방랑기’에 나왔을 듯 싶은 이런 정치적 발언을 하고있는 민영이를 잠시나마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본 친구들, 갑자기 누구 입에선가.
“야, 민영아, 니 지금 썬그라스 끼서 그리 비~는 거 아이가? 북쪽만 어두운 기 아니고 다 어두울낀데?”
민영이, 그 한마디에 완전 무너졌다. 아이들 말대로 쉽게 표현하면 ‘민영이 완전 x 됐던 산’이 고대산이다. 우리가 고대산 번개 한다니까 ‘북쪽이 핵실험한다던데 고대산 하늘이 좀 밝아졌을라나?’하면서 싱가폴에서 댓글을 달았더라.
수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혼자 왔다갔다 하면서 짐을 싸고 있었다. 시끄러웠나보다. 아내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왔다가, 배낭을 보고 놀란다.
“아니, 오늘 무슨 요일인데, 왜 갑자기 배낭은? 오늘 쉬는 날인가요?”
“아니, 쉬는 날은 아닌데... 좀 다녀올 데가 있어서... ”
“어디?”
“좀 멀어. 왜, 당신도 들어서 알잖아, 철마는 달리고싶다라는 역... 거길 좀 댕기올라꼬... 일어난 김에 반찬 좀 챙겨주소.”
“아이고, 참말로. 그렇게 농땡이를 치면 아이들이 뭘 배우겠소? 쯧쯧쯧.”
고대산, 좋았다. 눈을 실컷 밟아본 설산 산행. 고대산을 다녀오면서 ‘수’자 친구, 문수와 은수가 이젠 둘이서 짰는지, 같이 돌아가면서, 쨉을 날린다.
“고대산도 좋지만 설산산행은 몽가북계만한 산이 없던데...”
“캬, 그래. 올해는 더 좋을 거야. 눈이 자주 왔으니... 설 연휴에 한 번 안 갈래?”
결론, 월요일, 아침 청량리로 나갔다. 생전 처음 타보는 2층열차,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청춘열차’ 잘도 지었다. 청량리에서 춘천간다고 ‘청춘열차’가 되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량리에 1착으로 도착, 친구들을 기다린다. 8시 16분 출발. 4명이 동반석처럼 좌석을 돌려앉아 이런저런 얘기.
9시경 가평역에 내린다. 문수가 미리 전화해 둔 택시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터기로 홍적고개까지 25,000원 정도 나온다. 기사분이 안전산행하시라며 박카스를 한 병씩 나눠주신다. 스패츠에 아이젠, 스틱까지 조절하고 숨을 고르고 산행시작, 9시 40분. 나는 무식하게 계관산까지 11Km라니까 대충 체력은 문제없겠다고 생각했는데 하산길이 제법 길고 만만찮을 것이라고 주의를 준다. ‘그래봤자 15~6Km? 슬슬 무리 안하고 가면 되겠지.’ 하고 마음을 편히 먹는다.
들머리, 비탈길을 조금 오르다 한바퀴 돌아가는 길 모서리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이전에 여길 모르고 그냥 통과했다가 500m정도 헛걸음했단다. 그러보 보니 내 빼고 셋은 다 여길 다녀왔었고, 이 코스가 제법 힘든 산행이었으며 또 여태 다녀본 설산산행 중 최고로 꼽는다는 코스다. ‘진운이가 힘들었다면? 윽, 체력 안배에 신경쓰고 조심해야겠네.’
‘러쎌’은 설산 산행시 맨 앞에서 길을 내는 작업을 말한다. 공평하게 산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제설차를 발명했는데 그 차이름이 ‘러쎌’이란다. 이런 영양가있는 이야기도하고, 가수 김흥국이 라디오 음악방송 진행할 때의 실수 몇 가지를 들려주며 많이 웃었다.
