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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운동과 주거공동체 윤 수 종 지음, 집문당, 2013.
목차
머리말
서론: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사회운동의 방향
1절. 대중 개념의 계보34
2절. 새로운 주체로서 대중의 등장38
1. 대중 개념과 유사 개념들의 비교38
2. 맑스주의적 계급 개념과 대중 개념41
3. 빈민43
4. 대중의 등장46
5. 대중의 욕망48
3절. 사회운동의 방향51
1. 집중제의 단말마51
2. 네트워크투쟁(아우토노미아)의 발명52
3. 욕망투쟁과 주체성생산투쟁55
제Ⅰ부 자율운동
제1장 이탈리아의 68혁명과 점거운동
1절. 이탈리아의 68혁명64
2절. 다양한 점거운동67
3절. 사회센터운동74
4절. 여성센터운동78
1. 여성집합체들의 발전78
2. 여성센터의 등장83
제2장 미국 블랙팬더당의 생존 프로그램 활동
1절. 흑인권력운동의 등장92
2절. 블랙팬더(흑표범)당94
3절. 생존 프로그램의 종류와 특성98
1. 음식 프로그램99
2. 교육 프로그램103
3. 건강 프로그램110
4. 보호 프로그램114
5. 기타 생존 프로그램들118
4절. 당 활동 및 생존 프로그램의 대안적 성격121
1. 당 활동의 대안적 성격122
2. 생존 프로그램의 대안적 성격124
제3장 이탈리아의 자유라디오운동
1절. 자율운동과 자유라디오운동138
1. 자율운동138
2. 자유라디오운동140
2절. 라디오 알리체와 라디오 뽀뽈라레146
1. 라디오 알리체(앨리스)146
2. 라디오 뽀뽈라레159
3절. 자유라디오의 특성169
1. 자유라디오의 언어170
2. 자유라디오의 표현양식174
3. 자유라디오와 소수자176
4. 자유라디오의 변화179
4절. 자유라디오운동의 전망180
제4장 독일의 자율운동
1절. 독일 자율운동의 원천187
1. 자율적 여성운동189
2. 반핵운동190
3. 점거운동193
4. 대안운동194
2절. 독일 자율운동의 전개196
1. 점거운동197
2. 시위201
3. 도시구역(근거지)투쟁205
4. 연대투쟁207
5. 아우토노멘과 폭력209
3절. 통일 독일에서의 아우토노멘212
1. 신나치의 등장과 시장 메커니즘의 강화213
2. 반파시즘투쟁215
3. 점거운동217
4절. 독일 자율운동의 함의218
제5장 이탈리아의 사회센터운동
1절. 이탈리아 사회센터운동224
1. 점거된 자주관리 사회센터224
2. 사회센터의 발생과정225
3. 사회센터의 분포229
4. 사회센터의 성원들230
2절. 이탈리아 사회센터의 활동234
1. 점거와 자유의 공간234
2. 자가생산과 자주관리237
3. 시장 및 국가와의 관계241
4. 지역사회와의 관계244
5. 논쟁점들246
3절. ‘뚜떼 비앙께’와 ‘야 바스타 연합’248
4절. 이탈리아 사회센터운동의 의의255
제6장 영국의 사회센터운동
1절. 영국의 점거운동262
1. 점거운동의 역사264
2. 사회센터운동의 역사266
2절. 영국 사회센터 및 자율공간 운동273
1. 사회센터 및 자율공간의 유형과 분포273
2. 사회센터의 활동사례282
3절. 영국 사회센터 및 자율공간의 특성289
1.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290
2. 게토에서 네트워크로294
3. 대안사회의 구성 가능성296
4절. 영국 사회센터들의 도전, 긴장, 모순300
제Ⅱ부 주거공동체
제7장 넝마공동체
1절. 넝마공동체의 성격312
1. 넝마공동체의 설립과정312
2. 공동체의 운영과 성원들의 생활327
2절. 넝마주이마을과 넝마공동체340
1. 포이동 266번지(넝마주이마을)341
2. 주민운동344
3. 공부방348
4. 넝마공동체350
5. 넝마주이 정책353
3절. 넝마공동체의 변화358
1. 점거지 철거358
2. 구성원359
3. 작업장 및 주거지362
4. 노점365
5. 넝마공동체의 미래370
제8장 노숙인 점거공동체 ‘더불어사는집’
1절. 노숙인공동체376
1. 결성과정376
2. 노숙인공동체 ‘더불어사는집’379
2절. 점거공동체394
1. 새로운 점거394
2. 점거공동체 ‘더불어사는집’399
3절. 임대 이후410
4절. 점거운동과 주체 문제420
제9장 주거실험 공동체 ‘빈집’
1절. 빈집의 형성427
1. 빈집의 역사427
2. 구성원429
3. 네 개의 집433
2절. 빈집의 실험들440
1. 성원들의 소통방식440
2. 실험 활동들447
3. 자립을 위한 경제력 확보458
4. 내부의 위험들472
3절. 대안적 삶의 측면들477
1. 수평적 관계 형성479
2. 유동성481
3. 생태적 삶484
4. 공동노동과 공동소유486
4절. 빈집스러움488
결론: 제국시대의 대중운동
1절. 전 지구적 권력과 대중의 힘497
2절. 제국시대의 대중운동504
1. 대안세계화운동506
2. 자율운동509
3. 소수자운동과 대안운동517
4. 보이지 않는 운동523
3절. 서구의 자율운동과 한국의 주거공동체530
4절. 제국시대 사회운동의 방향533
참고문헌537
찾아보기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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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권력의 소유나 장악이라는 측면에서만 사회구조를 보는 사람들은 위만 보았지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대중의 도도한 흐름을 보지 못한다.
