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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6회차 산행 둘째날이다.
오늘은 다음 일정을 감안하여 복성이재에서 일정을 마치기로 되어 있으니, 시간이 너무나 여유롭다.
1월에 용두팔 친구들과 눈 쌓인 덕유산 구간을 같이 할려면, 오늘은 복성이재에서 일정을 마치고, 12월에 복성이재에서 육십령 구간을 2일 일정으로 우리 넷이서 끝내면, 그 다음은 1월에 덕유산 종주 구간인 육십령부터 시작을 할 수가 있다.
1월에 덕유산 구간도 2일 예정인데, 첫 날은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삿갓재대피소에서 1박하고, 둘째날은 빼재(신풍령)까지 가서 2일간의 덕유산 구간을 마치려 계획하고 있다. 많은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침 7시가 되니 친구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 일정이 여유로운 이유도 있지만, 처음으로 어제 노래방도 다녀 왔고, 또한 아침을 먹을 식당에서 8시나 되어야 식사 준비 된다고 하니, 일찍 일어나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는 편안한 아침이다.
각자 씻고, 배낭을 다시 꾸리며 산행 준비를 미리 해둔다. 8시에 식당에 도착하니 잠시 후 음식이 차려지고, 오늘의 일정을 위하여 모두들 든든히 배를 채운다.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와 모든 짐을 거곡(정재민)의 차에 싣고, 어제 날머리였던 매요리 마을을 향하여 출발한다.
우리와 같은 민박집에 묵었던 다른 일행들도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그들은 지리산 둘레길꾼들인듯 싶다.
민박집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차림새만 보아도 백두대간꾼인지, 지리산 둘레길꾼인지 금방 알아 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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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정을 마쳤던 매요리 마을회관 앞에서 둘째날의 무사 산행과 즐거운 산행, 완주산행을 빌며, 옆에 지나던 마을 분께 부탁하여 기념 사진을 찍는다. 지평이 그 분께 梅要里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물으니, 너무도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남원시 운봉읍 홈페이지에서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마을은 원래 풍수설에 의하면 옛부터 말의 허리처럼 형국이 생겼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말마(馬)자와 허리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에 고승 유정대사(사명당)가 산천을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여 매화는 눈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피는 꽃이며 향기가 순결하여 이 마을에서 낳은 사람들은 매화같이 순결하고 선량할 것이니 마요리를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지형과 인심에 합당하다고 한 후에 마을 이름을 지금의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회관 앞을 출발하여 콘크리트 길을 따라 왼쪽 교회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간다. 잠시 후 매요리 구판장이 나타나고, 맞은편에 이상한 조각품과 철거된듯한 건물터가 있어 이리 저리 둘러보니 폐교인듯 싶다. 폐교를 지나 콘크리트길을 따라 계속 전진하니 운봉읍에서 오는 743번 지방도로를 만나고, 곧바로 왼쪽 숲길로 마루금을 찾아 들어간다.
유치재 삼거리이고, 오른쪽 건물이 목재소이다. 잠시 후면 건널 88올림픽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문제 때문에, 전에는 목재소 뒷편의 74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유정육교를 넘는 우회로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우회로는 마루금상에 있는 618봉을 한참 우회하는 길인데, 유정육교를 이용하여 88고속도로를 아무 위험없이 건널수 있기 때문에 많이들 이용하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전에도 88고속도로의 마루금인 사치재에는 고속도로 아래로 통로가 뚫려 있어 우회할 이유가 없었는데, 왜 우회를 했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사치재의 지하 통로가 마루금에서 약 2-30미터 비껴서 있다 보니, 당시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선답자들은 사치재에서의 무단 횡단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우회를 하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618봉을 지나는 2.5km나 되는 마루금을 우회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선 약간은 문제가 있을듯 싶다.
앞의 소나무 숲이 우리가 방금 넘어온 마루금이며,소나무 숲 뒤가 오늘의 출발지 매요리이고, 왼쪽의 8번 군도를 따라가면 바로 '황산 대첩비'가 있는 화수리이고, 곧 황산에 다다른다.
우리는 목재소 앞 마당을 지나 우회로가 아닌 618봉 들머리로 들어선다.
618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옷과 장비를 재정비한다. 성삼재에서 계속 북진하던 마루금은 고남산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고남산에서부터 동진하는 마루금은 통안재, 매요 마을, 유치재를 지나 이 곳 618봉에서 동쪽으로 방현마을을 두고 북쪽을 향하여 다시 길을 잡는다.
사치재 이정목. 조금전 우리는 옛 사치재 길에서 잠시 딴 길로 들어 섰으나, 이내 잘못된 길임을 알고 바로 마루금으로 들어 선다.
