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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루이스에서 캐나다 동서 횡단 1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160km 가면 로저스 패스(Rogers Pass)를 넘는다. 이 고갯마루는 캐나다 로키의 웅장한 풍광을 감상할 수 멋진 장소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재미가 남다른 곳이다. 이 로저스 패스가 위치한 곳이 바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셀커크(Selkirks)산맥에 있는 글레이셔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이다.
188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북서로 흐르는 컬럼비아강이 급하게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지는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총면적 1,349㎢의 광활한 규모를 자랑하며,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100개 이상의 빙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 정상부에 형성된 거대한 일러실러워트(Illecillewaet) 빙하에서 흘러내린 수많은 작은 빙하와 폭포가 장관인 곳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인상적이라 전문 등반가들이 많이 찾는다.
- ▲ 애보트 리지 근처에서 본 글레이셔국립공원 파노라마.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산줄기를 이뤘다.
- 글레이셔국립공원 한가운데를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가 관통하며, 고개 아래로 캐나다 태평양 철도의 코노트터널이 있다. 글레이셔국립공원을 통과하는 도로와 철도는 오랜 기간 자연과 투쟁을 벌여 온 인간들이 거둔 전리품이다. 이곳은 공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겨울철 엄청난 적설량과 혹독한 추위로 유명하다. 특히 급경사의 산자락에 쌓인 많은 눈이 수시로 무너져 내리며 인간의 접근을 막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긴 철도 터널을 뚫고 도로 위엔 눈사태 방지용 차양을 만들었다. 겨울철이면 대규모 눈사태를 막기 위해 위험지대에 폭발물을 이용해 인공 눈사태를 만들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의 싸움은 겉보기에는 인간이 우세한 게임처럼 보인다. 눈사태를 통제해 도로와 철도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레이셔국립공원에서 벌어진 이 싸움은 이미 오래 전에 자연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 국립공원 내에 있는 CPR(Canadian Pacific Railway) 철도 호텔의 유적에서 그 고난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 ▲ 눈이 없는 곳은 뚜렷한 산길이 나 있다.
- 글레이셔국립공원 산길 입구에 위치한 이 유적의 옛 이름은 글레이셔 하우스다. 방이 90개나 되는 거대한 호텔로 옛 철길 바로 옆에 세워진 숙박시설이다. 1887년부터 1925년까지 운영된 이곳은 여행객들의 숙소로 쓰인 것은 물론 산악인과 탐험가들의 베이스캠프로도 이용했다.
웅장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속의 호텔은 대단히 매력적인 장소다. 초창기 이곳은 밴프 스프링스 호텔이나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과 같은 레벨로 취급될 정도로 격조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겨울이면 눈사태로 열차가 매몰되고 철길이 끊기는 등 잦은 사고를 피하기 어려웠다. 정상적인 열차 운행과 호텔 운영이 어려웠던 것은 당연한 결과다. 때문에 화재로 건물이 소실된 이후 호텔은 폐쇄됐고, 철길까지 안전한 지역으로 옮겨 개설됐다.
- ▲ 애보트 리지로 오르는 우회 코스의 설사면 지대.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호텔이지만 산악운동의 역사 측면에서 볼 때 의미가 깊은 곳이다. 캐나다로키를 개척한 여러 산악인들이 이곳에 머물며 많은 등반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곳을 북미 산악 운동(Sport Climbing)의 발상지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역사가 토대가 됐다.
지금은 도로가 지나가고 있는 곳이지만, 로저스 패스도 1885년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식물학자 존 매코운(Johne Macoun)과 그의 아들이 처음으로 올랐다. 그로부터 3년 뒤 영국의 성직자인 헨리 스완지(Henry Swanzy)와 윌리엄 스포츠우드 그린(William Sportswood Green)이 도널드 경(Sir Donald)봉과 터미널 피크(Terminal Peak), 보니봉(Mt Bonney) 등을 초등했다. 1899년부터 캐나다로키 개척을 위해 불러들인 스위스 가이드들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글레이셔 하우스에 머물며 활동을 펼쳤다. 캐나다로키 산악지대 개척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다.
