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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포항을 향하여
2001년 7월 30일 월요일. 07:30 우리가족 4명은 승용차를 타고 포항을 향해 집을 떠났다. 비가 억수 같이 내렸다. 뇌성번개까지 동반된 폭우였다. 빗속을 마다 않고 가야하니 웬지 필요 이상으로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식구들도 차의 시트에 몸을 깊숙히 파뭍고 아무 말이 없다.그런데 폭우는 경부고속도로 안성부근을 지날 때 신기하게도 딱 멎어버렸다. 비기 끊긴 그 지역을 지나며 얼핏 남쪽하늘을 처다 보니 낮게 깔린 검은 비구름 한 덩어리가 무엇에 쫓기듯 황급히 동북쪽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었고 구름 위로는 띄엄띄엄 높은 구름 뜬 푸른 하늘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흡사 한 새벽 동녘이 트는 모습 이였다. 그 후부터는 완전히 청명한 날씨에다 뜨겁기 그지없는 강한 햇빛이 쨍쨍 내려 꽂혔다.
폭우가 지나가니 새벽이 밝고 그 뒤로 청명한 날씨라.....우리가 가는 여정이 그처럼 고난과 고통을 견뎌 끝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예시하는 것이나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 T/C를 벗어날 때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야 할 오후 1시였다. 경주 포항간의 붐비는 국도를 따라 포항시내에 들어서고 물어물어 예정보다 두시간 반이나 늦은 15시30분에 해병 1사단 서문 위병소에 도착했다.
2)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정시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교육대로 떠나고 우리가 도착했음을 연락받은 교육대 교관 1명이 민용 카니발 차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교육비와 생명보험료 영수증을 사단본부에 제출하고 국도를 따라 교육대로 가는 도중 차창에 빗물이 잠시 흣뿌리다가 그친다. 애 엄마가 교관에게 물었다.
"훈련이 심해요?"
"못 견딜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각오는 하셔야 할겁니다."
"남자 여자 틀리게 해요?"
"아니요. 똑같습니다."
단정한 군복 차림에 전신에 활력이 팽팽한 교관은 짧게 끊어 대답했다.
"아이고 뮤셔라!"
엄마는 호들갑스럽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중간에 퇴소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본 적은 없습니다.”
"교육생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둘째 날까지는 좀 그런데 셋째 날부터는 좋습니다"
그 말이 의미가 심상했다. 교생 심리가 아마 둘쨋 날까지는 의기소침하고 다음날부터는 의기 탱천한다는 뜻인데 그이유가 어렴푸시 짐작이 갔다. 의기소침은 교육이 예상보다 힘들거나 다르기 때문일테고 의기탱천은 그훈련 이겨내고 집에 갈 날이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위병의 필승구호가 귓속을 깊숙이 꼽히면서 자동차가 교육대안으로 들어섰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서 보는 병영모습이 별로 낯설지 않게 보인다. "누구나 해병이 된다면 나는 결코 해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구호가 해병특유의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쓰인 커다란 팻말이 보였다. 교육대는 작은 산등성이를 돌아 둥그렇게 휘어지는 길로 출입하고 산으로 삥둘러 쌓인 깎아지는 절벽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먼저 온 교생들이 군복을 입고 부산히 대오를 정리하고 있었다. 보급반에서 지급받은 군복을 갈아입고 5소대 꽁무니에 들어가 섰다. 1소대는 노소 불문한 여자소대, 2소대는 중학생 소대, 3소대는 고등학생소대. 5소대는 대학생이상 성인소대였는데 중학생소대는 군복 입기에는 너무 어린애들도 더러 보였다
3) 입소식
"5소대! 우측선두 기준! 정식간격. 우로 나란힛!"
빨간 둥근 모자에 풀을 빳빳이 먹인 군복을 입은 교관이 높은 곳에 서서 교생을 내려다 보며 지휘한다. 익숙치 않은 구령에 모두들 우왕좌왕 이다. 대번에 교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우로 나란히도 몰라? 이것 봐라! 저기 꼴대 돌아온다. 선착순 3명"
교생들은 멈칫멈칫하다가 뒤늦게 말뜻을 알아채고 우르르 몰려간다. 아니 이건 완전히 쫄병취급이지 않아? 내 계산하고 뭔가 어긋나간다는 느낌이 든다.나는 3번이나 왕복한 후에 겨우 3명안에 들었는데 선착순은 그것으로 끝났다.
"차렷. 열중셧. 차렷. 차렷인데 왜 움직이나?"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날카롭게 교관은 질타한다. 교관은 교생에게 특히 복창 목소리를 크게 하고 부동 구령시 움직이지 말 것을 앙칼지게 강조했다. 이 두가지 주의사항은 훈련시 교생이 가져야 할 정신적 자세였고 행동거지였다. 30년전 육군 논산훈련소에 들어갔던 징그럽던 감회가 울컥 솟아난다. 그때 거기엔 자유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상관이 세워 두면 그대로 서 있어야 하는 말뚝이였고 시키면 성취의욕을 목소리의 크기로 나타내 보여야하는 사냥개였다. 난감했다. 그런 훈련병 생활을 다시 해야 하다니...이런 꼴을 애들에게 보여야 하고 애들에게 강요시키다니... 본능적인 거부감이 치솟고 열화같은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쫄병신세인 줄도 모르고 대체 이런 짓을 왜 자초했나? 도무지 내 자신이 내린 캠프입소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몹씨 속이 쓰리고 메스껍고 정신은 짜증스럽고 혼란스러웠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을 뿐 258명의 대오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단체행동에 매몰되고 말았다.
한참동안 소대별로 경례동작과 제식훈련을 실시하다가 교육대내 작은 연병장으로 이동하고 입소식 예행연습을 계속한다.
"연대장님께 경례는 필승구호를 붙이고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구호가 없다.”
경례동작을 집중적으로 주입받는 때 위병소 쪽에서 필승! 근무중 이상무 소리가 들리고 곧 찝차 한대가 다가와 깡마른 체구의 장교가 내려 단상에 오른다. 즉시 입소식이 시작된다.
"연대장님께 대하여 경롓!"
"필씅!"
258명이 일순간에 일제히 터뜨린 구호소리가 절벽에 메아리친다. 들어 온지 몇시간 안 되는데 그만하면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무엇이 맘에 안 드는지 연대장은 거듭 경례시킨다. 지휘단 위에 삐딱하게 서서 고개를 옆으로 까딱거리며 역정을 표시한다. 그러니 주위에 도열한 교관들은 더욱 긴장하는 표정이 역역하다. 서너번 후 겨우 경례를 받는 교육 연대장의 깐깐함이 지레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일거수 일투족을 자기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젊은 교관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 같았다. 거기에는 어린 10대와 완전히 할아버지 모습을 한 50대 후반도 있어서 봐 줄만도 했건만 그에겐 적당히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우리 교생들이 수천명 캠프 신청자를 탈락시키고 선택받아 들어 왔으니 교관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여 모두 낙오없이 교육을 마치라는 요지의 훈시를 했다.
4) 악! 감사히 먹겠습니다.
긴장이 찬 입소식이 끝나자 대오를 정비하여 구령소리 붙여 우천 교장내로 이동하여 앉는다. 30년전 논산훈련소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 이였다. 그래도 그때는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갖고도 의미가 남았다. 국방부 시계는 그래도 돈다는 말처럼 무의미하게 흐르던 세월도 각 일각 나를 제대라는 관문으로 인도하는 이득을 갖다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제대도 없고 식구들까지 생고생시키는 전혀 무의미한 쫄병생활 아닌가? 이런 일을 자초한 내 자신을 머리를 감싸쥐고 책망한다. 그때 그 고민을 비웃듯 소대 일어섯!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다시 대오를 맞춰 식당 입구로 이동하고 교관의 지시에 따라 2열로 식당에 들어선다. 밥은 내가 식판에 퍼담고 취사병 3명이 반찬과 국을 담는다. 식판을 들고 맨 우측 탁자부터 차곡차곡 6명씩 앉는다. 교관이 시범 보이고 나서 그대로 따라 한다.
"식사시작! 우리는, 강하고, 멋진, 해병이, 된다. 악! 감사히 먹겠습니다"
30년만에 먹어보는 짠밥이다. 그때보다 음식상태가 좋아 보이긴 하나 입에는 맞지 않고 돌 씹는 것 같다. 밥먹은 후엔 식기를 닦아 취사병의 검사받고 반납한다. 우천교장에 앉아서 다른 소대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전 교생들은 연병장에 이동한다.
"총원 차렷! 차렷 자세는 부동자센데 왜 움직이나? 아직도 이해 않돼? 앞으로 취침!.....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금방 밥 먹은 속이 뒤집힌다. 그렇게 들볶기면서 나는 점점 체념상태가 되고 교생들은 서서히 병영생활에 물들어 간다. 한참 후 평정을 찾은 교관들은 교생들을 땅바닥에 앉히고 교생들의 직업을 파악하고 영내생활에서 주의사항을 말한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자원해서 군대생활을 시작합니다. 사회에서 무엇했던지 불문하고 교관은 여러분들을 일개 훈련병으로 취급합니다. 교육은 내일부터 천자봉 행군, LVT 탑승, IBS훈련, 공수,유격,각개전투로 이어집니다. 단계별로 차츰 여러분들의 심신을 괴롭히겠금 짜여 있습니다. 자신없는 사람은 지금 나옵니다. 집으로 보내 드립니다.빨리 나옵니다... 없습니까?"
교생 모두 묵묵부답이다. 나는 속이 들끓긴 했으나 선뜻 일어 설 수가 없었다. 해병 특유의 짧은 문장과 합니다라는, 비문법적인 어미로 이어지는 훈시 내용은 교관지시 절대복종, 교육불참 금지, 교육장 이탈금지. 남녀교생간 접촉금지. 끽연음주금지. 공중전화 사용금지, 매점이용금지. 사행행위금지, 보급품 장비 물자 병사를 애호할 것. 위반하면 퇴소한다 였다. 교관의 훈시는 한시간 이상 지나서야 끝났다
"총원 일어섯! 오와 열! 총원 차렷! 지금부터 내무실에 들어가서 순검준비 합니다. 총원 해산!"
지친 교생들이 이젠 좀 쉬나하고 어슬렁거리며 대오를 흐트린다. 이때 또 예기치 않게 교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동작 그만! 총원 원위치!"
흩어졌던 교생들이 영문 몰라하며 원 위치로 다시 섯다.
"해병대 해산은 그렇지 않습니다. 해산하면 구슬이 깨지듯 일순간에 사방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해병대는 해산하는 방법도 따로 있구나... 2층 내무실에 올라가니 거기는 전혀 꼼작 할 수 없는 내무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5) 순검
"해병대 캠프 제39기 제5소대!"
벌써 질려버린 교관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쇳소리 같은 그의 목소리는 그대로 해병대의 권위 자체가 되어 교생들의 마음을 짖누른다.
"제5소대!"
교관의 목소리 듣자마자 복창하면서 내무반의 교생들은 부동자세로 내무실 복도에 열지어 서고 내무반장에 임명된 교생이 내무반 문밖에 나가 교관을 향해 부동자세로 서서 하명을 기다린다.
“각 소대들은...."
"각 소대들은..."
명령과 복창소리가 터널같은 긴 복도에 증폭되어 크게 울리면 곧장 그 뒤로 잠시의 여유마저 박탈하는 사사건건의 하명이 이어진다. 교관의 말 한마디에 정신없는 내 모양에 쓴웃음을 진다. 식구들이 집에서 한 말 한마디에는 내가 어찌 대 했는데? 군대 경험 없는 애 엄마와 애들도 경악과 체념속에 나와 똑같이 교관의 보챔과 부산함에 시달리고 정신이 없겠지.
"제5소대. 순검 15분전!"
"제5소대. 순검 15분전!"
산천초목도 떤다는 해병대 순검이 시작됐다. 2층 3층 좌우 다른 소대에서도 같은 명령소리가 떨어지고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교생들은 복창하자마자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두명씩 협력하여 침구를 네모 반듯히 피고 개인별 모기장을 친다. 내무실 바닥에는 한낯동안 뙤약볕에 달궈진 건물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물을 흥건히 뿌린다. 그 다음 복장을 정비하고 침상간 복도에 2열로 마주보며 도열해 선다. 내무반장이 각 내무실 문 앞에 서고 복도 중간에서 소대장 교생이 교관에게 인원을 보고한다.
"필승!"
"필썽!"
"제5소대. 인원보고. 총원52. 사고 무. 현재52."
교관이 뚜벅뚜벅 걸어와 험상굿은 얼굴로 우리 내무반 문 앞에 섰다.
"필승 제 6내무반! 총원16. 사고무. 현재16. 번호!"
"하나.”
“둘.”
“셋.”...
“열 여섯. 번호 끝."
열 여섯 번호 끝은 마지막으로 입소한 내가 내지른 소리다. 교관이 화난 얼굴로 내무반으로 들어와 침구를 편 상태를 면밀히 살펴본다.혹 창피하게 지적받을까봐 교생들은 긴장했지만 교관은 별말 없이 제위치로 돌아와 교생들의 낯을 힐끗 훝고나서 뒤로 돌앗 자세로 나간다. 곧 옆방 내무반장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온다.
"필승! 제5내무반. 총원18명.사고무. 현재 18명. 번호!'
각 내무반을 다 돌아본 후 교관은 다시 처음 위치로 섯다.
"순검 끝! 각 소대는 이동병력 없이 ..."
