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印)
혹은 말하기를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하나 신·구약 성경을 다 찾아 보아도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기록한 곳은 없다.
다만 안식일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증거가 된다고 한 것뿐이다.(출31:13∼17, 겔20:12)
안식일이 증거 또는 표징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증거 또는 표징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이 증거라고 한 것과 안식일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증거라 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만일 표징이라 증거라 한 말이 하나님의 인이 된다면 할례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인 받았다고 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옛날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세워 지키게 할 언약은 이것이니 너희 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너희는 양피에 할례를 받을지니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표니라」하시었다.
그런고로「증거라」「표라」해서 하나님의 인(印)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고로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문제에 대하여 다른 성경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후1:22)「거기 또한 우리들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엡4: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롬4:11)「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고전9:2)「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위에서 기록한 모든 말씀을 연구해 보면 사도 직분의 인치심도 있고 믿음의 의를 인친 것도 있고 성령을 받은 것도 인치신 보증이라고 하였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될 시에는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7장의 14만 4천 성도에게 인치는 문제는 마지막 살아서 승천함을 받을 엘리야의 사명을 가리킨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문제는 자기가 기록한 요한 복음에 밝혀 놓았다.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요 3:32∼33)
하시었다. 요한계시록이나 요한복음은 한 성령을 통하여 한 솜씨로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의 증거하신 진리를 받는 자에게 인을 치셨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도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을 들었나니 이는 너희를 구원한 복음이라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그 허락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침을 받았으니」(엡1:13)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7장 2∼4절과 에스겔 9장 4절에 대한 예언서를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특히 교회를 위한 사업을 마치는 때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이 능히 설 수 있는 14만 4천명에게 인치는 사업을 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깊이 느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사업에 관한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서 손에 각각 살육하는 기계를 잡은 사람들로 표상되었다.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가라사대 너는 예루살렘 성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의 이마에 한 표를 두라」(겔9:4)
이때에 어떠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이 말씀 중에서 특별히 주의 할 것은 성신의 능력이 그들의 마음속에 성취하신 사업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순결한 표를 받는 사람들은「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으로 표시된 사람 즉, 교회안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이다.」(증언보감 1권 415) 하였다.
또 기록하기를「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찍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나 천사는 읽을 수 있는 표이다.
왜냐하면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엘렌지 화잇주석 SDABC 7권 968) 하였으니 이 말씀은 에스겔 9장
4∼6절의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
또는 기록하기를「얼마 후에 하나님의 자녀 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히었으면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러 갈 때에 지나쳐 버림을 당한다는 생각을 누가 견딜 수 있을까?」(엘렌지 화잇주석 SDABC 7권 969) 하였으니
만일에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 될 것 같으면 벌써 하나님의 인들을 맞고 있는 도중이 되어야 할터인데 화잇부인 자신도 아직 인을 받지 못하고
말하기를「얼마 후에 하나님의 자녀 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하는 말의 뜻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화잇부인은 하나님의 인을 구속의 표라고 하였다. 구속의 표는 거룩한 도성에 들어갈 특권인 것이다.
이 특권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빠는
자라야 구속의 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계7:14, 22:14 비교)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고 넘어가 표 없는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으로 표시한 것은 옛날 출애굽 당시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구속의
표가 된 것 같이(출12:13) 남은 백성들에게도 십자가를 기념하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구속의 표, 곧 하나님의 인이 되어 마지막 재앙에
멸하는 천사로 하여금 볼 수 있는 구속의 표가 되는 것이다. (겔9:4∼6)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오는 천사
그러면 인치는 사업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인가?
기록한 바「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7:2∼3)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본다면 인치는 사업이 반드시 동방에서 나타나야 하겠다.
혹은 생각하기를 성경 번역이 잘못된줄 생각하겠으나 헬라 원어에도「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대한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알아 보려면 구약 성경에서 연결되어 있는 짝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기록한 바「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읽어보라 이것들 중에 하나도 빠짐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명하시고 그 신이
모으심이라」(사34:16) 하시었다.
그런고로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서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기록한 바「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신자가 누구뇨」또는「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사41:2,
25∼27) 하였으며 또는「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사46:11) 하였으니 동방에서 택한 사람은 기쁜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사명이니(사40:3∼9, 41:25∼27
비교) 일차에는 침례 요한으로 일부가 예언 성취되었으나 실상은 복음시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
옛날 아합왕 당시에 실지 엘리야도 요단 동편 길르앗에 거한 사람으로써(왕상17:1∼4) 오류에 빠져 있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던 것이다.
그러면「동방의 독수리」「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켜」한 그 말씀이 이 진리에 부합 시킬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에서 여러 사람이 나타나 저마다 내가 동방의 택한 사람이라 하니 무엇으로 구별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정확한 답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신을 보내실 때 성경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정표를 주신 것이다.
첫째는 보내시는 시기와 그 목적에 관한 진리인 것이다. 그 정표는 다음과 같다.
이사야 41장 2절에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게 될 때에는 5절에 보면 섬들이 두려워하며, 땅 끝까지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와서 우상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연합운동들을 하고 있다.
그러면 그 섬들이란 무엇인가?
예언상 섬들로 표상된 것은 우상숭배에 가까운 적 그리스도의 단체들이다.
이 단체들은 하나님이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게 될 때 최후 발악으로
종교 연합운동을 일으켜 하나님의 백성을 없이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큰 시련기에 놓여 있으나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하니 두려워 말며 내가 네 하나님이니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너를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하시었다.
과연 이 예언의 때는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진리가 시작됨으로「바티칸」공회에서 종교 연합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선지자의 예언은 피할 수 없다.
