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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바울은 3장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미친 하나님의 의를 말씀해 주신 것에 이어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을 들어서 이 의가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있는 인간의 행위와는 무관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의에 의한 것이기에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이신칭의’인 것을 피력한다.
2장에서 이방인의 죄와 함께 유대인의 죄를 언급하여 다루는 것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여실히 알게 하면서, 그 절대 절망에 있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다룬다. 이는 ‘이신칭의’또는 ‘이신득의’로 불린다. 로마서 3장은 이 이신칭의(이신득의. 이하의 글에서는 이신칭의로 함)를 다루는 것에서‘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데, 4장 17절까지 계속된다. 이곳 4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 구분에 의해 단락이 나누어진다. 이는 다음과 같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의②(4:1-25)
1. 1-8절 /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율법 준수의 행위와 무관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으로 얻은 것 임
2. 9-12절 / 아브라함의 믿음에 나타내신 ‘이신칭의’사상
3. 13-25절 / 아브라함에게서 보는 ‘이신칭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적용되는 원리임
1.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율법 준수의 행위와 무관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으로 얻은 것임(4;1-8)
4:1-8 / 1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위 구절은 내용의 구분에 의해서 다시 다음의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었음(1-3절)
(2) 하나님이 주시는 의는 행위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닌 은혜로 주어짐(4-5절)
(3) 행위의 공로가 없어도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된 자는 복됨(6-8절)
이상의 각 단락의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1-1.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었음(1-3절)
1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께 나아감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에 있게 된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하나님의 의에 있음을 3장 30-31절에서 이야기했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으며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실 뜻을 정하셨으며, 죄를 깨달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수 있게 이스라엘에 율법을 주셨다.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그 의를 인하여 율법에서 제시해 주신 하나님의 의를 따라서 산다. 그러므로 율법은 파기되지 않으니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 루터와 칼빈은 이를 율법의 용도로 이해하였으며, 개혁교회는 그 이해에 의해서 죄를 깨달음에 있는 율법의 제1 용도와 그리스도께로 나아감에 있는 율법의 제2 용도에 의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설정에 있는 제3용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사람이 의롭다 함에 있는 것은 율법의 준수에 있는 행위에 있지 않고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에 있다는 것을 설명해 나간 바울은 그 구체적인 실례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들어 말한다. 그 중에서 1-3절은 아브라함은 율법 준수에 있는 행위에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먼저 1절에서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느냐?”면서 2-3절에서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1절의 ‘육신으로…무엇을 얻었느냐?’는 2절에서의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을 말한다. 이는 9-12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말씀하시기 훨씬 이전에 그에게 복을 약속하신 것임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해서 볼 때 아브라함이 육신에 할례를 행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아브라함이 이것을 행함으로써 과연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인지를 논증해 가는 표현이다. 하여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그것이 그에게 자랑거리로 내세울 것이 될 것이나, 바울은 하나님 앞에 그것을 결코 자랑하지 못하니 3절에서 그 이유를 밝혀 주신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다.” 성경이 알려주시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하여 그를 의롭다고 여기신 것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할례에 의한 그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와 맺으신 언약에서 장차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있는 뜻을 알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굳건히 믿은 믿음에 있었다. 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게 하시고, 그 믿음에 있는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다. 그에 따라서 다음의 4-5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의한 의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있는 것임을 다룬다.
1-2. 하나님이 주시는 의는 행위에 의한 삯으로서가 아닌 은혜로 주어짐(4-5절)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바울은 믿음으로 얻는 의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임을 사람이 노동하여 얻는 삯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4절인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는 문자적인 뜻으로는 “일하는 사람에게 품삯은 은혜로가 아니라 도리어 빚으로 간주된다.”를 말한다. 여기서 ‘삯’ 은 노동에 대해 지불되는 응당한 대가, 곧 임금을 말한다. ‘(그리고) 일하는 자에게는’ 에서의 ‘일하는’에 해당하는 단어는 2절의 ‘행위’ 라는 단어와 의미상 동일하다.1) 따라서 ‘일하는 자에게는’ 사람의 행위로써 의롭게 되고자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보수’는 ‘빚’, ‘의무’(부과금), ‘(도덕적) 실수’를 뜻하는단어가 사용되었는데, 개역한글에서는 ‘빚’으로 번역하였으나, 개역개정에서는 ‘보수’로 번역하였다.2) 바울은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비유로 들어 여기에 사용되는 단어를 통해서 일하는 자에게 삯을 지불한다는 것은 주인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법률적 의무를 지는 것으로 곧 근로의 대가로 돈을 지불해야 할 ‘(금전적) 빚’을 함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하는 자의 삯은 일하는 노동에 따라 정해진 댓가로 받는 것이다. 따라서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않고 보수로 여겨진다.
바울은 이러한 노동의 시장 원리를 들어서 ‘인간의 행위에 의한 삯(값)’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의’를 대조시켜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의로운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이신다고 여겼다. 하지만 인간의 행위에 의한 삯은 자신들이 행한 행위에 따라 당연히 받을 권리를 취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보수로 여긴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로 받는 것이 아닌 보수로 받는 것일 뿐이기에 그들에게는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은혜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그들의 행위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행위로 의의 공적으로 내세우는 것이기에 더욱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켜 심판을 쌓을 뿐이다.