교관의 순검 - 육군용어로 점호이다- 이 끝나고 취침명령이 떨어졌다. 침구속에 들어가 몸을 눕힌다. 하루종일 운전하여 몸도 몹시 피로하지만 정신은 더 피로하여 머릿속에 모래가 꽉 찬 느낌이다. 잠이 쉬 오질 않아서 억지로 잠을 청한다. 밤10시에 자 보기는 30년래 처음이고 술 마시지 않은 맨 정신에 자는 것도 희귀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침소에 드니 밤이 꽤 길었다. 침중에 몇번 눈이 떠져 다시 잠을 청하곤 했는데도 새벽이 될려면 아직 멀었다. 사회에서의 버릇되로 새벽잠에 곤히 빠졌는데 금속성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는 교관의 음성이 총알처럼 잠귀를 때리면서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해병대 캠프 제39기. 제5소대. 총기상 15분전!"
옆 교생들이 후다닥 일어나 침구와 모기장을 갠다. 아니, 15분간 더 자도 되는 거 아냐. 이거? 동료들의 부산함에 목덜미 잡혀 억지로 일어나면서 속으로 볼멘 소리 질러본다. 정신은 다시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하고 술 취한 상태처럼 멍해진다. 실제 훈련이 시작하기도 전에 내 정신은 벌써 탈진해 버린 것 같다.
6) 빨간 코 사나이
7월 31일. 입소 2일째. 2,3,5소대가 한꺼번에 들어와 비좁은 세면장에 어찌어찌 해서 얼굴을 닦고 군복차림에 연병장에 집합한다.
"차렷. 열중 셧. 차렷. 움직이지마! 앉은 번호!"
"하나"
"둘"
"셋",...
맨 앞줄부터 열 따라 착착 앉아가며 일제히 번호를 외치는 게 많이 숙달됐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아침인사 올립니다. 서울은 저쪽. 부산은 이쪽. 대구는 이쪽...고향을 향하여 좌우향 웃! 경례!"
우리 애들은 어느 방향으로 서야하나? 엄마 아빠가 서울이 아닌 여기 있는데... 어제에 이어 또 제식훈련이고 오늘은 보행중 방향 바꾸는 훈련이다. 1소대는 뭔가 굼떴는지 벌써부터 맨 땅에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으로 기합이 한창이다. 우리 애들은 어쩔꼬?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한다. 나 혼자 覺醒하면 될 것을 억지로 데려와 저 고생시키니.. 목을 길게 빼고 눈을 크게 뜨고 철모의 번호를 찾는다. 170번이 애 엄마. 171번이 혜진이. 172번이 유정이. 군복을 입혀 놓으니 모두가 똑 같아 구별할 수가 없다. 각 소대별로 한참동안 법석을 떤 다음 아침식사를 시작하는데 5소대는 할아버지 소대라 예우한답시고 맨 먼저 식당에 들어서고 그 뒤이어 1소대가 들어온다. 열중에서 혜진이를 발견하고 착찹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니 입을 삐죽하곤 곧 외면해 버린다. 내게 보내는 적개심이다. 식사 후 지붕이 있는 우천 교장에 앉아 다른 소대 식사 끝나기를 기다리며 군가교육을 받았다. 군가교육은 교장과 시간이 따로 마련된 게 아니고 짬짬히 빈 시간을 이용한다. 쇳소리 내는 교관이 군가교육을 맡아 한 소절을 선창하고 교생이 따르는 식이다.
....팔각모 얼룩무늬 바다의 사나이. 검푸른 파도 타고 우리는 간다. 내 조국 이 땅을 함께 지키며 불바다 헤처 나간다. 우리는 해병. 팔각모 팔각모 팔각모 사나이. 우리는 멋쟁이 팔각모 사나이~....
.....귀신잡는 용사 해병 우리는 해병대. 젊은 피가 끓는 정열 어느 누가 막으랴 라일 라일 라일 라일 차차차. 사랑에는 약한 해병 바다의 사나이 꿈속에서 보는 처녀 달링 아이러브 유. 오늘은 어디 가서 훈련을 받고 휴가는 어느 날에 기다려 보나 우리는 해병대. 알 오케이엠씨 헤이빠빠 리빠 싸워서 이기고 지며는 죽어라 헤이빠빠 리빠 해병대~......
그런데 노래가 숙달되기는 커녕 노래말 중 "팔각모 팔각모 팔각모 사나이" 부분은 교관 목소리를 거듭 들어도 내 귀에는 "빨간코 빨간코 빨간코 사나이"로 들렸다. 그것 참 묘한 일이여서 옆에 앉은 교생에게 빨간콘지 팔각몬지 물었더니 그는 한술 더 떠 자기는 브라보 해병중 "오늘은 어디 가서 훈련을 받고 휴가는 어느 날에 기다려 보나"를 부를 때는 자꾸만 본인도 모르게 "오늘은 어디 가서 땡깡을 놓고 내일은 어디 가서 찐따를 붙나"로 입에서 나온다며 난처한 표정을 짖는다. 그나 나나 30년전에 군대 교육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때는 해병대를 개병대라고 불렀다.
“맨 날 술만 먹고 다녔으니 그게 그렇게 들리지!”
난데없는 병영생활의 긴장으로 인해 내게 갑자기 무슨 청각장애라도 생겼는가 의심들어 1소대를 찾아가 애 엄마에게 또 물었을 때 대뜸 언성부터 높힌 엄마로부터 그렇게 외마디 핀잔만 들었지만 아무래도 교관의 발음은 정확했나 보다.
7) 산악행군
오전일과가 천자봉 행군인데 포항 기온이 너무 높아 일사병이 염려된다고 교육대 뒷산을 오르는 산악행군으로 대치됐다. 식사 후 교관들이 정제로 된 알 소금 하나씩 나눠주는 폼이 오늘 교육 강도를 짐작케 한다. 행군코스는 처음에는 숲속 좌우로 구부려지는 그늘 길이더니 곧이어 수직으로 뻗어 올라간 급경사 길이다. 사람들이 다녀 자연히 생긴 길이 아니라 군대가 훈련용으로 일부러 그렇게 만든 길이 분명했다. 길바닥은 작은 돌맹이 투성이라 몹시 미끄러웠다. 수직 산길 가운데에 띠엄띠엄 쇠말뚝을 꼽아 놓은 것은 미끌어질 때 붙잡으라는 배려인가 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을 돌아 평평한 능선을 걸을 때 교관이 10분간 쉬어했다. 자리를 골라 앉기도 귀찮아서 그대로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 앉는다. 나무그늘 속에서 매미소리가 한가하게 들려온다.
잠시 후 저쪽 숲속에서 작은 소음이 들리더니 반대방향에서 올라온 1소대가 우리들 앞을 통과한다. 여자들이 코앞을 줄줄이 지나가는데도 앉아 있는 성인 소대사람들은 희롱이나 야유의 말 한마디도 없이 조용하다. 원래 남자들이란 예비군복만 입혀놔도 입과 행동이 거칠어지는데 여기서 그렇지 않는 것은 그들이 모두 제 부인이고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가는 얼굴 유심히 보다가 유정이와 애 엄마를 발견했다. 군복에 철모 쓴 모습이 우스운 게 아니라 비장하고 측은하다. 용기를 줄 요량으로 엄지손가락을 펴 들어 보이니 가벼운 미소가 언뜻 핀 표정을 보이면서 그대로 지나간다. 그들은 후줄끈한 모습으로 나둥그러지듯 주저앉은 내 모습을 어찌 바라보았을까? 착찹하다.다시 행군. 미끄러운 산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이 행군이 빨리 끝났으면 싶지만 끝나봐야 끝날 일이 아니다. 남은 시간은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8) 해병대판 山上垂訓
중간쯤 산을 내려갔을 때 인솔하던 교관이 갑자기 대오를 정지시키고 서 있는 체로 일장훈시를 하는데 그 내용이 사뭇 감격스러웠다.
"여러분이 지금 산길을 올라오고 내려왔듯이 인생이란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 길도 있습니다. 인생이 잘 풀린다고 자만하지 말고 못 풀린다고 낙담하지도 맙시다. 언제나 용기를 갖고 인생을 대해야 합니다. 인생은 어차피 연극이고 여러분은 배우입니다. 배우는 제 역할을 잘 소화해야 좋은 배우가 됩니다."
아마 30이나 되었을까? 인생경험이 깊을 리 없는 젊디젊은 교관이 40을 넘고 60가까운 사람들을 세워 놓고 꽤 유치한 훈시를 하지만 입소의 의미가 난관을 극복하는 마음가짐을 찾고자 온 내게는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켜 낸다. 그 교관의 말 한마디 한마디 새겨듣는데 더욱 놀라운 훈시가 이어진다. 가히 해병대식 산상수훈이라 칭할 만 했다.
"운명이란 여자와 같습니다 .나약하게 대하면 험하게 나오고 용기있게 대들면 굴복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자기 마음먹은 데로 만들어집니다. 저 앞에 우거진 숲을 보십시오. 저 숲을 인생이라 생각하고 숲을 향해 마음껏 고함을 쳐보십시오. 어떤 말이라도 좋습니다. 소대... 우향 웃!"
그가 내 마음을 꼭 찝어 읽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그의 훈시가 너무나도 기가 막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숲쪽으로 방향을 바꿔 서서 목청 터져라 괴성을 질러 댔다. 저 훈시가 내 맘속에 각인되기를!...
괴성 후 내려온 방향으로 계속 내려 갈 줄 알았는데 교관은 교생들을 뒤로 돌아! 하더니 온 길을 역순으로 가게 한다. 그렇게 되니 우리는 하나의 산봉우리를 올라갔다 내려오고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게 되었다. 그것은 산악행군 거리를 좀 더 늘리려는 의도겠으나 걷고 보니 또 다른 철학적 의미가 있었다. 그렇지! 뉘에게나 한번의 인생이 주어지되 그 인생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한번씩 있는 게 아니라 거듭 이어지고 순환된다는 의미를 그는 강하게 주입시키는 셈이였다. 무지막지한 육체적 훈련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철학도 있구나! 그래! 이 훈련을 한번 적극적으로 받아 보자! 아무리 심해도 까무러치기 밖에 더 하겠어? 이때부터 나는 이 몹쓸 훈련과정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 교관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냉소적이던 내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봉우리 하나를 올라갔다 내려 왔을 뿐이어서 짠밥 먹을려면 한참 멀었지 싶은데 내려오자마자 곧장 점심식사 시간이다. 정말로 마음자세를 고처 먹으니 시간 흐르는 느낌도 이렇게 달라진다. 식수통 앞에 교생들의 열이 길게 늘어선다. 산악 행군에 너무 땀을 흘린 탓에 미지근한 물을 들이켜도 계속 들어간다. 오후에는 상륙훈련이 있다는데 갈증을 대비해 수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9) 군가는 소양강 처녀
오후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모두 연병장에 집결했다. 섭씨 36도의 포항 햇빛이 바로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 쬔다. 이때 거창한 군용트럭 10대가 굉음을 울리며 영내로 열지어 들어와 연병장을 가로질러 일열 횡대로 정차한다. 교생들은 소대당 2대의 자동차 적재함에 기어올라 짐짝처럼 포게 앉는다. 장유유서를 찾는 것도 교육이겠기에 내가 참견하여 젊은이는 바닥에, 나이든 이는 의자에 앉게 했다. 내가 우선 바닥에 쪼그리고 앉기가 불편해서다. 바로 어제 외부에서 들어왔는데도 까마득한 옛일같고 교육대 밖 외부로 나가는 것이 생소하고 기쁜 일로 느껴지는 이유는 단 24시간도 되지 않은 영내생활의 격리감과 단절감 때문일 것이다. 찝차가 먼저 움직여 맨 앞에서 선도하고 트럭들이 뒤따른다. 차량들은 영내에서는 꾸물거리다가 국도로 들어서더니 속력을 높힌다. 시야에 들어왔다 멀어지는 국도변 흔한 풍경이 내눈에는 먼 나라 그림처럼 보인다. 차량 주행중에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교관이 뒤를 힐끗 보며 군가를 부르라고 독촉한다. 아까 아침에 배운 군가를 모두 다 까먹었는지 부르려는 교생 하나 없다.
"해병대 출신 있으면 먼저 선창하시오"
또 무슨 기합이 있을까 봐 내가 말했으나 모두 묵묵부답이어서 스스로 조교흉내 한번 내보았다.
"반동준비! 반동은 위에서 아래로. 반동시작. 반동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소양강 처녀.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해에 저어문 소오양 강에~"
군가제창은 그 한 곡으로 끝났다. 진짜 사나이, 보병의 노래 등 아직도 부를 수 있는 군가는 있으나 그건 육군에서 배운 것이라 여기서 부르면 교관의 심기를 건드릴지 모르고 남행열차 같은 유행가를 군가라고 계속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날 훈련 후 이 군가 때문에 해병 출신이라는 한 교생이 우리 내무실로 나를 찾아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반동은 위에서 아래로 했지요? 그건 육군 식이고 해병대서는 그러면 틀려요 천국에서 지옥으로 해야 되요"
그러면서 양손을 위로 쭉 뻗어 올려 박수를 치고 그대로 밑으로 내렸다가 다시 위에서 박수를 치는 해병대식 반동동작을 해 보이는 것이였다.
"그러면 그때 나와서 군가를 지휘하지 그랬어요?"
"아이구 내가 뭘...."
그는 공연이 멋적어 하며 물러갔다.
