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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화왕산 억새 태우기 )
자료제공: 남중19회 심재호
1. 학술과 저술
우리 읍 출신으로서 학계에서 활동하는 인사가 많으며
그 연구 실적도 다양하여 향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데
박사학위를 가졌거나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저서를 펴낸 학자와 저술 내용을 조사한 바 다음과 같다.1)
먼저 타계하신 분은 다음과 같다.
황세순(黃世淳) : 남지리 서동, 마산대학(현 경남대학교) 전임강사(중국어과), 학생과장, 김해 진례중학교 교장
著- 「세계문학 50강」(번역서) 「농돈시조집」
김진문(金鎭文) : 남지리 동포, 부산대학교 음악과 교수
김병기(金炳基) : 학계리 홍정, 서울의대 교수
조용삼(趙鏞三) : 용산리, 경제학박사, 미국 남가주주립대학 경제학 교수
현재 학계에서 활동중인 사람은 다음과 같다.
남상돈(南相敦) : 남지리 동포, 부산교대 교수 역임
著- 「묘각남상돈교수 논문집」외 4권
신용호(辛容浩) : 남지리 상남, 동아대학교 교수
著- 저서 2권, 논문 다수
김선수(金善洙) : 남지리 본동 경남대 법학과 명예교수 법학박사, 법정대학장 대학원장
著- 「시민생활과 법」(공저) 논문 「형사책임능력에 관한 연구」외 다수
이순복(李淳福) : 남지리 서동, 경남대 부총장 법박 경남대 상경대 무역학과교수(현)
著- 「판례중심국제법」
하봉석(河奉錫) : 남지리 동포, 경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이학박사,
著- 「식품첨가물」외 논문 43편
강위영(姜渭榮) : 남지리 남포, 교육학박사, 대구대학교 사회사업대학원장,
著- 학습장애의 교육, 정서장애아교육, 직업재활개론, 자폐아동의 행동치료 등
이삼석(李三碩) : 남지리 남포, 국립수산진흥원 적조연구부장, 수산학 박사, 부산대학교 해양학과 강사
著- 「진해만 및 그 인접해역의 부유성요각류 분포」외 연구 논문 다수
김상태(金相泰) : 남지리, 문학박사, 이화여대 인문과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학과장 (저) 「현대 한국작가연구」
「문체의 이론과 해석」 「문학개론」 「언어와 문학세계」 「한국현대문학론」 수필집
「참말과 거짓말 사이」 「먼 꿈 가까운 꿈」
김진호(金鎭浩) : 남지리, 의학박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동 부속 구로병원 소화기 내과과장
著- 「증상별 임상검사」(공저, '91) 「소화기학 원론」(공저, '97) 「위염」(공저, '98) 「내과학」(공저, '98)
김영득(金永得) : 남지리 동포, 공학박사, 서울인덕대학 기계과 교수
著- 「유체 역학」, 「유체 기계」
장윤수 : 남지리 본동, 대구대학 교수
권정식(權庭植) : 마산리 홍포, 효성여자대학교 교수
김종덕(金鍾德) : 마산리, 공학박사, 한국과학기술원 화공학과 교수
김봉곤(金奉坤) : 마산리 당포, 박사, 경상대학교수
김삼룡(金三龍) : 학계리, 정치학박사, 한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著- 「정치가란 무엇인가」(역서, '92) 「과학이란 무엇인가」(역서. '92),
「현대 민주주위와 정당화 문제」('95) 「루만과 하버마스」('95)
이진오(李晉吾) : 학계리 홍정, 부산대 국문과 한문담당 교수
신용휘(辛容輝) : 용산리, 인하대 경상대학 경영학부 교수 경영학박사,
著- 「통계학」(공저) 「경영 및 경제수학」「계량경영학」 「생산성관리론」 외 다수
정규호(鄭圭浩) : 신전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남미학과 주임 교수,
著- 「포어교본」 「포한사전」「포어회화」외 번역서 「불신자들의 여름」 「태양처럼 뜨겁게」외 다수
황재순(黃在淳) : 신전리 영아지, 문학박사, 인천교육연수원 교수,
著- 「고전문학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94) 「우리 한시 100수」('95)등
초등학교용 한자학습교재 다수, 논문집 「한국고전문학에 나타난 자연관」('93)
정보환(鄭保煥) : 신전리, 용인 송담대학 정보통신과 교수, 미국 TRW사 연수(다목적 실용 인공위성 개발 참여)
황태학(黃泰學) : 신전리 영아지, 신학박사, 미국거주
황대호(黃大浩) : 신전리 영아지, 공학박사
김정계(金楨桂) : 성사리, 정치학박사, 창원대학교 사회과학대 행정학과 교수
著- 「중국의 최고지도층」「모택동의 군사전략」 「중국의 대외경제법」
「중국의 권력구조와 파워엘리트」 「중국정치론」 「중국을 움직이는 사람들」
「창원시사」 경상남도사」 등 다수
김종득(金鍾得) : 성사리 경영학박사, 동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著- 논문 「우리 나라 기업의 인사평가제도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중소기업의 정보화 수준과 조직성과에 관한 연구」 「신노사관계론」 그 외 연구 실적 다수
전영란(全英蘭) : 성사리,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과 교수, 문학박사,
著- 「韓國詩話中有關杜甫及其作品之硏究」「시사중국어」
하태문(河泰文) : 아지리, 문학박사, 시립 인천전문대학 교수
著- 「헤밍웨이 작품의 이해」
성낙도(成樂道) : 고곡리 이학박사, 서울 국제컨설팅(주) 고문 한국기상학회장, 한국지구과학협회장
著- 「기상학」('64) 「東西流의 P學的 불안전성과 에너지학」('71)외 50여 논문 발표
성호경(成昊慶) : 고곡리, 문학박사,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교수
著- 「조선전기시가론」('88) 「한국시가의 유형과 양식 연구」('95) 「한국시가의 형식」('99)
이 경(李 京) : 고곡리 이학박사, 창원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
著- 국내 외 잡지에 논문 10여편 발표
변희섭(卞熙燮) : 시남리 청단, 경상대학교 교수
이영섭(李永燮) : 시남리 경제학 박사, 미국 뉴욕은행 재직
김양소 : 월하리 경제학박사, 경남도청 건설과장
공영윤(孔泳潤) : 월하리 월상, 의학박사, 프랑스 유학
위에 열거한 박사나 교수 외에도 많이 있을 것이나 자료가 없어 소개하지 못함이 유감이다.
언론계에는 타계하신 분으로 조용수(용산리 출신, 민족일보 사장) 황치재(신전리 출신, 영남일보 사장) 등이 있으며, 생존 인물로는 서병헌(남지리 출신)이 경향신문사 사회부기자 및 동아방송 뉴스부기자를 거쳐 주일특파원, KBS 방송위원 등을 지내고 현재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제5, 제6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김진규(남지리 출신)는 서울일일신문사 기자, 동화통신 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차장, 서울신문 사회부장, 동편집부국장, 동논설위원, 국민일보논설위원실장(이사) 한국기자협회장,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저서로 「기자의세계」 「아직도 안녕하십니까?」 「도둑님시대」 등이 있다.
군내에서 간행된 학술적인 저서로는 향토사 연구서로 김병수(학계리) 『남지읍 향토지』가 있으며 김현우(남지리)의 『창녕군지명사』(3인 공동 편찬)가 있다.
2. 현대 문화예술
1) 광복과 문화운동
광복과 동시에 미군과 함께 서양 문물이 남지에도 실려 왔듯이 새로운 사상과 문화도 우리 읍에도 밀물같이 들어 왔다.
그 중 가장 먼저 읍민들이 즐기게 된 것이 연극 영화였다.
물론 일제시대에 그러한 것이 있었으나 자주 접할 기회가 드물었는데 해방이 되자 유랑 극단이 자주 찾아와 연극과 노래가 곁들어진 악극을 하게 되었고 영화가 상영되었다.
비록 가설무대였지만 해방 전 간혹 상영되었던 무성영화가 점차 변사 없이도 소리가 났고, 악극단의 신파극은 해방 전보다 자주 공연되었다.
이러한 현대 문화의 접촉 기회가 잦으면서 이 고장의 젊은이들도 가설 무대를 짓고 서툴렀지만 연극 대본을 쓰고 출연자들은 동리 청년들로 열심히 연습하여 마을 타작마당이나 시장통에서 인근 동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막을 올리기도 하였다.
또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인 문학 청년들이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학예 행사도 학교를 중심으로 자주 개최되었다.
이들 행사는 남지계몽청년회의 조직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오래 전부터 연극 활동을 해 왔던 박대근(본동 거주, 1923년생, 대천수산고교 영어교사), 최장수(본동 거주, 1924년생)를 비롯하여 많은 청년들이 참여하였다.
남지계몽청년회가 1946년도에 주로 활동한 분야는 남지읍 일원에 야간학교를 통해 한글을 가르치는 계몽운동과 연극, 교사를 양성하는 한편, 미군 진주를 환영하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하였다.2) 이러한 문화운동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 갓 개교하였던 남지중학교와 남지고등학교에서는 시화전, 미술전시회, 연극, 음악회 등 다양한 학예 행사를 매년 개최하여 신문화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 추석을 전후하여 씨름대회와 추천(추韆 : 그네 타기)대회 투우대회 같은 민속 경기가 열리면서 콩클대회(노래자랑)가 열려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이 젊은이들 사이에 폭 넓게 퍼졌다.
이러한 문화활동은 당시 초.중등학교에 재직하였던 문학 미술 음악 교사들을 중심으로 지역 청년들에게까지 확산되어 문화 예술의 저변확대를 가져 왔던 것이다.
라디오 방송 청취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스피커만 달고 선을 이어서 방송을 청취하는 유선방송이 시설되어 즐겁게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나 소식을 듣게 되었다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라디오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시청이 보편화되었으며, 난시청 해소를 위해 유선방송 시설이 되어 있다.
극장이 없었던 시절 영화 상영 장소는 주로 본동 시장통 미곡전이었으며, 남지파출소 옆 골목을 양쪽에서 막아 사용하였거나, 남포동 구 면화공장(지금 상록아파트 자리), 동포동 식량영단 창고 또는 본동에 있었던 포목전 옆 태양여관 등이 자주 사용되었다.
그후 오덕수가 남지읍민관을 임대하여 남지극장으로 문을 열고 1970년대에 매일 2회 상영되었는데 간혹 가수와 무희들 코미디언이 출연하는 쇼와 연극이 공연되기도 하여 읍민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극장 손님이 감소하여 폐업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에 들어 출판물 발간 등 문화운동이 지속되고 있는데, 우리 고장의 출판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은 1950년대에 황세순, 이재봉 등이 중심으로 만든 『풋감』이란 잡지이다.
활판 인쇄가 아니고 등사판이었던 이 책에 남지의 유래 및 문화도 소개되었다고 한다.3)
그리고 발간된 것이 남지중학교 교지인 『낙동강』이다.
『낙동강』은 1951년 창간되어 1974년까지 22호가 발간되고 중단되었으며, 남지고등학교에서 1962년 교지 『도초산』, 남지여자중학교에서도 교지를 발간하였으나 지금 현재 중단되고 있다. 창녕문인협회장을 역임한 신용찬 등이 활동하는 『창녕문학』은 매년 200여부가 남지읍 전역에 배포되고 있는데 1998년 현재 22집이 출판되었으며, 남지청년회의소에서 1986년부터 연 2회 『JC 신문』을 3-4천부씩 발간하여 홍보활동을 전개하며 남지 소식을 전하고 있고, 남지농협에서 1978년부터 연 4회 농협소식지를 발간하고 있다.
현대 문화를 보급하거나 활동하는 기관으로 각종 문화센터나 예술회관 문화원 등이 다른 지방에는 있으나 우리 고장에는 읍민관과 도서관 이외에는 극장도 없다.
단지 책을 파는 서점이 해방이후 본동에 있었던 것이 최초이며, 그 후 동포초등학교 입구에 남지서점이 있었고 이후 여러 서점이 생겼으나, 남지서점이 이름이 바뀐 학원서점과 후에 생긴 동아서점 등이 있다.
2) 문학
광복, 또는 한국전쟁 혼란기에 개교한 남지중학교와 남지고등학교에
재직하였던 황세순(黃世淳), 설철수(薛哲洙), 김기현(金基鉉) 강홍운(康鴻運) 교사 등
문예지도 교사들이 이 지역의 청년들에게 현대문학을 지도하면서 새로운 문학의 움이
트는 계기가 되었다.
황세순과 설철수 등은 남지중학교 개교 때부터 문예 지도에 앞장 서 백일장을 개최하고
『낙동강』이란 교지를 발간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지역민들에게 북돋우었으며,
원산에서 시인 구상(具常)과 함께 응향(凝香)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공산당에게 비판을 받고
어렵게 살았던 시인 강홍운이 6.25때 피란을 와서 남지고등학교에 재직하게 되고 역시 시인 김기현이 남지중학교에 재직하면서 많은 문학청년을 길러 내게되는 것이 우리 고장의 현대 문학을 길러 내는 시초가 되었다.
강홍운은 해방 전 원산에서 시집 『노방초』를 출간한 바 있으며 황세순, 설철수, 김기현 등은 남지중학교 교지 『낙동강』을 통해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문학 청년을 길러 냈던 것이다.