그러한 것이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의를 말하며, 이 의는 일한 대가로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 - 비록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기들을 구원하여 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심을 믿는 자 - 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신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인 의인은 자신이 일한 행위 – 율법 준수에 의한 선한 행위 - 를 의로 내세워 그에 따른 응분의 삯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시겠다는 은혜를 베푸심에 따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자이다.
1-3. 행위의 공로가 없어도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된 자는 복됨(6-8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의를 말한 바울은 이제 값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시편 32:1-23)을 인용하여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다”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시편에서 다윗은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불법4) – 허물과 죄 - 들이 사함을 받고 그의 죄들이 가리움을 받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는 ‘그의 불법’은 다윗의 시편에서 말하는 다윗의 허물과 죄에 대한 것으로 밧세바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서 그의 불법이 숨겨지지 않고 크게 책망 받으며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에 큰 두려움을 가지며 회개에 있었다. 그 기도의 시가 시편 51편이다.
그런데 바울은 다윗이 받았던 사죄의 사실만을 생각하였던 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 불법을 사하심올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에서 ‘~~받는 자’란 표현을 7절 한 구절에서 두 번 거듭하여서 나타내 주고 있다. 이는 “그 불법을 사하심올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에 있는 ‘~~받는 자’가 다윗과 같은 축복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해서, 여기서 강조되는 주안점은 허락되어지고 경험되어진 죄 사함이 인간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은 공통점올 갖는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주권적이며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의해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바로 앞의 문맥인 1-5절의 5절에서 바울은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란 표현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혹은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어느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소유하였던 의, 즉 그리스도의 의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의미를 밝힌 바 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에 나타내신 ‘이신칭의’ 사상(4:9-12절)
4:9-12 / 9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바울은 아브라함이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복에 있고, 다윗 또한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복에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해 오면서 이제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5) 라고 묻는다. 이는 이방인을 염두에 두고서 묻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칭의의 복이, 그리고 다윗이 받은 죄 사함의 복이 유대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할례를 받고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또는 할례와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해서, “그런즉 이방인은 어떤가? 유대인과 같이 율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할례를 준수하여 행한 사람에게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가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유대인이 율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할례를 준수하여 지키는 것과는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주어지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이 자신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할례의 율법을 받은 사실을 내세워 이방인들이 개종하여 그리스도교로 들어올 때 그들에게도 자신들과 똑같은 할례 받은 자가 될 것을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할례 행함을 의와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을 의식한 까닭이었다(참고. 행 15:1). 그러나 유대인의 경우처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이방인의 경우처럼 할례 받지 않은 것도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계명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자비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게 하시는 뜻을 따라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고전 7:19).
그것으로 바울은 아브라함을 실례로 들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것(창 15:6)은 그를 의롭게 할 행위가 그에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와 할례 언약(창 17장)을 맺어 세우시기 훨씬 전의 일이란 것을 주지시키면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하시는 믿음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유대인(이스라엘)이 되기 전, 곧 하나님의 언약이 살에 있게 하시는 것으로서 유대인(이스라엘)으로 세워나가시는 것으로 있게 하신 일인 할례를 받기 전의 일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신 때보다 훨씬 뒤의 일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할례 받은 유대인들에 의한 유대교가 있기도 전에, 그래서 할례 언약 위에 세워진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기도 전에 이미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사람들의 첫 번째 사람으로 있었다. 그러한 아브라함은 무할례자로서 믿음의 조상이 되어 그의 믿음과 함께 하는 모든 믿는 자에게 그들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음을 말하여왔다. 그럼으로써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이 믿음의 복에 그를 통해서 나는 모든 후손들을 두심으로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에 그들이 있게 하심으로 그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하셨다. 따라서 아브라함 이후에 그의 후손으로 오는 사람들이 갖는 믿음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그들에게 언약을 맺으시고 그 믿음에 있게 하심으로 의롭다 하신 것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으로 이루어진 할례 언약의 성취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구원 얻는 의인 ‘이신칭의’사상을 나타내셨다.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의 의를 어떻게 실현하셨는지를 알려줌으로 그 확 신에 있게 하심(4:13-25)
4:13-25 / 13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위 구절은 내용 구분에 의해서 다음의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복에 약속된 믿음의 후사(13-16절)
(2)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언약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은 믿음의 실상(17-22절)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약속된 온 세상을 향한 믿음에 의한 칭의는 예수 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통해서 주어짐(23-25절)
이상의 각 단락의 내용이 말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3-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복에 약속된 믿음의 후사(13-16절)
13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본 단락은 개역개정 한글성경에서는 생략하고 있으나 원문은( …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로 시작하고 있어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가 쓰이고 있다. 이는 13절이 앞선 구절인 12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신칭의’ 사상이 할례 받은 유대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무할례자도 포함하여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이유를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실 땅에 들어갈 것을 지시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창 12:3)을 약속하심으로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시고, 이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라고 약속하시어 “아브람(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2:6)에 있으신 ‘믿음의 의’에 있게 하신데 따른 것이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의’에 있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룰 ‘한 아들’과 그 아들이 어떻게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하실 것인지에 대한 이해와 그 믿음에 있어 나가게 하셨다(창 15:1-4; 17:1-21; 18:1-33; 21:1-12; 22:1-19).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은 할례와 함께 율법을 지키는 것에서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만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복이 주어진다고 주장한다면 그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고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믿는 자들의 믿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약속은 아무런 효력을 갖지 않는 파기되어 있는 약속일뿐이다.
