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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재 | ||||||||
금산발 ⇒ 신정리 |
07:20 |
09:40 |
11:00 |
13:43 |
16:20 |
요금1150원 |
20분 소요 | |
금산발 ⇒ 사기소.신동 |
06:10 |
11:50 |
15:00 |
17:00 |
17:50 |
18:30 |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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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54-2830 | ||||||||
금산에서 승차 |
흑암초교(남이:양대.대양) | ||||||
금산발 ⇒ 양대.대양 |
06:30 |
10:20 |
12:40 |
14:10 |
19:50 |
40분 소요 |
041-754-2830 | ||||||
흑암리(흑암초교앞)에서 승차 |
마누라가 금산 친구집에서 메주를 삶는다고 한다. 나는 차를 가지고 금산 친구집 앞에 주차를 하여놓고 금산초등학교 옆의 버스 승강장으로 걸어가 11:00발 신정리 행 버스를 탓다.
농촌버스의 심각성이 이 노선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신정리까지 가는데 손님이 나까지 3명이다. 버스 기사분도 솔재를 물어보니 금산의 지리를 하나도 모른단다. 버스노선만 알고 운행을 하는데 버스 요금도 제대로 몰라 요금표를 확인하고 받는다. 신정리 마을앞에서 내려 솔재로 걸어 올라가는데 중간에 군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서있는데 수령이 300년이나 된다. 누군가 나무 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버린 병이 놓여있다.
솔재를 쳐다보니 너무 먼 것 같아 지나가는 차를 향하여 손을 들어보나 세워주는 차가 없다. 뒤에서 탱크가 오는 듯한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농촌화물 세레스가 올라오고 있다. 손을 드니 세워주는데 나이가 드신 노인분인데 어디를 가는가 하고 묻는다. 등산을 왔는데 능선을 따라 먼저 번에 솔재까지 왔는데 다시 솔재 부터 광대정재까지 가려고 하다니까 하루라도 젊어서 부지런히 다니란다. 나이가 먹으면 다니고 싶어도 다니질 못한단다. 솔재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져 등산화 끈을 다시 매고, 지팡이를 뽑고 산으로 올라섰다. 11:40분이 되었다. 올라서는데 바로 옆의 인삼밭이 있는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데 처음부터 가파르게 올라간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니 약 20여분이 되었는데 전라북도 경계 밟기 표시깃이 매달려 있는데 이제는 이 표시깃을 만나면 경계선을 제대로 밟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좋다. 그런데 먼저번 경계선 중에서 힘든 구간이나 가시덤풀 속의 경계에는 하나도 매달려 있지를 않아서 서운하다.
희미한 등산로는 낙옆이 많이 쌓여있고 그 위에 물기가 얼어서 미끄럽기가 빙판길과 같다. 일단 산냥꾼의 목표가 되지 않기 위하여 봉우리에 올라설때마다 소리를 한번씩 지르면서 걸어갔다. 어느정도 등산로가 뚜렷해지자 구름나그네의 표시깃이 보인다. 먼저 사무실에서 만났는때 성치산 줄기를 밟는다고 하더니 지나간 모양이다. 표시깃도 깨끗하다. 간간히 서울의 개척산악회와 그 외 서너종류의 표시깃이 보인다. 봉화산(烽火山)으로 향하면서는 수천리쪽의 골짜기에서 간벌작업을 하는지 아님 벌목작업을 하는지 엔진톱의 소리가 요란하다. 또한 개소리가 들려 깊은 산속에 웬 개소리인가 하고 생각을 하면서 혹시 사냥꾼의 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아님 멧돼지의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같이 소리를 지르니 소리가 멈추고 다시 짖는 소리가 없다.
봉화산(670.6m)이 보이는 622m의 봉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마누라가 보온도시락에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주어 따뜻하게 식사를 하였는데도 땀이 식으면서 온몸으로 한기가 몰려온다. 이래서 높은 산이나 기온이 급강하하는 산에서는 체온의 관리가 중요할 것 같다. 이러한 때 잘못하면 저체온증에 걸리기가 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 봉화산까지는 일반 등산으로 왔다가 가도 괜찮은 등산코스가 될 것 같다.
