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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생명과 사망
③ 복과 저주
하나님은 사람을 억지로 순종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선택할 기회를 주십니다.
모세는 "너희 앞에 두 길이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숨기지 않고 미리 알려 주십니다.
II. 선택의 권면 (19절 하반절)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여기서 하나님은 단순히 "선택은 네 마음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생명을 선택하여라"라고 권면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백성이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선택 역시 나 혼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III. 생명을 선택하는 방법 (20절 상반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생명을 선택하는 방법이 세 가지 동사로 설명됩니다.
① 사랑하라
② 청종하라
③ 의지하라
성경은 생명을 선택하는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 줍니다.
생명은 단순히
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짜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고, 듣고, 붙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순종으로 이어지고, 순종은 하나님께 계속 붙어 있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IV. 그 이유와 결과 (20절 하반절)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거하게 하시리라"
① 그는 네 생명이시다
② 네 장수이시다
③ 약속의 땅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을 받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생명의 근원을 떠나는 것이고,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생명의 근원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약속하신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신명기 30:19-20은 "선택"으로 시작해서 "생명"으로 끝나는 말씀입니다.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두 길을 제시하신다
→ 하나님은 생명을 선택하라고 권면하신다
→ 생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의지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 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생명이시며, 그분 안에 참된 복과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언약 백성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신명기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해서 담고 있습니다.
생명을 선택하게 하는 사람
본문: 신명기 30:19-20
서론: 하나님은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디에서 살지, 누구와 함께할지 끊임없이 선택합니다. 어떤 선택은 작은 영향을 미치지만, 어떤 선택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선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선택입니다. 돈이 많고, 건강하고, 높은 지위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은 참된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설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나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오늘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는 생명을 택하라."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멸망하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니라, 살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으시지만, 가장 좋은 길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며 "생명을 선택하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생명의 길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고,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지고 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생명이 필요하지만, 어디에서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을 아직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생명을 얻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만 구원받고 만족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전도는 교회의 행사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는 사랑의 사명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는 일이며, 영원한 소망을 나누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전도를 부탁하시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생명의 사명을 다시 붙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는 생명을 택하라."
이 말씀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살기를 원하시며,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고,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면,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먼저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으신 것은 단순히 죄를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사랑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름 없는 한 사람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세리를 찾아가셨고, 병든 사람을 고쳐 주셨으며,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받던 이들을 예수님은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한 영혼이 하나님께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조건으로 평가합니다. 학력, 직업, 재산, 사회적 지위와 같은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을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택하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오늘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전도를 맡기셨을까요?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하늘에 큰 표적을 나타내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그 은혜를 가장 진실하게 증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을 겪어 본 사람이 음식의 소중함을 알듯이, 죄 사함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만이 복음의 기쁨을 전할 수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행하신 은혜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이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전도하지?"라는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를 걱정하기보다 순종하면 됩니다. 한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고, 함께 식사하며, 삶을 나누고, 예배에 초대하고, 복음을 전하는 작은 순종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떠오르게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교회를 떠난 가족일 수도 있고,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친구나 직장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사랑하시며, 우리를 그 사람에게 보내기를 원하십니다.
전도는 교회의 성장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살리기 원하시기에, 우리도 그 마음을 품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본론 2. 하나님은 우리를 생명의 전달자로 부르셨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이 말씀은 생명의 선택이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한 사람의 믿음은 그의 가정을 살리고, 자녀를 살리며,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사람을 부르시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노아를 통해 한 가정을 구원하셨고, 아브라함을 통해 한 민족을 세우셨으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두 제자를 부르셨고,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지상명령이었습니다.
이처럼 전도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합니다."
"전도는 은사가 있는 사람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보다 우리의 순종을 먼저 보십니다.
성경을 보면 위대한 복음의 역사는 뛰어난 사람보다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안드레를 생각해 보십시오.
안드레는 베드로처럼 설교를 잘한 사람도 아니었고, 바울처럼 많은 교회를 세운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형제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안드레의 전도는 단 한 사람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훗날 오순절에 삼천 명을 회개시키는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만일 안드레가 "한 사람 데려온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베드로의 사역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살리십니다.