흔히 혁명이라 할 때에는 권력 장악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역사를 부르주아 혁명(상징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러시아 혁명(1917년)을 분기점으로 하여 파악한다. 이 관점은 봉건 귀족을 물리치고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과, 부르주아지를 물리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전히 권력 중심부와 대중이라는 대당(대립)이 있으며, 권력 중심부의 이념적 성향과 주체적 특징이 사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러한 구도 위에서 노동자운동을 중심으로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이 현실에서 대중에 대한 또 다른 지배로 나아가면서, 부르주아 사회와 ‘프롤레타리아 사회’(현실사회주의 또는 자본주의사회 안의 좌파운동) 양자에 대한 대중의 공격이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68혁명이었다. 68혁명은 프랑스 혁명이 제기한 ‘자유’, ‘평등’, ‘박애’(실은 ‘부르주아권력’)와 러시아 혁명이 제기한 ‘노동자(프롤레타리아)권력’을 넘어서서, 혁명을 위임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민 자신의 문제로, 인민 대중의 삶(생활)의 문제로 가져왔다.
68혁명 주체들은 기존의 명확한 이해관계(노자대립)에 기초한 노동자운동이 포괄하지 못한 다양한 영역에서 욕망에 기초한 운동들을 폭발시켜 나갔다. 이들은 반권위주의와 자율성을 강조하고 패권(헤게모니)적인 주체 설정을 거부하며 다양한 주체들을 포괄해 나가려고 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기존의 조직 형태를 바꾸어 나가는 실험을 하였다.
물론 68혁명은 단기적으로는 대부분 투쟁 성과가 기존의 노조조직이나 좌파조직에게 흡수되어 진정되어 갔다. 또는 68혁명으로 대중의 공격에 처한 자본주의권력은 스스로를 재구조화하면서 그 공격에 대처하고 다양한 주체들을 포섭하면서 변화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주체적 구성요소와 성격도 변화하였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이른바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등장하였다. 사실 68혁명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주변적인 노동자들이나 이주노동자들은 왜 우리는 노조에 들어갈 수 없느냐고 항의하였다. 여성들이 빗자루를 들고 가사노동에 대해 임금을 지불하라고 소리치고, 동성애자들이 정체성을 드러내며 다르게 살겠다고 행진을 하며, 양심수나 정치범이 아닌 일반 죄수들이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며 자신들의 사랑권까지 박탈할 수 있는 것이냐고 항의하였다. 이제 성매매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권을 지키고 자신들이 일하는 거리를 자율 관리하겠다고 나서고, 어린이들은 착취자가 되라는 교육기계의 톱니바퀴에서 빠져나가려 하며, 콧수염을 길게 기르고 집시나 히피같은 옷을 입은 생태운동가들이 지구에 초록색을 칠하겠다고 나선다. 또한 젊은이들은 전쟁보다는 섹스를 소리 높여 외치며, 청소년․청소녀들은 가족을 벗어나 색다른 공간들을 찾아 나선다. 이처럼 68혁명을 계기로 다양한 주체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을 옥죄고 있는 사회제도들을 변형해 가려고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운동들은 기존의 좌파운동이 집착해 왔던 집중화 모형에서 벗어나 자율적 조직화를 지향해 왔다. 자주관리와 내부 민주주의의 관철, 횡단성과 공개성을 지향하는 이러한 움직임(넓은 의미의 자율운동)은 바로 68혁명(미완의 혁명)에서 제기된 과제들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68혁명을 계기로 노동자운동의 주류 경향은 기존의 노조-당-국가 모델에 집착하면서 노동자들을 훈육하는 장치로 되어갔지만, 노조운동에서도 자율적 흐름은 그간 노조로 대표되던 위임형식에 대해서 ‘기층위원회’(또는 평의회, 여성노조, 이주노조 등)를 중심으로 주변적인 노동자들(예를 들어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을 포괄해 나가려고 하였다.