김흥국이 방송하는데 급히 피디가 신청곡 종이를 전해주더란다. 선배 가수의 곡명은 ‘철없는 아내’인데 자기도 모르게 급히 읽다보니 “어디에 계신 아무개 분이 모모 가수의 ‘털없는 아내’를 신청해주셨습니다.”라고 방송이 나가고,좀 있다 방송국이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발발이 울렸다는 이야기.
몽덕산까지 문수가 러쎌하고, 다음은 가장 짧은 코스 가덕산까지는 내가 맡았는데 아까보다 더 힘든다. 조금 잘못 디디면 그냥 허벅지까지 빠져버린다. 너무 깊이 빠져서 일어서는데 한참, 뒤에 오던 진운이가 대신 러쎌해나가다가 뒤로 돌아보며 한 마디 한다. “상국아, 이거 내가 하는 만큼 다음 코스에서 니가 갚아래이.”
가덕산 올라가는 마지막 정말 힘들더니 다시 내려가서 북배산 가는 길은 더 힘든다. 북배산 바로 앞에서는 빚 갚느라 러쎌하던 내가 그냥 푹 빠져서 일어서려다가 아예 상반신까지 다 빠져버렸다. 갈수록 눈이 많다.
점심먹고 걸어온 시간을 재어보니 1.8Km에 1시간 30분 걸렸다. 계관산까지가 4Km 남았는데 지금 시각이 3시 20분... 계관산 가는 길은 고도 100m를 내려갔다가 다시 그만큼 올려야하는 지금까지보다 더 힘든 길, 빨리 간다해도 계관산 정상에 6시. 이미 어두워졌을 것이고, 다시 긴 하산길...
안 된다. 몽가북만 하고 그냥 하산하기로 했다. 북배산 정상에서 계관산가는 방향 약 60m 직진하면, 우회전 하산길 팻말이 보인다. 그 길 엄청남 경사의 하산길, 한 번 미끄러지면서 허리에 충격이 온다. 지난 고대산 산행때 다친 허리, 한참 누워있다가 미끄럼 타고 내려오고, 결국 차가 올라올 수 있는 ‘흑염소 목장’으로 내려와 아이젠을 푼다. 그 때가 오후 4시 10분, 총 6시간 30분 걸렸다.
아침의 그 택시를 타고 가평읍내로 이동(17,000원)하여, 기사님이 추천해주는 닭갈비집에서 뒷풀이, 당구 한 게임치고 다시 택시로 가평역, 2층 열차 안에서 배낭에 남은 술과 안주를 해치우고 청량리도착, 뿔뿔이 헤어진다.
눈, 그것 실컷 보고, 산행 처음부터 끝까지 산에는 우리만 있었던, ‘러쎌’의 의미를 확실히 맛본 설산산행 중 가장 힘들었던, 갔다와 생각하니 짜릿한, 근데 이렇게 알고는 다시 가기 싫은 산행.
이 좋은 산행에 불러줘서, 또 인도해주고 대신 러쎌도 해주고, 당구도 져준(?) 친구들아 고맙다. 좋은 하루였다.
다음 이 길을 갈 친구들에게 길라잡이.
1. 청량리에서 청춘열차(ITX)는 한 시간에 한 대 꼴, 전철은 20분 간격.(기차가 훨씬 빠름)
2. 미리 콜택시를 불러둠.(문수가 전화번호 가지고 있음. 하산할 때도 미리 전화하면 대기해 줌)
3. 홍적고개까지 미터요금만 받음(2013년 2월 기준. 25,000원)
4. 고개에서 내려 오른쪽 산행 표시 있음. 올라가다가 커브진 부분에서 우회전, 밑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몽덕산으로 오름) 그 다음부터는 그냥 길... 주욱~
5. 북배산에서 우회전 하는 길이 두 개 있음(정상 못 미쳐 50m지점에서 우회전, 또 정상 60미터 지나서 우회전)
6. 나는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경험자들 모두 계관산까지의 길이 힘들다고 함. 요번처럼 눈이 많으면 거기까지는 안 가는 게 나을 듯.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