10) 상륙작전
자동차는 사단본부로 들어가 이길 저길로 꼬부라지더니 우리를 해변 모래밭 옆에 부려 놓는다. 모래 위에 약 10대의 수륙양용 장갑차 LVT가 열지어 서 있다. 해병대에만 있는 LVT 탑승훈련이다. 햇빛 가리는 천막안에 앉아도 태양열기를 막을 수 없었으나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소금기 냄새가 코를 스치며 까닭 모를 슬픈 향수를 자극한다. 울먹일듯 갑자기 목까지 메이지만 그런 한가함에 빠저 있을 시간이 아니어서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본다, 저쪽바다에는 빨간 내의를 입은 해병들이 흰 파도 속에서 훈련받는 모습도 있고 민간인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해병대 제1상륙사단 상륙 지원단 6중대 3소대장 ○○○중위입니다"
푸른 베레모를 쓴 깡마른 장교가 나와 자기와 장비소개를 하는 중에 탱크처럼 생긴 상륙주정 2대가 엔진을 가동시키더니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하얀 포말을 꽁무니에서 내뿜으며 그 주정은 영일만 물살을 가르고 바다 한바퀴 삥 돌고 다시 모래로 올라온다. 그리고 모든 주정들이 일제히 굉음을 내고 주정안으로 구명대를 목에 건 교생들을 삼켜 가두어 넣은 후 발판을 서서히 들어 올려 입구를 단단히 막은 다음 바다를 향해 움직인다. 주정안에 교생들이 4열로 촘촘히 앉았다. 육지에서는 궤도로 움직이던 주정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자 가볍게 뜨며 출렁인다. 주정 천장 좌우에 열어제친 길죽한 문밖에서 베레모를 쓴 주정장이 우릴 내려다보며 일어서라는 손짓신호를 보낸다. 교생들은 우르르 일어나서 시루속의 콩나물 대가리처럼 좁다란 천장 문밖으로 목을 빼들고 곳추 섰다. 해초냄새 머금은 바닷바람이 얼굴에 부딧치며 얼굴의 열기를 식히고 주정이 출렁일 때마다 파도가 튕겨 올라와 하얗게 부서진다. 뭉툭한 탱크와 같은 외관을 가진 주정은 전면 좌우 모서리와 꽁무니에서 흰 포말을 일으키며 바닷물을 가르고 나아간다. 주정이 지나간 바다 위에는 흰 포말의 흔적이 길게 남고 그 흔적을 따라 나머지 주정들이 꼬리를 물고 뒤따라 기동한다. 주정들의 일렬기동으로 포항만 바다 위에는 흰 포말로 거대한 원이 그려졌다. 이 경이적인 장면을 첨 보는 교생들은 입이 딱 벌어진다.
"히야.... 대단하다!"
LVT란 상륙 작전시 병력을 해상에 떠있는 모함에서 해안으로 운반하는 수송장비이다. 초기의 상륙정은 흔히 보는 작은 나무보트였고 점차 발전하여 밑이 평평한 사각형 통 모양의 철선에 이르게 됐는데 배라는 기능적 한계로 인해 병력들 하선장소가 얕은 바닷속이 되다보니 해안에 있는 적의 집중사격을 받기 쉬웠다. 그래서 병력을 바다에서 해안선 넘어 엄폐물이 있는 육지까지 적의 총포탄을 막으면서 원스톱으로 운반할 장비가 필요하게 되고 그 결과 고안된 것이 수륙양용의 기능과 장갑차의 외관과 구조를 갖게 된 현재의 LVT라는 장비이다. 그런데 이게 참 희안한 물건이다. 13t의 중량에 병사 20여명의 몸무게를 합하면 15t가까이 되는 거대 중량이 어찌 바닷물에 뜨나? 어림짐작으로 봐도 중량에 비해 부피는 너무 작아 부력이 작용할 리 없었다. 국산 주정이라는데 국산 기술도 이만하면 어딜 갖다 내놔도 손색 없겠다. 바다위에 커다란 원을 그린후 주정은 모래밭으로 올라와 출입문을 열고 교생들을 제 뱃속에서 뱉어낸다. 교생들은 주정을 첨 타본 경험에 뿌듯한 느낌을 가지고 당당히 내렸다. 국군 홍보영화 속에서 해병들이 총격전 없이 상륙하는 이런 장면도 있음을 기억한다. 따라서 우리는 포항만 해안에 상륙한 것이였다. 그것은 좀 싱겁긴 하지만 해병대 캠프 제39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행한 상륙작전이라 생각해도 좋았다.
11) IBS 훈련
주정 한번 타 보는 것으로 그 훈련은 끝나고 우리는 대오를 정비하여 군가를 부르며 햇빛 속에서 다른 곳을 향하여 이동했다. 그런데 ㄷ자 모양으로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아까 LVT 타던 곳 바로 옆 모래밭이다. 모래밭을 밟고 직선으로 왔으면 그만큼 동선이 짧아 수월했을 텐데 어째서 ㄷ자로 삥 돌아오게 하는가? 아마 그것도 훈련이겠지....
그 모래밭에서는 IBS훈련이 있었다. 여러 대의 우람한 검은 고무보트가 모래위에 누워있고 사이사이 사병조교가 차렷 자세로 대기중이다. IBS 훈련이란 주로 적진에 침투할 목적으로 6인승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보트의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는 훈련이었다. 햇빛에 그을려 흑인같이 되버린 수색대 교관이 나와서 장비의 제원을 설명했지만 귀에 들리는 말은 고무보트의 싯가가 250만원이라는 것뿐이다. 교관은 조교들에게 시범을 보이게 한 후 특유의 IBS용 PT체조를 늘어지게 시킨다.
"2번 쪼그려 뛰며 돌기. 10회. 시이작!"
푹푹 빠지는 모래밭에서 고무공처럼 퐁퐁 뛰라 하니 될 법이나 한 일인가. PT체조로 거의 탈진할 즈음 다음에는 4명씩 200Kg넘는다는 고무 보트 좌우현에 세워 손잡이를 붙잡게 하더니 무릎 올려! 어깨 올려! 머리 올려! 하는 고통을 여러번 준다.
“허리 펴! 허리 펴란 말이야!”
머리 올려 때 교관이 고함지르자 키 큰 교생은 간신히 허리를 펴서 두개골을 짖누르는 고통을 더 심히 받는 대신 키 작은 교생은 그냥 보트를 떠받치게 된다.
“무릎 올려어~ 바다로 뛰어 갓!”
바다로 향해 몰려 갈 때 한 현에 3명씩 서야 하는데 4명이 붙었으니 앞발 뒷발이 부딪쳐 중간에 넘어졌으나 안 넘어진 다른 교생의 버팀 덕분에 보트를 떨어뜨리지 않고 바다 물까지 운반해 띄운다. 포항 바닷물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러나 땀이 비오듯 하는 몸을 얼른 바닷물에 적시고 싶어 일부러 힘겨운 시늉하며 물속에 나둥그러저 바닷물을 흠뻑 적시고 나서 보트에 올라탄다. 보트 난간에 엉덩이를 얹어 전방을 향해 앉고 한발은 바닷물에 한발은 보트안에 두고 양손으로 노를 붙잡는다. 함장신분으로 보트 맨 앞에 교생을 마주보고 앉은 현역해병 조교가 양현전방! 하고 외치면 좌우현에 앉은 교생 모두 노로 바닷물을 찍어 끌어당기고, 양현후방! 하면 모두 바닷물을 앞으로 민다. 좌전우후! 하면 좌현 교생은 노를 끌어당기되 우현 교생은 밀고, 우전좌후! 하면 그 반대로 한다. 이렇게 하면 보트가 전진, 후퇴, 좌회전 또는 우회전으로 조정되는 것이다. 한참동안 바닷물 위에서 보트를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패달링 (노젖기) 훈련을 계속했다. 패달링 구호를 제대로 소화 못하는 보트는 방향을 잡지 못해 다른 보트 옆꾸리를 들여 받는다. 흡사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함정이 북한 함정을 추돌 하듯이....
"해안상륙 선척순 10대!"
멀리 해안 쪽에서 이런 고함이 아득히 들렸다.
"선착순 10대랍니다. 양현 전방! 양현 전방!"
현역함장이 다급하게 작전명령을 외친다. 교생수병들은 합심하여 힘껏 노를 당겨 해변에 도착하니 선착순 안에 들은 모양이다. 이에 만족한 함장이 부하수병들을 바닷물에 뛰어들게 한다. 부하수병들은 깔깔거리고 서로 물을 끼얹으며 물장난을 친다. 패달링 훈련 후 땀과 바닷물로 뒤범벅이 된 모습으로 모래사장 위에서 IBS(고무보트)를 머리위에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또 소대별로도 사진을 찍는다. 지나고 나면 모두 못 견딜 추억일텐데 남는 것은 사진뿐 이겠지.
12) 해병혼으로 견뎌라
IBS 훈련후 교육대에 귀대도중 자동차는 해병전시관에 들렀다. 교생들은 1층 영화관에서 해병의 역사를 그린 짧은 기록영화를 봐야 한다.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창문을 모두 닫고 검은 커튼을 늘어뜨려야 한다. 이런 밀폐된 좁은 방에 교생이 촘촘히 들어앉으니 교생들의 몸에서 내뿜는 체열로 실내가 후끈해지고 땀냄새로 가득 찬다. 싸우나에 들어앉은 것처럼 옷속에 땀이 줄줄이 흘러 내린다. 민간인 복장을 하고 이마가 훌쩍 벗겨진 전시관장이란 사람은 에어콘이 고장나서 미안하다면서 해병 혼으로 견디라 한다. 해병혼만 갖다 붙이면 다 해명되는 것인가? 해병혼이란 모두 제몫을 다할 때 총화로서 발휘되는 것이지 제몫 제대로 않은 부분을 타인에게 인내로서 버티라고 주문하는 것은 해병정신이 아니다. 예정된 관람일 텐데 준비성 없는 전시관장의 벗겨진 이마가 더욱 미웠다. 영화 다 본 후 2층 전시장을 빠른 걸음으로 휘둘러보고 건물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그때까지 몸속에서 더운 열기가 전신에 뿜어져 나와 제되로 볼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였다. 건물 그늘에서 몇몇 민간인들이 담소하며 얼음생수를 마시는 모습에 얼핏 부럽다는 생각이 지나간다.
"할 만 하신가요?"
저녁식사 때 식판들고 부식을 받고있는데 옆에서 그런 말이 들렸다. 연대장이 배식 상황을 볼려고 서 있다가 맨 처음 들어온 나를 보고 건낸 말이다. 입소식 때 뭔가 맘에 맞지 않는다고 몇번이고 경례를 거듭하게 한 질긴 인상 그대로 가까히 봐도 자그만 체구에 까무잡잡한 표정이 강인하고 짖굳은 느낌을 준다. 그때 받은 인상으로 인해 나는 훈련강도가 이 사람 때문에 더 심해졌다는 가당찮은 오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엉뚱한 적개심으로 뭔가 치받는 말을 할려 했으나 나온 말은 그게 아니다.
"예, 할만합니다"
할 만하지 못하다 해도 그가 어찌해 줄 것도 아니고 또 어찌 해 달라고 바랄 것도 없었다. 군대서는 이상무가 제일 낫다.
저녁 식사하고 병사로 올라 갈 때 보급병이 새 군복을 하나씩 지급한다. 바닷물에 젖은 옷은 반납하는 것이니까 당연히 교생들은 세면장에서 젖은 옷을 벗고 몸을 씻었다. 근데 그곳을 지나가던 교관이 이 모습을 보더니 대뜸 크게 화를 내는 것이다. 교관의 지시없이 몸을 씼었다는 이유였다.그 화는 부당한 게 아니냐고 부산 모 대학에서 온 양교수, 경북 모 군청에서 온 김주사 등 일부 5소대 교생이 분연히 봉기하여 맞섯지만 오히려 연병장에 집합하여야 하는 기합을 자초하고 말았다.
"목욕시간은 따로 줄 건데 누가 목욕하라 했습니까? 교관이 여러분을 따라가면 교육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질타에도 불구하고 교생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고치지 않자 이에 더 기분 나빠진 교관은 우천교장으로 교생들을 소 몰듯 몰고 가서 자리에 앉힌 다음 땅꺼미가 져서 어두워진 후까지 훈계와 기합을 계속한다. 그러나 기합 후 교관은 병사 건물 1층에 있는 제되로 된 목욕탕에 교생들을 들여보내고 긴 목욕시간을 주어서 교생들의 어긋난 감정을 상쇄시킨다. 목욕탕 이래봐야 탕속에 물은 없고 샤워만 가동됐는데 인원에 비해 샤워기 수가 적었다. 비누칠하는 사이 샤워기를 뺏긴 교생은 뺏은 교생이 비누칠을 할 때까지 비누물이 눈속에 흘러 들어오는 아픔을 참아야 했다. 이런 경우는 해병혼으로 견디라 해도 불만스러워 해서는 않되지.
13) 담배
입소 24시간을 보내고 나니 3번 먹은 짠밥 이력이 붙었는지 약간의 정신적 여유가 생기고 빡빡한 내무생활 중에도 짧은 여유를 쪼갤 수 있게 됐다. 어느 식사시간 후 한 교생 뒤를 따라 무심히 병사 뒤뜰로 돌아가니 나이든 교생 여러명이 삥 둘러 앉아 열심히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저녁때 초가집에서 밥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국이였다.거기는 어느새 끽연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캠프 첫날 교관의 훈련시 유의사항 훈시중 끽연금지에 대해 5소대 교생들은 불만스러워 했다. 군대생활 시작하면 담배가 배급되고 이미 담배에 인이 박힌 4~50대 교생에게 금지시키는 것은 너무 심한 게 아니냐? 대오에서 이런 불평이 일자 교관이 이를 눈치채고 설명을 붙이는데 듣고 보니 수긍이 갔다.
"우리도 그리 생각이 들어 5소대는 허용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중학교 고등학생 입니다. 여자 교육생 중에도 담배 피우는 애들 있어요. 애들하고 같이 담배 피우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그래서 모두 금지하는 겁니다. 어렵더라도 교육질서를 위해 수범을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날밤 교관들은 교생들의 귀중품, 핸드폰, 지갑, 담배등을 모두 압수했다. 큰 봉투에 물건을 넣고 봉함한 후 겉에다 성명을 쓰게 하고 교육대 사무실에 보관하였다가 퇴소 전날 밤에 나눠준다고 했다. 이렇게 금연을 수긍하고 담배까지 모두 뺏겼으니 담배가 있을 리 없겠는데 눈치 빠른 몇몇 교생들이 담배를 교육대 캐비넷이 아닌 자기 사물함에 보관한 덕분에 눈치없는 교생들은 예기치 않은 절연상태에 빠질 뻔하다가 구해졌다. 가진 교생은 안 가진 교생에게 아낌없는 전우애를 베풀어 식후에 한 두대씩 나눠 피웠던 것이다.