우리의 작은 전도가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상상할 수 없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또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그녀는 긴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신학적인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전도는 어려운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을 이렇게 변화시키셨습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간증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복음의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는 '언젠가 전도해야지'라고 생각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속에 우연히 두신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도 이유가 있고, 직장에도 이유가 있으며,
학교에도 이유가 있고, 이웃 가운데 살게 하신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신 선교지입니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매일 인사하는 이웃, 자주 만나는 친구, 가족과 친척들은 어쩌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도록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들일 수 있습니다.
전도는 거창한 행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미소 하나, 진심 어린 관심, 힘든 사람을 위한 기도, 함께 식사하는 시간, 교회에 한 번 초대하는 용기, 이 작은 사랑의 실천들이 복음의 문을 여는 통로가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우리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거절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의 책임은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열매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씨를 뿌릴 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보다 순종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생명을 받았으니 이제 생명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라."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생명의 전달자가 되어,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3. 먼저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본문 20절은 생명을 선택하는 삶을 세 가지 동사로 설명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하나님께서는 단지 "전도하라"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 있는 사람만이 생명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생명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없고, 불이 꺼진 등불은 다른 등불을 밝힐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메마른 사람은 복음을 말할 수는 있어도 그 생명의 능력을 드러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의 방법보다 먼저 전도자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자주 생각합니다. 자주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 사람의 말을 귀하게 여기고, 기쁘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가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기도가 의무가 아니라 대화가 되며, 말씀을 읽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잃어버린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혼을 사랑하게 되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수많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회복될 때 전도는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은 "그의 말씀을 청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청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이유는 결과가 보장되어서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순종했던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노아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그물을 던졌고,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순종은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시작입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종 "조금 더 준비되면 전도하겠습니다.", "시간이 되면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한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것, 함께 식사하는 것, 예배에 초대하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 이 작은 순종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본문은 마지막으로 "그를 의지하라"고 말씀합니다.
전도는 우리의 말솜씨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씨를 뿌릴 뿐이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기도 없이 하는 전도는 쉽게 지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전도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거절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열매가 바로 보이지 않아도 계속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번 전한 복음의 말씀이 상대방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다가, 하나님의 때에 열매를 맺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를 조급하게 바라기보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특별한 기술보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결국 전도의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나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내 경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삶 가운데 회복될 때,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이웃은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생명을 전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성도가 됩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많은 영혼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결론: 생명을 선택한 사람은 생명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신명기 30장 19절과 20절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두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생명을 택하라."
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절망 가운데 소망을 얻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생명을 우리만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전하는 사람이 되라고 주셨습니다.
횃불은 자기 자신만 밝히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곳을 비추기 위해 존재합니다. 소금은 그릇 안에 담겨 있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맛을 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구원의 은혜를 자기 안에만 간직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부모님이든, 목사님이든, 주일학교 선생님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한 사람의 순종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너는 누구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겠느냐?"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교회를 떠난 자녀와 부모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지쳐 희망을 잃어버린 친구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외로움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웃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위로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참된 생명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도가 항상 쉬운 것은 아닙니다.
거절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무관심한 반응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오랜 시간 열매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성공하라고 부름받은 사람이 아니라 순종하라고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사랑으로 씨를 뿌리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씨를 뿌리는 사람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며, 계속 사랑하며,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떠오르게 하신 사람이 있습니까?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떠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영혼일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그 사람의 이름을 적어 보십시오.
매일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하십시오.
기회가 된다면 안부를 묻고, 식사를 함께하며, 삶을 나누고, 예배에 초청해 보십시오.
거창한 말보다 진실한 사랑이 사람의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허락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는 네 생명이시요."
우리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생명을 얻은 사람은 생명을 전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를 나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을 사랑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 모두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 가운데서 생명의 전달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한 영혼이 예수님께 돌아오고, 한 가정이 회복되며, 하나님 나라가 더욱 확장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택하라."
이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먼저 붙들고, 이제는 그 생명의 초청을 세상에 전하는 충성된 증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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