또 이들 교사들과 남지의 문학 청년들이 모여 『낙동』동인을 결성 문학활동을 전개하여 3집까지 발간하였으며, 창녕군내 문학인들과 힘을 합해 『이문회』동인을 결성하여 동인지를 발간하였으며 그후 『비사벌문우회』 『수의』 동인으로도 활동하였다.
1953년 「한다실」에서 강홍운, 설철수 2인의 시화전이 있었는데 크게 호평을 받았다.
이것이 군내에서 최초로 가진 시화전이었다고 한다.
이때 군청 내무과장의 초청을 받아 창녕에 가서 전시회를 갖고 문학강연 발표회도 가져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 들어 남지리 출신인 김칠봉(金七鳳 : 당시 동포동 거주)이 김현우(金賢友)라는 필명(筆名)으로 월간지 『학원』의 장편소설에 응모하여 당선되기는 1964년인데 같은 해에 「서울방송」(후에 동양방송)의 현상 공모에 주간 방송극도 당선되었으며, 이듬해에는 「기독교방송」에 장편소설 『갈대의 노래』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하게 되었으며 경남신문에 장편소설 「밤을 가는 나목」을 연재하였다.
또한 홍포리의 신용찬(辛容讚)이 문학수업을 하며 시를 쓰다가 창녕문학이 창간되자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하게 되는데 2인 모두 강홍운의 문학 지도를 받았다.
1970년대에 들어 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 고장에 아동문학가 임신행이 남지초등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활발하게 문학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는데 먼저 창녕군내 문학 교사들을 모아 동인지 『만년교』를 펴냈으며, 이듬해 우리 고장 문인들인 시인 강홍운, 소설가 김현우, 시인 신용찬, 남지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시인 김옥영 등과 창녕군내 문인을 모아 『창녕문학회』를 창립하게 되고 이어 작품을 묶어 『창녕문학』 창간호를 발간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학 활동에 점차 우리 고장의 문인과 문학청년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면서 우리 고장을 중심으로 문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남지 다방에서 시화전을 열어 사람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때 남지고교를 졸업한 이철용(당시 대신동 거주)이 경남신문에 장편소설을 발표 연재되기도 하였다.
그후 1975년에는 남지초등학교에 재직하던 황영희(남지리 동포 출신)가 「빗속에서」 「해녀」 등으로 『시조문학』의 시조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정호원(학계리 명지출신)이 1976년 구연동화집 『용궁의 개』를 출판하게 되었고 신용찬도 시집 『청우』를 출판하여 시인으로서 기반을 확고히 닦았다.
또 김충도(남지리 남포동 출신)는 1974년 『한국아동문학』과 『소년중앙』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여 동화집을 여러 권을 내며 아동문학가로 경북 포항에서 활약하고 있다.
강홍운은 1978년 시집 『노방초 후집』을 발간하였고, 김현우는 아동문학 작품 활동도 활발하여 경남아동문학회 창립 회장을 역임하고, 1978년 창작동화집 『산메아리』 외에 『꼬리 달린 아이』 『겨울에 크는 아이』 『세모꼴나라』 『할아버지를 위하여』 등의 동화집을 냈으며, 장편소설 『하늘에 기를 올려라』 단편소설집 『욱개명물전』 『먼 산 아지랑이』 등을 출판하고 마산문화상(문학부문), 경남아동문학상 경남우수작품집상 등을 수상했다.
1989년 시집 『청우』를 낸 신용찬은 그해 「창녕문학」 13집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남지읍민관에서 가졌는데 군수 교육장 등 군내 기관장, 도내 문인들과 창녕문화원 회원까지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어 남지의 문화 활동을 크게 일으켰고, 농촌을 지키며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는 농민시인이라고 「농민신문」에 크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 저력을 발휘하여 1996년 「문학세계」 신인상을 받았다.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한 시인 김일태(수개리 출신)와 비사벌신문사의 비사벌문예상을 수상한 박상선(학계리 출신)이 1996년 종합문예지 「문예한국」과 「문학세계」 등에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여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97년 윤혁(본명 윤기혁 : 남지리 본동 출신)이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시 「방패연」이 당선되었으며, 남포리에 사는 백희천이 「문예한국」에 시부문 신인상, 정동진(학계리 출신)이 비사벌문예상을 수상하고 1998년 「시세계」 시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창녕문인협회 회원 또는 창녕문학에 작품을 발표하였던 우리 고장 문인들은 강홍운, 임신행, 신용찬, 황영희, 김옥영, 정호원, 김찬식(신남동 : 당시 남지읍사무소 재직) 김병수(명지리 : 교원으로 정년퇴직) 박상선, 백희천, 하수옥(남지리) 윤혁 정동진 김현우 등이며 이 중 임신행, 황영희, 김옥영, 김찬식, 김일태, 윤혁 정동진 김현우 등은 직장을 따라 남지를 떠났으나 작품을 계속 보내오고 있다.
또 남지에 살고 있는 문인으로는 시인 성기각과 정이경, 아동문학가 이주희 등이 있다.
임신행은 남지초등학교 재직 시에 경상남도문화상(문학부문)을 비롯하여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여러 문학 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100여권의 동화집과 시집을 출간하였다.
김현우는 창녕문학회 회장과 경남아동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신용찬은 창녕문학회 회장을 수년간 역임하면서 『창녕문학』 발간에 크게 공헌하였고 경남문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박상선은 창녕문인협회 사무국장, 경남문협,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김일태는 창원문협의 사무국장, 부회장 등으로, 백희천은 경남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군내에는 2종의 문화제가 열리고 있는데 이때 백일장 행사가 있고 관내의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여 문학 수업과 실력을 겨루게 되며 문인들은 심사를 담당하며 문학 진흥을 위해 힘을 쓰고 있다.
3) 예술
우리 고장의 여러 예술 분야의 활동은 대체적으로 문학 이외에는 큰 활동이 없는 편이다.
다만 예술인으로 중앙 무대에서 활약 중인 사람은 코믹 연기로 인기가 높은 탤런트 남포동과
MBC에 방송국 성우로 활동하는 황일청(신전리 황귀호의 아들)과 아나운서로 활약하는
박영선(남지리 동포 박수문의 질녀, 박정서의 딸) 앵커가 있다.
음악 부문 활동은 바이올린을 전공한 김진문(남지리 동포)이 있는데 부산대학교 음대 교수로 활약하다 별세하였다.
현재 읍내에는 예그린음악학원 등 피아노 학원이 여러 곳에 있으나 학생들의 교습에 그치고 있을 뿐 연주회
같은 활동은 크게 없고 다만 학교에서 학예회가 있을 때 선보이는 정도이다.
그러나 무용은 학원조차 없으며 음악 미술 모두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인사는 없는 실정이다.
음악학원은 예그린, 예원 음악학원 등이 있다.
미술 부문 활동을 보면 화가 숨결새벌(손동진: 성사리 학암) 교수가 있고 심경자(마산리 홍포, 심흥섭의 딸) 세종대 회화과 교수, 남지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종욱(의령 출신)이 한국화로 화단에 명성이 높다.
읍내에서 지금 전문적인 활동 미술가는 학교에 재직중인 미술교사 외에는 별로 없고 다만 서예로는 남지읍장을 역임한 남상구가 부산에서 한배서실을 열고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서화작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읍내에서는 다년간 글을 쓴 김병수(명지) 황치원(홍정) 김기봉(홍포) 등이 있으나 미술 또는 서예 전시회는 자주 열리지 않고 있으며 다만 학교 학예회 행사 정도에 그치고 있다.
현재 전문 학원으로는 백주서예원, 현대, 다빈치 미술학원이 있다.
도자기 제작은 미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 오래된 도자기는 그 값이 수천만원대로 호가하고 있는데 우리 고장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곳은 보광도자기이다.
이 회사에서는 향토색 짙은 도자기를 생산하고 있다.
고고미술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창규(성사리 학암출신)는 도자기 감정 전문가로 KBS방송 「진품명품」 프로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사진은 예술사진 보다는 영업 사진이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우리 고장의 최초의 사진관은 1935년 경 개업한 미영사진관으로 맨 처음 조상규(趙祥奎)에 의해 현재 남지리 533번지 동포동 미영사진관 자리에 문을 연 것이라 한다.
그 후 1938년 이 사진관을 신성백(辛聖伯)이 인수하였고 1952년 경, 그가 면장으로 진출함에 따라 이경영(李敬永)이 인수하여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경영은 미영사진관을 인수하기 전 본동에서 사진관을 운영해 오고 있었다.4)
해방 후 여러 사람들이 사진관을 개업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발전적 전업을 하기도 하였다.
6.25직후 서동 천연탕(후에 남포동 우체국)옆에서 남지사진관을 하던 강윤형, 남포동 남지의원 옆에서 사진관을 하였던 최형신 등이 있었으나 폐업하였고 박정상이 서동에서 부산사진관, 신명남(申明南)이 남포동에서 광명사진관을 열고 있었으나 예식장 영업을 겸업 또는 전업하기도 하였으며, 동포 천연탕 앞에서 강기수가 장미사진관을 열기도 하였다.
지금은 미영사진관 이경영이 가장 오래 사진 영업만 고수하고 있다.
예술 사진을 찍고 사진 전시회를 최초로 가지기는 신명남이다.
그는 우리 고장에서는 미개척 분야이던 예술 사진 촬영에 몰두하여 개천 예술제, 동아대학 주최 동아국제전, 동아일보 주최 동아 사진 콘테스트 등 국내 유명 사진전에 출품하여 수상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1968년 「한다방」에서 34점의 예술 사진으로 사진전을 열었는데 그 당시에만 하여도 사진 예술을 하는 사람이 극소수였으므로 국내에 널리 알려져 그때 국회의장이었던 이효상의장과 몇몇 국회의원이 찾아와 관람하고 극찬하면서 10여 점을 인수하여 갔다고 한다.
이후 비사벌문화제에서 사진으로 금상을 받는 등 활동하였다.
또 부산사진관을 운영하였던 박정상도 예술 사진 활동을 한때 하였다고 한다.
현재 각종 사진, 비디오 촬영과 현상 등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기는 라라사진관(안회수, 남지리 서동 663-15) 미영사진관(이경영, 남지리 동포 533-3) 예술사진관(박종수, 남지리 대신 746-8) 1.2사진관(이재영, 남지리 동포 533-7) 등이다.5)
1950 ∼ 60년대, 남지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연극 공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지역민들에게 선보였다.
이것은 그 당시 학교에 재직하였던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하여 이루어 졌던 것인데 대단히 인기가 높아 연 이틀 공연하여도 많은 관중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4) 시조(時調)와 시조창(時調唱)
시조는 한글로 창작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학이며 정형시로서 지금도 많은 시조 시인이 시조를 창작하고 있다.
또한 고전 시조는 음을 붙여 많이 노래로 불리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곧 시조창(時調唱)이라 하는데 시조를 사랑하며 시조창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시우회이다.
시우회 활동은 196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최초의 시조창 보급자는 지금 대한 시우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사리 매전 조인업(趙仁業)이다.
조인업은 인간문화재인 정경태(鄭坰兌)로부터 사사 받았으며 1960년에 남지에서 인접 여러 군이나 군내에서는 최초로 낙강시우회(洛江時友會)를 창립하게 되는데 곧 사단법인 대한 시우회의 산하 였다.
시조창에 역량이 있는 창녕이나 영산 등 군내 인사 외에 함안 의령 등 3개군 20여명이 창립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그 지방에서 시조창으로 인기가 있는 인사들이었으므로 시조 보급에 노력한 결과 곧 법인체로 발전하였다.
간판은 남지리 동포동 회장의 집에 걸고6) 명인들을 초청하거나 명인들이 모여들어 교습을 하였거나 시조창대회를 수년간 가져 왔다.
1964년 3월 15일 처음으로 남지리 남포동 노인정에서 영남남여시조경창대회를 개최하였는데 많은 출전자들이 참가하여 시조창을 열창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시조는 조선시대에는 양반 계층 선비들이 선호하였던 것이었으나 최근 이것이 대중에게 보편화되면서 일반 사람들도 시조창을 배우려는 열의가 높아지고 많은 기업인들의 지원을 받게 되어 매년 큰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낙강시우회는 이러한 열의에 힘입어 전국대회를 3회, 영남대회를 21회 개최하였으니 전국의 명인 명창이 남지에 와서 심사도 하고 들을 기회가 없었던 명창도 들을 수 있게 하여 남지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명인들과 다른 지역 참가자들이 우리 고장에 와서 낙동강변 거목 숲 속에 있는 남지노인정과 남지철교, 용화산 절벽과 제왕담 백사장 등 경치와 담백한 정취에 취해 많은 시조인들이 동경하는 명승지로 국내에 널리 소개되기도 하였다.
조인업 하용호 등의 활동으로 많은 시조인을 배출하였는데 그 중 신용만(辛容萬)이 명인부를 졸업하여 누구나 배울 수 있으면서도 어려운 명인의 관문을 통과하여 남지의 시조창 전통을 잇게 되었는데 신용만은 전국 여러 곳의 명창대회에 출전하여 수십 종류의 상을 받았고 창녕군시우회를 이끌게 되었는데 후배 양성을 위하여 1988년 창녕문화원에서 매주 토요일 시조창 교육과 동포동 낙강시우회 회관에서 교습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또 삼일민속문화제, 비사벌문화제 때 개최되는 시조경창대회 행사를 주관하면서 시조 보급에 노력해 왔다.