서기 1962년 3월 17일에 저자는 안식일 교회에서 이 진리로 인하여 출회를 당하였다.
그로 인하여 이 진리를 사랑하던 23명의 신도들은 동년 3월 24일 안식일에 탈회 성명서를 내고 나와서 진리 교회를 세우고 그 해 4월 18일에
유월절을 지켰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단은 두려워하여 로마 교황의 마음을 충동하여 그 해 종교 연합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바티칸」공회에서 종교 연합운동이 시작한
때는
제1차 회의 1962년 10월 11일부터 12월 8일까지
제2차 회의 1963년 9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제3차 회의 1964년 9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제4차 회의 1965년 9월 14일부터 12월 8일까지
1966년 1월 1일부터 5월 29일까지 성년으로 지켰다 한다.
참석한 종교단체는 약 209종파가 승인하고 참석했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는 공회의 법을 제정하였는데, 그 법을 무시할 때에는 종교재판에
처함이라고 한다.(카톨릭 신보 발행)
아직까지는 그 회의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장차 우리 진리가 널리 전파됨에 따라 크게 실시될 것이다.
이것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정표이고
내부적 정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구약 모든 성경의 말씀에서 장차 복음시대에 나타날 사건을 예언으로 해석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해석해 놓은 책이 정표이다.
기록한 바「여호와의 말씀이 너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의 말이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어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예언하고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고하고 우리로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게 하거나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예언하던 너희가 신 됨을 우리로
알게하고」(사41:21∼26) 또는
「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행하리라
하였고 동방의 독수리, 곧 내가 정하여 놓은 사람을 먼 나라에서 부르리니」(사46:10∼11)하시었다.
그런고로 동방에서 불러내신 당신의 사자의 정표는 구약 모든 역사를 통해 복음시대에 일어날 사건들을 밝히 보여주는 진리이다.
침례 요한도 자기가 가지고 온 정표가 있었는데 그 정표는 엘리야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띤 것은 바로 엘리야의 사명으로 왔다는 정표이다. (구역성경, 왕하 1:8, 마3:4 비교)
예수님께서도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그것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다는 정표를 보이신 것이다. (슥9:9, 눅19:29∼40 비교)
침례
요한이나 예수님에 대한 정표는 많이 있지만 간단한 실례를 들면 그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진리가 나타나는 때와 기한에 있어서는 지상 성전 건축과 복음사업의 연결 해석으로써 정확한 시기를 알려주고 있지만 요한계시록 7장
1절에서도 대강 표시하고 있다.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과 바다와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하였다.
예언상 바람은 세상에 나타날 전쟁을 가리키는 것이니「땅 네 모퉁이」라 하였으니 동·서·남·북 전세계 대 전쟁이 일어날 즈음해서 나타날 새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바람은 1차대전 시기도 아니요, 2차대전 시기도 아니요, 땅 네모퉁이라 하였으니 마지막 전세계 대전쟁이 일어나려고 들먹할
무렵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 시기에 이르러서 인치는 천사의 사명이 해 뜨는 곳으로부터 시작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동방의 독수리와 고레스왕
이사야 서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보통적으로 해석하는 바는 동방의 독수리에 대하여 바사왕 고레스를 말한 것이라고 하여 그 동방의 독수리에 대하여 좀
더 연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예언이 다 지나갔다고 결론을 맺고 말았다.
단편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그 이상 더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고레스왕은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소식과 자유의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언 성취가 고레스왕으로 하여금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리만큼 되어 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이 썩어져 없어질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인 한 민족에 관한 예언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가치없는 예언이 되며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을 연구하여야 좋을런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와 규례를 멸시하다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당하기도 하고 포로생활을 하기도 하고 각국에 흩어지기도 하고 다시 은혜를 받아 본국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들이 많이 있다.
그러면 그 모든 예언과 예언 성취된 역사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어 있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예언과 역사는 복음시대에 와서 완전 성취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내다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고레스왕이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경험은 장차 복음시대에 있을 그림자이다. 만일에 그 예언이 고레스왕 당시에 완전
성취되었다면 성경의 모순된 점이 많다.
왜냐하면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는 때에 섬들이 두려워하며 다 연합하여 우상을 견고하게 세우는 종교연합 운동이 일어나게 되며(사41:5∼7)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워하는 표정이 있음으로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는 말씀도 있었다. (사41:8∼10)
또 기록한 말씀에「내가 자산에 강을 열고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고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하며」(사41:18,
25)하였으니 예수 재림때에 있을 예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레스왕 당시에는 그러한 일들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레스왕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한 때였다.
본국으로 돌아갈 기쁜 소식을 듣는 때이었다.
그러나 동방의 한
사람을 일으키는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는 표시를 나타내었으니 고레스왕 당시는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
그런고로 사도 요한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한 인치는 사업이 동방 끝 해 돋는 곳에서부터 나타날 것을 바로 보고 기록하였다.
(계7:2, 사41:2, 사46:11 비교)
그리고「해 돋는 곳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자라」(사41:25∼27) 한 그 사람의 사명은 시온의 기쁜소식을 전할 자라고 하였는 바
(사41:27) 시온에 기쁜소식 전할자의 사명은 이사야 40장 3∼9절과 연결된 성경절인데 그 성경절이 또한 침례 요한에게 예언 성취 되었다고
복음기자 마태와 누가는 기록하였다. (마3:1∼3, 눅3:3∼6, 사 40:3∼9, 41:27 비교)
이렇게 연결해서 연구하게 되면 이사야 41장 2절 동방에 한 사람을 택한 것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라는 것이 밝히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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