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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2구간 제3부
먹점마을-먹점재-미동마을-미점숲길-문암송-
대축마을-느티나무당산-부부소나무-최참판댁
20260317
1.문암송의 생명평화 사상과 부부소나무 사랑의 영원성
제3부(먹점-대축-최참판댁) : 섬진강 동쪽 지리산 남쪽 구재봉 서쪽 자락에 자리한 경남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먹점마을에서 지리산둘레길 12구간 탐방을 이어간다. '지리산둘레길'에서는 이 지역을 이렇게 소개한다. "봄에는 꽃동산을, 가을이면 황금으로 물든 풍요로운 지리산 자락을 펼쳐 놓는다. 먹점재에서 미동가는 길에 만나는 굽이쳐 흘러가는 섬진강과 화개의 형제봉 능선, 그리고 섬진강 건너 백운산 자락이 계절별로 색을 바꿔 순례자와 여행객들의 마을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길만큼 마을 숲도 다양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악양면 대축의 문암송은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 준다. 또한 지리산 북쪽에 다랭이논이 있다면 이곳에는 갓논이 있다. 갓논은 갓처럼 좁은 땅에 일군 논이란 뜻이다." 남아 있는 12구간의 주요 경유지와 탐방 거리는, 먹점마을- 1.0km- 먹점재- 1.8km- 미동마을- 2.7km- 대축마을로, 약 5.5km 거리이다. 이번 탐방은 12구간 탐방으로 끝나지 않고,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배경지에 꾸며진 평사리 최참판댁 탐방이 곁들여 있어 대축마을에서 평사리 최참판댁까지 더 걸어야 한다.
매화골 먹점마을에서 흐드러지게 핀 백매화와 홍매화 풍경에 황홀했다. 매화꽃의 눈부신 색채와 은은한 향기에 젖어 보기는 오래 전 다녀온 광양의 청매화 탐방 이후 처음이다. 먹점마을 언덕에서는 섬진강 건너 광양의 백운산이 살짝 보이고, 그 남쪽의 억불봉은 분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하동읍 흥룡리 매화골은 구재봉에서 분지봉으로 내리벋는 삼신지맥 능선과 구재봉활공장에서 남쪽으로 내리벋는 능선 사이에 자리한다. 동쪽의 구재봉-신촌재-분지봉 능선, 북쪽의 구재봉활공장, 서쪽의 구재봉활공장-먹점재 능선이 매화골을 삼면으로 에워싸고, 남쪽으로 섬진강과 그 건너 전남 광양의 산줄기를 향하여 열려 있다.
먹점마을에서 먹점재의 구재봉활공장 갈림길까지의 고갯길이 조금 어렵지만 신촌재 고갯길에 비하면 비교적 쉽다. 이 고갯길에서 구재봉과 분지봉, 억불봉 조망이 좋으며, 먹점재에서는 조망이 막혀 있다. 먹점재는 하동읍 흥룡리와 악양면 미점리의 경계를 이룬다. 먹점재에서 악양면 미점리로 넘어가 꼬불꼬불 굽잇길을 돌아 편백나무숲과 소나무숲을 지난다. 동북쪽에는 구재봉활공장&노을전망대 산줄기가 붉은 피를 토해낸 듯 황토를 드러내며 아픈 몸을 추스리고 있다.
섬진강이 열리고, 형제봉 능선이 섬진강으로 내리벋고, 건너편에는 전남 광양의 산들이 물결친다. 밭에서는 미동마을 아낙 둘이 봄나물을 캐고, 탐방객 아낙들은 매화꽃에 감탄하며 길가에서 냉이를 캔다. 그녀들의 가족 저녁 밥상이 봄의 향기로 그득할 것이다. 저 풍경은 김상옥(金相沃, 1920~2004) 시인의 시조(時調) '사향(思鄕)' 모습에 꼭 들어맞는 것 같다.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그 밥상머리에 길손도 끼어들어 봄을 씹고 싶다.
미점임도의 미점숲길 나들목에 돌의자들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둘레길의 중심 사상을 표현한 '생명평화 무늬' 표지가 돌의자 옆면에 붙어 있다. 지리산둘레길 탐방은 생명과 평화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는 시간과 공간이어야 한다. 구재봉활공장과 전망봉의 산불 흔적에 가슴이 아프다. 불은 생명체의 재앙이다. 세상은 불의 재앙과 같은 인간의 폭력적 재앙을 물리치고 모든 생명체들이 평화를 누려야 한다. 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 1916~1998)의 시 '향현(香峴)'은 이 생명평화의 사상을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山) 넘어 큰 산(山) 그 넘엇 산(山)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山), 묵중히 엎드린 산(山),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랫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山)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等),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山), 산(山), 산(山)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沈默)이 흠뻑 지리함즉 하매,/ 산(山)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박두진의 '향현(香峴)' 전문
구재봉활공장 갈림길 위의 언덕에는 생명평화 사상을 실천한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자연과 생명체를 파괴한 재료를 이용하는 예술이 아니라 나무와 돌, 바위 등의 자연물을 이용한 자연예술의 작품들이 언덕에서 탐방객을 맞이한다. 생명 사상이 철철 넘친다. 마음에 따스한 물길이 흐른다. 언덕에서는 섬진강 건너편 전남 광양의 산들이 물결치며 경남 하동의 산들과 어우러진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에서는 지리산 남쪽의 삼신지맥, 형제봉 능선이 내닫고, 전라도에서는 호남정맥 백운산이 쫓비산을 거쳐 망덕포구로 내달리며, 여기서 비껴난 억불봉이 억억 소리를 내며 솟아 있다.