나는 캠프 참가와 동시에 금연하기로 가족들에게 단단히 약속했지만 캠프 들어온지 얼마 안돼 그 각오는 맥없이 무너졌다. 처음에는 그래도 낯짝이 있어 뻑금 담배로 피웠으나 담배연기가 싸하게 머릿속을 마취시키는 맛을 못 견뎌 이내 연기를 목구멍을 넘겨 깊이 빨아들이는 온 담배질이 되어버렸다. 담배 한대 깊이 빨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 거기서는 담배 한대 여유롭게 피우는 것이 유일한 한가함이고 낙이였고 눈물겨운 낭만이였던 것이다. 그래도 교관의 눈치를 피하느라 빨리빨리 피고 자리를 떠야했지만 교관은 성인들의 흡연은 일부러 모르는 척 해주는 것 같았다.
그날 담배 한대 피우는 잠깐의 낭만을 얻은 대신 엄청난 질시를 받아야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날 목욕 후 담배 한대 얻어 뒤뜰을 향해 2층 외부 계단을 내려가다가 3층 여자 소대 내무반으로 올라오던 애 엄마와 마주 첬다. 엄마는 어색한 내 표정을 보더니 수상쩍은 낌새를 눈치채고 얼른 손을 뻗어 나의 얇은 런닝셔츠 앞 주머니에 갖다댔다. 그 속의 담배 한 개피 누워있음을 확인하고 째진 눈을 만들어 한참 쏘아보다가 말없이 올라갔다. 금연약속이 어찌된 거냐 하는 무언의 비난이였다. 못 보일 것을 보인 잘못에 대한 대가는 곧 이어 나타났다.
14) 아빠 안녕!
이날 순검 후 식당에서 처음으로 가족면회가 있었다. 사실상 매일 같이 움직이면서 만날 수 없었던 가족을 만나니 식당안은 웅장한 대화소리로 가득 찬다. 애들과 애 엄마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면회실에 나타났다. 그것부터가 아빠얼굴 빨리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모두들 속이 뒤틀려 있는 표정이 역역히 얼굴에 들어 나 있다. 포항 바닷가에서 해수욕 훈련도 있다는 나의 감언에 넘어가 캠프에 들어 온 반감도 있었겠지만 아까 애 엄마가 보았던 담배가 식구들의 기분을 크게 악화 시켰던 것이다. 서먹서먹 한 분위기 깰려고 내가 먼저 군말을 끄집어 내보았으나 내 의도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는지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식구들은 탁자 건너편에 일열 횡대로 앉아 눈을 내려 깔고 굳은 얼굴로 바위처럼 버티며 어떤 말에도 결단코 표정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애들까지 동조케 하여 엄마 아빠간의 빗나간 대립을 목격하게 하는 애 엄마가 야속스러웠다. 애 엄마가 교관이 나눠 준 백지에 쓴 입소 소감은 이랫다.
...이렇게 힘든지도 모르고 오기 싫은 것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이곳에 왔다. 우리 가족의 평범하지 못한 모든 것을 이 기회에 좀 더 노력하여 희망과 웃음을 찾고 싶어서였다. 오기 전부터 혜진 아빠는 스스로 해병캠프에 가서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했는데 와서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오늘 또 다시 담배를 들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스스로 약속했고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서 금연을 지키리라 생각했는데 간섭하지 말라는 것인지 통 알 수 없다. 남은 훈련 잘 견디고 가면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또 허물어 지고 있다. 우리는 끝까지 이렇게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내에게 이런 불신을 받는 남편이 되어 버렸다! 신뢰할 수 없는 가장으로서 내가 식구들에게 그나마 줄 수 있는 선물은 이 훈련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란 생각이 불쑥 들었다. 훈련을 버티지 못한다는 비난보다 우선 그런 배려가 급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정 힘들면 -나도 이렇게 훈련이 심한 줄은 몰랐으니- 중도에 퇴소하자고 의중을 타진했다. 그랬더니 그때까지 심드렁하게 듣던 애들이 먼저 이 말에는 조용히 입을 열었는데 그 반응이 의외였다.
"이왕 들어 온 건데 한번 버텨 보지..."
애들이 내 말에 호응하고 나왔으면 쫄병생활 다시 함에 답답했던 차에 다음날 바로 퇴소해 버렸을 것이다. 사태는 그렇게 일단 해소했으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찜찜한 응어리가 남아 있다. 훈련만 계속하겠다는 뜻이였지 내 잘못이 용서된 게 아니니까. 백지 한장씩 지급받아 입소소감을 쓴 사람중 교관이 몇몇 사람을 지명해서 쓴 것을 발표케 했다. 어떤 부인교생은 너무 심히 해병대에 아첨을 늘어놓는다. 아들을 해병대로 보내고 딸은 해병대 출신에게 시집 보내겠다! 가족반이라 해서 교육시간외는 가족끼리 대면과 보살핌이 허용될 줄 알았었는데 그걸 허용치 않는 해병대에 아직도 부아가 남아있던 내 심정은 그 찬사가 맘에 거슬렸다.
면회 후 남들은 즐거운데 우리만 껄그럽게 면회를 마치고 말없이 모두 내무반으로 향한다. 포항의 무더운 여름밤. 하늘엔 총총한 별들이 정답게 반짝이는데 우리 가족들의 마음은 뿔뿔히 흩어져있다. 그깟 놈의 담배 한대 들켜 가지고 이렇게 큰 성가심을 당한다! 2층 내무반으로 들어가는 순간 3층으로 올라가던 유정이가 고개를 뒤돌아보며 짧은 인사 한마디 보내고 사라진다.
"아빠 안녕!~"
그 말 여운이 눈물겹다. 아까 얼핏 읽은 유정이의 입소소감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꼽혀 있다. 취침중으로 불꺼진 내무반을 피해 복도에서 다시 찬찬히 읽어본다.
...여태껏 살아 온 동안 나는 하루도 행복한 일이 없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는 행복,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되는데... 나는 아직도 누굴 사랑해 본 적도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하루하루 살맛이 안 난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겹고 힘들다.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나는 죽으면 꼭 화장을 할 것이다. 내게 필요하지도 않고, 나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세상에 파묻혀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애 가슴에 이리 모진 칼을 꼽다니... 겨우 고1인 저 애 가슴에 내가 오히려 비수를 꼽아 선혈이 낭자하게 흐르게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한심한 아비가 있는가. 거듭 가슴을 친다.
15) 공수훈련
8월1일. 입소 3일째. 아침부터 군용트럭이 들어오더니 우리를 사단 영내 공수교육장으로 운반한다. 키 큰 마타워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산재한 생소한 훈련 시설물들이 지레 겁에 질리게 한다. 저런 과정을 한번씩 다 거처야 한단 말인가? 교관은 무거운 마음으로 공수 연병장에 집결한 교생들을 뜻밖에도 연병장 한쪽 가에 처진 야전텐트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뙤약볕아래서 교생에게 일사병이 생길까 염려하여 그늘에서 강의나 할려나 보다고 추측하고 이렇게 자상한 배려가 있나 하고 속으로 고마워했으나 웬걸! 탄띠와 수통을 끌러 놓고 나오라는 것이다. 갈증을 어떻게 하라고 저러는 것인가? 알고보니 공수교육은 마타워 낙하를 주내용으로 하는데 낙하시 몸에 착용해야하는 하네스 때문에 탄띠를 끌르라 한 것이었다. 대신에 큰 물통 3개를 교장에 설치해 준다. 공수교관이 나와 차렷. 열중셧. 차렷. 차렷인데 왜 움직이나? 정신들게 해줄까? 한 차례 겁을 주더니 공수 PT체조로 시작한다.
"1번 팔벌려 높이 뛰기 10회. 마지막 구호는 붙이지 않는다! 알겠나? 시작!"
"하나 둘 셋, 하나!"
258명이 한꺼번에 깡충깡충 뛰어오르자 깡마른 땅바닥에서 흙먼지가 자욱히 피어오른다. 몸에 피로가 축척되어 활력있게 움직이기 어렵다. 대신에 악을 쓰다 보니 목이 이내 쉬어버린다. 약40분 정도 뜨거운 맨땅 위를 뛰고 뒹굴자 끝내 여자 소대에서 교생 두명이 쓰러졌다. 그들은 즉시 엠블런스로 옮겨지고 그덕에 1소대와 5소대는 우천교장 그늘로 이동하여 쉬게 되었고 젊은 2소대와 3소대만 PT체조를 계속한다.
마타워란 비행기에서 낙하하여 지상에 착륙하기까지의 동작 즉 점프,체공, 접지준비 동작을 숙달하기 위하여 만든 약 15m높이의 탑처럼 생긴 구조물이다. 탑 꼭대기 층 좌우에 낙하하는 문이 있고 문밖 바로 위쪽에 굵은 와이어가 4가닥씩 약100m 멀리 착지점으로 비스듬히 뻗어있다. 교생이 뛰어나가면 와이어에 달린 도르레가 늘어뜨린 줄로 낙하한 교생의 몸을 붙들어 허공에 매달고 착지점으로 운반한다. 착지점은 교생의 발이 닿을 높이로 흙으로 언덕을 만들어서 도착된 교생이 거기서 정지하고 도르레와 하네스에 연결된 줄을 풀게 된다. 원래 공수교육은 낙하훈련, 접지훈련, 보조낙하산 펴는 훈련, 송풍훈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마타워 낙하훈련만 시킨다. 교관이 나를 포함한 50세 이상과 젊은 축에 드는 몇 사람을 불러낸다. 50세 이상에게는 헬멧, 하네스 착용과 탈의 요령을 일러주고 마타워에 오르거나 낙하를 끝낸 교육생들의 하네스 탈착 작업을 맡게 한다. 젊은 교생들은 착지점에 보내 낙하 후 착지하는 교생들의 착지동작을 돕는 일을 시켰는데 착지점에 도착한 낙하병의 몸은 날아온 탄력으로 인해 착지언덕을 지나처 나가게 되므로 이때 두명씩 긴 고무줄을 들고 서 있다가 착지병의 몸 중간쯤에 걸리게 하여 정지시키는 것이 그일이다.
한참 후 PT체조하고 와서 뻘겋게 달아 오른 얼굴에 땀에 젖은 2소대 3소대부터 하네스를 착용시켰다. 곧이어 마타워에서 교생들이 갖가지 비명을 지르며 줄줄이 떨어진다. 여자교생들의 찢어질 듯한 단발마의 비명소리는 듣는 이에게 스산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16) 머 할러 사서 고생하세요?
떨어지는 교생들을 올려다보다가 상륙전을 주기능으로 하는 해병대가 공수낙하를 목적으로 하는 공수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입고있는 붉은 색 상의가 햇빛에 많이 탈색되어 그 경력과 연륜을 짐작케 하는 늙으수레한 선임교관이 나이 많은 교생과 자기 제대후의 진로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이 질문을 받고 대답한다.
"한때는 해병대에서 공수교육이 중단된 적도 있지요. 육군에 공수단이 있는데 공수낙하 하지 않을 해병대에 공수교육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그럴 시간 있으면 상륙훈련 한번 더 하라.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 때 중단됐지요. 그 후 체력단련이나 또 비상시 대비로서 교육할 필요 있다고 주장되여 다시 재개 됐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한 교생이 아는 척하고 끼어 든다.
"공수교육은 해병대가 먼저 인연이 있는 거 아닙니까? 해병대 마크에 독수리 날개는 공수작전을 상징하니까. 육군 공수마크는 그 후에 만들어진 거고.”
1949년 4월15일 해병대가 창설된 후 해군의 마크를 사용하다가 1951년 8월1일 비로서 현재의 해병대 마크가 만들어 졌다. 해병대 마크는 리본, 독수리, 별, 닻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이 상징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독수리가 입에 물고 있는 리본에 적힌 글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는 글 뜻 그대로의 해병대의 목적을 의미하고, 독수리는 승리의 불사신인 해병대의 기상을 의미한다. 육상전투를 상징하는 별은 신성한 국방의무와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해병대의 사명을 나타내고, 해양전투를 나타내는 기울어진 닻은 바다위에 함정이 정선하여 상륙작전 개시를 의미한다(그런데 미국 해병대의 마크와 너무 닮아 그것을 배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해병 마크의 독수리는 공수작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또 당시는 군대창설에만 신경 썼지 초창기 우리 군대에 공수전략이란 개념이 아예 있을 리 없었다. 이 점을 그 교생도 잘 알 것인데도 독수리를 억지 해석하여 해병대에 공수교육을 갖다 붙이는 태도는 이미 교생들의 마음이 해병대 사랑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교육대에서 운반한 점심식사를 공수교장에서 먹고 오후 일과가 시작됐다. 한참 후에 교생들이 마타워를 한번씩 뛴 즈음 나도 낙하복장을 하고 마타워에 오를 지상 대기선에 섯다. 마타워에서 무섭다고 쉬 뛰어내리지 않을려는 교생 때문에 시간이 조금씩 더 걸려 4층계단 마다 교생이 지체되어 한참 지상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때한 한 동료가 짚차 세워두고 그 옆 나무그늘에서 땅바닥에 신문 펴 놓고 한가하게 보고있는 해병병사를 나즈막히 부른다.
"....담배 있소?"
그 병사는 고개를 끄떡이고 반쯤 남은 군용담배 한갑을 이편으로 슬그머니 던져준다. 그러고는 짚차 안에서 알류미늄 캔 서너개를 갖다준다. 입소전엔 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청량 음료수였는데 거기서는 미지근해도 먹을 만 했다. 먹지 않고 두었다가 애들 줄까 했지만 뭔가 티나 보이게 하는 것도 싫고 이딴 것 감추는 게 좁쌀같애 그냥 마셔버렸다.
