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 전체 선택
열 너비 조절
행 높이 조절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駐파리 특파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역임. ⊙ 저서: <현장에서 본 프랑스 교육> 등. ⊙ 상훈: 佛 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 |
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프로방스역에 정차한 테제베 이층차 TGV Duplex.
증기기관차를 처음으로 발명해 철도교통의 시대를 개막한 유럽은 오늘날에도 철도 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170년 전 영국과 독일에서 거의 동시에 철도 시대가 막을 올린 이후, 자동차와 비행기가 발명돼 경쟁자로 등장했지만, 철도는 노선 확장과 고속화 등을 통해 계속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철도교통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1960년 조선일보의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 후, 자주 이용하던 기차는 파리와 브뤼셀을 운행하던 TEE(Trans Europe Express)였다. 유럽연합(EU)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 취재를 갈 때마다 이용했던 TEE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수도를 2시간대에 주파하는 급행열차였는데, 모든 좌석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간단한 사무를 보는 데는 물론 식사 시간도 절약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광고
1980년대 중반부터 초고속 열차 TGV가 브뤼셀을 거쳐 암스테르담까지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TEE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지금도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도시 간 급행열차(IC)는 제대로 된 식당차와 함께 노트북으로 사무를 볼 수 있는 설비를 갖추어 놓아 과거 TEE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유럽의 주요 도시 간 교통을 항공기가 석권하던 상황을 반전시키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국영철도(SNCF)와 독일연방철도(DB)에서 개발한 초고속 열차 TGV와 ICE였다. 1981년 파리와 리옹 간을 개통한 TGV의 최초 운행에 외국 특파원 자격으로 초청받아 시속 300km로 달리던 객차 안에서 흔들림이 없는 샴페인 잔을 보던 놀라움과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981년 파리-리옹 간 TGV 최초 개통식을 취재
파리와 리옹 간의 TGV 시대를 개막한 프랑스의 SNCF에서는 그 후 연차적으로 파리~보르도, 파리~낭트, 파리~제네바, 파리~런던, 파리~브뤼셀~암스테르담에 이어 작년에는 파리~스트라스부르~프랑크푸르트 등을 TGV로 연결하는 고속철도망을 확충해 나갔다.
광고
결과적으로 프랑스 국내 도시를 연결하는 대부분의 항공 노선은 폐선됐고, 파리~제네바, 파리~런던 등 과거 황금노선으로 불리던 국제 항공 노선 시대도 막을 내렸다.
프랑스의 TGV보다 약간 늦게 운행을 시작한 독일연방철도의 ICE도 함부르크~하노버~바젤 노선을 시작으로 독일 전역으로 고속열차網(망)을 확충해 나갔다. 통일 후에는 과거 동독 지역으로까지 ICE 연계망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바젤, 함부르크, 슈투트가르트, 뮌헨,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등 독일 대도시를 전부 ICE 운행망으로 편입시켰다.
프랑스의 TGV보다 평균 시속은 떨어지지만 객차 실내가 보다 넓고 모든 ICE 열차에 제대로 갖추어진 식당차를 연결하여 운행함으로써 기차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다. 독일의 고속열차 ICE에 탑승해 식당차에 앉아 포도주나 맥주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전원 풍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이야말로 유럽 기차 여행의 眞味(진미)이기도 하다.
프랑스나 독일에 비해 철도교통 수준이 뒤떨어졌던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1980년대 중반부터 철도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스페인의 경우, 세비야 세계박람회를 계기로 마드리드~세비야 간을 프랑스의 TGV 방식으로 고속화한 데 이어 전국의 철도망을 정비하고 고속화함으로써 철도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다.
이탈리아 철도 당국 역시 밀라노~베네치아, 밀라노~피렌체~로마, 로마~나폴리 등 주요 간선을 정비하고, 이탈리아식 고속 전동차를 개발해 투입함으로써 낙후되었던 이탈리아 국영 철도(TI)의 수준을 대폭 향상시키고 있다.
철도 종주국 英國, 고속철 개발은 ‘지각생’
셀 전체 선택
열 너비 조절
행 높이 조절
독일 철도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고속전철 이체(ICE). |
서유럽의 중요 국가 중 고속철도 개발이 지지부진하던 영국도 최근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야심차게 진행되고 있는 서유럽 고속철도망에 영국을 편입시키기로 결정했다. 2020년까지 5000km에 달하는 서유럽 고속철도망을 1만5300km로 확장시키는 사업이 완성되면 서유럽 각국의 주요 도시 간 연결 교통편은 기존의 항공교통에서 철도로 전환될 예정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증기기관차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던 영국은 그동안 철도 현대화와 고속화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영국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오래된 철도 驛舍(역사)와 반세기가 넘었을 낡은 객차가 아직도 운행되고 있어 고속철이 씽씽 달리는 서유럽 대륙 국가들과는 사뭇 달랐다.