미점숲길을 통과하여, 구재봉활공장에서 서쪽의 섬진강으로 내리벋는 산줄기의 고개(미점갈림길)를 가로질러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 형제봉 능선의 신선대구름다리와 형제봉이 더 분명히 보이고, 그 동남쪽에 악양들이 드넓게 펼쳐진다. 부부소나무와 동정호가 보이기 시작하고, 악양들 동쪽으로 악양천이 섬진강으로 흘러가며 악양들을 적신다. 대축마을로 내려가는 대축길에도 매화꽃은 흐드러지며, 북쪽 지리산 주능선은 미세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고 청학동 북쪽의 삼신봉에서 내리벋는 삼신지맥의 칠성봉이 살짝 머리를 보여준다.
문암정(文巖亭)으로 내려가 문암송(文巖松)을 살폈다. 암반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바위를 깨뜨리며 뿌리를 내리고 용틀임하듯 줄기를 벋는다. 바위는 생명체 소나무에게 자리를 내주고 소나무는 그 바위를 지탱하여 생명을 누리는 모습, 그리하여 바위와 소나무는 생명평화 사상을 실천하며 서로 친구가 된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읊은 바위와 소나무 모습이 문암송에 꼭 어울린다.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쉽게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오우가(五友歌)' 중에서) 변치 않음을 지키는 바위와 곧음을 지키는 소나무가 어우러진 문암소이 아미산 아래서 굳건하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에 찾아와 드넓은 악양들과 형제봉 능선을 바라보며 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바위를 문암(文巖)이라 부르고, 소나무는 문암에서 자라기에 문암송(文巖松)이라 불린다. 문암송은 아미산과 형제봉, 악양들을 바라보며 자란다. 이곳 주민들은 구재봉활공장 능선의 산봉을 아미산(峨眉山)이라 이르는 것 같다. 아미산(峨眉山)은 중국 쓰촨 성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눈썹처럼 예쁘게 높이 솟은 산이란 뜻이다. 아미산을 중국의 고유명사로 보기보다, 산 모양이 눈썹을 닮은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아미산 아래 문암송에 깃든 여러 의미들을 생각하고 대축마을로 내려갔다.
대축마을 느티나무당산 앞에서 12구간을 마치니 더 이상 나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도보여행팀 안내버스는 악양면 평사리 '토지'관광지 주차장에 머문다.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가야 한다. 악양들을 가로질러 부부소나무와 동정호를 지난다. 한쌍의 소나무가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 같다고 하여 '부부소나무'로 불리는데, 소설 <토지>와 관련하여 '서희와 길상 소나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부부의 사랑을 넘어서는 사랑이 있을까? 부부의 사랑을 칭송하며 부부소나무가 천년만년 생명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토지>는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4년 탈고하였다고 하니 무려 25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생명평화 사상가이다. 그래서 소설 <토지>를 배경으로 2001년에 조성한 최참판댁과 소설 속 인물과 서민의 농가를 조성한 것은 지리산둘레길의 생명평화 사상과 관련하여도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박경리문학관 건립은 생명평화 사상의 실천과 확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토지>는 섬진강이 흐르는 북쪽 하동 평사리 마을의 대지주 최참판댁을 배경하여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을 다루면서 한반도와 주변국 일본과 러시아를 넘나든다. 소설 <토지>의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공간을 구성하였다. 최참판댁은 행랑채, 중문채, 안채, 사랑채, 뒤채, 문간채, 별당채 등으로 구성하여 영남 지방 양반가를 그대로 재현하였다고 한다. 넓게 조성한 바깥마당 중앙에 상수리나무를 식재하고, 그 아래 최참판가 당주 최치수 좌상을 안치하였다. 쓸쓸함이 밀려왔다. 바깥마당 담장에서 동쪽의 악양들과 아미산 능선을 살피며 생명과 우리의 삶에 잠겨서 멍청해졌다.
*<토지> 줄거리 : 하동 평사리를 무대로 최참판댁과 소작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의 전반에 동학운동, 갑오개혁 우리나라의 역사가 녹아있다. 동학운동과 전염병과 대흉년의 발생, 신분 문제 등으로 대지주였던 최참판댁은 몰락하게 된다.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외동딸 서희는 뜻을 같이하는 농민들과 간도로 이주하여 큰 상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서희와 길상은 혼인을 하게 되고 일본의 밀정이 된 김두수와 길상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들의 대립이 펼쳐진다. 이후 진주에 자리잡은 서희는 빼앗겼던 집과 땅을 되찾고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게 된다. 서희가 별당 연못가를 거닐 때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 안내판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7.8km
전쳬 소요 시간 : 3시간 5분
오른쪽의 매화골먹점길을 따라 초록지붕 농가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초록지붕 뒤 매화골먹점길로 올라간다.
오른쪽의 혜광사 위쪽 구재봉 능선은 북쪽 칠성봉으로 이어지고 남쪽 분지봉으로 이어진다. 왼쪽 뒤는 구재봉 전망봉인 듯.
섬진강 건너편 왼쪽 뒤에 전남 광양의 억불봉, 그 왼쪽 앞에 갈미봉, 오른쪽 맨 뒤에 호남정맥 백운산이 어림된다.
매화골먹점길을 따라 초록지붕 농가 돌담을 따라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매화골 언덕으로 올라가 중앙 뒤 산중턱을 돌아간다.
앞쪽의 매화골먹점길 삼거리에서 U턴하듯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간다.
매화골먹점길 삼거리에서 왼쪽 하동좋은매실농원으로 올라간다.
하동좋은매실농원 출입구 앞에서 왼쪽 홍매화 핀 언덕길로 올라간다. 홍매화 뒤에 구재봉과 삼신지맥 산줄기가 보인다.
대축 5.6km 지점, 오른쪽은 혜광사와 먹점골농장 방향, 왼쪽 흥룡-미점 임도를 따라 구재봉 활공장 방향으로 올라간다.