"의무참모 차요?"
내가 그 병사에게 물었다. 과거 육군 5사단 현역병 시절 내가 복무하던 의무중대의 의무참모 찝차가 사단 5번인 것을 기역해 내고 그 찝차의 번호와 같아서 물은 것이다.
"아닙니다. 교육대장님 찹니다."
이크, 이거 잘못되는 거 아냐? 아까 대위 계급장을 단 교육대장이 훈련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저 친구가 교육대장에게 교생들의 훈련군기가 형편없다고 일러바치면 어떻하지? 거기 있는 교생 모두가 눈을 뗑그렇게 뜨고 그를 처다 보는데 곧 병사의 동정심에 찬 다음 말이 이어져서 결코 배신하지 않을 자기 인격을 내보이고 우리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킨다.
"뭐 할려고 이런 고생 사서 하세요? 집에서 편히 쉬시지... 우린 보기만 해도 지겨운데..."
17) 552번 교생 낙하!
마타워는 지상에서부터 낙하하는 층까지 4개층 계단 오를 때마다 계단 앞에서 쪼그려 뛰기 10번씩 해야 한다. 마타워 층계를 차례로 올라 맨 꼭대기 바로 아래층에 섯다.
"올라가도 좋습니까?"
"올라와!"
맨 꼭대기 층에서 낙하를 지도하는 교육대 교관들은 몰라보게 사나워져 있다. 그것은 낙하를 겁내는 교생들의 정신을 환기시키고 공포심을 상쇄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러는 모양이다. 교관이 무어라 성난 고함치면서 나의 하네스에 도르레 줄을 연결시키고 잠프 문에 서게 한다. 발등 아래로 지상을 내려다 보니 몹시 현기증이 난다. 10.8m라는 높이는 가장 공포심을 유발시킨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훌쩍 뛰면 그대로 떨어져 저 밑에서 몸이 박살나지 않을까? 전율이 오싹 전신을 훝고 지나가면서 식은 땀이 울컥 솟는다. 순간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맹열히 치솟는다. 나도 몰래 낙하 문을 외면하고 뒤돌아 서서 도망갈 채비를 했다.그러나 거기엔 험상 굿은 교관이 버티고 서서 내 눈을 노려본다. 해병대판 산상수훈을 강설하던 그 교관의 눈빛에서 모멸감을 느낀다. 도망도 못가고 뛰지도 못하는 곤욕스럼에 괴로워하며 다시 뒤로돌아 점프문앞에 섰다. 그래도 쉬 뛰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니 심신이 콩알만큼 쪼그러짐을 느낀다. 그러다가 그것도 꼴사납게 보여 두눈 딱 감고 다리에 탄력을 가해 얼른 몸을 문밖 허공으로 던져 버렸다. 나서자마자 뚝 떨어지는 몸을 도르레 줄이 덜컹 붙잡아 공중에 매달린다. 정신없이 건너편 착지점에 착지 후 공수!공수! 외치며 돌아오면서 나는 한번 더 낙하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까 뛰어내릴 때 지상이 무서워 눈을 감고 뛴 것이 후회됐기 때문이다.
"저것이 공포다. 밀리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맞딱 뜨려 대응하라! 운명이란 용기있게 대들면 굴복한다지 않는가"
내가 내게 타이른다. 이미 애들과 애 엄마는 한차례 뛰어내렸는데 엄마에게 애들을 한번 더 뛰게 하라했더니 질겁을 한다. 두번째 마타워에 오를때 한 동료가 내게 물었다. 아까 뛰지 않았어요? 그래요. 자유 이용권 사셨어요? 해서 한바탕 웃었다. 낙하층에 다시 섯다. 지상의 사람들이 개미처럼 내려다 보인다. 심호흡을 하고 눈 크게 뜨고 지상을 노려보며 마타워 문을 냅다 박차고 나간다.
"552번 교생 낙하!"
허공을 가르며 몸이 뚝 떨어진다. 귓전에서 바람소리가 부서지고 땅바닥이 내 눈으로 확 달려든다. 그 순간 몸은 추락에 반발하는 어떤 완강한 힘에 부딧치며 공중에 사정없이 내동뎅이 처진다. 달려들던 땅바닥이 저만치서 지진일듯 요동을 치며 갑자기 정지한다. 곧 몸은 시계추처럼 진자운동 하면서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마타워에서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면 뛰어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뛰었다해도 공포를 완전히 극복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마음에 남은 상태에서 에라 모르겠다하며 감행해 버린 결과이다. 뛰고 나니 세상에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어 하늘에서 늘어뜨린 줄이 박살나기 직전에 몸을 구한다. 세상살이도 이럴 것이다. 험한 세상 도처에 널린 불안요인을 너무 겁내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없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인간 능력과 본성의 한계로 가능하지도 않다. 극복 되지 않은 부분은 용기가 아니면 만용에 맡기고 일단 결행 하자. 그러면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 좋은 길이면 행운이고 나쁜 길이라 해도 괜찮을 수 밖에 없다.앉아서 파국을 맞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18) 군대는 역시 줄을 잘 서야 돼
...사나이 가슴에 큰 뜻 품었다. 불사신 그 이름 영원한 해병. 노도와 함성이 산하를 덮을 때 상륙전 선봉에서 우리는 간다. 무엇이 두려우랴 무적의 사나이. 겨레와 함께 하는 영원한 해병...
공수교육에서 교육대로 돌아와 저녁 식사대기 중 "영원한 해병" 군가 교육 받았다. 군가교관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가슴이 아파 온다고 한다. 무쇠같은 저 사람에게도 저런 감수성이 다 있나? 나도 순간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노래 말중 상륙전 선봉에서 우리는 간다는 말이 특히 비장하고 슬펐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는 간다는 구절은 팔각모 사나이에도 나오지만 거기는 우리는 멋쟁이라는 흥겨움 분위기가 깔려 비장감이 끼어 들 여지가 없다.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이 곡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이 간다는 뜻은 전장으로 이동한다는 뜻임과 동시에 죽는다의 속된 표현도 포함된 의미로 느껴진다. 노래속의 병사는 현재 상륙작전의 제일선에 서있고 노도와 함성이 산하를 덮었다고 하니 때는 병력이 해안에 쇄도하고 공격을 개시하여 적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이런 장소에서 생존은 전혀 기대할 수 없고 아예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 그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무엇이 두렵냐 우리는 불사신이라고 자기최면을 걸고 여기서 죽어 영원한 해병이 되자고 다그친다. 그래서 이 노래 부를 때는 저승사자의 초대장을 받아 놓아 모든 것을 체념하고 군용차 적재함에 앉아 돌아 올 수 없는 전장으로 이동하는 슬픈 예비유령들의 섬뜩한 행렬이 상상되었던 것이다. 30년전 과거 내가 맹호부대 마크를 달고 월남 파병시 해병들과 함께 미군 수송선을 탓었는데 그때 그들이 부른 군가에 청룡은 간다! 청룡은 간다! 하는 반복구절이 있었다. 그 후렴으로 거듭 죽음을 각오하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고 이 곡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사 후 식기 세척장이 너무 붐벼 순서를 기다리느라고 세척장 앞에 3열 종대로 앉아 있었다. 그 때 쇳소리를 내는 군가교관이 식기세척 군기를 잡고 있다가,
"해병대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말인 즉 열중에 맨 앞에 있는 사람끼리 가위바위보를 시켜 진 쪽의 열이 이긴 2개열의 식판을 모두 닦는다는 것이다. 2열과 3열이 대결하여 3열이 지고 1열과 3열이 붙어 또 3열이 패했다. 나는 2열에 끼어 있었는데 식기세척이 귀찮고 그 세척상태를 취사병들에게 검사받아야 함이 찜찜하던 차에 세척을 면하게 되니 순간 유쾌함이 치솟았다. 1열 2열 모두가 이게 웬 횡재냐 하고 3열에게 식판을 넘겨주고 웃으며 흩어진다. 제 잘못 없이 남의 식판까지 딱게 된 3열은 과장되게 투덜거린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군대는 역시 줄을 잘 서야 돼!"
일과시간이 지났는데도 군의관은 교육대까지 따라와 진료를 계속한다. 나는 몸에 땀띠가 나 근질근질하여 진료실을 찾았더니 젊은 군의관은 땀띠 부위가 너무 넓어 투약으로는 안되겠다며 주사 한방 놔야겠단다. 그 진료실 침상에 무슨 치료받는지 여자 교생 하나가 손목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어서 멋 적었지만 엉덩이를 까 내릴 수밖에 없었다.
순검 후 곧장 자는 사람도 있지만 담배 피는 교생은 모두 병사 뒤뜰로 나가 한번에 담배를 2~3대씩 피우고 돌아온다. 내게 담배 주던, 부산에서 아동복 가게를 한다는 한 동료는 담배 한대 피운 후 "소주 한잔 마셨으면...."하고 중얼거리는 것이였다. 술 잘 먹게 생겼는데 그 어감에 소망 간절함이 베어 있었다. 집에서 소주 팩 하나 배낭에 넣고 온 게 생각나 - 교관이 소지품 압수시 깜박 잊고 그걸 내지 못했다- 내무실에 올라가 그걸 꺼내와서 전기불이 비추는 뒤뜰 한쪽에 퍼질러 앉았다.남들 못 먹는 별식을 먹으려하니 비록 안주같은 건 없어도 쓸데없는 풍요감이 들었다. 한 입에 다 털어 넣어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300ml 짜리 작은 팩을 "한 잔 하이소" 권하며 서로 두번씩이나 팩 주둥이에 입술을 갖다 댔다. 도무지 소주 맛을 모를 맹물이였다.더운 날씨 탓인지 소주 특유의 주정미각도 싹 가버렸다. 소주 한잔 턱이라고 할 것 없이 피로감에 쉬 잠에 빠졌다.
19) 유격대
8월2일 입소 4일째. 교육대가 유격교장이어서 아침식사 후 바로 교장 이동하고 유격교관은 소대 구분없이 3개 교육제대를 구성시킨다. 유정이와 내가 같은 교육팀이 됐다. 젊은 교관의 일어지하에 꼼짝없이 따르고 훈련 중에 혹시 실수하는 아비모습을 유정이에게 보이게 되는 것이 심히 꺼림직 했다. 피해 버리고 싶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비겁한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 대오에 머무른다. 유격교관은 꽤 코믹했다. 앳된 얼굴에 목소리부터가 깡통소리이다.
"2소대! 아직도 잠자? 이런 정신 가지고 줄 타겠어? 더 재워 줘? 뒤로 취침!"
교관은 유격 PT로 한차례 교생들의 긴장을 유도시킨 다음 긴 밧줄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이 밧줄은 유격대 여러분의 생명줄이다. 잘못 묶으면 큰일 나. 살고 싶지 않은 사람 있어? 반대로 하면 돼!"
나는 공연히 뜨끔해서 설명에 귀 기울였다. 밧줄 중간을 접어 접힌 부분을 배꼽부근에 탄띠 밑에 가볍게 고정하고 양 끝단을 대칭되게 양 허리와 다리사이를 지나 앞으로 나와서 맨처음에 접은 중간부위를 휘감아 돌고 다시 한번 똑 같이 반복 경유한 다음 좌측 옆꾸리에서 단단히 묶고 혹시 풀릴지 몰라서 한번 더 묶는다. 묶는 방법이 좀 까다로웠는지 묶는 중 대오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잘 묶는 교생이 못 묶는 교생의 밧줄을 둘러 매주고 있는 대오사이를 코믹교관이 어슬렁 지나가면서 대갈일성 한다.
"한국사람이 한국말도 모르나?"
20) 검은 박쥐
생명줄을 다 묶은 후 교육대에 인접한 국도를 가로질러 앞산 줄타기를 교장으로 이동했다. 코믹교관이 한참동안 경사 길에서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으로 교생들의 심신을 다시 한번 긴장시킨다.
"고혈압환자,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 줄 타고 싶지 않은 사람 있어? 사고 치지 말고! 그런 사람, 열외!”
몇몇 빠지는 교생을 제외하고 일부는 외줄로 일부는 두줄 또는 세줄타기로 보낸다. 유정이가 외줄 타기로 이동한 후 얼마 있다가 내가 이동하고 2번 라인 앞에 앉고 보니 172번 철모를 쓴 교생, 유정이가 막 외줄 위에 몸을 얹고 있다. 숨죽이고 다음 동작을 주시한다.
“172번 교생, 도하 준비 끝!”
“도하”
“도하!”
우렁찬 복창을 하자마자 유정이는 외줄 위에서 자벌레처럼 쑥쑥 전진한다. 야~ 잘 탄다! 외줄 타기 동작이란 외줄이 우측 옆꾸리에서 좌측 어께로 지나가도록 몸을 줄 위에 비스듬히 얹고 왼쪽 다리는 늘어뜨리고 오른쪽 다리는 무릅을 굽혀 발등을 외줄에 걸어 균형을 유지하는 지렛대로 이용하고 양손을 앞으로 뻗어 외줄을 잡아 당겨 몸이 앞으로 나아갈 때 유격! 이라고 소릴 지르는 요령인데 유정이는 저런 것을 언제 봤다고 저리 능숙한가?
"유정이! 화이팅! 힘내~!"
잘 나가는 애에게 격려를 보낸다. 유정이는 중간쯤에서 머리를 좌우로 한번 돌려 보다가 갑자기 몸이 줄 밑으로 삥 돌았다. 내 속이 덜컹했으나 유정이는 외줄에 거꾸로 매달려도 손발을 동시에 놀리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 모습이 얼핏 박쥐를 닮아 보였는데 이 상상은 그대로 들어 맞았다. 언젠가 해병대의 유격대 마크를 본적이 있는데 양 날개를 쫙 벌린 검은 박쥐가 유격대 상징으로 그려져 있었다. 후일 유정이는 줄 밑으로 뺑 돈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줄 위에서 끝까지 갈려면 갈 수 있었어. 근데 팔이 너무 아픈 거야. 다른 애들이 줄 밑에서 매달려 가는 걸 보니 그게 더 쉬운 것 같애. 그래서 일부러 뺑 돈 거야. 근데 그게 더 힘들었어."
