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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강 요한계시록 6-20장 세 가지 일곱 재앙(2-5)
- 두 번째 일곱 나팔 재앙 : 다섯째 나팔 재앙 -
요한계시록 9장 1-12절 / 1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3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4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5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6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7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9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11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12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요한이 본 공중을 나는 독수리 한 마리가 알려준 대로 남은 세 가지 재앙인 다섯째 재앙에서 일곱째 재앙이 행해지는데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음으로써 주어진 재앙은 그 내용이 앞서에 있은 재앙들이 간결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며 길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요한이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었다. 그 별은 한글개역개정성경으로는‘아비소스’라고 번역하고 있는‘끝없는 지옥 구덩이’를 뜻하는‘무저갱’을 여는 열쇠를 받았다. 이처럼 무저갱을 여는 열쇠를 받은 별은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어 왔다. 주석가들 중에는 12장 9절에 언급된 땅에 떨어진 사단으로 규정한다.1) 그러나 이 견해는 3절과 11절에서 무저갱으로부터 황충이 나오며, 이들에게서는 왕이 있으니 사단을 뜻하는 무저갱의 사자라고 밝히고 있는 것에서 볼 때 적절치 않다. 사단이 자기 스스로 무저갱의 열쇠를 쥐고서 무저갱을 열고 나오며 또한 그 무저갱으로 들어가 닫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무저갱을 여는 열쇠를 받은 별의 존재를 달리 보는 견해를 대다수는 갖는다. 그런데 그 해석이 기독교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지극히 자의적이다. 종교개혁기를 겪은 카톨릭에서는 무저갱의 문을 여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을‘마틴 루터’라고 해석을 한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카톨릭에서 보면 만고의 역적이기 때문에 그 별을 마틴 루터라고 해석을 한다. 반면에 해리 아이언 사이드는 그 별을‘교황’이라고 주장한다.2) 교황이 무저갱의 문을 열어서 타락한 교리, 뉴 에이지 같은 것들이 나온다고 해석을 했다. 구교 카톨릭과 신교 개혁교회가 서로에 대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에서 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옳지 않으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해석들과는 달리하는 것으로 무저갱을 여는 열쇠를 받은 별의 존재를 보는 견해 중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보는 것이다. 이 별은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인데, 이 별은 미래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로부터 땅의 세계로 오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을 두고‘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로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더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에서의‘새벽별’과 연관 짓는다.3) 그러나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처럼 새벽별로 상징화되어 언급되었다고 해서 본문에서의 별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볼 수는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뜻하기도 한다(1:20).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1장 18절에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으므로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본다. 그러나 이 해석도 적절하지 않다. 본문에서는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이 무저갱을 여는 열쇠를 받았다고 표현되고 있어서 음부와 사망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표현하여 묘사되고 있는 분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본문에서의 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이해는 본문에서와 같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존재가 언급되고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20장 1-3절에서는“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어서, 무저갱의 열쇠를 가진 존재를 천사로 언급하고 있다. 무저갱의 열쇠를 가진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이신 어린양만이 생명의 열쇠뿐만 아니라‘사망과 음부의 열쇠들’(계 1:18)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4)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천국의 열쇠’를 쥐신 주인이시며(마 16:18-19),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행사하시는 권세자 이신 까닭이다(마 28:18-20). 그분께서 자신이 부리는 영인 천사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쇠를 주어 맡기셨다. 따라서 무저갱의 열쇠를 직접 주신 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오, 교회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무저갱의 열쇠를 건네받아 가진 자는 무저갱에 갇힌 존재를 지키고 그 문을 열고 닫는 일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리는 영인 천사이다. 천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넘겨받은 무저갱의 열쇠를 행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이 있게 한다. 그것은 무저갱의 열쇠를 열어 무저갱의 사자로부터 황충들이 쏟아져 나오게 하여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행함으로써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다.
이처럼 황충이 무저갱의 사자로부터 나와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행하는 것은 다분히 구약적 묘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관련해서 있은 애굽에 전역에 내린 열 가지 재앙에서 여덟 번째 재앙으로 있은 메뚜기 재앙을 떠올리게 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출 10:1-15).
