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십자가로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
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6).
16절의 핵심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 에 있는데,
내용은 15절에서 언급한 “한 새 사람” 이 어떻게 가능해졌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허시고(14), 법조문을
폐하셨는가?” (15),
“둘로 한 새람을 지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16) 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합니다. 15절의 “화평하게 하시고”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되게 하셨다는 뜻이고, 16절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이 두 관계성은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인데 주님은 이 둘을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 하십니다. 순서적으로 하면,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 상호 간에 화평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도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화평부터 말씀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가장 큰 이슈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얻게 되느냐? 아니냐로 첨예하게 대립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헐어버리신 담을 율법의 조문으로 다시 쌓으려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까지도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 교제를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할례당이 온다는 말을 듣고는 얼른 자리를 피했던 것만 보아도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간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했느냐, 아니냐” 하는 관계성이 먼저인 것입니다. 이를 제쳐 놓고 구원, 천당, 축복으로 달려가서는 아니됩니다. 사도는 고린도후서 5:20절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호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고,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단 한번의 설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설교를 할 것이라 할 정도로 하나님과의 화목은 중요하고도 긴급을 요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졌는가?
16절에 두 번 강조되어 있는 오직 “ 십자가”로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16절은 3마디로 되어 있는데, “둘을 한 몸” (교회)이 되게 한 것도 십자가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것도 십자가요, “ 원수 된 것을 소멸”하신 것도
오직 십자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점을 골로새서에게 가장 통쾌하게
진술하고 있는데,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
2:14-15)고 선언합니다.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
우리는 좀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16)고 “한 몸” 이라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한 몸” 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에베소서의 중심주제인
“교회”를 가리킵니다. “ 한 새 사람을 지어” 한 성도들은 “ 교회는 그의
몸이니”(1:23)한 “몸” 의 지체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은 쌀알처럼 각각이 아니라 찰떡 같은 한 덩어리라는 뜻이 “한 몸”
이라한 의미입니다. 사도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새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몸” 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새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이 한 몸을
이루어 위로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옆으로는 성도 상호간에 화목하는 곳,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는” (18) 하나님의 권속, 즉
가족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14-18절 안에는 “둘” 이라는 말이 4번, 하나라는 뜻도 4번 등장하는데, 이
“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단절이 되어 있었고,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원인은 오직 “죄악”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오늘날도,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종족이 종족”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있는 단절과 갈등과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둘로 하나를 만드셨다는 것은, 1:10절에서 언급한, “통일되게” 하는 길을 여셨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네 교회 내 교회, 네 교파 내
교파가 따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북녁 땅에 있느냐, 중국에 있느냐, 미국에
있느냐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입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지구상에 “ 영광스런 교회”을 허락하신 하나님, 다양한 우리들을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케 하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