첨 해보는 기술이 그 정도이고 정신자세도 그리 넉넉하면 정말 대단하지? 다른 교생들은 몸을 줄에 얹자마자 뱅그르 돌아가 박쥐가 아니라 넝쿨에 동동 매달린 포도송이 상태가 되거나 요행이 중간쯤 갔을 때는 힘이 빠저 축 늘어저 교관을 애먹이는 경우가 많았다. 매우 뚱뚱한 517번 교생은 외줄 중간쯤에서 힘이 부치자 아예 가기를 포기하고 외줄에 얼굴을 괴고 의자에 앉은 자세로 매달려서 교관의 성난 채근에도 날잡아 잡수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돋은 외줄 교관은 결국 다른 교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교관이 어디선가 쇠 갈고리가 달린 긴 밧줄을 갖고 와 카우보이처럼 빙빙 돌려 던지고 갈고리가 그 교생의 생명줄을 걸어 여러 교관들과 함께 영차! 영차! 하며 잡아 당겨서 겨우 나왔다. 나도 중간까지는 줄 위에서 제대로 가다가 중간쯤 줄의 긴장이 풀어진 곳부터는 균형유지가 쉽지 않아 줄 밑으로 돌고 매달려서 다 건너왔다.
우리 인생살이도 이와 같을 것이다. 우리는 희망이란 외줄에 의지하여 인생의 강을 건넌다. 희망이 인도하는 데로 순조롭게 목적지에 다다른 사람도 많겠지만 희망이 때로 배반하여 곤경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때도 희망이란 외줄만 붙들고 노치지 않는다면 약간 축소된 목적지나마 끝내 도착하게 된다. 만약 생의 의지마저 포기할 상태라도 생명을 끊지 않고 기다리면 교관이 던진 갈코리든 하늘이 내린 생명줄이든 뭔가 도움이 찾아와 생을 계속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린 교생들이 죽을 힘을 다해 외줄을 당겨 계곡을 건너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때 깊은 절망에서 한때 죽음을 상상을 했던 내 자신을 돌이켜 보며 반성한다.
21) 나는 신청곡 받아야 부르는데
외줄 탄 후 유격! 유격! 외치며 좁은 계곡 대기장소에 가니 대기자들은 코믹 교관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여자교생 한사람에게 노래일발 장진! 발사! 했는데 노래가 터지지 않자 교관은 여자에게 재촉하는 압력수단으로 나머지 교생들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으로 못살게 굴고있는 것이었다. 그사람 참 실실 웃으면서 괴롭힌다. 그래도 말투가 전혀 밉지 않다. 그런데 그 답답한 아가씨는 동료가 계속 괴롭힘을 받는데도 노래 소리를 터뜨리지 못한다. 군복 때문에 분별이 되지 않지만 꽤 어리고 수줍은 여자 앤가 보다. 같은 여자 교생들이 빨리 하라고 짜증내는 데도 여전히 하지 못한다. 끝내 하질 않자 코믹교관은 그 여자 교생을 들어 보내고 막 외줄 타고 오는 보름달처럼 생긴 여자교생 하나를 대신 세웠다. 가만히 보니 어제 진료실에 누워있던 교생인 듯 했다. 그런데 이 보름달은 오히려 능글 맞았다.
"나는 신청곡 받아야 부르는데...."
긴장된 곳에서 그런 말하는 폼이 교관을 오히려 갖고 노는 듯 했다. 교관은 죄없는 교생에게 기합을 그치고 싶어 아무거나 부르라는데도 보름달은 한사코 신청을 받겠단다. 신청할 사람 없다해도 끝끝내 버티다가 결국 교육시간이 다 지나버려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이 불가사의한 사실의 이유는 이날 밤 면회시 애 엄마의 설명으로 알았다.
"걔 그거? 교관관심을 끌려는 수작이야. 기집애들 말도 못해. 교관들 관심 끌려고 희안한 짓거리 다하지. 한번은 교관이 들어와 동작 그만 차렷 했어. 그런데도 한 애가 교관보고 생글생글 웃었지. 좀 튈려고. 교관이 뭐랬는 줄 알아? 웃지마라 매스껍다!"
23)여자 유격 교관감이야
교장 이동하여 이번에는 기초 레펠 과정이다. 나무로 만든 가로세로 약10m정도 높이의 판구조물에 뒷편은 약간 비스듬하게 되어 매듭을 중간중간 엮은 굵은 밧줄을 잡고 올라가고 전면은 수직으로 되어 레펠로 내려오게 되어있다. 유정이가 제 순서되어 가더니 교육받은 데로 좋은 폼으로 내려온다. 내 차례가 되어 장갑과 고리를 배급받고 안전구호를 외친 후 대기선에 대기중이였다. 그때 앞에 선 2명의 교관이 나누는 대화를 무심히 듣게됐다.
"야. 오늘 여자 유격 교관감을 하나 봤다니까!"
"뭔데....?"
"연대장님도 보시고 쟤가 누구냐고 묻더라니까!"
"어쨋길래?"
"한 여자 교육생이 기초레펠 탑에서 내려 오는데 정확한 폼으로 리듬까지 넣어 통통 튀어가며 내려오는 거라. 내가 봐도 아주 잘 해. 유격 교관감이야.”
"몇번 인데?"
"171번!"
내 귀가 번쩍 띄었다. 뭐 171번? 혜진이 아냐? 내가 그 대화에 불쑥 끼어 들었다.
"그 교생이 몇번 이라구요?"
"171번이요. 잘 아세요?"
"...내 딸이요!"
내가 듣기에도 너무 으시대는 투였다. 경사판을 밧줄 밟고 등판함이 좀 버거웠으나 혜진이가 그리 잘 탔다는 데에 힘입어 억지로 다 올라갔다. 그러나 내가 힘에 부침을 한눈으로 간파한 탑 위의 조교가 가장 쉬운 방법- 허리 레펠로 뒤로 내려가는- 으로 내려가게 한다. 이 사실은 결국 내가 군대 안간 우리 애들보다 훈련능력이 못하다는 증거가 된 셈이였다.다른 팀들은 절벽 레펠을 하고 있다. 수직으로 깍아지른 45미터 절벽에 개미처럼 붙어서 외밧줄에 매달려 조심조심 내려온다. 일부는 헬기 레펠이라고 공중 줄다리에서 늘어뜨린 밧줄로 순식간에 지상으로 내려오는 훈련이다.
면회시에 혜진이가 전한 말이다. 그때 절벽 레펠하던 팀은 혜진이네 팀이였다. 절벽 위에서 하강순서를 기다리던 혜진이에게 철모번호를 본 1소대 교관이 말을 붙였다.
"171번 교생! 아빠랑 같이 왔지?”
"예"
"너희 아빠가 내게 부탁한 게 있어.”
"뭔 데요?"
"너한테 어렵고 힘든 훈련을 시키라고"
"......"
"네가 너무 나약하고 의지력이 약해 강한 정신력을 키울려고... 이거 할 수 있지? 내려 갔다가 한번 더 와!"
내가 교관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는 말을 듣고 애 엄마는 이 사람이 애를 잡을 일 있나 하고 거센 타박을 주었으나 그땐 이미 혜진이는 교관의 주문을 능히 소화해 낸 후였다. 그런데도 만약 절벽 하강시 애가 힘이 떨어저 땅바닥에 떨어졌다면 하고 상상하니 써늘한 소름이 뒤늦게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23) 각개전투
오후엔 다시 군용트럭에 실려 각개 전투 교장으로 갔다. 교생들의 심신에 최고의 괴롭힘을 준다던 마지막 교육과정이다. 이날도 엄청 더운 날씨인데 각개 전투 교장은 황토바닥의 지열 때문에 더욱 더웠다. 각개 전투란 고지를 뺃는 분대단위 공격전술로서 공격 출발선에서 돌격지점까지 약500m되는 거리에 중간 중간 있는 장애물과 철조망을 높은 포복과 낮은 포복, 응용포복으로 건넌 후 마지막 돌격하여 폐 타이어 여러개로 엮어 만든 적군을 총검술로 제압하고 대검으로 찔르는 훈련이다. 이것은 별 교육상의 매력이 없어 보였다. 사회 나가면 누굴 대검으로 찔러 죽일 일 있나?
이날 시범조에 뽑힌 5소대 일부가 큰 곤욕을 치뤘다. 그들은 대구의 한 회사에서 단체로 온 직원들인데 해병대 출신이라는 사장이 교육대에다 직접 주문하여 땅을 기게 됐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 회사 직원10명이 M-16 소총을 모방한 가짜 총을 들고 나와서 각개전투 전 과정을 교관에게 직접 교육받고 다시 한번 그대로 전 교생에게 시범을 보였다. 그들이 철조망을 밑으로 통과하는 과정에서 본 장면이다. 그들중 제일 나이가 많은 분대장 교생이 “철조망 통과!"하고 소릴 지르자 분대원들이 복창하면서 일제히 땅에 들어 누워 손으로는 철조망을 위로 들추고 양발로는 땅바닥을 긁어 몸을 좌우로 뒤틀면서 위쪽으로 조금씩 이동시켜 통과한다. 그런데 내 앞에서 시범을 보이던 교생 하나는 철조망 중간쯤 들어갔을 때 그만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복부 비만형인 그는 체구가 너무 두꺼워 낮게 깔린 철조망을 아무리 밀처도 복부가 통과할 높이까지 들어 올려지지 않고 들어간 방향으로 도로 나올려니 이번에는 아래쪽 철조망이 손에 닿지 않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위로는 뜨거운 햇빛이 정면으로 내려 쬐고 밑에서는 지열이 후끈한 땅에 들어 누어 용을 쓰나 소용없으니 그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그는 철조망에 짖눌려 꼼지락거리는 지렁이 같이 보였다. 그 고생 이루 말할 수없이 딱한데 그 모습을 보고 몇몇 체신머리 없는 교생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다른 교생은 벌써 통과하고 누워 쏴 자세로 다음 과정을 대기 중인데도 그가 통과하지 못하자 이 광경을 멀리서 본 교관이 가까히 와서 사태를 파악하고 난 후 난감한 표정을 짖더니 아래쪽 철조망을 들추어줘서 그는 도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철조망을 빠저 나와 자세를 고처 앉고 나서 누군가 모를 웃은 사람에게 궁시렁거리며 정말로 화를 냈다.
이들은 시범보인 노고의 보상으로 시범 후 살수차 앞에 일렬로 서서 호스에서 뿜어저 나오는 거대한 물줄기를 직접 몸에 맞는 야외샤워하고 끝날 때까지 푹 쉬는 특혜를 누렸다. 그들은 교장 그늘 밑 맨앞 2열로 앉은 대오를 흐뜨리지 않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자신들의 노고에 대하여 서로 시끄럽게 담소한다. 그 모습은 작전을 성공하고 돌아온 특공대였다. 철조망을 통과 못한 뚱뚱한 교생도 거기 끼어있다. 이때 몸이 아프다고 잔꾀를 부려 내내 그늘에 앉아 있던 나이든 한 교생이 자기가 훈련에 빠진 것이 좀 민망했던지 그들에게 다가가며 칭찬하는 말을 건낸다.
"큰 욕 봤심니더. 대단하요 대단해!
이 과장된 찬사를 듣고 그게 또 민망해진 특공대원 하나가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구. 땅바닥에 잔돌멩이만 없으면 할만 할낀데 예"
할만 하다니? 저 사람은 언젠가 또 여기 오고싶은 모양이지? 중학생소대만 직접 돌격선 땅바닥을 기고 나머지 소대들은 포복훈련로 보냈다. 뙤약볕 아래 달궈진 자갈밭에서 일어섰다 업드렸다 기었다 단조롭게 반복한 것은 돌격선을 뛰어가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24) 517번 교생
휴식시간중 다른 교생은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교관의 부축을 받으며 몹씨 뚱뚱한 517번 교생이 연병장을 터벅터벅 돌고있다. 그 교생은 뙤약볓 속에서 땀 뻘뻘흘리며 괴로워하는데 교관은 모른 척 계속한다. 살 빼라는 교관의 보살핌이다. 5소대에 그같이 몹씨 뚱뚱한 교생이 한 명이 더 있었다. 이들 둘은 몸에 맞는 옷이 없어 우리와 다른 군복을 입었는데 그 옷 모양이 이상했다. 하의에 앞뒤 주머니가 두개씩 붙어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뚱뚱한 사람이 입겠금 허리품을 늘렸는데 늘린 방법이 웃겼다. 하의의 양허리 재봉선을 뜯고 거기다 다른 하의의 옆구리에서 바지 깃단까지를 폭넓게 한일자로 쭉 짤라다가 그대로 갖다 붙여 재봉한 것이다. 그러니 재봉선이 3개에다 원래 앞뒤 주머니사이에 다른 하의 앞뒤 주머니가 그대로 붙어 4개가 된 것이다. 윗도리도 겨드랑 밑을 그런 방법으로 넓혔다.