2001년에 건설된 흥룡-미점 1.7km 임도인 매화골먹점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으로 돌아 중앙 위 임도를 왼쪽으로 이어간다.
매화골먹점길 흥룡-미점 임도는 대나무숲 뒤 언덕을 오른쪽으로 돌아 먹점재로 이어진다.
대축 5.3km 지점, 왼쪽은 '시골원' 매화밭 출입구이며,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 흥룡-미점 임도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시골원 출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다시 왼쪽으로 돌아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면 흥룡-미점 임도가 비교적 평탄해진다.
하동읍 흥룡리 먹점마을은 중턱에 자리하고 그 아래쪽에 흥룡마을이 자리한다. 바로 아래에 방금 지나온 시골원 출입구가 보인다.
맨 오른쪽 아래서 왼쪽으로 돌아 맨 왼쪽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왔다. 중앙 뒤에 분지봉, 아래에 먹점마을과 흥룡마을이 보인다.
매화골먹점길인 흥룡-미점 임도의 고개를 넘어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심신지맥이 왼쪽 구재봉에서 중앙 뒤 신촌재를 가로질러 오른쪽 뒤 분지봉으로 이어진다.
고개를 넘기 전에 동쪽으로 뒤돌아보면 구재봉이 우뚝하고 삼신지맥 능선은 남쪽의 신촌재와 분지봉으로 이어진다.
고개를 넘어 흥룡-미점 임도 매화골먹점길을 따라 먹점재로 이어간다.
혜광사 입구에서 1km 거리, 하동읍 흥룡리와 악양면 미점리의 경계를 이루는 먹점재를 넘는다.
먹점재에서 오른쪽은 구재봉활공장 임도이며 중앙 뒤의 구재봉활공장을 가늠한다. 1.3km 거리라고 한다.
하동읍 흥룡리에서 먹점재를 넘어 악양면 미점리로 넘어와 먹점재를 뒤돌아보았다. 중앙 뒤에 구재봉이 보인다.
먹점재에서 흥룡-미점 임도를 따라 꼬불꼬불 돌아 내려간다.
미점임도를 따라 굽잇길을 돌아 내려가면서 정면 뒤쪽의 구재봉활공장&노을전망대를 살핀다.
먹점재에서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 미동마을로 이어지는 임도의 편백나무숲길을 지난다.
편백나무숲길에서 나오면 정면에 형제봉과 신선대 구름다리가 보인다. 임도는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두세 차례 굽이돈다.
미점리 임도는 왼쪽으로 돌아 아래쪽으로 내려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섬진강 건너편에 전남 광양의 산들이 물결친다. 아낙 둘이 나물캐는 모습이 보인다.
대축 3.6km 지점, 중앙 뒤의 구재봉활공장&노을전망대를 확인한다. 지난 2021년 2월 발생한 산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미점 임도는 왼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지리산둘레길은 임도를 굽이돌아 내려갔다가 미동마을 갈림길에서 언덕으로 올라가 중앙 뒤 미점숲으로 이어간다. 섬진강이 경남 하동군 악양면과 전남 광양시 다압면 사이로 흐르고, 오른쪽 뒤에 신선대구름다리가 보인다.
미점임도가 왼쪽으로 굽이돌아 내려간다. 섬진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맨 왼쪽 뒤에 광양의 백운산이 보인다.
오른쪽 뒤에 신선대 구름다리와 형제봉이 보인다. 지리산둘레길은 중앙의 파란 물탱크 아래를 지나 뒤쪽 미점숲으로 이어간다.
위쪽 임도에서 내려본 아낙 둘이 나물캐는 밭으로 내려왔다.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산수유와 홍매화꽃이 핀 미동마을 농가가 있고, 오른쪽 뒤에 신선대구름다리와 형제봉이 보인다. 지리산둘레길은 임도를 오른쪽으로 돌아내려가 맨 오른쪽 파란 물탱크 아래를 지난 미점숲으로 이어간다.
지리산둘레길은 미점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 미점숲 입구에서 언덕으로 올라가 오른쪽 비탈의 파란 물탱크 아래를 지나 중앙의 미점숲으로 이어간다. 중앙 뒤에 신선대구름다리와 그 오른쪽 높은 산봉 뒤에 형제봉이 분명히 보인다.
매화꽃 흐드러진 미점임도에서 탐방객들이 냉이를 캔다. 중앙 뒤에는 13코스 탐방 때 넘어갈 신선대구름다리와 형제봉이 보인다.
대축 3.0km 지점, 백매화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를 날리는 미점임도를 왼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중앙 뒤 파란 물탱크가 보인다.
바로 아래에 악양면 미점리 미동마을이 있고, 아래에는 개치마을이 자리하며, 섬진강이 흐른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美店里) 지명은 자연 마을인 미점마을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악양면 미점동(美店洞), 덕양면 상개치동(上開峙洞)·하개치동(下開峙洞)이 통합되어 악양면 미점리가 되었다. 마을 뒤로 구자산[767m]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북서쪽에서 흘러들어 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섬진강 건너로 백운산[1,218m]과 억불봉을 마주하며 서북쪽으로는 넓은 악양들이 펼쳐져 있다. 미점리는 악양면 남단에 자리 잡고 있으며, 축지리·평사리와 이웃하고 있다. 현재 개치·미동·미서 등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섬진강과 악양면이 만나는 길목에 있는 개치는 악양면의 관문으로 조선 시대에 개치시장으로 유명하였고 개치원(開峙院)이 있었다. 현재도 매년 정월 초 3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개치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미서마을은 악양천 변에 형성된 들판 가까이에, 미동마을은 산기슭 안쪽에, 개치마을은 섬진강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다. 미동마을 중앙에는 둘레 6m, 높이 50m 크기의 수령 400여 년 된 팽나무가 서 있다. 개치마을 입구 도로변에는 일제 강점기에 중건된 정자 악양루(岳陽樓)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대축 2.8km 지점, 미동마을의 미점숲길 나들목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위쪽 언덕으로 올라간다.