능선에 오르면 공원 전체가 한눈에
글레이셔국립공원 내에 산길은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 당일로 다녀오는 팀들에게 인기가 있는 코스가 바로 애보트 리지(Abbott Ridge)다. 비록 봉우리 꼭대기를 오르는 재미는 느낄 수 없지만, 예리한 산릉에 서서 조망하는 날카로운 산줄기와 빙하의 조망이 멋진 코스다.
- ▲ 폐허만 남은 글레이셔 하우스 유적.
- 산길은 일러실러워트 야영장 안쪽의 공원 시설지구 끝에서 시작된다. 차단기를 지나 자갈이 깔린 길을 따라 80m쯤 들어가면 또 하나의 자갈길과 만난다. 이 길은 옛날에 철길이 놓여 있던 흔적으로, 이곳에서 우회전해 140m 정도 가면 글레이셔 하우스 유적이 나타난다. 석조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왼쪽 길을 따라 100m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하나 보인다. 이 산길이 마리온호수(Marion Lake)를 거쳐 애보트 리지(Abbott Ridge)로 오르는 길이다.
마리온호수까지 이어진 산길은 가파른 사면을 지그재그로 치고 오른다. 2.6km 거리인 이 구간은 특별히 조망이 터지는 곳이 없이 호수까지 빽빽한 숲이 계속된다. 마리온호수는 숲 속의 자그마한 휴식처다. 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호수를 지나 500m쯤 오르면 오른쪽 사면으로 갈림길이 나타난다. 갈림길에 이정표가 훼손되어 있지만 눈이 쌓여 있지 않다면 뚜렷하게 뻗어나간 길을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 길은 애보트 리지로 곧바로 오르는 지름길이다. 사면의 경사는 급하지만 산길은 지그재그로 형성되어 있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경사진 곳이 끝나면 기상관측소가 있는 완사면으로 오르게 된다.
- ▲ 애보트 리지 트레일의 우회 코스로 산을 오르고 있다.
- 아래쪽의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숲을 지나 완만한 사면을 크게 돌아 기상관측소로 길이 이어진다. 우회로지만 정면에 솟은 도널드 경봉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들을 조망하기 좋은 코스다. 초여름 눈이 완전히 녹지 않았을 때는 두 코스 모두 길 표시가 희미하다. 눈이 쌓인 시기에 이곳을 찾을 때는 지도와 GPS를 휴대하는 것이 유리하다. 만약 산행 도중 길이 없어지면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기상관측소 뒤편에 솟은 절벽 위쪽이 목적지인 애보트 리지다. 초지와 바위가 섞인 고원을 지그재그로 치고 오르면 절벽 바로 아래까지 길이 이어진다. 벽을 만나면 레지를 타고 오른쪽으로 트래버스해서 리지 북쪽 끝으로 오를 수 있다. 일반 등산객은 애보트 리지 서쪽 사면을 통해 조금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행은 무리다. 등반기술과 장비를 갖춘 팀은 계속해 사파이어 콜(Sapphire Col)의 대피소까지 갈 수 있다.
애보트 리지는 사방으로 펼쳐진 산과 빙하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다. 서쪽으로 보니빙하(Bonney Glacier), 남동쪽에는 일러실러워트빙원의 만년설이 보인다. 북서쪽 정면으로 보이는 깊게 패인 골짜기는 쿠거계곡(Cougar Creek)이다. 글레이셔국립공원 최고의 조망처다.
- [트레킹 팁]
출발 기점 일러실러워트 주차장(1,215m)
최고 기점 애보트 리지(2,250m)
표고차 1,035m
산행 거리 5km(편도)
난이도 중상급
접근 골든에서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81km 가면 로저스 패스를 넘는다. 약간 가파른 내리막으로 변하는 도로를 타고 잠시 내려가면 제한 속도 50km의 2차선 길로 변한다. 여기서 좌회전할 준비를 하고 1차선으로 붙는다. 로저스 패스를 지나 2.4km 지점 왼쪽 길 건너편으로 일러실러워트 캠핑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야영장을 지나면 주차장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