물론 68혁명 이후 사회운동은 주로 노동 이외의 영역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 68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여성운동, 자주관리운동, 생태운동 등이 등장하였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운동들이 나타났다. 미국에서도 흑인시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블랙팬더당운동과 여성운동을 비롯하여 성소수자운동, 이주민운동, 원주민운동 등 다양한 소수자운동이 등장하였다. 독일에서도 자율적 여성운동, 반핵운동, 다양한 자조운동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사회주의환자공동체(SPK) 같은 색다른 환자운동까지 나타났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68혁명의 여파로 당시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던 다양한 운동들이 분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은 1970년대에 이탈리아에서의 자율(아우토노미아, Autonomia)운동(Lumley, 1990), 1980년대 독일과 중부 유럽으로 퍼져 나간 아우토노멘(Autonomen)운동(카치아피카스, 2000), 1990년대 이후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의 사회센터(Social Center)운동으로 이어져 왔다.
68혁명 이후 이렇게 다양한 주체들의 다양한 운동이, 1999년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대안세계화운동에서 결집하게 된다. 이질적이고 다양한 운동주체들이 제국화되어 가는 권력에 함께 대항하여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본의 세계화에 대해 대중(민중, 노동)의 세계화를 제기하고 있다.
반권위주의와 자율성을 기치로 내건 68혁명 이후의 사회운동(넓은 의미의 자율운동)은 대중의 힘을 아래로부터 구성하여 권력을 변형시켜 가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제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조직방식과 운동방식을 다양한 영역에서 실천해 가면서 국가권력을 약화시켜 가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욕망 분출을 추진해 온 각 운동주체들은 각자 운동들 안에서 다양한 분자적 증식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변형시켜 왔다.
이러한 방향이 바로 68혁명이 제기한 진정한 혁명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어느 날 국가권력 또는 제국권력을 장악하는 깜짝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대장정(Long March)을 통해서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구성권력(constituent power)의 방향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운동을 통해서 나타나는 열린 투쟁의 장은 현실의 잡종적인 참여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통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 현실의 다양한 기능들과 기구들을 결합하는 접착제는 기 드보르(Guy Debord)가 스펙터클이라고 부른 것, 즉 공적 담론과 여론을 생산하고 조절하는, 통합되고 확산적인 이미지 및 관념 장치이다(Debord, 1994; 1990).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한때 공공 영역이라고 생각된 것, 즉 정치적 거래와 참여의 열린 장은 완전히 사라진다. 스펙터클은 모든 집합적인 사회성[사교] 형태를 파괴하며—사회적 행위자들은 그들 각자의 자동차들 속에서 그리고 각자의 비디오 화면들 앞에서 개별화된다—동시에 새로운 대량(mass) 사회성, 행동과 사고의 새로운 획일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스펙터클의 영역에서는 사회구성을 둘러싼 전통적 투쟁 형태들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사회에 대한 공공 인식과 여론을 만들어 내는 수많은 메커니즘들이 이전에도 분명히 있었지만, 현대의 매체는 이러한 일을 하는 데 훨씬 더 강력한 도구들을 엄청나게 제공한다. 기 드보르가 말하듯이,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나타나는 것만이 실존하며, 주류 매체는 모든 주민에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 독점적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스펙터클의 법칙은 매체가 주도하는 선거 정치의 영역에서, 조작 기술의 영역에서 분명하게 군림하고 있다. 선거철의 담론은 후보자가 어떻게 보이는가에만, 즉 이미지의 순간 포착과 순환에만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류 매체 네트워크[방송망]들은 후보자들과 그들의 정당이 제시한 스펙터클을 반영하는 (그리고 분명히 부분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종의 이차적인 스펙터클을 관리한다. 정치 캠페인들에서 이미지에 대해서보다는 쟁점이나 내용에 초점을 맞추자는 요구는 오늘날 너무 순진한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정치인들이 저명인사로 통하고 정치적 캠페인들이 광고 논리 위에서 작동한다는 생각이 오늘날 당연시되고 있다. 정치 담론은 정교화된 판매대이며, 정치 참여는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들 가운데 선택하는 것으로 축소된다.
물론 스펙터클이 여론과 정치 행동에 대한 매체 조작을 포함한다고 말할 때, 장막 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마법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스펙터클을 명령하는 단일한 통제 장소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러한 중앙 통제 지점이 있는 것처럼 작용한다. 기 드보르가 말하듯이 스펙터클은 분산되어 있으면서 통합되어 있다. 특히 정치가 지닌 스펙터클은 마치 매체, 군대, 정부, 초국적 기업, 전 지구적 금융 제도 등이 모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권력에 의해 의식적이고 분명하게 지도받는 것처럼 기능한다.