미점숲길 출입구에 평화생명 무늬표지가 붙은 쉼터 돌의자들이 설치되어 있다.
바윗돌이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중앙 맨 뒤의 구재봉활공장&노을전망대가 가늠된다.
오른쪽 길은 중앙 맨 뒤의 구재봉활공장&노을전망대로 이어지는 듯. 왼쪽 길로 이어간다.
대축 2.6km 지점, 미점숲 가는 길을 따라 전망 좋은 언덕으로 올라간다.
언덕에는 자연의 돌과 바위를 이용한 여러 조형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중앙 뒤 먹점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내려와 중앙의 소나무숲길을 통과하여 왼쪽으로 돌아서 오른쪽 뒤 나물캐는 아낙들이 있는 밭을 지나서 맨 오른쪽 아래 미점숲길 출입구에서 언덕길을 올라와다.
왼쪽 뒤 나물캐는 아낙들이 있는 밭에서 미동마을 농가를 거쳐 백화꽃 흐드러진 미점임도를 따라온 길이 분명히 보인다.
언덕에는 자연의 돌과 바위만을 이용한 자연물 조형작품들이 조성되어 있다.
언덕의 오른쪽 비탈에 길잡이가 되어준 파란색 물탱크가 있고, 그 아래에 돌탑이 조성되어 있다.
섬진강 건너편 전남 광양 지역에 산들이 물결친다. 중앙 왼쪽에 분명히 솟은 산봉 왼쪽 맨 뒤에 호남정맥 백운산이 보인다.
산비탈 중턱으로 난 길을 따라 미점숲으로 이어간다.
섬진강 건너 전남 광양의 산들이 물결친다. 왼쪽 뒤에 억불봉, 중앙 오른쪽 맨 뒤에 호남정맥 백운산이 분명히 확인된다.
미점숲길을 지나간다. 미점숲에도 서어나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대축 1.9km 지점, 오른쪽은 구재봉활공장 방향, 왼쪽은 미점리 개치마을 방향, 고개를 넘어 대축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
미점고개를 넘어 임도 대축길을 따라 내려간다. 중앙 뒤에 삼신지맥 능선이 이어진다.
형제봉 능선이 북쪽에서 남쪽 섬진강으로 이어지고 그 동쪽 자락에 악양 들녘이 넓게 펼쳐져 있다.
악양 들녘 너머 북쪽 지리산 천왕봉 방향을 살피지만 흐릿하다. 왼쪽 뒤에는 청학동과 삼신봉이 있을 것이다.
왼쪽에 우뚝 솟은 1054m 산봉 왼쪽의 신선대와 신선대구름다리, 1054봉 오른쪽 뒤의 형제봉 두 산봉이 보인다.
왼쪽의 평사리, 오른쪽의 봉대리, 맨 오른쪽의 입석리에 걸쳐 악양들이 넓게 펼쳐지고, 왼쪽 뒤에 부부소나무와 동정호가 보인다.
섬진강이 흐르고, 그 동쪽에 평사리 들녘이 펼쳐지며, 중앙에 동정호와 부부소나무가 보인다. 능선에 신선봉 두 산봉이 있고, 그 아래쪽에 고소성과 소설 <토지>의 배경지가 있다고 한다.
대축 1.1km 지점, 감나무밭을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악양들 건너 형제봉 산줄기가 섬진강으로 떨어진다.
왼쪽부터 신선대, 신선대구름다리, 1054m 산봉, 맨 오른쪽 뒤에 성제봉(왼쪽 1112m), 형제봉2(오른쪽 1116.2m)가 보인다.
대축 1.0km 지점, 대축길을 따라 문암정 앞에서 왼쪽 문암송으로 올라간다. 오른쪽 길은 곧바로 문암송으로 올라간다.
문암정(文巖亭) 앞에 문암송 표석이 서 있고, 왼쪽 뒤에 문암송이 자란다. 문암정(文巖亭) 내부에 걸린 문암정 창건 서문을 옮긴다.