더구나 독일이나 프랑스는 2차대전 직후 철도 현대화 계획을 수립해 간선철도를 電鐵化(전철화) 직선화하면서 주요 역의 대기선을 장대화하고, 승객 이용이 적은 支線(지선)과 역들을 과감하게 폐지했다. 그러나 영국은 일부 간선(런던~브리스톨, 런던~맨체스터~버밍엄)의 중고속화를 추진하는 데 그치고 지선과 소규모 역을 지역구 정치인들의 압력 때문에 정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국 철도 당국은 서유럽 고속철도망에 가담하고 1차 사업으로 70억 파운드(약 14조원)를 투입해 런던~버밍엄 노선을 고속철도화(시속 400km)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전국의 간선철도를 2020년까지 고속화함으로써 단거리 항공 여객 수요의 40%에 달하는 400만명을 고속철도로 돌릴 계획이다.
지금도 도버해협 터널을 통과하는 파리~런던 간 고속철도 ‘유로스타’를 탑승하면 프랑스 쪽을 250km 이상으로 달리다가 터널을 거쳐 영국 쪽으로 진입하면 속도가 200km 이하로 뚝 떨어진다. 그나마 몇 년 전 고속화 작업을 했다지만 프랑스 구간에서와 같은 속도를 낼 수 없는 것은 낙후된 영국의 철도 기술 때문이다. 앞으로 서유럽 대륙 수준의 고속철도망이 완성되면 영국의 철도 여행 역시 쾌적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6개국을 통과하는 국제열차
서유럽의 중소 국가들 역시 고속철도망은 상대적으로 취약하지만 기존 철도시설은 완벽하다. 대부분의 간선은 시속 150km의 準(준)고속 운행을 하고 있다. 베네룩스 3개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4개국(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과 스위스 및 오스트리아 등은 앞으로 확장되는 서유럽 고속철도망에 연계돼 고속철도를 통한 유럽 통행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유럽 철도 여행의 즐거움은 대도시 간에 운행되는 국제 열차의 편리함과 쾌적함이다.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 운행하는 특급열차는 프랑스~벨기에~독일~폴란드~우크라이나~러시아 등 6개국 영토를 통과하는데, 파리에서 발권한 승차권 한 장으로 탑승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특급열차가 통과하는 국가들 간에 오랫동안 합의된 관례에 따라 적절하게 운임을 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프랑스 국영철도(SNCF) 간부에게 “국제열차의 운임을 열차 통과 국가 간에 어떻게 분배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국제 특급열차의 경우, 국경을 넘을 때마다 해당 국가의 전동차가 운행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고, 운임 분배는 타고 내리는 승객들의 수와 목적지에 대한 수십 년간의 통계에 의해 적절하게 분배된다”고 했다.
이 같은 협의를 위해 유럽 각국의 철도 관계자들은 100여 년 전부터 정기적인 회의를 열었고, 오늘날 유럽 통합을 통해 서유럽 고속철도망을 구상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서유럽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판매되는 유레일패스(Eurail Pass)는 일정 기간 내에 원하는 국가들을 철도를 이용해 자유롭고 값싸게 여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이 유레일패스 역시 여행지에 포함된 국가들의 철도 당국에 운임이 공평하게 분배된다.
따라서 이용자들은 단 한 장의 패스를 가지고 여러 나라의 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유럽의 관광객 유치에 유레일패스가 기여한 것을 수치로 따진다면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여객기 대신 고속철도
지난 40여 년 동안 유럽에서 근무할 때는 물론 자주 유럽을 여행하면서 자동차나 비행기보다는 철도를 많이 이용했다. 1000km가 넘는 장거리나 철도편으로 여행이 불가능한 곳을 제외하고는 철도 여행이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경제적일뿐더러 편리하고 안락하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1000km 거리에 있는 南(남)프랑스의 마르세유는 전통적으로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TGV 노선이 리옹을 거쳐 마르세유까지 연장돼 3시간대로 주파할 수 있게 되자, 파리~마르세유 국내 항공편은 영업을 중단했다.
