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차분하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한다. 그런데, 누구도 잘못하고 있지 않은데, 모든 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영화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성의 역설이다. 이 역설을 ‘합리적 부조리’라고 불러야 할까”(126쪽)
“...문학 전공자들이 한번쯤 들춰보는 <비평의 해부>(1957)에서 노스럽 프라이는 산문으로 된 무학작품을 네 갈래로 나눈다. 소설, 로망스, 고백, 아나토미(해부). 말하자면 소설만 있는게 아니라는 뜻이다”(같은 책, 39쪽)
===========
장안의 이름난 평론가답게, 평론이 창작물의 부가물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장르임을 당당히 증명한 몇 몇 중 한사람인 저자의 산문은 정확하고 유려하며, 예리하였다. 떼어놓고 보면 별스런 문장이 아님에도 빈틈없는 집을 구축하는 조형미. 그의 평론이나 산문에서 내가 느낀 미적쾌감이다. 소박한 낙관주의자였던 내게 충격으로 와닿았던 덴마크 영화 「더 헌트(The hunt)」 (토마스 빈터베르, 2012). 저자가 그 영화에 대해 덧붙인 저 문장을 읽으며, 공부모임에서 내가 겪고 받은 상처가 대부분 저런 종류의 것들이었음을 새삼 되짚게 된다. 저마다의 내면에서 작동되고 있는 논리회로와 자기동일성의 맥락이, 상관하는 타자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음에 대해, 우리 모두는 비극적으로, 그리고 절망적으로 무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