문암정 창건 서문 : 장엄한 智異山 줄기 따라 峨眉山을 이루고 태고의 신비 속에 巨巖을 뚫고 600여 년간 자라난 文巖松의 굳센 忍耐와 意志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勇氣와 希望을 주는 귀감(亀鑑)이 되고 그 姿態 아름다워 慶尙南道 指定記念物 제七十八號로 指定하고 所重하게 保護하고 있다. 悠悠한 歲月 속에 屯里 사람들과 喜怒哀樂을 같이하며 때로는 休息處로 긴 세월을 住民들의 寵愛와 保護 속에 자라왔다. 文巖亭保存會에서는 문암송 아래 文巖亭을 建立하고 西紀 二千二年 五月 十五日 竣工式을 하고 快寂한 環境을 造成하여 無病長壽하도록 가꾸고 保存하고자 한다. 文岩松과 문암정 保存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께서 보탬이 되고자 誠金을 寄託하여 주셔거 그분들의 名單을 木板에 새겨 고마운 情을 길이 保存하고자 합니다. 西紀 二千三年 五月 十五日 文岩松文巖亭 保存會
하동(河東) 축지리(丑只里) 천연기념물 문암송(文岩松) 앞에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문암송은 씨앗이 문암이라는 바위 틈에 뿌리를 내려 바위에 걸터앉은 것처럼 기이한 모양으로 자란 소나무를 가리킨다. 나무의 높이는 약 12m, 둘레가 3m 정도이며 사방으로 퍼진 가지의 너비는 동서로 16.8m, 남북으로 12.5m 가량 된다.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하지만, 흙에 뿌리를 내린 일반 소나무와 비교하기가 어려워 정확하지는 않다.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소나무 아래로 너른 들판과 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풍광이 그림 같아서 시인과 묵객 등 시서화를 즐기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시회를 자주 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와 바위에 마을을 지키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봄에 문암송 밑에서 제사를 지내고 온종일 즐겁게 놀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문암송대제로 이어지고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이던 문암송은 식물학적 가치와 경관, 주민들이 문암송계를 꾸려 나무를 보호해 온 문화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200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 안내판
MBC 월화미니시리즈 '역적'을 문암송(文岩松)을 배경하여 촬영한 세 장면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MBC 월화미니시리즈 '역적' 촬영지 : ●극중 주인공인 홍길동의 성황당나무로 나오며, 홍길동의 위험을 암시하거나 대소사를 결정할 때 그 배경으로 나온다. 홍길동은 힘이 어마어마한 애기장수로 나라가 위험할 때 큰 도움을 주는 난세의 영웅으로 그려진다. 문암송(文岩松)은 드라마에서 하동의 청정한 푸른 자연을 배경으로 거대하고 위엄있게 비춰진다. ●“이 나무(문암송)가 무슨 나무 인지 알재" 물으며 "지리산 만신한테서 점지 받은 나무며, 장차 이 나라 조선 땅에 큰 기운이 날 때 그 기운이 부러지지 않게 받쳐 줄 나무"라며 아모개(김상중)가 두 아들 길현과 길동(윤균상)에게 성황당(문암송)에 대해 설명한다. ●길동은 방물장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전국팔도 유량 길을 나서기 전 성황당나무 (문암송)에 자신과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12년 후 홍길동은 사람들 사이에 요술장수로 불리는 방물장수가 되어 다시 나타난다.
문암송 뒤쪽에 문암송과 문암정, 악양 들녘, 형제봉 능선을 조망한다. 문암정 지붕 뒤쪽에 소설 <토지>의 관광지가 보인다.
소나무 뿌리가 문암 바위를 깨뜨리고 서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문암송이 특별하다.
문암송은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하는 소나무로 나무 높이 13.0m, 가슴높이 둘레 3.7m이며, 문암송 입구에는 문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문암송에서 드넓은 악양 들녘이 전망되는 곳으로 경관성이 뛰어나다. 하동 축지리 문암송은 크고 편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는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이한 생육환경과 아름다운 수형은 식물학적·경관적으로 가치가 크다. 또한 옛날부터 문인들이 즐겨 찾아 시회(詩會)를 열어 칭송하였던 것으로 전하고 지역민을 중심으로 문암송계가 조직되어 보호되어 온 나무로 문화적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국가유산포털
문암송 오른쪽 맨 뒤에 구재봉활공장이 보인다. 구재봉활공장에는 구재봉노을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문암정 앞에서 악양 들녘을 조망하였다. 아래 왼쪽 건물은 대축지구 배수지 시설이며 아래쪽에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이 자리한다. 건너편 형제봉 능선 동쪽 아래에는 악양 들녘이 넓게 펼쳐지고, 전신주 왼쪽 뒤 산자락에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이 꾸며져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丑只里) 지명은 축지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시대 진주목 악양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둔위(屯衛) 또는 축촌(丑村)이라 하였고, 1702년(숙종 28) 하동군 관할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축지동(丑只洞)과 축동동(丑東洞)이 통합되어 악양면 축지리가 되었다. 마을 뒤로 구자산[767m]이 솟아 있고, 앞으로 넓은 악양들이 펼쳐져 있으며, 악양천이 악양들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축지리는 악양면 남쪽 아래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미점리·신대리와 이웃하고, 대축(大丑)[일명 큰둔이]·소축(小丑)[일명 작은둔이]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대봉감 시배지로 유명하며, 대축마을 뒷산인 아미산(峨嵋山)에는 천연기념물 제491호로 수령 600여 년 된 하동 축지리 문암송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매화꽃 흐드러지는 대축길을 따라 대축마을로 내려간다. 형제봉 능선 동남쪽에 악양 들녘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바로 위쪽에 문암송과 문암정이 있고, 뒤쪽 구재봉 서쪽 능선의 건물이 있는 곳에 구재봉활공장과 구재봉노을전망대가 있다.
구재봉 서쪽 능선이 섬진강 방향으로 내리벋고 있다. 매화밭 중앙 뒤 능선의 안부(鞍部)는 방금 넘어온 미점갈림길 고개이다.
대축마을로 내려가는 대축길 양쪽에는 감나무밭들이 넓게 자리하고, 길가에는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마을정보센터 명판이 붙은 대축마을회관과 오른쪽 대축경로당 사이의 대축길을 따라 내려간다.
왼쪽의 대축경로당과 오른쪽의 대축마을회관을 지나와서 구재봉 서쪽 능선의 구재봉활공장과 노을전망대를 뒤돌아보았다.
대축길을 따라 대축마을 골목을 지나 내려가면 홍매화가 핀 민가 아래에 느티나무가 자라는 느티나무당산이 보인다.
걸어온 대축마을 골목을 뒤돌아보았다. 홍매화가 핀 민가가 단정하고, 구재봉능선의 구재봉활공장&노을전망대가 확인된다.
대축마을 당산느티나무 앞에 문암송 안내판, 지리산둘레길 12·13구간 시종점 안내판과 상징 조형물 벅수가 설치되어 있다.