옷 모양도 웃겼지만 옷 색깔도 웃겼다. 그들 옷은 현재 사용하는 대한민국 해병대의 옷 색깔이 아니라 미국 해병대가 사용하는 회색 빛갈이였다. 아마 거구의 미국 해병대원이 입던 폐품을 영내 사용용으로 재생한 것 같았다. 등판에 굵직한 영문이 찍힌 퇴색한 회색군복을 입은 그들의 모습을 뒤에서 보면 영판 미국영화에 나오는 죄수 같았다. 거기다가 옷을 제대로 여미지 못하여 항상 앞섭이 헤벌레 열려지고 디룩디룩 걷는 모양이 볼 때마다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25) 진짜 해병대원
오후교육 중간쯤부터 5소대는 교관들의 투철한 경로정신에 힘입어 우천교장 그늘에 앉아 한가하게 쉬게 됐다. 교장의 맨 윗 계단에 앉아 눈밑으로 펼처진 산하를 이국 풍경인 양 내려다본다. 태양열과 지열로 나무잎도 풀잎도 축 늘어진 것 같다. 햇빛 속에서는 열풍이던 바람이 그늘로 들어와서는 시원한 산들바람으로 변한다. 이렇게 그늘에 앉은 것도 피서다! 병영밖 신산스러운 사회생활을 잊고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맘먹기에 따라 최소한 퇴소시 까지는 가능한 일인데 역시 그럴 수가 없었다. 언덕너머 단축 각개전투 교장에서 들려오는 1소대의 악을 쓰는 복창소리가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애처럽게 들렸기 때문이다. 평소 저혈압이 있는 애엄마가 뙤약볕 아래에서 포복훈련을 잘 견뎌낼지 걱정이 되었다. 애들은 몰라도 애엄마는 그늘로 데려오고 싶었다. 지난번 담배사건 이후 아직까지 남아있는 찜찜한 구석을 위로하지 못했다. 교생이 가는 곳이면 엠블런스와 함께 꼭 따라붙는 군의관에게 사정을 말하니 그 군의관이 아무 말 없이 햇빛속을 터벅터벅 걸어 언덕넘어 미류나무 숲 뒤쪽으로 갔다가 한참만에 되돌아온다. 그는 애 엄마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혼자 왔다.
"170번을 만났습니다. 원한다면 교육에서 빼주겠다고 했더니 원치 않는다고 해서 그냥 뒀습니다."
원치 않는다고? 왜? 교육 후 “無敵 海兵隊”란 일필휘지를 세긴 돌탑 앞에서 소대별로 사진찍고 각 가족들이 차례로 사진을 찍을 때 그 이유를 물었더니 흐르는 땀을 딱지도 않으며 애 엄마는 담담히 이렇게 대답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교육시간 다 되는데 중간에 빠져서 교육 제되로 안 받았다는 느낌 가질 게 뭐 있겠어. 죽일테면 죽여라 난 다른 생각 할란다 하고 버텼지.”
나는 애 엄마 말이 끝나자마자 대번에 거수경례를 올려붙이며 외쳤다.
“필씅! 혜진 엄마는 진짜 해병대원 다 됐구나! ”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에 눈빛만 초롱초롱한 애들과 애 엄마는 빙그시 웃으며 1소대 쪽으로 걸어간다. 교생들 사이로 사라지는 식구들의 황토먼지로 범벅이 된 군복 뒷모습이 여름 햇빛 속에 더욱 눈부시다. 명예를 위해 고통을 선택하고 한가함을 버리다니! 오! 그 생각에 축복이 있을 진저...
26) 빨간 명찰
교육대 귀대한 후 드디어 빨간 명찰과 빨간 교번을 받았다. 해병대의 상징이다. 진홍색은 정열, 용기, 신의, 젊음을 조국에 바친 해병대의 전통을 상징하고 황색은 땀과 인내의 결정체임을 상징한다. 이로서 모든 훈련과정이 끝났음을 느낀다. 이것을 입소시에 주지 않고 퇴소시에 주는 이유는 심한 훈련을 통과의례로 거치게 하여 빨간 명찰의 소중함을 각인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지금까지 입은 군복을 반납하고 새 군복을 지급 받았다. 새 군복에 빨간 명찰을 달아 놓고 보니 이제야 비로서 제멋이 난다. 이 옷을 입고 내일 퇴소식을 거행할 것이다. 해병대는 돈도 많다. 14끼 밥값 반도 되지 않을 훈련비 17,450원을 받고 4박5일 침식제공에 옷이 벌써 세벌째다. 새옷을 받고 나니 믿쪄도 보통 믿찌는 장사가 아닌 캠프교육을 유지하는 해병대 사령부,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는데 내가 턱도 없는 이유로 공연히 미워했던 교육 연대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제대 말년이네..."
명찰과 새 군복을 받아 든 얼굴들이 감개무량한 표정이다. 입소시 소침하던 기분은 교관 말처럼 이미 의기탱천으로 바뀌어 있다. 소대장 교생이 부지런히 교관실을 왕래하더니 이번엔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나눠준다. 사진 속의 내 모습이 남의 얼굴인 듯 생소하다. 모든 장면이 바로 어제 그제에 있은 일인데 아득히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아까 각개전투 교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랜다. 혜진이 유정이가 벌써 이리 컸나? 돌탑 앞에 4명이 일렬 횡대로 늘어섰는데 유정이 혜진이 철모가 애엄마 철모보다 더 높이 솟아있다. 애들의 성장은 캠프교육을 통해 나는 비로서 알았다.
27)퇴소 전야제
저녁식사 시간중에 사단 정훈과에서 나온 현역병사 두명이 연병장 중앙에 탁자를 놓고 노래방 기기를 가설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오늘밤엔 여흥이 있을 것을 직감하는 전 교생들은 가벼운 흥분을 느낀다. 간편 사복차림에 기분도 한결 가벼운 전 교생이 식사 후 소대별로 연병장을 향해 계단에 늘어앉았다. 교육기간중 내내 굳게 닫은 매점을 개방하여 교생에게 아이스케키, 캔 청량음료, 스낵 각각 1개씩 배급되었다. 밝은 보름달이 산기슭 뒤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더니 이내 스카이라인을 뚫고 올라와 휘영청 하늘 높이 걸렸고 산 그림자에 가려 어둑한 연병장엔 무대 조명처럼 써치 라이트가 비춘다. 교생 중에서 젊은 남녀 각1명이 사회자로 나왔는데 진행솜씨가 형편 없지만 젊은 교생들은 그것을 따지지 않고 열광한다. 노래방 스피커에서 이런 저런 반주소리가 굉음으로 폭포처럼 쏟아 나오자 분위기는 급히 달아 오른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1.2.3 소대에서 우리 애들 또래 몇명 뛰어나와 머리칼을 좌우로 날리며 정신 없이 몸을 뒤흔든다. 태엽을 한껏 감아 막 풀어놓은 장난감 병정같다. 그들의 요란한 발놀림에 먼지가 자욱히 피어오른다. 써치라이트 불빛에 비친 먼지는 TV 쑈 무대를 장식하는 드라이 아이스 구름보다 더 그럴 듯 하다.
늙은 5소대는 모두 조용히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저들의 활력과 젊음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도 옛날에 저랫었지. 70년대 초 친구 몇몇 어울려 교외에 나가 통기타나 야외 전축에 파이프 라인, 샹하이 트위스트등 팝송을 틀어 놓고 정신없이 양팔을 흔들어 대던 때가 있었지.. 그때 조선민요밖에 모르시던 돌아가신 영감님이 그런 나를 조신하지 못하다고 꾸중하심에 내가 몰이해라고 반발했었다. 이젠 내가 역위치가 됐다. 혹시 우리 애들 눈에 내가 옛날 내 눈에 비친 영감님 모습으로 비치져 있지 않을까? 무심한 말을 던저 애들의 건전한 자유의지를 꺽고 불필요한 간섭으로 애들을 매도하지 않았을까? 조교처럼 능숙하게 애들이 이 훈련을 받아넘기는 모양을 보니 자녀에 대한 아빠로서의 의무라 믿었던 나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이 판명됐다. 애들의 성장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는 내 관심은 이제부터는 애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방향으로 촛점을 맞추어야 겠다고 마음먹는다...
1소대의 열화 같은 청으로 1소대에서 인기가 높은 노랑머리라 불리는 현역 취사병도 불려나와 가사 못 알아들을 신식노래 한곡을 교생 못지 않게 요란히 불러 재꼈고 고참 교관 한사람도 나와 차렷자세로 서서 케케묵은 옛날 창가 한 곡조로 어울렸다. 그런데 얼마 안가 노래방 기기가 갑자기 고장나버려 여흥은 중지되었다. 흥이 한참 끓어오르던 1,2,3소대가 몹시 실망하여 교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삽한 야유와 "안되면 될 때까지!"라는 해병대구호를 외처대며 고치기를 고대했으나 기계에 서툰 정훈병사는 끝내 고치지 못하여 전야제는 그걸로 파장되어 버렸다.
28)이 훈련을 타인에게 권유 하겠습니까?
"제5소대. 각 소대들은 전원 6내무실에 강의대형으로 모여!"
여흥 후에 집합지시가 전달되고 5소대 모두가 모였다. 교관이 질문지 한 장씩 돌렸다. 캠프교육에 대해 평가와 느낌을 묻는 내용이다. 교육 프로그램에 만족합니까? 5개 선다지중 대체로 만족한다에 동그라미를 쳤다. 산악행군- 상륙정 훈련-고무보트-공수-유격-각개전투로 이어진 캠프교육은 교생의 능력이나 입맛에 좌우되지 않고 해병 훈련병이 하는 교육내용과 방법, 분위기를 그대로 적용하는 점이 내가 한때 미워했던 이 프로그램의 간과하기 쉬운 장점이다. 이렇게 사회와 일체 단절됨으로서 잠시나마 사회생활을 응시하게 되고 이것은 사회생활에 찌든 내게 어느덧 산속 샘물처럼 청량한 느낌을 준 것이었다. 당신이 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그러면 토요일에 퇴소하겠금 교육기간을 하루 더 늘리겠다. 현 일정은 교생들에게 금요일과 토요일을 낭비하게 되어있어 조금 불만인데 낭비되는 하루는 교육대에 더 머물러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다니! 입소시 배타적이던 감정에 비해 내 느낌은 얼마나 변했는가. 교육효과는 있었습니까 에는 유익했다. 교관들의 자질은 어떻했습니까 는 산상수훈으로 감동을 준 교관 얼굴을 보더라도 당연히 매우 유능했다. 추가할 교육이 있습니까? 총검술, 화생방, 사격중 사격에 동그라미. 군대 생활은 뭐니뭐니 해도 총을 쏴 봐야 하지 않을까. 교생들이 병영생활에 익숙해진 금요일쯤 사격하고 토요일에 퇴소하면 좋겠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도 이 교육을 권유 하겠습니까에는 그럴 생각 없다에 동그라미를 쳤다. 30년 전 제대한 사람들에게 쫄병생활 또 해보라는 말은 못할 것 같았다.
29) 아빠 운동화 끈 다시 매 줘!
질문지 제출 후 교관과 직접적인 문답이 있었다. 그중 한 교생이 가족반이라 해서 지원했는데 가족을 취침전 면회하듯 만난다면 가족반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이었다. 가족반이라면 가족끼리의 교류가 있겠금 해야 옳지 않느냐. 이에 대해 교관은 가족끼리 서로 쉬 만나게 하면 통제가 어려워지고 캠프교육의 성질이 변질된다고 대답했는데 둘 다 옳은 말이다. 아마 그 교생은 딸을 데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남녀교생간 접촉금지 원칙하에 여자 소대는 3층에 남자소대는 모두 2층에 나뉘어 있으니 부녀간 또는 모자간이라 해도 서로 왕래해선 않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애들을 보려고 3층 계단을 오르다가 눈을 부릅뜬 1소대 교관에게 맥없이 물리침을 당한 적이 있다. 보호자인 내가 내 딸을 보려는데 웬 방해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될 법한 일이 아닌 것은 내가 먼저 알고 있다. 딸 데리고 온 아빠에게 생기는 이와 같은 불만이 아들을 데리고 온 아빠에게는 전혀 생길 수가 없는 까닭은 아들이 같은 층에 있으니 수시로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군대생활상 애로를 서로 협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교육 나가려는 때 어떤 키 작은 교생이 우리 내무실 문턱에 서서 "아빠!"하고 실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소일하는 경로당 같은 곳에 엄마 심부름으로 아빠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지 여기서 들을 말이 아니였다. 같은 교생끼리 아빠가 어딧어? 그런데 침상에 갈지 자로 아무렇게나 누운 교생중에 하나가 그 부름에 놀라 고개를 들더니 황급히 허리를 펴 일어났다.
"응? 영남아 왜 그래?"
군복입은 자가 군복입은 자에게 아빠하고 부르고 대답하는 모습을 군대내에서 보니 몹시 이상했다. 웃기는 것은 그 다음이다. 아이 교생이 어른 교생을 향해 품에 안길 듯 달려가며 내지른 소리는 이것 이였다.
"아빠! 운동화 끈 다시 매 줘!"
중학생인 그 교생의 아들은 집에서 하던 양으로 귀찮은 일 아빠에게 의뢰하러 온 것이였다.
그 문답 후 순검받고 취침에 들었지만 내일은 고된 훈련 없이 그대로 퇴소식만 있을 마지막 날 밤이라 들뜬 교생들은 쉬 잠을 자지 않는다. 중학생 소대는 내무반에서, 고등학생 소대는 옥외난간에서, 성인소대는 컴컴한 뒤뜰에서 오순도순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가 이어지는 데도 교관 쪽에서는 제지가 없다. 전국에 흩어저 서로 모르던 얼굴들이 여기서 만나 단 4일만에 10년지기된 듯하다.
"당신은 사회 나가면 모 할 끼요?"
"뭐하긴 뭐 하노? 노가다해서 돈벌어 야제 "
나이든 교생끼리 옛날 현역병을 제대할 때의 대화를 흉내내며 주위를 웃긴다. 늦게까지 이야기들이 이어지다가 하나둘 잠자리에 들어갔다. 새 군복에 빨간 명찰과 교번을 달고 내일 퇴소식에 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불침번을 섰다. 그래서 공한시부터 공두시까지 잠을 손해 보았다.