그리고 이 재앙은 요엘 선지자에 의해서 예언된‘하나님의 재앙’과도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할 때 사용하실 앗수르를 황충으로 표현하셨다.5)
팥중이6)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욜 1:4; 2:25).
이처럼 수많은 메뚜기, 또는 황충의 엄습은 흡사 거대한 군대의 침입과 비슷하다(삿 6:5; 7:12; 잠 30:27). 이 모든 재앙에서 보는 메뚜기/황충 재앙은 종말론적 계시의 관점에서 요한에게 보여 주신 환상 계시에서는 세상을 심판해 나가시는 것과 관련해서 사용되고 있다.
이 황충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한 별이 무저갱을 여니, 거기에서 큰 용광로에서 내뿜는 것과 같은 연기가 올라와 삽시간에 그 연기로 해와 하늘이 어두워질 때 그 연기 속에서 나와 온 땅에 쫙 퍼졌다. 구약성경에서는 황충은 메뚜기와 구별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요한이 본 황충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벼농사를 하는 들녘에서 쉽게 대할 수 있는 메뚜기(grasshopper, locust)를 말한다. 그런데 요한이 그 황충들을 보니 그 모양은 상당히 상징적이어서 전투 채비를 한 말들과 같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과 같은 것을 썼는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과 같았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여자의 머리카락과 같이 길었으며, 이빨은 사자의 이빨과 같았다. 또한 가슴은 쇠로 만든 가슴막이 방패를 둘러 가슴을 보호하고 있었고, 달고 있는 날개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전쟁터로 내달리는 많은 말이 끄는 병거 소리와 같았다. 이러한 모양의 황충들은 땅에 있는 전갈이 가진 것과 같은 권세를 받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전갈과 같은 꼬리와 침을 가졌는데,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권세가 있었다. 그러나 그 메뚜기들은 땅에 있는 풀이나 푸성귀나 나무는 하나도 해하지 말고,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만을 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들을 죽이지는 말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라는 명령이었다. 황충들이 주는 고통은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쏠 때와 같은 고통이었다. 황충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동안에는 그 해를 받는 사람들은 고통이 너무 괴로워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겨 죽으려고 애써도 죽지 못하고 죽기를 원해도 죽음이 그들을 피하여 달아날 것이었다. 그것들은 아비소스, 곧 무저갱의 사자7)를 자기들의 왕으로 떠받들었는데, 무저갱의 사자로 불리는 그 이름은 한글개역개정성경의 번역에 의한 발음에 의할 때 히브리어로는‘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아볼루온’이다. 이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각각의 뜻은‘파멸’과‘파괴자’인데 사실상 같은 개념인 동의어로‘파괴하는 자, 곧 사단/마귀’를 지칭한다.8)
황충으로 묘사하고 있는 바인 사단의 추종 세력, 곧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자들은 사단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땅에 권세를 행하여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데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고 다섯 달 동안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섯 달 동안의 짧은 기간9)임에도 불구하고 괴롭힘의 고통은 참으로 커서“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할 것”이지만“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할 것”이었다(6절).
