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못 잊는 울란바토르의 아침 밥상
학문의 길은 고단하다. 제자 무기(Delgersambuu Munkhtsetseg)가 명지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에 몸담았던 시절,
그는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공장 일을 하면서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고된 삶 속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몽골에서 대학 교수생활을 멈추고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팍팍한 살림에 고학하는 그를 보며 스승으로서 안타까움이 컸지만,
정작 저는 그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베풀어야 할 마땅한 배려조차 충분히 챙겨주지 못한 채 정년퇴직을 맞이했기에,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묵은 빚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무기는 몽골로 돌아가 유학 기간 중 휴직했던 재경대학(IFE, Institute of Finance and Economics)에 복직했다.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3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은
University of Finance and Economics (IFE 창립 1924년),
Institute of Commerce and Business(기원은 1924 창립),
National University of Mongolia (NUM 1942 창립) 이다.
몽골의 재경대학(IFE, 현재 University of Finance and Economics, UFE)은
1924년 몽골 재무부 산하의 관세학교(Customs School)로 출발하였으며,
회계학교·재정기술학교를 거쳐 오늘날의 재정경제대학으로 발전했다.
회계, 금융, 은행, 세무, 보험, 경영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해 왔으며,
몽골의 경제 개혁과 시장경제 전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는 약 6천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몽골의 대표적인 경제·경영 특성화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 몽골의 경상대학(Institute of Commerce and Business, ICB)은
몽골에서 상업·무역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대표적인 경제계열 고등교육기관이다.
사회주의 시기에는 상업, 유통, 무역, 서비스 산업 종사자를 양성하는 전문학교로 운영되었으며,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한 이후에는 경영학, 국제무역, 관광, 마케팅, 회계, 물류 분야 교육을 강화하였다.
몽골의 유통산업과 서비스업 발전에 필요한 실무형 인재를 배출해 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기업 현장과 연계한 실용 교육을 강조하여 몽골 경제의 상업·서비스 부문 발전에 기여한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은 몽골 국립대학의 편제로 들어갔다.
몽골의 전통적인 경제계열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재정경제대학(UFE, 구 IFE), 경상대학(ICB),
국립몽골대학교(NUM)의 경제학부 등이 함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무기는 IFE 개교 90주년 기념행사에 기념논문 발표를 위해 나를 특별히 ‘저명한 외국의 석학’으로 초빙했다.
학교에서는 항공료부터 체류 비용까지 부담하였다.
모두가 무기 교수가, 스승을 향한 제자의 존경심이 담긴 과분할 정도의 특급 대우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이 70주년 기념행사 개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2014년 5월 4일 밤,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였다.
나는 IFE에서 외국 초청 인사들에게 마련하여 준 숙소보다는 내가 편한대로 늘 머무르던 에투겐 대학교의 영빈관 숙소로 갔다.
다음날인 5월 5일 월요일 새벽에 무기교수가 내가 머무르는 숙소로
손수 지은 한식 아침상을 소쿠리에 담아서 영빈관 숙소로 가져왔다.
내가 그동안 몽골을 자주 다녔다 하더라도 낯선 타지에서,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마주한 소반 위에는 고깃국과 된장국,
정갈한 김치, 정성스레 차려진 한식 반찬들이 가득하였다.
몽골이라는 낯설은 환경에서 한식 재료를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 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데,
그는 소반을 2층으로 쌓아 올린 듯 정성 가득한 진수성찬을 준비해 왔다.
내가 그에게 베푼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오히려 그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을 차려 내다니, 이 기막힌 환대를 과연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뜨거운 정성 앞에 저는 그저 울컥할 뿐이었다.
그 새벽의 온기 때문이었을까 그날 이후 논문 발표는 큰 호평을 받았고, 기념 논문집까지 만들어주었다. ‘세상에 이토록 복 받은 교수가 또 있을까.’
교수가 나의 천직임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이는 지금도 저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다.
현재 무기는 몽골에서 교육자로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훌륭한 제자로 성장한 모습이 그저 대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여전히 짙은 아쉬움이 서려 있습니다.
재직 시절, 나는 많은 외국의 자별한 학자들과 제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논문 발표 기회를 제공하곤 했다.
하지만 정년퇴직 후 늙고 힘이 없다는 핑계로, 정작 가장 아끼는 제자인 무기에게는 그러한 기회를 한 번도 마련해주지 못했다.
그 미안함과 마음의 빚은 시간이 갈수록 겹겹이 쌓여만 간다. 하지만 무기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몽골의 차가운 새벽을 따뜻하게 녹였던 무기의 아침상 차림처럼 표현하지 않아도 스승의 마음은 언제나 제자를 향해 있다는 것을
이렇게라도 적어놓고 싶다. 비록 물리적인 기회는 닿지 못할지라도,
사제의 정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그것이 제가 평생을 바쳐 얻은 가장 값진 결실이기 때문이다.
참고: 나의 몽골 방문 일정
* Shim Ui Sup and Delgersambuu Munkhtsetseg, Comparative Study of Economic Development of Korea and Mongolia for the Take Off of Mongolian Economy: focused on economic miracle and Dutch disease, “Mongolian Socio-economic Situation and Emerging Issues”, Commemoration International Conference for the 90th Anniversary of Institute of Finance and Economics, Ulaanbaatar Mongolia, 6-7 May, 2014
* Visit Mongolia “Mongolian Socio-economic Situation and Emerging Issues”, Commemoration International Conference for the 90th Anniversary of Institute of Finance and Economics, Ulaanbaatar Mongolia, 4-12 May, 2014
첫댓글 심교수님, 몽골의 차가운 새벽을 녹인 무기 교수님의 한식 밥상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몽골 의대에 조교수로 있는 제자가 있어서인지, 해외 제자와의 애틋한 인연이 더 특별하게 와닿습니다.
개교 90주년 논문 발표라는 뜻깊은 자리에 스승을 초대하고 정성껏 환대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사제의 정이 느껴지네요. 교수님의 입맛까지 세심하게 챙긴 그 상차림은 정말 '임금님의 수라상' 부럽지 않은 최고의 선물이었을 것 같습니다. 값진 결실을 보신 교수님이 참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