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구 나지막 산길…개성 손에 잡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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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학산 전망대는 일망무제의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강화도와 북한 개성까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
근래 걷기 열풍이 가열되면서 너도나도 걷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런데 상당수는 제주도 올레길이니 지리산 둘레길이니 하는 소문난 명소를 즐겨 찾는다. 먼 곳을 찾다보면 걷는 시간보다 현장을 오고가는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유명세를 쫓아가다보면 돈도 그만큼 많이 든다. 그런 경우는 걷기 목적보다 오히려 관광 요소가 먼저인 경우가 많다.
걷기를 여유 있는 자들의 호사스런 취미가 아니라 일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거리가 먼 명소를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사는 곳 가까이에 걷기 좋은 코스를 찾아보는 것이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7㎞, 평탄함 좋아
파주 심학산 둘레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수도권에 있어 가볍게 나설 수 있다.
심학산은 한강 하구에 섬처럼 홀로 떠 있는 산이다. 원래 지명은 ‘심악’이었으나, 조선 숙종 때 왕이 애지중지 여기던 학 두 마리가 궁궐을 떠나간 후 이 산에서 되찾았다고 해서 ‘학을 찾은 산, 심학(尋鶴)’으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두 마리의 학은 어쩌면 당쟁을 피해 은둔을 한 산림처사가 아니었겠는가.
3호선 독립문역에서 9709번 버스를 타고 금촌역에 내려서 100-8번 버스를 갈아타고 심학초등학교 입구에 내리면 둘레길 출발지인 약천사이다. 전철 2호선 합정역이나 3호선 대화역에서 버스를 타고 파주 돌곶이마을 입구에 내려서 찾아가도 된다. 해발 192m에 불과한 정상을 가운데 두고 약천사에서 7㎞둘레길이 나 있다.
심학산 둘레길은 정상을 오르내리는 등산 개념의 길이 아니라 7~8부 산허리에 평탄하게 조성된 숲길이다. 경사가 거의 없어서 누구나 쉽게 걸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둘레길에는 처처소소에 데크, 나무계단, 정자, 전망대, 나무의자 등 편의시설이 설치돼 탐방객들이 짬짬이 숨을 돌릴 수 있다. 출발점인 약천사는 이름 그대로 약수가 좋다. 이곳 말고는 식수를 얻기가 어렵다. 약사부처님 등 뒤로 둘레길이 나있다. 오른쪽으로는 수투바위 가는 길, 왼쪽으로는 산마루가든 가는 길이다. 둘레길이므로 어느 쪽을 택하든 한바퀴를 돌면 약천사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약 2시간 남짓 걸린다. 힘에 부치면 도중에 단축 코스를 이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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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학산 둘레길은 길이 평탄해 가족끼리 함께하기 좋다. 7㎞ 거리지만 평탄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전망대 시야 ‘확 트여’
그윽한 활엽수 숲길을 한 20분 쯤 가다보면 수투바위에 도착한다. 왼쪽으로는 정상 팔각누정으로 가는 길이 있다. 둘레길은 그 아래쪽이다. 야산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의 팔각정에 오르면 시야가 일망무제로 트여 있다. 정상은 전망이 좋아서 날씨가 좋으면 강화도와 북한 개성까지도 보인다. 정상에서 다시 내려오면 작은 정자 쉼터와 돌탑을 지나 다시 둘레길로 이어진다.
다시 20분 가량 걷다보면 전망대를 만난다. 한강과 임진강 하구에 지는 아름다운 노을은 이 산이 주는 미덕 가운데 하나이다. 이름 하여 낙조전망대다. 발아래로는 교하 평야와 출판단지가 보이고, 한강 건너편으로는 김포땅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자유로 옆 한강과 임진강은 물론 북한 지역까지 멀리 보인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강 가운데는 모래섬이 떠 있다. 밀물 때는 서해의 바닷물이 밀려와 물속에 잠기고, 썰물 때는 강위로 드러나는 하중도이다. 겨울철이면 이 하중도에 대두루미와 개리 등 겨울철새들이 날아들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둘레길은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가 없지만, 도중에 정상으로 이어지는 주릉길이 있다.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라서 등산객들이 그 코스를 즐겨 탄다. 출발한 지 1시간 남짓할 때 즈음 되어서 다시 갈래길이 나오는데, 약천사 길과 배수지 가는 길이다. 원점회귀 코스라면 약천사 방향으로 가고, 더 먼 거리를 돌려면 배수지 쪽으로 길을 잡는다.