622봉에서 계속 진행을 하여 630미터 봉에 가까이 가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가니 앞에서 짐승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고라니가 소리에 놀라 도망을 가는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내 앞에서 약 20m 앞에서 멧돼지가 놀라 도망을 가는데 수천리 계곡에서 옥천암쪽의 계곡으로 능선을 넘어간다. 넘어가는 돼지의 숫자를 세어보니 모두 5마리인데 3마리가 먼저가고는 앞서간 우두머리의 돼지인 듯한 놈이 소리를 지르니 뒤에 처져있던 2마리가 빠르게 능선을 넘는다. 나는 이 녀석들이 혹시 덤비지 않을까 하여 나무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하였는데 별 일없이 모두 계곡 속으로 사라진다. 산행을 하면서 여러번의 멧돼지를 만났지만 이번처럼 여러 마리가 같이 있는 떼를 만나기는 처음이다.
성봉까지의 능선은 양쪽이 상당한 경사의 능선으로 산행을 조심하여야 한다. 성봉에는 금산군에서 세워 논 안내판이 있는데,
“높이 648m의 성봉은 무자치골의 수원이 되는 봉우리나 충남과 전북의 경계에 있고 남이면 남일면의 분계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좌우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가진 암릉이 이어지며 기암괴봉에 푸른 노송이 어우려져 경관이 좋다. 두어 군데 험한 곳이 있어 산행이 어렵지만 아기자기한 맛도 있다. 그리고 성봉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은 그 어디나 숲이 무성하고 사람의 발길이 적어 깨끗하고 조용한 점이다. 두 봉우리에 모두 성 성[城] 자가 들어 있지만 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라고 안내판이 서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산에 성자를 넣은 것은 성이 있어서 성자를 넣은 것이 아니라 산의 모양이나 능선이 마치 성의 모습을 하고 있어 성자를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양쪽으로 마치 성처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능선이 성처럼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성처럼 여겨졌으리라 생각이 든다. 또한 진안군의 호남쪽에서 금산군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주 능선이기 때문에 방위의 측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성봉에서 성치산쪽으로 가면서는 십이폭포가 있는 계곡과 성봉에서 벗어가는 능선이 아름답게 보이는데 언젠가 십이폭포쪽에서 성봉쪽으로 올라왔으나 엉뚱한 길로 내려갔던 기억이나는데 지금에서 이쪽의 능선에서 바라보니 잘못갔던 길이 한눈에 보이고 십이폭포의 계곡과 건너편의 계곡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이 성치산인가 하고 생각을 하는데 구름나그네의 표시깃이 보이면서 전방 100m 앞 3분거리에 성치산이 있다는 표시가 있다. 그런데 나침판은 성치산쪽으로 방향을 표시하지 않고 엉뚱한 곳을 가리켜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가 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성치산에 도착을 하여보니 헬기장과 삼각표시석이 있으면서 나무가 없이 둥그스름하고 성치산의 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간식으로 사과와 뜨거운 물을 마시면서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은 금산의 경계밖이였으며 주능선에서 벗어나 있다. 다시 주 경계로 되돌아와 경계를 따라 걷는 속도를 높였다. 남은 거리가 시간이 많이 걸릴 듯 하여 서둘렀다.
400m 높이까지의 능선으로 내려와서는 잡목과 가시나무가 많이 나타나면서 앞길을 막는다. 또한 능선이 낮아지면서 방향을 잡기가 더 어려워지는데 구석티(광대정재)에 가까이 와서 마지막 능선에서 본 능선을 벗어나 바로 옆의 능선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고개가 다보이고 거리상으로 100m도 남지를 않아 방심한 사이에 아래쪽 능선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구석티재(광대정) 고개에 도착하니 16:40분이 되었다. 옷과 신발을 털고 걸어내려오면서 지나는 차에 손을 들어보았으나 세워주는 차가 없어 계속내려오면서 손을 드니 승합차가 세워준다. 금산까지 가신단다. 부부가 같이 타고 있었으며 금산에 사신 다는데 음악이 아주 경쾌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부르면서 운전을 하신다. 어데까지 가는가 하고 물어봐 중도리 흥국주유소 뒤편까지 간다고 하니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면서 그 둘레에 사는가 하고 묻는데 아는 사람이 아니어서 미안했다. 중앙초등학교 앞에서 자기는 볼일이 있단다. 이곳에서 헤어지는데 아주머니께서 너무 먼곳에 내려주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남자분은 그래도 다리가 튼튼하니까 괜찮탄다. 친구집에 도착하니 15:20분 밖에 안되었다. 그때까지 메주를 만드는 일이 안 끝나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왔는가 하고 묻는다. 일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려 친구부인과 같이 삼태리에 있는 빛고을 오리집으로 가서 오리탕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성치산(城峙山 해발 648m)
위 치 : 충남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
태고의 정적속에 펼쳐진 폭포의 전시장
성보에 이르는 무자치골은 폭포의 전시장이다. 12폭포는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옛 선비의 멋이 배어있는 폭포다.
