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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 스크랩 단산면 좌석리 (13)
思庵 황윤진 추천 0 조회 120 16.10.07 02: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백산이 꼭꼭 숨긴 청정마을 ‘마지막 보물’
우리마을탐방[13]단산면 좌석리
[474호] 2014년 06월 04일 (수) 15:32:21 이원식 기자 lwss0410@hanmail.net

   
▲ 좌석리(세거리) 마을전경
지명마다 재미난 유래가 전해지는 마을
소백산자락길로 이어지는 역사의 흔적

   
▲ 좌석리 표지석
▲좌석리 가는 길
단산면사무소가 있는 옥대1리에서 부석 방향으로 향하면 Y자형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으로 직진하면 부석면으로 가는 길이고 좌석리 가는 길은 좌측 영단로(영주-단양)로 향하면 된다.

옥대1리를 벗어나면 늙은 느티나무가 보이고 저 멀리 소백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는 길이 빤히 보인다.

들길 사이를 1km 쯤 가면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있는 금대동(金臺洞, 옥대3리) 앞을 지나면 연이어 좌측으로 모산동(帽山洞) 표석이 나타나고 마을은 우측 산골짝에 있다.

단산저수지를 바라보면서 오르막길을 휘감아 오르면 소백의 맑은 물을 담은 단산지(丹山池)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부터 좌석리인데 호수 우측으로 첫 번째 마을이 ‘독점’이고 두 번째 마을이 ‘조재기’이다.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보이는 마을이 세거리이고 좌측으로 가면 원좌석, 우측으로 가면 고치령이다.

연화동은 고치령으로 가다가 좌측 계곡으로 들어가는 오지 중의 오지이다. 5월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5일 좌석리에 가서 ‘좌석(坐石)’도 만나고 원주민들로부터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청정계곡 곳곳을 둘러봤다.

   
▲ 단산저수지
▲‘좌석’의 지명유래
좌석은 한자로 앉을 좌(坐)자에 돌석(石)자를 쓴다. 지역주민 김태진(66)씨의 안내로 ‘좌석’을 찾아갔다. 세거리에서 원좌석 계곡으로 올라가다 보면 밭 가운데 20여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큰 바위(가로10, 세로10, 높이 5m 정도)가 있다. 이 바위가 좌석의 주인 ‘앉은바위’이다.

옛날 마귀할멈이 소백산에서 반지를 잃었은데 반지를 찾으려고 산을 파 내려가다가 땅 속에서 파낸 큰 바위가 골짜기로 굴러 떨어져 지금 자리에 멈춰 앉았다 하여 이름이 ‘좌석’이 되었다고 김태진씨가 유래를 설명했다.

‘독점’마을은 골짝 깊은 곳에 민가는 없고 절만 혼자 있다고 하여 독절이라 부르다 독점이 됐고, ‘조재기’는 큰 새가 흉년이 들자 먹을 것이 없어 산을 파먹고 똥을 누니 이것이 굳어 바위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조바우라 부르다가 조재기라 부르게 되었다.

세거리는 고치령 가는 길과 원좌석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고 하여 세거리로 불리어 졌다. 연화동은 연화부수(蓮花浮水)라는 묘터가 있었는데 연못에 뜬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박금숙 씨
▲고치령 아래 대궐터?
독점에 살고 있는 박금숙(61)씨는 “고칫재에 가면 대궐터가 있고 거기에 가면 옛 성의 흔적과 기와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고치령 정상 표석에는 신라 때 이 고개 아래에다 대궐터를 잡으면서 '옛고개'라 했고 여기에 한자어를 붙여 고치(古:옛고, 峙:고개치)재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여 진다.

고치령은 단종과 금성대군의 한이 서린 고개이고 양백지간(소백산-태백산)의 중간이며 단산면에서 충북 지역과 강원도 영월(광산지역)을 잇는 보부상들의 애환이 깃든 고갯길이기도 하다.

그러면 대궐터란 어디인가? 고치령에서 국망봉(마당치) 방향으로 1.3Km 지점에서부터 기와가 보이기 시작하여 1.9Km지점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기왓장은 온전한 상태도 있고 파편도 있다. 이 근처 능선에는 돌과 흙으로 쌓은 낮은 성벽이 있고 100여 평 정도 되는 공터(집터자리)도 있어 ‘군사시설이나 봉화대가 있던 자리가 아닐까?’ 마을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 좌석(앉은바위)
소백산국립공원 관계자에 의하면 “여기서 발견된 기와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확인됐으며 비교적 온전한 성벽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대한 기록이 없어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운동과 관련하여 ‘비밀군사훈련장소’나 ‘군사집결지’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강나루펜션
▲소백산자락길과 게스트하우스
좌석계곡에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다락논이 다닥다닥 있었는데 지금은 인삼, 사과, 고추, 생강, 도라지, 감자밭으로 이어진다.

