꿔다놓은 보릿자루
남들이 장에 간다니까 거름지게 지고 쫓아가는 격으로, 시를 배우러 가는 일행을 쫓아서 시를 배우는 모임에 가입을했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개도 아닌 사람인데 어깨너머로 배워도 삼 년이면 시 아냐 소설을 배워도 가능한 시간 일 것 같은 자신감으로 시작한 것이 삼 년을 배웠고, 하루일과를 보내고 자투리 시간을 내서 하는 공부라, 또 삼 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고도 시에는 워낙 문외한이라 시 한편 제대로 써내질 못했다. 동인지나 작품집을 내는데도 작품 한편 못 내는 것을 본 조동수시인이 말했다. 칼국수에 양념 넣고 끓이면 우동, 우동에 매운 양념 풀면 짬뽕, 짬뽕의 국물 쏟아 내고 춘장 섞어 비비면 짜장이 되는데, 그 간단한 원리를 그대로 수필에도 적용해 보란다. 수필을 줄이면 시가 되고 수필을 늘이면 소설이 된다며 쉽게 생각하라는 말에 고무되어 시를 한편 써 보았다. 내가 쓴 시를 읽어본 사람들이 시평을 했다. “이것도 시냐고 詩詩해서 못 읽겠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촌평을 했다.
말(馬)은 나서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서 서울로 보내라는 말의 이치에 따라 나도 서울로 갔다. 사람이 되기 위해 서울로 간 것이 아니라 시를 배우기 위해 서울의 문학 단체에 가입을했다. 배우는 사람들 거의 여성이었고, 학벌과 문학에 대한 커리어가 대단해서 시를 가르치러 간 것도 아닌 배우러 갔으면서도 자연 위축이 되었다. 뚫린 귓구멍이라 강의는 잘 들어왔으나 머리에서 이해를하는데 애를 먹었다. 강평시간에는 입이 열리지를 않았고 자리를 앉아도 귀퉁이나 구석에 존재감 없이 앉았다. 며칠을 배워도 내 호칭을 부르는 문우들이 없다는 것을 깨닳았고 문우들이 나를 호칭하는 이름이 따로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들은 나름대로 나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로 명명해 놓고 그들끼리 암호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배움이 일천하여 뒤늦게나마 배우고자 내 지역도 아닌 서울로까지 나서는 나에게 아내는 당부 아닌 당부를 했다. “서울 사람들은 똑똑하고 영악스러운 데다 더구나 글을 다루는 사람들 앞이니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이나 가는 것을 괜히 입 열었다가 본전 드러나 망신당하지 말고 주둥이 꼭 붙들어 매고 앉았으라고 말했다.
그날도 중간에라도 끼고 싶어 주둥아리 꼭 붙들어 잡아 매어놓고 입구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노릇을 하고 앉았는데, 출입하는 사람에 치여 보릿자루가 쓰러지며 보릿자루 주둥이를 묶었던 노끈이 삭았던 거라 끊어져서 자루 주둥이가 벌어지며 보리쌀이 쏟아졌다. 겉보리였다면 거칠어서 저희들끼리 엉겨서 쏟아지다 말았을 터인데, 보리쌀이라 계속 흘러내려 본전 다 드러나게 생겼는데 그래도 흘러내리며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제길 헐 본전 다 드러나게 생겼다“
좔 좔 좔 좔
주저리 주저리
나불 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