그런데도 유대인의 실상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처해 있는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해도 단지 하나님의 진노를 살 뿐이다. 사도 야고보가 말한바 대로 모든 율법을 다 지키려고 노력해도 하나의 율법을 범하면 율법 전체를 범하는 죄에 있다(약 2:10). 율법이 있으면 그 율법을 어기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기 마련이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율법에 의존하는 자는 자신의 삶이 마지막으로 도착하게 되는 종착점이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지는 자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율법을 범하지 않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은 율법이 없는 것이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는 상속자가 되는 것이 율법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오직 믿음으로 받게 하셨다며, 이를 율법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 모두가 받게 굳건히 세우셨다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에 있는 우리는 모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천하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 같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믿는 믿음에 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에 있으면 그들 모두를 다 받아들이신다.
3-2.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진 믿음에 대한 설명(17-22절)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아들여 의롭다고 인정하신 복된 선언은 단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아브라함과 그의 육체(혈통)를 따라 있게 되는 후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과 함께 하는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한 것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다. 이는 그에게 얻게 하실 ‘씨’에 의한 ‘한 아들’을 통해서 있게 될 ‘아들들’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위한 것이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아브라함의 믿음과 함께 ‘믿음의 의’로 여겨 받아들이시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한 복을 베푸신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얻게 하신 ‘한 아들’을 모리아의 한 산에 제물로 바치게 하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심으로 장차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있게 하실 일을 알고 이를 바라보며 그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시는 것에서 아브라함을 받아들인 것과 똑같이 그들도 받아들이신다.
아브라함에게서 보게 되는 믿음은 이미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에서 보게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아들을 주실 것이며, 그 아들에게서 많은 자손이 나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이 실현될 수 없는 몸이었음으로 결코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가 이미 백 살이 다 되어 죽은 자와 방불하였으며, 아내 사라 역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태에 있으면서 게다가 여인으로서 너무 나이가 많았으나 그것이 아브라함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더 굳건하여 아직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기도 전에 자기에게 베풀어질 복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에 전적으로 확신에 있었기 때문이다.
3-3.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진 믿음에 대한 설명(17-22절)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바울은 끝으로 23-24상반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그의 믿음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알려 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고 여기신 복된 선언이 기록된 것은 단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로 여기심을 받을 믿음에 있을 우리들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진 믿음이 우리에게 의로 여겨질 믿음과 관련하여서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인지를 24하반절에서 말해 준다. 우리가 예수 곧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을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겨 그를 받아들인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믿음도 의로 여겨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보증한다. 주 예수께서 죽으신 것이 우리 죄를 대신한 때문이며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것이기에 우리를 죄 없는 거룩하고 의로운 자로 하나님 앞에 세워 하나님과 화목함에 있는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주실 일을 해 나가시는 것에서 아브라함에게 있은 믿음의 의는 그와 함께 하는 믿음의 의에 있는 것 모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믿음의 의의 대표(또는 표상)가 된다. 그러한 것에서 아브라함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서 믿음의 조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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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역’, ‘노력(직업으로서)을 의미하는데, 함축적으로는 ‘행위’, 수고, 일을 의미한다.
2) 개역한글, 킹제임스흠정역, 한글킹제임스, 가톨릭성경 ‘빚’, 개역개정, 새번역성경, 바른성경 ‘보수’, 공동번역, 쉬운성경 ‘품삯’, 현대인의성경, 우리말성경 ‘정당한 댓가’, 현대어성경 ‘일한 대가’
3) 시편 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 문자적으로는 불법의 행위, 곧 범법을 뜻하는 것에서 불법이란 의미이다.
5) 9절에 대한 각 한글성경의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개역한글.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개역개정.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바른성경. “그러면 이 복이 할례자에게만 내리는 것이냐? 아니면, 무할례자에게도 내리는것이냐?” 쉬운성경. “그렇다면 이 복이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말성경. “그러면 이 복은 할례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킹제임스흠정역. “그러면 이 복됨이 할례자에게만 임하느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 임하느냐?” 한글킹제임스. “그러면 이러한 복이 할례자에게만이냐? 아니면 무할례자에게도냐?” 새번역성경. “그러면 이러한 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현대인의성경. “그렇다면 이런 행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현대어성경. “그러면 이제 이 복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동시에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유대교의 규칙은 지키지 않더라도 그리스도만 믿으면 주어지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공동번역. “이러한 행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누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누리는 것입니까?” 가톨릭성경. “그렇다면 이 행복이 할례 받은 이들에게만 해당됩니까? 아니면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도 해당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