더욱이 스펙터클의 사회는 구시대의 무기인 공포를 통해 사회를 지배한다. 비록 욕망과 쾌락(생필품을 향한 욕망과 소비의 쾌락)을 통해서 기능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스펙터클은 공포의 소통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작동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욕망과 쾌락의 형태를 창조한다.
탈근대적․잡종적 현실 구성과 공적인 것 및 정치에 대한 매체 조작을 결합하는 공포의 스펙터클은 확실히 현실 구성을 둘러싼 투쟁의 근거를 빼앗는다. 마치 어떤 설 자리도 남아 있지 않고, 어떤 가능한 저항에 대한 압박도 없고, 무자비한 권력 기계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펙터클의 권력을 인식하고 전통적인 투쟁 형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낡은 투쟁 장소들과 투쟁 형태들이 쇠퇴해 감에 따라 새롭고 더욱 강력한 투쟁 장소들과 투쟁 형태들이 나타난다(Hardt and Negri, 2000; 네그리․하트, 2001: 418-421).
이러한 발상에서 볼 때 자율운동의 흐름은 바로 새로운 투쟁 장소와 투쟁 형태들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율운동과 더불어 스펙터클도 변화되어 왔다. 아니 스펙터클이란 개념 자체는 자율운동의 흐름 위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먼저 자율운동을 통해서 그동안 피지배 대중으로서 지도받아야 한다고 여겨졌던 대중(multitude)의 모습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스펙터클 속에 움직이는 대중의 스펙터클이 겹쳐지게 되었다.
나아가 자율운동은 기존의 지도부-대중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지던 명령체계를 거부하고 수평적인 연대의 방식을 실천하였다. 위계적인 구도 속에서만 보이던 스펙터클이 이제는 수평적인 스펙터클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중심과 주변을 나누고 중심을 축으로 보던 것이 주변을 중요시하는 구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종적 위계에서 횡적 연계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과 횡적 연계를 보이는 움직임을 통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분명한 금긋기를 통해서 나누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분명한 종적 위계선 대신에 다양한 횡단선들이 그어지면서 네트워크 방식의 작용들이 발전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 단일하고 고정된 지배적 스펙터클은 다양한 스펙터클의 경합과 투쟁(스펙터클의 정치)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상 속에서 이 책에서는 서구의 자율운동을 살펴보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율운동에 가장 가까운 주거공동체(코뮌)적 실험을 탐색해 보았다.
먼저 ‘서론: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사회운동의 방향’에서는 ‘계약의 정치’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공포와 희망의 정치’의 사유노선에 서서 대중(multitude)의 등장과 그에 따른 사회운동의 방향 변화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대중 개념은 군중, 인민, ‘대중’(mass), 국민 개념과 대비되며, 상이한 문화, 인종, 인종성, 젠더, 성적 지향, 상이한 노동형태, 상이한 생활방식, 상이한 세계관, 상이한 욕망 등 수많은 내적 차이들로 이루어져 있어 통일적인 혹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결코 환원될 수 없다. 그리고 맑스주의적 계급 개념이 배제적인 개념인 데 반해서 대중 개념은 포괄적인 개념이며,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고 일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특히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다양한 주민층인 빈민을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대중은 서구에서는 68혁명 이후에, 한국에서는 1987년 노동자․농민 대투쟁 이후 다양한 욕망을 담은 채 나타났다. 노동자계급의 내적인 분화와 다양화 속에서 대중의 노동 형상은 다양화되고 더욱 더 비물질적 노동의 특성을 띠어 간다. 이러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대중의 등장과 함께 사회운동의 투쟁방식과 방향이 변하고 있다. 1960년대에 나타난 게릴라 투쟁모델은 집중제의 단말마를 보여주며 네트워크투쟁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자율운동에서 나타난 네트워크투쟁은 그 이후 사회운동의 방식으로서 널리 확산되며 대안세계화운동에서 절정에 달한다. 또한 네트워크투쟁으로의 변화과정 속에서 대중의 욕망투쟁과 주체성생산투쟁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한다. 기존의 이해투쟁과 대비되는 욕망투쟁의 전개 속에서 대중은 자본이 부과한 자본주의적 주체성생산에 대항하여 각종 시설들 속에서 다양한 일상적 파업을 통해 자본의 훈육을 거부하면서 색다른 주체성 생산(특이화)을 시도한다. 대중은 자신의 특이성을 확인하고 색다른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더욱 다양한 코뮌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자율운동들, 다양한 욕망투쟁들, 소수자운동들이 자율성에 기반하여 활성화되고 기존의 운동들과 접속되면서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운동의 전망을 연 뒤, ‘제1부 자율운동’에서는 서구의 자율운동을 68혁명 이후 현재까지 두드러진 운동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운동이지만 자율성을 제고하려는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였다.