천연기념물 문암송 : 소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든 잘 자라는 소나무과에 속한 늘푸른 큰키나무(喬木)이다. 껍질은 검붉은 비늘 형태이며 잎은 바늘 모양으로 두 잎이 모여 난다. 5월에 꽃이 되며, 열매인 솔방울은 11월에 익는다. 나무는 건축재와 철도의 침목, 땔감 등으로 쓰이고, 소나무 진액인 송진은 약용이나 공업용으로 쓰인다. 이곳 소나무는 높이가 약 12m, 둘레가 3m 정도이며, 사방으로 퍼진 가지(樹冠)는 동서 16.8m, 남북 12.5m 가량 된다. 나무의 연령은 대략 60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이 나무는 일명 문암송(文岩松)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아마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이 소나무를 즐겨 찾은 데서 연유한 이름일 것이라 추정된다. 이 나무는 축지리 뒷산 기슭에 큰 바위를 둘로 쪼갠 듯이 우뚝 솟아있는데, 그 기이하고 힘찬 모습이 남성미(男性美)를 연상시킨다. 옛날에는 마을사람들이 화창한 봄날을 택하여 이 나무 밑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하루종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소나무는 2008년 3월 12일 천연기념물 제491호로 지정되었다. - 안내판
삼화실 16.7km, 원부춘 8.5km 지점, 대축마을 느티나무 당산 남쪽 악양동로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다.
악양동로에서 대축마을 느티나무 당산을 돌아보았다. 오른쪽 전신주 옆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당산 뒤에 대축양곡도매상이 있다.
지리산둘레길 12구간을 마치고, 악양동로를 따라 최참판댁을 찾아간다.
악양동로 삼거리 소공원에 쉼터정자가 설치되어 있고, 대축마을 표석과 대봉감 정보화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
대축마을 출입구에 대축마을 표석과 유래비, 대봉감 정보화마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대축마을 유래비의 내용을 옮긴다.
대축마을의 유래 : 변한시대 낙노국이었던 이곳은 그 연원이 오랜 마을들이다. 본래 진주목 악양현의 지역으로 둔위(屯衛)라 하였는데, 항교가 있었고, 1633년에는 축촌(丑村)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종 28년(1702년)에 하동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축지리(丑只里)가 되었다. 축지리는 대축(大丑큰둔이), 소축(小丑작은둔이)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축마을에는 천연거암(天然巨岩)을 뚫고 자란 소나무가 뒷산인 아미산(峨嵋山)에 있다. 이 나무는 일명 문암송(文岩松)이라고 하는데 큰 바위를 둘로 갈라 놓으면서 우뚝 솟아오른 모양이 기이하기도 아려니와 남성미를 연상케 한다. 2006년 11월 1일
최참판댁 1.7km 표지판을 지나 악양천의 축지교를 건넌다. 형제봉 산줄기가 섬진강으로 내리벋는다.
악양천이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아래쪽에 악양면 미점리 미서마을, 그 아래쪽에는 섬진강에 접하여 미점리 개치마을이 자리한다. 섬진강 건너편 왼쪽 맨 뒤에 전남 광양의 억불봉이 보이고, 백운산은 중앙 뒤에 숨어 있다.
악양천 하류 맨 끝에는 구악양교가 있다. 악양천 유역의 서쪽은 화개천 유역으로 성제봉[1,115.2m] 산지가 분수계를 이루고, 악양천 최상류 분수계를 북쪽으로 넘으면 횡천강 최상류부가 나온다. 악양천은 총 길이 10.5㎞, 유역 면적 50.16㎢로 하천의 시점은 하동군 악양면 등촌리, 종점은 미점리이다. 악양천 유역 남쪽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는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는 최참판댁이 자리 잡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악양천 상류 방향을 올려 보았다. 왼쪽 위는 입석리, 악양천 동쪽에 축지리가 자리한다. 맨 오른쪽 뒤에 칠성봉이 보인다.
경상남도 화동군 악양면 등촌리 거사봉에서 발원하여 정동리·신성리·봉대리를 거쳐 미점리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악양천(岳陽川)은 횡천강과의 분수계를 이루는 거사봉[1,100m]·시루봉[993m]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악양교에 이르러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정동리 부개교를 지나 노전천을 합하고, 신성리에서 선청천을, 봉대리에서 하덕천을 합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악양천 유역은 전체적으로 악양교를 기점으로 상류는 남쪽으로, 하류는 남서쪽으로 열린 골짜기 형태이며 총 길이에 비해 유역 면적이 넓다. 최상류를 제외하고는 골짜기가 넓고, 하류는 폭이 매우 넓어 평사리들이 펼쳐져 있다. 평사리들은 경지 정리가 매우 잘 되어 있고 악양교 하류부터 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악양천 동쪽에 축지리가 자리하고 그 북쪽에 신대리와 신성리, 신흥리가 자리한다. 중앙 맨 뒤에 칠성봉, 그 뒤에 하동호가 있다.
악양천 서쪽 둑방에 지리산둘레길 대축-원부춘 구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동정호 코스와 입석마을 코스가 갈라진다.
중앙의 농로를 경계로 남쪽은 평사리, 북쪽은 봉대리 지역이다. 중앙 뒤 평사리 들녘에 부부소나무와 동정호가 보인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平沙里) 지명은 중국 샤오샹팔경(瀟湘八景)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에 비유하여 붙인 이름이다. 평사리는 섬진강 포구로서 수운 및 육로 교통의 요충지이며, 마을 앞으로 넓은 악양들을 끼고 있어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둔촌동(屯村洞), 평사동(平沙洞), 검두동(儉頭洞) 각 일부가 통합되어 악양면 평사리가 되었다. 서쪽으로 지리산 삼신봉에서 뻗어 나온 신선봉 줄기가 솟아 있고, 동쪽으로 악양천이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흘러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평사리는 악양면 서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봉대리와 이웃한다. 상평·외둔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산기슭에 상평마을이, 섬진강 변에 외둔마을이 터를 잡았다. 대하소설『토지』의 무대로 유명하며, 평사리 305번지에 있는 동정호는 중국 샤오샹팔경의 하나인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본뜬 경관이다. 문화유적으로 사적 제151호인 하동 고소성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평사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 부부 탐방객이 걷고 있다. 평사리 들녘의 부부소나무가 부부의 금슬(琴瑟)을 빛낸다.