고속철도로 3~4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는 목적지까지의 여행은 항공편보다는 철도편을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 유럽인들의 판단 기준이다. 항공편으로 1시간대에 갈 수 있는 목적지라 하더라도 시내에서 공항까지, 그리고 공항에서 탑승 수속과 대기 시간 등을 감안하면 4시간대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의 여행도 몇 년 전까지는 항공 여행이 주류를 이루던 노선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TGV가 독일 영내로 진입해 프랑크푸르트까지 직행할 수 있게 되면서 3시간대로 단축되자 고속열차 쪽으로 여행객들이 몰리고 있다.
유럽 철도 여행의 즐거움은 쾌적한 열차의 안락한 좌석에 앉아 편안하게 독서를 할 수 있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에도 유럽 여행을 떠날 때 기차 여행이 예정되어 있을 경우 몇 권의 책을 꼭 챙겨서 떠난다. 철도 선진국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고 차분한 성격인 것은 철도교통의 또 다른 이점이라고 생각된다.
서유럽에서 철도교통이 자동차와 항공편을 제치고 대중교통의 寵兒(총아)로 재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적으로 철도 관련 산업 기반이 단단해 고속화 등 기술개발을 계속할 수 있었고, 각국 정부도 에너지 효율성과 국민정서 측면에서 철도 보급에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유레일패스로 서유럽 각국을 여행할 때마다 오랫동안 유럽인들이 납부한 세금과 철도 당국의 지속적인 기술개발의 덕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국경의 개념이 사라진 서유럽에서 독일의 ICE나 프랑스의 TGV가 자국의 국경을 넘어 인접 국가의 대도시까지 질주하는 것을 보면 철도를 통한 국제 협력에 감탄과 함께 부러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日本, 고속철도망으로 전국을 1일 생활권化
셀 전체 선택
열 너비 조절
행 높이 조절
신형 신칸센 N700系. |
일본 역시 서유럽 못지않은 철도의 나라다. 일본 철도를 처음 체험한 것은 1964년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당시 서울대 대학신문의 편집을 책임지고 있었던 필자는 난생 처음 일본 여행의 기회가 생겼고, 그해에 개통된 도쿄~오사카 간의 신칸센(新幹線)을 탑승하게 됐다.
당시 시속 200km대로 주파하는 신칸센의 쾌적한 열차에 탑승해 일본의 山川(산천)을 바라보면서 한국의 젊은 대학생이 느꼈던 놀라움과 부러움과 열등감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일본 國鐵(국철)은 1956년에 기존 도쿄~오사카 간의 도카이도(東海道)선을 전철화한 후 프랑스 국립철도(SNCF)의 기술 협조로 고속전철 사업을 추진해 8년 만인 1964년 10월 1일 개통식을 열었다.
일본 최초의 국제 표준 廣軌(광궤) 노선으로 건설된 도쿄~오사카 간의 신칸센 개통 축하식의 주요 외빈이 프랑스 교통장관이었던 점을 보아도 신칸센 개발 초기에 프랑스의 기술 협조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일본 철도 당국은 일본 열도의 태평양 연안軸(축)의 서쪽으로부터 후쿠오카(福岡) ~히로시마(廣島) ~오카야마(岡山) ~고베(神戶)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나고야(名古屋) ~요코하마(橫浜) ~도쿄(東京) 등 인구 100만명 이상의 대도시가 연이어 있는 고속전철 보급의 세계 최고의 입지를 이용, 지난 45년 동안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노선을 확장해 나갔다. 시속 200km대의 ‘히카리’에 이어 300km에 육박하는 ‘노조미’가 운행 중에 있고, 2010년대에는 시속 400km의 초고속 열차가 등장할 예정이다.
신칸센의 노선 확장도 일본인 특유의 중장기 계획에 따라 계속 진행 중이다. 일본 철도 창설 100주년이 되던 1972년에는 오사카~후쿠오카(하카다) 간의 산요(山陽) 신칸센이 개통되었고, 1982년에는 도호쿠(東北) 신칸센(도쿄~센다이~모리오카)과 조에츠(上越) 신칸센(도쿄~니가타), 2005년에는 규슈(九州) 신칸센(후쿠오카~가고시마)의 일부가 개통됐다.