‘제1장 이탈리아의 68혁명과 점거운동’에서는 68혁명과 그 이후 전개된 점거운동을 이탈리아의 경험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그 함의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이탈리아에는 68혁명 이전에 노동자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노동자주의(operaismo)라는 운동 흐름이 있었다. 68혁명 당시에 학생들이 대학을 점거하면서 반권위주의와 자율성을 내세우며 투쟁에 나섰고, 학생들의 투쟁에 뒤이어 1969년 노동자들의 투쟁이 확산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이 결합해 나갔다. 이러한 결합으로 투쟁은 점차 공장에서 사회로 확산되어 갔다. 공장에서는 내부행진과 점거투쟁이 일어났고, 노조투쟁은 사회적 투쟁들과 결합해 나갔다. 공장점거의 움직임과 더불어 다양한 점거투쟁이 나타났다. 주택점거, 임차료파업, 자율축소운동, 자유라디오운동, 건강센터운동, 죄수운동 등은 인민의 직접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운동에 기반하여 1970년대 중반 이후 사회센터운동과 여성센터운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센터운동은 청년들이 빈 건물을 점거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여 나가는 공간전유운동이다. 이 운동은 1970년대 내내 불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었으며 1980년대 동안 이단적인 실험의 섬들로 존재했다. 여성센터운동도 여성주의자들이 빈 건물을 점거하거나 지방정부의 양해 아래 건물들을 접수하고 거기서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벌여 나갔다.
이러한 점거운동은 공장(생산 부문)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재생산 부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반권위주의와 자율성을 실현해 가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집합체들과 사회센터들은 국가와 자본주의시장으로부터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 자주관리해 나가는 미시코뮌들이었다. 더 나아가 여성센터운동은 여성적인 자유의 공간을 창조하여 그 속에서 여성되기를 통해 기존의 남성적인 제도들을 변형시켜 가면서 사회의 지형도를 넓히는 것이었다. 더욱이 사회센터운동과 여성센터운동은 더 이상 집중화된 방식이 아니라 분산적인 방식을 통해 다양한 자유공간, 다양한 미시코뮌을 만들어 가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탈리아에서 자율운동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미국에서는 반전운동과 시민권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뒤이어 다양한 소수자운동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는 시민권 운동을 주도한 흑인운동 안에서 가장 자율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녔던 블랙팬더당에 대해서 추적해 보았다. ‘제2장 미국 블랙팬더당의 생존 프로그램 활동’에서는 미국 흑인권력운동에서 나타난 블랙팬더당의 생존 프로그램 활동을 설명하였다. 먼저 미국의 시민권운동의 통합주의적 흐름에 대립하면서 발전해 간 분리주의적 흐름을 강조하였다. 킹 목사 방식의 통합주의적 시민권운동은 법률적 개선을 가져왔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오히려 분리주의적인 흑인권력운동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특히 이 장에서는 분리주의적인 다양한 실험을 했던 흑인권력운동의 대표적인 운동으로서 블랙팬더당에 주목하였다. 블랙팬더당의 활동을 무장저항이란 측면에만 맞추어 비방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활동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제도를 바꾸어 나가려 했던 생존 프로그램에 주목하였다.
블랙팬더당이 실시한 생존 프로그램은 다양했으나, 여기서는 몇 가지로 분류하여 그 활동을 기술했다. 먼저 1. 음식 프로그램으로는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아침급식 프로그램과 무료음식 프로그램이 있었다. 2.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대안학교로서 해방학교(사무엘 나피르 범공동체청년학교, 나중에 오클랜드 공동체학교로 개명)가 있었고, 그 외에도 주민들을 위한 공동체 학습센터, 공동체 포럼,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발달센터 등이 있었으며, 법률도움 및 교육 프로그램도 있었다. 3. 건강 프로그램으로는 무료건강진료소가 있었고 흑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병인 겸상적혈구빈혈증 검사를 주도하여 실시했다. 4. 보호 프로그램으로는 경찰순찰과 노인안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생존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블랙팬더당 자체가 지닌 당 활동에서도 대안적 성격을 찾아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공동체 서비스로서의 생존 프로그램에서 대안적 성격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생존 프로그램들은 국가나 지방정부들이 나서지 않지만 공동체 성원들이 필요로 하고 욕망하는 것을 찾아내서 실천해 나갔다. 그렇게 해서 국가나 지방정부, 다른 조직들이 생존 프로그램들을 따라 배우고 실천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블랙팬더당이 실행했던 생존 프로그램은 관료화되고 상투화된 틀에 따라서 움직이는 기존 제도에 대항하여 인민대중의 창의성, 주도성, 자율성을 잘 보여주었다.