걷기와 뛰기는 다르다. 뛰는 속도를 늦추면 걷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뛰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운동이지만, 걷기는 거기에다 정신적 요소가 추가된다. 심학산 둘레길은 사색하며 걷기에는 부적합하지만, 노폭이 좁고 구비가 많아서 헐떡거리며 뛰는 것도 거부한다. 그냥 무념으로 걷기에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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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데 군데 편의시설이 설치돼 숨을 돌릴 수 있다. |
계곡 없어 아쉬워
길은 누구에게나 늘 열려있는 것이 아니다. 찾는 자에게만 열려있다. 심학산 둘레길은 구비가 많아서 돌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선사해준다. 곧은 길은 지루한 감을 주지만, 굽은 길은 오래 걸어도 항상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기 때문에 지루한 감이 덜하다. 걷다보면 이따금 기묘하게 생긴 편마암 기암절벽들이 나타나 눈맛을 새롭게 해준다.
심학산 숲은 나이가 젊다. 기껏해야 나무들의 수령이 40년 안팎이다. 산아래 마을에서 땔감으로 남벌했기 때문일까. 리기다소나무와 잣나무 등 에너지가 현대화된 후에 심은 나무들이 절반을 차지한다. 숲길을 걷다보면 최근에 둘레길을 조성하며 심은 나무들도 눈에 띈다. 때죽나무며 개나리며 파주 시민들이 자원봉사로 심은 나무들이다.
심학산의 또 하나의 흠이 있다면 야산이라서 이렇다 할 계곡이 없다는 점이다. 가다보면 샘터가 하나 있지만, 툭 하면 잘 마른다. 게다가 물이 고여 있어도 식수로는 부적합해 보인다. 다만 손이나 씻을 정도의 수질이다.
심학산 둘레길은 그야말로 오소리나 다닌다는 오솔길이다. 폭이 1.5m 안팎이라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걷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전 코스가 흙길이라 맨발로 걸어 다녀도 무리가 없다. 경사가 없는 평탄한 길이라 가족들도 많이 찾는다.
이어서 만나는 솔향기쉼터는 작은 전망대이다. 도반과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무의자가 딸려 있다. 심학산 숲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인 혼효림이다. 그래도 활엽수가 많은 편이다. 솔향기쉼터 주변은 이름 그대로 소나무들이 많아서 깊은 호흡으로 피톤치드를 마시면 건강에도 좋다.
걷기는 아침 혹은 저녁보다는 낮 시간이 좋다. 아침ㆍ저녁 시간은 오염된 대기가 지상에 낮게 깔리기 때문에 호흡기에 도움이 안 된다. 숲속 피톤치드 방출량은 정오를 중심으로 2~3시간 전후에 가장 많이 방출된다.
산림욕 다이어트 제격
다이어트는 단순한 ‘살빼기’가 아니다. 자기 조건에 맞게 몸을 만드는 것이다. 걷기는 산림욕 다이어트의 기본이다. 걷기를 통해 유산소운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숲길 걷기는 달리기나 수영 등 다른 유산소운동에 비해 에너지 소모량이 적지만, 체지방을 효율적으로 태울 수 있다. 격한 운동은 에너지 소모는 많지만 오랜 시간 지속하기 어렵고, 요요현상도 쉽게 일어난다.
이윽고 배수지에 도착한다. 상수를 산위에까지 올렸다가 다시 산마을에 배수를 하는 상수저장시설이다. 주변에 쉼터와 나무의자가 있어서 땀들을 닦는다. 걷기 전에 준비운동이 필요하듯이 걷기를 마친 다음에도 몸을 풀어주어야 한다. 스트레칭으로 몸 풀기에 좋은 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갈증도 풀고 참았던 배변도 한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종착점으로 하지만, 약천사로 원점회귀하려면 산마루가든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약천사 길이 이어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