악양 친환경농업단지 들녘의 농로를 따라간다. 1054봉 왼쪽에 신선대구름다리, 1054봉 오른쪽 뒤에 형제봉이 보인다.
악양들 북쪽은 봉대리, 그 위쪽은 입석리 지역이다. 맨 오른쪽 뒤에 칠성봉이 보이며, 중앙 뒤쪽에 지리산 천왕봉이 보일 것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鳳坮里) 지명은 봉대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악양팔경으로서 중국 금릉의 봉황대와 견줄 만큼 경치가 빼어나 ‘봉대(鳳臺)’ 가 되었다 한다. 조선 시대 진주목 화개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봉대동(鳳坮洞)·대촌동(坮村洞)·하평동(下平洞)·평사동(平沙洞) 일부가 통합되어 악양면 봉대리가 되었다. 서쪽으로 지리산 삼신봉에서 갈려 나온 신선봉 줄기를 등지고, 악양들과 만나는 낮은 산기슭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동쪽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악양천이 서북 방향에서 동남 방향으로 흘러간다. 봉대리는 악양면 아래 지역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평사리·입석리와 이웃하고 봉대·대촌·하평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봉대마을과 대촌마을은 섬진강과 가깝고 악양들을 마주하고 있어 역사가 오래된 유서 깊은 마을로 여겨지며, 봉대마을 남쪽 산에 중국 금릉의 봉황대를 본떠 만든 봉황대가 있다. 하평마을은 조선 시대에 평사역(平沙驛)이 있던 곳이어서 역촌(驛村)으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 유적으로 봉대리 유물 산포지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악양들 건너편에 오른쪽부터 축지리, 신대리, 신성리, 신흥리 지역이 이어지며, 중앙 뒤에 삼신지맥의 칠성봉이 솟아 있다.
구재봉 능선이 섬진강으로 벋어내리고, 그 서쪽 자락에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이 자리하고, 중앙에 문암송이 보인다.
앞에는 지구를 이마로 받치는 조형물, 그 왼쪽 뒤에 부부소나무, 그 왼쪽 뒤에 억불봉, 맨 오른쪽에 동정호가 보인다.
악양서로의 회전교차로를 건너 평사리 상평마을 방향으로 올라간다. 오른쪽 뒤에 신선대구름다리가 보인다.
상평교 건너 공용주차장 출입구 뒤에 박경리토지문학비가 서 있다. 오른쪽 뒤에 신선대구름다리가 보이고, 형제봉은 뒤에 숨어 있다.
상평마을의 유래 : 평사는 변한시대에도 악양의 대외 창구였고, 마을 형성의 깃점이 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섬진강을 통한 교통의 발달이 포구(浦口)로서 역할이었다면 신라 때나 가야시대에 성립되고 번성된 역촌(驛村)은 육로의 교통이 활발하게 만들어 외래문화의 수용이나 교역에 있어 중요한 목이었던 만큼 변한시대의 이 땅에 낙노국이 유지되는 활력소였다고 여겨진다. 본래 진주목 화개현의 지역으로서 악양 소상팔경(岳陽瀟湘八景)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과 같다 하여 평사라 하였는데, 숙종 28년(1702년)에 하동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개면의 둔촌과 악양면의 신암, 삽암, 평사역촌을 병합하여 평사리라 해서 악양면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상평(上平), 외둔(外屯)을 합하여 평사리라 하며 문학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인 소설 土地의 고향 주 무대이며 매년 10월이면 평사리 土地문학제가 열리는 곳이다. 평사 위쪽 마을이다. 2006년 11월 1일 - 상평마을 유래비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 입구에 박경리土地文學碑가 서 있다. 박경리土地文學碑의 새김글을 옮긴다.
하동의 악양은 삼한의 낙노국 이래 수천년의 세월이 흘러온 역사와 전통의 고장이다. 지리산 남녘의 산자락이 섬진강을 만나 비옥한 들판을 이루어 인심이 순박하고 물산이 풍부하였다. 우리 문단의 거목이신 고 박경리 선생께서 우리 고장 평사리의 황금 들판을 소재로 하여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하소설「토지」를 집필하셨으니 이로 인하여 우리 고장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고 박경리 선생님의 크신 업적을 기리고 생명존중과 토지 사랑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고자 문학비를 세운다. 2008. 10.
악양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 그 땅 서편인가? 골격이 굵은 지리산 한자락이 들어와 있었다.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 2001.11. 평사리를 다녀와서 박경리.
朴景利 연보 : 1926년 10월 28일 충무시 명정리에서 박수명의 장녀로 출생/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 졸업/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김동리추천, 단편 '계산'/ 1956년 8월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으로 추천 완료/ 1957년 '불신시대'로 현대문학상 수상/ 1959년 '표류도'로 내성 문학상 수상/ 1962년 '김약국의 딸들' 발표/ 1965년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수상/ 1969년 '토지'를 현대문학에 연재 시작/ 1972년 '토지' 1부로 월탄문학상 수상/ 1979년 『박경리문학전집』전 16권 지식산업사 간행/ 1990년 제4회 인촌상 수상/ 1994년 8월 15일 새벽 '토지' 탈고/ 1995년 연세대객원교수 임용/ 1996년 제6회 호암예술상 수상/ 2000년 시집 <우리들의 시간> 간행/ 2002년 「토지」전21권 나남출판 간행/ 2007년 <가설을 위한 망상> 산문집 나남출판 간행/ 2008년 5월 5일 숙환으로 별세, 향년 82세.
왼쪽에 최참판댁 안내도와 최참판댁 건립 이야기 안내판이 있고, 넓은 바깥마당에 상수리나무, 그 뒤에 사랑채가 자리한다. '최참판책 건립 배경에 담긴 숨은 이야기' 안내판 내용을 옮긴다.
