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 구멍 생쥐 집에 이런 일이
박 동 조
‘멍석 구멍에 생쥐 눈 뜨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겁이 나서 몸을 숨기고 바깥을 살피는 동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코로나19에 일상을 통제 당하고부터 멍석 구멍에 생쥐가 하는 짓을 내가 하고 있다. 날만 새면 눈과 귀를 온통 코로나 소식에 맞추느라 살림 살고 글 쓰는 일은 뒷전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남편이 코로나에 취약하다는 심장병 환자다. 사람 많은 곳은 삼가야 하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좋은 건수 있다고 누가 잡아끌어도 나다니는 것에는 손사래를 치는 내가 코로나 족쇄에 묶이고부터는 왜 그리도 가고 싶은 곳이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어느 날, “사람이 바글바글한 바닷가도 가고 싶고.......” 하는 말을 뜬금없이 남편에게 하고 말았다. 무슨 말을 들으면 금방 실천에 돌입하는 성정을 아는지라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툭 튀어나왔다.
“바닷가라! 으음, 기다려봐, 전망대 딸린 집을 선물할 테니!”
‘당신이 뭔 돈으로 전망대 딸린 집을 사.’ 입술까지 나온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자존심 다치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하마터면 깰 뻔했다. 하긴, 집을 판다고 내놓았으니 이 집 팔고, 뭐 보태면 외진 해안가 작은 집은 못 살 것도 없었다. 생각은 날개가 없어도 잘도 날아다닌다. 이삼 년 전부터 ‘어디로 이사할까?’에 바닷가 마을도 후보로 올려놓은 터라 맘속으로는 추측이 난무했다. 어쨌거나 내게 상의 없이 결정하지는 않을 테니 두고 보기로 했다.
그 말을 한 뒤로 남편은 낮에는 전업인 조각하는 일로, 밤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보냈다. 해서 부동산 매물을 알아보나 짐작했다. 이상한 건 “이런 집 어때?” “저런 집 어때?” 의견을 물어오는 대부분의 집들이 바닷가에 위치한, 유럽의 오래된 성들 같은 집으로 우리 처지로는 곁눈질조차 오감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유난스레 더위지수가 높은 날 오후, 남편이 주문했다는 택배가 도착했다. 택배 상자 속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플라스틱 통 두 개와 푸른색과 흰색가루가 든 작은 병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남편은 두 액체를 대야에다 붓고 작은 병에 든 가루 하나를 넣어 열심히 저었다. 신기하게도 액체는 차츰 푸른색을 띠었다. 그것을 한 달여 동안 만들어오던 조각 작품의 부속 틀에 부었다. 모래사장과 폭포가 있는 해수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라! 전망대 딸린 집이란 게 이거였네. 그러면 그렇지!”
깔깔 웃음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주거니 받거니 키들거린 것도 잠시, 뜻밖의 현상이 우리의 혼을 빼놓았다. 틀에 부어 가만히 둔 액체에서 구불구불 파도의 무늬가 저절로 생겨난다고 감탄하는 우리 눈앞에서 영화 속의 장면처럼 풀장이 용틀임을 하더니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일인가! 놀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온 집이 연기로 자욱해지고, 화공약품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놀란 남편이 대야에 물을 담아와 조각품에 끼얹었다. 졸지에 마루는 물바다가 되었다.
흉물스레 부풀어 오른 레진을 제거하려다 하마터면 손을 델 뻔했다. 숟가락으로 안 돼 국자까지 동원되었다. 땀을 바가지로 쏟아가며 사건을 진압한 남편의 모습은 혼이 나간 난민 같았다.
눈앞에서 사건이 일어났기에 망정이지 잠잘 때 일이 벌어졌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지,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뜩했다. 그날따라 우리 집은 찜통이었다. 아파트 방수 공사한다고 실외기를 철수한 상태라 에어컨마저 제구실을 못했다. 이래저래 남편에겐 최악의 날이었다.
도움지에 적힌 주의사항도 지켰는데 왜 불이 나도록 가열됐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생산 공장에 문의하고야 두께가 문제였다는 걸 알아냈다. 남편이 산 재료는 굳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은 이점이 있는 반면에 정해진 두께나 부피를 초과할 경우 자칫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공장 사람의 조언을 듣고, 굳는 시간이 더딘 FOXY를 다시 주문했다. 시간은 더뎠으나 풀장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뿔싸! 이번에는 흰색으로 처리한 폭포 부분이 문제를 일으켰다.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 빨리 굳게 하려고 경화제를 너무 많이 넣은 게 화근이었다. 사흘을 기다려도 폭포에 덧칠한 하얀색 레진이 굳어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긁어내는 것으로 조각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60cm×40cm 폭의 해수풀장을 갖춘 미니어처 저택 앞에서 손을 잡고 손가락 가위로 테이프 커팅 하는 흉내를 냈다. 전망대와 풀장을 갖춘 바닷가 집이라니!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기에 남편은 못내 미안해했다.
모형이면 어떤가! 어차피 인생은 이야기 쌓기가 아닌가. 시대가 수상하여 ‘멍석 구멍에 생쥐’가 된 마누라에게 전망대가 딸린 미니어처 해수욕장을 선물하려다 엉뚱한 일복만 떠안은 남편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불이 날 뻔한 상황이 나는 자못 재미있었다. 따지고 보면 남편의 조각 선물은 코로나족쇄가 불러다 준 거나 다름없다. 그렇다손 코로나19는 싫다.
<2021년 에세이울산 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