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카멜 삼보사
개원식이 끝난후 기념촬영
금문교로 유명한 아름다운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세계최대 부자들이 사는 아름다운 마을 17miles에 도착하고 조금 더 가면 관광지로 유명한 <카멜>이 있다. 이 카멜에 미서부에서 가장 오랜된 한국사찰 삼보사가 1973년에 들어섬으로써 한국불교 포교터전을 마련한다. 삼보사는 근세 한국불교사에 한 장을 차지하는 인물로 평가받는 고 이한상(법명은 덕산)거사에 의하여 창건된 절로 세를 얻어 시작한 것이 아니고 자체 대지에 규모있는 대웅전을 지어서 시작한 절이다.
먼저 이한상 거사에 대하여 살펴보자 현재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교 교수겸 한국학과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불교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고 미국에 한국불교를 소개하기 위해 애쓰는 박성배 교수는 “덕산거사는 불교 현대화에 큰 공헌을 한 분으로 한국불교사에 기록할 만한 인물이다. 다만 회향에 아쉬움이 있다”라고 평하면서 덕산거사의 공적으로 “대학생불교 운동을 오랫동안 재정 지원했고 대학생불자 수련대회를 통해 자기 신앙생활 정리하도록 했으며, 한국불교100년사를 편찬했고, 최근대 불교사를 정리하고 불교신문을 인수해 정상괘도에 올렸다. 그리고 삼보학회를 조직하여 장학사업을 했으며 현재의 일요법회 형식 정착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또 미국에 와서 최초로 전통적인 사찰을 건립하여 미주에서 한국불교운동에 진력을 했다.”라고 구체적인 업적을 말했다. 또 덕산거사 살아계실 때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L.A.의 원각회 회장 최동수법사는 덕산 거사는 불교인으로 뿐 아니라 사업가로 <풍전산업>,<대한전척> 등을 설립하여 서울의 유네스코 회관 정부청사 섬진강댐 남강댐 그 외 대학건물과 은행건물 등 많은 빌딩을 지어 왕성한 기업활동을 한분“이라고 평했다.
화재전 삼보사 전경
이렇게 한국에서 큰 활동을 하던 덕산거사가 1969년 미국에 와 경치좋은 카멜에 약 만여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여기에 한국불교를 미국에 포교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하였다. 공사는 1970년부터 시작하여 1973년 1월 28일 개원법회를 가졌다. 이 법회에는 당시 버클리대학교 박사과정에 있던 박성배 교수가 사회를 보았는데 구산스님, 운허스님등 큰 스님들과 당시 중앙종회의원이었던 정달스님(현 오렌지카운티 정혜사 법사)그리고 황경석 당시 삼보학회장 등이 참석했으며 한국불교와 관련이 깊은 루이스 랑케스터 버클리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카멜시장 등 약 4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1972년도 카멜에서 한국사찰 개원식때 400여명이 모였다면 그 숫자는 엄청난 숫자이다. 1968년 7월 1일부터 발효된 케네디 이민법에 의하여 한인 이민의 행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날 모인 숫자는 큰 의미가 있다. 이 개원식은 이 지역 신문들에 의해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한국에서 불교포교와 진흥을 위해 많은 재물보시와 현대화를 위한 노력을 했던 덕산 거사가 미국에 와서 한국불교 포교를 위해 큰 걸음을 내 딛었던 순간이었다. 그 후 매주 일요일 정기법회를 개설하여 주로 덕산거사 자신이 직접 법문을 했고 당시 U.C. 버클리에서 원효사상을 연구하던 박성배 교수도 1977년 뉴욕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매월 한 번씩 이곳에서 법문을 했다.
그리하여 덕산 거사와 그 부인 상품화 보살의 노력으로 불사가 잘 진행돼 한인이 많이 살지않는 카멜의 삼보사에 등록된 세대수가 거의 500세대나 되었다. 이렇게 잘 진행되던 삼보사 불사가 1984년 8월 뜻하지 않은 심장마비로 덕산거사가 이 세상에서 인연을 다함으로써 큰 타격을 받았다. 한국 현대불교사의 큰별이 미국에서 그 빛을 잃는 순간이었다. 삼보사의 큰 불행이자 동시에 한국불교계의 큰 손실이었다.