요한이 본 황충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에게 쏘아 해를 입히는 전갈이 지닌 독이라는 치명적인 권세가 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이 황충을 통해서 땅에 행해지는 재앙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시고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황충이는 온 들판을 뒤덮은 떼를 이루고 온 곡식을 먹어 해치움으로써 사람이 생존하는데 큰 고통을 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온 땅에서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을 대상으로 사단으로부터 받은 권세인 독을 쏘아 해를 입힌다. 독에 쏘인 자는 독성에 마비가 되며 고통에 괴로워하게 되는 것으로 사단의 이름이‘파멸’,‘파괴자’로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그의 생명은 파멸이요, 파괴를 당하고 있다. 이는“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요 3:18)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황충에 의해서 전갈이 쏘는 것과 같은 독에 쏘인 받은 믿지 않는 자들은 그 마음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의식하며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을 하지 못한다. 이런 그들은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영역 밖에서 단지 먹고 마심에 있는 자신들의 배를 위하여 세상의 삶의 원리를 좇아 살 뿐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의 유일한 삶의 목적은 자신의 배를 살찌우는데 있다. 세상이 종말의 끝을 향하여 치달릴수록 황금만능주의에 젖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모두 자기 배를 살찌우기 위한 탐심에서 이다. 이들은 그렇게 자기 배를 위한 것이라면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전쟁, 경쟁, 분 냄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황충에 의해서 전갈이 쏘는 독에 그리스도인이 쏘일 때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9-10)
여기서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자가 되려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인, 즉 돈으로 자신의 존재를 안전히 가져나가려고 하고 행복의 근거로 삼으려고 하는 죄인들을 사도 바울은 총칭해서‘부하려 하는 자들’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10)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그들에게 행복의 요건이 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 곧 지옥에로 끌려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배를 위하여 돈을 사랑함에 있어 부요하려는 자들에게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9)
그러한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갈 경우 그것이 자신들에게 어떤 것이 되는가 하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된다.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가는데, 그렇게 돈을 사랑하여 많이 가지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돈이란 많이 가져도 그것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지켜야만 하고 돈을 써야 하는 근심에 있어 괴롭고 돈을 갖지 못하면 늘 생활에 만족을 갖지 못하고 근심하여 행복을 가질 여력이 없이 괴롭다. 해서, 이래도 근심이 되고 저래도 근심이 되어 근심을 쌓으므로 많은 근심이 자기를 찌르는 삶을 사는 것이 된다. 그러니 돈을 사랑함에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렇게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는 것이 느껴지는 감각이 있는 그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전갈의 독에 쏘여 마비된 자가 아니기 때문에 감각이 마비되어 굳어 있지 않고 살아 느낌을 갖고 있어 자신이 하는 행동에 반응을 갖게 된다. 그래서 속히 빠져 나오려고 하고, 또한 빠져 나온다. 그럴 뿐만 아니라, 전갈이 쏘는 것과 같은 독을 쏘는 황충을 만나게 되면 그리스도인은 그 황충과 맞서 싸워 짓밟고 이겨 나간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전갈이 쏘는 독의 해를 입을 자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들만 해하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황충의 꼬리에서 나오는 전갈이 쏘는 독의 해를 입을 자가 아니다. 즉, 전갈이 쏘는 독으로 해를 입지 않는다.
그러니 전갈이 쏘는 독과 같은 황충이 쏘는 독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의 마음은 이것이 아닌 다른데 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부요함으로 자랑하지 않으며 가난함으로 낙심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0-13)
이런 우리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실로 인해 기뻐한다. 이는 우리 형편이 나아져 부요함에 있어도 달라지지 않으며, 우리 형편이 나빠져 부요가 떠나고 가난에 있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부요가 찾아오고 떠나도, 가난이 찾아오고 떠나도, 그 모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실로, 그래서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 곧 그 모두에서 그리스도 그분의 능력으로 사는 것으로 기뻐하며 평안을 유지해 갈 수 있다. 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4-7))
따라서, 요한에게 다섯째 나팔 재앙의 환상 계시를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은 하나님이 재앙에 해당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에 의해서 그 생명이 안전할 것을 알려주시는데 있다. 그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완성된 구속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평안할 수 없는 괴로움으로 있을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분 안에서의 평안에 의해서 즐거움에 있을 것이다.11)
다섯째 나팔이 불어짐으로 이 황충 재앙이 시작되나 이는 아직 남아 있는 세 개의 재앙 중에서 이제 하나의 재앙이 지나갈 뿐이다. 아직 남아 있는 두 개의 재앙이 더 있어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에게 임할 것으로 준비되어 있다. 이들은 닥쳐 올 이들 재앙도 피하지 못하고 다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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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hilip Edgcumbe Hughes, The Book Of The Revelation, 오광만 역,『요한계시록』(서울: 여수룬, 1994), 156. ; 김성수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로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자를 사단이라고 보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무저갱의 열쇠를 가지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떨어진 별은 무저갱의 열쇠를 받는다. 무저갱의 열쇠를 가진 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로부터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자이다. 무저갱의 열쇠를 그 떨어진 별에게 주신 분이 그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열쇠를 받은 자는 다른 존재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별이 땅에 떨어지다’의‘떨어지다’는‘핍토’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악한 천사, 사단이 떨어질 때 쓰이는 단어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 이 구절을 좀 더 원어에 맞게 번역을 하면‘하늘에서 별 같은 사단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이다. 여기서 쓰인 단어도‘핍토’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땅에 내려오실 때는 다른 단어가 쓰인다. 우리가 좀 전에 보았던 계시록 20장의‘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이 땅에 내려오실 때는‘카타바이노’라는 단어가 쓰인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별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이는 사단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한 가지 더 근거를 대 드린다면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별’에서‘떨어진’‘페프토코타’는 완료 능동태 분사이다.‘이미 떨어졌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 별은‘이미 떨어진’존재이다. 사단이 언제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때 사단은 떨어졌다. 그 떨어진 존재인 사단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 때까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여 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김성수,‘요한계시록 설교안'.