낙강시우회 회원중 우리 고장 출신 회원은 조인업(매전) 하용호(동포) 신용만(동포) 김동훈(동포) 서석조(마산) 서삼율(마산) 김정두(마산) 윤병우(마산) 이홍우(매전) 김인갑(매전) 조용주(관동) 박태웅(남포) 임용술(본동) 등이었다.
낙강시우회는 1988년 80세 고령이던 하용호가 타계하자 창녕군 시우회와 발전적으로 합쳐지게 되었으며 신용만이 그 회장으로 시우회를 이끌어 남지 시조창의 맥을 계승 발전시켰다.
5) 문화 생활
현대는 신문 방송의 시대이고 그런 매체를 통하여 수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현 생활에 반영하면서 문화 생활은 영위되고 있다.
우리 읍에는 출판사는 없지만 영업중인 인쇄소는 남지인쇄소(남지리 590) 미래인쇄기획(남지리 609-21) 창신인쇄소(남지리 동포 662-23) 등 3개소가 있다.
또 방송사나 신문사는 없고 유선 방송사 1개소가 있어 TV 방송의 난시청지역의 해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7)
남지유선방송사는 남지리 650번지에 소재하고 있는데 다양한 채널에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또 신문은 국내에 발간되는 대부분의 신문이 보급소를 통하여 매일 가정에 신속하게 공급되고 있다.
남지에 지국이나 보급소를 두고 있는 신문사는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종합신문, 한겨레신문 등이다. 그 외는 창녕지국에서 군내 전체를 관리하고 있다.
남지도서관이 수년 전 개관하여 책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어 많은 읍민들이 독서 생활을 생활화하고 있다.
3. 문화 행사
1) 일반 문화 행사
광복 이후 학교를 중심으로 한 백일장이나 미술전시회 학예발표회 등은
우리 고장의 문화 행사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비 조달에 어려움이 있는 등 여러 가지 환경 변화로
인하여 교내 행사로 치러져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우리 고장의 사회단체에서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매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역사가 오래 된 것이 남지청년회의소가 주최하는 경로잔치이다.
이 행사는 1977년 이후 지금까지 개최되고 있는데 이때는 방송국 연예 팀의 협찬을 받아 유명 연예인이 초청되어 우리 읍민들에게 아름다운 선율과 음악을 선사하고 또 학생들의 아동극 무용과 노래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가지므로 향토의 문화 발전에 큰 자극이 되고 있다.
남지농협에서는 1978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새농민대회 때, 이동 대항 민속경연대회 시가행진, 오이 아가씨 선발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벌려 읍민의 문화 향상에 기여하였다.
2) 南旨邑民의 날 行事
사진설명 : ( 남지읍민의 축제(제1회 때 개회식 광경)
1994년, 읍민의 자긍심을 살리며 지역 정서를 담은 훌륭한 향토 문화축제를 위하여
남지읍민의 날이 제정되면서 모든 남지읍민들이 모여 여러 가지 즐거운 행사를 갖게 되었는데
체육 행사와 함께 문화 행사가 다양하게 열려 읍민의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읍민의 날 행사는 읍장 이하 읍사무소 전 직원과 남지읍체육회가 주관하여 모든 것을 추진하였다.
해마다 가진 주요 행사는 다음과 같다.
(1) 제1회 邑民의 날
1994년 5월 13일 ∼ 15일 개최되었는데 이동별 대항 체육대회로 축구 배구 씨름 줄넘기 마라톤
궁도 테니스 여러 종목의 경기가 공설운동장과 고등학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문화 행사로는 창원 여현극국악단 초청 공연과 노래자랑대회 등이 있었다.
읍민의 날을 최초로 제정하고 남지읍체육회 구성과 기금 마련 등은 제반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기는 당시 읍장이었던 김무일읍장으로 김 읍장은 근년에 다른 지방에서도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 축제 행사를 많이 갖는 추세에 발맞추어 남지읍체육회의 조직을 활성화하고 이들을 주축으로 읍민의 날 행사를 창설하게 된 것이었다.
(2) 제2회 邑民의 날
1995년 4월 8일, 9일 양일간 개최되었는데 문화제 행사로서 완벽에 가까운 기획과 진행이었다.
읍민의 날 행사에 따른 취지문을 작성하여 선포하고 낙동강변에서 옛 선조들이 지냈던 용왕제(龍王祭)를 부활시켜 읍내 가가호호에 등을 달았으며, 전야제 행사로 축포를 올렸으며 문화 행사로 노래자랑대회가 열려 흥을 돋우었다.
또 남지읍체육회 외에 낙동강 용왕제 제전위원회를 별도 구성하고 초대 위원장에 동포리의 박재홍을 추대하여 문화 제전을 한층 짜임새 있게 진행하였다.
제2회 주요 행사는 1회 때와 같은 종목의 체육행사 외에 경상남북도 45개 사찰의 협찬 출연하는 용왕제가 치러졌는데 불교 의식의 용왕제가 선보여 이 고장 민속 전래의 용왕제 본래의 전통성 찾기에 집행부에서 연구하는 좋은 자세를 보였다.
남지읍의 발전과 무사 태평을 비는 용왕대제(뒤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3) 제3회 邑民의 날
1996년 4월 28일을 읍민의 여론을 모아 읍민의 날로 지정 매년 지킬 것을 선포하였다.
또 제2회 제전위원회 위원장으로는 황호영이 추대되었으며 3일간의 행사기간에 가가호호 축등을 달았으며
날씨가 가뭄에 따라 전통적인 제례 의상으로 기우제(祈雨祭)를 올렸고, 문화 행사로는 용왕제의 원형을
찾기 위하여 통영 「남해별신굿 보존회」를 초청하여 공연을 가졌다. 체육행사는 배구 마라톤 테니스 볼링대회
게이트볼 등의 종목과 민속 행사로 줄다리기 줄넘기 씨름 제기차기 궁도와 또 처음으로 투견대회를 추가하여
더욱 성황을 이루었다.
전야제 행사는 96년 4월 27일 12시에 남포동 나루터에 용왕대제와 4월 27일, 28일 양일간 같은 장소에서 강변노래자랑이 열렸다. 기념식은 4월 28일 공설운동장에서 가졌으며 이어 체육대회가 열렸다.
용왕대제는 용왕대제 선언과 취지문 낭독이 있은 후 제전위원장의 인사, 격려사가 있은 후 넋건지기 굿, 문넘기 굿, 부정 굿 등이 있었고, 용왕대제 제례로 사물놀이, 용왕굿, 제석굿(가망굿) 궁웅장수굿, 선왕굿(동살풀이) 큰굿, 설장구, 축문, 고금역대, 황천문답, 길닦기(용선놀이) 시왕탄일. 시석(송신)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기념식은 개회선언, 국민의례, 김무일남지읍장의 대회사, 김진백군수의 격려사, 이동지 창녕경찰서장과 본읍 출신 김충식군의원의 축사, 대회규정발표, 선수대표 선서, 폐회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제3회 남지읍민의 날 용왕대제 취지문, 대회사 등은 다음과 같다.
<취지문>
오랜 歲月동안 先祖들의 애틋한 精誠이 昇華 傳承되어 온 民俗文化의 발자취를 再現하여 邑民의 安寧과 和合의 契機로 삼고자 「洛東江 龍王大祭」를 마련코자 한다.
太白山 자락의 火旺山 靈鷲山을 뒤로하고 七百里 洛東江을 품고 앉은 背山臨水의 明堂 이곳 南旨에는 옛부터 先祖들은 농사짓기를 天下之大本으로 삼고, 江原道 黃地川에서 發源한 洛東江의 품으로 南江이 合水되어 물길을 東으로 용트림하여 龍華山 아흔아홉峰을 휘감돌아 奇巖絶壁에 부딪쳐 깊이를 알 수 없는 帝王潭 깊은 곳에 億萬年 洛東江을 보살펴온 龍王님이 계심을 믿어, 가뭄이 심할 때 祈雨祭를 모셨고, 洪水가 汎濫하여 田畓 家畜을 流失할 때나 뱃길로 고기잡이 할 때도 그러하였으며, 雨順風調하여 豊年이 들고 家內가 安家太平하고 子子孫孫 繁盛하며 無病長壽 出世토록 龍王님께 祈願했으니 이것이 「龍王祭, 龍王굿, 龍王먹인다」라고 하였으며 「水陸祭」 또한 같은 脈絡에서 치루어졌다.
예로부터 물은 生命의 根源으로 神聖視하여 新羅에서는 四大 큰 강에 祭를 모셨는데 이를 四瀆이라 하였고, 高麗에서는 八關祭, 朝鮮의 山川壇과 같은 儀式을 갖추어 自然信仰으로 信奉되어 왔다.
이에 우리들은 邑民과 七百里 洛東江 流域 모두의 安寧과 和合을 위하고 壬辰倭亂과 6.25動亂의 忠魂英靈들과 敵軍의 孤魂 및 수많은 溺死者 魂靈의 冥福을 비는 龍王祭를 保存 發展시키고 邑民 모두의 自矜心을 鼓吹시켜 地方 文化財로 가꾸어 地域 情緖를 담은 훌륭한 鄕土 文化祝祭行事로 子孫萬代 이어 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본 趣旨文을 낸다.
<제전위원회 임원 명단>
* 제전위원장 : 황호영
* 부위원장 : 권인수 김학수 박재홍 박수근
* 위원 : 체육회 임원
* 제관 : 체육회장 제전위원장 군의원
* 집사 : 윤판수 정해만 서동석 한수돌
* 집례 : 이순태
<대회사>
읍민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4월의 싱그러운 햇살과 향긋한 봄내음이 온 누리에 가득한 화창한 새봄을 맞아 우리 읍민의 화합과 전진을 도모하기 위하여 개최하는 한마당 축제인 제3회 읍민의 날 행사에 공사간 바쁘신 중에도 참석하여 주신 읍민 여러분들과 본읍 발전을 위하여 항상 애써주시는 출향인사 및 관계단체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읍민 여러분!
올해는 세 번째 맞이하는 읍민의 날 행사를 그 어느 때보다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읍민의 날 제정에 대하여 많은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지난 3월 체육회에서 만장일치로 4월 28일을 읍민의 날로 확정하여 금년부터는 명실공히 읍민의 날 행사를 개최하게 된데 대하여는 읍민과 더불어 대단히 반갑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매년 4월 28일은 우리 읍민의 정서를 함께 하여 우리들의 자존심과 긍지로 결집하여 지역발전과 읍민 화합을 위한 수준 높은 축제의 한마당 잔치가 되어 전진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읍민 여러분!
어제 전야제 행사의 일원으로 강변 나루터에서 펼쳐졌던 「낙동강용왕대제」야 말로 우리 읍민들의 긍지와 보람을 갖고 우리의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지역안정과 읍민복지를 기원하는 우리 지역 으뜸 문화재로 계승 발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통영에 있는 남해 별신굿 보존회에서 낙동강 용왕대제에 열연을 하여 주셨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지역에 알맞은 행사를 주관하지 못한데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하옵고 가까운 기간 내에 추진위원회 등을 조직하여 고증을 거쳐 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끝으로 오늘 이 성대한 축제 행사가 선진 시민의식속에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실 것을 당부 드리면서 끝으로 읍민 여러분과 출향인사 및 내외 귀빈 여러분들의 건강과 가정에 행운이 충만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996. 4. 28. 남지읍장, 남지읍체육회장 김 무 일
읍민의 날 행사를 주관 주최하고 행사 경비 조달까지 책임 맡은 남지읍체육회는 회장에 남지읍장 김무일을 중심으로 고문 6명, 부회장 7명, 감사 2명, 사무국, 본부이사 경기이사, 운영위원(전 이장 38명) 경기부에 홍보, 연예 축구 족구 배구 줄다리기 씨름 육상 줄넘기 등 부서가 있으며 각 부에 부장이 있다.
체육회의 임원 명단은 제7장 체육 부문에 실었다.
제4회 낙동강 용왕대제 제례와 읍민노래자랑
(4) 제4회 邑民의 날
제4회 읍민의 날 행사는 1997년 4월 28일 ∼ 29일 양일간에 공설운동장과 낙동강변에서
남지읍체육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가진 행사는 낙동강 용왕대제를 비롯하여 전야제로 축하공연과 읍민노래자랑를 가졌고
민속행사로는 궁도 줄다리기 줄넘기 씨름 시조경창대회 등이 있었고, 문화 체육행사로는
테니스 볼링 축구 마라톤 게이트볼대회 등이 있었다.
많은 읍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규업 남지읍장이며 체육회장의 대회사, 김진백군수의 격려사, 김충식 군의회의원의 축사, 최대열 제전위원장의 인사말씀 등의 순서로 읍민의 날 기념식을 갖고 각종 행사를 열었다.
97년 제전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제전위원장에 최대열을 위시하여 부위원장 - 권인수 박재홍 김학수 박수근, 위원 - 체육회 임원, 제관 - 체육회장 제전위원장 군의원, 집사 - 윤판수 정해만 신용갑 한수돌, 집례 - 이순태 등이었다.