사치재이다. 사치재는 대구-광주간 88올림픽 고속도로가 지나는 고개를 말한다. 88고속도로는 총칼로 출발한 군사정권이 5공 초기에 영.호남의 화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건설한 도로이다. 자신들의 원죄를 감추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서 졸속으로 기획되어 졸속으로 시공 되다 보니 , 현재는 전국 고속도로 중 교통 사고 치사율 1위라는 죽음의 도로이다. 현재 사치재 구간은 확장하여 왕복 4차로이지만, 건설 초기에는 중앙 분리대도 없는 왕복 2차로였다. 그러니 당연히 무단횡단 할려고하지, 그 누가 약간 더 가서 수고스럽게 지하 통로를 이용하겠는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직도 중앙분리대가 없다.
고속도로변으로 내려 서서 대구(휴게소) 방향으로 도로변을 따라 약20여미터 가면, 도로 밑으로 통과하는 지하 통로가 있다.
88올림픽 고속도로 밑 통로의 입구와 출구. 원래는 출구를 나서면서 왼쪽(광주 방향)으로 약 50미터 가다가 오른쪽으로 올라서는데, 우리는 출구를 나오면서 정면 1시 방향에 표시 리본이 많은 지름길 마루금을 따라 620봉을 오른다. 헬기장이 있는 620봉 오르는 길은 엄청난 비알길이다. 가뿐 숨을 몰아 쉬며,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오른다. 이 오름길 주변은 1994년과 1995년에 두 번이나 산불이 나서, 그 모양새가 지리산 제석봉의 모습과 흡사하다. 불에 타 죽은 나무와 황량한 주변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 나 뿐이랴!!!
땀깨나 흘리며 된비알을 힘들게 올라 서니 시야가 확 트이며, 사방의 시원한 광경이 우리를 반긴다. 쾌청한 날씨에 눈 앞을 가리는 것이 없으니, 이 맛에 산을 힘들게 오르나 보다. 지나온 방향 즉 남쪽을 바라보니, 88도로 횡단 직전 지나온 사치재 옛길과 618봉이 주변의 산들 보다 높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백두대간 마루금이라는 자부심으로 늠름하게 서있고, 그 뒤로는 덕두산부터 시작되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오른쪽으로 뻗어서 큰고리봉과 만복대를 향하고 있고, 왼쪽에는 이성계의 '황산대첩'으로 유명한 황산(荒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황산 오른쪽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운봉읍 화수리에 내려 서는데. 여기에는 조선의 선조가 태조 이성계의 업적을 기려 세운 황산 대첩비가 있으며, 그 옆의 비전마을은 동편 소리의 고장이기도하다. 이 곳 또한 지리산 둘레길 주변에 있으니, 훗 날 꼭 한 번 들러보리라.
황산 왼쪽 즉 동남쪽을 바라 보니 멀리 경상도 함양에서 인월, 운봉으로 넘어 오는 팔랑치가 아스라이 보이고,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와 전투를 벌여 대승한 황산 대첩의 주 전장지였던 운봉고원의 인월면과 아영면의 평야가 한 눈에 들어 온다. 황산은 해발 697.2m의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남서쪽으로는 운봉읍이 있고, 동쪽으로는 인월면과 북쪽으로 아영면이 있는 운봉고원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전체 사방을 시야에 둘 수 있은 전략적 요충지임에 틀림이 없다.
전체 운봉고원을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황산은 허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황산대첩(荒山大捷)은 1380년(고려 우왕6년) 9월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격퇴 시킨 전투이다. 최영의 홍산대첩과 더불어 왜구와의 전투에서 가장 크게 이긴 싸움이며, 이를 계기로 왜구의 침탈이 쇠퇴하였다고 한다. 운봉읍과 인월면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읍장이나 면장 이름은 몰라도 '아지발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아지발도'는 황산대첩 당시 왜구의 수장이었는데 이성계의 활을 맞아 죽었으며, 또한 이 지역은 황산대첩 즉 이성계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이성계를 영웅시하는 이 지역의 대첩비나 전설을 접하면서, 최영의 홍산대첩과 비교해 보면 ,역시 역사는 승자의 것인 모양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 보니, 어제 지나온 고남산이 우뚝 서있고 남쪽으로 대간 마루금이 뻗어 내리고 있다.
고남산 왼쪽으로는 마루금에 둘러 쌓인 운봉 고원이 아스라이 보이며,오늘 지나온 마루금도 뚜렷이 보인다.
620봉 헬기장을 출발하여 가는 중간에 왼쪽의 693봉과 오른쪽의 시리봉이 손에 잡힐듯 보인다. 두 봉 사이가 오늘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할 새맥이재이다.
성암과 지평이 693봉의 오름길을 여유롭게 오르고 있다.
693봉에서 바라 본 운봉 고원.....왼쪽 가장 멀리 보이는 수정봉부터 오른쪽으로 여원재, 고남산, 통안재, 704봉, 유치재, 618봉이 병풍처럼 운봉 고원의 동쪽과 북쪽을 둘러 싸고 있다.