30) 잘있어 교육대
8월 3일.입소 5일째. 마지막 날. 새벽잠에 곤한데 웅성거리는 소음에 잠이 깨어 일어났다. 잠잘시간이 30분이나 남은 05시30분이다. 퇴소하는 날이라 들뜬 교생들이 기상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 일어나 부산을 떤 것이다. 벌써 빨간 명찰을 붙인 새 군복을 입고 어슬렁거리거나 혹은 퇴소채비를 하고 있다. 아침식사로 나온 빵 2개를 억지로 입속에 꾸겨 넣은 후 퇴소식 예행연습하기 위해 전원 연병장에 모였다.
"여러분들의 교육결과는 퇴소식으로 평가받습니다. 동시에 교관들의 능력도 평가됩니다. 해병대 캠프 제39기! 39기의 명예를 걸고 마지막 행사 한번 잘해 봅시다!"
교관의 격려에 전원 각오를 새롭게 먹는다. 제법 군대이력이 붙었고 입소식과 같은 요령이라 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국기에 대한 경례때 2소대와 3소대 일부에서 필승구호가 튀어 나왔다. 노한 교관이 언성을 높여 반말로 질타한다.
"사단장님께 경례는 필승구호를 짧게 크게 붙인다. 그러나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필승구호가 없다. 아직도 이걸 모르는 사람 있나?"
교관은 어제만 같았어도 대번에 앞으로 취침! 했을 텐데 새 군복이 더렵혀질까봐 자제한다. 필승 구호를 붙인 굼뚠 교생도 그 한마디로 제되로 알아들어 그후부터 퇴소식 연습은 흠없이 진행된다. 예행연습을 충실히 하고 전 교생 모두 내무실에 들어와서 개인 빽을 챙긴다.
"제5소대. 모든 사물 개인 빽에 넣고 병사 떠나기 15분전!"
이젠 저 교관 쇳소리도 그리워지겠네. 연병장에 소대별로 집결하고 퇴소식 예행연습을 최종으로 한번 더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사단 퇴소식에 싣고 갈 군용버스 4대가 연병장에 들어왔다. 뭘 저렇게 서둘지? 사단본부에서 잘 알아서 제때 버스를 보낸 것을 우리 마음에는 서두는 듯이 보인다. 그만큼 우리들 마음은 여유롭다 못해 더 머물고 싶은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버스에 타는 순간 우리는 병력에서 인간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버스내 빡빡하게 교생들이 들어차고 남녀노소 모두 활기에 넘치고 기쁜 표정으로 재잘된다. 버스가 뒤뚱거리며 교육대를 빠져나간다. 위병의 힘찬 필승구호가 뒤로 멀어진다. 잘있어, 교육대!
31) 퇴소식
해병 제1 상륙사단 사단본부 앞. 푸른 하늘아래 넓은 잔디밭 연병장에 해병대 캠프 제39기 258명의 교생들이 좌측에 1소대에서 우측에 5소대로 늘어 섰다. 키 큰 사람들은 앞쪽에 작은 사람들은 뒷쪽으로 섰다.
"3소대 우측선두 기준. 소대간격 3보. 개인간격 정식간격. 우로 나란히!"
단상에서 계급 높은 이가 스피커로 제병 지휘하는데도 교관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함치며 오와 열을 맞추기에 황급하다.
"차렷! 열중 셧! 움직이지 마라!”
예행연습이 여러번 반복됐다. 5명의 해병 기수단이 무릎을 높게 처드는 걸음걸이로 엄숙하게 들어와 소대사이 한가운데서 단상을 향해 돌아섰다. 기수단은 중앙에 태극기 그 좌우에 사단기와 훈련단기가 서고 양 끝단에 소총이 서서 기를 호위한다. 군악대가 흰 의장복에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들어와 5소대 우측에 자리를 잡고 귀익은 경쾌한 연주를 시작한다. 모두 첨 보는 눈엔 신기한 것들이다. 갑자기 단상 제병 지휘부에 긴장이 감돌고 그 긴장감은 연병장 위에 서있는 교생 전원에게 그대로 감전된다. 사단장이 나타난 것이다. 군악대가 뭔가 경쾌한 곡을 새로 시작하더니 짧게 끊는다. 사단장이 단상에 올라와 탁자에 서고 뒤로는 참모들이 늘어섰다.
"사단장님께 대하여.... 받들어 총!"
"필씅!"
교생들의 한 목소리가 일제히 터저 나와 허공을 가르고 별 2개를 상징하는 군악이 연주된다.
"지금부터 해병대 캠프 제39기 퇴소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대오와 단상간 중앙에 섯던 5소대장 교생이 ㄷ자로 이동하여 조금 앞으로 나서고 소대사이에 섯던 기수단이 발맞추어 10보쯤 앞으로 나가 서서히 180도를 돌아 교생들을 향해 다시 선다.
"국기에 대하여.... 경롓!”
교생들의 쭉 뻗은 오른손 끝이 일제히 소리 없이 올라가 옆 이마에 붙고 기수단의 좌우 군기가 고개를 숙이니 중앙의 태극기만 홀로 빼어났다. 군악대의 주악이 잔잔히 흐르다가 그친다.
"수료증 수여. 수료생 대표 앞으로!”
맨 우측열 선두에 서있던 5소대 최고령자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경쾌하게 단상을 향해 뛰어나간다. 사단장님께 경례. 수료장 수령. 옆 걸음. 악수. 뒤로 돌아 순으로 행하고 다시 원위치로 뛰어온다
"훈시"
"사단장님께... 경롓"
"필씅!"
"고된 훈련을 마친 여러분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여러분들은 4박5일의 길지 않은 기간중에 백절불굴의 해병대 정신을 익혔습니다. 이제 사회에 나가 학업과 생업에 임할 때 이 해병정신으로 성취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해병가족임을 잊지 마십시오.."
"필씅. 훈시 끝!"
"이상으로 해병대 캠프 제39기 수료식을 마치겠습니다"
"사단장님께 대하여... 받들어 총!"
"필씅!"
절도있고 일치된 한 목소리가 다시 연병장을 울린다. 사단장이 참모들을 대동하고 단상에서 내려온다. 군악대의 경쾌한 연주는 계속되고 있다. 소대장 교생이 뒤를 힐끗 돌아 보고 나서 소릴 지른다.
"3소대 우측선두 기준. 소대간격 없이 좁은 간격으로 모여!"
사단장이 1소대 앞에 자리를 잡고 교생들은 일열부터 횡대로 줄줄이 사단장에게 다가서며 악수를 한다. 다가가는 방향으로 교육단장 준장. 사단장 소장 그 다음 교육 연대장 대령이 늘어서 있다
"필승! 552번 교생. 고맙습니다!”
그들이 내게 뭐라 했지만 얼굴도 말도 기억할 수가 없다. 안면이 읶은 교육연대장이 5소대 나이 많은 사람중에 맨 먼저 다가서는 나를 알아보더니 한마디 붙인다
"노후에 교육받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웃으며 손을 내밀어 황급히 그의 손을 맞잡긴 했지만 노후에.. 하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저분은 끝까지 짖굳네... 내 맘은 인제 막 20세 신참해병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얼굴 모습을 꼭 씹어야 돼? 전 교생의 악수가 한참 계속된다. 군악대의 경쾌한 연주가 깔려 거대한 무도회 같다. 풀밭 한쪽에 앉아서 그쪽을 바라보니 마침 유정이 혜진이가 악수하는 순간이 눈에 띄었다. 뭔가 황송하다는 모습으로 고개 숙이고 악수한다. 거수경례로 해야지 고개를 숙이는 건 뭐야? 아마 생애 처음으로 별 두개짜리 권세를 목도하니 좀 질릴만도 하겠지. 아이들만 캠프 보내놓고 수료식을 찾아온 부모들이 악수 끝난 교생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몰려와 대오중에 제아이 찾아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누른다. 퇴소식장을 떠나기 직전 5소대 한 전우가 교관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5소대 담임교관을 헹가레 치자는 제안을 은밀히 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라 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데 교관은 그걸 어찌 눈치챘는지 한사코 거절하며 가까히 오지 않았다.
32) 못견딜 추억
"아빠! 일루 와!"
군복 속에서 두리번거리며 식구들을 찾는데 애들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소릴 지른다. 혜진이, 유정이, 애엄마는 푸른 풀밭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얼룩무늬 위장복 좌우 가슴에 빨간 명찰과 교번을 달고 검게 탄 얼굴에 눈빛은 반짝반짝 빛난다. 멀고 먼 격전의 전선에서 방금 돌아 와 내 앞에 선 노병같은 모습으로 예전에 본적 없는 넉넉하고 싱싱한 웃음을 띄운다. 사진에서 보던 데로 분명히 애들은 제 엄마보다 더 컷다.
.....나는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어느 하나 이를 악 물고 최선을 다 해본 적이 없다. 물론 하루 이틀은 내 자신도 만족할 만큼 해 본 적이 있지만 작심삼일도 못 갔다. 매일 반성하고 다짐해 보지만 의지력 부족과 정신력 미약으로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반복하며 살았다....
혜진아, 이것이 지난번 네가 쓴 입소소감이다. 이제 너는 네가 지금껏 살아 온 삶의 방식에서 벗어났지?
"필승~ 훈련 끝! 집에 잘 가고 담에 서로 연락해."
애 엄마가 마침 제 옆을 지나가는 그 또래 아줌마 교생을 세우고 어께를 툭툭 친다.
"필승~ 너도 잘 가."
그 아줌마 교생도 같은 방식으로 맞장구 친다. 둘 다 거수동작은 없이 입술로만 경례하는 폼이 완전히 건들끼가 일기 시작한 고참 병사 티다. 내가 옛 친구를 만나 군대시절 이야기만 나오면 재미없어 하던 애엄마도 이제 완전히 관록 붙은 해병대원이 다 되 버렸다. 식구들에게 다가가 새삼스레 손을 내민다. 식구들도 어색해 하며 손을 마주 잡는다. 맞잡은 손에서 새로운 힘과 변함 없는 정을 재확인하며 그때까지 걸끄럽게 남아 있던 마음속 앙금이 말끔히 씻기워 짐을 느낀다.
버스에 다시 타고 부근의 빈 병사를 찾아 들어가 군복을 반납하고 입소때 사복을 다시 입었다. 이젠 떠나는 마당이라 전우끼리 연락처를 나누고 교관과는 석별의 정을 나눈다. 교관들도 싱글거리지만 씁쓸한 뒷맛이 남은 표정이다. 산상훈시로 감격케 하던 안택규 교관을 알아보고 다가가니 그는 내내 굳은 얼굴을 바꾸지 않고 말한다.
"우리들은 매주 교육생을 떠나 보내곤 하니 매주 이별의 쓴맛을 보아야 합니다. 속이 별로 좋지 않아요"
해병대 사령관 해병중장 김명환 명의의 캠프 수료증과 공수, 유격, IBS 교육필증을 받았다. 5일간 훈련의 상징물이다. 훈련수료증을 훈장처럼 받아들고 집을 향하게 됐으니 모두들 더욱 들뜬다. 버스 터미날, 포항역등 행선지 별로 교생을 태운 버스들이 출발하고 우린 서문 위병소에서 내렸다. 차를 거기다 두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내린 5소대 전우가 몇이 있어 그들이 가진 카메라로 해병대 상징물 앞에서 단체사진 몇장 찍고 “해병의 집”에서 맥주 한잔 마셨다. 비 오듯한 땀 때문에 갈증에 목이 타던 때 시원한 생맥주 한잔의 맛을 얼마나 그리웠던가? 4박5일간의 희노애락을 회고하며 담소 후 일어설 때 아쉬움이 많이 남은 한 전우는 그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번 겨울 캠프에 한번 더 가삐까 그마?"
위병소 정문을 나와 연이어 선 군장 집에서 나는 해병대 얼룩무늬 팔각모자를 샀고 식구들에겐 빨간색 둥근 모자를 씌웠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팔각모는 다음과 같은 팔계와 팔극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팔계란 신라시대 원광법사의 화랑 오계(五戒)에다 세 가지 금기 즉 욕심, 유흥, 허식을 버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팔극(八極)은 어떤 조건 어디든지 싸우면 승리하는 해병대임을 상징한다. 모자를 쓰고 보니 이젠 우리가족 모두 해병정신으로 일치됐음이 재확인 됐다. 해병모자를 덮어쓰고 서문 위병소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인간 개조의 용광로. 해병대! 그 속에서 보낸 여름 한철! 교육첫날 산악 행군시에 들은 해병대판 山上垂訓을 떠올려 곰곰이 되새겨 본다. 그렇다! 나는 이 집 식구들을 부양할 책임이 있는 가장이란 배우이지. 또 사회에 공헌할 책무가 있는 배우이지... 가장의 책임은 내가 죽어도 면하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은 내가 부처님 앞에 부복하고 눈물을 흘리며 홀로 다짐했던 책임 아닌가? 그런 내가 생의 의지를 꺽고 책임을 포기 할려 하다니! 희망이 때로 배반함은 인생에 다반사다. 그렇다고 생의 의지를 포기한다면 세상살 사람 없게? 이 식구들, 이 사회는 어찌하라고? 또 내 나이 50세면 어떻냐? 82세에 대작 파우스트를 완성한 괴테에 비하면 아직 팔팔한 열정의 시대이지 않는가! 인생여정 도처에 널린 불안요인을 너무 겁내지 말고 일단 무소처럼 내 의지되로 결행하자! 극복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공포심은 과감히 접어두고 그때 가서 부딧치자! 해병대다운 용기를 갖자! 위병소 건물 뒤 넓다란 길 중앙에 높이 솟은 탑 꼭대기. 별, 닻, 비상하는 독수리로 구성된 해병대 징표가 푸른 하늘 한가운데 뚜렷하다. 그것은 또 하나의 못 견딜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2001. 8. 11 차동돌(車桐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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