(5) 제5회 邑民의 날
제5회 읍민의 날 행사는 1998년 4월 28일(1일간)에 공설운동장과 낙동강변에서 남지읍체육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1998년부터는 민선으로 선출된 정태권 남지읍체육회장이 대회를 주관하게 되었다.
행사는 낙동강 용왕대제를 비롯하여 연예인초청 및 읍민노래자랑를 가졌고 민속행사로는 사물놀이, 각설이 등이 있었고, 문화 행사로는 백일장이 있었다.
많은 읍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태권 체육회장의 대회사, 김진백군수의 격려사, 김충식 제전위원장의 인사말씀 등의 순서로 읍민의 날 기념식을 갖고 각종 행사를 열었다.
98년 제전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제전위원장에 김충식을 위시하여 부위원장 - 하일남 김상대 박수근 추교식 유형창, 위원 - 체육회 임원, 제관 - 남지읍장 제전위원장 체육회장, 집사 - 신용갑 김성곤 박태명 성온영, 축관 김병수, 집례 - 이순태 등이었다.
낙동(강)대제의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개회, 집회가, 삼귀의례, 찬불가, 반야심경, 주지인사, 제전위원장 인사, 삼신이운, 권공, 음성공양, 제전위원 제례, 산회가, 사흥서원, 화청, 시식, 배송, 회향
(6) 제6회 邑民의 날
제6회 읍민의 날 행사는 1999년 4월 28일(1일간)에 낙동강변(웃개나루터)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남지체육회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용왕제는 전과 같이 가졌으나 그 외 체육행사와 각종 문화행사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하여 줄이고 사물놀이(남지고등학교 주관), 백일장(초등부, 남지청년회의소 주관)만이 있었다.
읍민들의 참석아래 정태권 체육회장의 대회사, 김진백군수의 격려사, 김충식 창녕군의회의장의 축사, 제전위원장 권차식(남지읍장)의 축사 등의 순서로 읍민의 날 기념식을 갖고 2부로 낙동(강)대제 등 각종 행사를 가졌다.
99년 제전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제전위원장에 권차식을 위시하여 부위원장 - 김상대 박수근 성온영 신용갑 추교식, 위원 - 체육회 임원, 제관 - 군의회 의장, 제전위원장, 체육회 회장, 집사 - 하일남 김성곤 박태명 유형창, 축관 - 김병수, 집례 - 이순태 등이었다.
낙동(강)대제의 순서는 지난해와 같았다.
3) 영산 3.1민속문화제와 참여
우리 고장의 문화제가 아니지만 영산에서 매년 개최되는 영산 3.1민속문화제에 우리 읍민들은 꼭 참여하여 왔다.
역사적으로 우리 고장이 영산현에 속하여 있었던 전통 때문에 동질성의 지역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영산이나 남지나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협동심이 뿌리가 깊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매년 민속문화제가 열리면 우리 고장의 지역 유지들은 많은 협찬을 하여 왔고 또 큰줄을 당기는 날이면 영산으로 몰려갔다.
버스가 자주 없던 시절이라 타고 갈 차가 없어 교통이 아주 불편했던 그 시절에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20리 길을 걸어서 영산으로 몰려가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보름달이 둥실 떠 비추는 신작로를 걸어서 돌아오곤 했다.
특히 우리 읍 출신이 대장이 되면 그 마을 사람들은 사나흘을 영산에 가서 진을 치고 신명을 내며 응원전에 나서고, 줄을 당기는 당일이면 읍민 전체가 빠짐없이 영산으로 가서 줄을 당기며 하루를 흥겹게 지냈다.
영산 3.1민속문화제 행사시에 우리 읍 출신으로 대장을 지낸 사람도 많이 있는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영산3.1민속문화제 역대 대장(본읍 출신) 현황
연도 |
역대 |
대 장 |
중 장 |
소 장 |
비 고 |
1969년 1975년 1978년 1979년 1981년 1983년 1986년 1988년 1994년 |
8 14 17 18 20 22 25 27 33 |
여호동(동포) 김종국(수개) 박재동(담곡) 구성호(칠현) 성극영(고곡) 신용수(수개) 김재곤(옥산) 정수근(남포) 황용환(옥산) |
정호성(명지) |
김판덕(용산) |
|
1. 일반 체육
남지 체육의 발전은 주로 민간 주도로 형성 발전되어 왔는데 남지체육회가 그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상당한 오랜 기간 존속되어 왔다.
그때는 민간주도로 발족된 남지체육회는 행정적인 관의 지원은 거의 없었으며
서로 연관성이 없었으나 체육 발전에 대한 의욕과 열의로 우리 고장 체육발전에 기여한 바가 컸다.
따라서 체육회의 운영과 경비 부담도 주로 회장이 책임져 상당한 재력자가 아니면 맡기 힘든
자리이기도 하였다.
남지공설운동장 부지를 1948년 당시 남지체육회가 구성되고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던 박수문이 기증하였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5.16혁명 이후에는 창녕군체육회의 조직이 군수가 당연직 회장으로 개편되면서 민간 주도시대는 끝이 나고 관(官) 주도 체육회가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데 이런 추세에 따라 우리 읍의 체육회도 그러한 조직으로 군체육대회, 도 체전 등에 우리 고장 선수들이 출전하여 경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주로 두각을 나타낸 종목은 육상을 비롯하여 축구, 배구, 마라톤, 연식 정구, 테니스 등이었다.
우리 고장의 일반 체육은 축구가 주종을 이루어 매년 개최되는 군내 체육대회에 출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그 외 육상, 배구, 태권도, 역도, 씨름 등이 있다.
1) 공설 운동장
공설 운동장은 읍민들의 체육 활성화에 꼭 필요한 시설로 각종 경기와 대규모 행사를 갖는 장소로 이용해 왔다.
최초의 우리 고장 공설 운동장은 지금 현재의 신남동 758번지 일대에 있었다.
이곳은 해방 후 1948년 경 남지체육회를 조직하게 되면서 그때 동포동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박수문이 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게 되면서 당시 밀밭이었던 자신의 소유 밭을 기증하여 공설 운동장으로 조성한 것이었다.
이 운동장에서 최초로 리동대항 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1950 ∼ 60년대 이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의 축구대회도 열리고 학도호국단의 훈련과 사열 같은 행사와 6.25전후 각종 읍민의 기념식, 규탄대회 같은 행사장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1965년 홍수로 인하여 수해 피해주민들의 이주지로 결정, 신남동이란 새동네의 주택지가 되자 운동장 매각 대금조로 내놓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현재 위치인 본동의 입구 남지리 208-2번지외 2필지 2,196평의 밭을 매입하여 공설운동장으로 조성하게 되었다.
지금은 남지읍에서 운영 관리하고 있는데 부대시설은 본부석, 축구 골대, 샤워장, 조기축구회 사무실 등 간이 시설뿐이다.
1997년 3백만원의 예산 지원으로 마사를 부설하여 운동장을 정지하였다.
이 운동장은 폭이 60m, 길이가 100m로 협소하여 각종 행사를 진행하기에 애로가 많아 확장 또는 이전이 시급하다.
그러나 주변이 주거지역이므로 땅값이 높아 보상 매입이 어려워 부지 확장이 어렵다.
또 진입로가 시장을 통과하므로 장날에는 교통 혼잡이 일어나는 등 운동장의 이전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래서 확장보다는 넓은 부지를 매입하여 이전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먼저 도시계획상의 공설운동장 부지로 예정된 곳은 마산리 269번지 일대의 23,750평이나 외지인 토지와 묘가 많고 건물 보상 곤란 등 조건이 적합하지 않아 현재 마산리 49-59일대 21,393평을 운동장 예정지로 정하고 운동장 설치를 추진중이다.
그러나 2001년 현재 상남동에 대규모 공설운동장을 만들고 있다.
2) 축구
축구는 해방 전부터 우리 고장의 가장 인기 있는 경기 종목으로 크고 작은 경기가 개최되었다.
그 중 해방 전에 이 고장의 축구단으로 이름이 높았던 맹사단(猛獅團)은 영산 남지 축구 선수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축구단으로 창녕 축구단과 자주 경기를 열기도 하였는데 당시 홍포동의 박부춘(박갑춘의 제)이 선수로 활약하였는데 포지션은 문장(골키퍼)이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축구대회에서 기능을 닦았던 축구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1961년에는 홍포동의 김재동이 창녕군 대표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선수로 활동하고 있기는 학계리 홍정 출신 김진우선수인데 남지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여 전국소년체전(1987. 5)에 출전 우승한 것을 비롯하여 주니어청소년 국가대표(1990. 7)로 출전하였고, 1992년 대구대학교 재학중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대표선수로 출전, 93년 1월 호주, 93년 12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등에서 우승하였고, 그후 주택은행을 거쳐 프로팀인 삼성축구단에 입단하여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또 학계리 이영대(현 남지농협 근무)가 청소년대표팀 선수로 활약하였다.
지금 남지중학교에서 축구부를 양성하여 전국대회에서 큰 전적을 올리고 있으며 공설 운동장에서 매년 이동 대항 축구대회 또는 남지체육회와 남지조기회 등에서 주최하는 다른 지역간 친선 또는 읍내 이동대항, 띠별대항 등의 축구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3) 태권도
태권도는 중앙으로부터 시작하여 몇 개의 체육관 조직으로 지방과 연계되어 있는데 남지는 8.15 해방후 태권도 도장이 있었다고 『창녕군지』에 기록되어 있으나8) 누가 어디서 도장 문을 열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최초의 태권도 도장은 자유당 말기인 1958년 지금은 상록아파트가 들어선 곳인 구 면화공장 창고를 임대하여 무덕관을 개관하였는데 초대 관장에는 동포동 최대열, 사범은 조규병이었다.
이때 양성된 선수는 박희보 진용점 한소부 서호덕 정창기 고삼수 박덕규 등 유단자 1기 7명을 배출하였는데 다음해 1959년에는 남지극장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후 2대 사범으로 유경재가 지도하였는데 이후 약 100여명의 유단자를 배출하여 여러 대회에 출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태권도는 지역 주민에게 인기도 높고 환영도 받았다.
70년대에는 김보길(남지리 남포)이 태권도 사범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이순달이 경남체육회 태권도협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우리 고장에는 3개소의 태권도 도장이 있으며 전에는 일반인과 중고등학생이 많았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초등학생이 대부분으로 자녀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하여 부모들이 태권도장에 아이들을 많이 보내고 있다.
4) 기타 종목
육상은 체육의 기본 종목으로 학교에서 오래 전부터 육성하여 왔다.
군내 체육대회 또는 읍민의 날 체육대회 또는 도 체전 때 대표 선수로 출전하고 있다.
배구는 학교를 중심으로 오래 전부터 9인조 또는 6인조로 경기가 치러져 왔으며 전문적인
선수로 활약하지는 않지만 읍민의 날 행사 때 공설운동장에서 배구대회가 배구부의 주관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마라톤은 한때 중.고등학교에서 장려하여 개교기념일 같은 때에 남지철교-이룡을 돌아오는
코스나 상대포-성사 황새목을 돌아오는 단축마라톤대회가 자주 개최되어 큰 인기가 있었다.
군 대표로 출전한 선수도 있었으며 최근 읍민의 날 행사 때 마라톤이 부활되어 남곡중학교에서 출발 공설 운동장까지의 10km 코스로 마라톤대회가 개최되고 있어 많은 선수들이 참가한다.
역도는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고장 선수로서 헤비급 동메달을 따게 돼 남지의 이름을 아시아에 드날리기도 하였다.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9회 아시안대회에 홍포동 김철현 선수가 헤비급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여 전국민을 환호케 하였다.
그 당시 남지체육회에서는 시가 퍼레이드를 펼치고 다채로운 환영행사를 가졌는데 김철현 선수는 남지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산경상고등학교 때 역도 선수로 입문하여 고교 때 미들 헤비급으로 전국체전에 출전 1위를 여러 번 하였고, 1978년 청소년 대표선수가 되어 국제 청소년대회에 출전 1위, 고교 3년 때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고, 1982년 아시안게임 3위, 1984년 L.A 올림픽 참가, 85년 아시아 역도대회 1위, 1986년 아시안게임 4위 등 입상 경력이 화려하다. 현재 경남체육고등학교에서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다.
유도는 곽충길 사범이 지도하는 유도장이 1960, 70년에 동포동에 있었으며, 같은 시기 복싱도 활발하여 남지공회당에서 권투 시범경기가 개최되고 이때 정창규(남지리 본동)가 경기에 나가 큰 인기를 얻었고 이어 그가 복싱도장을 열고 남지 강변 모래사장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게 되엇는데 이때 임종식, 정용범, 이정재 등이 수련하였다고 한다.
70년대 들어 차용균(창아지)이 복싱도장을 개설하고 동포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국내 권투대회를 개최하여 많은 관중이 모여들고 권투도장에도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씨름은 민속경기로 또 최근에는 장사씨름대회 등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드높다.
해방 이후 매년 추석 때면 구 면화공장 터에서 씨름대회가 개최되어 황소를 타 가는 장사가 많이 있었다.
당시 남지고등학교에서도 씨름대회가 자주 있었는데 1953년 대회 때 허판용이 우승하고 김소진이 2등을 하였다고 한다.
