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웨딩드레스', '애모의 노래'의 인텔리 가수 한상일[2]
노래와 전공 사이의 '1인 2역', 그 '애모의 노래'
▲ 한상일씨는 현재 제주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틈틈이 음악에세이 등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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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웨딩드레스', '애모의 노래'의 인텔리 가수 한상일[2]
노래와 전공 사이의 '1인 2역', 그 '애모의 노래'
'내 마음 나도 모르게 꿈같은 구름타고
천사가 미소를 짓는 지평선을 나르네.
구만리 사랑 길을 찾아 헤매는
그대는 아는가 나의 넋을
나는 짝 잃은 원앙새
나는 슬픔에 잠긴다.
'웨딩드레스'와 함께 가수 한상일씨의 또 다른 히트넘버인 이 '애모의 노래(황유철 작사, 안길웅 작곡)'는
69년 당시 뮤지컬, '카니발의 수첩'의 주제가였다.
뮤지컬 공연 당시 남녀 듀엣으로 불려진 이 세미 클래식조의 노래는 많은 가수들이 탐내었으나
가수 겸 작곡가 안길웅씨는 이 노래만큼은 밝고 힘 있는 한상일씨 목소리가 최적이라고 판단,
그에게 취입케 했다.
이 '애모의 노래'가 그렇듯 탄탄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마치 '단전 호흡하듯 노래하는' 한상일씨는
대곡 스타일의 번안곡이나 가곡, 가톨릭 성가 등을 특히 많이 발표했다.
그에게 노래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어보고자, 그가 취입한 노래 곡목을 뽑아 건네주자
리스트를 훑어보던 그의 표정이 순간 당황스런 빛으로 변했다.
자신이 그렇게 많은 노래를 취입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의외로 많은 옛 가수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도 자신의 취입 곡 중 상당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사는 물론 멜로디조차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불과 몇 번의 연습 끝에 단 한 차례 취입한 곡들이 대부분이기 때문.
더구나 그는 음반을 취입해놓고 제대로 들어볼 시간도 없이 바빴다고 회고한다.
▲ 가수로써 스크린과 뮤지컬, 브라운관을 누비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한상일씨.
이 무렵 문화공보부 제정 방송대상 남자가수상, 서울신문사 제정 서울문화대상 남자가수상, mbc 10가수상 등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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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TV 전속가수로 출발했듯 엔터테이너 적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이내 '예그린악단'으로부터 뮤지컬 '대춘향전'의 출연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스스로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무대에서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때문에 그는 김희조씨가 음악을 맡은 이 뮤지컬 공연에 직접 나서지 않는 대신
가수 패티김과 함께 '이도령'역과 '춘향'역을 각각 맡아 음반만을 취입했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그는 결국 고영남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사랑은 파도를 타고',
그리고 당시 인기 TV 드라마 '수사반장' 등에 출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연기와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때 그는 건축과 출신답게 치밀한 성격을 드러내 담당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가령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막무가내로 대사 수정 요구를 하는 것은 물론
드라마 상황에 비해 세트장이 너무 작다고 지적, 세트장을 모두 다시 제작하게 만든 당시 에피소드들이 그 것.
아울러 가수 윤복희씨와 함께 에디뜨 삐아프의 삶과 사랑을 그린 뮤지컬 '빠담빠담빠담'에서
에디뜨 삐아프의 연인, 이브 몽땅 역을 맡아 관객들 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렇듯 주위에서는 그에게 다양한 활동을 요구했지만 정작 그는 연예인으로써 집안의 내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 출신이라는 '최고학부'의 꼬리표는 늘 그에게 무거운 짐으로 작용해
수시로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결국 집안의 반대로 연예활동을 접게 된 그는 78년, 뒤늦게 전공을 찾아 건설 분야로 U턴,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어느덧 37세.
건설회사 입사 초기엔 그동안 연예인이기에 받아왔던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눈부셔 되레 짙은 그늘이 되기도 했지만
이내 미국 연수를 마치고 사우디건설 현장에 파견, 외국인 감독관으로 근무한 뒤
가구회사, 투자개발회사 등을 거쳐 20여 년간 건설, 건축 분야에 종사해왔다.
▲ 지성, 낭만, 건강함의 캐릭터, 한상일씨의 90년도 광고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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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간 동안 공식 가수활동은 접었지만 CF를 통해서는 대중들과 늘 만났다.
포도주나 커피광고, 종합 비타민, 패션양복 모델 등이 그 것으로
지성, 낭만, 건강함을 지닌 귀족적 이미지로 각인된 그의 캐릭터는 이 때문에 더욱 굳혀진 것이기도 하다.
98년에 퇴직한 그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여전히 술보다는 음악을 찾는 로맨티스트로
동시에 최근 영화들을 모두 섭렵한 영화광이기도 하다.
▲ 대중들 앞에는 잘 나서지 않는 편이지만 오랜 지인들과의 음악적 교류는 여전하다. 2006년, 김준카페에서.
ⓒ박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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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때 당시 이봉조, 백영호 같은 훌륭한 작곡가들의 취입 제의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었던 것이 이제금 못내 아쉽다'는 그.
이제부터라도 노래에 관한한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다.
현재 제주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틈틈이 음악에세이 등을 집필하고 있는 가수 한상일씨.
더불어 멋지게 펼쳐질 그의 '제3의 인생'을 기대해본다.
글 l 박성서(대중음악 평론가/저널리스트)
- Copyrights ⓒ2006-11-17일자, 서울신문.
첫댓글 박성서님. 참 보람있는 일 하십니다. 젊은 사진만 뇌리에 박혀 있었는데 맨 아래 사진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마치 동네아저씨처럼 편하고 수더분한 모습으로 바뀌었죠? 넥타이 풀고 만나도 좋을 사람처럼... 해서 제 넥타이도 조금 풀렸습니다만...^^
알찬 정보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낭만적인 가수 한상일 선배를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달콤한 맛으로 편안하게 스며들었던 그의 목소리. 따라불렀던 아이가 이젠 그와 같이 주름살이 잡히는... 아,세월아
세월의 흐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좋은 음악, 아름다운 자연과 벗하며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지면, 흐르는 세월은 우리를 더 젊고 멋지게하는 뿌리가 되곤하니까요.
관심을 가져주신 혜안님,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이신 alex, 한상일 선생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어릴 때(?)였는데도 애모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상일씨를 참 좋아했습니다. 노래와 목소리와 얼굴이 아주 잘맞는 느낌이었고 단정해보이는 그 모습이 좋았지요. 언젠가 티비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여전히 목소리가 같아서 더 반가웠습니다.
얼마전 왕영은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 전원생활이 공개되었다더군요. 저는 아쉽게도 놓쳐습니다만... 그래서 올 여름휴가는 제주도로 코스를 잡았습니다. 혹 동행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7월 26일부터 사흘 간입니다만...
아..정말 좋은 기회인데...더군다나 제주도에 한상일님과 박성서님과 같이라면요... 요즘은 하루 여행 계획도 잡기가 힘드네요. 어머님이 좀 안좋으세요....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이곳에도 좀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