소백산 12자락길은 좌석에서 출발해서 자재기재를 넘어 금성대군신당이 있는 두렛골을 거쳐 초암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자작나무가 많다고 하여 자재기재라 부르는데 이 고개에는 온갖 새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이다. 12자락길은 최근에 생겼지만 소백산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고 있다.

   
▲ 웃좌석 전경
1300여 년 전 의상(義湘)이 초암사 자리에 초막을 짓고 부석사 절터를 찾기 위해 소백산 이곳저곳을 샅샅이 돌아다니던 길이다. 550여 년 전에는 순흥의 금성대군이 보낸 밀사가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오갈 때 수없이 다니던 길이다.

또한 6,25 이전에는 빨갱이들이 소백산에 은둔해 있다가 밤이면 민가에 내려가 만행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던 길이기도 하다. 최근 좌석리에 '소백산자락길 게스트하우스’가 건립됐다. 자락길 문화생태 탐방객들의 휴식공간 제공을 위해 옛 마락초 부지에 2층 규모의 쉼터를 지난해 10월 완공했다.

▲좌석리 사람들

   
▲ 서정영 이장
   
▲ 박태웅 씨
해방 후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소백산 벌목 중심지가 세거리였다. 당시 이곳에 는 목상들이 북적이고 밥집도 많고 술집도 많았다고 박태웅(75)씨가 전했다.  

좌석리 서정영(66) 이장은 마을 현황에 대해 “세거리에 22집, 원좌석에 13집, 연화동에 8집, 조재기에 10집, 독점에 4집으로 모두 57가구에 100여명이 살고 있다. 최근 팬션이 5곳 민박집도 3곳이 생겼다”고 했다.

   
▲ 김철연 노인회장
김철연(79) 노인회장은 고칫재 아래 첫동네가 있었는데 6,25 직전 없어졌고 너븐바우 마을은 70년대까지 사람이 살았다고 했다.

지금은 고치령이라 부르지만 전에는 주로 고칫재로 불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보부상들이 많이 다니던 길이라 도둑들도 많았다고 한다.

고칫재 중간쯤 오르다 보면 망바위가 있고 50여m 위에는 도둑바위가 있다.

도둑들이 망바위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사람이 오면 신호를 보내 도둑바위굴에 숨어있던 도둑들이 몰려나가 도둑질을 했다고 이 마을 김종예(68)씨가 전해줬다. 약초를 캐고 더덕을 재배하는 김귀녀(70)씨, 장뇌삼을 가꾸고 토종꿀을 돌보는 김맹수(63)씨 등은 산이 주는 선물로 살아가는 산사람들이다.

   
▲ 김귀녀 씨
   
▲ 김맹수 씨
▲소백이 감춰 둔 마지막 보물
   
▲ 호태환 씨

좌석계곡은 국망봉 뒷편 상월봉과 신성봉 사이 골짜기에서 근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이곳엔 절도 없고 축사도 없으며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맑디맑은 물이 흐르는 계곳이다.

좌석계곡 ‘좌석(큰돌)’ 인근에 아담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귀촌인 호태환(63)씨 부부는 “물소리에 반해 이곳에 정착했다”며 “정말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계곡”이라고 했다.

좌석에서 더 깊이 들어가면 터널 숲길로 이어지고 막장에는 움막집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사는 사람도 있다. 계곡 막장에서 약초재배와 토종벌을 치면서 자연에 순응하고 사는 전재준(59)씨를 만났다.

   
▲ 전재준 씨
전씨는 “여기는 전기도 안 들어오는 오지로 자연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원시적으로 산다. 산과 물과 공기가 좋아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연화동천에서 9만여평을 가꾸고 있는 황우성(60)씨는 연화동펜션 대표다.

“연화동에는 동폭포와 서폭포 등 사계절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명소가 많다”면서 “세계적인 등산가 엄홍길(산악대장)씨가 이곳 ‘연화동천(蓮花洞天)’을 보고 말하기를 ‘여기야 말로 소백이 감춰둔 마지막 보물’이라고 말했다”고 황씨가 전했다.

   
▲ 김태진 씨
단산지(池)가 끝나는 지점에는 강나루민박집(대표 임태완)이 있다. 강원도 산촌에서나 볼 수 있던 너와집 같은 민박집이 세 채나 있다.

겉은 너와집이고 내부는 전통한옥으로 사대부 양반집보다 더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 민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강나루에 걸맞게 옛날 낡은 배 한 척이 돌담위에 덩그러니 얹혀있다. 
 

   
▲ 김종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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