그러나 요한계시록 20:1에서 아비소스라는 무저갱의 열쇠와 무저갱에 들어갈 자를 묶을 것에 쓰일 쇠사슬을 손에 든 자는 천사로 말해지는데, 그 천사가 늙은 뱀, 곧 옛 뱀이라고도 하는 마귀 곧 사단인 용을 붙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고 천년 동안 가뒀다고 하고 있으며, 그 마귀는 20:10에서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을 하는 마귀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는데 거기는 그를 따르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이것의 연관에 있는 무저갱에 갇혀 있는 존재가 사단, 곧 마귀와 함께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천사를 사단이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12:8에서도 확인된다. 천사 미가엘 및 그의 사자들과 용과 그를 따르는 사자들 간에 있은 하늘의 전쟁에서 패한 용과 그의 사자들이 하늘에서 쫓겨났는데 그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세상을 속여 온 늙은 옛뱀인 용을 그 사자들과 함께 내쫓았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사단, 곧 마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서 그 무저갱을 열었다고 하며, 사단 곧 마귀를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사자(천사)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사단, 곧 마귀가 사람들을 미혹케 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에서 사단, 곧 마귀 역시 하나님의 도구인 것은 틀림없으나,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천사로 표현되고 있는 무저갱의 천사가 사단, 곧 마귀요, 마귀가 심판의 도구로 쓰이는 무저갱의 사자(천사)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9:1에서의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은 9:11에서의 무저갱의 사자와 동일 존재가 아니다. 9:11에서의 무저갱의 사자는 황충들의 왕으로서 그 이름을 아비돈이라고도 하고 아볼루온이라고도 하는 자, 곧 파멸을 뜻하며 파괴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실상 사단, 마귀를 지칭한다. 이 황충들의 왕을 무저갱의 사자라고 이름 하는 것은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것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자들을 자신과 함께 무저갱에 가두는 일을 하는데서 붙은 것이다.
2) 김성수, 위 설교안.
3) 이광호,『요한계시록』(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9), 155.
4) 이순태,『요한계시록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167.
5) 위의 책.
6) ‘팥중이’는 개역한글은‘팟종이’,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우리말성경, 현대어성경에서는‘풀무치’로, 한글킹제임스는 천막벌레나방의 일종인‘(천막)모충’(forest tent caterpiller)이라고 번역하였다.