1980년대 나카소네 정권 당시 일본의 거대 국영기업 국철을 지역별로 6개의 JR회사로 분리한 후, 만성적자 기업을 흑자로 전환시킨 데 힘입어 일본은 해저터널을 이용해 홋카이도(北海道)의 삿포로(札幌)까지, 오카야마에서 세토대교(瀨戶大橋)를 거쳐 시코쿠의 다카마쓰(高松)와 마쓰야마(松山)까지, 동해 쪽의 가나자와(金澤)까지 신칸센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45년간 일본의 신칸센 전국화 중장기 계획을 보면 일본열도를 고속철도망으로 1일 생활권화하겠다는 정책 입안자들의 의지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면서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과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성숙한 철도이용 문화
셀 전체 선택
열 너비 조절
행 높이 조절
출발을 기다리는 런던행 유로스타. |
도쿄나 오사카의 중앙역에서 16량으로 편성된 신칸센 열차가 2~4분대 간격으로 정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며, 수천 명의 승객들이 질서 있게 이동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일본 고속철도의 규모와 저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런가 하면 신칸센을 제외한 협궤 노선의 재래식 철도 역시 고속화를 끈질기게 추진해 중소 도시 간에도 시속 100km 이상 달릴 수 있고, 말단 지선에서는 객차 한 량에 승무원 한 명이 운전과 검표를 함께 하는 ‘원맨카’를 운행하고 있다.
지난해 친지들과 함께 서부 일본 야마구치(山口)현의 유모토(湯本) 온천을 찾은 적이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산요 신칸센으로 신야마구치(新山口)역까지 가서 ‘원맨카’로 갈아타고 유모토 온천까지 가면서 마침 하굣길의 중·고등학생들이 차에 오르고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철도를 연결해 교통수단으로 애용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철도 사랑과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서부 일본의 교통 요충지로 꼽히는 오카야마역의 신칸센 플랫폼에서 재래선이 출발하는 쪽으로 가면 20개가 넘는 승강장에서 各地(각지)로 떠나는 열차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신칸센을 중심축으로 해 재래선 간선철도와 지선철도가 조화를 이루며 16량 편성의 長大(장대) 열차로부터 ‘원맨카’에 이르는 다양한 규모의 열차가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는 일본이야말로 철도 밀도와 인구 대비 철도 이용자 수에 있어 단연 세계 최고의 철도국가다.
일본에서 철도 여행을 자주 하면서 일본인들의 특성과 장점을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기회였다. 기관사나 객실 승무원은 물론 역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이 제복을 착용하고 있고, 人命(인명)을 다루고 시간을 지켜야 하는 철도원의 기본임무를 수행하는 자세가 진지하고 절도가 있었다.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를 가까이 지켜보면 근무 수칙을 정확히 지키며, 신호나 표지가 있는 지점을 통과할 때에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손으로 신호를 보낸다.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일본인들의 장점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일본 열차로 각지를 여행하면서 앞자리 승객이 뒤에 앉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의자를 뒤로 젖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몇 해 전 센다이(仙台)에서 도쿄로 가는 도호쿠 신칸센에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학생이 “의자를 뒤로 젖혀도 되겠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할 때 느낌은 색다른 것이었다.
도쿄~오사카 간을 1시간대에 주파
열차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일본인들은 지하철에서는 물론, 열차 안에서 책과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지하철이나 열차 안에서는 독서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눈을 감고 조는 사람 역시 많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잠자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고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철도 선진국 국민들이 독서를 많이 하고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질서를 지키는 것은 철도 문화의 긍정적 측면이기도 하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신칸센이나 재래선 간선 급행열차에 앉아 철도 여행을 즐기고 있노라면 ‘이 정도로 편리한 교통시설을 해놓고 국민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일본인들의 철도 사랑과 애착은 남다른 데가 많다. 전국적으로 철도 관련 동호회가 수백 개가 있으며, 철도 관련 월간잡지만도 10여 가지에 이른다. 2010년대에 가서 현행 ‘노조미’를 능가하는 시속 400km대의 초고속 열차가 등장하면, 도쿄~오사카 간을 1시간대에 주파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제국주의의 상징이자 植民地(식민지) 시대의 産物(산물)이다. 1899년 경인선(인천~노량진)이 개통된 이후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선과 경의선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군사 목적을 위해 부설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철도는 日帝(일제)의 침략과 동일시되는 측면이 강했다.
그 후 우리나라 철도의 대부분은 1945년 광복 때까지 일제에 의해 부설됐다. 광복과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철도는 극심한 피해를 입고 남북한이 분단됨에 따라 경의선, 경원선, 동해 북부선 등은 단절의 아픔을 겪었다.