시원스런 전망을 만끽하고 있는 지평, 성암 그리고 거곡....
88고속도로 대구방향 지리산 휴게소가 바로 발 아래 잡힐듯 내려다 보인다.
저~멀리 지리산의 제1봉인 천왕봉이 흐릿하게나마 우리의 시야에 들어 온다.
693봉을 지나서 새맥이재로 가는 중간에, 보기에 따라서는 남자의 xx를 닮은듯한 바위가 있어, 우리끼리 잠시나마 야한 농담을 주고 받는다. 더군다나 아무리 봐도 밑 부분은 실하고,윗 부분은 2(?)개다. 보기에 비슷하지 않으면 말고~~~~ㅋㅋㅋ
새맥이재!! 일부 지도에는 새목이재로도 표기가 되어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마차 정도가 다닐 수 있는 비포장 길이며, 우리는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다. 길 옆에 자리를 잡고 버너를 꺼내 라면도 끓이고, 뜨거운 물을 동결건조 비빔밥에 붓고 뜸이 들도록 기다린다. 사실 매년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1달간은 산불 방지 강조 기간이라 모든 산에서는 취사를 해서는 안된다. 마침 지나가던 분이 슬쩍 부드럽게 한 마디하고 자기 갈 길을 간다. 산불 방지 강조 기간이라는 것을 알고도 버너를 켠 우리는 미안함에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약 1시간여에 걸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까지 즐긴 다음 짐을 꾸려 출발이다.
식사를 마치고 새맥이재를 출발하여 마루금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헬기장을 지나 시리봉(776.8m)을 우측에 두고 사면을 따라 복성이재를 향하여 나아간다. 얼마를 걸으니 지도 상에 781봉 남근석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그 바위를 만난다.
아막성터 전에 누군가가 쌓아 놓은 돌탑에서 잠시 포즈를 취해 본다.
신라와 백제의 젊은이들이 운명인듯 싸우며 피를 흘려야 했던 아막성터!!! 아직도 성터의 돌들이 어느 정도의 성곽 형태를 유지한채 그 당시의 처절했던 전투를 말해주는 듯하다.
751번 지방도로가 남원시 아영면에서 복성이재를 지나 장수군 번암면으로 향하고 있다. 751번 지방도로 위 능선이, 우리가 다음 12월 산행시 갈 봉화산 가는 마루금이다.
복성이재로 내려 서기 전에 오른쪽으로 성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성리 마을은 흥보 발복지(發福地)라 하여 잘 알려진 곳이다.
성리(흥보 마을)로 향하는 임도를 가로 질러 능선을 하나 더 넘어야 복성이재다.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친 성암, 거곡, 지평이 목적지인 복성이재로 내려 서고 있다.
복성이재! 사치재에서 북쪽으로 가면 만나는 2차선 도로이다. 남원군과 장수군의 경계점이며, 남원군쪽으로 내려 가면 성리 즉 흥보 마을이다. 아래 사진의 중앙 이정목이 다음 12월 산행시 육십령까지 가는 봉화산 들머리이다.
오늘도 무사히 산행을 마침에 감사하며, 우리를 태워 갈 민박집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기념 사진을 찍고, 오늘 출발지 매요리에 세워둔 거곡의 차를 향하여 출발이다.
복성이재를 내려 서니 바로 흥보 마을이다. 마을의 상징물로 박타는 흥보 부부의 조형물이 있다. <박첨지 설화>에 의하면 남원시 인월면 성산 마을(팔령치 부근)이 흥보와 놀보의 고향이고, <춘보 설화>에 의하면 이 곳 아영면 성리 마을이 흥보가 놀보에게 ?겨나 살다가 부자가 된 發福地라고하여, 남원시에서는 매년 흥보 정신을 기리고자 흥보제를 축제화하여 가고 있단다.
620봉 헬기장에서 본 운봉 고원.
매요리에 도착하여 서울로 출발한 시간이 개략 오후 4시경이리라. 88올림픽 고속도로 지리산 톨게이트로 진입하여, 함양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울을 향하여 달린다. 금산 인삼랜드휴게소에서 잠시 커피 한 잔 마시고, 거곡에게 잠시 쉬라고하고 내가 핸들을 잡고 다시 출발이다. 전광판에 대전 부근에서 큰 사고가 나서 많이 지체가 된다고 알려 주는데, 어차피 일요일 저녁이라 각오하였던바 마음을 느긋하게 갖는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거곡이 핸들을 잡고 서울로 향한다. 계속 차는 밀리고 몸은 피곤하지만,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동서울 터미널인데 11시가 다 되었던 기억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가야하는 성암을 배웅하고, 우리집 앞에 나를 내려 놓고 거곡과 지평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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