이어서 ‘제3장 이탈리아의 자유라디오운동’에서는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자유라디오운동에 대해 기술하고 그 구체적 활동을 밝혔다.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68혁명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결합하면서 1970년대 내내 자율운동으로 활성화되었다. 노동운동이 사회투쟁과 결합하고 청년학생들의 반문화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다양한 점거운동과 분리주의적인 여성운동, 자율축소운동 등이 전개되면서 매체운동으로서 자유라디오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탈리아에서 1976년부터 활성화된 자유라디오들은 1980년에 전국적으로 약 3천여 개였으며 그 가운데 사회주의적인 라디오들이 20% 정도 되었다. 자유라디오들은 라디오 매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방송 자체에 대격변을 가져왔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섬광처럼 나타나 운동인자로서 활동한 ‘라디오 알리체’와 대중의 횡단적인 포럼을 만들어 현재까지도 방송하고 있는 ‘라디오 뽀뽈라레’를 들 수 있다.
라디오 알리체는 볼로냐에서 1년 조금 넘게 방송하였으며 방송국 내부의 민주적 조직화를 시도하였다. 또한 표준화된 방송언어를 파괴하고 육체(욕망)의 소리를 내려고 하였다. 청취자집단을 조직하고 열린 방송을 하였으며 허위정보를 통해 진실한 정보를 드러내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더욱이 77년 운동 과정에서는 경찰과 시위대의 동향을 생방송 전화로 방송하기도 하였다. 단순히 사건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 선동하기까지 하면서 운동의 정보국으로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결국 라디오 알리체는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 폐쇄되었다.
라디오 뽀뽈라레는 1976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방송하고 있으며, 대중의 포럼이 되고자 하였다. 다양한 후원자의 협동체에 의해 설립된 라디오 뽀뽈라레는 전문 방송으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민주주의를 유지해 가려고 하였다. 기존의 방송방식을 혁신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였고 단순한 사건보도를 넘어서 쟁점을 제기하고 청취자들이 논의를 전개하도록 하고 그것을 방송하기까지 하였다.
이 두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이탈리아 자유라디오운동은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대중의 다양한 표현양식을 확장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수자 주체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민주주의의 확장에 기여하였다. 자유라디오들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업화의 물결에 쓸려 들어갔지만, 일부 자유라디오들은 여전히 활동해 왔다. 이제 소통기술의 혁신과 더불어 새로운 매체운동(텔레스트리트운동)이 등장하고 있다.
자율운동은 이탈리아에서 국가의 억압에 의해 주춤하고 있던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중부 유럽(네델란드, 덴마크 등을 포함하여)으로 확산되었다. ‘제4장 독일의 자율운동’에서는 1980년대 독일의 자율운동을 추적하여 정리하였다. 1980년대에 독일에서 등장한 자율주의자들인 아우토노멘(자율파들, Die Autonomen)은 68운동의 세대(신좌파)들이 제도에 편입되어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국가와 대립하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공간과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려고 하였다.
독일에서 아우토노멘이 중심이 된 자율운동은 학생들, 노동자들, 주변화된 계층들, 여성들, 생태주의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독일 자본주의 사회의 표준화된 삶의 방식에서 밀려나거나 벗어난 사람들이었다. 전통적인 계급적 관점에서 볼 때는 룸펜들의 운동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사회를 보장된 계급과 비보장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파악한다면 오히려 비보장된 사람들이 스스로 색다른 삶의 형태를 추구해나가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운동, 반핵운동, 지역운동들 위에서 1980년대 초반에 형성된 자율파들은 그 후 자율운동을 주도해간다. 브로크도르프의 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싼 대결과 같은 평화운동이든 프랑크푸르트의 스타트반 베스트(Startbahn West) 활주로 건설을 중단시키기 위한 장기적 시도이든 대규모 동원들에서 아우토노멘의 역할은 투쟁에 전투적인 예리한 칼날을 제공하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아우토노멘은 공고화되었고, 단일 쟁점 캠페인들 및 지역적으로 규정된 집단들과는 분리된 조직 근거로서 복무했다. 아우토노멘은 베를린,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그리고 코펜하겐에 도시 근거지들을 세웠으며 이처럼 독일을 넘어서 덴마크, 네델란드 등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 후 통일되면서 자율운동이야말로 유일하게 신나치의 등장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부유럽에서 활발히 전개되던 자율운동은 1990년대 들어 이탈리아에서 다시 활성화된다. ‘제5장 이탈리아의 사회센터운동’에서는 1990년대 이탈리아의 사회센터운동에 대해 기술하고 그 의의를 찾아보았다. 이탈리아의 68혁명은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결합하면서 1970년대 내내 자율운동으로 활성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도시를 장악하자’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버려진 건물들이나 부지들을 점거하여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드는 사회센터운동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특히 1990년대 들어서 공적 공간의 축소에 대항하여 다시 적극적으로 점거하여 자신들의 공간을 만드는 사회센터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오고 있다.