7) (1) 한글성경 개역과 개역개정이 번역하고 있는‘무저갱의 사자’는 다른 한글성경인 우리말성경, 바른성경이 같은 번역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현대인의성경은‘무저갱의 천사’, 새번역과 표준새번역은‘아비소스의 사자’, 공동번역은‘지옥의 악신’, 한글킹제임스는‘끝없이 깊은 구렁의 천사’, 킹제임스흠정역(개정)은‘바닥없는 구덩이의 천사’, 현대어성경은‘밑 없는 구덩이의 사자’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2) 이 모든 번역에서의 ‘무저갱’,‘끝없이 깊은 구렁’,‘바닥없는 구덩이’,‘밑 없는 구덩이’는 원래의 의미는 바닥이 없는 갱, 즉 감옥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동번역에서 번역하고 있는‘지옥’과 같은 개념이며, 이는‘음부’로도 번역되며 ‘죽음’과 같은 개념이다. 개역(개역개정)성경의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서의‘사망(죽음)과 음부(지옥)’는‘사망(죽음)’ 곧‘음부(지옥)’를 뜻한다. 그리고 이것에서의‘사자’,‘천사’,‘악신’은‘악한 영’인‘마귀라고도 불리는 사단’이다. 사단은 죽음을 깔고 앉아 있는 우두머리이니 그를 따르는 모든 세력들을 끌고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으로 표현되고 있는 지옥에로 내쳐져 그곳에서 영원히 밤낮으로 고통 중에 있는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 20:10, 13-14). (3) 그런데 무저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이곳이 무엇이며, 어디인가에 대해서 ① 사단과 그 군대인 타락한 천사들의 적절한 거처라고만 보는 견해가 있다.Philip Edgcumbe Hughes, 앞의 책. ② 무저갱은 감옥을 의미하는데, 이곳이 어떤 영역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소와는 독특한 개념의 영역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으로, 요한계시록의 문맥들을 볼 때 죄악된 인간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광호, 앞의 책. ③ 무저갱은 통상 구약에서‘테훔’(창 1:2; 7:11; 시 105:9; 107:26)에 해당하는 70인역으로서 스올(욥 41:22-23; 롬 10:7)에 적용되기도 하는 것으로, 요한계시록에서 무저갱은 사단과 타락한 천사들의 잠정적 거처 혹은 감옥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필찬, 앞의 책, 97. (4) 이러한 견해는 모두‘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는 곳인 영영한 불못과는 다른, 그리고 지옥이라고 말해지는 곳과는 다른 곳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저갱은‘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는 곳인 영영한 불못과 연결되어 있으면서‘지옥’의 개념을 갖는다. 천국<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곧 병행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듯이, 지옥 또한 현재성과 미래성이 사단과 그를 따르는 추종 세력에게 함께, 곧 병행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지옥은 그 현재성의 의미에서 끝없이 어둠의 세계인 무저갱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지옥은 그 미래성에서‘둘째 사망의 해’가 임하는‘영영한 불못’으로 영원히 사단과 그 추종자들을 가둘 것이다.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없는 어둠 속에서 죽음의 형벌의 해가 영원히 행사될 것이다. 그렇다면‘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는 영영한 불못(지옥)과의 연결선상에 있는 무저갱(지옥)은 이광호의 견해에서 보는 죄악된 인간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며 옳을 것이다.
8) Philip Edgcumbe Hughes, 앞의 책, 161.
9) 황충에 의한 재앙의 기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다섯 달 동안’은 10일, 1260일, 마흔 두 달, 삼년 반, 곧 한 때 두 때 반 때, 그리고 천년 등과 함께 요한계시록에 세상 끝 날이 이르기까지의 하나님의 심판 기간 및 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는 숫자의 하나로, 그 기간이 결코 길지 않고 짧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 David E. Aune는‘다섯 달’의 시기에서의 수를“약간, 다소”를 의미하는 대략적인 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환란의 제한된 기간을 나타낸다며, 다섯 달이라는 재앙의 특별한 제한은 이 수의 상징적인 의미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David E. Aune, WBC Vol. 52B : Revelation 6-16, 김철 역,『WBC 주석 요한계시록 1-5장』(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4), 311. ; 김성수는‘다섯 달 동안’의 다섯 달이란 기간의 유래를 노아의 홍수 때 비가 40주야 내려 물이 온 땅에 창일하여 머문 기간인 150일, 곧 다섯 달에서 찾으며, 이 다섯 달의 기간을 하나님의 심판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 김성수, 앞의 설교안.
10) 위의 설교안.
11) 이순태, 앞의 책,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