읍민의 날에 민속경기로 씨름경기가 씨름부 주관으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되고 있다.
또 읍민의 날 체육대회 종목으로 줄넘기, 줄다리기, 족구, 육상 경기가 있는데 전에 봄철 또는 명절 때면 그네를 많이 탔고 따라서 추천대회도 열려 여인네들이 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솟구치는 장관도 보여 주었는데 지금은 개최되지 않고 있다.
2. 생활 체육
생활 체육이란 전문적인 경기를 위한 선수들의 체육이 아니라 생활인으로 평소 건강을 위하여 동호인을 구성하고 여러 가지 체육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고장의 생활 체육은 축구와 궁도 테니스 등이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
축구는 특히 새벽 일찍 일어나 공설 운동장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인근 주민들이 즐겨 하는 운동으로 조기 축구회가 있고 또 띠별로 모여 즐기는 띠별 대항 경기도 자주 열려 생활 체육을 활성화하고 있다.
또 궁도도 역사가 깊은 우리 나라의 전통 무예로 서양에서 들어 온 양궁과는 달리 일반 생활인들이 즐겨 궁도장을 찾고 있다.
1) 동호인 축구
직장을 갖고 생활하며 축구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이 모인 남지조기 축구는 역사가 오래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새벽마다 남지공설운동장에 모여든다.
조기 축구는 동호인끼리 축구를 즐기기도 하지만 인근 시군 조기축구회와 친선 경기도 자주 갖고 있어 우리 고장의 체육 발전에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띠별 축구대회를 주관하고 있는데 띠별 축구대회는 읍내의 출생연도별 친목회인 갑계 회원들의 대항으로 남지에서 아주 큰 행사로 제1회 대회는 1979년에 개최되었으며 주최는 기축생갑계였는데 최근 남지조기회 주관으로 대회를 가지다 다시 갑계에서 주최하고 있다.
역대 대회 개최 상황은 다음과 같다.
남지읍 띠별 대항축구대회 연혁
회 별 |
연 도 |
주 최 |
대회장 |
명예대회장 |
제1회 |
1979년 |
기축생 |
박 종 원 |
황 호 영 |
제2회 |
1980년 |
기축생 |
박 이 규 |
최 대 열 |
제3회 |
1981년 |
기축생 |
이 재 용 |
이 병 화 |
제4회 |
1982년 |
기축생 |
김 일 현 |
여 호 동 |
제5회 |
1983년 |
기축생 |
성 수 경 |
박 수 복 |
제6회 |
1984년 |
기축생 |
한 문 수 |
김 재 동 |
제7회 |
1985년 |
기축생 |
이 종 화 |
곽 해 문 |
제8회 |
1986년 |
기축생 |
채 윤 근 |
차 낙 균 |
제9회 |
1987년 |
경인생 |
김 타 곤 |
신 경 식 |
제10회 |
1988년 |
신묘생 |
최 윤 철 |
김 갑 수 |
제11회 |
1989년 |
용우회(임진생) |
여 경 부 |
차 낙 균 |
제12회 |
1990년 |
오삼회(계사생) |
김 흥 기 |
윤 혁 근 |
제13회 |
1991년 |
백마회(갑오생) |
차 태 철 |
김 진 봉 |
제14회 |
1992년 |
양우회(을미생) |
김 상 희 |
정 달 웅 |
제15회 |
1993년 |
신우회(병신생) |
권 유 관 |
정 영 해 |
제16회 |
1995년 |
남지조기회 |
조 병 하 |
우 택 희 |
제17회 |
1996년 |
남지조기회 |
손 정 식 |
김 윤 만 |
제18회 |
1997년 |
정유생 |
구 경 서 |
박 수 근 |
제19회 |
1998년 |
무술생 |
이 순 봉 |
양 동 효 |
제20회 |
1999년 |
기해생 |
성 호 경 |
조 판 석 |
2) 궁도
우리 나라 고유 전통 무예인 궁도는 서양에서 들어온 양궁과 구분하여 국궁(國弓)이라
하기도 하는데 오래 전부터 생활 체육으로 또는 민속 경기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 동호인 또한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우리 고장의 궁도의 시작은 1948년 3월 강지산을 창립 사범으로 서정권을 사두로 하여
남포동 끝(상남동 앞) 당시 남지둘 끝자락에 궁도장 강남정을 만들면서부터이다.
이 궁도장은 시가지의 발전으로 인근에 인마의 왕래가 잦아 부득이 1980년에 철교 건너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용화산 남지공원으로 궁도장을 옮기게 되었다.
또 1993년 마산리에 웃개정{上浦亭}이 창립되어 궁도 동호인이 더욱 많아지는 발전을 가져 왔다.
궁도 경기는 초청 경기도 갖지만 경남도내 또는 전국적인 경기대회에 많이 출전하여 많이 입상하였으며 군내 궁도인이 모여 겨루는 친목대회도 여러 차례 개최되고 있다.
특히 남지읍민의 날 행사 일환으로 군내 초청대회가 웃개정에서 열리고 있다.
또 많은 유단자와 공인 심판 자격증 소지자도 많아 궁도 발전에 양대 궁도장이 큰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호인 또한 100여명에 이른다.
3) 기타 생활 체육
테니스는 일반 체육으로 많은 경기가 개최되어 전문적인 선수가 많으나 우리 고장에서는 대체적으로 동호인을 중심으로 한 테니스가 오래 전부터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테니스가 본격적으로 경기가 있기 전에 우리 읍에는 남지연식정구협회(남지정우회, 초대회장 남상대)가 창립되어 구 남지중학교(현재 동포동) 또는 천주교 정구장에서 72년부터 80년대 초까지 많은 경기를 가졌으며 큰 대회에도 출전하여 입상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식 정구가 테니스로 바뀌어 졌다.
그 후 테니스장이 시설된 학교를 중심으로 낙동테니스협회 등 테니스 동호인 단체가 활성화되었으며 군내 친선 경기 및 도내 대회 등에 출전하여 우승하기도 하였다.
현재 테니스 코트는 3개소로 학교에 시설되어 있다.
최근 노인층 중심으로 한 게이트볼이 인기를 끌며 확산되어 이를 즐기는 동호인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읍민의 날 행사 일환으로 남지대교 아래에서 게이트볼 경기가 열리기도 하였다.
게이트볼 경기장은 남지(본동), 고곡, 남포 경로당 등 3개소가 있다.
볼링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데 여러 친목단체 경기가 열리고 있으며 최근 읍민의 날 행사 일환으로 에이스볼링장에서 볼링협회 주관으로 경기가 열려 성황을 이루었다.
볼링장은 상록볼링장(남지 남포) 에이스볼링장(대신) 2개소가 있다.
우리 읍의 체육관으로는 국술체육관(마산리 905-22) 남지체육관(남지리 481-15) 아시아체육관(남지리 동포 542) 학사체육관(남지리 구획정리지구 35B-4L) 등이 있다.
3. 학교 체육
1) 고등학교 체육
남지고등학교에서는 씨름선수단을 창단(배수찬 감독 지도)하여 1988년 전국 고등학교 씨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3위에 오를 만큼 씨름 육성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 후 교기 종목이 태권 육상 축구 배구 등으로 변경되면서 군민체육대회 때 출전하여 여러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각종 대회 출전 주요전적은 다음과 같다.
각종 대회 출전 주요전적 일람
대회일자 |
대회 명칭 |
전 적 |
1988. 4. |
전국고등학교 씨름선수권대회 |
이관식-3위 |
1990. 5. |
전국육체미대회 |
황문상-고등부3위 |
1993. 4. |
경남 태권도협회장배 |
임유진-여자부 핀급우승 |
1991. 6. |
창녕군고등학교 육상대회 |
박성호-400m우승, 조은정-원반던지기 우승, 김영직-세단뛰기 우승 |
1994. 10. |
제1회 창녕군민체육대회 |
축구-우승, 배구-우승, 육상-종합 2위, 남자부-종합우승, 여자부-종합3위 |
1995. 10 |
제2회 창녕군민체육대회 |
여자부-종합준우승 |
2) 중학교 체육
오래 전부터 축구가 큰 인기를 끌며 축구선수를 양성하여 각종 대회에 출전 여러 차례 입상하였다.
특히 남지초등학교에서 선수를 육성하여 남지중학교에 진학하는 등 연계 육성되고 있다.
(1) 남지중학교 축구
남지중학교에서는 교기로 축구부를 육성하고 있는데 1989년 6월에 창단한 현재의 축구부는 다음과 같은 전적을 가지고 있다.
각종대회 출전 주요전적 일람
대회일자 |
대회 명칭 |
전 적 |
1990. 5. |
경남소년체육대회 |
우승 |
1992. 3. |
경남소년체육대회 |
준우승 |
1994.∼96 4. |
경남소년학예체육대회 3회출전 |
연속 3회 우승 |
1994. 5. |
전국초.중.고 금석배축구대회 |
준우승 |
1994. 5. |
경남협회장기 축구대회 |
3위 |
1996. 3. |
경남협회장기 축구대회 |
3위 |
(2) 남지여중 스키
연중 눈이 별로 오지 않는 지방의 학교이면서도 스키 선수를 육성하여 전국적으로 개최되는 스키대회에 출전하여 여러 대회에 입상하고 있는 팀이 있으니 바로 남지여중 스키부이다.
스키(노르딕) 선수단을 1987년에 창단하였는데 매년 개최되는 여러 대회에 참가하여 많은 전적을 올렸다.
용평배 전국스키대회, 전국동계체전, 전국스키선수권대회, 회장배스키대회, 전국종별스키선수권대회, 종목별 대회(2.5km 개인, 5km 개인, 7.5km 계주 등)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금메달 22개, 은메달 28개, 동메달 25개를 획득하였으며, 96년 제16회 일본 북해도 중심도시인 아사히까와 바사 스키대회에서 3학년 윤면정 선수가 한국 주니어 대표로 참가하여 아시아 각국 선수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금메달의 영광을 한 몸에 안았고, 지도교사인 배수찬은 경남도지사로부터 지도교사상을 수상하였다.
4. 체육관련 단체
1) 남지읍체육회
해방과 함께 읍민 스스로 체육 발전을 위하여 뭉쳐 나서게 되는데 증언에 의하면 1948년 남지읍체육회가 창립되고 초대 회장에 박수문(도정업)이 추대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민간인 주도로 남지 체육 발전을 위해 공헌해 왔다.
1997년까지 남지읍체육회는 읍장이 회장으로, 1994년부터 남지읍민의 날 행사를 주최하고 행사 관리와 경기를 주관하며 경비 조달까지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1996년도 임원은 다음과 같았다.
* 고 문 - 최대열 김재동 황호영 정영해 김충식
* 회 장 - 김무일(읍장)
* 부회장 - 박재홍 이순태 박수근 권인수 김학수 김상진 여봉구
* 감 사 - 구성오 김진봉
* 사무국장.차장 - 백남석 읍총무계장 이희덕
* 본부이사.경기이사 - 조기축구회장 웃개정사두 강남정사두 남지JC회장 특우회회장 라이온스회장 향친회회장
낙동정우회회장 의용소방대회장 (이하 생략)
* 운영위원 - 38개 전리동 이장
* 경기부장 - 홍보 : 진경수 연예 : 강학기 축구 : 엄달호 족구 : 추학엽 배구 : 김진철 줄다리기 : 이춘기 씨름 : 김용백
육상 : 우홍해 줄넘기 : 김영태
1998년도부터 체육회 회장은 민선으로 선출하도록 하여 남지읍민의 날 행사를 주관하였다.
사무실은 남지리 663-8 남지읍사무소 2층(전화 526-1331)에 있으며 1999년도 임원은 다음과 같았다.
고 문 : 최대열 김재동 황호영 김무일 김충식 박재홍
회 장 : 정태권
명예회장 : 권차식(읍장)
부회장 : 이순태(상임) 박수근 김상대 하일남 성온영 신용갑 박태명 추교식 김성곤 유형창
감사 : 구성오 윤혁근 사무국장 : 최원룡 사무차장 : 총무계장(서종찬) 이희덕
운영위원 : 전리장(38명)
부장 : 김용백 강학기 최성룡 우홍희 정종호 이창수 임치봉 오세관 박종국 추영엽 곽종수 박태석
이사 : 강남정사두 웃개정사두 남지라이온스회장 남지JC특우회장 남지JC회장 조기축구회장 향친회장 의용소방대장
한수돌 이선길 정낙규 황의용 이종섭 배득한 정종만 김규상 강의기 이수건 조병화 신선한 이현환 조홍래 이상준 전인수 황호술 김찬규 박희보 김수길 김타곤 정규권 정용환 허종용 박도재 여환수 신규태 오대권 황경순 진용점 박용주 채윤근 김차만 하재돈 변재천 신용탁 윤판수 이순봉 김동일 박계호 김정도 정해만 박재호 신인상 김용호 진정호 설이규 성낙현 오관석 김철기 구소돌 최원철 차영수 박덕균 김종태 공성배 하태홍 김영태 안영옥 신항기 송명호 노영문 오천근 황온순 임범웅 오윤환 류재현 황영목 공병석 오두석 황찬성 김종길 김준호 권유관 손병철 문학찬 김정해 서호도
(자료 제공 : 남지읍 체육회)
2) 강남정(江南亭) 궁도회
강남정 궁도회는 1948년 3월 강지산 서정권 이석희 김용만 조은배 이봉식 이이중 김성봉 안생율 이경영 등 10명이 뜻을 같이하여 창립을 하였는데 초대 사범 강지산, 사두는 서정권이었다.