삼보사에서 덕산거사를 잃은 슬품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슬픔을 딛고 한국에서 여러 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계속했다. 한때는 원불교 교단에 삼보사를 기증한 적도 있지만 그 후 원불교측과 원만한 합의를 거쳐 삼보사를 되돌려 받았다. 덕산거사 사후에 삼보사의 운영을 맡게 된 상품화 보살은 1987년 11월 12일에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성라암의 권법성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모시고 출가를 하여 법명을 흥림으로 받고 삼보사 주지스님으로 활동하였다. 이러던 중 1988년 2월 14일밤 1백일 기도중에 법당에 원인 모를 불이나 덕산거사의 얼이 담겨져 있는 법당이 모두 타버렸다. 덕산거사의 죽음에 이어 삼보사로서는 두 번째 큰 타격이었다. 화재원인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법당 옆에 있는 숙소 겸 응접실로 쓰고 있던 요사채에 임시법당을 마련하여 법회와 예불을 계속하고 있다. 화재가 나기 전 법당에 섰던 자리는 지금은 화재의 흔적도 말끔히 제거되어 잡초만이 있을 뿐이다. 덕산 거사가 한국불교에 끼친 업적을 생각하며 전에 법당지였던 공터 때문에 전체적으로 한쪽이 허전함을 주는 현재의 삼보사를 보고 있으면 웬지 가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슬픔 감정을 억누룰 수 없다.
고 이 덕산거사의 온갖 정성이 담긴 삼보사 법당의 재건은 미국에 살고 있는 뜻있는 불자들 모두의 관심과 원이다. 이에 대하여 흥림 주지스님의 말을 들어보자 “우선은 빠른 시일 내에 비구니 스님 두분을 초청하여 절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고있는 집의 일부를 개조해서 법당을 만들고 탱화와 3존불 점안식을 1990년 3월경에 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가장 큰 소원인 한국전통건축 양식의 대웅전을 짓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불사는 인연에 맡기고 여생은 과거를 참회하면서 후회없는 인생을 마감하기 위하여 정진하고 싶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년 4월 이후 부터 여력이 있으면 100일 기도 하고 또 100일 기도하고 그리고 또 여력이 있으면 100일 기도를 하여 100일 기도를 10번 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해 앞으로 기도에 매진할 뜻을 덧붙였다. 한인들이 많지 않던 시대에 한인밀집 지역도 아닌 카멜 삼보사 신도 세대수가 500세대수 가까이 됐는데 주변에 절이 세워진 탓도 있지만 이제는 100세대 미만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오늘의 삼보사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카멜은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도리스데이, 크린트 이스트우드, 킴노박 등과 작곡가 폴앵커 등 미국의 유명인사들이 사는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이곳에 한국의 전통양식 대웅전이 들어서 덕산거사의 유지를 계승하고, 불교문화를 접목하여 신화와 설화를 창조하여 주위의 산봉우리와 계곡마다 불교설화와 신화가 주저리 주저리 열리도록 해 카멜의 자연경관을 한층 더 살찌우게 할 그날은 언제나 올까!
28110 Robinson Canyon Rd. Carmel, CA 93923
831-624-3686,
회주 용타스님, 주지: 범휴스님
* 흥림스님이 운영하던 삼보사는 운영의 어려움을 겪었다. 흥림스님은 적당한 인수자를 물색중이었다. 이 무렵 본지의 초청으로 미국에 강청화큰스님이 미주한국불교의 역사적인 이곳을 방문하였는데 이 시기가 흥림스님이 천일 기도가 끝난 직후 이었다. 강청화큰스님은 삼보사 방문직후 최동수 법사로부터 삼보사 실정을 전해듣고 이 사찰을 1993년 12월에 인수하였다. 그후 이 사찰은 용타스님이 주지로 있다가 현재는 용타스님의 상좌인 범휴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청화큰스님의 법을 미주에 전하고 있다.
개원식이 끝나고 기념촬영
화재전 법회장면
삼보사에서 설법하시던 청화스님모습
현재의 주지 범휴스님이 유홍준씨를 초청하여 행사하는 장면
1989년 10월 창간호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삼보사 뒷산이 한국의 산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앞의 냇물은 크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흐르지요. 감사합니다. _()_
오레곤 포틀랜드에서 청화 큰스님 법문을 들으러 가족과 함께 14시간을 운전해가던 생각이 납니다. _()_
청화스님 좋은 자료 많이 부탁드립니다. 이덕산거사의 모습도 새롭군요. 합장
덕산 이한상 거사님께서 미국에 최초로 설립한 불교사찰로써 불교역사의 기록 자료들中 하나 입니다. (스크랩 하여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