폭포의 전시장 12폭포
옛날부터 남이면 구석리 무자치골의 12폭포는 널리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폭포는 대표적인 승경으로 시인 문객들이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그림을 그렸다. 폭포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낙차가 클수록 좋고 그것도 비스듬히 떨어지는 와폭보다 곧추 떨어지는 직폭이 좋으며 물이 많으면 더욱좋다. 또 중요한 것은 주위의 경관이다. 주의에 기암괴봉이 어우러지고 숲이 좋으면 더욱좋고, 바위 낭떠러지에 낙락장송이라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대부분의 폭포가 암반을 흐르는 물로 이루어지며 또한 바위 골짜기에 있기 때문에 폭포가 있으면 거의 주위의 경관도 좋기 마련이다.
뱀이 많아 무자치라는 이름을 얻은 무자치골의 12폭포는 폭포로서도 훌륭하지만 타 지역의 어느 폭포와도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무자치골의 많은 폭포 중에서 특히 네 개의 폭포는 각기 그 흐름이나 모습이 달라 폭포의 전시장 같다. 넓은 암반에 길고 길게 무자치처럼 꼬불꼬불 흘러내리는 와폭이 있는가 하면,
패여진 홈통으로 물이 모아져 내리는 폭포가 있으며, 넓은 암곡의 높다란 바위 낭떠러지 위에서 하얀 비단폭을 풀어내린 것처럼 용의 초리가 곧바로 떨어지는 웅장한 직폭도 있다.
또 이 무자치골의 폭포가 다른 어느 지역의 폭포보다 돋보이는 점은 옛 선비들의 멋이 여기 폭포들에 배어 있다는 점이다. 무자치골의 대표적인 네 개의 폭포 암반에 각각 멋있는 한문 글귀가 좋은 솜씨로 크게 새겨져있는 것이다, 두곳은 초서이고 한곳은 예서, 한곳은 전서로 되어있다. 무자치골 맨 아래의 가장 장관인 폭포 암반에 새겨져 있는 ‘초포동천’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포항 가까이에 있는 내연산 청하골의 폭포가 보통 열두 폭포로 알려져 있고 폭포마다 좋은 이름이 있다. 금산 무자치골의 폭포를 12폭포로 부르고 있는데 모두 열두개이 폭포를 이르는 것인지 폭포가 많다는 뜻인지 분명치 않다. 많다는 뜻이라면 십이폭포가 아니라 열두폭포라 해야 옳고 맨 아래의 폭포를 일컫는다면 12의 뜻이 분명치 않다. 적어도 대표적인 네개의 폭포에 새겨진 한자에서 이름을 따거나 특색에 따라 ‘초포폭포’ 등 분명한 이름은 찾거나 지어 붙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제1코스 : 모치마을(남이면 구석리) → 무자치골 → 12폭포 → 골짜기 → 성봉
제2코스 : 모치마을 → 무자치골 → 12폭포입구 → 신동고개 → 산등성이(남향) → 성봉
모두 1시간 30분길로 총 산행시간은 3시간 정도 된다
조망
북 : 서대산. 천대산, 덕기봉, 월영산, 양각산, 민주지산
동 : 적상산, 덕유산, 성수산
남 : 구봉산, 운장산
서 : 더기산, 대둔산, 진악산
교통과 접근
금산에서 남쪽 용담길 795번 지방도를 가다 남이면 음대리를 눈앞에 두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봉황천을 따라 오른편 흑암리 방면으로 가는 포장도로에 들어서야 한다.
그 길로 원구석에 이르기 전 길가에 구석리 모치마을이 있다.
이 모치마을이 성봉 산행의 기점이며 종점이 된다.
모치마을에서 다리가 없는 내를 건너 무차지골에 들어선다.
봉황천 물이 많을 때는 조심해야 된다.
금산에서 구석리를 지나는 군내버스가 6:40, 7:40, 9:50, 10:30, 12:20, 13:20, 14:20, 16:00, 16:45, 18:00, 20:00 등 11차례나 있으며, 금산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모치마을을 지나는 시간은 7:10, 9:00, 11:00, 11:45, 13:40, 14:45, 15:45, 17:10, 17:55, 19:20, 21:00이다.
금산의 산들(김홍신 저)에서 발췌
첫댓글 구석티재를 광대정재라고도 하고 구석티재라고도 하더군요. 문헌에서 보니 구석티재가 맞는것 같아 광대정재에서 구석티재로 정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