이런 계기가 된 것은 1947년 강지산이라는 국궁 제작공이 남지에 우거하게 되면서 국궁에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국궁을 지도하면서 였다.
강지산은 자기 소유의 가옥을 국궁 연습장으로 기증하고 낙동 강변에 과녁을 설치하고 초대 사두로 서정권을 추대하여 1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국궁연습장을 설치하고 정 이름을 「강남정」으로 하였다.
1955년 8월, 여승호 사장으로부터 부지 1,100평(남지리 782)을 기증 받아 정사를 이전 건립하였다.
1964년 9월, 김성봉 사두의 주선으로 정사를 남향에서 서향으로 개축하여 과녁을 마주 보게되어 궁도 훈련과 관리에 편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1965년 여름 대홍수로 과녁이 유실되고 회원수 감소 등으로 한동안 폐정될 위기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1969년 3월 이양원 사우가 과녁을 제작하여 설치하고 회원을 모집해 국궁 훈련을 재개하게 되었다.
궁도장이 남지둘 끝자락 상남동 남쪽 모래밭에 과녁을 세웠는데 이곳은 사람들의 내왕이 잦은 길이 사장(射場)을 횡단하고 있어 위험했다.
읍이 발전하면서 인가가 점점 많아져 위험성이 높아져 결국 이전하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1980년 8월에 궁도장을 강 건너 용화산 남지공원으로 정사를 옮기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많은 궁사를 배출하고 초청 경기를 비롯하여 친목대회를 주최하였으며 국내 여러 대회에 출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단체전 우승 현황은 다음과 같다.
경기일자 |
대회명 |
장소 |
출전자 |
비고 |
1975. 4.15 |
제10회 전국남여 궁도대회 |
진해 벽해정 |
여호동 김광호 이규영 공병석 이양원 |
군항제 |
1975. 6. 6 |
8개시군 친선 궁도대회 |
진영 금병정 |
여호동 신경식 김광호 공병석 이양원 |
단감축제 |
1976. 5. 9 |
부산.경남 13개정 궁도대회 |
밀양 석화정 |
여호동 이규영 신경식 박재홍 공병석 |
아랑제 |
1976. 8.22 |
경남.부산 13개시군 궁도대회 |
군북 백이정 |
여호동 최태준 김광호 신승열 신경식 |
|
역대 주요 회원 명단
▶ 별세한 이 : 강지산(사범) 서정권(사두) 이석희(사두, 사범) 이이중(사두) 김용만(총무) 이봉식(총무) 안생율(총무) 김성봉(사두) 심술섭 이화우 여승호(경남도지부장) 공신포(사두) 여호동(사두) 허남섭 이규영(사두) 진영보(사두) 권석환 김광한
▶ 생존자 : 조은배(사두) 이경영 이양원(사두, 사범) 김조섭(총무) 김석현 공병석(총무) 박재홍(총무) 황성갑 윤덕조 박관훈 최태준(사두) 김광호(사두) 신승렬(사두) 강대덕(사두) 신용봉(사두) 김태연 정충석 이무영 최은영(사두) 김여수(사두) 김영택(사두) 황정순(사두) 최한룡(총무) 최용출 정오환(총무)
(자료 제공 : 강남정)
3) 남지 조기 축구회
축구 동호인들이 모여 매일 새벽이면 남지리 본동에 있는 남지 공설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남지조기회가 구성되기는 1976년 5월 16일, 회훈으로 인화단결, 굳센 체력, 사회봉사 등으로 정경도 초대 회장과 84명의 회원으로 창립되었다.
처음에는 동포초등학교 운동장을 사용하였으나 1976년 7월 17일 불도저로 공설운동장 정지작업을 마친 후부터 공설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게되었다.
주요 활동 상황은 1978년부터 매년 남지 이동대항 축구대회를 주관하여 개최하여 왔고 또 띠별 축구대회, 초청경기, 원정경기 등 인근 지역의 조기축구회 등과 친선 대회를 자주 가지며 최근에는 읍내 띠별 대항 축구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현재는 노 . 소장을 분리 운영하고 있으며 1997년 군수 면담을 통하여 남지공설운동장에 대한 예산 책정을 건의하여 300만원을 지원 받아 마사를 부설하는 등 남지의 체육발전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 주요 경기 전적
제1회 영남시.군연합 조기축구회 친선축구대회 우수상('79) 제3회 영남시.군 회장기 축구대회 우승('79) 고성 남산조기회 창립2주년 초청 축구대회 준우승('79) 제9회 연합행사(삼랑진) 우승('80) 제12회 연합대회 준우승('81) 창녕군 읍.면조기회 대항 축구대회 우승('81) 제1회 창녕군 읍.면 대항 축구대회 우승('82) 제1회 연합 회장배 쟁탈 축구대회 우승(부상으로 황소 한 마리 '82) 대구 성서 조기축구회 창립대회 우승('82) 제17회 연합행사(마산) 장려상('82) 3.1민속문화제 읍.면대항 축구대회 준우승('83) 제3회 새마을 조기축구 읍.면 대항 축구대회 우승('83) 제3회 새마을 조기축구 연합 회장기 쟁탈 대회 준우승('84) 영산조기회 초청 친선축구대회 준우승('84) 제4회 읍.면 대항 새마을 조기축구대회 준우승('84) 제5회 창원 정병조기회 회장기 축구대회 준우승('85) 제7회 성서조기회 창립기념대회 준우승('86) 제5회 함안군 새마을 조기축구대회 준우승('86) 대구 성서조기회 10주년 창립기념대회 우승('89) 제11회 읍.면 대항 축구대회(3.1문화제) 우승('92) 상주 상산조기회 창립기념대회 준우승('92) 진영 금병조기회 창립기념대회 장려상('92) 마산 합성조기회 창립기념대회 장려상('93) 마산 구암조기회 창립기념 대회 우승('93) 진영 금병조기회 창립대회 우승('94) 마산 구암조기회 창립기념대회 우승('94) 대구 성서조기회 창립기념대회 준우승('94) 구포 매일 초청대회 준우승('95) 거제 동백조기회 창립기념대회 준우승('95) 구포 매일조기회 회장기 쟁탈 축구대회 준우승('96) (팀별 초청, 원정, 친선 경기는 생략
1999년 현재 사무실은 남지리 207-1 남지공설운동장 내에 있으며 회장 정대협, 회원은 55명이다.
¤ 역대 회장 명단
초대, 2대 정경도(1976. 5.16∼) 3대 정점철(78. 1. 1∼) 4대 곽해문(79. 1. 1∼) 5대 박수복(80 1. 1∼) 6대 김국현(81. 1. 1∼) 7대 문학성(82. 1. 1∼) 8대 김재동(83. 1. 1∼) 9대 황호영(84. 1. 1∼ 창녕농지개량조합장) 10대 김용표(85. 1. 1∼) 11대 우택희(86. 1. 1∼) 12대 김윤만(87. 1. 1∼) 13대 서정술(88. 1. 1∼ 동성택시 대표) 14대 김충식(89. 1. 1∼ 군의회 의장) 15, 16대 백남석(90. 1. 1∼) 17대 이순영(92. 1. 1∼ 대합소방파출소) 18대 백남운(93. 1. 1∼) 19대 조홍래(94. 1. 1∼ 남지목욕탕) 20대 조병화(95. 1. 1∼ 장원벽돌) 21대 손정식(96. 1. 1∼) 배춘남(97. 1. 1∼ 송학다방) 김도우(98. 1. 1∼ 남지중학교 교사) 정대협(99. 1. 1∼현)
¤ 임원 및 회원 명단
고 문 : 김재동 박수복 정경도 황호영
직전회장 : 김도우
회 장 : 정대협
부회장 : 신진현 김진철 정명호 사무국장 : 윤철식
사무차장 : 전정호 감독: 김주철 관리부장 : 하해동 섭외부장 : 문구태
회 원 : 김영희 김용만 김윤만 김인득 김충식 김부학 배춘남 백남운 서정술 손정식 송영헌 신영기 신흥식 우택희 이세화 이순영 정낙규 정유환 정영봉 정해상 조병하 조형진 조홍래 한수조 한정호 황헌기 김영태 김종덕 박기훈 박석재 박수덕 박치후 서영환 성재경 손성진 손태룡 이동석 이수찬 이영대 이영욱 이춘기 임치봉 정윤찬 진 통 진창덕 진철규 최창용 최태교 공봉진 추영엽 최정곤 정삼식 김진도 남우열 이선곤 이진흔
(자료 제공 : 남지조기축구회)
4) 南旨웃개정{上浦亭} 弓道會
궁도는 조상의 슬기와 얼이 담긴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로 심신을 단련하며 생활 스포츠로 육성되고 있는 종목이다.
남지 궁도인의 저변 확대와 젊은 연령층의 유능한 궁도인 발굴로 경남 제일의 궁사를 배출하고 또 나아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함은 물론 사우 상호간에 친목도모와 궁도 발전에 기여하고자 1993년 2월 21일 동호인들의 뜻을 모아 4월 20일에 창립하게 되었는데 창립회원은 박재홍 공병석 김사수 황의용 진정호 전삼국 이재용 박태명 등이었다.
남지의 순수한 옛 지명인 웃개(上浦)를 궁도회의 명칭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홍포동 앞의 토지구획정리지구에 임시로 궁도장을 설치하였다.
그후 회원은 26명으로 증가하고 초대 사두 공병석의 노력으로 1994년 4월 15일 상대포(마산리 29-70) 현재 자리에 과녁 3조와 조립식 건물을 건립하여 웃개정을 개설하였는데 현재 회원은 63명에 이르고 있다.
95년 5월 6일, 6.5평 규모의 2층 팔각정을 짓고 현판을 달았으며 대한궁도협회 규격의 과녁 3조와 사대를 설치하였다.
같은 해 7월 15일에 철구조 빔으로 40평의 1층 사대 및 2층 사무소와 회의실을 신축하였으며 150m의 진입로를 확 포장하고 주변 성토 및 미화작업 등을 같은 해 9월에 완공하였다.
96년 6월 1일 2층 회의실 증축 및 주차장 확장, 연못을 조성하여 중부경남 대회 유치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 동안 여러 대회에 나가 우승하였는데 군내궁도대회에 단체전 5연승을 거두어 연륜은 짧지만 빛나는 성과를 올렸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간 가졌던 행사나 사업은 1995년 10월에 중부경남 11개정 초청 친선궁도대회와 경남정대항전 및 입승단 대회 등을 유치, 1996년 6월에 제81회 중부경남 궁도대회를 유치하였으며, 97년 11월 9∼10일에 경남입승단 및 정 대항전, 98년 4월 13일 제95회 중부경남 친선궁도대회를 웃개정에서 주관하여 개최하였다.
그리고 매월 월례회를 겸한 회원간 궁도대회와 군내 5개정 친목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또 읍민의 날 행사로 갖는 궁도대회도 주관하고 있다.
◇ 궁도대회 출전 입상 내역
의령 의병제 기념 영남대회('95) : 박동목 개인전 2등, 사천시 경축 전국 남.여 궁도대회('95) : 박동목 개인전 2등, 영.호남 궁도대회('96) : 하태원 개인전 3등, 울산시장기배 영.호남 남녀 궁도대회('97) : 단체 우승, 의령의병제 기념 전국대회('98) : 단체 2등, 한산대첩기념 제1회 해군참모총장배 궁도대회('98) : 정해용 개인전 1등, 제9회 생활체육회장배 궁도대회('98) : 장종호 개인전 1등, 전남 화순 제3회 운주대축제 전국대회('98) : 정해용 개인전 3등
◇ 입단 및 승단자 명단
4단 : 정종호
3단 : 박동목 권천식 김윤태 정해용
2단 : 공병석 이순태 황의용 김용필 하태원 김만두 진성식 김용표 황호술 김세곤 배종삼
초단 : 황원복 정규도 오태용 이창우
¤ 역대 사두 명단
초대∼4대 孔炳碩(1993. 4.20∼96.12.18, 대한궁도협회 경남지부 경기 이사) 5대 李淳泰(96.12.19∼98. 1. 2, 한나라당 창녕지구당 사무국장) 6대 金容杓(98. 1. 3∼99. 1.10, 동문장 여관 대표) 7대 陳性植(99. 1.11∼현, 새마을 금고 이사)
¤ 회원 명단
직전사두 : 김용표
사범 : 박동목
코치 : 권천식
고 문 : 공병석 이순태 박재홍
사 두 : 진성식
부사두 : 이창우 김만두 총무 : 배종삼 부총무 : 오태용
감 사 : 이용철 황호술
이 사 : 황의용 장종호 정규도 정규권 정해용 하태원
회 원 : 박태명 추교식 정낙규 최옥규 정종만 김용필 김충식 김수길 김상태 박용출 김상대 신용완 이종화 구중회 신호곤 진정호 박길종 배한영 오대환 김동출 김윤태 김세곤 유덕기 오무환 노영목 권태우 진봉근 배수찬 이호출 윤형규 전인수 신선한 장양호 황원복 김무일 정해원 김찬규 김용수 김성곤 황장호 이상학 김준호 이괘도 하태철
(자료 제공 : 남지웃개정궁도회)
5) 용화 산악회 (龍華山岳會)
남지사람들이 즐겨 찾는 용화산에 조성된 남지공원
용화산악회는 남지읍민들이 자주 찾아가는 용화산에서 산행 길에 모여든 청장년들의 모임으로
1992년 12월 7일에 회원 20명으로 창립하였다.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위치하고 있는 용화산은 창녕군 소유 임야(일제시대에는 남지면 소유임)가 있어
옛날부터 남지공원은 우리 읍민의 한 생활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활용되어 왔다.
