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팀웍을 다지자
장 기 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산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내 산생활도 30년이 넘었나 보다. 세상살기에 시달리고 무릎관절수술로 인해 비록 산행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어도 그 동안 산에 다녔다는 것만으로도 난 항상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싶다. 30여년 산을 배우면서 내가 터득한 산악회는 피라미드 조직을 이루고 있을 때 가장 완벽한 "등반"이 이루어 졌다. 조직사회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팀 등반 일 때는 피라미드조직이 아니고서는 등반 자체를 추구할 수도 없으리라.
오늘의 청악이 존재하는 밑거름은 1986년도의 토왕폭 등반을 위한 훈련과정에서 보여준 청악인들의 땀의 결정체가 피라미드 형태로 이루어졌고, 그랬기에 당시 내가 경험한 우리 청악의 피라미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계획보다 더 중요한 팀웍이 피라미드의 가장 밑 부분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서도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 연결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팀웍의 구성 요소인 이해-양보-헌신의 마음이 훈련대원과 회원들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와 그 따스한 열기가 한달간 빌린 구곡폭포 휴게소 지하 빈방의 썰렁한 냉기를 데우고도 남아 토왕의 빙폭까지 녹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용차가 귀하던 시절, 1주일치 주/부식을 써포트하느라 춘천행 막차로 강촌역에 내리면 밤11시, 눈길에서 급조한 부식썰매도 끌며 걸어 자정이 넘어야만 도착할 수 있었던 훈련 캠프장에는 어김없이 야식으로 준비한 김치 볶음밥이 대기하고 있었다. 악조건 하에서 훈련해야만 더 좋은 등반을 할 수 있다는 역설 속에 밤새 마이티에 시달리고서도 새벽밥을 서둘러 마치고 남들 보다 먼저 시작했던 빙벽훈련.
토왕폭 등반을 2인 1조만 시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군소리 없이 훈련에 임해준 4명의 대원들. 이 모든 것이 청악인들의 이해-양보-헌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팀웍이었기에 나는 지금도 토왕폭 등정보다 더 고귀한 팀웍의 끈끈한 마력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팀웍으로 이뤄낸 등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지만 사소한 감정이라도 가미되어 팀웍이 깨진 등반은 아무 의미도 없다.
청악인이여! 다시 한번 팀웍을 다져서 알찬 등반을 이루자꾸나. 30여 명의 희생자를 내고서야 아이거 북벽은 1938년에 초등정되었다. 대학시절에 그 등반기 " 하야거미"를 읽고서 내가 가장 감동을 느꼈던 대목은 등정 바로 전날, 신들의 트래버스에서 세번째 비박을 할 때 4명의 대원간의 팀웍이었다. 팀웍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우리 주변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조그만 아름다움이 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술에 취해 산 얘기를 할 때 자주 부각시켰던 그 부분이니 음미하고 또 음미해 보길 바란다.
"우리와 두 사람과의 사이는 겔렌데, 자일에 카라비나를 통해서 식기를 걸고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었다. 페르크는 원정대 쿡의 중임을 맡았다. 비록 우리들이 울리히링끄씨가(클라이네샤이데그에서 등반을 지켜보던 기자) 상상한 대로 코펠에 둘러앉아 느긋해 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페르크가 식기에 따라주는 것을 훌쩍거리기만 해도 그런 대로 쾌적한 기분에 자적할 수 있었다. 누구나 딱딱한 것은 먹고 싶지 않았다. 단지 마실 것 만이 필요했다. 때문에 페르크는 커피를 끓여 주었다. 몇 시간이나 걸려서 한잔이 될 때마다 그는 한 모금을 마시고 다음의 순번으로 돌렸다. 카스파레크는 빈 출신이라 특히 커피에 환했다. 그는 페르크가 끓여 주는 커피를 아주 맛있다고 칭찬하였다. 하지만 만약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 같으면 맛있는 커피에다 한 대를 피워야 제격일 것이다. 카스파레크는 우리 4사람 중에서 유일한 담배 애호가였다. 그러나 그의 담배는 비와 우박, 눈과 눈사태의 대홍수를 무사히 넘길 수 없었다. 담배는 축축이 젖어서 망가졌다. 다친 팔의 심한 통증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앓는 소리나 한숨 한 번 쉬는 일도 없었지만, 담배를 생각하고는 시름에 잠기고 침울해 했다. 어서 마른 담배에다 젖지 않은 성냥으로 불을 붙일 수 있다면...... 이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나로서는 담배를 가지고 있질 않아서 였다.(중략) 어쨌든 아이거 북벽의 높다란 지금의 비박지에서 그에게 온전한 담배가 가득한갑을 내밀면서 언젠가 그가 나에게 햇볕이 쨍쨍 내리 쪼이는 길바닥에서 과일이 가득 들은 봉지를 내밀면서 " 여보게 먹게" 라고 했듯이, "여보게 피우게"라고 하지 못하는 것을 얼마나 슬프게 생각했는지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벌써 밤 11시였다. 페르크는 취사를 끝내자 이내 잠이 들었다. 여기만도 높이가3,750미터나 된다. 탄탄한 대지는 1,500미터 아래이다. 이렇게 높다란 데에서 있는 좁디 좁은 이 비박 지점에서도 비박용 신발의 쾌적한 기분을 어김없이 맛보고 있는 그였다. 헤크마이어는 얼음 위로 발을 적당히 뻗어야 했으므로 아이젠을 신은 채 밤을 지새야 했다. 그러나 머리는 페르크의 넓다란 등에 기대고서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페르크는 밤새껏 꼼짝 못하고 않아 있어야 했다고 한다. 공연히 움직여서 헤크마이어의 안면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서였다. 카스파레크와 나는 스달스키색을 푹 뒤집어썼다. 발을 받히기 위해서 우리들이 고안한 륙색의 구성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어느덧 내 귀에는 옆에서 자고 있는 친구의 안온하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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