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시케와 에로스
"내가 그대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기 바랄 뿐이지
섬기기를 바라지 않기때문이에요"
프시케와 에로스는 슬픈 사랑을 한다. 프시케는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이유로 비너스의 질투를 받는다. 비너스의 질투로 인해 프시케는 에로스와 만나게 되지만, 그들의 사랑은 아프기만 하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프시케의 불행의 원인은 비너스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좀 더 사랑받고 싶은 욕심, 좀 더 아름답고 싶은 욕심. 그 욕심이 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제라르의 <프시케와 에로스>를 보면 그러한 생각이 확신으로 다가온다. 처음 그림을 보면서 프시케의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이 그림은 죽음 같은 잠에 빠진 프시케를 살리기 위한 에로스의 입맞춤을 표현하고 있다. 에로스의 입맞춤에 프시케는 사랑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녀의 입가의 움직임은 뭔가가 그녀를 깨어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허공을 향하고 있는 프시케의 눈동자에 살짝 눈물이 비치는 느낌마저 드는 그림. 그림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 옆에 있어도 아무 것도 모르던 그녀가 바람으로 변해 다가온 에로스의 입맞춤에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18-9세기의 신고전주의의 영향아래 있는 이 그림은 그리스조각에서 볼 수 있는 듯한 정교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 투명한 피부, 비치는 옷감의 주름들은 우리가 어느 미술사조에 심취해있더라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결코 감성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어서 부담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