1960년대 들어서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도 철도는 고속도로망 확충과 자동차 보급의 그늘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 한국철도의 운명이었다. 이 와중에 극히 일부 노선의 전철화가 이뤄지고, 제한된 범위의 신설 노선이 생기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산업 動脈(동맥)을 연결하는 경부선은 전철화는커녕 직선화 등 노선 개량 사업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근 한 세기 동안을 일제가 우마차와 지게를 동원해 건설했던 기존 경부선에 50년 된 디젤 기관차가 객차와 화물차를 끌고 다녔다. 철도산업의 기반과 로비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대형 건설회사들은 단기간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고속도로 건설을 우선순위로 삼고 오랫동안 독점하고 있었고, 자동차 업계 역시 음으로 양으로 철도 투자를 억제하는 세력으로 등장했다.
아직도 갈 길 먼 한국 철도의 현실
셀 전체 선택
열 너비 조절
행 높이 조절
KTX는 20량 1편성으로 한꺼번에 935명의 승객을 실어나를 수 있다. KTX가 서울-부산 간을 운행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전기료)은 110만원에 불과하다. |
우여곡절을 거쳐 도입된 프랑스의 TGV가 경부 축을 시속 200km로 주파하면서 철도교통의 편리함과 안락함, 그리고 환경친화적 효과가 국민 생활과 의식에 파급되면서 때늦은 감이 있기만 철도교통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일전에 거센 비판 여론의 표적이 됐던 공항철도(김포공항~인천공항 간)의 예에서 드러났듯이 우리의 철도 정책과 기획은 아직도 개별 노선별 단기 계획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철도교통은 오늘날 고속철도-간선-지선을 연계하는 전국토를 대상으로 중장기 계획을 통해 계획이 입안되고 실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계 교통망을 도외시한 채 단기 계획에 따른 개별 노선의 부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부 간을 2시간대에 주파한들 최종 목적지까지의 연계 교통망이 부실해 전체적으로는 불편한 철도망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의 정책 부서와 철도 당국은 전국토를 대상으로 철도 현대화 및 고속화 중장기 계획을 하루 빨리 수립해야 한다. 20~40년을 내다보는 서유럽이나 일본의 고속철도망 구상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국토교통성 자료에 의하면, 한 사람을 1km 수송할 때 소요되는 에너지는 비행기가 철도의 3.5배이며 승용차는 철도의 5.8배에 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철도는 탄소배출량이 훨씬 적어 그린 에너지 산업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또 화석에너지를 쓰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대체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의 경우 철도교통망을 더욱 확대시키고 고속화해 연계성을 높이는 것은 국가 차원의 과제다.
대규모 사업비를 투입해 건설한 경인 전철 복복선 활용의 현실을 보면 철도 당국이 아직도 철도 이용자들의 편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인천에서 출발해 최소한 서울역까지(현재는 용산역이 종점) 특급, 급행, 준급행 등 다양한 쾌속열차를 투입해 열차마다 각기 다른 역에 정차토록 하고 경인 간을 30분대에 주파하는 급행열차를 운행해야 한다.
또 앞으로 예상되는 철도시대에 대비해 시내 중심부까지 연결되는 노선을 폐선시키거나, 驛舍(역사)를 개발한다는 美名(미명)하에 도시 중심부에 있는 철도역 부지를 부동산 업자와 유통업자에게 헐값으로 내주는 행위를 당장 중지하고 앞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많은 승객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철도망 확충, 고속화에 우선 투자해야
오늘날 서유럽과 일본 같은 철도 선진국은 물론, 중국과 미국같이 국토가 큰 나라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까지 새로운 철도 부설과 기존 노선의 고속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고속철도가 자동차나 비행기와의 경쟁에서 장거리를 제외하고는 단연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철도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세계적인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우리도 전 국토를 철도로 연계하는 중장기 계획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고 정권 교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범국민적 합의를 도출했으면 한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제시됐던 경부운하 계획이 4대강 정비사업으로 둔갑하면서 천문학적 예산이 계속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자동차 교통과 고속도로망 확충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한 결과, 도로교통 체증과 이로 인한 물류비용 또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또 자동차와 도로교통에 피곤해지고 짜증나는 관행이 국민성으로까지 정착될까 봐 걱정이 앞선다. 4대강 정비사업이 우리의 교통체제와 물류비 절감에 효과가 없다면, 철도망 확충과 고속화에 한정된 재원을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