이탈리아의 사회센터들은 점거를 통해서 자신들의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사회센터들은 문화적 활동뿐만 아니라 정치적 캠페인, 다양한 사회서비스 등을 수행하며 자가생산과 자주관리를 조직원리로 삼고 있다. 자본주의시장과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공간과 운영을 지향하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시장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며, 지역사회와도 긴밀한 협력을 하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점거지의 합법화와 지방정치에의 개입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여전히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더욱이 사회센터 성원들은 지역적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전국적 차원과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회센터활동가들은 ‘뚜떼 비앙께’와 ‘야 바스타 연합’과 같은 조직을 만들어 새로운 시위형태를 실험하고 전 지구적인 연대와 대안세계화운동에 개입해 왔다.
자율운동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 영국에도 자율운동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점거운동이 있어 왔다. 특히 1990년대 반도로투쟁과 급진적 파티저항문화가 결합하면서 2000년대 들어 사회센터 및 자율공간을 만들어 내는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제6장 영국의 사회센터운동’에서는 불법점거도 하지만 운동권에서 기금을 마련하여 급진적 서점, 정보상점, 자료센터와 같은 합법적이고 자율적인 공간과 사회센터들을 만들어 가는 영국의 자율운동의 특성에 대해서 파악하였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 때문에 점거운동에서 항상 논란이 되어 왔던 합법적 임대 형식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물론 그러한 합법적인 공간들은 여타 불법적인 점거집합체들을 지원하고 촉진시키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운동의 힘은 역시 불법점거한 집합체들의 활동에서 나온다. 영국의 사회센터들 및 자율공간들은 특히 모임의 장소로 제공되거나 행사를 치르는 등의 방식으로 운동의 네트워크에서 거점으로 역할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여러 장소에서 열리며 상이한 시간에 걸쳐 이동식으로 이루어지는 운동방식 등은 새로운 운동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사회센터들과 자율공간들은 활동가들의 허브로서 기능하려 하며, 사회센터 네트워크를 만들어 다양한 공간들을 서로 연결하고 조직해 나가기 위한 실험들을 전개하고 있다.
서구의 이러한 자율운동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팽창 장소인 도시 속에서 대중의 주거와 삶을 확보해 나가면서 색다른 사회적 유대와 자주관리를 수행하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은 바로 공간을 점거하여 다르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자율운동의 주요 형태인 사회센터들은 일시적 자율지대로서 기능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특히 주변자들)이 다양한 활동을 벌여가며 거주하는 공간의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의 단초를 보이는 사례들을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려고 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2부에 있는 넝마공동체, 더불어사는집, 빈집이다.
즉 ‘제2부 주거공동체’에서는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율운동의 싹을 살펴보았다. 흔히 주거공동체의 형식을 띠며 나타나고 있는데,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선별하여 판매하며 공동생활을 하는 ‘넝마공동체’, 청계천 변 삼일아파트를 점거하여 살다가 나중에는 정릉의 다세대주택을 점거하여 살던 노숙인 점거공동체 ‘더불어사는집’, 그리고 최근 20-30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임대주택에서 모여 살면서 대안적인 삶을 꾸려 나가려고 하는 주거실험공동체 ‘빈집’의 사례를 탐색해 보았다.
‘제7장 넝마공동체’에서는 넝마주이들이 만들어 간 점거하는 삶에 대해 살펴보았다. 1980년대 후반 추렁(바구니)과 리어카, 경운기를 가지고 폐품을 수집하던 시절,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다시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성원들 중에는 이름이 없이 별명으로만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동5교 다리 밑에 자리 잡은 넝마공동체는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미래를 계획하며, 인생 종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다른 이의 인생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넝마공동체는 트럭을 이용해서 폐품을 수집하고 쓰레기 분리수거가 진행되면서 크게 변화하였다. 특히 포이동 시유지(266번지)를 점거한 뒤에는 엄청난 물량의 재활용품을 관장해 나가게 되었다. 그와 함께 1980년대 후반에 지니고 있던 공동체적인 성격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넝마공동체는 여전히 내적인 규칙과 운영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회의 다른 곳에서 배척당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이다.
재활용품 수집은 넓은 장소가 필요한데 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넝마공동체는 성원들을 늘리고 점거지를 지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2005년 포이동 점거지가 강제철거된 뒤에는 크게 축소되었고, 그 후 다리 밑에서 옷을 수거하여 재활용옷판매점과 노점에서 판매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넝마공동체의 성원들(15명 정도)은 아파트에서 수거해 온 옷들을 고르고 판매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다. 현재는 과천에 매점이 있고, 서초구청과 뚝섬, 그리고 동묘 지역에서 노점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사회가 배척하는 비행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삶을 가꾸어 가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넝마공동체는 겨울에는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 거주하다가 따뜻해지면 나가곤 한다. 2010년부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성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2012년 11월 5일) 다리 밑이 강제철거당하여 대치동 탄천운동장으로 거처를 옮겨갔다가 다시 강제철거당하여 거리에서 강남구청과 싸우고 있다.