최근 개인의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 증가함에 따라 이곳 용화산을 찾는
읍민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이곳을 남지읍민의 체육공원으로 조성하자는 회원들의 뜻을 모아 독지가의 기탁금과 창녕군의
예산지원, 회원의 인력지원으로 등산로를 정비하고 현대식 운동기구와 휴게시설을 갖춘
체육공원을 조성하여 체육 발전에 활동하고 있다.
¤ 역대 회장 명단
초대 김영조(1992∼현재)
(자료 제공 : 용화산악회)
5) 기타 체육 단체
● 남지 정우회(庭友會)
남지에서 연식 정구 회원들이 모여 1972년 12월 24일에 창립되었는데 구 남지중학교(동포동) 정구장에서 많은 동호인들이 모여 경기를 가졌다.
연식정구 경남 신인선발대회 또는 시군대항 경기에서 여러 번 입상하였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연식정구가 퇴조하고 테니스 붐이 일면서 점점 혼합 경기를 자주 갖게 되다가 연식정구는 사라져 결국 낙동테니스회로 이어지게 되었다.
¤ 역대 회장 명단
초대 남상대 2대 임종식 3대 정태권 4대 김재동 5대 윤성열
총무 서순기 김무일
● 남지 주부 산악회
주부들의 등산모임인 주부산행회가 활동중인데 많은 주부들이 국내 명산을 찾아 등산을 즐기며 건강증진에 큰 도움을 얻고 있다.
● 낙동테니스회
낙동테니스회는 남지정구협회로부터 시작하여 역사가 오래된 테니스 단체로 주로 학교의 테니스장을 활용 운동을 하고 있다.
● 남지게이트볼회
게이트볼은 주로 노인들의 경기로 남지대교 아래 경기장을 개설하고 남지읍내 노인들이 많이 나와서 경기를 하며 노후의 건강관리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남곡게이트볼회
고곡지구내의 노인들이 주로 모이는 게이트볼 경기장으로 남곡중학교 옆에 있는데, 많은 노인들이 나와서 경기를 즐기며 건강관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三. 사회봉사활동과 단체
1. 사회봉사 활동
사회가 점점 복잡 다기능화해 가면서 소외계층이나 사회의 그늘진 곳이 또한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과 금전을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투척하고 봉사하려는 여러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읍에서도 이러한 취지와 목적으로 발족하여 사회 구석구석까지 자진하여 달려가 봉사하는
아름다운 사례가 많아 읍 발전의 주축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데 무순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읍내에 많은 단체가 있으나 회원 상호간 또는 관련 기관 단체를 돕거나 회원 친목 도모, 상부 상조하기 위하여 모인 친목회, 갑계 또는 상조회(相助會) 상포계(喪布契) 등은 수록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특히 동갑계는 우리 고장에 가장 많은데 6.25이후 시작된 것이 많다.
나이 30대에 이르면 읍내 각 마을에 흩어져 사는 동갑내기들이 모여 계를 조직하여 경조사에 상부상조하며 서로 말을 놓고 친해진다.
이들은 한 번 계를 만들면 타지로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지속되고 죽은 후에는 자녀들이 승계하기도 한다.
이를 이용하여 최근 띠별 축구대회 같은 행사를 개최하여 읍민 친목 도모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이 모임으로 이웃에 사는 사람의 연령을 알 수 있어 자연히 상하, 선.후배 구별이 되기도 한다.
군 전체 동갑회의도 갖는데 이때는 수 백명이 참여하여 체육 행사를 가지면서 친목을 도모한다.
2. 사회봉사 관련 단체
1) 남지청년 회의소
사진 : 8-9 청년회의소 (최근 신축된 남지청년회의소 회관 전경)
남지청년회의소는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의 일원으로 남지읍에 거주하는
20 ∼ 40세의 청년들이 모인 사회 봉사단체로 지역사회 및 국가 발전과 회원의
지도력 배양을 추진하며 국가적 이해를 증진시켜 세계 평화와 인류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여 1970년 4월 8일 당시 한국JC지구 담당이사와 진주JC 사무국장이
임석하여 회원 19명으로 발기 총회를 개최 창립되었다.
(9월에 전국에서 90번째로 인증서 받음 : 초대회장 최대열) 주요사업은 선행학생
표창, 군내 초등학교 축구대회 개최, 농번기 일손 돕기, 무의촌 진료사업, 경로위안잔치 및 효자효부 시상 등이다.
현재 회원은 60여명이고 회관은 75년 3월 5일 남지리 동포동 528-14(흥국주유소 옆)로 사무국을 이전하였고 85년 7월 24일 남지리 동포 608-12(축협 2층)에 이전했다.
지금은 남지리 토지구획정리지구 41B 12L에 1998년에 회관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사회봉사 단체로 회원은 40세가 되면 특우회로 넘어 간다.
● 주요사업과 활동내용
1970. 7. 29 영남수리 침수지대 복구반원에게 위문품 전달을 시작으로 그 해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 읍 전역에 방역을 실시했으며, 71년에는 국도 동서편에 싸인보드 설치, 중.고교에 장학금전달 선행학생 표창(이후 매년 실시), 생활보호대상자 및 경로당 위문, 72년에는 불우 이웃돕기 가두모금, 새마을사업지원(청단마을) 73년에는 새마을사업 지원(남포동) 시가지에 휴지통 설치 74년에는 불우 경찰가족 돕기 국도변 통일 구호판 설치 불우이웃3가구 돕기, 75년에는 철교입구 철골 아치 건립, 76년에는 불우이웃 돕기 전개, 77년에는 군내 초등학교 대항 축구대회 개최(이후 매년 개최) 78년에는 경로잔치 및 충효상시상(제1회 : 이후 매년 개최) 79년 남지읍 새마을청소년회 자매결연 지원 시가지철제휴지통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였다.
1980년대에는 매년 실시하던 사업 외에 80년에는 부산 동래JC 와 합동 무의촌지역 진료사업 실시, 모범공무원 표창 및 장학금전달, 초등학교 대항 축구대회 및 지체부자유아 초청 다과회, 82년에는 남지새마을 유아원 개원에 동상 3조 기증 독립기념관 건립기금 모금 전달, 83년에는 무의촌 진료 실시, 시가지 휴지통 제작 설치, 85년에는 경로잔치에 고성오광대를 초청했으며, 86년에는 읍장(차낙균)초청 간담회를 가져 읍의 현안을 논의하였으며 4월에 가진 제9회 경로잔치를 동포초등학교에서 가졌는데 노인을 1,000여명 초청하였으며 남지JC신문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87년에는 시설원예 세미나 개최, 어린이회의 진행법 연수 실시, 무의촌 진료 실시, 88년 거리질서 캠페인, 창녕군수(노재은) 초청 간담회, 합동 결혼식을 남지농협 예식장에서 가짐, 89년에는 읍내 기관장 초청간담회 읍민 건강달리기 대회개최(제1회)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건설관계를 도로공사와 협의 확정을 받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1990년에는 재일한국인 법적 지위 보장 촉구 범국민 서명운동 가두 캠페인을 실시하는 한편 회관을 지을 부지를 매입하였다.
92년 효도권장비를 설치하고 남지JC 산하 남지Y-JC 가입이 인준되었다.
92년 제1회 남지읍 기관 단체 직장인 친선 체육대회와 서울올림픽 4주년 기념 군민건강달리기를 개최하였으며, 93년 분리형 쓰레기 수거함을 제작하여 남지읍에 기증하고, 제1회 남지읍 관내 어린이 사생대회를 개최하였다.
94년에는 외국산 담배 추방 및 국산품애용운동을 전개하면서 21세기 창녕포럼 조찬 토론회를 가졌다.
95년에는 인간성, 도덕성 회복 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해외유출 문화재 환수 운동도 전개 하였다.
96년에도 국산담배애용 캠페인을 가졌고 읍내 경로당을 방문하면서 선풍기를 전달하였다.
97년 사랑의 장기 기증 부산지역본부 뼈은행과 무료진료를 실시했으며 98년 회관이 준공되었으나 IMF사태로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나라 사랑 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위와 같이 JC 활동은 매년 실시하는 사업 외에 특색 있는 활동을 많이 전개하였다.
역대 회장 명단
초대∼3대 崔大烈(70∼72년) 4대 南相大(73년∼) 5∼6대 金吉鉉(74∼75년) 7대 辛容珠(76년∼) 8대 辛京植(77년∼) 9대 丁泰權(78년∼) 10대 李鍾燮(79년∼) 11대 孔炳碩(80년∼) 12대 尹赫根(81년∼) 13대 申明男(82년∼) 14대 朴守根(83년∼) 15대 李承斗(84년∼) 16대 朴二奎(85년∼) 17대 金成坤(86년∼) 18대 朴泰明(87년∼) 19대 李鍾和(88년∼) 20대 具書律(89년∼) 21대 吳大煥(90년∼) 22대 鄭樂奎(91년∼) 23대 黃善一(92년∼) 24대 黃鎬述(93년∼) 25대 具京書(94년∼) 26대 宋明浩(95년∼) 27대 文讚奎(96년∼) 28대 金相坤(97년∼) 29대 孫誠辰(98년∼) 30대 鄭鍾浩(99년현재)
임원 및 회원 명단
회 장 : 정종호
부회장 : 박경태(상임) 구상서(내무) 권영철(외무)
감 사 : 오세관 정삼식
회 원 : 손성진 김상곤 황경현 송인호 진범태 박종국 구상서 추영엽 김기윤 문구태 문찬규 김장수 곽종수 최두호 공홍규 남인우 여환수 이희덕 최치규 김진철 김태명 곽병진 조용범 서수식 황일태 정태호 이일엽 한진수 김동훈 김상정 박상현 성기정 정동식 최재용 이선근 (40명)
(자료 제공 : 남지청년회의소)
2) 남지청년회의소 특우회
남지청년회의소 특우회는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 남지청년회의소의 관련 단체로 청년회의소가 1970년 창립이래 40세가 넘으면 자동적으로 특우회 회원이 되는데 회원 각자가 정회원으로서의 활동을 통하여 축적된 경륜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남지청년회의소의 발전을 적극 지원하며 아울러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와 유대 강화를 목적으로 1986년 4월 9일 한국JC특우회에서 No.215호로 인준 등록을 한 단체이다.
주요 활동 실적은 1986년부터 매년 장학금을 조성하여 관내 학교 학생에게 전달하는 활동 외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전달하거나 읍내 사회단체장 초청 간담회를 개최하여 남지읍 현안을 토의 해결하는데 앞장서 왔다.
96년에는 화왕산 등반 및 자연보호 등 우리 고장의 환경 보호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역대 회장 명단
초대 崔大烈(86년) 2∼3대 김학수(87∼88년) 4대 辛政泰(89년) 5∼6대 신양기(90∼91년) 7대 吳大權(92년) 8대 김상대(93년) 9대 정규화(94년) 10대 10대 李淳泰(95년) 11대 金秀吉(96년) 12대 韓守乭(97년) 13대 배종구(98년) 14대 김용필(99년 현재)
임원 및 회원 명단
회 장 : 김용필
부회장 : 김성곤(수석) 오대환 공윤규
감 사 : 오대권 신병기
회 원 : 배종구 한수돌 최대열 이종화 김타곤 김찬규 구경회 신현식 박판복 이창희 신호곤 김상대 박태명 이선길 정연두 신경식 정태권 김학수 정규화 공병석 신정태 이상준 하이석 진성식 이종섭 이순태 김무일 김수길 신양기 신명남 박이규 박수근 이재용 황의용 진정호 황헌기 구서율 정영환 김동출 정낙규 서종찬 신재영 차태철 조홍래 배한영 최성철 황호술 신윤기 황선일 박판근 김인수 김재곤 송명호 신상기 신용훈 김동일 김성규 최원룡 정종기 김윤태 (66명)
(자료 제공 : 남지청년회의소 특우회)
3) 南旨라이온스클럽
사진 : 8-10 남지라이온스 ( 남지라이온스클럽 회관 전경)
1978년 5월 18일, 21명의 회원으로 국제라이온스협회 309-1지구(경남)에서 75번째로 창립되었다.
라이온스 클럽은 세계 인류의 상호 이해 정신을 창조 배양하면서 보다 나은 사회와 시민 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사회의 생활개선과 사회복지 공덕심 함양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며, 지역사회의 숨은 봉사인을
격려하며 각 분야의 윤리적 수준 향상과 효율성을 재고하기 위하여 국제적인 조직으로 창립되었다.
그래서 국제적인 활동으로서 시력우선사업, 마약교육, 당뇨퇴치교육, 시력보존 및 맹인을 위한 사업,
청력 구화 및 농아를 위한 사업을 전개하며 자체활동으로는 장학사업, 불우이웃돕기 사업,
환경보전 사업, 사회봉사사업 등이다.