소설「토지」와 드라마 : 1987년, 광복 42주년을 맞아 KBS에서 박경리 선생을 직접 찾아뵙고 집필 중인「토지」를 드라마로 제작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당시는 탈고되지 않은 작품이라 거절하였는데도 방송국의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대하드라마 토지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주일성 연출, 최수지 주연, 1987년 10월 24일~ 1989년 8월 6일) 토지 드라마 방영 이후 악양면 평사리에는 많은 시청자들과 독자들이 찾아들기 시작했지만 지리산과 섬진강, 평사리 들판 외에 정작 평사리에는 <최참판댁>은 없었다.
1997년 IMF와 10억원의 종잣돈 : 이에 하동군 석민아 공무원이 "최참판댁 건립" 을 제안하였고, IMF로 매우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상남도 예산담당관실에 근무하던 하동 출신 윤상기 공무원(전 하동군수)의 적극적인 노력 결과, 김혁규 도지사의 특별한 배려로 최참 판댁 건립의 종잣돈이라 할 수 있는 도비 10억원을 지원받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초대 민선군수였던 정구용 하동군수는 군비 등 예산 30억 원으로 부지 3천평(10,000㎡)을 구입하여 1998년 마침내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이 현실 세계로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최참판댁이 건되고 2001년 하동의 문인들이 박경리 선생의 승낙을 받아 그해 11월 작가를 직접 모시고 <제1회 토지문학제>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어느덧 20회를 맞는 <토지문학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관광 메카 : 소설 「토지」는 TV 드라마로 인한 영상매체가 만나서 마술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토지 완간 이후 첫 드라마인 SBS 대하드라마 토지 52부 (이종한 연출, 김현주 주연, 2004년 11월 27일 ~ 2005년 05월 22일) 방영으로 최참판댁 한옥 14동온 물론 용이네, 칠성네 등 초가 세트 50여 동이 설치되어 평사리는 단순한 문학작품의 배경지를 넘어 대한민국의 관광 메카로 자리잡았다. 특히 민선 6기(윤상기 군수)에 들어 박경리문학관을 건립하여 박경리 선생의 3대 보물(재봉틀, 국어사전, 소목장)을 비롯한 도서, 사진, 유품 등을 박경리 선생의 따님인 김영주 원주 토지문화관 이사장과 협의하여 상설 전시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평사리문학관은 "문학&생명관"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최참판댁 바깥마당 확장, 박경리 동상 제막, 한옥호텔 4동을 신축함으로써 그야말로 자연을 느끼며 하룻밤 묵어가는 휴양과 힐링 장소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보존과 활용 : 평사리 <최참판댁>은 연간 100만명이 찾는 대한민국의 대표 명소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시대 큰 작가 박경리 선생의 역작 소설 「토지」의 힘이지만, 행정과 문인들이 마음을 모아 문학작품을 문화와 관광의 콘텐츠로 함께 엮어내고 이곳에 대대로 터 잡고 살아가는 평사리 마을주민들이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의 대표 모델이다. 소설「토지」가 품었고 박경리 작가의 생명사상이 녹아 숨쉬는 생명의 땅. 토지 민족의 땅 악양 최참판댁은 자연유산과 문학유산이 한데 어우러진 인문학의 도시이자 문학수도 하동의 명품 랜드마크이다. 우리지역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우리시대의 자산임을 명심하고, 소설「토지」의 온전함이 최참판댁 속에 무한한 가능성으로 더욱 뿌리 내려질 수 있도록 더 보존하고 가꾸어 나아가야 함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할 것이다. - 안내판
바깥마당 상수리나무 아래에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 당주 '최치수 좌상'이 조성되어 있고, 뒤에는 구재봉능선이 부드럽다.
최치수(崔致修) : 소설「토지」의 최참판가 당주. 몸은 왜소하고 깡마르지만 강건하고 다소 신경질적인 성격. 세상을 여전히 반상이 구분되는 봉건시대로 바라보며 당시 급변하던 정세에 대해서 다소 냉소적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 윤씨부인에게 외면당하면서 더욱 말수가 적고 자기 위주의 음산한 성격으로 변한다. 딸 서희조차도 아버지를 두려워하여 가까이하지 않고, 윤씨부인도 죽을 때까지 구천이와 얽힌 자신의 비밀을 아들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열세 살 때, 한 살 위인 첫 아내와 결혼하여 금슬이 좋았으나 자식 없이 열두 해를 살고 아내가 죽는다. 이후 자기보다 열 살이나 아래이며 미모가 뛰어난 별당아씨와 재혼했으나, 첫 아내와는 달리 정을 전혀 주지 않아서 별당아씨가 불륜을 저지르는 계기가 된다. 별당아씨와 함께 야반도주한 구천(김환)이 자신의 의붓형제일 거라고 짐작을 하면서도 그를 찾아 죽이겠다는 집념을 보이며 지리산을 헤매기도 한다. 한때 서울에 머물면서 윤락가를 방황하다 성병에 걸려 남자 구실을 못한다. 노비인 귀녀가 자신을 유혹하여 임신하고 최씨 집안의 재산을 차지하고 싶어 안달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있으나, 냉소적인 성격 때문에 그런 꼴도 보는 재미가 있다며 귀녀의 행동을 방관한다. 그 뒤틀린 성격이 발동하여 귀녀를 강포수와 결혼시키려 했는데, 이것이 귀녀를 결정적으로 자극하여 그날 밤에 초당에서 잠자다 귀녀와 결탁한 김평산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 안내판
하동 평사리 들녘이 드넓고 부부소나무가 있다. 뒤에는 아미산이 눈썹처럼 그려져 있고, 그 아래 문암송과 대축마을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