‘제8장 노숙인 점거공동체 ‘더불어사는집’’은 2004년 7월 들어 청계천 변 삼일아파트가 철거 예정이었던 시기에 노숙인들이 잠입해 살면서 만들어 간 주거공동체 ‘더불어사는집’을 다루었다. 강력한 지도자가 주도하였지만 노숙인들이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하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더욱이 그 당시 예술스쾃을 한국에 적용하면서 목동예술인회관 점거를 시도했던 팀과 연결되면서 더불어사는집 사람들은 스스로 점거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 나갔다. 정보공개요구를 통해 얻어낸 자료들을 검토하고 정릉의 다가구주택을 의도적으로 점거하는 눈부신 활동을 하였으며, SH공사(도시개발공사)가 관리하는 매입임대주택을 점거하고 싸워서 사용권(5개월간)을 얻어 내고 자신들의 계획을 꾸려나가는 활동을 보여주었다. 노점활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 가려고 하였으며, 자신들을 알리기 위한 무료급식활동도 계속하였다. 그러나 임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내부 성원들의 갈등과 지도자의 주도에 의해 노숙인 점거자들이 떠나 버리게 되어 해체되기에 이른다. 어쨌든 이 실험은 점거운동의 다양한 쟁점들을 제기하고 논의할 계기를 준다.
‘제9장 주거실험 공동체 ‘빈집’’에서는 누구나 손님, 주인, 가족이 될 수 있는 주거공동체 ‘빈집’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는 빈집에는 단기투숙객과 장기투숙객이 어우러져 살고 있으며 성원의 이동이 빈번하다. 빈집 사람들은 모든 것을 열고 소통하며 위계를 만들지 않으려는 생활방식, 모든 것이 고정되지 않고 그때그때 바뀌어 가는 흐름, 문명의 도구들에 대한 절제된 활용과 생태적 지향, 소유의 관념을 무르게 하는 공유방식 등을 통해 색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몇 개의 집으로 늘어나면서 새로운 변화에 직면한 빈집의 주거실험은 천정부지로 솟는 주택가격과 거리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하나의 반짝이는 실험이 되고 있다.
이처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자율운동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유사한 운동의 단초들을 탐색해 본 뒤, ‘결론: 제국시대의 대중운동’에서는 앞으로의 다양한 자율운동의 전개를 대중의 움직임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특히 최근의 제국 논의와 관련하여 ‘제국에 대항하는 대중’이라는 문제설정에서 대중운동의 움직임과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제국의 지배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제국에 대항하는 대중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전 지구적(제국) 권력은 국민국가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기구와 초국적 기업들이 만들어 낸 네트워크들, 그리고 대의제를 통해 표현되는 민중과 그들을 대표하는 NGO와 같은 조직들로 이루어져 있다. 제국 권력은 훈육메커니즘, 포획메커니즘을 통해서 대중의 활동을 자신의 이윤 추구에 맞추어 가려고 한다. 대중은 이처럼 초코드화하려는 제국 권력에 맞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해 나간다.
결론에서는 제국시대의 대중운동을 대안세계화운동, 자율운동, 소수자운동, 보이지 않는 운동 등으로 나누어서 고찰해 보았다. 대안세계화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에 반대하는 전 지구적 민중운동으로서, 세계화의 주도세력 및 국제기구에 대한 포위․타격 투쟁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대안에 대한 토론과 논쟁의 장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이라는 양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안세계화운동은 9․11을 계기로 반전운동과 결합하여 전개되고 있는데, 대안적인 세계화에 대한 상을 모색하며 새로운 국제주의, 새로운 연대방식을 제기하고 있다.
자율운동은 기존의 노동운동에서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자율성을 증대시켜 가고 불안정 노동층을 포괄해 나가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공공영역의 확보). 또한 사회적 공장에서 다양한 사회층들과 청년들이 점거운동, 반핵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과 결합하면서 지배체제가 강요하는 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들을 실험해 나가고 있다.
소수자운동은 소수자들이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색다른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소수자운동은 색다른 공간과 삶의 방식을 실험해 가는 대안운동과 연결될 수 있다. 표준화를 거부하는 소수자들의 이러한 운동과 색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대안운동은 사회 전체의 다양성을 증대시켜 줄 것이고 권력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보이지 않는 운동은 생체정치적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대중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부과된 것들을 거부하거나 변형해 나감으로써 이것이 축적되어 커다란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운동들을 통해서 대중은 기존의 제도화된 틀을 넘어서서 제국 권력과 대결해 나가며 제국을 압박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자유의 공간을 확장해 가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