1978년 11월 23일 부산오륙도 라이온스클럽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81년 11월 14일 합동(창녕, 함안, 의령, 남지) 월례회 개최, 83년 6월 4일에는 창립 5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1993년 12월 23일에 남지농협과 자매 결연을 맺었으며 95년 10월 21일에 합동 월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97년 7월 1일 309-I지구에서 355-G지구로 명칭 변경이 있었다.
주요 활동 사업으로는 불우이웃돕기 전개, 재해의연금 기탁사업, 거리질서 및 미화작업, 장학사업 등이다.
79년 4월 16일 남지파출소 앞 로터리에 사자상을 건립하였고 거리에 쓰레기통을 비치하여 거리 문화를 개선하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1999년 현재 사무실은 남지리 대신동에 있으며 회장은 서호도(99년 3월 현재) 회원은 75명이다.
역대 회장 명단
초대 姜翼龜(78년, 의사) 2대 呂鎬東(79년, 건축업) 3대 姜大德(80년, 사업) 4대 辛容鳳(81년, 사업) 5대 孔炳達(82년, 중학교장) 6대 李元雨(83년, 초등교장) 7대 金炯九(84년, 약국) 8대 辛鍾學(85년, 중학교장) 9대 黃甲植(86년, 읍장) 10대 金世允(87년, 사업) 11대 金廣浩(88년, 대서소) 12대 林鍾式(89년, 사업) 13대 朴在洪(90년, 사업) 14대 金永澤(91년, 행정사) 15대 安鍾燮(92년, 중학교장) 16대 黃永甲(93년, 전화국) 17대 李善文(94년, 인쇄업) 18대 李鎔大(95년, 주유소) 19대 辛容甲(96년, 사업) 20대 金忠植(97년, 군의원) 21대 徐虎度(98∼99년, 농협 근무) 22대 趙允濟(99년∼)
임원 및 회원 명단(1998년도)
직전회장 : 김충식
회장 : 서호도
부회장 : 조윤제 정남조 황경도
총무이사 : 오두석 재무이사 : 이영희 라이온테마 ; 신용탁 테일튀스트 : 정규도
이사 : 서용기 김영택 신용갑 박판철 박동목 정홍훈 이정화
회원 : 김형구 황갑식 공병달 김종목 김세윤 이용대 이선문 임종식 박재홍 차창섭 김광호 안종섭 황영갑 양동효 정윤욱 장성렬 이재권 신용찬 김영도 추교석 이용철 김종곤 진실백 추교식 김종길 이재영 채용환 김태수 한갑수 황철고 박성규 서정호 김상홍 김철기 박용출 정규권 하태원 공선의 김말룡 여용철 김현식 김용철 홍성권 백희천 권태암 이규엽 임범웅 성영환 최충기 조용덕 김재운 전용로 김만두 이승국 이영중 최철규 진창덕 배기두 장종호(75명)
(자료 제공 : 남지라이온스 클럽)
4) 남지향친회
사진 : 8-11 향친회 ( 남지 향친회 회관(2층) 전경)
남지 향친회 회칙 전문(前文)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여러 선배 제현님들의 숭고한 애향정신과 이념을 계승하고 남지의 애향과 발전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우리 향친회는 하나, 우리는 자기발전에 최선을 다한다.
하나, 우리는 가정과 직장에 모범이 된다.
하나. 우리는 사회질서에 솔선 수범한다.
하나. 우리는 지역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다. 는 신조아래 남지의 발전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모든 회원은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여
남지발전의 향상을 기하고 항구적으로는 발전된 남지가 국가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의 자긍심과 능력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90년 12월1일에 창립, 제정되고
2002년 1월25에 개정된 회칙을 이제 회원들의 심의에 의하여 개정한다.
남지향친회는 회칙 전문에서 밝혔듯이 1990년 12월 .1일에 창립된 애향정신의 계승과 남지 발전을 위한 사회봉사 단체이다. 1990년 8월 20일 남지 지역 선후배 상호간의 친목과 지역발전에 이바지하자는 목적으로 정종만 등 11명이 발기하여 같은 해 12월 1일에 회원 20명으로 창립 총회를 가졌다.
이튿날부터 자원하여 방범 순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91년 1월 10일에 동포, 남포 경로당을 방문하여 위문품과 성금을 전달하고 식목일에는 식목 행사에 참가하였으며 그해 하계 방역도 실시하는 등 여러 활동을 펼쳤다.
중점 활동 상황은 매년 하계방역을 실시하며, 방범 순찰활동, 회원들의 감자작업을 통한 수익금으로 불우이웃돕기 행사(92년 라면, 성금 1,248,000원 읍사무소 전달, 93년 1백만원, 94년 63만원과 1백5십만원 상당 쌀 라면 전달, 95년 모녀세대 30만원과 10세대 10만원씩 전달, 96년 10세대 10만원씩 전달, 97년 22세대 쌀 라면 전달, 98년 20세대 쌀 라면 전달)와 읍민관에서 매년 4월경에 무료식당, 경로식당을 운영하며, 관내 5개교의 학교 졸업식 때 장학금을 10만원씩 전달하여 오고 있다.
그리고 회원 친목 행사로 극기훈련, 마라톤대회 후원(94년), 화왕산 등반 및 환경보호 켐페인 오물 수거, 국토 대청결운동 참여, 하계수련회 등을 갖고 있다.
특히 남지도서관에 도서 구입비를 93년에 1백만원 전달하였고 범죄신고 강조의 날, 거리질서 캠페인(99년) 등과 잠시 중단하였던 방범활동을 1998년 11월부터 시작하는 등 지역 사회 봉사에 시간과 물질을 희생 봉사하고 있다.
또 경로식당은 읍민관에서 매년 2회 5일간씩 운영하여 노인들의 영양 급식을 돕고 여가 활동에도 기여하고 있다.
2002년 현재 회장은 조용범이며 회원은 모두 정회원 42명이며 사무실은 동포동 레민다 상가 3층(526-0085, 0086) 있으며 방범초소를 운영하고 있다.
역대 회장 명단
초대 정종만(1990,12. 1∼91.11.31 동양화재 소장)
2대 최원용(91.12. 1∼92.11.31 PNC 대표)
3대 박홍기(92.12. 1∼93.11.31 자영업)
4대 정종만(93. 12. 1∼94.11.31)
5대 진경수(94.12. 1∼95.11.31 자영업)
6대 여환수(95.12. 1∼96.11.31 창녕군 주재기자)
7대 문학찬(96.12. 1∼97.11.31 자영업)
8대 이희덕(97.12. 1∼98.11.31 자영업)
9대 김도우(98.12.1∼ 99.11.31 남지중교사)
10대 정용만(99.12.1∼00.11.31 자영업)
11대 김진철(00.12.1∼01.11.31 자영업)
12대 조용범(01.12.∼현 <주>대상기업 대표)
임원 및 회원 명단
명예회장 : 김충식
직전회장 : 김진철
회 장 : 조용범
부회장 : 김무곤 감사 : 설이규
사업부장 : 정낙규 홍보부장 : 권유관 체육부장 : 신영기 관리부장 : 김동일
사무국장 : 곽종수 사무차장 : 정영광, 이영민
회 원 ; 서종찬 이창희 최원용 손병철 박홍기 문학찬 이문세 여환수 이희덕
김도우 정용만 김용백 권남회 조용호 조용태 최성용 이창수 정종호
김석구 추영엽 윤승민 최인호 박태석 이상경 최태교 황윤희 김종구
전지호 최두호 전정호
5) 남곡청년회
남곡청년회 회관 전경
남곡청년회는 고곡지구의 청년단체로 지역화합과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지역내의 청년을 중심으로
1991년 3월에 창립되었다.
주요 활동 사업을 보면 고곡지구내에 노인들을 초청하여 매년 경로위안잔치를 가지고 있으며,
장학사업을 펼쳐 장학금을 지구내 학교 졸업생들에게 지급하고 또 불우이웃돕기 사업을 펼쳐 찾아가 돕고 있다.
1999년 현재 사무실은 고곡리 남곡중학교 앞에 있으며 회장 하태철 외에 회원수는 57명이다.
역대 회장 명단
김쌍현(1991∼) 김종경(92∼) 정해국(93∼) 변재천(94∼) 하정헌(95∼) 정해술(96∼) 신항기(97∼) 하태철(98년∼현재)
임원 및 회원 명단
회 장 : 하태철
부회장 : 정희재 정영찬
사무국장 : 김종식
사무차장 : 공병식
감사 : 정해용 구진서(大) 전창수
회 원 : 신항기 하정헌 변재천 조영호 하선목 조갑종 서정우 박정수 신흥기 김용연 강종필 이정한 이기태 김원갑 김형태 구철수 구자용 김두산 박성환 표재일 우홍희 윤정술 하경곤 성치홍 공천용 김종학 정해봉 정상길 정무영 정대영 정덕수 정수영 공영생 구칠서 구유희 하성권 변경섭 공영수 공영제 차현석 차점호 최경철 김재영 신기식 김윤도 정관식 공홍규 김종역 하세목 하흥철 박철호
(자료 제공 : 남곡청년회)
6) 남곡 토우회
토우회는 고곡지구 청년들의 봉사 단체로 1995년도에 창립되었다.
토우회는 지역의 발전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며 지역 향도로의 자질 향상을 위하여 상호 연수하면서 불우 이웃을 돕는데 그 목적을 두고 그러한 사업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1999년 현재 회장은 김판윤, 회원은 15명이다.
임원 및 회원 명단
회 장 : 김판윤
부회장 : 황삼술
총무 : 김종경
회 원 : 노영문 정해국 구만호 진봉상 정영호 변철수 김쌍현 황영호 신원기 박양호 하대권 성낙현
(자료 제공 : 고곡 토우회)
7) 남지 자원봉사회
남지자원봉사회는 1995년 5월에 여성들의 사회 봉사 단체로 창립되었다.
여성들이 여러 모임이나 단체활동을 통하여 사회 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보다 뜻깊고 보람있는 일을 하고자 마음을 모아 남지리 남포동 788-1에서 사무실을 열고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활동을 전개 중인데 주요 활동 상황은 독거(獨居) 노인 방문으로 목욕 청소 반찬 등을 지원하며, 소년소녀가장 돕기로 청소 빨래 반찬 등을 지원하며, 동포초등학교 결식아동을 돕기 위하여 급식비를 지원하였으며, 남지읍 재해가 발생했을 때 먼저 나가 봉사활동을 전개하며 수재민 돕기에 적극 참여하며 MBC에 성금을 전달하였고, 「소쩍새 마을」 같은 보호시설 방문, 창녕농고 백혈병 학생 돕기, 군청 을지훈련 야참 지원, 읍사무소 경로식당에 매년 참여해 오고 있다.
1999년 현재 회장은 한영순, 회원수는 25명이다.
역대 회장 명단
초대, 2대 한영순(95∼현재)
임원 및 회원 명단
회 장 : 한영순
부회장 : 전인자 이순연
총무 : 김외숙
감사 : 최기선
회 원 : 김옥시 정순자 정명애 신귀주 김미숙 김정숙 김애숙 김경숙 배순조 장희계 석영자 이형순 진수선 오정미 김미숙 박추자 강영미 이순연 김인숙 신경순
8) 남곡향친회
남곡향친회는 고곡지구의 장년들의 봉사단체로 1995년 창립되었다.
향친회는 지역 발전을 위한 봉사활동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화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불우이웃돕기에 앞장 서 지역내의 노인과 어린이를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역내 청년단체에서 그 임기가 끝나면 향친회원으로 가입하여 향토 발전의 큰 몫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다.
회원은 39명으로 다음과 같다.
역대 회장 명단
1대 구소돌 2대 김소윤 3대 정해도 4대 신용백 5대 하태은(현재)
임원 및 회원 명단
회 장 : 하태은
부회장 : 신판국 정영술
감사 : 신용백 구소돌
운영위원 : 정해도 박덕균 변재안 박판덕 표도근 김진현
총 무 : 김종태
회 원 : 공성배 노세원 하재돈 성수건 오관석 이동철 구이철 박재호 공진백 이판수 진근백 박덕균 이재봉 김창희 김종태 김종일 김종진 김봉희 김진현 김진국 공호이 공진갑 성말수 공병호 정영술 정해봉 김소윤 이광조 공진길 박계호 김창원 박재호 김술선 차종우
(자료 : 남곡향친회)
색 인
1) 수록 순서는 법정리별 출생연도별로 제12장 성씨 인물의 수록 순서에 따랐다.
2) 자료 제공 : 崔張壽(1924년생, 서울 거주)
3) 자료 제공 : 서울거주 최장수(본동 출신), 이 책은 미쳐 배포되기 전에 중단되어 버렸다.
책제목이 『풋감』이니 풋감이 익으면 빨갛게 되니 사상이 불온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4) 증언 : 동포동 미영사진관 이경영
5) 전화번호부(한국통신 1998)
6) 동포동 하용호(河龍浩 1908∼1988, 하판준의 부)의 사랑채
7) 통계연보(1997) 창녕군 p291∼292. 출판사 및 인쇄소 등록, 매스컴 현황.
8) 창녕군지 체육p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